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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에 가보자는 필자의 말에 함께 한 지인은 "함안이 어디에 있는데?"라고 반문한다.
함안이 경남 어디쯤 있겠지라고 생각이 되긴 하지만 막상 위치를 말하기는 쉽지가 않다.
어느 도시를 말하면 즉시 떠올려지는 선명한 이미지도 함안에서는 찾기가 힘든다.
사람들을 몰려들게 만드는 화려한 비경도, 떠들석하게 하는 볼거리도 그다지 없는 함안.
하지만 북적거리는 도시를 떠나 차분한 여행을 떠나기 원하는 사람에겐 색다른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함안은 '정자의 고향'이라고......
낙동강과 남강이 감아 도는 함안 땅에는 강을 굽어보는 명당자리에 세워진 정자가 여럿이다.
무진정, 반구정, 합강정, 악양루......
정자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무더위를 이겨내던 옛사람들의 자취를 찾아 함안으로 떠난다..
남해고속도로 함안 IC를 빠져나와 우회전한 후 함안대로를 따라 달리니 길이 정말 한적하기도 하다.
앞에서 느릿느릿 가는 차가 있어도 경적 울리는 이 없이 모두 조용하게 앞사람의 뒤를 따라간다.
시가지를 지나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길이 끝나니 오른쪽에 무성한 숲이 보인다. 무진정이다.
무진정에 이르니 한아름 왕버드나무와 느티나무 거목들이 늘어선 아담한 연못이 먼저 눈에 뜨인다.
무진정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연못 이름은 충노담.
연못 전체를 뒤덮은 개구리밥으로 인해 자그마한 연못 충노담은 연둣빛 푸르름이 가득하다.
연둣빛 카페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와 누각, 멀리 보이는 무진정이 만들어내는 경치가 마치 한폭의 그림같다.
충노담 바로 옆에는 자그마한 누각이 하나 있다.
이 누각은 정유왜란 때 왜군들이 조상의 묘를 파헤치자 무진정에서 4배 절을 하고 자결한 조례 선생의 6세손 조준남과
정묘호란으로 전사한 그 아들 위 계선공, 두 부자를 기리는 부자쌍절각이란다.
이들의 충효를 가슴에 담고 싶었던 것일까? 누각 문 앞에는 막걸리 두병이 얌전하게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건너편 높은 바위 위에 숨바꼭질 하듯 자리잡은 무진정으로 가기 위해선 충노담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서 가야 한다.
충노담에는 인공 섬이 셋 있는데 첫번째 섬 위에 놓인 누각은 무진정으로 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영송루이다.
하얀 다리와 누각은 최근에 세운 것인지 모두 시멘트로 건설되었다. 좀 더 신경을 써서 복원했으면 좋으련만......
영송루를 지나 무진정을 잇는 작은 섬 위에는 커다란 거목이 문지기처럼 다리 가운데를 기키고 있다.
문지기 나무를 통과해 짧지만 운치있는 숲길을 지나면 무진정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돌계단이 나온다.
가파른 돌계단을 숨을 몰아쉬고 오르면 무진정의 정문이 나타난다.
이름은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그 이름이 같다.
정자가 들어앉은 자리는 그다지 넓지 않고 고요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무진정(無盡亭)은 조선시대 여러 고을의 부사와 목사를 역임하고 내직으로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낸 조삼 선생이
후진 양성을 하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1542년에 지은 정자인데 자신의 호 '무진(無盡)'를 따서 무진정이라 이름했다.
없을 무(無), 다할 진(盡)을 사용하여 '다함이 없는 곳'이란 뜻을 지닌 무진정에서
다함이 없는 여생을 보내고 후진을 양성하는 조삼선생의 마음이 느껴진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인데
옆면의 가운데 칸은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은 아무런 조각이나 장식없이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이라 깔끔하고 세련미가 느껴진다.
정자는 모두 누마루로 되어서 창을 접어 올리면 사방으로 활개 치듯 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밖에서 본 무진정도 아름답지만 정자 안에서 바깥을 보는 경치는 너무나 아름답다.
들문을 모두 올려 놓으니 문틀 사이로 보이는 경치가 한폭의 그림이고 바람은 그대로 사통팔달이다.
사방에서 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무더위에 흘린 땀방울이 금방 식고 등줄기에는 시원한 기운마져 느껴진다.
우리 선조들은 생활에 꼭 필요한 도구 외에 방안에 큰 장식을 하지 않았다.
방문만 열면 이렇게 바깥의 자연을 방 안으로 들일 수 있었기에 실내에 장식을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정자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 무진정의 뒷편 언덕 아래로 큰 기와집이 보이길래 내려가 보았다.
함안 조씨 문중의 재실인 괴산재라고 하는데 이곳 또한 참으로 느낌이 고요하다.
무진정에서 내려와 괴산재를 돌아본 후 충노담 연못을 천천히 한바퀴 돌아보았다.
충노담에서는 해마다 4월 초파일에 ‘함안낙화놀이’가 열리는데 호수 위로 떨어지는 화려한 꽃불이 장관이라고 한다.
올해 낙화놀이는 세월호 사고로 연기돼 9월쯤 열린다고 되니 가을에 정자의 고향 함안으로 다시 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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