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 고도 경주에는 신비한 우물들이 많다. 

천문대로 알려져 있는 첨성대의 모양이 우물을 닮아 있을 뿐 아니라
신라 시조 박혁거세도 '나정'이라는 우물 옆에서 발견되었으며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도 또한 '알영정'이라는 우물 옆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재매정(財買井)' 또한 김유신과 관계있는 신비한 우물이다.

644년(선덕여왕 13년)에 소판(蘇判)이 된 김유신은 연달아 여러 차례 백제와의 싸움에 출정했는데, 

싸움터에서 돌아오자마자 가족을 만날 틈도 없이 곧장 다른 싸움터로 보내지는 일이 거듭되었다.
645년에도 백제 7성을 정벌하고 돌아오는데 백제군이 또 매리포성을 공격한다는 급보를 받고 다시 서쪽 국경으로 출정하게 되었다.

마침 장군의 집 앞을 지나가는데 가족들이 문밖에 나와 있었으나 장군은 집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한참 가다가
문득 말을 멈추고 병사를 시켜
집의 재매정(財買井)에 가서 물을 떠오라고 했다.
병사가 급히 재매정의 물을 떠 오자 장군은 그 물을 마시고
“우리 집 물맛은 옛날 그대로구나” 하고 말한 뒤 그대로 말을 몰아 계속하여 가던 길을 다.

이렇게 가족과의 이별을 한탄하지 않고 의연하게 싸움터로 나가는 김유신의 태도를 보고
부하들은 “장군이 저럴진대 어찌 우리들이 이별을 슬퍼하겠는가?” 하며 사기충천하여 전쟁에서 대승했다고 전한다.
 



김유신 장군의 생가터는 월성 서쪽 너른 평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당시 금으로 장식한 39채의 금입택(金入宅) 중 하나였다.





현재는 재매정이라는 우물과 드넓은 집터만 남아있을 뿐 생가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 세월의 허망함을 느끼게 한다.





1993년 발굴조사에서 재매정을 중심으로 사방 70m 지역을 발굴하였고 이곳을 사적 제246호로 지정하였다.





생가터의 우물은 화강암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는데 깊이는 약 5.7m이며,
가장 넓은 부분은 1.8m이고, 바닥의 지름이 1.2m로 벽돌같이 다듬은 돌로 만들었다.




우물을 덮은 두개의 화강석 사이로 아래를 보니 바로 아래 우물물이 가득 고여있는 것이 보인다.
비록 지금은 덮개를 덮지 않아 바람에 날린 티끌들이 물 위에 떠 있지만
천사백년전 당시에는 출정하는 김유신 장군의 타는 목을 적셔줄 만큼 충분히 시원한 생수였으리라.
강산이 변하고 변하여 김유신 장군의 생가터는 폐허가 되어버렸지만
장군의 목을 시원하게 축여주던 우물은 아직도 물이 그득하게 고여있어 보는 사람들에게 신비한 느낌마져 들게 한다.




우물 옆에 비각이 있기에 들여다 보니 '신라태대각간개국공김선생유허비'라고 쓰인 비석이 보인다.
이 비석은 조선 고종 9년(1872)에 이만운이 쓴 비석이라고 한다.




세월은 흘러 김유신 장군의 목을 축이던 우물 재매정은 제 구실을 하지 못 하고 있지만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김유신 장군의 충절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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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에서 김유신 배역을 맡아 열연하던 엄태웅이 가수가 되어 돌아 왔다고 한다.
가수라고....?
수퍼스타K에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왕년(?)의 섹시 여가수 엄정화가 친누나이니
그가 가수가 되었다고 해도 뭐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닌데.....

엄태웅은 누나 엄정화의 음악성 못지 않은 가창력을 가진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선덕여왕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가슴을 태우던 김유신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벗고
'시라노;연애조작단((Cyrano agency, 2010)'이라는 로맨스 코미디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시라노 에이전시'는 연애에 서투른 사람들의 사랑을 대신 이루어주는 연애조작단인데
때로는 영화 촬영장을 방불케 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때로는 비밀 작전 수행처럼 완벽하게 짜여진 각본으로 의뢰인의 사랑을 이루어주는 연애 에이전시이다.
그들의 신조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 안 한다'라나.....?
그러던 어느 날 스펙은 최고이나 연애는 꽝인 2% 부족한 의뢰인 상용(최다니엘)이
에이전시 대표인 병훈(엄태웅)과 그의 작전요원 민영(박신혜)을 찾아오게 되는데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랑스런 외모의 희중(이민정 분).
그러나 그녀의 프로필을 본 순간, 병훈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영화에서 엄태웅은 최다니엘과 함께 '청계산 가버렸네'라는 뮤직비디오를 공개해 눈길을 끈다.

사거리 좌회전 하면 너의 집인데
용기가 없어 머뭇머뭇 그냥 지나쳤네
오늘도 난 망설이다 좌회전 못하고
직진해 버렸네 그러다 청계산 가버렸네

독특한 제목과 위트 넘치는 가사, 유쾌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노래와 함께
엄태웅의 남다른 노래실력과 엔터테이너적 끼에 다시 한번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운좋게도 경주에서 직접 엄태웅의 노래를 들을 기회가 주어졌다.

한류드림페스티벌 첫날에 '한류 스타와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외국인 한류팬들을 위한 김범, 엄태웅, 윤상현 멋진 남자의 팬싸인회가 있었기 때문.





엄태웅, 김범, 윤상현 세 남자는 경주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0 한류드림페스티벌 - 한류 스타와의 밤'에 출연해

600여명의 일본, 중국 및 국내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는데
엄태웅은 "이렇게 많은 해외 팬들을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다. 경주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행사장을 가득 메운 외국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드라마 '선덕여왕' 촬영 때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냐고 묻는 팬들의 질문에는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던 기억이 난다. 복장 때문에 그랬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엄태웅 관련 포스트 : 선덕여왕 촬영장, 싸인해주는 엄태웅





막걸리 홍보대사이기도 한 엄태웅은 이날 팬들에게 키위 막걸리 칵테일을 만들어 보였는데
"칵테일 만드는 방법은 너무 쉽다. 키위와 막걸리를 함께 넣고 갈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팬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이날 엄태웅이 직접 만든 막걸리 칵테일을 맛보기 위해 한류팬들은 엄태웅과 가위 바위 보를 해야했는데








엄태웅과 같은 가위 바위 보를 낸 한류 팬 다섯명이 그가 만든 칵테일을 시음하고

아울러 선물과 함께 기념촬영하는 행운도 쥐게 되었다.





엄태웅은 "한국의 멋진 문화를 함께 즐기고 가셨으면 좋겠다. 다음에도 또 이런 좋은 자리가 있었음 좋겠다"며 소감을 밝힌 후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등 세 곡의 노래를 열창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누나인 엄정화와 함께 멋진 가창력을 선보이며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온 엄태웅.
새로운 영화에서 전보다 더 멋진 연기로 팬들에게 보답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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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거의 끝나가는건가...?
아침나절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서서히 그치더니
주말에 세찬 비가 내리리라는 예보와는 달리 점점 햇살이 뜨거워진다.

후텁지근한 기운에 지쳐 느긋하게 오수를 즐기고 일어나 창 밖을 보니
하늘을 잔뜩 덮고 있던 구름은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빠른 속도로 흐르고 또 흐른다.
춤추는 구름들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챙겨가지고 밖으로 나선다.

너무나 드라마틱한 구름들의 향연은
여름날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진풍경들이다.
뭉게 뭉게 하얀 구름이,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이 발목을 붙들어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까지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


여름에 찍었던 경주의 하늘 사진들을 몇 장 모아 보았습니다.
하늘 사진 많이 찍었던 것 같은데..... 막상 찾으려 하니 다 어디로 갔는지....^^




▶ 돼지 모양의 구름, 너무 귀엽죠?  2009년 8월 @ 경주 연꽃 단지




▶ 접시꽃과 파란 하늘이 잘 어울리던 날,  2008년 8월 @ 경주 동부 사적지구



▶ 경주 시내를 뭉게 구름이 뒤덮었던 날,  2009년 8월 @ 알천 북로에서 본 경주 시가지




▶ 천사의 날개 같지 않나요?  2010년 5월 @ 경주 황성동




▶ 살짝 무섭도록 장엄한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날, 2009년 8월 @ 경주 알천 남로




▶ 첨성대 위를 흐르는 구름이 너무 예뻤던 날,  2008년 8월 @ 경주 첨성대




▶ 십자가 위에 걸린 하늘이 너무 예뻐서 신호 대기 중에 머리 내밀고 찍었어요.  2010년 5월 @ 경주 황성동




▶ 종말의 날 같이 무섭게 구름이 드리우던 날,  2009년 8월 @ 경주 알천 북로




▶ 저 하얀 구름 타고 어디론지 멀리 멀리 날아가고 싶어요,  2008년 8월 @ 경주 동부 사적지구




▶ 김유신 장군 동상에 뭉게 구름이 걸려 있던 날, 2008년 7월 @ 경주 황성 공원




▶ 요술 구름 춤추던 어느 날,  2009년 7월 @ 경주 알천 구장




▶ 만화에서 폭탄이 빵~! 하고 터질 때 이런 모양이던데...^^  2009년 8월 @ 경주 인왕동




▶ 짖는 개를 닮은 재미있는 구름, 약간 당황하는 표정같지 않나요? , 2008년 8월 @ 경주 남산동




▶ 저팔계 닮은 구름, 콧구멍 발랑거리는 모습이 귀여워요.  2008년 8월 @ 경주 남산동




▶ 뿌리 같이 보이는 죽은 나뭇가지에 걸린 파란 하늘,  2008년 7월 @ 경주 계림




▶ 하늘에서 계시의 말씀이 내려오는 듯 신비한 빛내림.  2008년 8월 @ 경주 알천 남로




▶ 불사조가 날개를 접고 내리는 것 같아요.  2009년 8월 @ 경주 사정동




▶ 경주에서 제일 높은 타워에 양떼 구름이 걸린 날,  2008년 8월 @ 경주 타워




▶ 새털 구름과 황화 코스모스가 함께 춤추던 날,  2009년 8월 @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 드라마틱한 구름이 온통 하늘을 감싸던 2010년 7월 17일 오후 @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 북쪽 하늘도 난리가 났어요.  2010년 7월 17일 @ 경주 분황사




▶ 코스모스길에서 본 가슴 설레이는 하늘,  @ 경주 반월성 황화 코스모스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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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엔 무엇이 있을까.... 영국 여왕이 한국 방문 때에 방문한 하회 마을이 떠오른다.
그리고 안동댐, 안동 민속 마을, 안동 소주, 안동찜닭.....들이 생각나겠지만 
안동을 대표하는 최고의 문화 유산이라면 역시 '도산 서원'을 꼽지 않을까.... 



도산서원 주차장에 내려 수려한 경관의 안동호를 옆에 끼고 한참을 걸어가면

야트막한 야산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고즈녁하게 앉아 있는 서원의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도산서원은 1574년(선조 7년)에 퇴계 이황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써 
도산서당의 뒤편에 창건하여 이황의 위패를 모셨고 1575년 선조로부터 한석봉이 쓴 '도산'(陶山)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수백년 동안 영남 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 중의 하나였던 도산서원은 현재 사적 제170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산서원 마당 맞은편 안동호 쪽을 보면 물 속에 덩그렇게 솟은 비각이 보이는데 바로 시사단(試士壇)이다.
정조 16년(1792)에 정조 임금이 평소 흠모하던 퇴계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하여 어명으로 특별 과거인 '도산별과'를 보인 장소이다.
이 때 총 응시자가 7228명이었는데 임금이 직접 11명을 뽑아 시상하였다고....
지금은 안동댐 수몰로 인해 주변 송림은 없어지고 단이 있던 곳에 10m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과거 장소를 표시해 두었다. 



 서원 앞 마당의 특이한 전나무가 눈에 뜨인다.
한 몸에서 자라서 두 나무가 된 이 나무는 금슬 좋은 부부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바로 옆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알아서 옆으로만 뻗어 자라는 수령 400년이 넘은 왕버드나무는 더욱 눈길을 끈다.
 

 

서원 바로 앞에는 도산 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인 열정이 있다. 
 

 

우물이 항상 제 자리에 있어서 누구나 그 물을 퍼서 마실 수 있듯이 주인없는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자신의 노력으로 즐겨 마셔서 인격과 지식을 쌓아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되라는 교훈을 주고 있는 우물이다.

 


 정문의 계단을 거쳐 도산서원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아래 도산서원 경내 배치도를 보면
도산서원이 기존 지세를 거스르지 않고 잘 지은 건물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정문을 들어서면 경사면을 따라 계단이 이어지고 계단 끝에 진도문이 보인다.
왼쪽 건물은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관리건물인 하고직사이다. 



 정문을 들어가서 오른 쪽에는 도산 서당이 위치해있다. 


