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북쪽에는 아름다운 길이 참 많다.
많고 많은 서울의 길 중에서도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에 위치한 북촌의 계동길은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6~70년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곳.
오늘은 계동길을 따라 걸으며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타임머신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다.




계동길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북촌 한옥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북촌 문화센터이다.
본래 조선 말기 세도가 '민재무관댁'이었던 이 곳은 '계동마님댁'으로도 잘 알려진 곳.
창경궁 후원의 연경당을 본따 지은 이집은 안채, 바깥채, 앞행랑채, 뒷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던 집인데
최대한 한옥 원형을 보존하며 개보수되어 지금은 북촌을 알리는 문화센터로 거듭나게 되었다.





안채 뒤로 마련된 아담한 정자는 원래 사당이었던 것을 휴식공간으로 제공해
단아한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차 한 잔 나누는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했고
사랑채 등 부속 건물에서는 북촌 한옥 마을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북촌 팔경의 포인트와 북촌 가이드북, 북촌의 한옥에 대한 이해를 돕는 안내서도 구할 수 있으니
북촌 한옥마을을 돌아보기에 앞서 북촌문화센터를 먼저 들리는 것은 필수!





문화센터 바로 옆에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본 듯한 빨간 벽돌집의 병원이 자리잡고 있다.
80세의 할아버지 의사가 최근까지 진료를 한 병원인데 이제는 병원이 팔렸다는 후문이다.
그동안 이 병원을 다녀간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수많은 아이들의 추억을 간직한 병원 건물이 헐리지나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관련 포스트 :  타임머신여행에서 만난 북촌 최소아과





계동길에 들어서면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느껴지는 한옥들과 시골 읍내에서나 본 듯한 건물들이 양쪽으로 펼쳐진다.
마치 6~7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요즘 동네에서 찾아보기 힘드는 철물, 건재 만물상이 입구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플라스틱비, 보드라운비....같은 각양각색의 빗자루로부터 먼지털이, 대걸레, 석유 펌프, 호스, 변기솔, 방충망......등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잡동사니들이 다 모여있으니 주민들은 멀리가지 않아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다 구할 수 있으리라.





바로 옆집에는 참기름집이 아직도 성업 중이다. 미숫가루, 쌀방아, 고추방아, 참기름, 들기름.....
이곳에서 수작업으로 짜서 파는 참기름은 정말로 고소한 내음이 진동하는 <참>기름일 것 같다. 

 




오래된 문구점에는 아직도 아폴로 같은 불량식품을 팔며 옆 골목에는 추억의 뽑기 놀이가 아이들을 유혹한다. 
학교앞 문구점이나 동네 가게 앞에 앉아 뽑기놀이를 하던 시절은 누구에게나 아련하게 남아 있는 빛바랜 추억이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에 밀려 동네 서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은 요즈음이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학교 앞 서점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당 서점이라고 손글씨로 흘려 쓴 간판과 공테프를 판다는 알림글들이 이 서점의 연륜을 말해 준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헤어스타일을 책임지는 믿음미용실.
뽀글파마를 하고 있는 동네 아주머니와 미용사는 계동길의 새로운 뉴스 리포터이다.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데 신기할 정도인 양장 양복점. 예전에는 동네 멋쟁이들이 이곳에서 양복이며 투피스를 맞추어 입었겠지?
 




특이한 이름을 가져 눈길을 끄는 왕짱구식당은 25년 이상 전통을 자랑하는 가정식 백반집이다.
된장 우거짓국 맛이 일품이라는 이곳은 어설픈 외관과는 달리 유명 연예인들도 종종 찾아오는 유명한 맛집.

 

 




대형사우나와 찜질방에 대세인 가운데서도 영업을 하고 있는 중앙탕.
모두가 대형 사우나로 발길을 돌릴 것 같은 요즈음에도 이곳에 와서 몸을 담궈야 목욕한 것 같다는 주민들이 의외로 많다나......




중앙탕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꽤 있다는데 이날도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계동길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럼 계동길에는 모두가 시골 읍내 필이 나는 이런 집들만 있나? 생각하시겠지만
군데군데 새롭게 리모델링한 분위기 있는 갤러리나 카페도 많이 보인다.





병풍 모양의 쇼윈도우와 기왓장으로 꾸민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런 이쁜 공방도 보이고......




 
지붕은 비가 새어 천막으로 덮었지만 노란 벽이 너무나 눈부신 이런 소박한 작업실도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다.





