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산책..........................'에 해당되는 글 343건

  1. 2009.07.05 마지막 황제 촬영지, 금지된 도시 자금성 20
  2. 2009.07.03 북경의 중심 천안문 광장 16
  3. 2009.07.01 무더운 중국 거리의 웃통 벗은 남자들 42
  4. 2009.06.21 공산국가 중국에서 본 고색 창연한 교회 8
  5. 2009.06.16 천진의 인사동 고문화 거리 22
  6. 2009.06.12 중국 천진 복합 상가의 황당한 화장실 11
  7. 2009.06.12 회색 도시 천진의 거리 풍경 11
  8. 2009.06.10 미국판 민속촌, 캘리포니아 칼리코 은광촌 32
  9. 2009.06.03 라스베가스 여행 명소 한눈에 보기 33
  10. 2009.05.28 만물상의 잔치 브라이스 캐니언 34
  11. 2009.05.27 웅장함에 압도된 자이언 캐니언(Zion National Park) 18
  12. 2009.05.23 하늘에서 본 그랜드 캐니언 32
  13. 2009.05.22 라스베가스를 벤치마킹한 제2의 도박도시 라플린(Laughlin) 12
  14. 2009.05.22 헐리우드 스타가 되고 싶으세요? 8
  15. 2009.05.21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선 꿈이 현실이 된다. 32
  16. 2009.05.20 목적이 분명한 새들백 교회 12
  17. 2009.05.16 미국인이 살고 싶어하는 웰빙 도시, LA 패서디나 22
  18. 2009.05.13 처음 가 본 LA 공항과 고속도로 풍경 28
  19. 2009.05.13 초라하기 짝이 없는 다이애나 기념 거리 20
  20. 2009.05.12 남의 문화 유산으로 가득 찬 런던 대영박물관 18
  21. 2009.05.10 런던 여행 명소 Best 한눈에 보기 26
  22. 2009.05.09 영국 사람은 인내의 달인...? 15
  23. 2009.05.06 유로스타로 건너간 도버해협 20
  24. 2009.05.05 잉어 깃발(고이노보리)이 높이 휘날리는 일본 어린이날 11
  25. 2009.05.02 루브르 박물관의 숨쉬는 명화들 14
  26. 2009.05.01 베르사유 궁전엔 화장실이 없었다? 33
  27. 2009.04.29 몽마르트르에서 아멜리에를 만나다. 18
  28. 2009.04.28 세느강 유람선에서 파리의 밤을.... 18
  29. 2009.04.28 에펠탑에서 내려다 본 세느강 풍경 40
  30. 2009.04.25 살아있는 미술관, 파리 18


혹시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

청나라 12대 황제로 즉위한 '푸이(溥儀)'의 <황제에서 시민으로 From Emperor to Citizen>이라는 영문 자서전에 바탕을 둔 이 영화는 중국 북경(베이징)의 자금성에서 로케되어 영화 사상 처음으로 서유럽적인 감각에서 그린 중국인의 드라마이다.

 3살의 어린 나이에 서태후의 지명으로 광서제의 뒤를 이어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던 '푸이'는 6살이었던 1912년에 신해혁명으로 인해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탄생하는 와중에 황제의 칭호와 궁전, 사유재산만 인정받은 채 퇴위당하게 된다.

나중에는 일본의 속임에 빠져 만주국을 세웠지만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전범으로 공산 정권에 의하여 수용소에 억류되어 십오년의 재교육을 받고는 식물원 정원사가 되어 1959년에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대제국의 황제가 역사의 회오리에 휘말려 말년에는 식물원의 정원사로 인생을 마치게 되는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이 영화는 자금성 경내의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푸이가 황제에서 시민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전개된다.

이탈리아 감독 베르나르도 베로톨루치에 의하여 엑스트라만도 19,000명, 이탈리아,중국,영국인 스텝이 총 망라된 이 영화는 1987년 제작되어 제 60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하여 9개 부문을 휩쓸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서방에는 Forbidden City라고 알려진 자금성(紫禁城,쯔진청)은 중국에서는 고궁(故宮,구궁)이라고 하는데 높이 11m, 사방 4㎞ 길이의 담으로 둘러싸인 이 성은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옛 건축물로 동서 길이 753m, 남북 너비 961m, 면적 72만 이며, 궁궐 내에는 크고 작은 9,900여개의 방이 있다.

이 자금성은 명나라 때인 1406~20년(永樂 4~18)에 건축되어 570년이란 긴 세월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 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유물이 소장,전시되고 있으며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천안문 앞의 다리를 지나서 문을 들어가면 보이는 것이 고궁의 정문인 오문(午門)이다.

오문은 보통 황제가 칙서를 발표하거나 원정 명령을 내리는 곳이며,
대신들의 벌을 다스리는 곳이기도 하다.

중간 문은 황제의 전용문이고 왼쪽은 황족문, 오른쪽 문은 문무관원 출입문이다.
 

 

 

성문의 벽은 엄청나게 높아 바로 아래서 쳐다보면 목이 아플 지경인데 이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가 궁궐 안으로 입장하게 된다.  오문을 들어서면 금수하가 허리띠를 두르듯 서쪽에서 동쪽으로 궁궐을 감싸고 흐르며 중앙에는 다섯개의 대리석 다리가 놓여져 있다. 

 

 

자금성은 기능에 따라 외조(朝:궁정의 바깥채)와 내정(內廷)으로 나뉘는데 외조의 주요건물은 태화전(太和殿,타이허뎬)·중화전(中和殿,중허뎬)·보화전(保和殿,뱌오허뎬)으로 황제가 큰 제전을 거행하거나 신하를 만나고, 정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외조의 정문은 금수하를 건너면 나타나는 태화문이다. 

 

 

 

다리의 난간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이 새겨져있고 금수하(金水河)에는 다섯개의 다리가 놓여있다.  


