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목 드라마 '추노'에서 그 이름이 대두되며 극의 흐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운주사'.
이곳에는 크기도 각각 다르고 모양도 각양각색인 불상과 석탑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 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많은 불탑과 석불이 이 곳에 있었으리라고 짐작되지만 지금은 석탑 17기, 석불 80여기만 남아있어
역사 속에서 끝없이 유실되어온  세월을 살아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산중턱에는 도선국사가 하룻날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결국 일으켜 세우지 못한 '와불' 두기가 나란히 누워 있고

와불로 가는 길에 있는 '칠성 바위'는 북두칠성의 방위각이나 밝기가 흡사한 원반형 석재가 

북두칠성의 배열대로 놓여 있어 호기심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이런 범상치 않은 와불과 바위, 수많은 석불과 석탑은 누가 무엇때문에 이곳에 조성해 놓았는지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서 세간의 호기심을 더하는 곳이 운주사이다.

필자는 운주사를 상징하는 와불과 다양한 석불, 칠성 바위에 대해 두번에 걸쳐서 포스팅한 바 있는데 
오늘은 특이한 형태의 불상들과 마찬가지로 운주사의 소박하고도 다소 엉뚱한 석탑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형태의 석불로 가득 찬 운주사.
이곳의 석탑 또한 모두 다른 사찰과는 다른 서투르기 짝이 없는 솜씨의 탑들이다.
 

 

예전엔 천불 천탑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17기의 석탑만 남아 있는데
석탑들은 제각기 다른 모양과 다양한 개성을 뽐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의 석탑은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적하고 둥근 옥개석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9층 석탑은 운주사로 들어가는 남쪽 골짜기의 첫 입구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커다란 바윗돌로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을 삼고 그 위로 윗층 기단을 쌓은 후 9층에 이르는 탑신을 세운 모습이다.  

탑의 면이 사각형인 것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탑들과 같으나,
지붕돌 밑면에 받침을 생략한 모습이나 각 면에 마름모 안에 꽃 모양을 새긴 모습들은 보기 드문 예이다.
 이는 지방적인 색채가 뚜렷했던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 탑은 운주사의 여러 탑 가운데 높이가 가장 높은 것으로,
원래 지방유형문화재 제8호였다가 1984년 보물 796호로 지정되었다. 

9층 석탑의 다음에 있는 7층 석탑은 높이 9.6m로 전남 유형 문화재 276호이다.
상륜부는 소실되었지만 비교적 단정하고 소박하며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아래서 위로 올려보고 찍은 드라마의 씬에서는 7층 석탑의 단정하고도 날렵한 자태가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운주사 쌍교차문 7층 석탑은 X자가 두개씩 새겨져 있는 문양이 무척이나 이채롭다. 

 마치 아이들이 문양을 빚은 듯한 이 탑은 신라 전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각층 탑신석에 쌍교차문(X)과 마름모꼴(◇)의 형태를 장식하는등
국내 석탑에서는 유례가 없는 특이한 장식을 보여주고 있다. 

경내의 다른 탑에 비해 비교적 안정감을 주는 쌍교차문 7층 석탑의 높이는 7.75m 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형태를 지닌 이 석탑의 이름은 원형 다층 석탑이다.
거북이 모양의 지대석이 1개의 돌이고 기단 면석이 각각 5개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몸체돌과 지붕돌이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다.
지대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탑은 전체적으로 매우 이색적인데 이 탑을 '호떡탑'이라고도 부른단다.
정말 잘 구운 호떡을 켜켜이 쌓아놓은 것 같은 엉뚱한 모양의 석탑이다. 

   운주사 원형 다층 석탑은 보물 798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앞 다층 석탑은 모전 석탑의 유형을 보이며 제작시기는 고려 시대로 본다.  

 운주사 경내에는 이른바 최고의 명당이라는 터가 전해지고 있는데 바로 대웅전 뒤편에 있는 작은 구릉이다. 

 이 구릉 위에는 두 기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 원반형으로 생긴 삼층탑에는 아예 명당탑이란 명칭이 붙어 있다. 

 대웅전 뒤에 위치한 운주사 발형 다층 석탑은 일반적인 탑의 상식을 초월한 이형탑이다.
주판알같기도 하고 밥그릇을 엎어놓은 모양같기도 한 괴석은
원해 7석이었으나 지금은 4석만 남아 있다.
전혀 색다른 형태의 석탑이지만 눈에 거슬리지 않고 기발한 조영기법을 보이는 석탑이다. 

 운주사 거북바위 5층 석탑은 전체적으로 신라 석탑의 유형을 따르고 있다. 

 거북 바위 7층 석탑 역시 2층에서 7층 탑신에 X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
고려시대에 나타난 백제계 석탑은 유례가 없는 형태이다.   

칠성 바위 큰 암반 위에 건립된 칠성 바위 앞 7층 석탑은
지대석이나 기단부 등 별다른 시설 없이 자연 암반 위에 탑신부만을 건립하였다.
 


 그 외에도 운주사 여기저기에 자리잡고 있는 크기와 형태가 댜양한 수많은 탑들을 설명없이 소개드리면... 