 

이곳은 퇴계 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서당 안의 샘인 몽천은 산골에서 솟아나는 바가지 샘이다.
몽매한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끌어가는 스승의 도리와 한방울 샘물이 솟아나와
수많은 어려움을 거쳐 바다에 이르듯이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의 뜻을 이룩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도산 서당에는 서당 기둥에 작고 보잘 것 없는 현판이 붙어 있을 따름이다.

 

 

선생이 거처하시던 자그마한 방은 '완락재'라 이름하고  


 

넓지 않은 마루는 암서헌이라 한다.  

 

 

반들반들한 문고리를 잡고 열면 퇴계 선생께서 잔기침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보일 것만 같다.
 

 

긴 계단의 제일 위에 위치한 진도문은 정문을 거쳐 전교당으로 들어가는 중문인데 진도문의 양옆에는 광명실이 자리잡고 있다.

 

 

광명실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인데 동,서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지어졌다.

서쪽에 위치한 서고는 서광명실이고 동쪽의 서고는 동광명실인데 현판의 글씨는 퇴계 선생 친필이다. 


광명실 누각에 오후 햇살은  따사롭게만 느껴지고....


문의 푸른 색과 녹슨 장석의 붉은 색이 조화를 잘 이룬다.

 


서고의 무슨 책이 있나 보고 싶었는데 문은 굳게 잠기고 인봉까지 되어 있다. 


서고의 문살 구멍으로 들어다 보았더니


 고서는 안 보이고 현대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진도문 안 쪽에 걸려 있는 북에서 세월의 풍상이 느껴진다.  

 

진도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서면 도산 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전교당(보물 210호)이 나타난다.

 

 

전교당이란 도산서원의 강당에 해당되는 건물인데 조선 선조 7년(1574)에 건립되었다.
건물의 구조는 매우 간소하며 강당인 대청과 거실인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는데 정면 4칸,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대청의 전면에 전교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왼쪽은 온돌방으로 된 거실인 한존재이다.  


 

서원의 축대 아래는 제를 올릴 때 등불을 밝히는 대인 정료대가 자리잡고 있다.

 


 전교당 마루 위에 '도산서원'이라는 선조 임금이 내리신 사액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멋들어진 글씨는 한석봉 친필이다.


주춧돌은 전혀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하였고 주춧돌과 벽 사이에는 이렇게 구멍을 내어 연기가 쉽게 빠져나오게 하였다, 

전교당 앞의 건물은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는 집으로 동,서재가 서로 마주 보고 지어졌다. 


 

동재(東齋)·의 이름은 박약재라고 하고  

서재(西齋)의 이름은 홍의재로 역시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는 건물이다. 



동재에서 협문을 지나 동쪽으로 나가면 장판각이 나오는데 이곳은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던 장소이다. 
 


이곳에는 선조 어필, 퇴계 선생 문집, 유묵,언행록,병서,도산십이곡 등의 목판 2790장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2003년에 한국국학진흥원으로 다 이관되고 지금은 아무 것도 보관되어 있지 않는 빈 창고이다.
안을 들여다 보니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고 건물의 보존 상태가 엉망인 것이 숭례문 사건이 떠올려져서 씁쓸하기만 했다.

 


 전교당 바로 뒤에 있는 상덕사 삼문은 퇴계 선생의 위패를 모셔 놓은 사당인데 둘러싼 담장과 함께 보물 211호로 지정되었다. 


 상덕사 옆의 진사청으로 들어가는 협문으로 올라본다. 


 

진사청은 상덕사에서 퇴계 선생의 향례를 지낼 때 재물을 보관하고 
평소에는 묘지기로 하여금 사당을 수직케 하던 곳이다.

 


 제수청과 주고(酒庫)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직사는 서원을 관리하던 수호인들의 살림집으로 상,하 두 고직사가 있다.



고직사 건물은 사방이 둘러막힌 ㅁ 자형의 건물이다.

 

 

유생들의 끼니를 책임졌을 듯한 커다란 솥이 다소곳이 걸려 있어 방문자의 관심을 끈다.

 

 

상고직사에서 나와 유물전시관 앞에서 보면 위 왼쪽이 상고직사,
가운데 문은 전교당으로 들어가는 쪽문, 가운데 건물은 서광명실, 아래 건물은 하고직사이다. 



담장으로 서당가는 길과 격리가 되어 있는 농운정사는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열공>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工>모양으로 집을 짓도록 하였다고 한다. 


 

공부하던 동편 마루는 시습재이다. 아마도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에서 이름을 딴 듯....  



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헌이라 하였다.

 

 

휴식하던 서편 마루보다 공부하던 동편 마루가 더 높이가 높은데 이는 학업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방문 옆의 작은 봉창은 아주 작은 문이라는 뜻으로 '코딱대기문'이라고 한단다. 

 

정문 바로 옆에 위치한 역락서재는 선생 생전에도 있던 건물이다. 


 

퇴계 선생의 제자 정지헌의 부친이 지헌을 취학시킬 때에 특별히 지어준 집으로 현판은 퇴계 선생 친필이다.

그 당시에의 유력한 부모들은 학교 측에 특별 기부금을 많이 냈나보다.

어쨌건 간에 사학의 진흥을 위해 매우 좋은 일이라 생각되는데......
공부하는 아이들은 이 곳에 앉아서 퇴계 선생의 정기를 받으면
특별히 공부를 잘 하게 된다는 안내인의 말에
아이들은 물론 할머니들까지 다 마루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퇴계 선생의 정기를 받아 정말 공부를 잘 하게 된다면
강남의 열성 엄마들이 다 이 역락서재로 유학을 시켜
이 도산서원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상승하지 않을까...? 
잠시 싱거운 생각을 해보며 도산 서원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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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낭산(狼山)은 경주 국립박물관에서 도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야산이다.
낭산은 남북으로 길게 누에고치처럼 누워 양쪽에 봉우리를 이루었는데
허리는 잘룩하며 높이는 108 m로 그다지 높지 않은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고 있다.
신라 실성왕 12년(413년)에는 이 산에서 구름이 일어 누각같이 보이면서 오랫동안 향기가 피어올랐으니
나라에서는 하늘의 신령이 내려와 노니는 것으로 여기고 그 후에는 나무도 베지 못 하게 하였다고 한다. 

산자락에는 거문고의 달인이자 박제상의 아들인 백결 선생이 살았고 최치원의 독서당도 있으며
남쪽 능선에는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와 오늘 소개하려는 능지탑지(陵只塔址)가 자리잡고 있다.  
 

 경주 박물관을 지나 배반동 사거리에서 울산 쪽으로 100 미터 정도 지나 왼편 길로 접어들면
바로 능지탑과 선덕 여왕릉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는데 차 두대가 교행 할 수도 없는 좁은 산길을 
십여미터 정도 걸어가니 예사롭지 않은 모습의 탑이 바로 지척에 나타난다. 

실성왕 12년에 낭산에 구름이 일어 누각같이 오르고 향기가 피어 올랐다더니만
능지탑을 처음 만난 이날에도 낭산의 바로 위에는 신비로운 구름의 기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 탑은 통일 신라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건조물로 높이는 4.49 m이다.   

 여느 탑의 형태와는 달리 특이하게 생긴 이 탑은 예로부터 능시탑,능지탑 혹은 연화탑으로 알려져왔는데  
허물어져 있던 것을 1979 년에 기단부를 복원하고 상부를 추정하여 정리하였다. 

  원래는 기단 사방에 십이지신상을 세우고 연화문 석재로 쌓아올렸던 5층탑으로 추정되는데 

 무너진 것을 다시 쌓을 때 정확한 원형을 알 수 없어 기단부 2 단만 토석 혼합으로 쌓았고    

 2층을 쌓고 남은 나머지 돌들은 옆과 뒷부분에 모아 두었다. 

 기단에는  12 지상이 새겨져 있는데 12 지상 중 3 개는 분실되었지만, 남아있는 9 지상은 비교적 정교하고 뚜렷하다. 

 동쪽은 호랑이,토끼,용(寅,卯,辰)의 지상이 자리잡고 있는데 현재 토끼의 상만이 남아 있다. 

 남쪽은 뱀, 말, 양(巳, 午, 未)의 지신상이 자리잡고 있는데 위는 말의 지상이다. 

 얇은 옷자락의 선이 섬세하기 이를데 없는 양의 지신상이다.  

 그리고 서쪽은 원숭이, 닭, 개(申, 酉, 戌)의 형상이 다 남아 있는데  

 얼굴 표정과 갑옷의 표현이 정교하여 마치 손오공이 살아서 돌아온 것 같은 원숭이의 지상과 

 금방이라도 꼬끼오~하고 울 것 같은 닭. 

 서라벌의 멋쟁이 같아보이는 개의 지상이 자리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쪽은 돼지, 쥐, 소(亥, 子, 丑)의 지상이 다 남아 있는데  

 꿀꿀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돼지의 지상은 주둥이 쪽에서 보면 더욱 리얼하고 

 아름다운 뿔을 자랑하는 소의 지상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이 날도 햇빛님이 해박하신 문화재 지식으로 능지탑의 이모저모를 잘 해설해 주셨는데
아름다운 손에 시선이 집중되어서일까? 쥐의 지상은 그 형상이 그다지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이런 12 지상은 성덕왕릉, 경덕왕릉, 괘릉, 헌덕왕릉, 김유신 장군 묘에도 새겨져 있다. 
관련 포스트 : 비오면 비석 이름 바뀌는 신기한 김유신묘

 복원시에 미쳐 다 쌓지 못하고 주변에 쌓아둔 기단석을을 자세히 보면 앞에는 연화문을 잘 다듬었지만  

 뒤편은 자연석 모양을 그대로 두어 탑을 쌓았을 때 무너지거나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였다. 

 이 탑에서는 발굴 당시 큼직한 소조 불상 파편이 나왔다고 하는데 무엇 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돌의 색깔이다. 

 쌓아진 기단석이나 쌓지 못하고 방치된 기단석을 비롯하여 주변의 돌들이 모두 안쪽이 불에 그을려 있는 모습이 눈에 띄는데... 

  이 탑지 안에서 문무왕릉비의 파편이 나왔고 이렇게 불타 그을린 흔적이 나온데다 
 삼국사기의 기록까지 있어 이 곳이 문무왕의 화장지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장남이자  통일신라의 기틀을 완전히 세운 문무왕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통일 전쟁에 용감하게 뛰어들었고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와도 일전을 벌여 제압한 후 마침내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군주이다.  

거듭된 통일 전쟁을 힘겹게 끝낸 문무왕은 생명의 줄을 놓고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모든 성과를 아들인 신문왕에게 넘겨주고 숨을 거두며 유언을 남겼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싶으니 화장한 후, 동해에 안장해다오.”  
그리고 “상례(喪禮)를 검약하게 하고, 죽은 지 열흘 이내에 화장하라.”
하는 유언을 남겨 백성들의 부담을 가볍게 해주려고 하였다.
문무왕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세상 부귀영화를 탐내지 않은 왕이었다.

   


  
 이렇게 화장된 문무왕의 유골은 감포 앞 바다 대왕암에 수장되었다.
양지바른 무덤자리조차 포기하고, 차갑고 어두운 바다에 조성된 세계 유일의 수중왕릉이다. 
 

바닷가에서 보면 대왕암은 그저 바위섬에 불과하다.
일부에서는 문무대왕의 유골을 뿌린 산골처일 뿐 수중릉이 아니다고 논쟁을 벌이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중요한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문무왕의 순수하고 숭고한 정신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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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수학여행지의 추억으로나 떠올려지던 경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 TV 드라마 '선덕여왕'의 열기로 인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주를 찾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주말이 되면 선덕여왕과 관련된 유적지들 가는 곳마다 가족 단위의 탐방객들로 붐비고 있는 형편인데...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경주에서 어디서 무엇을 둘러 보아야할지 막막한 분들을 위해
선덕여왕 드라마 관련 유적지를 휘리릭....주마간산격으로 소개해드린다.


제일 먼저 돌아보아야 할 곳은 뭐니 뭐니 해도 낭산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선덕여왕릉.
남산의 동쪽에 위치한 낭산은 해발 100m 남짓한 야산으로 그 모습이 엎드린 이리(狼)의 모습이라 하여 낭산(狼山)이라 불린다.
선덕여왕은 죽기 전에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 "내가 죽으면 도리천에다 묻어달라"고 했는데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디냐고 묻자 여왕은 낭산이라고 답한다.
그래서 낭산에 릉을 썼는데 여왕 사후 30년이 지나 왕릉 아래 사천왕사가 세워지게 된다.
불가에서는 호국왕 사천왕이 사는 사왕천의 위쪽을 '도리천'이라고 칭하므로
이 일은 향기 없는 모란꽃 설화, 여근곡 설화와 함께 선덕여왕이 앞일을 예지한 '선덕여왕 지기삼사(知機三事)'로 불리운다.