 

3대전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태화전을 꼽을 수 있는데 한백옥(漢白玉)에 조각하여 만든 높이 8m의 석대 위에 세워져 있다. 너비 64m, 길이 37m, 높이 27m로, 중국에 현존하는 것 중 최대의 목조건축물이다. '마지막 황제'에서 푸이가 즉위식을 하던 곳으로 태화전 앞에 서니 넓은 마당에 엎드린 수많은 대신들이 구령 소리에 맞춰 어린 푸이에게 연거푸 절을 하던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태화전의 부속 건물의 모습들인데 앞의 조각상은 권력과 천하통일을 상징하는 구리로 만든 수사자이다. 태화전의 기와들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으로 뒤덮여 있다. 

 

 
태화전의 내부에는 '푸이'가 마지막으로 앉았던 옥좌가 놓여있다. 

 

 

자금성의 궁전들은 나무가 별로 없이 썰렁하고 삭막한데 이는 자객들이 나무를 타고 와서 황제를 해칠까 두려워함이었다고 하며
또한 출입자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닥은 모두 7미터 이상을 파서 벽돌처럼 다듬은 돌을 15겹을 깔았는데 그 것 또한 땅을 파고 들어와 황제를 해칠까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자금성에는 9,900 개의 방이 있는데 한 왕자가 태어나서 매일 방을 바꾸어가며 잠을 잔다고 해도 한 바퀴 돌아 태어난 방에 이르면 27세가 되고, 두 바퀴를 돌고 나면 54세로 죽음을 준비할 때에 이른다고 하니 그 규모의 방대함이 가히 짐작할 만 할 것이다.   

 

 

전각으로 오르는 계단의 중앙에 장식된 엄청나게 큰 한백옥(漢白玉)에는 어김없이 황제의 상징인 용이 조각되어 있다. 이 옥돌은 이은 것이 아니고 하나의 돌인데 산지로부터 엄청나게 먼 자금성까지 운반해 온 것이라고 한다. 수송 수단이 발달되지 못한 옛날에 겨울에 물을 뿌려 땅을 얼려 미끄럽게 만들어서 큰 옥돌을 밀어서 운반했다고 전해진다. 

 

 


중화전은 속칭 <가마>라고도 하는데 황제가 태화전에 나가기 전에 이 대전에서 휴식하고 내각 대신들의 예의를 받은후 8인용 가마를 타고 태화전으로 나간다. 

 

 

보화전은 황제가 과거 시험을 보고 시험을 추리하고 서예를 쓰고 황제의 인감도장을 보관하던 대전이다.

 

 

역시 옥돌 한 개로 용을 조각해서 만든 용무늬. 엄청나게 거대하다. 

 



역시 전각 앞에는 권력의 상징 사자상이 빠지지 않는다.

 

 


내정(內庭)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차례로 건청궁, 교태전,곤녕전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구역은 황제가 일상의 정무를 집행하고 거주하던 곳, 그리고 황후,비,황실 가족이 생활하던 곳이다. 그 중에서도 건청궁은 내정의 가장 중심되는 건물로써 황제의 침실인 동시에 일상정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건청궁 내부 중앙에는 보좌가 있고 그 위에 '정대광명'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황후의 침실로 들어가는 문을 보니 내부가 매우 궁금하였지만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운 점이었다.  

 

 

내정 뒤에는 어화원이란 정원이 있는데 어화원은 제한된 공간 안에 이상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중국 전통 정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자금성 안에서 유일하게 나무가 심겨져 있는 공간이다.

그 중 도수산은 인공으로 돌을 쌓아 만든 산인데
서태후가 궐밖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던 곳으로 유명하며

9월 9일에는 왕과 왕비가 올라 하늘에 뜬 달을 보며 즐기던 곳이라고 한다.

자연의 미를 그대로 보여주는 창덕궁 후원에 비해
매우 인공적인 느낌이 드는 중국식의 정원이다.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서 자금성을 돌아보면 신무문으로 나오게 된다.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에는 현재의 자금성의 명칭인 '고궁박물관'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밖에서 본 자금성은 높이가 11m인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장
벽의 사방 둘레는 인공으로 52m의 하천을 판 호성하(護城河)가 둘러져 있어서 외부로 부터 궁궐을 격리시켜 보호하였다고 한다.  

 

 

신무문을 나서면 바로 맞은 편에 황실의 공원인 경산 공원(景山公園)이 있다.

원래 북경(베이징)은 평지인지라 
풍수지리학적으로 나쁜 기운(모래 바람)을 막기 위해 자금성 북쪽으로 인공산을 쌓았다.

앞에 보이는 산이 경산공원을 이루는 해발 108m의 나지막한 산인데
궁궐 주위의 해자를 만들 때 파낸 흙으로 쌓은 산이라고 한다. 

 



경산공원의 꼭대기 만춘정에서 자금성의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북경이란 도시가 맑은 날에도 시야가 좋지 못하니 경산 공원에 오르더라도 자금성의 전경을 또렷이 볼 수는 없었지만

흐릿한 연무 속에 보이는 자금성이 모습은 마치
운해 속에 떠 있는 천궁같았다. 

 

 
570년 동안 명,청조의 황제 24명이 기거하던 자금성.
고궁 박물관이 되어 버린 자금성 안에는 이제 마지막 황제 푸이도 완용 황후도 문연 황비도 찾을 수 없었다.

황제나 황후의 옷을 입고 기념 사진을 찍고 가라고 손짓하는 중국 아가씨의 순박한 미소만 남아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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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을 생각하면 대부분이 사람들이 먼저 천안문(天安門)광장과 자금성을 떠올리지 않을까..

북경의 상징과도 같은 천안문 광장에 서니 14억 인구가 실감이 날 만큼 사람의 물결이 대단하다.
.
수많은 관광객들과 행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싸구려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 

 사람들이 북적대는 길을 가로질러 저멀리 보니 천안문 광장이 조그맣게 보인다.

광장이 넓기도 하지만 희뿌연 시야로 인해 멀리서 천안문을 선명하게 보기는 힘들기만 하다.