  

  

 

 
   천년고찰치고는 유일하게 담장도 없이 상식을 파괴하는 서투른 모양새의 석불과 석탑으로 가득찬 운주사.
이름도 없는 장인들의 솜씨로 빚었는지 투박하고 어설프기까지 한 수많은 석불과 석탑들은 
마치 현대미술가의 조각 작품 전시회 같아 오늘도 호기심 어린 여행자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Copyright 2010.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날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KBS수목 드라마 '추노' 에서는 
원손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기를 원하는
훈련원 판관 송태하(오지호)와 언년이(이다해)가 운주사 와불이 누워있는 곳으로 오고
그들이 향하는 곳을 미루어 짐작한 이대길(장혁)과 그 패거리들도 운주사로 급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그들이 지나는 천불 천탑의 신비한 가람 운주사 산자락에는 칼로 도려낸 듯한 커다란 원반형 석재가 여기저기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누워 있는 커다란 원반형 석재는 모두 일곱개. 이 석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북두 칠성의 배열 상태로 놓여 있다는걸 알 수 있다.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 가운데 유달리 우리의 눈에 띄는 북국성과 북두칠성.
북극성은 길 잃은 사람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고 북두칠성은 국자와 같은 모양으로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고 있다.



특히 북두칠성은 민간신앙인 '칠성 신앙'으로 우리 민초들의 삶에 더 밀착되어 있었는데
사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칠성각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북두칠성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언뜻 보면 원반형 7층 석탑의 옥개석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원반형 석재들은 
칠성 신앙의 조형물인 북두칠성석으로 보는 관점이 더 신빙성있게 대두되고 있다. 

언제....누가...어떻게 축조한지도 모른채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천불 천탑의 가람 운주사...
칠성 바위 역시 누가 언제 이렇게 커다란 원반석을 칼로 자른 듯이 잘라 이곳에 갖다 놓았는지....
무엇을 하기 위해 이곳에 갖다 놓았는지......전혀 알려진 바가 없고
운주사에 대해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더욱 깊어져갈 뿐이다.

Copyright 2010.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일본이나 중국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은 몽골도 예외가 아닌데
몽골에 부는 한류는 일본이나 중국처럼 드라마나 가수 등 연예 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990년 자유화 이후 시장 경제가 도입이 되면서부터 한국을 경제 모델로 삼은 몽골인지라
몽골 도처에서 한국과 관련된 상품 광고와 간판을 쉽게 접할 수가 있다.
 


수흐바타르 광장 바로 앞에서 본 대한항공의 광고에는 우리나라 여자 아이와 몽골 남자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다.


길에서 만난 한국 타이어 광고는가 눈에 번쩍 뜨이고


기아 자동차의 광고도 반갑기 짝이 없다.


한국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몽골에 오는지 알게 해주는 한글 광고도 눈길을 끈다.
차가말굽버섯은 몽골의 2,000 이상 산악지역의 자작나무에서 자라는 자연산 버섯이라 우리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버섯.


간단 사원 앞 동네의 서울 플라자는 백화점인 것 같고.....


서울 마트에는 몽골인들이 좋아하는 한국산 식품과 공산품이 주를 이룬다.


길에서 만난 홍길동이란 한국 음식점 이름은 어떤 음식을 팔까...궁금하기도 하다.

 
몽골에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중고차가 다 있는데  어떤 버스는 서울의 노선과 번호판을 버젓이 붙이고 시내를 질주한다.

관련 포스트 : 몽골을 주름잡는 한국산 중고차


어떤 승합차는 아직도 한국에 있을 당시의 학원이거나 유치원 이름을 그대로 붙여놓고 있다.


이는 새로 도색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중고차일지언정 차가 한국산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버스 옆에 붙은 LG 마크와 수퍼 타이 광고도 반가움에 한번 더 쳐다보게 한다.


2080 치약 광고를 붙인 트럭이 휙 지나간다...어....여기는 몽골이었지...


아름다워지기 위한 소망은 몽골도 마찬가지...한국산 화장품은 최고의 인기 제품이다.


몽골에서 가장 화려한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는 대장금의 한상궁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우리나라 굴지의 화장품 브랜드의 설화* 화장품이 몽골에서는 월화수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아래에 쓰인 자음 유액...이런 문구는 한글이 그대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백화점의 엘리베이터는 현대 엘리베이터이고...


수리 중인 에스컬레이터 입구 저지선 테이프에도 안전제일이라고 쓰여 있어 실소를 머금게 한다.


한국 기업의 몽골 진출은 다양하기 그지없는데 심지어 이렇게 의료 부분에 진출한 사례도 보이며


몽골의 울란바타르 대학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대학으로 한국어를 제 2 외국어로 채택하는 등
한국에 가지 않고도 한국식 교육과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곳이라 몽골 대학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는 학교이다.


여행 중 물과 간식을 사기 위해 들린 소규모 할인점의 진열대에는 태반이 한국 상품으로 가득 차 있는 놀라운 광경을 접할 수 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거나 한국 상품 전문 매장이 아닌 몽골인 대상의 할인점인데도 비빔면, 김치면, 진라면, 육개장......등이 빼곡이 차 있고


한국어와 몽골어가 같이 쓰여진 마요네스.....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튀김을 맛보라는 튀김가루....


매운 김치 등.....한국 상품이 진열대의 반을 차지한다.


그런데 가격이 정말 만만치 않다.
 몽골의 화폐 단위는 투그리크(Tugruk)로써 US 1$ = 1170 tg 정도이니 거의 우리나라 돈과 가치가 비슷하다.
그런데 오예스 한통에 4,000 투그릭이고 후렌치 파이가 3520 투그릭이니 우리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싼 정도...
대학 나온 일반 회사원의 한달 봉급이 30만원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비싼 물가인 것이다.