사실 드라마가 뜨기 전까지 선덕여왕릉의 위치는 경주 사람에게도 생소한 곳이었다.
왕릉의 대접을 받는 김유신묘가 송화산 위에 우뚝 서서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데 반해서 
선덕여왕릉은 경주 시내에서 울산가는 도로의 좌측에 위치해 릉에서 한참을 지나 유턴하지 않고는 진입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왕릉 입구도 애매하다.
경주 시내 유적지마다 위치한 유적지 관리 사무소는 이곳에는 없으니 입장료는 당연히 없고 차를 주차할 공간도 마땅하지 않는데
올해에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 탐방객이 늘어나자 사천왕사지 앞에 겨우 몇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도록 공간을 넓혀 놓은데에 불과하고
차에서 내려서도 채소밭, 과수원, 소나무숲길...등 진입로같지 않은 산길을 한참 걸어가야 릉이 나온다.



일년만에 다시 찾아본 선덕여왕릉은 버려져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던 작년보다는  어느 정도 릉 주변이 정화되어 있었지만
경주에 위치한 다른 릉에 비해서는 확연할 만큼 무덤의 떼가 잘 살지 않고 엉성하게 벗겨져 있어서 찾는 이들에게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근간에 드라마의 명성을 힘입어 외지에서 찾아온 분들이 제법 보였는데 릉 앞에 서신 분들의 태도는 다른 릉에 비해서 숙연하기만 하고
참배 왔던 분들이 놓고 간 꽃다발과 박카스, 귤등이 상석 위에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선덕여왕릉을 나와 사천왕사지를 지나면 바로 건너편으로 통일전 가는 길이 나오는데 통일전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세 영웅의 업적을 기리는 곳이다.



바로 태종 무열왕 김춘추, 그의 아들 문무대왕, 태대각간 김유신의 영정과 그들이 업적이 기록화로 남겨져 있는 곳.
역사적 유적지는 아니나 사계절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고 특히 아이들에겐 교육적으로 꼭 들려보야야 할 필수코스로 추천하고 싶다.



통일전을 나와 오른쪽으로 낭산을 끼고 보문 단지 쪽으로 우회전하면 나타나는 동네가 보문동인데 이곳에는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릉이 있다.
진평왕은 재위 기간이 579년에서 632년으로 무려 54년간 왕위에 있었으며  여러 차례에 걸친 고구려의 침공에 대항하여 수,당나라와 수교하고
대내적으로는 위화부, 선부서,예부 등의 관청을 신설하고 내정의 충실을 도모하였을 뿐만 아니라
원광법사 들을 중국에 보내어 수도하게 하는 등 불교를 진흥시키고 왕실을 튼튼히 하는데 힘쓴 훌륭한 왕이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힘없고 나약하여 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미실에게 휘둘리기만 할 뿐더러
머리도 새카만 젊은 나이에 실권을 덕만에게 넘기고 일찍 사망하는 것처럼 왜곡 표현되기만 해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안타깝기만 했다.



진평왕릉 역시 관리 사무소가 없고 주차장 시설이 제대로 없었으나 드라마 방영 후 넓은 주차장과 화장실 시설을 갖추었다.
특히 진평왕릉의 주위는 황금 물결이 넘실대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이 너무나 아름답고 아름드리 고목 아래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가 인상적이며
주변이 너무나 호젓하여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펴 놓고 연인들끼리 대화를 나누거나 한참을 쉬어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지인의 말로는 이른 아침과 해질녘의 진평왕릉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하니 카메라를 가지고 석양 즈음에 다시 한번 가보아야겠다.



진평왕릉을 나와서 보문단지쪽으로 500m 정도가면 보문 호수 입구 바로 오른쪽에 비담이 난을 일으킨 명활산성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명활산성은 지금까지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비담의 난으로 인해 선덕여왕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곳이니 꼬옥 들러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명활산성을 둘러보신 후에는 보문 호수를 지나 엑스포 공원 맞은 편에 위치한 신라밀레니엄파크를 가볼 것을 권한다.
신라밀레니엄파크는 민속촌처럼 신라시대를 재현한 역사 체험 테마 파크인데
20여년전에 경주 보문에 역사 문화 체험 민속촌을 계획하고 건설하던 도중 워낙 방대한 공사 규모로 인해 부도가 나서
거의 십여년을 버려져 있던 마을을 삼부토건에서 매입하여 새롭게 조성해서  '신라 밀레니엄 파크'로 개장하였다.
이곳에서는 역사와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체험 및 대형 사극 '천궤의 비밀', '여왕의 눈물', '화랑의 도'공연을 매일 관람할 수 있다 .
무엇보다  MBC드라마 선덕여왕 촬영을 위해서 20여억원을 들여 새로 지은 미실궁과 김유신 화랑 산채 세트장을
직접 둘러 보고 드라마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 많은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미실궁 앞에 위치한 김유신 화랑 산채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을 위해서 새로 지은 것인데
필자의 드라마 관련 포스트에 선덕여왕 촬영 당시 이요원,엄태웅,고현정...등 중요 배역의 직찍 사진이 있으니 글 하단의 링크를 클릭하시길 바란다.

김유신 화랑 산채 바로 옆에 위치한 화랑 공연장 역시 드라마에서 문노와 설원랑, 미실의 난 중의 출병 장면 등 드라마의 다양한 장면을 찍은 곳.
여기서는 매일 2회씩의 '화랑의 도' 공연이 열리는데 화랑들의 검술과 신기에 가까운 마상 무예 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공연장이다.



보문단지를 나와 시내쪽으로 와서 꼬옥 가보아야 할 곳은 당연히 첨성대.
과학적 건축 양식으로 주목을 받는 첨성대는 드라마에서는 엉뚱하게도 덕만이 공주 시절에 조성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세종실록지리지에 나타난 기록에 의하면 그 조성시기는  '당태종 정관 7년 계사년(癸巳年)'인 서기 633년이다.
선덕여왕의 재위 시기는 632~647년으로 보는 바, 첨성대는 선덕여왕 재위 2년째에 쌓은 것이니
덕만이 공주 시절에 첨성대를 만들고 어쩌고...하는 드라마 스토리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첨성대 바로 앞에는 신라의 궁성 반월성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은 서기 101년 파사왕 22년에 신라의 왕성으로 축성되어 신라가 망하는 서기 935년까지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하여 '신월성(新月城)' 또는 '월성(城)'이라 불렸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려 오늘에 이르는데 드라마에서 미실이 사다함을 추억하는 장면이라든지
소화가 어린 덕만을 안고 탈출하는 장면 들 많은 장면이 반월성에서 촬영되었다.



특히 반월성 앞 수만평의 너른 초지에는 봄이면 벚꽃과 유채가 환상의 조화를 이루고 여름이면 황화 코스모스와 연꽃이 앞을 다투어 피어나며
반경 500m내에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 연꽃단지, 야생화단지, 계림,대릉원, 최부잣집....등 많은 유적지가 밀집해 있어서
이곳에서만 하루를 보내어도 하루해가 부족할 정도이다.



반월성에서 대릉원 앞을 지나 최부잣집, 월정교 복원 현장이 있는 교동에 이르면 사마소 바로 옆에 김유신의 생가터가 있다.
생가터에는 재매정이라는 우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제매정에 얽힌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김유신이 백제와 싸워 크게 이기고 돌아오는 중에 다시 백제군이 침범하여 온다는 급보를 받는다.
유신은 쉴 사이도 없이 다시 전장으로 출전하게 되는데 도중에 자기의 집 앞을 지나가게 되지만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잠시 멈추어 병사를 시켜 자기 집 우물의 물을 떠오게 한다.
물을 다 마신 다음 김유신은 "우리 집 물맛은 옛날 그대로이구나!" 하면서 다시 전장으로 떠난다는 멋진 기록.
지름 1.8m, 깊이 5.7m인 이 우물은 아직까지 남아 물이 고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적지가 밀집한 시내를 벗어나 서천으로 불리는 형산강 다리를 넘어가면 왼쪽으로는 무열왕릉 , 오른쪽으로는 김유신묘가 위치해 있는데
왼쪽길로 1km정도 가면 선도산 동쪽 사면에 거대한 원형분 5기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랫쪽에 위치한 밑둘레 114m, 높이 약 8.7m의 거대한 릉이 바로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릉이다.
김춘추는 신라 중대 첫 진골 출신의 왕으로 삼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병합하고 통일 대업의 기반을 닦은 왕이다.




무열왕릉은 신라의 역대 왕릉 가운데 피장자가 명확한 유일한 능으로 꼽히는데 그것은 릉 동쪽에서 비석을 세웠던 돌거북과 머릿돌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머릿돌에는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씨가 돋을새김되어 있어 이 릉이 무열왕의 릉임을 알려준다.



무열왕릉을 나오면 반대편에 있는 김유신묘로 향하는 것이 좋다.
낭산 깊숙히 들어앉아 드라마 방영 전까지는 경주시민들조차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선덕여왕릉에 비해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김유신 장군묘는 사당인 숭덕전을 비롯해서 금산교육관, 금산재 등 여러 부속건물을 거느리고
무덤에도 무덤을 보호하는 호석(둘레돌)에는 12지신상이 새겨져 그 화려하고 당당함이 그 어느 왕릉에 못지 않고 주변 숲도 너무 아름답다.
그리고 김유신 묘 앞에 서 있는 오른쪽 비석에는 비오는 날에만 글씨가 바뀌는 신비한 비밀이 있으니 비오는 날 경주를 방문하시면 꼬옥 방문해 보시도록...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신 분은 김유신의 무술 수련 장소 단석산에 올라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단석산은 경주시 경계에 위치한 산 가운데 제일 높은 산으로 높이는 827m 이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의 서쪽에 위치해 건천읍, 산내면, 내남면에 걸쳐 있는 이 산에는 김유신과 관련한 전설이 있는 단석(斷石)이 정상 부위에 있다.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들은 어린 김유신이 백만돌이처럼 하나,둘...세면서 쉴새 없이 검을 내리치던 장면과
엄태웅이 연기한 김유신이 산 정상에서 백만스물하나..백만스물둘....(^^)하면서 끝도 없이 바위를 목검으로 내려치던 장면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 때 김유신이 내리쳐서 두동강이 났다고 전해오는 바위를 산 정상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등산을 즐기는 분이라면 꼭 가보셔야 할 명소가 단석산이다.


필자가 언급한 유적지 외에도 경주에는 황룡사지, 분황사 등 선덕여왕 때에 건립된 사찰 등 많은 유적지가 산재해 있고
백제와 신라의 전쟁 씬과 문노가 앉아 있던 멋진 나무가 있는 암곡 등....미쳐 소개하지 못한 선덕여왕 촬영지 또한 너무나 많다.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 드라마 선덕여왕, 곧이어 비담의 난이 전개될 것이고 선덕여왕의 죽음이 예견되어 있다.
비록 드라마가 끝나더라도 경주에서 '선덕여왕'의 신화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리라.....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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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49회는 완전 미실과 비담을 위해 쓰여진 극본인 듯 하다.
주연인 덕만과 유신의 존재감은 극히 미약한데 반해 미실과 비담에만 온통 드라마의 촛점이 맞추어졌으니.....


선과 악을 넘나드는 야누스적인 캐릭터로 언제 숨겨진 잔인성을 발휘하여 등을 돌릴지 항상 아슬아슬함을 주던 비담은
염종의 꼬드김에 귀가 한껏 얇아져 있는데다가 덕만의 명을 받고 나무 아래서 파낸 비서(秘書)가
막상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라는 칙서였다는 것을 알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비록 자신을 버린 어머니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
자기 손으로 어머니를 죽이라는 칙서를 전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미실에게서 돌아온 비담은 땅을 파보았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는 거짓말을 덕만에게 하게 되고
미실은 세종과 하종에게 비담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전하는데....
50회에서는 미실이 죽게되는 과정과 함께 절대 충성하던 비담이 덕만에게 배신하게 되는 과정이 서서히 전개될 듯 하다.

드라마에서 진지왕과 미실간의 사생자로 등장하는 비담(毗曇).

사실 출생 연도, 부모 등 출생에 대한 사항 및 업적 등에 대해서는 남은 기록이 전혀 없다.
언제 태어났는지 누구의 아들인지....그에 대한 기록은 완전히 파기된 것이다.

다만 남아 있는 비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선덕여왕 재위 말기인 645년에 화백회의 수장인 상대등이 되었으며
647년(선덕여왕 16년)에 비담의 난을 일으켜 명활산성에 진을 치고 대치하다 반란을 일으킨지 10일만에 진압 당한 뒤
동조하여 난을 도모한 30 여명의 진골 귀족과 함께 잡혀 죽임을 당했으며 비담의 가계는 구족(九族)이 멸하였다는 기록 뿐이다.


