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손꼽히는 ‘킹스 싱어즈’가 한국에 왔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내한 공연을 오면 대부분 서울에서만 공연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지방거주자들은 좋은 공연을 보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내한한 킹스 싱어즈는 대구에서도 공연 일정이 있다기에 공연장인 대구 수성 아트피아 홈페이지에 얼른 접속해 보았다.
그런데 공연 소식을 너무 늦게 접한지라 이미 선택할 수 있는 좌석이 몇개 남지 않았다. 거의 제일 마지막으로 티켓 예매를 끝내고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기를 며칠. 8시에 시작되는 공연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퇴근을 하고 경주- 대구간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수성 아트피아로 향했다.


  
캠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 출신으로 구성된 6인조 남성 아카펠라 중창단인 ‘킹스 싱어즈(The King's Singers)’는
교회 합창곡에서 무반주 양식을 일컫던 '아카펠라(a cappella)'를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장르로 발전시킨 전설적인 아티스트이다.
1968년에 결성되어 43년간 명성을 이어온 킹스 싱어즈는 클래식을 근간으로 팝, 재즈, 포크, 민속 음악을 비롯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현대 작곡가들이 헌정한 음악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을 전혀 새로운 음악으로 재탄생시켜 들려주고 있는데
그들의 탁월한 음악성과 넘치는 유머와 재치로 인해 클래식 팬은 물론이고 세대를 아우르는 포용력을 가진 독보적인 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다.


"팝 역사에 비틀즈가 있다면 아카펠라(a cappella) 역사에는 킹스 싱어즈가 있다."
런던 타임즈는 킹스 싱어즈를 최고의 보컬 그룹으로 칭하기도 했는데 필자 또한
앨범 ‘The Beatles connection'에서 수록된 이들의 노래를 처음 듣는 순간 바로 킹스 싱어즈의 골수팬이 되어버렸다.
  
 


1968년에 결성된 ‘킹스 싱어즈’는 그동안 20명의 단원들이 그룹의 전통을 지켜왔는데
현재의 멤버는 데이비드 헐리(카운터테너), 폴 피닉스(테너), 티모시 웨인 라이트(카운터테너),
필립 로슨(바리톤), 크리스토퍼 개비터스(바리톤), 조나단 하워드(베이스)이다.
1990년에 킹스 싱어즈에 합류하여 지금까지 22년 동안 그룹의 카운터테너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드 헐리로부터
2010년에 킹스싱어즈에 합류한 광고회사원 출신의 새내기 조나단 하워드까지.....
멤버들의 나이나 경력도 천차만별이지만 완벽한 화음과 넘치는 재치는 43년간 변함없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까지 발매된 음반만 해도 100 여장에 이르는 킹스 싱어즈는
같은 공연장에서 다시 공연할 경우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대구 수성아트피아 공연의 프로그램을 보면 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과도 연주 곡목이 많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대구 공연에서는 1부에는 클래식한 크리스마스 캐롤을 을, 2부에서는 Ob-la-di Ob-la-da, Penny lane, Yesterday 같이
잘 알려진 팝과 아메리칸 캐롤을 적절히 선보여 객석에 앉은 청중들에게 유쾌함과 재미를 더해주었다.

프로그램이 다 끝나고 우뢰와 같은 앵콜 요청에 다시 무대로 등장한 킹스 싱어즈는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 를 불렀는데
익숙한 전주가 나오자마자 청중들은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아카펠라 공연에 신나게 박수 장단을 치는 웃지 못할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I'm Yours'를 부른 후 다시 나온 이들은 마지막 앵콜곡으로 우리 가요 '마법의 성'을 불러 많은 청중의 환호와 함께 기립박수를 받았다.
알고 보니 킹스 싱어즈는 1996년에 ‘마법의 성’을 완벽한 하모니로 녹음, 발매한 적이 있어 한국팬에게 더욱 친근함을 주었다고 한다.

 


모든 공연을 다 마치고 행복한 마음으로 연주장을 나서니 로비 한가운데 싸인 데스크가 마련되어 있고
멤버 전원이 준비된 데스크 앞으로 등장하고 있다.
3일 안산, 4일 서울, 5일 대구......하루도 쉬지 않고 투어 공연으로 달려온 이들이 피곤함도 마다 않고 팬 싸인 이벤트까지 준비한 것이다.


운집한 팬들이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들이대자 전직 변호사였던 바리톤 크리스토퍼 개비터스는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함께 오랫동안 쌍V를 그리며 포즈를 취해주어 둘러선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각자 킹스 싱어즈에 합류한 시간도 다르고 하던 일도 나이도 다르지만
자연스러운 유머와 넘치는 재치는 역시 킹스 싱어즈! 라는 감탄을 아끼지 않게 한다.


싸인 데스크에 멤버 6명이 앉자 순식간에 싸인을 받으려는 줄이 더욱 길게 늘어서고
기다리는 줄은 계단을 거슬러 올라가 2층 로비까지 이어졌다.
 


43년 동안 100 장이 넘는 음반을 발매한 킹스 싱어즈.
이날 로비에는 새로 발매된 CD와 DVD도 판매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CD를 사서 싸인을 받았는데
멤버들은 CD나 DVD는 물론 프로그램의 사진 옆에까지 일일이 다 싸인을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된 팬 싸인 이벤트 동안 멤버들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한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악수를 할 뿐 아니라
프로그램과 CD에 하나 하나 정성스런 싸인을 해주곤 해서 둘러선 팬들은 '정말 매너 좋다'며 감동하곤 했다.