몽골 사람들도 뻥튀기를 정말 좋아하나보다. 맥주나 몽골 위스키가 나오면 반드시 뻥튀기가 안주로 나오는 점도 우리와 비슷한 점이다.


호텔에서 TV를 트니 TV 홈쇼핑에는 한국 홈쇼핑을 몽골어로 녹화 더빙만 한채로 하루 종일 방영하고 있고
 사이사이에는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가 쉴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는 한국에서 종영되기가 무섭게 바로 몽골 TV에 그대로 방영되곤 한다.


노래방 뿐 아니라 식사만 취급하는 일반 레스토랑에도 노래방 기계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은데
비치되어 있는 책은 놀랍게도 한국 노래방에 비치된 책 그대로이다.

몽골의 대학생 적십자 단원들은 한국 최신 가요와 댄스를 그대로 다 외우고 있어 필자를 놀라게 했는데
한국에서 간 일행들이 도리어 노래를 몰라서 버벅거리면 도리어 가사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몽골의 젊은이들은 한국 문화와 한국 상품, 한국의 연예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을 방문하거나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을 꿈으로 가진 사람들이 많다.
가는 곳 마다 만나게 되는 이런 한류 열풍의 이면엔 사실 어두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몽골을 뒤덮고 있는 자랑스런 한류의 물결이 초원의 불길처럼 크게 번져 나가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Copyright 2010.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누가 중국을 구질구질하고 더러운 나라라고 했던가?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뒤떨어진 나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상해(上海, Shanghai) 공항에 내리자 마자 그 규모에 놀라게 되고
외탄의 서양식 건물과 황포강 주변에 늘어선 
수많은 고층 빌딩, 남경로의 화려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된 KBS 수목 드라마 '아이리스(IRIS)'의 상해 씬에서도
북한 공작원 김승우와 김소연이 황포강 야경을 배경으로 접선하는 장면들이 나와서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는데
 황포강의 동쪽과 서쪽의 야경은 상해 관광에서 제일 큰 볼거리라고 말할 수 있다.
낮시간대의 경치도 볼만하지만 황포강변을 구경하는데 가장 좋은 시간은 저녁무렵이다.
포서(浦西)의 모든 건물과 강 맞은쪽의 포동(浦東)건물들이 등불을 밝히는 저녁 시간의 풍광은 찬란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황포강의 보석같은 야경을 감상하는데엔 황포강 유람선을 타는게 최고다.  

 

 

  레스토랑으로 된 유람선 등 각가지 모양의 유람선은 관광객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기에 충분한데  

 

 

 필자가 탔던 유람선도 설레이는 마음을 표현하는 듯 수백개의 반짝이 전구로 멋을 내었다.  

 

 

야경을 조망하기엔 배위로 올라가는게 최고...추운 날이지만 승선객들은 객실보다는 유람선 윗부분으로 올라가 야경을 즐긴다.  

 

 

 출발한 유람선은 황포강의 포동지역으로 돌아 항구 깊숙이 들어갔다가 포서 지역으로 돌아 출발지로 오게 된다.  

 

 

상해의 중심을 흐르는 황포강의 동쪽인 포동(浦東)지역엔  

 

 

 세계에서 제일 높은 88층의 호텔인 찐마오 빌딩, 상해국제회의중심 등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각 빌딩마다 색색의 조명으로 그 자태를 뽐낸다. 

 

 

  어떤 빌딩들은 건물 벽 전체가 전광판이다.  

 

 

 특히 동양 1위,세계 3위를 자랑하는 높이 468미터의 방송관제탑인
동방명주(東方明珠)는 어둠 속에 찬란한 빛을 발하며 그 위용을 자랑한다. 

 

 

 서쪽으로 보면 상해시 인민정부 청사를 비롯한 대형 빌딩들과 유럽식 건물군이 펼쳐진 장관을 볼 수 있다.
이른 바 상해의 정치,경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외탄으로 불리우는 곳이다.  

 

 

 뱃사공들의 발자국에 의해 만들어진 강변길인 외탄(外灘,The Bund)은
상해의 상징이자 상해의 영혼이 숨쉬는 곳이며 상해 근대사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1840년 아편전쟁의 결과 상해가 개방된 이후 영국의 조계지가 된 외탄 일대는
열강의 각종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1920년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고층 빌딩가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 건축물은 당시 서양의 복고주의 건축양식을 따른 것으로 

다양한 국가의 건축 양식이 모여 있어서 '세계 건축의 박물관'이라고도 불리운다. 

 

 

 외탄은 북쪽의 백도교로부터 남쪽의 금능동로까지 1.7km 거리에 52채의 서양식 건물과 동서양 빌딩들이 숲을 이룬다.  

 

 

 그 중에서도 고대 그리스식의 원형 지붕을 한 건물인 HSBC은행이 가장 유명한데
이 건물은 일찍 '수에즈 운하 동쪽과 극동지역사이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바로 옆 건물은 상해 세관이다. 

 

 

위로 올려다 본 상해 세관 건물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150년간 상해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우뚝 선 외탄에는 특히 은행 건물이 밀집해 있다. 

 

 

여기도 은행....저기도 은행....온통 은행 건물이다.  

 

 

또한 황포강 아래로는 푸동지역과 푸서지역을 잇는 외탄 관광 터널이 있는데 

 

 

푸서쪽 출입구는 외탄 진의 광장 북쪽에, 푸동쪽 출입구는 국제회의센터 남쪽, 동방명주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터널의 전체 길이는 646.7미터인데 내벽에 갖가지 색깔의 레이저와 조명을 사용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놓아서
터널 내를 이동하는 모노레일의 투명창을 통해 환상적인 조명과 레이저쇼를 감상할 수 있고
 객차 내에는 고음질의 음향 설비가 되어 있어 갖가지 효과음과 음악을 틀어줌으로써 터널 내에서 벌어지는 시각적 쇼를 한층 멋지게 느낄 수 있다.