비담은 상대등이 된 후 국내 정치와 대외 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유신, 춘추와 경쟁하게 되는데 점차 세력이 밀리게 되자
"여왕은 정치를 잘 하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선덕여왕을 폐히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자 염종 등의 진골 귀족들과 더불어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신라 최고의 관직인 상대등이 일으킨 반란이므로 그 규모는 심히 컸고 사태도 매우 위급하게 전개되었는데
왕이 안에서 막아내자 비담은 '명활산성'에 진을 치고 유신, 춘추는 월성에 진을 쳤는데 공방이 10 여일이었지만 풀리지 않았다.

그 때 한밤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비담은 군사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들으니 별이 떨어진 아래에는 반드시 유혈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여왕이 패전할 조짐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비담군은 사기가 충천해져 군사들의 떠들어대는 소리가 땅을 진동하니 선덕여왕은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때 유신은 여왕의 근심을 지혜로운 언사로 달래주고
경주 율동의 성부산에서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붙인 뒤 연에 매달아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기지를 발휘한다.
이튿날 사람을 시켜 거리에 말을 퍼뜨리기를 "어젯밤에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반군들이 의심하게 하고
또 흰말을 잡아 제사를 하며 여러 장졸을 독려하며 싸우니 군사들의 사기가 다시 충천하게 되어 10일만에 난을 진압할 수가 있었다.

이에 유신은 패주하는 비담 등 주모자를 잡아 목을 베고 그의 구족(九族)을 멸하는데
그 사이에 병환이 심했던 선덕여왕은 병세가 악화되어 승하하게 되고 
진덕여왕이 신라 제28대 임금으로 즉위하게 된다.

비담은 분명 진골 귀족들의 수장좌이자 신라의 최고 벼슬인 상대등에 오를만큼 당대 최고위 귀족이었지만
반역을 꾀한 죄로 역모에 대한 내용을 제외한 다른 기록들은 모두 파기된 것으로 추정되어 그의 더욱 출신은 미궁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동안 신라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우리에게는 그 이름조차 생소했던 비담..
선덕여왕 비담의 유명세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 둘 찾기 전에는 세간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했던 비담의 근거지, 명활산성을 찾아가 본다.


경주 시내에서 보문단지로 진입하다 보면 길이 둘로 갈라지는 곳이 나오는데
보문호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음식점들이 있는 곳 바로 끝부분에 위치한 명활산성의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많은 분들이 찾는 보문단지 입구에 비담이 난을 일으켰던 근거지가 있다고 하면 처음 들었다고 놀라시는 분이 더 많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안내판을 지나면 비포장길을 100m도 채 들어가지 않아 바로 나타나는 산성이 바로 명활산성이다.


명활산성(明活山城)은 경주의 동쪽 명활산 꼭대기에 쌓은 둘레 약 6㎞의 신라 산성이다.


신라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으로 인정받아 2000년 1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명활산성은
근래에 와서 일부 복원,축조되었는데 복원된 부분은 안팎이 돌로 짜여있으며 길이 50m, 높이 3m 가량의 2단으로 쌓았다.



산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신라 실성왕 4년(405)에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보이므로 그 이전에 만들어진 성임을 알 수 있고
또한 성을 쌓는 방법에서도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한 신라 초의 방식을 보이고 있다.


눌지왕 15년(431)에는 왜구가 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는데, 이는 이 성이 신라의 수도인 금성을 지키는데 중요한 곳임을 말해준다.
진흥왕 15년(544)에 다시 쌓았고, 진평왕 15년(593)에는 성을 확장했다.

또한 '명활산성작성비'가  1988년 석성(石城)의 북서쪽 성벽에서 발견되어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는데 

명활산에 산성을 쌓고 세운 기념비인 높이 66.8의 이 기념비는 현재 경주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산성 축조 당시의 기록이 적혀 있는 비문은 9행 148자로 앞면이 꽉 차게 새겨져 있는데
비문의 내용은 ① 작성 간지가 있는 서두, ② 축조공사 총책임자의 이름, ③ 축성공사 실무자의 이름 및 담당거리,
④ 공사담당 위치, ⑤ 축성참가자의 수, ⑥ 공사기간, ⑦ 글쓴이의 이름 등의 순으로 기재되어 있다.
첫머리의 '신미년'(辛未年)이라는 간지는 551년(진흥왕 12)으로 추정되며,
공사기간이 35일로 기록되어 있는 점 등은 성곽 축조 규모 및 인력 동원체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비에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상인나두'(上人邏頭)·'장인'(匠人)·'서사인'(書寫人) 등의 여러 직명도 기록되어 있어
남산신성비와 함께 신라시대 사회제도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되는 귀중한 금석문이라 할 수 있다.



비담의 난은 단순한 왕위쟁탈전이 아니라 신라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신라는 법흥왕 이후 진덕여왕에 이르기까지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화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특히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금관가야 왕실의 후손인 김유신과 손을 잡고 이러한 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갔는데
이로써 자신들의 위치가 불안하게 된 귀족은 불만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대대적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비담의 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승리는 결국 김춘추, 김유신에게 돌아갔고 이들이 중심으로 강력한 왕권강화와 중앙집권제가 실시된다.
이후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으로 즉위함으로써 귀족연합체제를 이루던 신라 상대(上代)가 막을 내리고
신라 중대(中代)가 시작되었으며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체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난은 신라 상대 말기에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세력과 왕권강화를 통한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하려던 왕실세력의 싸움이었고
여기서 김춘추, 김유신의 신귀족 세력이 승리함으로써 장차 신라 중대 왕실이 성립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 선덕여왕, 미실의 죽음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덕만의 강적 미실이 죽고 나면 이제 비담이 덕만의 주적(主敵)이 되는 일만 남아 있는데
덕만을 흠모하며 덕만에게 완전한 복종을 하고 있던 비담이 어떻게 덕만에게 발꿈치를 들게 할지는 오로지 작가의 펜끝에 달려 있을 듯....
야누스적인 캐릭터지만 미워하면서도 배척할 수 없는 나쁜 남자 비담의 앞으로의 역할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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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의 최종'병기 김춘추.
도대체 누가 주연이고 조연인지 모를 만큼 드라마에서 덕만보다 춘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한데
활짝 웃는 유승호가 클로즈업되며 드라마가 끝나면 보는 사람 또한 자신도 모르게 따라 미소를 짓게 된다.
너무나 훈훈하게 자라준 유승호를 보면서 흐뭇하지 않은 여성 시청자는 별로 없을 듯 한데
'화랑세기'에 따르면 김춘추는 '얼굴이 백옥과 같고 온화한 말로 말을 잘하였다'고 하니
춘추 역으로 유승호를 기용한 것은 정말 완벽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신라 제 29대 임금으로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춘추....
아버지는 금륜태자의 아들 용수공이며 어머니는 어머니는 진평대제와 마야부인의 딸인 천명공주이다.
어린 시절에는 조용하고 말이 적었으며 사색이 깊은 아이였으나 권력 관계와 인간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으므로 
춘추의 커다란 뜻을 간파한 유신은 그를 위대한 인물로 여기고 받들고 군(君)으로 받들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연대는 춘추가 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결혼함으로 더욱 돈독해지게 되고 이어 두사람은 세력을 합하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게 되는데...
 


그럼...춘추가 문희와 결혼하게 된다면 선덕여왕 37회에 등장해 인기를 얻고 있는 보종의 딸 보량은 어떻게 된건가?
춘추와 보량 사이의 러브 라인이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고 두사람의 애정 전선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던데 ....
그렇다. 쉽게 말하면 신라의 미소년 공자 김춘추는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였으니 절묘한 '양다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겠다.



아끼던 명마의 목을 단 칼에 자를 정도로 결단력이 있던 김유신에게는 보희, 문희 두 여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유신의 동생 보희는 '서악(경주 선도산)'에 올라 오줌을 누니 온 서라벌이 오줌으로 가득 차는 꿈을 꾸게 된다.
보희는 참으로 망칙하고 불길스러운 꿈이라고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 동생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문희는 즉석에서 보희가 꾼 꿈을 사겠다고 제안한다.
불길한 꿈을 팔게 되어 기뻐한 보희는 무엇을 주고 꿈을 사겠느냐고 물으니 보희는 '비단치마'를 주겠다고 답한다.
흡족한 거래가 성립되어 문희가 옷깃을 벌리자 보희는 "어젯밤 꿈을 네게 준다"고 말했고 문희는 보희의 꿈을 정식으로 사게 된다.

당시 비단치마는 국제 무역을 통해 수입되는 고가품이었는데 
'삼국유사'는 태종 무열대제 때의 포목 한 필 값이 벼로 30섬 혹은 50섬이라고 적고 있으니
지금 시가로 따져서 수백만원쯤 되는 포목보다 훨씬 비싼 비단치마를 꿈값으로 치룬 것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망칙하게 들릴 수 있고, 개꿈이라고 버릴 수도 있는 꿈을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르고 산 문희는
보희가 꾼 꿈에 내재한 가능성을 보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이다.

열흘 후 유신은 춘추와 함께 축국(蹴鞠,제기차기)를 하다가 일부러 춘추의 치마를 밟아 옷섶의 고름을 떨어지게 한다.
이에 유신은 자기 집에 가서 옷고름을 꿰매기를 청하며 춘추를 집안으로 불러들인다.
유신은 보희에게 춘추의 옷고름 수선을 맡기고자 하나 보희가 병중이었으므로 이에 문희가 나아가 바느질을 해주게 된다.
유신은 문희가 춘추의 옷을 바느질할 때에 '일부러 피하고 보지 않았다'고 하니
여동생을 매개로 하여 춘추를 자기 사람으로 만드려고 하는 유신의 전략이 잘 드러나 보이는 부분이다.
유신이 깔아준 멍석....아무도 없는 집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불붙게 되고 1년쯤 지나자 문희는 임신을 한다.


이때 이미 춘추는 보종의 딸 보량(보라궁주,宝羅宮主)와 결혼해서 딸 고타소를 낳은 상태였다.
보량은 매우 아름다웠으며 춘추와 매우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는데 당시 춘추는 보량을 매우 사랑하고 있었다고 한다.
보량으로 인해 춘추는 임신한 문희를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밀로 할 뿐 아니라 문희를 멀리하게 된다.


 김유신의 집터에 남아 있는 우물 재매정(財買井). 유신의 집터 담장 너머로 보이는 선도산은 지난 5월 9일 일어난 산불로 일부가 소실되었다.

문희를 멀리하는 춘추의 태도에 다급해진 유신은 자신의 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신라 최대의 불쇼'를 벌이게 되는데
사전 계획에 따라 자신의 집 마당에 장작을 높이 쌓아놓고 임신한 문희를 꿇어 앉히고는
"너는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어찌 된 일이냐?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
하며 크게 꾸짖으며 어름장을 놓아도 데 문희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유신은 누이를 태워 죽이겠다고 온 서라벌에 소문을 퍼뜨린다.

그 때 춘추는 덕만을 따라 남산에서 놀고 있었는데 유신의 집에서 연기가 하늘로 자욱이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된다.
공주가 유신의 집에서 나는 연기가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좌우에서는 유신의 누이가 부모의 허락 없이 아이를 가져 화형에 처한다고 아뢴다.
이에 덕만은 누구의 아이냐고 되묻자 옆에서 듣고 있던 춘추,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려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며 용서를 구한다.
덕만에게서  "네가 한 일인데 어찌 가서 구하지 않느냐?"는 질책을 들은 춘추는 
황급히 유신의 집으로 가서 화형 당하려는 문희를 구하게 되고 이에 포사(鮑祠,포석정)에서 길례를 행하여 문희를 둘째 부인으로 맞아들인다.

얼마 안 있어 보량은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되고 문희는 보량의 뒤를 이어 정궁(正宮)이 되니 문명황후(文明皇后)이며
그녀의 장자인 법민은 바로 문무대제(文武大帝)이다.

김춘추의 정실 부인이 되었지만 유신과 문희는 춘추의 배신 행위에 대한 앙금이 오래 갔다고 한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진정으로 화해한 때는 선덕여왕 11년(642) 김춘추의 딸 고타소와 사위 김품석이 백제군에게 전사했을 때이다.
고구려 사신길을 자청한 춘추가 "이번에 내가 고구려에 가서 저들에게 해를 당한다면 공은 무심할 것인가?"라고 묻는데
매부가 죽어도 가만히 있겠느냐는 말은 둘의 관계가 정상이 아님을 뜻한다.
이에 유신이 "공이 만일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의 말발굽이 고구려, 백제 두 임금의 대궐 마당을 짓밟아버릴 것"이라고 답하여 
둘은 화해하게 되는데 이는 곧 신라 왕실의 핏줄과 가야계 군사력의 결합이기도 했다.
그 결과 김춘추는 성골 출신 마지막 왕인 진덕여왕 뒤를 이어 신라 29대 왕에 등극,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닦는다.