필자도  40분을 줄 서서 기다린 끝에 프로그램과 CD에 싸인을 받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음반으로만 들어오던 킹스 싱어즈의 환상적인 공연을 Live로 즐겼을 뿐만 아니라
예상치 않은 멤버 전원의 싸인까지 받게 되다니....!


사람들이 떠나고 조용해진 수성 아트피아를 나서니 시계는 이미 1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칠흙같이 어두운 고속도로를 밤늦게 운전해 돌아오는데도 피로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너무나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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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마술사 훈데르트바서 전시에 다녀왔어요~

2010년 12월 5일부터 2011년 3월 15일까지 100일 동안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
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에는
그의 작품 <세 번째 피부>, <블루 블루스>를 포함한 회화 63점,
예술 작품으로 승화 된 건축 모형 작품 8점,
수공으로 제작된 태피스트리 5점,
오리지널 그래픽 작품 26점, 오리지널 스탬프, 사진, 영상.....
총 120 여 점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답니다.
 



전시장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대부분의 전시 작품을 사진으로 담아왔지만
다 올려드리면 보시다가 멀미 날까봐 대표적인 작품 몇점만 소개해 드리오니
일생을 환경 보호와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바친 훈데르트바서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그의 회화와 건축물 모형을 통하여 마음껏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일생을 환경 보호에 바친 훈데르트바서의 생전의 모습입니다.

작가 훈데르트바서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관련 포스트 : 색채의 마술사 훈데르트바서에 빠져보세요~







블루 블루스 / 혼합 매체, 1994




훈데르트바서 타워 모형, 2000





노란 배들 - 튀니지와 타오르미나해  / 카펫, 1999






로마의 모자 / 실크 스크린, 1998




그리스의 끝 / 태피스트리, 1980






성스러운 인형 놀이 / 혼합 매체, 1998




피 흘리는 건물들 / 혼합 매체, 1952






맞서서 대항 하는 4인 - 럭비 / 혼합 매체, 1999




녹색 여인 / 유화, 1954




훈데르트바서 미술관 쿤스트하우스빈
관련 포스트 : 파라다이스를 만나는 미술관 쿤스트하우스빈





노란 집들 - 질투 / 혼합 매체, 1966




부엽토 향기 / 태피스트리, 1982




동화처럼 아름다운 블루마우 리조트 모형
(다른 건축물 모형은 비행기로 공수했지만 블루마우 모형은 너무 커서 배로 실어왔다고 합니다.)
관련 포스트 :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화마을 블루마우





무한함의 클로즈업 / 혼합 매체, 1994




발산 / 혼합 매체, 1999




반 고흐에 대한 오마쥬 / 혼합 매체, 1998




성 바바라 교회 모형
관련 포스트 : 파스텔화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성 바바라 교회




두번째 피부 / 일본 목판화, 1986




달스랜드 운하 / 태피스트리, 1984




비엔나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관련 포스트 : 관광 명소로 변신한 비엔나 쓰레기 소각장




수염은 머리가 벗겨진 사람의 잔디이다 / 혼합 매체, 1981




어딘가에서부터 아래 / 혼합 매체, 1998




발켄부르크의 무지개 나선 모형, 2004





그리운 보랏빛 지붕  / 혼합 매체, 1982




화분 속 자라나는 방울 / 태피스트리, 1980




30일간의 팩스 페인팅 / 혼합 매체, 1994




마틴 루터 고등학교 모형, 1997





세번째 피부 / 혼합 매체, 1982




훈데르트바서가 즐겨쓰던 모자와 사랑하던 배 레겐탁


다음지도에도 소개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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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난 훈데르트바서를 일컫는 이름은 여러가지이다.
화가, 생활 디자이너, 건축가, 환경주의자, 평화주의자.......
도시 디자인을 혁신하고 생활의 미학을 높인 점에서는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와
건축에서 곡선을 살리고 자연을 추구하는 면에서는 스페인의 가우디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훈데르트바써에게 디자인이나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건축은
그것이 꿈이나 목표라기보다는 꿈을 실현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상적인 삶을 살고 싶어 했고 발상을 뒤집으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은 예술가 훈데르트바서.
2000년 어느날 그가 '특별한 세상'이라고 말하던 뉴질랜드에서 비엔나로 오던 도중
퀸 엘리자베드호 갑판에서 세상을 떠났다.

백가지 길을 열어놓고 산 사람 훈데르트바서는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자취는 비엔나 곳곳에 남아 비엔나의 명물이 되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성 바바라 교회,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그리고 쿤스트하우스빈.





훈데르트바서의 미술관 쿤스트하우스빈은
그가 재건축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서 도보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쿤스트하우스빈 앞에 도착하여 사진을 담으려고 하니 마침 햇살이 환하게 건물을 비춘다.

오후 2시만 되면 어둑어둑해지는 유럽의 겨울은 낮시간에도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어두침침하기가 일쑤인데
쿤스트하우스빈 앞에 서니 정말 감사하게도 하늘이 파랗게 드러난다.





쿤스트하우스 앞은 좁은 도로라 건너편 벽에 바짝 붙어 서도 좀체로 건물 전체를 담을 수가 없어 이렇게 
부분 부분을 앵글에 담아 보았다.