   

 

 

 

 황포강변에 위치한 넓은 제방에는 야간 데이트를 즐기는 많은 연인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데
여행에서 빠져서는 안 될 추억의 위해 사진사도 여기저기 대기하고 있고 중국 여행의 묘미인 여러가지 먹거리 또한 빠지지 않는다. 

 

 

 군옥수수 하나 사서 들고 연인과 함께 외탄의 멋진 야경을 즐긴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Copyright 2009.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드라마 '선덕여왕'의 최종'병기 김춘추.
도대체 누가 주연이고 조연인지 모를 만큼 드라마에서 덕만보다 춘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한데
활짝 웃는 유승호가 클로즈업되며 드라마가 끝나면 보는 사람 또한 자신도 모르게 따라 미소를 짓게 된다.
너무나 훈훈하게 자라준 유승호를 보면서 흐뭇하지 않은 여성 시청자는 별로 없을 듯 한데
'화랑세기'에 따르면 김춘추는 '얼굴이 백옥과 같고 온화한 말로 말을 잘하였다'고 하니
춘추 역으로 유승호를 기용한 것은 정말 완벽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신라 제 29대 임금으로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춘추....
아버지는 금륜태자의 아들 용수공이며 어머니는 어머니는 진평대제와 마야부인의 딸인 천명공주이다.
어린 시절에는 조용하고 말이 적었으며 사색이 깊은 아이였으나 권력 관계와 인간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으므로 
춘추의 커다란 뜻을 간파한 유신은 그를 위대한 인물로 여기고 받들고 군(君)으로 받들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연대는 춘추가 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결혼함으로 더욱 돈독해지게 되고 이어 두사람은 세력을 합하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게 되는데...
 


그럼...춘추가 문희와 결혼하게 된다면 선덕여왕 37회에 등장해 인기를 얻고 있는 보종의 딸 보량은 어떻게 된건가?
춘추와 보량 사이의 러브 라인이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고 두사람의 애정 전선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던데 ....
그렇다. 쉽게 말하면 신라의 미소년 공자 김춘추는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였으니 절묘한 '양다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겠다.



아끼던 명마의 목을 단 칼에 자를 정도로 결단력이 있던 김유신에게는 보희, 문희 두 여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유신의 동생 보희는 '서악(경주 선도산)'에 올라 오줌을 누니 온 서라벌이 오줌으로 가득 차는 꿈을 꾸게 된다.
보희는 참으로 망칙하고 불길스러운 꿈이라고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 동생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문희는 즉석에서 보희가 꾼 꿈을 사겠다고 제안한다.
불길한 꿈을 팔게 되어 기뻐한 보희는 무엇을 주고 꿈을 사겠느냐고 물으니 보희는 '비단치마'를 주겠다고 답한다.
흡족한 거래가 성립되어 문희가 옷깃을 벌리자 보희는 "어젯밤 꿈을 네게 준다"고 말했고 문희는 보희의 꿈을 정식으로 사게 된다.

당시 비단치마는 국제 무역을 통해 수입되는 고가품이었는데 
'삼국유사'는 태종 무열대제 때의 포목 한 필 값이 벼로 30섬 혹은 50섬이라고 적고 있으니
지금 시가로 따져서 수백만원쯤 되는 포목보다 훨씬 비싼 비단치마를 꿈값으로 치룬 것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망칙하게 들릴 수 있고, 개꿈이라고 버릴 수도 있는 꿈을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르고 산 문희는
보희가 꾼 꿈에 내재한 가능성을 보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이다.

열흘 후 유신은 춘추와 함께 축국(蹴鞠,제기차기)를 하다가 일부러 춘추의 치마를 밟아 옷섶의 고름을 떨어지게 한다.
이에 유신은 자기 집에 가서 옷고름을 꿰매기를 청하며 춘추를 집안으로 불러들인다.
유신은 보희에게 춘추의 옷고름 수선을 맡기고자 하나 보희가 병중이었으므로 이에 문희가 나아가 바느질을 해주게 된다.
유신은 문희가 춘추의 옷을 바느질할 때에 '일부러 피하고 보지 않았다'고 하니
여동생을 매개로 하여 춘추를 자기 사람으로 만드려고 하는 유신의 전략이 잘 드러나 보이는 부분이다.
유신이 깔아준 멍석....아무도 없는 집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불붙게 되고 1년쯤 지나자 문희는 임신을 한다.


이때 이미 춘추는 보종의 딸 보량(보라궁주,宝羅宮主)와 결혼해서 딸 고타소를 낳은 상태였다.
보량은 매우 아름다웠으며 춘추와 매우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는데 당시 춘추는 보량을 매우 사랑하고 있었다고 한다.
보량으로 인해 춘추는 임신한 문희를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밀로 할 뿐 아니라 문희를 멀리하게 된다.


 김유신의 집터에 남아 있는 우물 재매정(財買井). 유신의 집터 담장 너머로 보이는 선도산은 지난 5월 9일 일어난 산불로 일부가 소실되었다.