원래 천안문 앞에는 원래 주요 관청들이 좁고 긴 광장을 마주 보며 배치되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헐려나가고 광장은 더 넓혀져
그 길이가 동서 500m, 남북은 880m에 이르는

세계에서 제일 큰 광장으로
100만명의 군중이 집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엄청난 넓이이다.

우리에게는 1989년 6월에 중국 인민의 민주화 시위를 중국 정부가 무력진압하면서

빚어진 대규모 유혈참사사건인 천안문 사건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천안문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중국국가박물관은 구 중국역사박물관과 중국혁명박물관을 통합한 건물인데 

서쪽에는 인민대회당, 남쪽에는 인민영웅기념비와 모주석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황성(皇城)인 자금성의 정문인 천안문(天安門)은 1417년 명나라 영락제 때에 건립되었는데 

처음엔 승천문(承天門)이라고 불리우다가
청나라 시대에 천안문으로 고쳐불리워졌다.
 

성루의 높이는 33.7m이고 2중 처마가 날아갈 듯 들려져있으며 대들보와 기둥은 단청으로 장식하였다.

천안문의 바로 한가운데는 청조(淸朝)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엄청난 크기의 모택동 주석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천안문 광장에는 신기한 사람도 신기한 행사도 많다.

그 큰 광장이 사람으로 바글거리는 걸 보면 14억의 중국 인구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고

광장에서 연을 날리며 노는 등 광장에서 보이는 풍경들은 너무나 나 한가롭고 여유로운 모습들이라서

여기가 정말 사회주의 국가가 맞나....이런 생각도 들게 한다.

 

천안문 광장에서 천안문 쪽으로 가려면 큰 도로가 가로막고 있으므로

보행자들은 엄청나게 큰 지하도를 지나 천안문으로 입장해서 자금성으로 들어가게 된다. 

 

밤에 다시 지나면서 본 천안문 광장의 야경은 낮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낮의 힘들고 찌푸린 모습도 다 덮어주는 북경의 밤은 동쪽에서 온 이방인을 두팔 벌려 환영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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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에서 지내는 동안 중국인들의 일반적인 생활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친지에게 부탁을 해서 우리 나라 60년대 시영 아파트같은 다세대 주택이 들어서 있는 지역으로 가 보았다. 

 


이면 도로라서 도로에는 차선도 없었고 날이 더워서 그런지 길에는 걸어다니는 사람도 많이 없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다세대 주택들은 좁은 계단을 마주하고 다닥다닥 붙어있고 집 앞에는 교통 수단으로 쓰이는 자전거,삼륜 자전거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중고 가구점을 둘러 보았는데 너무나 놀라운 것은 모든 가구를 그냥 집어던지듯이 쌓아놓고 정돈된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었다.

손님이 가구를 보자고 하면 위에 쌓인 산더미 같은 가구를 다 덜어내고 꺼내주었는데 거의 고물상이라도 표현하면 맞을 듯 했다.

 


바로 앞길에서는 20대 남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웃통을 훌러덩 벗고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다. 

 

 

중고 가구점 앞에는 역시 웃통을 훌러덩 벗은 남자들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중국 남자들은 덥고 습기 많은 여름에 아예 웃통을 벗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상반신은 훌러덩 벗고 아래는 허름한 반바지, 그리고 너덜너덜한 슬리퍼가 일상복.

잘 챙겨 입으면 목이 늘어져 헐렁한 셔츠 정도......

우리는 옷을 반듯하게 챙겨 입는 것이 선조로 부터 내려오는 전통이지만

중국 사람들은 사실 옷차림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다.(물론 젊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지만...)

거기다 북경이나 천진(충칭 같은 남부로 가면 더 하지만)은 여름엔 살인적인 더위이기 때문에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옷을 다 입고 견디기엔 너무 힘든 곳이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은 기온이 40도가 넘으면 학교나 관공서, 모든 업체가 휴무를 하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데

집의 온도계가 40도를 훌쩍 넘는 살인적인 무더위일 때도 방송국에서 발표하는 기온은 언제나 39도를 절대로 넘지 않기 때문에

학교나 관공서,공장들이 더워서 휴무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지나다보면 길거리 벤치에 웃통을 벗은 중년 남자들이 부채를 설렁설렁 부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특히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늘어져 몇 겹이나 주름이 진 배를 내어놓고 앉아 있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대하면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다.

차에 가구를 실어 주던 가구점 종업원 총각도 웃통은 아예 입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만 되어도 벗고 다니는걸 너그러이 용서해 줄 수 있다....^^ 

 

 

차를 수리하려는 친지와 함께 들렸던 카센터의 풍경이다.

아침나절에는 기온이 크게 높지 않아 옷도 얌전하게 잘 챙겨 입었다.

앞에서 타이어를 손질하는 남자들 뒷편에 남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며 무슨 작업을 하고 있길래 자세히 보니 모두 마주 앉아 음식에 쓸 파를 다듬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아침은 대부분 밖에서 사먹고 저녁 식사는 대부분 남자들이 준비한다.

친지의 아파트에서 지내는 동안 저녁 퇴근시에 장을 봐서 자전거 뒤에 싣고 오는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아파트 단지의 뒷 마당에서 보면 집집마다 베란다에 있는 주방에서

윗도리를 훌렁 벗은 남자들이 불이 붙은 프라이팬을 휙휙 휘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국 아파트에는 주방에 가스렌지가 없고 대부분 베란다에 붙어있다.

집 안이 습하고 덥기도 하지만 조리 과정에 기름기있는 음식이나 연기나는 음식을 많이 조리하기 때문에

베란다에서 창을 열어놓고 조리를 하는데  오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여름엔 북쪽 베란다에도 햇빛이 들어오니

웃통을 훌러덩 벗고 조리를 하지 않으면 더워서 금방 옷이 다 젖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럼 여자는 무얼 할까.....?