저절로 커피한잔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이런 카페도 보이고
 




카페도 갤러리도 많지만 계동길의 자랑은 뭐니 뭐니 해도 여기저기 눈에 뜨이는 한옥들이다.





살림집으로만 쓰이는 한옥들도 물론 많지만 이렇게 카페로 개조된 한옥도 보이고





북촌의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다.





특히 130년 된 한옥을 인간문화재 정영진옹이 세심하게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락고재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정자, 연못, 대청마루 등을 세심하게 되살렸고
호텔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숙박시설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의 잊지못할 추억을 남겨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 락고재는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미국에서 온 다니엘 헤니가 숙박한 게스트하우스로 촬영한 곳이라 더욱 인기가 높다.






그리고 골목 안에는 이렇게 무형문화재 소목장 심용식씨가 지은 청원산방이 자리잡고 있다.
국내 유명 사찰과 한옥의 창호를 제작한 심용식씨가 제작한 전통 창호와 그 제작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청원산방과 소목장 심용식씨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자세히 포스팅하기로 하고......





계동길의 끝에는 이렇게 중앙중,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교문 옆 가게에 웬 연예인 브로마이드들이 즐비하나....?생각이 들겠지만
바로 이곳이 한류의 출발점과도 같은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 장소라는걸 알면 누구나 "아하! 그곳!"하게 된다.





드라마 속에서 준상(배용준)과 유진(최지우)가 다니던 학교는 춘천이지만 로케이션 장소는 바로 이곳 중앙고이다.
교문에 들어서니 처음 와 본 학교인데도 남의 학교 같지 않고 친근감이 밀려온다.
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본 후유증인가?






1908년에 개교해서 100년이 훌쩍 넘은 역사를 가진 중앙고는 교정이 마치 대학 캠퍼스 같은 느낌이다.
석조로 된 이 웅장한 건물은 1937년에지은 것이라고.......

우리나라의 중심은 서울이고 서울의 중심은 종로, 종로의 중심은 계동이지만
이곳은 도심이라기보다는 도리어 시골 동네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만나면 먼저 반갑게 인사하니 주민들끼리 얼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골목길을 오다가다 보면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개 되니 금방 친근해지고 정이 들게 되는 곳이 계동의 골목길인 것이다.





서울의 한복판이면서도 아직도 넉넉한 시골 인심이 남아 있는 동네 계동길.
마지막 남은 
보석같은 이 골목길이 재개발이나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래오래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본다.




Copyright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 있는 유원지 남이섬을 처음 찾은 건 10년전 쯤.....
호기심을 안고 강을 건너간 남이섬은 자연 경관 자체는 너무나 아름다웠으나
무질서하게 들어선 위락 시설들과 정돈되지 않은 전체의 느낌은
마치 한물간 80년대 유원지 같은 느낌을 주어 아쉬운 맘을 안고 돌아서게 한 곳이었다. 
 
그 후에 드라마 겨울 연가가 이곳에서 촬영됨으로 인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전체적으로 리모델링하여 새롭게 태어난 남이섬은 오랜전 섬의 모습과는 많이도 달라져 있었고
겨울이 돌아오면 항상 다시 찾고 싶은 곳 중에 하나가 되었다. 

 남이섬은 2006년에 동화 속의 나라 '나미나라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하였다고 한다.^^

나미나라의 일일 국민이 되는 '하루 VISA(입장권)'는 하절기 8000원,동절기 6000원인데 왕복 도선 요금이 포함되어 있다. 
1년 단기 여권은 15000원인데 1년 내내 입장할 수 있다. 

 1일 나미나라 국민이 되는 입국 심사대는 그저 입장권을 보여주는 것으로 족하다. 

나미나라에 입국하는 국민들은 모두 다 들뜬 표정으로 입국장(!)을 지난다... 

  나미 나라 공화국 정문을 통과하면 나미나라로 인도할 배에 올라탈 수 있다. 

선착장을 출발한 배는 승객들을 금방 나미나라로 인도하고 배에서 내리는 순간 모두가 나미나라 공화국의 일일 국민이 된다. 

왕자님을 기다리는 인어 공주가 추위에도 불구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새로운 국민들을 환영한다. 

 북한강 안에 떠 있는 반달같은 남이섬. 1939년 이전까지는 홍수때만 생기는 섬이었으나 청평댐의 완공으로 수위가 높아지면서 완전한 섬이 되었다.  

 섬의 둘레는 약 5 킬로미터,면적은 약 46만 평방미터이니 여의도의 1/5 쯤 된다. 