문희를 멀리하는 춘추의 태도에 다급해진 유신은 자신의 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신라 최대의 불쇼'를 벌이게 되는데
사전 계획에 따라 자신의 집 마당에 장작을 높이 쌓아놓고 임신한 문희를 꿇어 앉히고는
"너는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어찌 된 일이냐?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
하며 크게 꾸짖으며 어름장을 놓아도 데 문희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유신은 누이를 태워 죽이겠다고 온 서라벌에 소문을 퍼뜨린다.

그 때 춘추는 덕만을 따라 남산에서 놀고 있었는데 유신의 집에서 연기가 하늘로 자욱이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된다.
공주가 유신의 집에서 나는 연기가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좌우에서는 유신의 누이가 부모의 허락 없이 아이를 가져 화형에 처한다고 아뢴다.
이에 덕만은 누구의 아이냐고 되묻자 옆에서 듣고 있던 춘추,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려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며 용서를 구한다.
덕만에게서  "네가 한 일인데 어찌 가서 구하지 않느냐?"는 질책을 들은 춘추는 
황급히 유신의 집으로 가서 화형 당하려는 문희를 구하게 되고 이에 포사(鮑祠,포석정)에서 길례를 행하여 문희를 둘째 부인으로 맞아들인다.

얼마 안 있어 보량은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되고 문희는 보량의 뒤를 이어 정궁(正宮)이 되니 문명황후(文明皇后)이며
그녀의 장자인 법민은 바로 문무대제(文武大帝)이다.

김춘추의 정실 부인이 되었지만 유신과 문희는 춘추의 배신 행위에 대한 앙금이 오래 갔다고 한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진정으로 화해한 때는 선덕여왕 11년(642) 김춘추의 딸 고타소와 사위 김품석이 백제군에게 전사했을 때이다.
고구려 사신길을 자청한 춘추가 "이번에 내가 고구려에 가서 저들에게 해를 당한다면 공은 무심할 것인가?"라고 묻는데
매부가 죽어도 가만히 있겠느냐는 말은 둘의 관계가 정상이 아님을 뜻한다.
이에 유신이 "공이 만일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의 말발굽이 고구려, 백제 두 임금의 대궐 마당을 짓밟아버릴 것"이라고 답하여 
둘은 화해하게 되는데 이는 곧 신라 왕실의 핏줄과 가야계 군사력의 결합이기도 했다.
그 결과 김춘추는 성골 출신 마지막 왕인 진덕여왕 뒤를 이어 신라 29대 왕에 등극,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닦는다.


후일의 역사서에서는 남성들의 사적만이 기록되어 있지만 춘추와 유신의 정치적 결속에는 문희의 활약이 지대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가의 비단치마를 아낌없이 투자한 그녀의 비젼은 훗날 김춘추와 그녀의 자손들이 대대로 신라 왕실을 장악하는 위대한 유산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문희는 진정으로 멀리 내다 보는 혜안을 가진 슬기로운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통찰력이 부족하여 자신이 꾼 꿈을 비단치마와 바꿔버린 보희는 꿈을 바꾼 것을 후회하여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지 않았다. 
이에 춘추는 보희도 첩으로 삼았는데 아들 지원과 개지문을 낳았으니 김춘추는 문희,보희 두 자매를 동시에 아내로 맞아들인 셈이 되는데
유신, 춘추, 문희, 보희를 주축으로 벌어진 이 이야기는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같은 신라 최대의 리얼 스캔들이다.

드라마에서 현재 보량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춘추.
41회에서 춘추는 보량을 납치하듯 자신의 근거지로 데려오고 보량과 춘추의 결혼 문제로 세종 측과 설원랑 측은 서로 대립하게 되는데....
앞으로 드라마의 전개가 어떻게 펼쳐질른지는 작가의 펜끝에 달려 있지만
선덕여왕에서 춘추와 보량, 문희의 삼각관계는 시청자에게 기다려지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보량역의 박은빈은 성공적으로 시청자에게 얼굴을 선보였는데 문희역의 배우역에는 또 누가 캐스팅될른지...?
벌써부터 궁금하기만 하다.

Copyright 2009.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네요..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루비™

,



조선시대를 그린 사극 드라마를 보면 일반 사대부의 집 사랑방 뒤편에는
어김없이 일필휘지로 써놓은 서예병풍이나 수병풍을 둘러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궁궐의 대전에는 어좌의 뒤에 해와 달, 그리고 다섯개의 산봉우리,
소나무 등이 그려진 '일월오봉병'이 둘러쳐져 있는게 보통인데
특이하게도 정조 치세의 드라마에서는 다른 왕들의 대전 풍경과는 사뭇 다르게

양쪽에 서가가 늘어서 있고 거기에 많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을 준 아니라

책거리(책가도,冊架圖) 병풍이 떠억 버티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책거리(책가도,冊架圖)란 여러 칸으로 나누어진 서가에 고동기(古銅器),도자기,꽃병과

서책,붓,벼루,연적 등 각종 문방구류를 진열한 모습을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책거리가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된 시기는 18세기 후반 정조 때이다.


정조가 특별히 책거리에 대하여 애정어린 관심을 보인 것은 정조의 학문 진흥 정책과 연관이 깊다.

정조는 책거리에 대하여 직접 거론할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또한 자비대령화원들의 시험 문제로 책거리를 그리게 하는 등 책거리와 관련하여

늘 책 속에서 살면서 학문에 대한 열정을 잃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임금이 책거리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자 고관대작들도 그 뜻에 부응해서 
당시 귀한 분들은 앞을 다투어 집안의 벽을 책거리 병풍으로 치장했다는 기록이 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시 최고의 화원인 김홍도도 책거리의 제작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임금으로부터 시작된 책거리의 관심은 당시 새로운 유행을 이끌었으나

아쉽게도 김홍도의 책거리는 고사하고 정조 당시의 책거리는 한 점도 알려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전하는 책거리는 화원 이형록과 장한종이 책거리로 이름을 떨친 19세기의 작품들이다. 