예전의 여자들은 전족에 신을 꽃신에 수를 놓는 일을 했지만 구두를 주로 신는 요즈음은 신발에 수를 놓을 일이 없으므로

남편이 식사 준비를 할 동안 소파에 누워서 TV를 시청하거나 손톱 손질을 제일 많이 한다고.....

중국에서 오래 산 친지의 말로는 한족의 여자가 시집와서 

아이 하나를 그 집 안에 낳아주면 그 여자는 '자기의 모든 할 일을 다 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법 높은 지위에 있는 남자도 퇴근할 때에는

저녁장을 보아서 자전거 뒤에 싣고 가서 아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곤 하는 것이다.

손님을 초청하면 주인 남자는 갖은 요리 솜씨를 발휘해서 손님을 대접하는데

그 때 그집 여자는 남편이 부엌에서 요리하는 동안 손님과 마작을 하거나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중국의 젊은 아이들이야 예외이지만 대부분의 나이 든 중국 남자들은 옷차림에 전혀 신경을 안 쓰지 않는다.

차림새에 많은 신경을 쓰는 우리나라 사람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남자도 옷은 대충 입기 때문에

남자가 차려 입은 옷차림으로서는 그 남자의 지위나 하는 일을 거의 가늠할 수 없다.

남자의 지위나 부의 정도를 알려면 그의 아내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비싼 옷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손톱을 엄청나게 길러 매니큐어를 바른 귀부인 옆에

머슴처럼 허름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따라다니면 그 사람은 바로 그의 남편임이 분명하다고 한다.


중국에 오랫동안 거주한 친지의 말로는 중국 남자들만큼 가족에게 헌신하고 부지런한 남자는 잘 없다고 한다.

남쪽으로 갈수록 더욱 친절하고 가정적인 남자들이 많다는데

그래서 중국 여자들은 이상형으로 자주 홍콩 지역의 남자들을 꼽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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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의 관광 명소  '고문화 거리'를 혼자 거닐다가 우연히 고문화 거리 한가운데 교회 건물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기독교가 공인되지 않은 중국에도 교회가 있나....고 갸우뚱하실 분도 있으시겠지만

중국에도 공산당의 인가를 받고 모이는 교회가 있으니 이런 교회를 통틀어 '삼자교회(三自敎會)'라고 한다.





교회는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래 된 건물이었는데 건물의 앞면은 형태가 거의 흐트러지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교회의 왼쪽편 벽은 좀 더 훼손되어 있어서 세월이 많이 지나간 흔적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교회의 오른쪽 벽면의 모습도 상태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입구 문 위에 '기독교회'라고 써져 있었는데 교회 이름은 '창문교회'였다.
문 밖에서 한참을 기웃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서 보았다.

교회 문 안으로 들어서니 사택인지.....가정집 같은 2층 건물이 왼쪽에 자리잡고 있었고
가운데 가로질러 걸린 붉은 플래카드에는 "하나님은 세상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적혀 있었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예배실의 입구가 나왔다.
차림새로 보아 외국인 같아보이는 여자가 혼자서 교회당에 들어서니 웬 일인가...하여 몇 사람이 나와 말을 건다.
바디 랭귀지로 안에 들어가 봐도 되겠냐는 시늉을 했더니 금방 알아차리고 예배실로 안내를 해 주었다. 

안뜰에서 올려다 본 예배실 전면에 1934년이란 연도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이 창문교회는 네덜란드 선교사가 선교하여 세운 교회로 예배당은 유럽식 교회를 모방하여 지은 교회라고 한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한 예배실 강단에는 '利馬內利'라고 쓰여 있었다. 
이는 '임마누엘'이란 뜻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말인데  
마태복음 1장 21~23 절에
"주의 사자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라고 쓰여진 구절에서 인용한 말씀이다.

예배당은 2층으로 되어있었는데 2층에서 강단을 내려다 햇빛을 쬐러간 화분을 기다리며 가지런히 놓여있는 화분 받침들이 한가롭게 보였다. 예배당 곳곳에서 교회의 오랜 역사가 배어져 나오는 듯 했다. 

예배실 2층에는 접이식 의자와 나무 벤치가 함께 놓여있었는데 제일 앞 의자에 앉아 중국 땅을 위하여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배실을 나서며 뒤돌아 보니 현판에는 성당(聖堂)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캐톨릭 교회당을 성당이라고 부르는데 반해 중국에서는 기독교회 건물도 성당이라고 하는가 보다. 

감사의 뜻을 전하고 예배당을 나서니 목사님(?)이 예배당 문을 자물쇠로 굳게 걸어 잠근다.
(중국 교회는 목회자의 기근으로 목사님이 없는 교회가 거의 대부분이니 목사님은 아닐 듯....)
예배가 없는 평일에는 예배당을 개방하지 않는 듯 한데 갑자기 방문한 나를 위해 특별히 예배당 문을 열었나 보다. 

교육관인 듯 한 예배당 옆 부속 건물 벽에 붙어있는 사랑 愛 자가 떠나는 나에게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부속건물들은 엄청 지저분해보이지만 중국의 집에서 이 정도 지저분한 정도는 아주 양호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의 인가를 받고 모이는 창문교회와 같은 삼자교회(三自敎會)는 언제나 공산당의 감시와 간섭을 받고 있는데
공산당원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자의 설교나 교회 모임에서 공산당 지침에 어긋나는 설교 내용이 있는지 항상 감시한다.
그래서 기독교의 근본 교리인 삼위일체나 부활 사상같은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치지 못 하고
도덕적인 설교 외에는 하지 못하는게 중국의 삼자교회이다.
기독교를 탄압하는 중국에서 공산당의 간섭 하에 모이는 이런 삼자교회는
공산당의 앞잡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늘 내가 들어가서 잠시 기도하고 나온 이런 삼자교회라도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중국 전역에 복음이 편만하게 펼쳐질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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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과 달리 천진은 관광할 곳이 그다지 많지 않은 산업 경제 도시이다.

