"선배, 오늘 아무 스케쥴 없죠? 우리 집에 와서 점심이나 같이 할래요?"
절친한 후배의 전화 초대를 받고 외출을 준비하는 마음이 유난히 가볍다.





바로 어제, 처음 만난 순간 뽐뿌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거금을 주고 질러버린 아이,
글레디에이터 샌들이
다소곳하게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색 샌들과 잘 매치되는 날아갈듯 시원한 쉬폰 원피스를 골라입고 거리를 나서니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치맛자락은 하늘하늘, 발걸음도 사뿐사뿐, 기분이 아주 그만이다.

아파트 앞 마트에 들려 음료수 선물 하나를 사고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후배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딩동~"
"왈~왈~왈~!!!"
응? 이 집에 웬 강아지 소리람? 
"네~ 나가요~!" 반갑게 문을 열어주는 후배의 팔에는 이쁜 푸들 한 마리가 안겨있다.
"어.....웬 강쥐야? 강쥐 안 키웠자너?"
"집에 온지 몇달 안 됐어요.....애기들이 하도 사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현재는 키우지 않지만 어릴적부터 개를 함꼐 해 온지라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하는 필자,
거실로 올라서자마자 강아지에게 손을 내밀고 혀를 끌끌...차며

"쯧쯔쯔....일루 와라~~"하며 부르니 이 강아지 어찌나 좋아하는지 방방 뛰고 난리도 아니다.
머리와 목을 쓰다듬어 주며 "아이구...이쁘다.....이거 가시나네..."하며 무릎에 앉히니
이 강아지,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필자의 원피스 자락에 오줌까지 질금질금 지린다.
"윽...어째....옷 다 버렸자너.....헐.....손에도 전부 오줌이야~!"
황급히 욕실로 가서 손을 씻고 원피스에 묻은 오물도 물로 살짝 빨아 뒷처리를 했다.


그래도 너무나 철없는 이 강아지는 주인에게는 가지도 않고 필자에게 붙어서 온갖 아양을 다 떤다.
무릎에 앉혀 놓고 목덜미랑 배를 슥슥 긁어주면 좋아라고 다리를 쳐들고 부르르 떠는가 하면
내려놓자마자 안아달라고 발딱 일어서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필자의 다리와 얇은 원피스를 마구마구 긁어댄다.


조금 있으니 다른 절친이 또 한명 더 방문하여...대화는 점입가경.....재잘재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날도 더운데 시켜 먹으려고 점심 준비 안 했어요.....뭐 드실래요?" 하면서 주방 쪽으로 가던 후배가
갑자기
"으악.....가시나....! 어쩐지 조용하더라니.....이거 우짜노~ㅠㅠ" 하며 소리를 지른다.
"왜, 왜...? 이쁜 강쥐를 왜 야단쳐...?"하고 일어나서 가보았더니
강아지가 입에 물고 놓지 않는 것은 바로 필자의 신상 글레디 샌들이 아닌가?





"엄마야.....!!!"

강아지의 입에서 샌들을 뺏어 들고 보니
헐......
오늘 처음 신고 나온 샌들을 완전 절단을 내놓았다.





굽은 질근질근 씹어버려 처참한 상태가 되었고 
발바닥 부분과 뒷꿈치 부분도 가죽이 험하게 까져버린 것....
"윽....어째....이거 오늘 첨 신고 나왔는데...ㅠㅠ"
"아이구.....선배, 어떻게 해요...미안해서....손님 오시면 현관 문을 꼭 닫는데 오늘 잊어버리고 현관문을 안 닫았네요..
어떡하나......ㅠㅠ AS 맡기시면 제가 수리비 드릴께요..."
강아지 주인인 후배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필자의 마음 속은 이미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화낸다고 샌들이 원상복귀 되지는 않을터라
"아... 괜찮아...괜찮아... 내일 가지고 가서 AS 맡기면 되니 너무 신경 쓰지마..."
무안해 하는 강아지 주인을 안심시키고 웃으면서 다시 앉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화를 나누었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이야기가 점점 무르익어가는데도 샌들 때문에 놀란 기분이 빨리 좋아지지가 않고
고1 때 엄마를 조르고 졸라서 산 까만 메리 제인 슈즈를
집의 강아지가 씹어서 절단을 내어버렸던 아픈 추억이 기억 깊숙한 곳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하는 수 없이 자리를 잠시 떠나 샌들을 구입했던 매장으로 전화를 해 보았다.
"여보세요...롯데백화점 오브엠이죠? 그저께 거기서 글레디 샌들 구입했던 사람인데요....
신발이....$#%&*#ㄹㅉ%ㅃ^&*#@~~~ㅠㅠ....
그래서 그런데.....혹시.... 한쪽만 교환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네, 고객님. 신발에 하자가 있으면 신으셨더라도 교환이 가능합니다만 이런 경우엔 좀 곤란할 듯 하네요..
상태를 보아야 하니.....가지고 오시면 성심 성의껏 손봐 드리겠습니다.."
"아...네...그러면 며칠 안으로 신발 가지고 들릴께요.."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신발 AS에 걸리는 시간이 있는지라 되도록이면 빨리 맡기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볼일을 빨리 마치고 즉시 백화점으로 차를 몰았다.

매장에 도달해서 신발의 상태를 보여주니 신발을 보던 매장 직원, 헉...하고 살짝 놀라더니 이내 웃는다.

"어....굽을 맛있게 씹어 먹었군요....ㅎ
이런 경우 굽을 완전 교체해야 하고 양쪽 색상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으니 성한 쪽 굽도 같이 달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물어뜯긴 샌들의 바닥이나 뒷꿈치 부분도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염색약으로 칠해 드릴께요...
최대한 잘 보수해서 원상에 가깝도록 조취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내일부터 본사가 휴가 기간이라서.....빨리 고쳐도 10일은 걸릴 것 같습니다.
최대한 재촉을 해서 매장에 샌들이 도착하는 즉시 댁으로 배송해 드리겠습니다.."

너무나 친절하게 대응을 해주는 매장 직원 때문에 다운 되었던 기분은 조금 나아졌고
10일 후에는 새롭게 태어난 나의 글레디 샌들을 받아들 수 있겠지...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매장을 나섰다.





그나저나 AS 받은 신상 샌들, 수중에 들어오게 되면
그 때 이미 여름 다 끝나버리는건 아닐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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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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