 


 사진의 책거리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된 책거리(책가도,冊架圖)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러 기물들은 당시 문인들이

고동기 등 진귀한 문물들을 수집하며 보고 즐겼던 취미를 보여주는데

이 책거리 그림은 화면을 가득 채운 책가에 책과 기물들을 배치하고

다섯번째 폭 상단에는 인장을 그려 작자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 책거리는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책거리 그림 화가인 이형록(1808~ ? )의 화풍과 유사하나

인장의 글씨가 불명확하여 작자를 확인할 수는 없다.



조선 후기부터 그려졌던 우리나라의 책거리 그림은

중국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다보각경(多寶閣景)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그림은 진귀한 골동품과 문방구류를 소재로 하여

새롭게 투시도법과 명암법을 사용하여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문 숭상 사상을 대변해주는 책거리....

항상 책을 곁에 두고 읽고 익히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조선의 선비들을 기억하며

책거리 속에 그려진 다양한 수집품을 하나 하나 구경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일 듯 하다. 


올린 사진은 국립 중앙 박물관 유리 안에 있는 병풍을 찍은 것이라

사진의 상태가 고르지 못한 것을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라오며....  
  

 

책거리(冊架圖)

작자 미상

19세기 조선,비단에 채색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Copyright 2009.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회가 거듭해 갈수록 긴박감이 더해지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신라 밀레니엄 파크'의 '김유신 화랑 산채 촬영장'에서 '드라마의 <재미>를 담당한' 빅 콤비 이문식,류담을 만났다.


사기 치다가 얼떨결에 김유신이 이끄는 용화향도에 들어가게 된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은
살벌하기까지한 선덕여왕의 정치판에서도 간간히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맛소금과도 같은 존재랄까?
 

정극 도전이 이번이 처음인 류담은 2003년 KBS 18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개그 콘서트 '달인'코너에서의 활약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류담은
 
늘 어리버리한 행동 끝에 죽방에게 머리통을 얻어맞느라 머리가 성할 날이 없는 캐릭터.

원래 100kg이 넘는 거구이지만 두사람 정도는 거뜬히 들어올리는
고도의 캐릭터를 잘 드러내기 위해 더욱 뚱뚱하게 보이는 분장을 했다.

흙탕 투성이인 옷을 입었는데 깨끗한 옷보다 사진발이 훨씬 더 잘 받는것은 대체 무슨 조화..??


촬영이 잠시 멈추면 메이컵 아티스트의 손길은 분주하기 그지 없다.
좀 더 촉촉하고 좋은 그림을 위해 분장을 고치고 스프레이를 뿌려주어 수분을 공급한다.
김유신 아역 이현우도 제법 키가 큰데 워낙 한 덩치 하는 유담 곁에 있으니 더 아이 같아 보인다.


"어...시원하다~~! 역시 배우 하길 잘 했다니까...."
계속되는 촬영으로 힘든 중에서도 밝은 표정을 지어 주변의 사람들을 기분좋게 한다.


죽방고도의 주축은 단연 연기파 배우 죽방 이문식.
마파도, 오브라더스, 공공의 적, 달마야 서울 가자, 다모, 황산벌.....등 여러편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어
2008년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 시트콤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연기파 배우 이문식은 류담과의 콤비 플레이를 위해서 현재 자진해서 감량 중이다.


100kg 넘게 나가는 류담과 '훌쭉이와 뚱뚱이'컨셉을 맞추기 위한 감량이어서
식사를  할 때에도 일부러 젓가락만 사용해서 밥을 반만 먹는다고 하는데...


시청자에게 '죽방 고도 투 샷'에 어울리는 좋은 구도를 선사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한다.


특히 SBS 드라마 '일지매'에서는 극 중 감초같은 일지매 이준기의 양아버지 쇠돌역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치과를 찾아 생니를 뽑았다고 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작진은 깜짝 놀랐고, 나중에 앞이를 뽑게 되는 사연을 대본에 추가로 반영해 이문식 씨의 연기투혼에 보답했다.
이 때문에 이문식은 촬영 초반에는 오히려 의치를 끼고 연기를 해야했고, 드라마 촬영 후 임플란트를 했다.

연기를 위하여 머리를 미는 장면을 연기 투혼이라며 칭찬을 자자하게 하는 것은 간혹 보았지만
연기를 위하여 다시 나지도 않는 생니를 뽑다니.....그의 연기 투혼에는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촬영장에서 본 이문식은 조연이라고 하지만 도리어 주연의 포스를 가지고 연기에 임한다.


실제로 감독조차도 이문식을 '형님'이라고 호칭하며 예우도 깍듯하게 하는 등 촬영장의 큰 형님으로써 드라마의 분위기를 주도해 가고 있었다.


촬영장에서는 드라마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서 같은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번에 걸쳐서 찍게 된다.
그 때마다 이문식은 NG도 거의 내지 않고 감탄할 만큼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선덕여왕 촬영장 '신라 밀레니엄 파크' 바로 가기

주연보다 더 빛이 나는 이문식..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연기자'라고 불리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소 긴장되고 삭막한 드라마에서의 긴장감을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죽방 고도' 이문식과 류담.
훗날 덕만이 공주가 되어서는 죽방 고도는 덕만의 호위무사를 맡는 영광을 거머쥐게 된다는데.....
앞으로 드라마 전개 속에서 신선한 웃음을 끊이지 않게 공급할 그들의 연기를 기대해 본다.