천진의 시장이나 상가, 일반 주택지는 돌아보았지만 딱히 관광지라고 할 만한 곳은 둘러보질 못 해서

천진의 관광 명소를 소개해달라니까 천진에선 '고문화거리'외엔 달리 갈만한 곳이 없단다.

 

천진의 발상지로 '고향의 종적'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천진 고문화거리'는

중국의 전통 문물과 양식을 한 눈에 볼 수있는 문화의 거리로 '진문고리'라는 현판의 정문에서부터 시작해 1㎞ 남짓되는 구간에 펼쳐져 있다.
 


천진시는 1986년에 이 옛 거리를 청조 때의 전통적인 풍모로 복원했는데 1991년에는 천진 십대 명소 중 한 곳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주로 문화용품. 고대 서적. 민속용품. 전통적인 수공업품 등이 진열되어 있는데 상점 안의 상품은 대부분 평범한 것들이 많다.


비록 유리창 거리와 같은 고급품은 없더라도 한집 한집 살펴보다보면 재미있는 완구. 그림책 등을 진기한 물건들을 제법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국내외 손님들의 인기를 끌고 있어 '천진의 진주'라 불리우기도 한다. 

 

우리나라 인사동과  비슷하지만 규모도 훨씬 크고 전통적인 청조의 건물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서 인사동 보다는 잘 정돈된 느낌이 든다. 

 

거리 좌우로 짙은 회색의 단층, 2층짜리 청조 건축양식의 선물가게가 정렬되어 있고 가운데는 각양각색의 노점이 들어차 있다. 


 

거리 중간 중간에는 민속놀이를 주제로 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조각상을 통해서 중국의 전통 놀이를 방문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차나 음료수 등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각가지 먹을 거리도 늘어서 있어 구경하다 허기진 배를 채울 수도 있다.

 


 
진열되어 있는 팽이는 우리네 것과 모양이 꼭 같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팽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연날리기를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의 취향을 따라 각가지 화려한 모양의 연을 파는 가게도 있다.

 

 오래 된 듯한 천진시의 지도에는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 군데군데 얼룩져 있었지만 너무나 귀중한 자료인 듯.
 

 
진열품의 대부분은 사실 이렇게 약간 조잡한 관광 상품이다.
 


각가지 동전,고서적,자물쇠등 옛날 물건이 진열되어 관광객들을 기다리나 진품보다 모조품이 판을 치고 있으니 속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진품처럼 포장을 한 모조품들이 대부분이어서 골동품인 줄 알고 사 온 물건들이
알고 보면 흔해빠진 관광상품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끔은 진흙 속의 진주 같은 물건을 건지기도 한단다.
 
여기서 팔리는 상품가격은 천차만별, 한마디로 부르는게 값이니 흥정은 기본......일반적으로 처음 주인이 제시하는 가격에서 절반 이하로 깎으면 된다고 한다.
옥 제품이나 돌제품도 많고 조그만 자연석에다 금방 도장을 새겨주는 가게도 성업 중이었다. 
 

 
고문화 거리 중간 쯤에 천진의 변천사를 구경할 수 있다는 천진민속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보니 박물관 입구를 막고  아저씨들의 술판이 한창 벌어지고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민속 박물관 입구를 다 막고 앉아 대낮부터 술판이라니......정말 황당했지만 비키라고 할 수가 없어서 문 어귀에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다시 고문화 거리 입구로 돌아나오는 길에 길의 좌판 옆에 표범 가죽이 카트에 걸려 있길래 처음으로 보는 신기한 장면에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그 근처에 있던 깍두기 머리를 한 남자가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내게로 뛰어 오는 것이 아닌가....

헉....!  위급한 상황을 몸으로 직감한 나.....완전 초고속으로 걸음아....날 살려라~~~하고 달려서 군중 속으로 숨었다.
한참이나 도망 가다가 슬쩍 뒤돌아보니 아까 그 남자가 길 한가운데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간담이 서늘해져서 다시 고문화거리 쪽으로 가지 못 하고 골목 귀퉁이에 숨어 있다가 
만나기로 한 친지의 차가 고문화거리 입구에 서서 기다리는 걸 보고 얼른 달려가서 차에 올라타고 줄행랑을 놓았다.
휴.......십년 감수....라는게 이런 경우를 말하는거겠지?

알고보니  표범 가죽 불법 거래 현장을 사진 찍은 것....여자 혼자인 줄 알고 만만하게 여긴 그들에게 붙들렸더라면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카메라를 그 자리에서 빼앗겼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머나먼 천진 땅에서 인신매매꾼들에게 팔려갔을지도....아직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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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에서 머무는 동안 친지가 생활 필수품을 사러 나가야 한다기에 얼씨구나...하고 좋아서 따라나갔다.


작은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복합 상가와 아주 화려한 할인점을 다 가보는 좋은 기회였다.





복받는 데 특히 관심이 많은 중국 사람인지라 길상용품 가게는 상가 제일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붉은 색은 복이 온다고 생각하여 붉은 색의 부적을 많이 사서 집에 걸어놓는데 복(福)자 부적은 반드시 거꾸로 붙여놓는다.

그러면 그 집에 복이 쏟아진다고 믿기 때문에.......


 


옷이나 제품의 진열 상태는 우리나라 상가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는데


 


이렇게 앞이 볼록 튀어나온 철사 옷걸이에 재미난 모습으로 셔츠를 개어서 벽에 고정시켜 놓은 모습도 볼 수 있다.


 
상가 안의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에는 상인들의 아침 식사를 위해 만두를 팔고 있었는데 김이 모락 모락나는게 아주 먹음직스러웠다.
 

 

이 복합 상가 안의 화장실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고야 들어갈 수 있었는데

돈을 받는 화장실이 문은 하나도 없고 청소는 몇 달 전에 했는지......오물로 변기가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무지 꺼림직하였지만 다행히 사람이 없어서 얼른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 나오며 사진을 한장 찍었는데

거기서 찍은 화장실의 처참한 광경은 여러분의 정신 건강을 위해 공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복함 상가에서 나와 가세계(家世界,쟈스지에)라는 할인점을 둘러 보았다..

