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 기분좋은 날, 진주에 다녀왔습니다.

진주를 대표하는 유적지는 뭐니뭐니 해도 역시 진주성과 촉석루겠지요.

 

 

 

 

촉석루가 있는 진주성은 진주버스터미널 뒷쪽 남강을 따라 남강다리가 보이는 곳으로 가면 되는데 입장료는 2,000원입니다.

 


 

 

진주성의 중심인 촉석루로 먼저 가봅니다. 촉석루는 누구나 신을 벗고 올라가서 쉴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어요. 

고려말에 진주목사 김중광이 진주성을 고쳐 쌓으면서 동서남북에 4개의 누대를 만들었는데

그중의 남쪽에 세운 정자 남장대가 오늘날의 촉석루라고 합니다.

 

 

 

 

평양 부벽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조선의 3대 누각으로 유명한 

촉석루(矗石樓)는 '벼랑 위에 높이 솟은 정자'라는 듯이라고 하네요.

곧을 직(直)자가 세개나 겹쳐진 촉(矗)자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촉석루 옆에는 의기사라는 조그만 사당이 있습니다. 왜장을 껴안고 남강물에 투신한 논개를 기리는 사당이네요.

 

 

 

 

진주성 성벽 위에서 남강과 진주 시내를 내려다 보는 풍경도 참 시원하네요.

 

 

 

 

촉석루 누각 바로 아래 성문을 통해 남강으로 내려가 봅니다.

 

 

 

 

촉석루 아래 이렇게 커다란 암반이 펼쳐지네요. 암반 아래 남강이 흐르는 시원한 풍경입니다.

 

 

 

암반의 끝부분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네요. 바로 의기 논개가 왜장을 안고 투신한 의암(義巖)입니다.

논개를 일러 의기(義妓)라고 부르지만 사실 논개는 기생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김풍헌의 민며느리가 되었지만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다 붙들려

장수 현감 최경회의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무죄석방되고 현감의 후실이 되었다고 하네요.

임진왜란이 난 이듬해 최경회가 경상우도병사로 승진되어 진주로 부임할 때 논개도 따라 갔는데

그해에 진주성이 왜군에세 함락되자 최경회는 김천일 고중우 장군과 함께 남강에 투신하였습니다.

진주성 함락 이후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승전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자 논개는 기녀로 가장하여

술에 만취한 왜장(게야무라 후미스케)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었는데 그때 논개의 나이가 19세였다고 합니다.

 

 

 

 

논개의 충절을 기리는 의암으로 위험천만 건너가서 셀카삼매경에 빠진 가족들이 있네요.

추억을 담는 것도 좋지만 발 아래 시퍼린 강물이 무섭지도 않나 봅니다.


 

 

 

진주성과 의암을 한바퀴 돌아본 후 다시 성문을 나와 진주교를 건너 남강 건너편으로 가보았습니다.

강변 공원에서 바라 본 진주성과 촉석루의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보입니다.

 

 

 

 

진주성 대첩의 승리에 이은 진주성 함락이라는 영욕을 함께 안고 있는 진주성과 촉석루, 그리고 의암.

남강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네요.


Copyright 2015. 루비™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원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진이나 글을 퍼가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반됩니다.



 

Posted by 루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