건물을 장식한 화이트와 블랙의 체커 보드 무늬가 참으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체커 보드 무늬이긴 하지만 하나 하나의 모양은 반듯한 직선이 아니고 모두 구불구불한 곡선 모양이다.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이 반짝거리는 모자이크 타일은 산업용 타일이 아니라 모두 수제 타일이라고 한다.




 
건물은 화이트와 블랙을 주조색으로 하여 창에는 레드, 블루, 오렌지, 엘로우, 퍼플..... 자연을 닮은 알록달록한 색을 썼는데

훈데르트바서에게 다채롭고 눈부신 색깔의 집은 행복한 집과 같은 의미였다.





바로 옆에 붙은 획일적이고 밋밋한 건물들을 보면 쿤스트하우스빈이 얼마나 개성있는 집인지 확연하게 대조가 된다.
그는 항상 자연에는 자로 잰 듯한 반듯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디자인한 모든 건물에는 곡선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사각의 기둥은 이렇게 둥근 항아리 모양의 기둥으로 변신했고 
건물 바로 앞의 보도 블럭도 이렇게 물이 흐르듯 유연한 곡선으로 이어져 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를 원했던 쿤스트하우스빈의 정원은 많은 식물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를 보호해주고 살 공간을 제공해 주는 집을 제 3의 피부라고 표현했던 훈데르트바서는

집이 세워짐으로 인해 빼앗겨버린 식물들의 생활 공간을 식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빼앗은 식물들의 공간을 건물에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디자인한 모든 건물에는 옥상과 마당, 계단을 가리지 않고 식물을 심었다.





식물들은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주고 인간은 식물로 인해 기쁨이 더욱 넘치게 된다.
인간은 식물을 통해 그늘을 얻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먼지와 소음에서 벗어나 편안한 느낌을 받게 된다.
훈데르트바서는 나무를 심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나무 의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식목일'이 있는데 만약 훈데르트바서가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우리나라 식목일 홍보 대사를 자처하지 않았을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작품의 소재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았던 훈데르트바서는 모든 작품의 원료를 자연에서 가져왔는데

이렇게 버려진 빈 병이나 재활용품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건축 자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를 추구했던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이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싶다면 쓰레기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도록 애써야 한다.
인간은 자연이 손님이며 그것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가 만들어낸 쓰레기에 책임이 있다.
쓰레기를 분리하고 재활용하는 것은 아름답고 즐거운 행위이다"라고 주장했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Friedensreich Hundert Wasser,百水)'이라고 지은 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평생 환경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산 작가이다.





훈데르트바서는 건물이나 집을 지을 때 그 안에 자신의 이념과 꿈을 반영하고 싶어 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블루마우 리조트......처럼 훈데르트바서의 집들의 창은 하나도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단독 주택을 지을 수 없어서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 사는 요즈음, 
남이 설계하고 지은 집으로 이사온 사람들은 획일화된 아파트에서 자신의 존재와 개성을 드러내기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훈데르트바서는 창문을 에워싼 공간만큼은 스스로 만들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권리를 그는 '창문권'이라고 불렀다.





쿤스트하우스빈은
1892년에 지어진 토넷 가구 공업소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것이니 무려 118년이 된 건물이다.
1991년 4월에 오픈한 이 미술관 1,2층은 훈데르트바서의 그림과 컬렉션으로 채워져 있고
3,4층은 현대 작가들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2층의 훈데르트바서 전시 관람료는 12유로, 3,4층의 기획전까지 관람하고 싶으면 16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개성 만점 매니큐어의 손은 제 손이 아니구요...큐레이터님의 손이 찬조 출연했답니다..^^)




쿤스트하우스빈 로비에는 그의 건축물에 어디든지 존재하는 실내 분수대가 중앙 벽면에 자리잡고 있다.
자연을 그대로 건축물에 들어앉히는걸 원했던 그는 인공 정원은 물론 실내 분수를 꼭 설치한다.





로비의 바닥 또한 물결 흐르는 듯한 곡선의 모자이크 타일로 뒤덮여 있는데 자연의 언덕처럼 완만한 경사가 있다.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반듯한 직선이 아니라 유연한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로비 한쪽에 위치한 뮤지엄샵에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이용한 다양한 기념품이 판매되고 있다.








여러가지 기념품 중에서도 그의 작품을 담은 그림 엽서는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이용한 장난감 중에서는 돌리면 이렇게 뱅글뱅글 나선이 그려지는 신기한 팽이도 있는데   

나선이 생명의 원초적인 형태라고 생각했던 훈데르트바서의 그림에는 유난히 나선을 이용한 그림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곡선으로 처리된 계단을 따라 전시관으로 올라가 본다.





올라가는 계단에도 이렇게 빈틈없이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데
계단에 걸려 있는 식물 또한 거창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덩쿨 식물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 온다.





훈데르트바서라고 쓰인 벽 오른쪽 문을 밀면 전시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전시관은 적막할 만큼 조용해서 옮겨딛는 발소리가 느껴질 정도였는데
이렇게 가운데에는 앉아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의자를 놓아둔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전시관 안에는 훈데르트바서의 회화 작품과 테피스트리, 우표 등 콜렉션, 그의 건축 작품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매혹적이며 화려한 그의 회화는 다양한 색채를 사용했으며 재료 또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채 자유롭게 사용되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처럼 자유롭고 다양한 색채가 살아 있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은
권위적이지 않으며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암다채(暗多彩)의 색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는 암다채가 순수라고 강하고 깊은 색이라고 생각했다.