후일의 역사서에서는 남성들의 사적만이 기록되어 있지만 춘추와 유신의 정치적 결속에는 문희의 활약이 지대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가의 비단치마를 아낌없이 투자한 그녀의 비젼은 훗날 김춘추와 그녀의 자손들이 대대로 신라 왕실을 장악하는 위대한 유산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문희는 진정으로 멀리 내다 보는 혜안을 가진 슬기로운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통찰력이 부족하여 자신이 꾼 꿈을 비단치마와 바꿔버린 보희는 꿈을 바꾼 것을 후회하여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지 않았다. 
이에 춘추는 보희도 첩으로 삼았는데 아들 지원과 개지문을 낳았으니 김춘추는 문희,보희 두 자매를 동시에 아내로 맞아들인 셈이 되는데
유신, 춘추, 문희, 보희를 주축으로 벌어진 이 이야기는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같은 신라 최대의 리얼 스캔들이다.

드라마에서 현재 보량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춘추.
41회에서 춘추는 보량을 납치하듯 자신의 근거지로 데려오고 보량과 춘추의 결혼 문제로 세종 측과 설원랑 측은 서로 대립하게 되는데....
앞으로 드라마의 전개가 어떻게 펼쳐질른지는 작가의 펜끝에 달려 있지만
선덕여왕에서 춘추와 보량, 문희의 삼각관계는 시청자에게 기다려지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보량역의 박은빈은 성공적으로 시청자에게 얼굴을 선보였는데 문희역의 배우역에는 또 누가 캐스팅될른지...?
벌써부터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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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메인에 소개되었네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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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의 포스를 물리치고 단연 인기를 끌고 있는 비천지도의 화랑 알천랑.
알천(閼川, 577~686)은 역사적으로도 선덕,진덕여왕 시대 최고의 무장이며
신라 최고 의정 기관 화백회의 의장인 상대등을 역임할 정도로 두터운 신망을 받았던 인물이다.

                                        

알천랑은 신라를 건국한 공신인 소벌공의 25대손으로 '알천'은 젊은 시절 이름이고 본명은 '소경'이다.
(성씨는 진주 소씨로 소지섭의 조상님이 되신다는...^^)

한 세대를 주름잡았던 알천의 업적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선덕여왕 5년(636)  여름 5월에 두꺼비가 궁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는 이야기를 선덕여왕이 듣고
두꺼비의 성난 눈의 모습은 병사의 모습이므로 나라의 서남쪽 변경에 있는 옥문곡에 이웃나라 군사가 그 안에 숨어 들어온 것을 예지하고
이에 장군 알천과 필탄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찾아보게 하였는데
마침 백제장군 우소가 독산성을 습격하려고 무장한 군사 500 을 이끌고 와서 그 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알천이 그들을 쳐서 모두 죽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선덕여왕 7년 겨울 10월에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의 칠중성을 침공하였으므로 백성들이 놀라고 동요하여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왕이 대장군 알천에게 명하여 그들을 안정시키게 하였으며
'11월에 알천이 고구려 군과 칠중성 밖에서 싸워 이겨, 죽이고 사로잡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진덕여왕 당시 술종,·임종,·호림, 염장, 유신
등과 함께
나라 일을 논의하기 위해 남산 우지암이란 곳에서 회의를 연일이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호랑이가 좌석으로 달려들어 참석하였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피하였지만
알천은 그자리에 태연하게 앉아있었을 뿐만 아니아 호랑이 꼬리를 잡아 땅바닥에 던져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알천의 담력과 용맹은 당대 최강이었을 듯.....

그는 선덕여왕 7년(638)에 이찬 등을 지낸 뒤 각간(角干)에 올랐고
당시 귀족들의 모임인 화백회의 의
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는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알천이 화백회의 의장이었을 당시,
회의의 구성원은 술종, 임종, 호림, 염장, 유신
등이었다.
647년에는 대장군에 임명되었고 진덕여왕 1년(6
47)에는 반란으로 죽은 비담
의 뒤를 이어 상대등에 취임하였으니
알천이야말로 당대 최고의 실력자라고 해도 과연이 아닐 것이다.


진덕여왕이 사망하자 알천은 화백회의에서 섭정왕으로 추대되었는데 스스로 나이가 늙고 덕행이 없다고 하며 김춘추에게 양위하여
그를 왕으로 추대하니 김춘추(유승호)는 바로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태종 무열왕
(太宗武烈王)이다.

당시에는 성골에서 왕위 계승자가 없을 경우에 화백회의의 추대에 따라 의장인 상대등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상례였다.
알천이 정치적인 욕심이 있었더라면 왕위를 한번 노려볼만도 한 일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귀족세력을 대표하는 알천공이 김춘추에게 왕위를 양보한 배경에는
이미  선덕여왕 
때부터 정치,군사적 실권을 장악한 신흥귀족세력인 김춘추와 김유신의 정
치적 책략이 영향을 미친 것이기도 하다.

                                                                                                

이후 무열왕 3년(656년) 무열왕은 신라개국공신인 소벌도리에게 문열왕(文烈王)의 시호를 내렸는데
일설에는 왕위를 양보한 알천에게 보은하기 위하여 그의 선조인 소벌공을 문열왕으로 추봉하였다고도 한다.
그후 알천은 늦도록 손자가 없다가 꿈에 선조 소벌도리가 지목한대로
660년 3월 2일 금성에서 진주 도사곡으로 이사하였는데 그뒤 며느리 석씨가 손자 복서를 낳았다.
이에 손자가 태어난 기쁨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천에서 경(慶)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알천은 581년에 태어나 691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110세로 보기 드문 장수를 누린 인물이다.


알천랑에 대해 간략하게 기술했지만 사실 지금까지 '알천'이란 이름은 그저 생소한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선덕여왕에서 이승효의 열연으로 우리에게 그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하지만 경주 사람들에게 '알천'이란 이름은 경주 여기저기에서 만날 수 있는 너무나 친근한 이름이다.



경주 시내에서 보문단지를 가려면 보문호수에서 흘러나오는 강변을 따라서 보문단지로 들어가게 되는데
덕동댐에서 시작하여 보문호수에 고였다가 경주시내를 관통하여 서천(형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경주의 중심을 흐르는 이 강이 바로 '북쳔(北川)'으로도 불리우는 '알천(閼川)'이다.



경주에서는 알천의 이름을 가진 지명을 강 인근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데.....알천을 따라 뻗은 북쪽 도로의 이름은 알천 북로이며 



알천의 북쪽 수직으로 뻗은 도로는 알천길이다.



주소에서도 알천길이라는 명칭을 찾을 수 있는데



이 동네에서는 수퍼 이름도 알천 수퍼이다.



알천에 가로놓인 교량은 4개가 있는데 그중 교육청과 소방서를 연결하는 교량의 이름은 알천교이다.



특히 알천변의 고수부지에는 테니스장, 정구장, 족구장, 게이트볼장 등 체육시설과
인라인, 자전거, 산책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멀티풀 산책로가 갖추어져 있어 경주 시민의 휴식처가 되는데



그중에서도 보문 입구에서부터 공설운동장 입구 경주축구공원까지 10개소에 이르는 잔디 축구장이 자리잡고 있어서



해마다 전국 초등학교 축구대회를 비롯하여 국가 대표 축구팀의 단골 전지 훈련 장소로 쓰이고 있는 경주의 자랑거리이다.



알천랑 이야기로 시작해서 경주의 알천과 관련된 지명을 소개하니
경주 알천이 알천랑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인가...... 하고 오해하는 분도 계신 듯 하다.
하지만 알천의 역사는 육부촌 시절의 신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니
오히려 경주를 흐르는 중심 강인 알천의 이름을 따서 '알천(閼川)'이라고 이름 지어졌을 가능성이 더 많을 듯 하다.
그 점 오해 없으시길 바라고....


경주 시내를 유유히 흐르는 이 알천으로 인해 역사가 바뀐 사건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자면.....

신라 38대 원성왕 김경신은 왕이 되기 전에 복두(모자)를 벗고 흰 삿갓을 쓰고는 12현 가야금을 들고
천관사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는데 삼국유사는 이 꿈에 전혀 다른 두 해몽을 기록해 놓았다.
김경신은 "복두를 벗은 것은 직책을 잃을 조짐이고, 가야금을 든 것은 칼집을 쓸 조짐이며, 우물에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조짐입니다"라는
불길한 꿈 해몽을 듣고 불안해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그럴 때 여삼이라는 사람이 만나기를 거듭 청하여
"이는 길몽입니다. 공께서 만약 왕위에 올라 저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공을 위해 해몽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여삼은 "복두를 벗는 것은 그 위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고, 흰 삿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징조입니다.
또한 12현의 가야금을 지닌 것은 12손(원성왕은 내물왕의 12세손)이 왕위를 전해 받을 징조이고,
천관사 우물에 들어간 것은 궁궐로 들어갈 좋은 징조입니다" 라고 전혀 다르게 해몽했다.



이후 36대 혜공왕을 죽이고 왕이 된 선덕왕이 아들이 없이 죽어버리자 
궁궐에서는 무열왕계 왕족 중에서 왕위 계승 1순위인 김주원을 맞아들여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그 때 김주원의 집은 알천(북천)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소나기가 내려 강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김주원이 알천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서
왕위 계승 2순위인 김경신이 먼저 궁궐로 들어가 제 38대 원성왕이 된다.
이때 알천을 건너지 못하는 바람에 왕이 되지 못한 김주원의 아들은 바로 김헌창의 난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오늘날에는 덕동댐과 보문호수가 세워져 치수 관리를 하는 바람에 알천의 물이 줄어들었지만
신라시대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장마가 나서 알천 양쪽 마을 전체를 다 덮칠 만큼 큰 강물이었으니
만약에 그때 비가 오지 않았고 알천물이 불어나지 않았더라면 김주원이 왕이 되었을 것이고 신라의 역사는 다시 쓰여졌을 것이다.



또 신라 통일의 주역이 된 화랑이 생겨난 배경에도 알천과 얽힌 이야기가 있으니....
신라 24대 진흥왕 원년인 540년, 
삼산공의 딸인 준정(俊貞)이 원화(源花,화랑의 전신)가 되었는데 그녀는 수하에 많은 낭도를 두고 있었다.
법흥왕과 백제 보과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남모공주(南毛公主) 또한 뛰어난 미인이었는데 
미진부(법흥왕의 외손인데 법흥왕의 후궁 묘도부인과의 사이에서 미실,미생을 낳음, 2세 풍월주)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녀의 이복자매인 지소태후 역시 미진부를 사랑하였으므로 남모를 도와 그녀를 원화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자 준정은 남모가 원화가 되려는 것을 막고 자신이 계속 원화로 남아 있으려 하였으나
지소태후가 남모에게 낭도가 부족한 것을 염려하여
위화공(1세 풍월주)의 낭도를 그녀에게 더하여 주기까지 하니 준정은 투기를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남모공주가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는데 따르던 낭도들은 그녀의 행방을 찾느라 서라벌 곳곳을 뒤지다가 
궁에서 놀던 아이들이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게 되었다.

준정이 남모공주를 집으로 꾀어 술을 먹였다네
준정이 공주를 시기하고 있었다네
술 취한 공주를 강물에 빠뜨렸다네
공주는 돌밑에 깔려 죽었다네
불쌍한 공주는 아직도 물속 바위 밑에 누워있다네…

궁 밖에서 아이들이 부르던 노래를 궁 안에 살던 왕족의 아이들이 배워 부르면서 뛰어다닌 것인데
이는 사건의 내막을 아는 누군가가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퍼뜨린 것이다.
진흥왕의 황후 지소태후는 준정을 잡아들여 추국하니 정말 남모의 시체는 노래에 나오는것처럼 알천 바위 아래에서 나왔다. 
준정은 남모에게 술을 먹여 쓰러지게 한 후 자신의 낭도들을 시켜 남모를 죽여 알천에 버렸던 것이었다.
이에 지소태후는 바로 준정을 사형에 처하고 원화 제도를 페지하고 선화(仙花,국선화랑)를 화랑으로 삼았으니 
그 무리를 일러 풍월(風月)이라 하였고 그 우두머리를 일러 풍월주(風月主)라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미녀인 준정과 남모, 2명을 원화로 뽑았으나 두 여자가 아름다움을 서로 질투하여 마침내 준정이 남모를 살해했다'고
단순히 준정이 자신보다 미모가 빼어난 공주의 아름다움을 시기해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화랑세기 2세 풍월주 미진부편을 보면 지소태후가 남모의 낭도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위화공(원화가 폐지되자 1세 풍월주가 됨)으로 하여금 그 수를 갑절로 늘리도록 하자
세력에서 열세에 몰린 준정이 이를 해결할 돌파구를 찾다 공주를 유인해 술을 먹여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최대의 정치 단체인 '화랑도'의 탄생 배경에는 여성들의 이같은 세력 다툼이 숨어있었고 그 배경에 알천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벚꽃이 피어나는 봄날의 알천

알천과 관련해 북쪽인 동천마을과 남쪽인 구황마을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도 하나 덧붙여 본다.
동천마을(새주소로 알천길)에는 신라 41대 헌덕왕릉이 있고 구황마을에는 분황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암곡 가내골 등 험준한 여러 계곡에서 급경사로 흘러내리는 알천의 물은 해마다 여름이면 두 마을을 덮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안심하고 살 수 없어 동천사람은 헌덕왕릉에 빌고 구황사람들은 분황사 부처에게  빌었다.