Copyright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어요.  감사합니다...^^


Posted by 루비™

,


회를  더해 갈수록 점점 흥미진진해져 가는 MBC 월화 드라마 선덕여왕,
덕만이 이제 계림으로 당도하게 됨으로 드라마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월, 화요일 저녁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화랑들의 등장 씬....^^

낭천제 ,낭장 결의 등 화랑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을 확인해 보는 것도 흥미롭고
미실 주위의 여러 화랑이나 카리스마 짱인 국선 문노를 비롯해
김유신,김춘추 등 '꽃미남' 화랑들이 등장할 예정이라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보고 있다.


화랑들의 등장 씬을 찍은 세트장 역시 신라 밀레니엄 파크 내에 조성되었는데
무술을 연마하는 '화랑 연무장'은 드라마에서 이미 간간히 소개되었고
곧이어 '김유신 화랑 산채'가 시청자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될 예정...

방송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김유신 화랑 산채'를 미리 돌아보았다.


미실궁과 화랑 연무장 사이에 자리잡은 김유신 화랑 산채.
아직 드라마 촬영 외에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다.
바리케이드를 밀고 안내해 주시는 홍연무 문화 유산 해설사님.


야산 바로 아래에 둥글게 조성되어 있는 산채는 아늑한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 김유신의 화랑 시절 관련 장면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주로 촬영된다고 한다.


산채의 조감도를 보시면 구조가 어느 정도 감이 잡히실 듯...
(조감도는 선덕여왕 홍보 블로그 http://blog.naver.com/seonduk 에서 빌려왔습니다.)


8동의 건물을 입구문에서 오른쪽 부터 차례로 소개하자면 오른쪽이 마굿간, 그 다음이 말먹이 창고이다.



먹이 창고 등을 비롯한 모든 건물의 지붕은 너와로 이어져 있다.



말목들이 가로질러 매어져 있지만 촬영 중이 아니라서 말은 여기에 없다.


문화 유산 해설사님이 먹이 창고 옆으로 난 통로로 안내를 해 주셨다.



통로 위에서 보면 반원으로 된 공간이 보이고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말들이 대기하는 곳이 있다.



반원 모양의 말 대기 장소엔 공연을 준비하는 말들이 대기하고 있다.
바로 마주 보이는 문으로 나가면 화랑 연무장으로 가게 되는데 일반인들은 통제가 되는 통로이다.



세상에 말처럼 섹시하기 그지없는 동물이 또 있을까.....너무나 잘 생긴 말들의 모습에 넋이 나가서
가까이 가서 말들을 찍으려고 하니 말은 스트레스 받으면 깨물기도 하니 조심하라고 일러주신다.


다시 계단으로 올라와서 먹이 창고 바로 옆 건물은 무기고로 쓰이는 건물이다.


조감도와 비교해 보시면 도움이 되실 듯....


무기고와 붙어 있는 큰 건물은 바로 화랑 산채의 본채이다.



입구 문에서 보면 바로 마주 보이는 건물이 본채인 것이다.



본채라고 명명해 놓았으니 이곳에서 가장 많은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나..생각된다.



바로 정면에서 보니 햇살이 너무 강해서 지붕 아래가 그늘져 잘 보이지 않는다.


조감도를 보시면 사진보다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듯...


산채의 건물들은 통나무를 대충 도끼로 쪼아서 밧줄로 얼기설기하게 묶어서 기둥을 세우고 



거칠게 다듬은 판자로 벽과 바닥을 마무리하고 지붕은 너와로 이었다.



벽은 황토로 바르고 나뭇가지와 대나무로 창틀을 만들었는데
화랑들의 무술 단련 기구 같은 소품은 할일이 없어 얌전히 옆으로 누워 있다.



저 문을 삐걱....열고 화랑들이 칼을 들고 나와주었으면 좋으련만....(그럼 싸인을 받겠지...? ㅎ)



본채에 이어서 왼쪽은  제1 별채, 오른쪽은 제2 별채이다.



특히 제 1별채는 2층으로 된 구조여서 본채보다 더 웅장해 보인다.



앞에서 바라 보니 어쩐지 극기 훈련장에 있는 시설과도 흡사해서
밧줄이라도 붙들고 뛰어내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느낌이 든다.


역시 조감도와 비교해 보는 쏠쏠한 재미...^^


제 1별채에는 앞에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가운데 탁자를 두고 빙 돌아가며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붙어 있는데 이곳에서 이루어질 화랑들의 대화가 궁금해진다.



쉼터 옆의 건물은 창고라고 하는데 어쩐지 외국의 통나무집 같은 느낌이 드는건 나만의 생각인지...



문화 유산 해설사님의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한바퀴 돌아보고 화랑 산채를 나서니
이 세트장이 드라마에서 어떻게 활용될지 상당히 궁금하기만 하다.
미실궁과 김유신 화랑 산채를 필자와 함께 돌아본 블로거님들은 
앞으로 전개될 드마라 '선덕여왕'을 더욱 실감나게 시청할 수 있을 듯......^^


Copyright 2009.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내조의 여왕이 끝난 월화 드라마 시장을 허리케인같이 강타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

남성들만이 전유하던 왕의 자리를 공주의 신분으로 도전하여 성공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일대기를 화려한 색채감과 풍성한 에피소드 등으로 펼쳐갈 예정인데....