백화점과 이마트같은 할인점을 합해놓은 것 같은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할인점이었는데

할인점의 형태는 우리와 비슷하였고 공산품들은 생각보다 값이 '매우' 비쌌다.

더구나 전자 제품들의 값은 우리와 비교할 때에 만만치 않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식품들은 상대적으로 값이 싼 편이었는데 쇠고기가 돼지고기 값과 비슷하게 매우 싸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필요한 것 몇 가지를 사고 계산을 한 후 다시 입구에 있는 화장실을 갔는데

다른 곳에 비하여 화장실은 제법 깨끗하였지만 여기도 역시 화장실 문이 허리 아래만 가려져 있는 것이었다.

화장실은 마주 보고 있는 형태라  옷을 내리고는 머리를 숙이고 앉아서 볼 일을 보았는데

일어나서 옷을 올리면서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나의 바로 맞은 편에서 볼 일을 보는 여자가 손에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에서

휴지를 꽉 부여잡고는 청소하는 아줌마와 한담을 나누면서 '큰' 볼 일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남의 '큰' 볼 일 보는 모습을 정면에서 대놓고 보기는 난생 처음이라 황당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 아줌마는 내가 보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생리 현상을 '순조롭게' 해결하고 있었다.

그 순간 카메라를 꺼내 한장 남기고 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같았지만

무서운 중국 여자에게 손톱으로 긁히면 거의 죽음이란걸 익히 들어왔던지라

아쉬움을 달래고 아무 것도 못 본 것 처럼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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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天子)가 이곳의 항구로 들어왔다 해서 이름 지어진 천진 (天津,텐진)은 
북경, 상해, 중경과 함께 중국 4대 직할시 중의 하나이자, 북방 최대의 무역 항구 도시이다.
천진은 우리에게는 1885년 청나라와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이권을 놓고
자기네끼리 멋대로 맺은 텐진 조약으로
유명한 곳.
중국의 발달된 면모를 피부로 체험할 수 있는 중국 최대의 산업 경제도시로서
우리나라와는 많은 경제 교류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뿌옇게 흐린 바다를 지나 천진 땅으로 들어서면
구획정리가 잘 된 반듯반듯한  공업 구역들이 끝도 없이 성냥갑처럼 늘어선다.

4대 직할시라는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국제 공항 또한 살짝 구질구질하며 좁고 답답했는데
밖으로 나오니 천진의 엄청나게 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인해 하늘도 회색으로 잔뜩 찌푸려져 있다.

공항 맞은 편 건물 옥상탑의 '우리의 중국을 사랑합시다!'란 문구가 먼저 눈에 띄었다.

북경이나 천진은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해 아주 비싼 고급 수입차가 많다.
중국에서의 자동차 가격은 엄청난데 그랜져는 우리나라에서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려나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을 아무런 구애 없이 물 쓰듯 쓰는 부자가 중국 인구의 약 10%인지라(일억 오천에 이른다...!)
길거리에는 완전 고물이 된 차와 벤츠,아우디가 한데 섞여서 다니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점심을 먹으러 공항 앞 식당에 들렸는데 에어콘이나 선풍기도 변변치 않은 식당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덥고 습한 공기 탓에 온 몸에 열이 나는데 앉으니 펄펄 끓는 차를 먼저 내 온다.
중국 사람들은 전혀 찬 물을 먹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 비해 수질이 좋지 않아서 일찍부터 차문화가 발달하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중국 음식은 기름기가 많아서 찬물을 먹으면 배탈이 나기가 쉽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여행 오는 중국인들은 식당에서 더운 물을 주지 않고 생수를 주는 것에 많은 불평을 한다고 하니
물 하나 먹는 것도 이렇게 풍습이 다른것에 실소가 머금어졌다.
하지만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한여름에 뜨거운 차와 함께 나온 뜨거운 중국 음식들을 먹고 있으니 나중엔 별로 덥지도 않고 음식의 맛을 즐길 수가 있었다.

 

인구 천만의 도시 천진에는 고문화 거리를 제외하고는 관광 명소가 거의 없는 편이고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천진의 상징 천탑(天塔,텐타)이 유명하다.
탑의 높이는 415.2m로 미터로 세계에서 4번째, 아시아에서 2번째로 높으며 TV,방송 수신탑으로 사용되고 있다.
248미터-278미터 사이의 탑루 내에는 전망대와 2000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회전식 레스토랑이 있다.
2층의 전망대에는 망원경이 있어 반경 백리의 경치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다고 하나
늘 흐리고 안개 낀 천진의 날씨로는 시내 조망이 어려워 실제 올라가는 사람은 적다고 한다. 

 
시내에는 특이한 모양의 빌딩도 여기저기 눈에 뜨이는데
중국 사람들은 건물 외부 장식에 아주 치중을 하는데 대부분의 건물 내부의 시설은 엉망인 경우가 많다.
수많은 빌딩과 아파트마다 어김없이 옥상과 건물에 화려한 야간 조명을 설치하는데
U.F.O착륙지 같이 멋진 야간 조명 장식을 한 아파트 안에 들어서면
복도와 가정의 조명은 바깥과는 다르게 매우 침침하였다.
  

 
중국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천진도 자전거의 천국이다.
  
상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삼륜차가 많았는데 손님을 태우려고 기다리는 오트바이 택시이다.

오트바이 택시 너머로 보이는 우리나라 다마스같은 조그만 승합차도 역시 택시인데 
천진사람들은 이런 차를 식빵같이 생겼다고 해서 '빵차'라고 부른다.

  
프라이드를 연상케 하는 택시는 앞 좌석과 뒷 좌석 사이가 창살로 가려져있다.

 
운전자를 택시 강도에게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살벌함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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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베가스 여행을 마치고 LA로 돌아오는 길에 칼리코 은광촌을 들리게 되었다.