구황마을의 기도가 세어지면 큰 홍수 때 알천물길이 북쪽으로 흐르게 되어 동천마을의 피해가 크고 헌덕왕릉이 훼손됐다.
동천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헌덕왕릉에 빌면 알천물길이 반대로 흘렀다.
그래서 물길이 북쪽으로 치우쳐 흐르면 헌덕왕릉의 석상과 비석에서 땀이 흘렀고
남쪽으로 치우쳐 흐를 때는 분황사 부처가 땀을 흘렸다.

헌덕왕의 영혼과 분황사 부처가 치열하게 싸우자 알천 냇물의 홍수는 마침내
남쪽으로도 못가고 북쪽으로도 못가고 하늘로 치솟아 홍수가 사라졌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



우유빛깔 알천랑이 떠오르는 알천, 남모공주가 물속에 잠겨 죽었다는 알천, 김주원을 왕이 되지 못하게 한 알천(북천)은
신라시대 당시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홍수가 날만큼 큰 냇물이었다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물이 거의 줄어 든 상태이다.
경주시에서는 2010년 이후 형산강 물을 보문호수로 끌어올려 알천물이 사계절 가득 흐르게 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경주의 상징 '알천'을 느긋이 산책하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Copyright 2009.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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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매회 알쏭달쏭한 문제를 제기해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더해 가는 선덕여왕.
지난 회에서는 국선 문노가 주관한 풍월주 비재의 두번째 문제인
신라의 세가지 의미를 덕만공주가 마방진에서 그 해답을 찾는데서 종결이 되었는데

33회 방송에서는 세번째 무술 비재를 통해서 누가 다음 풍월주가 될 것이냐에 촛점이 맞추어질 것 같다.

하지만 화랑세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들어보았다면
14세 풍월주 호재를 잇는 15세 풍월주는 유신랑이라는 건 짐작하고도 남는 일.

드라마에서는 비재를 통하여 풍월주를 선발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화랑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호재 스스로 유신에게 양위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풍월주의 위는 부제가 이어받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기 때문에 호재의 부제인 보종이 풍월주의 자리를 이어받는 것이 마땅하나
보종은 유신을 두려워하고 공경하였을 뿐 아니라 유신이 '중망(衆望, 여러 사람에게 받는 촉망)'이 있다고 하여 그 지위를 양보하였는데
이는 미실 궁주가 만호태후(진평왕,만명부인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하여 명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종이 유신에게 풍월주의 위를 양보한 것에 대원파가 불평이 많았으므로 이에 유신은 16세 풍월주의 위를 보종에게 물려주게 되는데....

누가 풍월주가 되는지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니 문노가 주관하는 풍월주 비재의 3가지 문제가 너무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풍월주가 될 때의 유신의 나이는 15세였으니 현재의 엄태웅과는 다소 줄이 그어지지 않는 배역이어서 어색하기도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꼬투리 잡을 마음은 없고....^^






사실 필자로서는 새롭게 풍월주에 오르는 유신랑보다는 풍월주 호재의 시대가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촬영장에서 만난 호재는 정말 화랑 중의 화랑 '풍월주'로서의 풍채와 카리스마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0화랑이 다 모인 선덕여왕 촬영장에서도 풍월주 호재 '고윤후'는 단연 빛이 난다.






풍월주 호재를 비롯해서 청룡익도의 석품(홍경인),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비천지도의 알천(이승효),
이화정도의 덕충(서동원)...등 서라벌이 10 화랑이 한곳에 다 모였으니 '이보다 더 보기 좋을 순 없다'.






서라벌 최고의 꽃미남 10화랑들이 다 진을 치고 서 있지만 그중에서도 풍월주 호재의 카리스마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앞모습은 물론이고 옆모습도 조각 미남이니 서라벌 여인네들의 가슴을 울리고도 남았을 풍월주 호재에게 딱 맞는 배역이다.






촬영 도중 가끔 이렇게 샤방한 미소까지 날려주니 현대의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 또한 함께 설레이지 않을까....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알천랑 이승효와 함께 잡힌 샷은 저절로 눈이 즐겁다.






경주 신라 밀레니엄 파크 선덕여왕 촬영장에서 여러번 촬영 현장을 스케치하는 동안에
이요원, 고현정, 엄태웅, 류상육, 이문식, 정웅인....등 여러 탈렌트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싸인도 받았지만
10 화랑의 촬영이 있던 날, 풍월주 호재가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던 필자의 바로 앞으로 걸어왔을 때
180 이 넘는 큰 키에 광채나는 얼굴, 거기다 발 아래까지 끌리는 화려한 풍월주 의상으로 인해 완전 압도 당해버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저....싸인 좀 해주실래요?" 할 뻔 했다.
정신을 차리고 재빠르게 카메라 가방을 열고 수첩과 볼펜을 찾느라 뒤적거리고 있는데
 "자~~ 10 화랑 얼른 용인 세트장으로 이동하세요~!" 하는 감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필자의 앞에 서 있던 풍월주 호재, 다시 방향을 돌려 황망하게 자리를 뜨고 마는 것이다.
이런....ㅠㅠ
절실하게 '싸인 받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진 것이 처음이었는데 이런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 말다니....
아직까지도 살짝 아쉬운 부분이다.






1981 년생으로 지금까지는 시청자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배우 '고윤후'. 
그가 연기한 '14세 풍월주 호재'는 기해년(己亥年,579) 생으로 화랑세기에는 ' 호림공(虎林公)'으로 기술되어 있다. 

호림공은 진골정통으로 복승공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지소태후의 딸인 송화공주로 알려져 있는데 
혹은 말하기를 '공주의 사자(私子)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는 잘 알 수 없다' 고도 하고 비보랑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진평왕의 황후이자 선덕여왕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바로 호림공의 적형(嫡兄,서자가 자기 아버지의 정실에서 난 형을 이르는 말)이다.

호림공은 용력이 많고 격검(검을 쓰는 법을 익힘)을 좋아하여 일찍 문노의 문하에 들어갔는데 
13세 풍월주 용춘공이 호림공을 부제로 발탁하였고 계해년(603년)에 풍월주가 되었다.
그는 검소하게 지냈으며 진골 정통이었지만 골품으로 뽐내지 않았으며 
마음가짐이 청렴하고 곧아 재물을 풀어 무리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호림공은 처음 문노의 딸 현강랑주(娘主)를 아내로 맞았으나 일찍 죽어 하종의 딸 유모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였다.
(유신 또한 하종의 딸이자 유모의 동생인 영모와 결혼하니 유신과 호재는 동서지간이 되는 셈이다.)
그 때 미실궁주의 나이가 이미 많았는데 유모를 매우 사랑하여 귀한 아들을 보기를 원하였으므로
호림공에게 명하여 천부관음을 만들어 아들을 기원하도록 하였다.
이에 선종랑을 낳았는데 자라서 율가(律家)의 대성인이 되었고 호림공은 부처를 숭상함이 더욱 깊어져 
풍월주의 위를 유신에게 양위를 하고 스스로 ‘무림거사(茂林居士)’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호림은 보종을 사랑하여 부제로 삼았으며 그들의 정이 마치 부부와 같았고
보종은 스스로 여자가 되어 섬기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하였다고 하니 호림과 보종의 관계는 묘한 뉘앙스가 풍겨난다.
화랑세기의 기록은 보종이 동성애자였을 가능성에 촛점이 맞추어지는데
미생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보종의 이력에 대해선 다음 기회가 되면 글을 쓰기로 하고...

풍월주를 양위한 후 호림공은 조정의 일에 간여하지 않았지만 국가에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받들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 동일하게 알천, 임종, 술종, 염장, 유신, 보종 등과 더불어 칠성우(七星友)를 이루어
남산에서 만나 유(遊)하였다는 기록이 나오며 (삼국유사에는 보종이 빠진 6인이 모였다고 기록)
"통일의 기초가 호림공 등으로부터 많이 시작되었다. 성대하고 지극하도다."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삼국 통일에 유신, 알천을 비롯한 호림공의 공 또한 지대했을 것으로 볼수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14세 풍월주의 지위를 유신에게 물려주게 되는 호재(호림공).
개인적으로 바라는 바는 비록 풍월주의 위에서 물러나더라도 
선덕여왕 드라마에서 호재의 멋진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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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신라 밀레니엄 파크의 미실궁 세트장에서는 야간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13회 촬영분을 녹화하기 위한 것.


김유신 화랑 산채 녹화분에 비해 미실궁 녹화분은 거의 100% 야간촬영이다.

미실의 악역에 맞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미실궁은 어두운 밤 장면만 드라마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녁 해거름부터 시작해서 거의 밤샘해서 촬영을 하니 미실궁 촬영은 거의 강행군이라 할수 있다.


낮에 보는 미실궁은 밝고 화려하나 밤에 보는 미실궁은 정말 으시시하기 짝이 없다.

별채 쪽 사진을 찍느라고 컴컴한 본채 계단 위에 서니 

금방이라도 본채 문이 삐걱 열리며 악의 세력들이 나타나 내 머리채를 휘어잡을 것 같은 느낌이다.
 


저 문 밖에서도 금새라도 뭔가 불쑥 나타날 것 같아 으시시하기만 하다.


미실궁 야간 촬영에 미실궁의 주인 고현정이 등장했다.


미실궁 홍예교 앞에 성장을 하고 선 미실 고현정의 자태에서는 범접하기 힘든 강력한 카리스마가 풍겨나온다.


머리에 쓴 자그마한 은관과 정교하게 자수가 놓인 옷들은 미실을 신라 최고의 미녀로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다.



감독님의 큐 사인에 따라 서서 조용히 두손을 모으고 인사하는 장면을 찍는다.



 컷~!  김근홍 감독의 컷 싸인에 멋적은 듯 웃음띠는 미실 고현정. 



 선덕여왕 드라마에서는 등골이 오싹하도록 섬찟한 웃음만 짓는 미실이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고현정의 이런 환한 웃음을 볼 수도 있다.


앞에서 대사를 하는 다른 연기자의 대사가 맞지 않아 다시 N.G.



드라마에서 별 것 아니게 스쳐 지나가는 한씬을 찍는데도 여러번 촬영하는 수고를 거친 후에 우리에게 보여지게 된다.



촬영을 잠시 멈추고 스텝들이 도시락 하나씩을 들고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백상승 경주시장과 신라 밀레니엄 파크 변종경 이사의 촬영팀 위로 방문이 있었다.

이번 선덕여왕 드라마 250억의 총 제작비 중 경상북도와 경주시는 각각 10억원, 20억원을 지원했고

신라 밀레니엄 파크는 미실궁 세트장,김유신 화랑 산채 세트장,화랑 연무장을 지어 지원했다.

경주시와 신라 밀레니엄 파크가 물심 양면으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은데 대해 

제작진을 대표하여 김근홍 감독께서 감사의 말씀을 대신 전하자

백상승 경주시장은 '신라 천년의 찬란한 문화가 경주 일대 전체에 깔려 있어서 노천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이런 역사의 배경을 가진 경주에서 촬영하는 선덕여왕은 틀림없이 성공하리라 생각한다'고 격려했고 

경주시와 신라 밀레니엄 파크 측은 드라마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한 목소리로 약속했다.

이어 드라마 중심 배역인 고현정,이요원 등과 백시장과의 기념 촬영이 약속되어 있었는데

미실 고현정의 의상과 메이크업 준비로 인하여 백시장 일행은 한시간 이상 기다려야만 했다.


한참을 기다리니 이요원이 먼저 나타나 백상승 시장과 인사를 나누고...


이어 나타나 포토 라인에 나란히 선 류상욱(대남보 역), 고현정, 백상승 경주 시장, 이요원.

류상욱의 의상을 돌봐 주고 있는 고현정을 쳐다보는 백시장과 이요원의 표정이 대박이다.

마치 "어허...꽃미남도 좋지만 나도 좀 쳐다봐 주지..."하는 것처럼....^^


다시 백시장 쪽을 봐주는 미실 고현정.

마치 "시장님...그렇다고 삐지신 건 아니겠지요? ㅎㅎ" 하는 것 같이 보인다.


이어 역사적인(?) 기념 촬영. 백시장께는 기념 촬영하신 이후로 제일 기분 좋으실 때가 아닐지......

'좌요원, 우현정'이라..... 캬아.....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어.....변대표님도 이리 오십시오...같이 한장 찍읍시다."