비오는 날에는 모든 사물이 비에 젖게 되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이 더 빛난나고 생각했는데

그의 그림에서는 비에 젖은 듯한 강렬한 색감이 가미되어 모두 화려하고 생동적이며 빛이 난다.





훈데르트바써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제나 자연과의 조화를 꿈꾸며,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과 건물은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구성되며 자연의 색을 닮은 노랑, 빨강, 파랑 등 알록달록한 색을 사용했다.
그런 까닭인지 그의 작품에는 어린이 같은 천진함과 자유, 편안함이 느껴진다.

 



백가지 길을 열어놓고 산 사람 훈데르트바서는  눈에 뜨이지 않게 서서히 자라는 식물의 성장과 같이
천천히 그림을 그렸다.



그의 어떤 작품은 짧은 시간에 꽃을 피우듯이 완성되었고, 어떤 작품은 완성되기까지 몇 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이루어 놓은 결과물은 아주 바쁘게 산 사람이라도 평생 흉내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많다.
 




훈데르트바써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로 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며 살았기에 
세상을 더 풍요롭고 더 재미있고 아름답게 만든 예술가이다.





훈데르트바써는 늘 그림을 그렸고,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었다.
그는 늘 꿈을 꾸며 살았기에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고 꿈을 현실로 옮길 수 있도록 무한히 노력한 사람이다.
그의 남긴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일생 동안 추구한 가치와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돋보이는 파라다이스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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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에서 130km, 제 2의 도시인 그라쯔(Graz)에서 60km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블루마우가 

오스트리아 여행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가축들을 키우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 블루마우에 1997년 온천 리조트가 개장되면서부터
이 작은 마을의 이름은 전 세계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온천 리조트의 정식 명칭은 '로그너 바드 블루 마우 호텔 앤 스파(Rogner Bad Blumau Hotel & Spa)'.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화가이자 건축가인 프리덴슈트라이히 훈데르트바써(Frieden  streich Hundertwasser)가
건축주인 로버트 로그너의 제안을 받아들여 호텔과 온천 시설 계획에 참여하여 설계한 이 독특하고도 예술적인 휴양지는
찾는 사람들을 스트레스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특별하고 자유로운 세계로 초대해준다.




1997년에는 오스트리아 관광 환경상을,
1998년 독일 여행 기자 협회에서 수여하는 관광 서비스 상을 받기도 한 
이 작은 마을 블루마우는 동화의 나라를 그대로 현실로 옮겨놓은 듯 아름답고 독특하며 기발하고 놀랍다.





도시 건물의 주조색을 이루는 회색 건물은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핑크, 블루, 화이트, 레드......보기만 해도 포근한 느낌이 들고 행복한 느낌이 드는 건물들 뿐이다.





다양한 모양과 색상이 공존하는 건물은 땅에서 금방 솟아난 듯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있는 느낌을 전해주고
금방이라도 동화 속의 난장이가 집안에서 불쑥 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상상마져 들게 한다.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를 그대로 살려서 지은 집들은 성냥갑처럼 반듯한 전형적인 집 모양을 거부하고
한쪽은 낮고 한쪽은 높으며 지붕은 유선형으로 물결치듯 서로 이어지다가 땅으로 연결되며 언덕으로 이어진다.



"자연에는 자로 잰 듯한 반듯한 곡선은 없다."라는 훈데르트바서의 생각처럼 
건물은 자연스러운 곡선을 통해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해 준다.





블루마우의 건물은 찌겔 하우스, 스타인 하우스 등으로 구분되는데
찌겔 하우스는 재활용기와를 사용했고 스타인 하우스는 돌을 주워 쌓아서 환경 보호에도 일조를 했다.





블루마우의 모든 지붕은 1m이상 흙으로 덮고 옥상 정원을 만들었는데
지붕이 온통 잔디와 나무로 우거져 있어
언덕을 산책하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지붕 위로도 돌아다니게 된다.




이는 훈데르트바서가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건축물을 지으면서 빼앗은 초원의 공간을
옥상 정원으로 다시 만들어 초원에게 다시 충분한 자리를 얻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이를 '나무세입자'라고 불렀는데 나무세입자는 인간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맑은 공기를 제공하며,
먼지와 소음을 막아주고, 나뭇잎 지붕으로 사람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줌으로써 세입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나무를 심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항상 주장하였다.




또 훈데르트바서는 집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지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생각하는 집은 획일화되고 지루한 전형적인 집 스타일에서 벗어나 높게, 길게, 둥글게, 각지게도 지을 수 있고
돌, 벽돌, 금속, 유리, 나무, 짚 등 건축 소재에도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인간의 공간을 자연과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눈 구멍 집(Eye-slit house), 숲의 마당 (Forest-courtyard house), 롤링 힐(Rolling-hills)과 이동 언덕 집 (Shifted-hills house)과 같은

훈데르트바서의 다양한 건축 컨셉들은 모두 이곳 블루마우에서 처음으로 실현되었다.
반지의 제왕의 호빗 마을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훈데르트바서였기에 가능한 작업이었으리라.....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에게는 5개의 피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첫번째 피부는 우리 자신의 일부인 외피를 의미하며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의복은 두번째 피부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세번째 피부는 우리 몸을 위한 옷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덮개인 집과 건물이며
4번째 피부는 우리가 속한 사회, 5번째 피부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직선의 감옥 같은 건축들을 혐오하며
아름답고 사람들이 스스로의 창의성과 꿈을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성(城)을 짓기를 바랬을 뿐만 아니라
집은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 볼 때 누가 사는 지 알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시 주택 단지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이 담긴 집을 지을 수가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주거지의 창문을 에워싼 공간만이라도 스스로 만들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권리를 '창문의 권리'라 했다.