이제 겨우 초반일 뿐인데도 선덕여왕 시청에 대한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선덕여왕의 최대 정적으로 종횡무진 맹활약을 하는 미실 고현정의 화려한 등장으로 초반 세몰이를 하더니
아역 배우 남지현 및 외국인 단역 배우의 출연 장면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3,4회에서도
시청률 20%를 가뿐히 제끼는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평소에 사극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는 아니었으나 선덕여왕은 방영 이전부터 특별한 관심을 갖고 기다렸는데 
이는 국내 드라마 중 처음으로 신라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의 주 무대는  바로 계림(경주).
드라마의 많은 부분이 촬영되는 미실궁과 화랑 산채, 화랑 연무장 등의 오픈세트가
신라 밀레니엄 파크 내에 개장되어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드라마에서 타이톨 롤인 선덕여왕 못지 않게 강력한 캐릭터는 바로 고현정이 열연하는 미실.
왕족과 화랑들을 비롯한 서라벌의 뭇 남성들을 손아귀에 넣고도 모자라 황후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신라 시대 최고의 팜므 파탈 미실의 존재는 주인공인 선덕여왕 못지 않는 캐릭터이다.
드라마의 제목으로 선덕여왕보다 미실이 더 어울리지 않느냐는 네티즌들의 많은 의견이 있었던 것처럼
미실은 이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데......
드라마 중 많은 씬의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미실궁'이 궁금해졌다.



신라 밀레니엄 파크에서도 제일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미실궁'....
'천년 고도'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미실궁 세트장은 지난 5월 14일에 오픈했다.



대나무 숲 저편으로 미실궁의 솟을 대문이 보인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위엄있게 서있는 홍살문 아래로 이어진 무지개 다리가 미실의 궁으로 인도한다.


무지개 다리 앞에 서서 궁을 바라보니 금방이라도 서슬이 시퍼런 미실이 걸어나올 것 같다.



잠시 정면에서 비껴 측면에서 연못과 무지개 다리를 살펴 본다.
아직 개장한지 얼마 안 되어 수련이 조금 엉성하게 자라있는 것이 맘에 걸리는데
드라마의 전개와 함께 이 연못의 수련도 점점 자라 무성해지겠지.


뒤로 좀 더 물러나 무지개 다리와 미실궁을 함께 잡아 보니 훨씬 더 안정감 있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무지개 다리를 지나면 높은 기단 위에 미실 본궁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다.




계단을 올라 본궁 바로 앞에 서니 기둥과 인방의 화려한 장식이 눈에 확 들어온다.


서까래와 인방, 설주마다 화려하고 세밀한 문양을 그려놓았고


건물의 색은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써서 위엄을 더해 주었다.
 


본궁에 이어진 건물은 제 1별궁인데 드라마에서 미실이 측근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주로 별궁에서 이루어진다.


본궁의 가운데 문을 밀고 들어서니 실내는 아무런 장식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문화유산 해설사이신 홍연무 선생께서 특별히 별궁 내부까지 안내해 주셔서 자세히 돌아볼 수 있었다.


별궁 내부도 천정과 설주, 인방에는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었으나 그외에 별다른 장식은 없었고 약간 썰렁하기까지 하다.드라마 촬영을 할 때마다 컨테이너 트럭에 커튼,카페트 등 소품과 기자재들을 잔뜩 싣고 와서 설치하는데

촬영이 끝나면 다시 모두 수거해서 차에 싣고 가버린다고 한다.


다른 드라마에 활용도 해야 하고 다음 촬영까지 그냥 두면 유실 우려도 있기 때문에 다 가져가는 것이리라..



실내에서 나와 본궁 기단 위에 미실궁 대문쪽으로 한바퀴 휘....둘러 본다.


북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은 제2 별궁이다.


 바로 반대편 제3 별궁에서 잡으면 아주 그림이 좋다.



제2 별궁은 방이 없이 회랑과 누각으로만 이루어진 건물이다.


제2 별궁의 누각 위에 서서 아래 연못이나 본궁, 맞은 편 제3 별궁을 바라 보는 정경이 평화롭다.


제2 별궁의 누각 바로 맞은 편 무지개다리 너머로는 제3 별궁이 자리잡고 있다.


제 3별궁 또한 ㄷ자 모양의 회랑과 누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연못을 양쪽에 두고 긴 회랑이 ㄷ자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다.



넓고 큰 회랑은 시원하기도 해서 앞으로 연회나 결혼식 장소로 대여하지 않느냐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미실궁 세트장은 그다지 넓지 않으나 드라마에서의 좋은 그림을 위한 공간들이 구석 구석 숨어 있다.


산으로 난 협문에서는 배역들이 드나들거나 문 뒤에 서서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들을 찍는다.



병사 대신 문화해설사님을 세우고 한컷 찍어 보았다.


협문이나 정문이나 모두 붉은색으로 통일미를 주고 문양도 통일미를 주었다.


실내와 실외에 놓인 이색적인 모양의 등대도 눈에 뜨이고.....


기단석에서 솟아 나와 구불구불 흐르는 물길도 이색적이다.

미실궁에 대한 자상한 안내와 해설을 해주신 문화유산 해설사 홍연무 선생님께서 감사를 드리며
선덕여왕의 또 다른 세트장인 '김유신 화랑 산채'로 발걸음을 옮긴다.

Copyright 2009.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