손짓하여 신라 밀레니엄 파크 변종경 대표 이사를 부르는 백시장.


다시 경주시 관계자와 신라 밀레니엄 파크 관계자들과의 기념 촬영. 

제일 왼쪽에 서 계신 분이 신라 밀레니엄 파크 변종경 이사.



기념 사진 촬영을 마치고 고운 미소로 백시장님과 변 대표이사를 배웅하는 미실 고현정과 덕만 이요원.


공식 행사를 마치고 미실궁 연못의 홍예교를 걸어가는 미실 고현정.

그 자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치 여신 강림이나 한 듯 하다.

옆에 서 있던 호위 무사 화랑 대남보, 미실의 뒤를 황급하게 따르고.....

다시 전개된 촬영은 밤이 오래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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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가 거듭해 갈수록 긴박감이 더해지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신라 밀레니엄 파크'의 '김유신 화랑 산채 촬영장'에서 '드라마의 <재미>를 담당한' 빅 콤비 이문식,류담을 만났다.


사기 치다가 얼떨결에 김유신이 이끄는 용화향도에 들어가게 된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은
살벌하기까지한 선덕여왕의 정치판에서도 간간히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맛소금과도 같은 존재랄까?
 

정극 도전이 이번이 처음인 류담은 2003년 KBS 18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개그 콘서트 '달인'코너에서의 활약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류담은
 
늘 어리버리한 행동 끝에 죽방에게 머리통을 얻어맞느라 머리가 성할 날이 없는 캐릭터.

원래 100kg이 넘는 거구이지만 두사람 정도는 거뜬히 들어올리는
고도의 캐릭터를 잘 드러내기 위해 더욱 뚱뚱하게 보이는 분장을 했다.

흙탕 투성이인 옷을 입었는데 깨끗한 옷보다 사진발이 훨씬 더 잘 받는것은 대체 무슨 조화..??


촬영이 잠시 멈추면 메이컵 아티스트의 손길은 분주하기 그지 없다.
좀 더 촉촉하고 좋은 그림을 위해 분장을 고치고 스프레이를 뿌려주어 수분을 공급한다.
김유신 아역 이현우도 제법 키가 큰데 워낙 한 덩치 하는 유담 곁에 있으니 더 아이 같아 보인다.


"어...시원하다~~! 역시 배우 하길 잘 했다니까...."
계속되는 촬영으로 힘든 중에서도 밝은 표정을 지어 주변의 사람들을 기분좋게 한다.


죽방고도의 주축은 단연 연기파 배우 죽방 이문식.
마파도, 오브라더스, 공공의 적, 달마야 서울 가자, 다모, 황산벌.....등 여러편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어
2008년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 시트콤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연기파 배우 이문식은 류담과의 콤비 플레이를 위해서 현재 자진해서 감량 중이다.


100kg 넘게 나가는 류담과 '훌쭉이와 뚱뚱이'컨셉을 맞추기 위한 감량이어서
식사를  할 때에도 일부러 젓가락만 사용해서 밥을 반만 먹는다고 하는데...


시청자에게 '죽방 고도 투 샷'에 어울리는 좋은 구도를 선사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한다.


특히 SBS 드라마 '일지매'에서는 극 중 감초같은 일지매 이준기의 양아버지 쇠돌역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치과를 찾아 생니를 뽑았다고 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작진은 깜짝 놀랐고, 나중에 앞이를 뽑게 되는 사연을 대본에 추가로 반영해 이문식 씨의 연기투혼에 보답했다.
이 때문에 이문식은 촬영 초반에는 오히려 의치를 끼고 연기를 해야했고, 드라마 촬영 후 임플란트를 했다.

연기를 위하여 머리를 미는 장면을 연기 투혼이라며 칭찬을 자자하게 하는 것은 간혹 보았지만
연기를 위하여 다시 나지도 않는 생니를 뽑다니.....그의 연기 투혼에는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촬영장에서 본 이문식은 조연이라고 하지만 도리어 주연의 포스를 가지고 연기에 임한다.


실제로 감독조차도 이문식을 '형님'이라고 호칭하며 예우도 깍듯하게 하는 등 촬영장의 큰 형님으로써 드라마의 분위기를 주도해 가고 있었다.


촬영장에서는 드라마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서 같은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번에 걸쳐서 찍게 된다.
그 때마다 이문식은 NG도 거의 내지 않고 감탄할 만큼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선덕여왕 촬영장 '신라 밀레니엄 파크' 바로 가기

주연보다 더 빛이 나는 이문식..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연기자'라고 불리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소 긴장되고 삭막한 드라마에서의 긴장감을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죽방 고도' 이문식과 류담.
훗날 덕만이 공주가 되어서는 죽방 고도는 덕만의 호위무사를 맡는 영광을 거머쥐게 된다는데.....
앞으로 드라마 전개 속에서 신선한 웃음을 끊이지 않게 공급할 그들의 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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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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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 방영 이후 
시청자들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배우를 들라면 남지현과 이현우가 아닐까...

지난번 이현우 관련 기사를 포스팅한 후
필자의 블로그의 유입 키워드 중 단연 1위가 선덕여왕 이현우이다.

며칠 째 이현우라는 키워드 검색이 1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걸로 보아
새삼 떠오르는 별 이현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이현우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는 선덕여왕의 아역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릴 적 부터 김유신의 친구처럼 따라다니며 보좌하는 용화향도의 이름은 곡사흔,대풍,시열이다.


그중 자그마한 친구는 대풍 역의 이석민,오른쪽은 곡사흔 정형민인데



그 중 눈에 확 들어오는 낭도는 단연 시열 신태훈이다.
김유신 역 이현우 옆에 서 있는데도 전혀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훤칠한 키에 
알맞게 살짝 쌍꺼풀진 눈, 도톰한 입술.....피부 또한 뽀샤시하기 이를데 없다.


 이현우도 귀티가 좔좔 흐르지만 시열 신태훈의 간지 또한 만만치 않다.


벌써 많이 자라 웬만한 어른 키를 훌쩍 넘는다.
바라보는 눈빛 또한 그윽하고 시선 처리 또한 어디를 두어도 심상치 않다.


아직 다크 호스에 지나지 않는 시열 신태훈. 
자세한 인적 사항도 나와 있지 않은데 여기저기 뒤져서 겨우 겨우 자료를 찾아보니

어릴 적에 비단향꽃무의 아역으로 처음 데뷔했었다고 하는데 SBS드라마 '왕과 나'에서는
내시 홍귀남의 아역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고 하니 아역으론 벌써 경력이 한참 쌓인 친구였다.


신라 밀레니엄 파크의 화랑산채 촬영장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낭도 중에서 다시 신태훈을 발견했다.

선덕여왕 촬영장 '신라 밀레니엄 파크' 바로 가기


아니...! 이 친구는 훈련에 지쳐 쓰러져 있는 연기를 왜 이리 섹시한 포즈로 하는거냐.....!
완전 누나들을 떡실신을 시키는구나....@.@
전국 누나 팬들의 하앍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하다.


 이 사진을 여기에 업뎃하기에 앞서 잠시 다른 여성 동료에게 메신저로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이 사진을 본 그 동료....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그저 날타만 연속 날릴 뿐이었다.
"#$%&;4)_&ㅍ츹ㅁ;ㅔ'ㅂ!#_++_(!#$&^)*&_(+ㅣㅠㅁ제앶해ㅗㅑ_(^*_(%&))&*)(*$!!*+_+~~~!!!"


차세대 유망주로 미리 예약해 두어도 부족함이 없을 신태훈.
잘 자라서 유승호나 이현우에 못지 않은 훈남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으면 좋겠다.


선덕여왕의 귀엽기 짝이 없는 아역 낭도 F4의 시대는 이렇게 8회로써 끝이 나버렸다.


그리고 시열은 이렇게 훌쩍 커 버렸구나...^^;;


성인 시열 역은 '일지매'에 나왔던 문지윤이 이어 받았다. 큰 키와 도톰한 입술이 얼추 비슷하게 닮았긴 한데......


일주일 사이에 훌쩍 커서 이제 성인이 되어 버린 용화향도의 낭도 F4.
귀여운 아역들 보는 맛에 선덕여왕 시청이 한동안 즐거웠는데
이제는 무슨 맛으로 선덕여왕을 보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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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에 나온 신태훈의 정보입니다.
생년월일 : 1994년 3월 22일
이메일 주소 : th94_0322@hanmail.net
드라마 - 유리구두,아버지처럼살기싫었어,비단향꽃무,저푸른초원위에,
황금물고기,러빙유(단역),코미디본부, 논스톱3, 왕과 나 등
CF - sk,신세기통신,테팔,아시아나항공,두산동아(브레인),웅진씽크빅,테리,fila지면촬영,
돈육,배스킨 라빈스 31,잉크테크,LG텔레콤,안성탕면,조청유과,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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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 드라마 '선덕여왕'은 방영 7회에 이르러 
30%에 육박하는 고시청율을 달성하며 나날이 승장구하고 있는데.....

드라마 제목이 '미실'이 더 적당하지 않냐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여기저기서 나올 만큼
미실 역 고현정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초반세를 몰아가더니
이후 등장한 아역들의 열정적인 연기는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을 단숨에 기선 제압하는 큰 역할을 해내었다.

주인공 덕만 역 남지현의 당차고 열정적인 연기는 물론이고 신세경, 이현우 등 아역들은
성인 연기자 못지 않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드라마의 인기를 높였는데
이제 8회를 마침으로 아역 연기자 시대는 지나가고 이요원, 박예진, 엄태웅 등 성인 연기자들이 드디어 배턴을 이어받게 되었다.





'신라 밀레니엄 파크 김유신 화랑 산채 촬영장'에 드디어 이요원이 나타났다.

처음 만난 이요원은 산채 앞 의자에 다소곳이 두손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김유신의 이끄는 '용화향도'의 화랑의 차림새로......





비싼 몸값의 이요원인지라 사진 찍기가 그리 쉽지 않았지만 양해를 구한 끝에 몇 컷 찍을 수가 있었다.





의자에 똑 바로 앉아 단아하게 미소를 띈 모습으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해 주었다.






선덕여왕 타이틀에 나오는 금관 쓴 선덕여왕에서 본 이요원과는 또 다른 이미지이다.






타이틀에서는 금관을 써서 그런지...타이틀 롤이라 크게 표현해서 그런지... 얼굴이 약간 크게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정말 얼굴이 작고 이쁘다.

생각보다 분장을 아주 가볍게 했다. 거의 화장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거의 생얼이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웃어달라는 주문에 살포시 미소도 띄어준다.

지금은 아직 남장 중인지라 화랑의 옷을 입고 있는데 앞으로 여왕으로 등극한 후의 차림이 궁금하다.
지금은 미실 역 고현정이 최고로 아름답고 호화로운 차림을 하고 있지만
이요원이 선덕여왕의 분장을 시작한다면 최고의 미인 미실의 아름다움도 빛이 바래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촬영 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돌아서다 아차....! 싸인 한장 부탁했더니 이쁜 글씨로 싸인도 해 주었다.






곧이어 시작된 촬영.

말구유의 물에 얼굴을 담그었다가 허리를 펴면 아역 덕만이 성인 덕만으로 세월이 건너 뛰는 장면의 촬영이 여러번 계속되었다.
아역 덕만 남지현은 마지막 연기라서 그런지 더욱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게 눈에 보였다.





아역 연기자가 연기를 너무 잘하면 성인 연기자의 부담은 클 수 밖에 없는데....






남지현이 연기한 똘똘하고도 당찬 덕만의 캐릭터를 이요원이 어떻게 이어받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보고 있는 시청자들 또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요원은 어린 덕만의 캐릭터를 잘 이어받아 향후 드라마를 주도할 수 있을른지......

카리스마 넘치는 선덕여왕의 이미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무거운 짐이 양 어깨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요원의 표정은 환하다.

선덕여왕 역할의 긴 여정을 이제 막 시작한 만큼 시청자들을 사로잡을만한 연기를 보여 주고
미실에게 대적할 만한 아름다움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선덕여왕'으로 거듭나는 이요원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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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메인에 소개되었군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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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주인공의 일생을 그리는 사극 드라마는
극의 특성상 아역들이 출연하는 부분이 드라마의 전반부를 장식하게 되는데

극의 초반에 등장하는 아역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 또한 사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번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경우도 선덕여왕 덕만의 아역을 맡은 남지현의 똑 부러지는 당찬 연기와
천명공주 아역 신세경의 외유내강의 연기가 어울려 드라마의 시청률을 높이는데 일조를 하였는데
덕만 역의 남지현과 천명 역의 신세경 못지 않게 주목을 끄는 아역이 또 있으니 
바로 김유신 아역으로 출연한 이현우이다.



'신라 밀레니엄 파크'의 '천년고도'를 걸어오는 한떼의 화랑들을 만났다.

화랑 김유신이 이끄는 용화향도.  멀리서도 단번에 눈에 뜨이는 앳된 용모의 화랑 김유신, 이현우다.