 1965년 수재 민병도 선생이 이 섬을 구입하여 메타세콰이어, 자작나무, 잣나무를 비롯한 수많은 나무들을 심고 

중앙부에는 잔디밭과 오솔길을 조성하여 아름다운 전원의 풍치를 느낄 수 있는 섬으로 가꾸게 된다. 

 강원도 춘천 남이도..... 남이섬은 행정 구역상 강원도 춘천시이나 들어가는 입구는 경기도 가평군에 속해 있다. 

 명색이 공화국인지라 행정관리청도 있다....^^  

 남이섬 이름의 유래는 섬에 있는 남이장군묘에서 온 것이다. 

 이 섬에 남이 장군이 묻혔다는 전설이 담긴 돌무덤이 있었고 그 곳의 돌을 함부로 가져갈 경우 집안에 우환이 생겼다고 한다.  

 이 섬을 개발한 민병도 선생이 이 돌무덤 자리에 봉분을 만들고 추모비를 세웠으며 노산 이은상 선생이 추모글을 썼다. 

 세종 23년 1441년에 출생한 '남이'는 공주의 아들로 태어나(어머니가 태종의 딸) 명문가와 혼인했으며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 급제한 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25세에 일약 병조판서가 된 희대의 풍운아이다.


 남이 장군의 결혼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남이가 어릴 때에 큰 길에 나가 놀고 있는데 하인이 보자기에 무엇을 싸서
지고 가는데 보니 그 위에 귀신 하나가 올라 앉아 있었다 .
남이가 따라가 보니 하인은 좌의정 권람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곧이어 집안에 곡성이 나기에 물어보니 권대감의 딸이 방금 죽었다는 것이라
남이는 권대감의 집에 들어가서 자기가 죽은 딸을 살리겠다고 했다.
별당에 들어 가서 보니 처녀의 가슴에 아까 본 귀신이 앉아 있는데
남이를 보자 곧 도망을 가버리고 죽었던 처녀가 숨을 쉬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이가 방을 나오면 처녀는 또 숨을 멈추고 남이가 들어가면 다시 살아나곤 했다.
그는 자신이 귀신을 본 이야기를 권람에게 하고 나쁜 귀신을 완전히 쫒아버린 후
죽었던 처녀를 완전히 살려내었으므로 권람은 딸의 은인 남이를 사위로 삼았다.

학교 다닐 때 연세 많은 국어 선생님께서 이 이야기를 너무나 실감나게 해 주셔서
아이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재미있게 들었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린 나이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돌아오던 남이 장군은
유명한 북정시(北征詩)를 읊어 그의 기개와 포부를 보여주었다.
 

                                                              白頭山石 磨刀盡 (백두산석 마도진)        백두산 돌은 칼로 갈아 다하고   
                                                              豆滿江水 飮馬無 (두만강수 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 먹여 없애네.
                                                              男兒二十 未平國 (남아이십 미평국)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치 못한다면 
                                                              後世誰稱 大丈夫 (후세수칭 대장부)        훗날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

 
선생님께서 눈을 지그시 감고 이 시를 외우면서 해 주셨던 이야기에서
남이 장군이 그 얼마나 멋지게 생각이 되었던지....
이 시를 연습장에 수십번 써가며 외웠던 기억이 난다.
마치 남이장군의 기백을 이어 받은 여장부가 되어 이 나라를 평정이라도 할 듯이....^^

 그런데 이 북정시가 문제였다.

서자로 태어나 호시탐탐 권력을 탐하던 간신 유자광은 예종 즉위 직후
男兒 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치 못한다면 ) 이라는 구절을
男兒 二十未得國 (남아이십미득국 -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얻지 못한다면 ) 으로 고치고      
 남이가 역모를 꾀한다고 모함하여 남이는 모진 고문끝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니 그의 나이 스물 여섯이었다.  

 남이장군의 묘 앞에 서니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떠올랐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물론 희대의 간신 유자광의 시기와 권력욕이 문제였지만
남이의 지나친 총명과 기개 역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었으니
'지나치지 않고 적당하게 겸손할 줄 아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동화의 나라 남이섬에 올랐으니 남이장군의 무거운 역사는 잠시 뒤로 할 일이다.

즐겁고 신나는 일만이 이 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겨울 연가의 준상과  유진같이 모닥불 앞에 다정히 선 연인들처럼
 커피 한잔으로 몸을 따스하게 한 후 '나미나라'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Copyright 2010.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