칼리코는 한 때 은광촌으로 1881년부터 많은 양의 은과 붕사를 생산하던 곳이었으나
그 후 수지가 맞지 않아 1907년에 폐광이 된 곳이다.

 

폐광 후 사람의 발길이 끊어셔 거의 유령의 도시가 되다시피 한 이 곳은
 1951년 Walter Knott란 사람의 개발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폐허가 되어 방치되었던 이곳을 옛 모습 그대로 복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 있던 관리 사무소,우체국, 술집,극장등 당시 건물이 그대로 재현되었는데 
 이를 보기 위해 많은 미국인들이 모여들고 있어 지금은 당시보다 더 수입이 많은 마을이다.
 이른바 미국판 민속촌이라고 할 수 있는 곳.  

 

 

 칼리코 입구에 들어서니 썰렁하기 이를 데 없다.
광산촌이라 그런지 모든 집들이 다 판자집 수준이다.
우리 나라 민속촌은 여기 비하면 아주 아기자기한 편..... 

 

 

 입구에서 주차요원이 카우보이의 차림으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가죽 카우보이 모자에 가슴에 탄창까지 두른 모습이 포스가 넘친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멋진 모습으로 포즈를 잡아주었다.

 

 

  집들은 다 어설픈 서부 개척시대의 목조 건물이라 초라하기 이를데 없고
나무와 진흙으로 대충 얼기설기해서 만든 집이 대부분이다. 

 

 

 술집 앞이었던가......지붕 위의 남녀 조각상이 이채로웠다. 

 

 

 목조 건물이 많은 은광촌인지라 소방서의 역할은 더욱 귀중했을 듯....

 

 

 술통이 놓여있는 술집앞에서는 육두 문자를 섞어 쓰면서 총잽이가 걸어나올 것 같았다. 

 

 

 술집 앞에 놓인 오르간 앞에 앉은 할아버지가 포스터의 민요를 연주하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식사와 음료를 파는 카페는 이 마을에서 제법 고급으로 보인다. 

 

 

 메인 스트리트라고 해봐야 썰렁하기 이를 데 없다. 

 

 

 은을 채취하던 당시의 도구들이 재현되어 있는데 암석을 부수어서 물과 함께 흘러보내어서 은을 채취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사금 채취 방법을 이용하여 열심히 은을 찾아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아직도 이런 방법으로 채취하면 소량의 은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사금 채취업자 또한 폐광에서 방금 걸어나온 것 같은 차림이다. 

 

 

 광도에서 광석을 실어나르던 웨건도 길 가운데 전시되어 있고....

 

 

 그 당시에 타던 마차에는 많은 사람을 태워 닳은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칼리코는 정말 어설픈 민속촌이었지만 미국 사람은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보존하고 있었다.
짦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그들인지라 우리 같으면 소흘히 여길 유적이나 유물도 아주 귀하게 보존하는데
반만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자랑하는 우리는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살아온 흔적을 너무나 쉽게 밀어버리는 것을 본다.

자랑스러운 것이든 자랑스럽지 못한 것이든
우리가 살아온 흔적은 너무나 귀중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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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다주 동남부 사막에 위치한 라스베가스는 미국 최대 카지노 도시이자 꿈의 도시이다.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라스베가스는 다른 도시에 비해 음식, 호텔 및 공연이 아주 싼 편인데 그 이유는 카지노에서의 수입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호텔들은 제각기 카지노 손님들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 여러가지 이벤트를 벌이는데 카지노의 큰 손들에게는 하루에 수백만원이 넘는 스위트룸의 숙박료를 포함한 시설 이용료도 거의 무료라고 한다.

라스베가스 시가지는 5km 에 걸쳐 호화 호텔이 즐비한 스트립(Strip)구역과
서민적인 다운타운으로 크게 구별되는데  
스트립(Strip)지역 호텔들은 대개가 대규모의 최고급 호텔로 라스베가스에 와서 이 곳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관람이 될 정도이다. 


뉴욕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 건물은  뉴욕뉴욕 호텔(New York New York Hotel). 살짝 허접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 뉴욕 다운타운의 모습을 10분의 1로 축소해 놓은 모습이 이채롭다.
골프신동인 타이거 우즈가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한 이 호텔의 외곽에는 롤러 코스터가 빙 둘러 감싸고 있는데 이  'Manhattan Express Roller Coaster'는 67 miles의 속도감과 144 feet에서 떨어지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규모나 높이가 에버 랜드의 T-Express나 경주 월드의 Paethon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호텔 주위를 감싸고 도는 롤러 코스터라니.....이 얼마나 라스베가스 다운 상큼한 발상인가...!
  

뉴욕 뉴욕 호텔 바로 맞은 편의 MGM Grand Hotel은 객실 수가 5000 여 개(!)가 넘는 라스 베가스 최대의 호텔인데 
주차장만 해도 잠실 야구장이 2개는 들어갈 면적의 엄청나게 큰 건물이다.  

 입구의 황금사자상이 눈길을 끄는데 부지 내에는 영화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8개의 테마 파크가 있다. 
이 MGM Grand를 운영하는 회사는 바로 영화사로 유명한(사자가 어흥 하는 Logo & Intro) MGM이 설립한 MGM Mirage라는 회사이다.

Strip에 있는 Hotel들, 그러니까 서편에 있는 Hotel의 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데
Circus-Circus, Treasure Island, Mirage, Bellagio, Monter Carlo, New York New York,
Excalibur, Luxor, Mandalay Bay와 이 MGM 까지 무려 10개의 Hotel을 소유하고 있다.

서편에 있는 고급 Hotel 중에는 Caesar's Palace 빼고는 다 소유한 거대 괴물 기업이 MGM Mirage이다. 

그리고 빠뜨리지 않아야 할 곳은 라스베가스의 전망대인 Stratosphere Tower.
이 타워의  레스토랑과 라운지에서는 360도로 펼쳐지는 라스베가스의 전경을 즐길 수 있다.
높이는 약 350.2m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타워이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는 30초가 소요된다고 한다.       