이곳 블루마우의 2,200개나 되는 창문은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는데
블루마우에 머무는 동안 사람들은 창문을 통하여 자신들의 개성을 표현하고 자신의 동화의 성의 왕자와 공주가 되는 것이다.





호텔 입구에는 이렇게 3가지 색깔의 돌에서 온천수가 흘러내리고 있는데 이는 물 온도가 제각기 다른 이 온천의 세가지 물줄기를 상징한다.
제일 뜨거운 온천수는 무려 100도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이 뜨거운 물을 잘 활용치 못하고 그냥 내버렸다고 한다.





동화 마을 블루마우 리조트에는 온천수가 나오는 237개의 객실과 24개의 아파트, 다양한 스위트룸 등 총 312개의 객실이 있다.



앞으로 객실 수는 400개로 확장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객실 312개의 편의를 위한 종업원은 무려 320명이나 된다.




모든 객실과 온천욕을 즐기는 워터 월드와 사우나 시설등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연결 통로로 이어져 있는데
복도나 계단도 직선을 거부하는 곡선으로 물결치듯 이어져 있다.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의 객실은 옥상에 자라는 식물들로 인해 에어컨이나 난방 시설이 없이도 사시사철 적정온도를 유지히게 된다.




객실에는 객실 번호가 쓰인 명찰이 붙은 가운이 준비되어 있는데 
투숙객들은 실내외 수영장을 이용하거나 사우나, 마사지를 받으러 갈 때 이가운을 입고 리조트 안을 활보한다.




욕실 또한 훈데르트바서의 독특한 디자인이 눈에 뜨이며 욕실 바닥조차도 직선을 거부하며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블루마우 리조트의 자랑거리는 단연 스파 시설이다.
312실의 객실에는 모두 온천수가 공급될 뿐만 아니라 대형 워터 월드 시설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넓은 워터월드는 실내외 수영장, 자쿠지, 어린이 수영장, 파도풀, 사우나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한겨울에도 노천 온천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리로 된 방에서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blog.daum.net/mickeyeden

실내 온천에는 핀란드식 사우나, 로마식 욕조, 터키식 스팀 욕조, 아로마 룸 등 다양한 사우나 및 마사지를 즐길 수 있는데 
실내 스파 시설은 너무나 넓고 미로처럼 되어 있어 마치 놀이 동산에 온 것처럼 여기저기 구경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이다.

완벽한 휴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온천욕을 즐기며 심신의 회복을 꾀할 수 있으며
활동적인 사람이라면 리조트의 다양한 시설을 섭렵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는데
이곳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45홀의 골프코스가 있어 골프 마니아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가 진정한 예술가로 불리는 이유는 꿈을 꾸는 몽상가이면서 그 꿈을 현실에 옮겨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를 통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낭만적이고 단란한 건축물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현실로 실현되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모두가 함께 꾸면 현실이 될 수 있는 것!
훈데르트바서는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했던 꿈을 일깨워 그 꿈을 현실로 바꿔 놓은 마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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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산에 안 올라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이말은 직장 동료들이 필자를 놀릴 때 가끔 하는 말인데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몇년전 필자는 폐지로 가득한 쓰레기산을 정복한 경험이 있다.

털어놓긴 민망한 일이지만 버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문서를 폐지로 분류해서 내버렸기 때문이다.
처리가 완결된 문서이기도 하고 이미 보존 기간도 지난지라 아무 생각없이 폐지로 내어보내버렸는데
바로 며칠 후 그 문서가 황급히 쓰일 일이 생겨 꼭 찾아야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할 수 없이 폐지를 수거해 간 재활용센터를 수소문하여 전화를 거니
그날 수거해간 폐지가 경주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영천의 재활용 공장으로 갔다는 소식.
급히 차를 몰아 폐지 수집장까지 간 필자와 동료 직원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 했는데
5층 아파트 높이로 쌓여 있는 엄청난 폐지 쓰레기산을 보고는 모두가 탄식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쓰레기산 아래에 위치한 폐지들은 이미 썩을대로 썩어 냄새는 코를 진동하고
그 위에 다시 무질서하게 쌓이고 쌓인 폐지들은 원래의 존재가 뭔지 모르게 다 뒤섞여있는지라
필자가 버렸던 폐지 박스를 찾는다는건 해변에서 잃어버인 바늘 찾기 같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전날 경주에서 온 쓰레기차가 버리고 간 지역을 중점적으로 몇시간이나 뒤진 끝에
기적과도 같이 내버렸던 문서 박스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쓰레기산을 다리가 아프게 오르 내리던 동료들은 기쁨에 못 이겨 모두 부등켜 안고 소리를 질렀고
온몸에 먼지를 뒤덮인 것도 잊고 모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쓰레기산을 내려왔다는 황당스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

그날 몸에 배인 쓰레기 냄새가 집에 가서 샤워 해도 잘 없어지지 않았다는 동료들의 푸념은
"쓰레기산에 안 올라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란 놀림으로 두고 두고 회자되었는데.....


이렇듯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쓰레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필자인지라
이름만 들어도 품격이 넘치는 비엔나 여행 일정 속에 <쓰레기 소각장 방문>이 있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유쾌한 일이 못되었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화가이이자 건축 치료사인 훈데르트바서가 외관을 개조했다는 쓰레기 소각장이라지만
그래봤자 냄새나는 쓰레기 소각장이지 별수가 있겠어......하는 다소 시큰둥한 마음을 안고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으로 향했다.