걸어오는  길목에 세우고 셔터를 눌렀다.
물기 머금은 눈, 귀티 나는 이목구비,  흠잡을데 없는 외모가 화랑 김유신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진다.
 



수줍은 듯 잠시 포즈를 취하고는 촬영장으로 들어가는 이현우.
미소를 흘리며 고개 돌리는 옆모습은 흡사 유승호가 아닌가..
셔터를 누르는데 움직이는 바람에 그만 흔들린 사진이 되었지만 삭제해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사진이라 올려보았다.



이현우...

처음 등장했을 때 앳되고 풋풋한 인상이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했더니
이미 여러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아역으로 출연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돌아온 일지매에서는 차돌이 역, 태왕사신기에서는 이필립이 열연한 처로의 아역,

드라마 로비스트에선 송일국 아역, 대왕 세종에서는 충녕대군 아역 등 대부분 주인공의 아역을 독차지 했는데
이번 선덕여왕 덕만 역의 남지현과는 로비스트, 대왕 세종에 이어 세번째로 상대 아역을 맡게 되는 뗄래야 뗄수 없는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선덕여왕에서도 김유신의 아역을 꿰어참으로 인해 누나들의 인기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이현우.

너무 앳되어 보이는 용모 때문에 처음엔 중학생인 줄 알았더니 1993년생으로 현재 평촌고등학교에 재학중이란다.


선덕여왕 촬영장에서 본 이현우는 고집스러울 만큼 성실한 이미지의 김유신 아역 답게 호
소력 있는 눈빛 연기로 주위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비록 아역인지라 몇 회 나오지 않고 성인 김유신역인 엄태웅에게 대본을 넘겨주고 8회에서 하차했지만
앞으로 다른 드라마에서 또 다른 배역으로 이현우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역으로 인기를 한몸에 모으다가 커서는 어릴적의 외모을 상실해서 팬들의 실망을 안겨주는 아역들이 종종 있지만

아역 출신 중에서도 '잘 자란 아역'을 꼽으라면 단연 유승호가 아닐까?
이제 아역이 아닌 성인 배역 김춘추의 역할을 맡아 곧 이어 등장할 유승호가 매우 기다려 지는 가운데
이현우 또한 유승호의 뒤를 이을 '내일의 꽃남'으로 '잘' 자라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수많은 누나 팬들의 선망의 대상인 유승호를 따라잡을 만한 재목 이현우,
앞으로 그의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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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을 맡아
시청자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떠오르는 유망주로 지목받고 있는 남지현.


남지현을 처음 만난 것은 '신라 밀레니엄 파크'의 '선덕여왕 촬영장'에서였다.
그녀는 의자도 하나 없이 촬영장 옆 강변 시멘트 바닥에 걸터 앉아 분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메이컵 아티스트의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이자
남지현의 얼굴은 강바닥 진흙탕에서 구르다 온 얼굴로 금방 탈바꿈했다.


남지현, 성인 연기자를 능가할 만큼 물오른 연기라고 생각했더니 벌써 방송 데뷔 9년차라고 한다.
7세 때 아동 잡지에 사진이 실린 것이 계기가 돼 CF를 찍었고,
드라마에는 2004년 MBC '사랑한다 말해줘'에 처음 출연한 이후 각 방송사의 아역상을 두루 받았다.


지금 만 14세로 중학교 2학년인 남지현.
아직 어린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어른을 능가하는 신들린 연기를 보여 주위를 놀라게 하는데
 놀랍게도 연기 학원에는 한번도 다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날도 화랑들의 개울 씬부터 남지현, 아니....덕만의 연기는 시작되었다.
무거운 모래 주머니를 발목에 찬 채 강물을 거슬러 뛰고 또 뛰고...
그러다가 흙탕에 뒹굴기를 몇 번...


'신라 밀레니엄 파크'의 선덕여왕 세트장인 '김유신 화랑 산채'에서
덕만이 제일 꼴찌로 화랑 산채로 뛰어들어가는 장면의 촬영이 다시 시작되었다.


"레디~ 액션!"
감독의 큐 싸인에 맞추어 덕만은 산채로 헐레벌떡 뛰어들어 가는데....


호흡이 잘 맞지 않아서 N.G.


다시 큐 싸인에 맞춰 들어오다가 이번엔 모래 주머니가 흘러내려 N.G.


모래 주머니를 손보고 난 후 다시 "레디~ 액션!"


다시 산채 문에서부터 뛰어오는데 또 컷~!


이번엔 마당에 누워서 신음하는 화랑들의 연기가 리얼하지 못해서  N.G..


김유신 아역인 이현우와 호흡이 잘 안 맞아서 "자, 다시 갑니다~!"


화랑 산채 마당으로 뛰어 들어오면 김유신이
"니가 꼴찌다. 덕만에게 모래 주머니를 하나 더 채우거라!"는 명령에
모래주머니를 덕만의 다리에 묶어주는 한씬을 찍는데 찍고 또 찍고....


감독의 연기 지도는 촬영 사이사이 계속되었는데 듣는 연기자들의 태도는 고된 촬영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기만 했다.


첫씬이 잘 넘어가고 다시 또 산채로 뛰어들어와 
"모래 주머니 하나 더!" 하는 장면을 찍는데 또 같은 과정이 여러번 반복되었다.


이후의 촬영씬은 다시 산채로 뛰어 들어온 덕만이 김유신의 책망을 듣자
말구유에 담긴 물에 얼굴을 철푸덕 담구었다가 허리를 펴서 너무나 시원한 듯 "푸하~!"하며 웃은 후
다시 말구유 물에 얼굴을 텀벙 담구었다가 즐거운 듯이 허리를 펴서 고개를 돌리면
세월이 흘러 아역 덕만이 성인 덕만인 이요원으로 바뀌는 것이다.


성인 덕만 이요원의 씬을 찍기 전에 먼저 아역 덕만 남지현이 말구유에 얼굴을 담그는 장면을 찍었다.
"레디~ 엑션~!"


감독의 큐 싸인에 따라 덕만은 주저없이 말구유에 얼굴을 풍덩 담구었다가 허리를 펴고 "푸하~!"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 장면도  "다시 갑시다~!"하며 찍기 여러번.
"자 ~ 덕만아! 주저없이 시원하게 담그란 말이야! 그리고 일어나서 환한 웃음을 지어!"


여러날 밤샘 촬영으로 이미 목이 다 쉬어버린 감독의 여러가지 주문에도
덕만은 힘들거나 지친 내색없이 "네~♬"하고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다시 말구유에 얼굴을 담구고 또 담구었다.


이미 저녁이 된 김유신 화랑 산채 촬영장.
여름이라지만 쌀쌀한 산아래 날씨로 인해 스텝들도 다 옷깃을 여미며 떨고 있는데도


분장을 고친 덕만은 차가운 물에 얼굴을 담그고 또 담그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선덕여왕을 찍는 동안 어린 남지현은 모래 바람과 싸우며 사막을 낙타와 함께 걷는 고된 촬영 뿐 아니라
가파른 언덕을 구르다가  절벽에 매달려 폭포 아래로 떨어지지는 등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하는 힘겨운 장면 속에서도
 힘들어하는 내색도 하지 않고 도리어 사진을 찍는 스텝들에게 환한 웃음을 날려주어 보는 이를 감동케했다.


이런 열정을 보여준 남지현에 대해 네티즌들은 "나이도 어린데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아슬아슬하고 힘든 장면을 즐겁게 촬영하는 것을 보니 배울 점이 많은 아이다"
"남지현의 열연으로 인해 선덕여왕을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다"는 등 칭찬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가 촬영장에서 만난 남지현은 더 이상 아역 배우가 아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기로써 어른 배우들을 능가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어 시청률을 끌어올리는데 한몫한 남지현.
자기가 맡은 배역에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웃음을 잃지 않고 연기를 즐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앞으로 더 큰 역할도 소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훌륭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8회를 끝으로 남지현은 '선덕여왕'에서 하차를 하게 되지만
앞으로 또 다른 드라마에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그녀를 만나보기를 기대해본다.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어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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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를  더해 갈수록 점점 흥미진진해져 가는 MBC 월화 드라마 선덕여왕,
덕만이 이제 계림으로 당도하게 됨으로 드라마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월, 화요일 저녁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화랑들의 등장 씬....^^

낭천제 ,낭장 결의 등 화랑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을 확인해 보는 것도 흥미롭고
미실 주위의 여러 화랑이나 카리스마 짱인 국선 문노를 비롯해
김유신,김춘추 등 '꽃미남' 화랑들이 등장할 예정이라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보고 있다.


화랑들의 등장 씬을 찍은 세트장 역시 신라 밀레니엄 파크 내에 조성되었는데
무술을 연마하는 '화랑 연무장'은 드라마에서 이미 간간히 소개되었고
곧이어 '김유신 화랑 산채'가 시청자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될 예정...

방송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김유신 화랑 산채'를 미리 돌아보았다.


미실궁과 화랑 연무장 사이에 자리잡은 김유신 화랑 산채.
아직 드라마 촬영 외에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다.
바리케이드를 밀고 안내해 주시는 홍연무 문화 유산 해설사님.


야산 바로 아래에 둥글게 조성되어 있는 산채는 아늑한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 김유신의 화랑 시절 관련 장면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주로 촬영된다고 한다.


산채의 조감도를 보시면 구조가 어느 정도 감이 잡히실 듯...
(조감도는 선덕여왕 홍보 블로그 http://blog.naver.com/seonduk 에서 빌려왔습니다.)


8동의 건물을 입구문에서 오른쪽 부터 차례로 소개하자면 오른쪽이 마굿간, 그 다음이 말먹이 창고이다.



먹이 창고 등을 비롯한 모든 건물의 지붕은 너와로 이어져 있다.



말목들이 가로질러 매어져 있지만 촬영 중이 아니라서 말은 여기에 없다.


문화 유산 해설사님이 먹이 창고 옆으로 난 통로로 안내를 해 주셨다.



통로 위에서 보면 반원으로 된 공간이 보이고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말들이 대기하는 곳이 있다.



반원 모양의 말 대기 장소엔 공연을 준비하는 말들이 대기하고 있다.
바로 마주 보이는 문으로 나가면 화랑 연무장으로 가게 되는데 일반인들은 통제가 되는 통로이다.



세상에 말처럼 섹시하기 그지없는 동물이 또 있을까.....너무나 잘 생긴 말들의 모습에 넋이 나가서
가까이 가서 말들을 찍으려고 하니 말은 스트레스 받으면 깨물기도 하니 조심하라고 일러주신다.


다시 계단으로 올라와서 먹이 창고 바로 옆 건물은 무기고로 쓰이는 건물이다.


조감도와 비교해 보시면 도움이 되실 듯....


무기고와 붙어 있는 큰 건물은 바로 화랑 산채의 본채이다.



입구 문에서 보면 바로 마주 보이는 건물이 본채인 것이다.



본채라고 명명해 놓았으니 이곳에서 가장 많은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나..생각된다.



바로 정면에서 보니 햇살이 너무 강해서 지붕 아래가 그늘져 잘 보이지 않는다.


조감도를 보시면 사진보다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듯...


산채의 건물들은 통나무를 대충 도끼로 쪼아서 밧줄로 얼기설기하게 묶어서 기둥을 세우고 



거칠게 다듬은 판자로 벽과 바닥을 마무리하고 지붕은 너와로 이었다.



벽은 황토로 바르고 나뭇가지와 대나무로 창틀을 만들었는데
화랑들의 무술 단련 기구 같은 소품은 할일이 없어 얌전히 옆으로 누워 있다.



저 문을 삐걱....열고 화랑들이 칼을 들고 나와주었으면 좋으련만....(그럼 싸인을 받겠지...? ㅎ)



본채에 이어서 왼쪽은  제1 별채, 오른쪽은 제2 별채이다.



특히 제 1별채는 2층으로 된 구조여서 본채보다 더 웅장해 보인다.



앞에서 바라 보니 어쩐지 극기 훈련장에 있는 시설과도 흡사해서
밧줄이라도 붙들고 뛰어내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느낌이 든다.


역시 조감도와 비교해 보는 쏠쏠한 재미...^^


제 1별채에는 앞에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가운데 탁자를 두고 빙 돌아가며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붙어 있는데 이곳에서 이루어질 화랑들의 대화가 궁금해진다.



쉼터 옆의 건물은 창고라고 하는데 어쩐지 외국의 통나무집 같은 느낌이 드는건 나만의 생각인지...



문화 유산 해설사님의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한바퀴 돌아보고 화랑 산채를 나서니
이 세트장이 드라마에서 어떻게 활용될지 상당히 궁금하기만 하다.
미실궁과 김유신 화랑 산채를 필자와 함께 돌아본 블로거님들은 
앞으로 전개될 드마라 '선덕여왕'을 더욱 실감나게 시청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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