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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법궁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의 원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여기 1925년의 광화문앞을 찍은 한장의 사진에서 그 당시 광화문 앞 풍경을 짐작할 수 있다.
민족의 수난기를 겪으며 일제로 인해 옮겨졌다가 박통 때 헐고 새로 지었다를 반복한 광화문은 2007년부터 다시 완전 해체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라
온전한 경복궁의 모습은 광화문 공사가 다 끝나야 제대로 볼 수 있을 듯 하다.
광화문이 보수 중이라 현재 경복궁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는 얼굴 역할을 하는 문은 흥례문이다.
흥례문은 광화문 다음으로, 아니 광화문 못잖게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문인데 사람들은 이 문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흥례문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은 지금의 흥례문은 만든 지 15년밖에 안 된 새 문이기 때문이다.
조선을 집어삼킨 일제가 경복궁을 마구잡이로 난도질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수난을 당했던 문이 바로 흥례문이다.
일제는 1914년 경복궁에서 흥례문을 헐어 없애버렸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다.
광화문은 정문이다 보니 옆으로 옮겨버리긴 했어도 놔뒀지만 흥례문은 가차 없이 경복궁에서 도려내버린 것인데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조선총독부 건물이던 중앙청을 헐어버리면서 흥례문은 제 자리를 찾게 되었다.
15년 밖에 안 된 흥례문은 건물에 밴 세월의 무게는 덜해도 그 아름다움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앞에서 봐도 멋있지만 옆에서 보면 더욱 매력적인 건물이다.
흥례문을 지나들어가면 내문(內門)인 눈 앞에 근정문이 나타난다.
왼쪽에 보이는 유화문은 신료들이 궐내 각사와 빈청을 드나들던 문이고 금천을 가로지른 영제교 건너편에 근정문이 자리잡고 있다.
근정문에서 의례를 거행할 때는 영제교의 북쪽으로 정2품 이상이 서고, 남쪽으로는 정3품 이하가 자리를 잡았다고....
근정문은 왕과 문무백관이 조참(朝參)의식을 행하거나 즉위식이 거행된 곳인데 단종은 근정문에서 즉위를 한 첫 번째 왕이다.
왕은 근정문의 가운데 칸에 어좌를 설치하고 남향으로 앉고, 신하들은 흥례문 일곽에 도열하여 임금에게 예를 올렸다.
즉, 근정문은 단지 드나드는 출입문의 역할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곳인 것이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이니 왕이 신하들의 조하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가운데는 왕도(王道)가 있고 양 옆에는 품계석이 도열해 있는데 동쪽에는 문관, 서쪽에는 무관의 자리이다.
'근정(勤政)'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이 지은 이름이다.
근정전은 2단의 높은 월대(月臺)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전면에는 중요 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다.
필자도 임금님이 서셨던 월대에 올라 임금님의 시선으로 마당을 내려다 보았다.
월대 위에 놓인 청동제 정(鼎)에 시선이 간다. 이 무쇠 솥은 실제의 용도보다 왕권의 상징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한다.
전각의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니 어좌가 보이고 어좌의 배경인 '일월오봉병'이 뒤에 펼쳐져 있다.
일월오봉병은 하늘에 걸려 있는 붉은 해와 흰 달,
다섯 봉우리의 산, 폭포, 소나무, 그리고 파도와 출렁이는 물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그러니까 '일월오봉병'은 임금의 권세를 상징하는 그림인데
조선시대 임금님의 앉은 보좌 뒤에는 빠짐없이 이 일월오봉병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근정전의 너른 바닥에는 방전(方塼)이 깔려 있고 내부에는 궁중 조회 의식에 따른 도승지,도청관들의 자리가 배치되어 있다.
건물 외부는 2층으로 되어 있으나 건물 내부는 아래,위층 구분 없이 트여 있어 넓고 높다.
실내에는 청나라에서 선물 받았다는 칠보대향로가 양쪽에 놓여 있는데
근정전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지 않고 좀 생뚱맞은 느낌을 준다.
근정전은 새로 보수한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단청의 색깔이 산뜻하고 화려하다.
근정전 정면 문에서는 잘 안 보이는 천정 용문양이 동쪽 문에서는 보인다는
문화재 해설가 분의 말씀을 듣고 동쪽으로 돌아가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왕권을 상징하는 두 마리의 칠조 황룡이 천정에 돋을새김되어 있었는데 발톱이 일곱인 용이라서 칠조룡이라고 한다고....
동쪽 문을 열고 전각 안을 들여다 본 모습이다.
필자는 우리 고택의 창호문을 너무 좋아 하는데
특히 무쇠를 엿가락 주무르듯 땋아놓은 문고리는 하얀 창호와 어울려 더욱 빛을 발한다.
손가락이 근질거리는 사람은 어디든지 있는 법인지 궁궐 창호문에 구멍을 내어 놓은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창호의 구멍난 부분으로 안을 한번 훔쳐보고 전각 뒤로 돌아가 본다.
전각 뒤의 그늘에는 아직 눈이 채 녹지도 않았는데.....
조선 시대에 태어 났으면 감히 밟아 보지도 못할 근정전 전각이며 마당을 다 헤집고 돌아 보니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
근정전 월대를 내려서서 왕과 신하들이 정치를 논하던 편전인 사정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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