비엔나 지리에 익숙치 못한 슬로바키아 출신 운전 기사로 인해 비엔나 시내를 한참이나 돌아 겨우 도착한 슈피텔라우(Spittelau).
버스에서 내려 눈을 들어 보니 히야......비엔나의 11월에는 좀체로 보기 힘드는 멋들어진 하늘 구름 아래
희한하게 생긴 건물이 소각장으로 향하는 육교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펼쳐져있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원색으로 빛나는 건물들을 보니 지금까지의 무관심은 어디로 갔는지
갑자기 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무한셔터질을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도나우 강 운하 변에 서 있는 쓰레기 소각장이라니.....더구나 바로 옆에는 지하철역까지!
정신을 차리고 소각장 건물을 자세히 보니 하얀 외벽에는 파랑 빨강 검정 등 원색의 문양이  강렬하고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는 황금빛 구슬을 올렸다.





그리고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창들이 눈에 쏘옥 들어와 박혔다.




그중에도 제일 눈에 뜨이는 것은 당당하게 치솟은 거대한 굴뚝.
마치 올림픽 성화 같기도 하고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 같기도 한 굴뚝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금빛 찬란하게 빛나며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소각장 굴뚝에 도입한 꾸뽈(Coupole: 러시아,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양파 모양의 돔)은
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한 건물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슈피텔라우 소각장의 자세한 안내를 받기 위해 먼저 관리동 건물로 향하였다.




관리동에도 건물 곳곳마다 어린 훈데르트바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에는 자로 그은 듯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직선으로 된 
기둥을 거부했던 그는 
건물 입구의 기둥도 둥그스름한 항아리 모양의 곡선으로 처리했다.



로비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에 전시되어 있는 예술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곳 슈피텔라우 소각장 로비에는 오스트리아의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한달 주기로 교체 전시되는데
주로 훈데르트바서의 자연주의를 따른 사진 작품과 조각 작품들이 많았다.
쓰레기 소각장에 현대 미술 전시라니......정말 상식을 깨는 소각장이다.


컨퍼런스룸에서 간단하게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의 변천사를 들을 수가 있었는데
1971년 설립된 이 소각장은 1987년까지는 여느 쓰레기 소각장과 다를바 없이 그저 밋밋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7년, 과열로  인해 대형 화재가 발생하게 되어 쓰레기 소각장의 기능이 중단되는 일이 생겼는데

비엔나 시장 헬멋 질크는 화가이자 환경 운동가, 건축 치료사인 훈데르트바서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의 외관 개조 작업을 맡게 했다.

친구인 환경 운동가 베른 로이치의 영향을 받았던 훈데르트바서는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근본적인 반감을 갖고 있었던지라 리모델링 사업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비엔나와 같은 대도시는 아무리 분리수거를 잘 한다고 하더라도 쓰레기 자체를 없앨 수는 없고
생산된 쓰레기를 처리할 쓰레기 소각장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소각장 개조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스폰서링이나 자신의 작품 판매 수입을 통해서 리모델링 비용도 분담하였다.

2년 반에 걸친 리모델링 작업을 거친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마침내 최신식 배기 가스 정화 기술이 장착된 친환경 소각장으로 재탄생하게 되는데
기계, 환경과 예술이 공생하는 조화의 본보기이자 자원 낭비를 막아주는 공업 단지 건설의 뜻을 품고 있던
훈데르트바서의 꿈은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리모델링 과정과 소각장의 현황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비디오를 시청한 후 관리동에서 나와 
가파른 계단을 올라 직접 쓰레기 처리가 이루어지는 소각장 현장으로 가보았다.





소각장 마당에는 반듯하게 생긴 주황색 쓰레기차가 연이어 들어오고 있었는데 
비엔나 전역에서 수거된 쓰레기는
재활용 쓰레기와 소각할 쓰레기로 구분한 후 소각할 쓰레기는 트럭에 실려와 이곳 소각장에서 태워지게 된다.





쓰레기차는 쓰레기 투입구로 후진하여 들어가 쓰레기를 투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바깥으로 전혀 쓰레기가 흩어지지 않고 깨끗하게 집하장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어 무척이나 위생적으로 보였다.
냄새가 진동하고 쓰레기 풀풀 날리는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을 예상했던 필자로써는 정말 부럽게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견학 코스를 돌아보기 위해 소각장 건물로 들어가는 길에 동화의 집같이 너무나 이쁜 건물이 눈에 뜨였다.





이는 시각을 다투는 쓰레기차 운전자들이 건물 안 까지 들어가지 않고도 생리 현상을 해결할 수 있게 배려한 외부 화장실이란다.
운전자들의 화장실조차도 이렇듯 아름답게 꾸며준 훈데르트바서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피부로 느껴졌다.



계단을 올라가다가 창을 통해 아래로 내려다 보니 순서를 기다리며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주황색 쓰레기차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쓰레기차인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렇게들 깨끗한거야......





견학 코스인 건물의 계단과 복도 곳곳에는 이렇게 훈데르트바서의 작품과 그의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가는 곳 마다 붙어 있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보니 여기가 쓰레기 소각장인지 훈데르트바서 미술관인지 아리송할 정도였고





슈피텔라우 소각장 측은 물론이고 비엔나 시민들이 훈데르트바서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계단과 복도 여기저기에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 전시와 함께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소개와
소각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들도 자리잡고 있어서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학생들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었다.




소각장의 하이라이트(?)인 쓰레기 집하장 견학도 빠질 수 없다.
집하장은 상부에서 유리를 통해서 상황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쓰레기라 해도 쓰레기가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았다는.....^^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중앙 통제실.
이곳에서는 현재 연간 25만 톤의 도시 쓰레기를 처리하여 60MW의 증기 및 전기를 생산, 소각시설 자체 전기로 사용하거나
인근 6만여 세대에 온수를 공급하는 등 비엔나시 아파트 37%에 열 공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 통제실은 일반인들의 관람이 불가능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특별히 공개해주신 관계자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한때 도시 한가운데 흉측하게 자리잡고 있어 시민들에게 외면받아야 했던 쓰레기 소각장은 

훈데르트바서에 의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어 비엔나의 공기를 더 깨끗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각에서 발생하는 여열을 비엔나 6만 가구에 공급함으로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여 친환경 시설로 거듭나게 되었다.

친환경 소각장이란 기능적인 부분도 물론이지만 훈데르트바서의 멋진 디자인이 더욱 눈길을 끄는 슈피텔라우 소각장은 
현재 각 나라의 공무원들을 비롯해서 5~60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비엔나의 관광 명소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서울시에서도 슈피텔라우 소각장을 견학한 후 훈데르트바서의 디자인을 벤치마킹한 소각장을 노원구에 건립했는데
안타깝게도 건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지역 주민과 서울시와의 마찰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서울시가 중랑구, 노원구, 동대문구의 쓰레기를 함께 처리할 계획으로 하루 800톤 소각이 가능한 소각장을 세웠는데
소각장 주변의 주민들이 타 지역 쓰레기의 반입을 적극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
할 수 없이 노원구의 쓰레기만 처리하기로 한다는 임시 협약을 맺고 한동안 노원구의 쓰레기만 처리했는데
서울시는 노원구의 쓰레기만 처리한다면 소각장 가동률의 17~18%만 가동하게 되니 비효율적이라고
다시 타 지역 쓰레기 반입을 주장하고 나서는 통에 주민과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혐오 시설이 들어서게 되면 주민들이 가스통까지 들고나와 격렬한 시위를 하는 것을 가끔 본다.
이는 팽배한 지역 이기주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련 기관의 시책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커져있다는 것이 더 문제일 것이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이 아름다운 외관은 물론이고
분진이나 각종 유해 물질을 걸러내는 최첨단 장치가 완벽히 갖추어져 있어 공해 물질을 거의 배출시키지 않는데 비해서
노원 소각장은 대기 오염 방지시설인 백 필터(Bag Filter)나 경찰 필터(Police Filter)등의 설비를
예산 부족이나 장소 협소를 이유로 설치하지 않은 것이 주민들의 불신의 이유라고 한다.

이런 일련의 불협 화음이 부디 잘 해결되어 우리의 소각장도 주민의 의견을 반영한 환경 친화 시설이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과 함께
슈피텔라우 소각장의 아름다운 외관만 벤치마킹하지 말고 환경 파괴를 최소화시킨 사례까지 벤치마킹한다면
우리의 혐오 시설들도 아름다운 변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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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부터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에서

<색채의 마법사 훈데르트 바서>의 전시가 열린다고 한다.


내년 3월 15일까지 100일 동안 열리게 되는 이 전시에는

그의 작품 <세 번째 피부>, <블루 블루스>를 포함한 회화 63점,

예술 작품으로 승화 된 건축 모형 작품 8점,
수공으로 제작 된 태피스트리 5점,

오리지널 그래픽 작품 26점, 오리지널 스탬프, 사진, 영상 등

총 120 여 점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훈데르트바서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응....? 이런 예술가도 있었나....?" 했었다.

필자의 미술 전반에 관한 지식이 얄팍하기 그지없었는데다가 

그동안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대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

"스페인에 가우디가 있다면 오스트리아 에는 '훈데르트바서'가 있다"고 할만큼

서구에서는 이미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예술가지만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생소하기도 한 이름인데

영화 '반지의 제왕'의 '호빗 마을'을 디자인한 작가라는 말을 들으니

"아하!"하며 그의 작품 스타일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화가, 건축가, 환경운동가, 건축치료사 훈데르트바서(Hundert wasser)

삶 속에 살아 숨쉬는 예술을 주창하였던 토탈 아트의 선구자 클림트, 에곤 쉴레의 뒤를 이어 

비엔나 토탈 아트의 정점을 장식한 그는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고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기인한 모티브로 예술 활동을 펼쳤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현대 미술의 새로운 한 획을 그은 작가이다.




1928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훈데르트바서의 아버지는 전통적인 아리안이었으며 어머니는 유태인이었다.

태어난 그 이듬해 1929년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당시는 히틀러가 서서히 정권을 장악하고 반 유대주의 정책을 펴기 시작한 시기라

그는 독일군의 눈을 피해 숨어 살아야 하는 불우한 유년을 보내어야 했다.

어린 시절 겪은 전쟁의 참상은 그로 하여금 평화와 공존의 소중한 가치를 더욱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평화주의적, 환경주의적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사실 훈데르트바서는 비엔나 예술학교에 3개월간 다닌 것 외에는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습작기를 거치며 자신의 그림 스타일을 구축하게 된 것은 파리 여행을 하면서부터인데

그는 이때 클림트나 에곤 쉴레의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정규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색채의 마법사'라 불리울만큼 강력하고 화려한 색채를 구사하였는데

색을 조합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그는 전통적인 색 조합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대담한 색들을 구사했다.





매혹적이며 화려한 그의 회화는 색채 뿐 아니라 재료 또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채 자유롭게 사용되었는데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처럼 자유롭고 다양한 색채가 살아 있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은

권위적이지 않으며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자연에는 자로 그은 듯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집에 불이 났을 때 불기운에 구부러진 자를 들고 다녔으며 직선이 배제된 그림을 그리고 건축물을 디자인했다.





그의 그림이나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주조적인 이미지는 곡선의 이미지인데

둥글고 유기적인 형태, 원들과 나선은 그가 선호하던 형태들이었다.



                                                                                               훈데르트바서가 직접 만들어 신고 다닌 신발


훈데르트바서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을 뿐 아니라 거꾸로 생각해보고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늘 차림표에 없는 것, 아직 발명되지 않은 것을 원했는데

옷, 모자, 신발 등 몸에 걸치는 것을 직접 디자인해서 입었으며 양말은 언제나 양쪽을 다른 색으로 신고 다녔다.



                                                                                                                                                                                                                                                                      블루마우 리조트


그는 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이름을 개명했는데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Friedensreich Hundert Wasser,百水)'이라고 지은 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에 대한 사랑은 평생 훈데르트바서를 떠나지 않았고 언제나 자연을 보호하고 존중하려고 애썼으며

자연을 그림으로 그리고 자연에 동화된 건물을 지으려고 힘썼다.



                                                                                                 훈데르트바서 미술관 쿤스트하우스 빈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에게는 5개의 피부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번째 피부는 우리 자신의 일부인 외피를 의미하며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의복은 두번째 피부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세번째 피부는 우리 몸을 위한 옷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덮개인 집과 건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직선의 감옥 같은 건축들을 혐오하며

아름답고 사람들이 스스로의 창의성과 꿈을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성(城)을 짓기를 바랬을 뿐만 아니라

집은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 볼 때 누가 사는 지 알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4번째 피부는 우리가 속한 사회이며 5번째 피부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행복한 집과 다채로운 집을 꿈꾸던 그는 자연스럽게 건축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만의 이념과 꿈을 반영하는 건축물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비엔나 시영아파트 건축 디자인 공모에 자신의 디자인이 채택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건축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첫 건축 프로젝트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비난이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는데

알록달록한 건물 외벽을 장식하는 다양한 창문과  풍성한 나무들은 보기만해도 행복한 집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블루마우 리조트


그는 도시 주택단지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이 담긴 집을 지을 수가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주거지의 창문을 에워싼 공간만이라도 스스로 만들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권리를 <창문의 권리>라 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한 사람이 창에서 팔을 뻗쳐 닿는 범위는 개인의 공간이며 그 공간만큼은 세입자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다’ 라는 문구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세입자 계약서의 첫 문구에  실제로 쓰여져 있다고 한다.



                                                                                                                                                                                                   블루마우 리조트


훈데르트바서는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건축물을 지으면서 빼앗은 초원의 공간을

옥상에 다시 만들어 초원에게 다시 충분한 자리를 얻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나무세입자라고 불렀는데 나무세입자는 인간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맑은 공기를 제공하며,

먼지와 소음을 막아주고, 나뭇잎 지붕으로 사람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줌으로써 세입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블루마우 리조트


이런 훈데르트바서의 생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낸 블루마우 리조트에 잘 나타나있는데

이 리조트의 모든 건물은 옥상 지붕이 온통 식물들로 우거져 있어 사람들이 그 위를 걷고 돌아다닐 수가 있게 되어있다.

옥상에 자라는 식물들로 인해 블루마우의 객실은 에어컨이나 난방 시설이 전혀 없는데도 사시사철 적정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유선형 지붕은 땅과 연결되어 자연스러운 언덕이 되고,  2200개의 창문들이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블루마우.

이 작은 마을은 훈데르트바서의 꿈을 현실로 옮겨놓은 아름답고 독특하며 기발하고 놀라운 '동화의 나라'이다.



                                                                                                                     세인트 바바라 교회


훈데르트바서는 도시의 메마른 건축들을 치료하여 자연과 인간의 행복한 동거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고자

크고 작은 건축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건축 치료사'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도심에 버티고 서서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기만 하던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훈데르트바서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게 된 이후 비엔나 시민에게 사랑받는 멋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지상낙원을 향한 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는 전문가와 함께 직접 건축 모형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는 현재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 받고 있으며 그 웅장한 스케일은 실제 건축물 앞에 서는 것과 흡사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꿈꾸는 몽상가이면서 그 꿈을 현실에 옮겨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던 진정한 예술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했던 꿈을 일깨워 그 꿈을 현실로 바꿔 놓은 색채의 마법사 훈데르트바서.





매혹적인 색채와 유기적 형태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훈데르트바서의 회화 작품과

자연과 더불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지표를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그의 건축물 모형은

훈데르트바서 2010 한국전시에서 곧 확인할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 미술관 쿤스트하우스 빈


색채의 마술사 훈데르트바서의 환상적인 작품들은 현재 서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2010년 12월 5일부터 2011년 3월 15일까지 열리는 
훈데르트바서 한국 전시
.

아래 링크를 누르면 전시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www.hundertwasser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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