 
호텔 중의 호텔 베네치안 호텔(Venetian Hotel)은 라스베가스 최고의 초호화 호텔이다.
이 곳은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그대로 옮겨놓아 재현을 해 놓았는데 특히 호텔 내부와 외부에 인공으로 운하를 만들어 곤돌라를 운행하고 있고
호텔 밖에는 두칼레 궁전, 대종루,탄식의 다리 등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주건물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35층 높이에 객실만도 3000 개가 넘는 이 초특급 호텔은 화려의 극치에 달하는데
내부에 들어서면 천정은 아주 정교하게 인공 하늘을 조성하고(진짜 하늘 같다.)
카페와 노천 카페, 악단들의 연주로 마치 베네치아의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초특급 호텔이라 그런지 1층에는 다른 호텔과 같은 도박장이 없고
카페와 레스토랑,그리고 약 60여개가 넘는 명품 상점들이 줄지어져있어 여인네들의 눈을 유혹한다.
나는 호텔 내의 싼마르코 광장에서 시작해서 호텔의 상가들을 두루 돌아보았는데 나중에는 길을 잃어서 원 위치로 돌아가는데 진땀을 뺐다.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도 걸어도 제 자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얼마나 당황이 되었던지......ㅋ
 
이 호텔은 드라마 '올인'의 주촬영지였다고 하며 이병헌과 송혜교가 곤돌라를 타며 데이트하는 장면도 여기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얼마전 '꽃보다 남자' 촬영지로 드라마에 나왔전 마카오의 베네치안 호텔은 라스베가스의 베네치안 호텔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패리스 호텔(Paris Hotel)은 호텔 앞에 
에펠탑 축소 모형이 있어서 더욱 유명한 곳이다. 패리스 호텔은 낮보다 밤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 

 
패리스 호텔 앞에 있는 Bellagio호텔의
음악 분수쇼는 라스베가스의 또 다른 명물이다.
분수쇼가 벌어질 시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멋진 광경을 보기 위해 분수 주변에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시작 시간에 딱 맞추어 갔더니 이미 분수 주위는 사람들이 꽉 차 있어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겨우 얼굴만 들이밀고 분수쇼를 보았다. 아름다운 음악과 더불어 춤추는 분수의 물줄기들은 여행객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환상의 여행으로 인도해준다. 

분수 쇼를 본 다음 발리 호텔(Bally Hotel)로 발걸음을 옮겼다.
라스베가스에서 제일 유명한 '쥬빌리(Jubilee)쇼'를 보기 위해서였다.
동장만큼 넓은 로비에 빽빽하게 놓인 슬로트 머신과 카지노 테이블 사이를 지나 극장으로 들어가려니
입구에서 카메라나 캠코더는 다 맡겨놓고 들어가란다.
이런.....뭐 별난 공연이라고 카메라도 뺏다니......하는 생각을 하며 들어갔는데.... 

정말 이름 그대로 '라스베가스 쇼'였다!
쇼는 완전히 "Topless Show' 여서 가슴 노출은 기본.....^^  옷은 정말 눈꼽만큼 가렸다.
엄청나게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모두 다 치장했는데

옷이나 머리에 박힌 수많은 보석들은 이미테이션이 하나도 없고 모두 다 진짜 보석이랜다....@@

몸을 흔들 때마다 그들의 몸의 보석들이 찬란한 빛을 내며 눈에 들어와 박혔다.


그리고 그야말로 쭉쭉빵빵한 흑백의 미녀는 총출동이었는데
특이한 점은 군무에 나오는 수많은 여성들의 키나 다리 길이가 꼭 같았고 가슴까지도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것이 없이 꼭 같은 사이즈였다. 쇼 내내 가슴을 다 드러내고 겨우 국소 부위만 걸치고 춤을 추는데도 전혀 외설스럽거나 야하지가 않고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사람의 신체가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나 하는 마음에 여자인 나도 넋을 잃고 그들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냥 춤만 추는 것이 아니고 삼손과 데릴라, 타이타닉....등등 줄거리와 테마가 있는 종합 예술이었다.
특히 모든 무대 장치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이었는데 '타이타닉'에서는 배가 기울어지며
수많은 양의 물이 무대로 쏟아지기도 해서
관객을 깜짝 놀라게도 했다.
사진이나 켐코더로 찍을 수 있으면 좋을 것을.....

절대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유튜브에서도 쥬빌리쇼 관련 동영상은 찾을 수가 없다.
그나마 하나 찾은 것은 몇 초 짜리 홍보 동영상.
쥬빌리쇼는 오로지....라스베가스 발리 호텔에서 돈 주고만 보는 것이 가능하다.


최고의 음악,최고의 무용,최고의 무대 장치....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이렇듯 멋지고 화려한 공연을 연출하는 그들에게  
나는 "지상 최고의 쇼"라고 엄지 손가락을 높이 쳐들어 주고 싶다...! 

그리고 빠뜨리지 않아야 할 곳은 바로 다운타운.
유니언 역에서 내려서 남동쪽으로 쭉 뻗어내려간 거리 일대를 말하며
중소형 및 대형 카지노와 오래된 호텔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원래 라스베가스의 발상지인 다운타운은 새롭게 들어선 스트립의 규모와 화려함에는 못 따라가지만
나름대로 서민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며 비교적 부담스럽지 않은 요금으로 카지노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다운타운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전광쇼(Fremont  Street Experience)라고 할 수 있다. 

프리먼트 스트리트의  건물 사이의 긴 구간을 둥근 지붕으로 덮고 엄청나게 많은 전구를 설치하여


전광판의 전구들이 음악에 맞춰 여러가지 형상을 그리며 춤을 추는데 저녁에 열리는 전광쇼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모이고


전광쇼가 벌어지기 전까지 곳곳에서 가수들의 공연, 축하쇼가 벌어져 매일 저녁이 축제 분위기이다.
 

 
 

드디어 전광쇼가 시작하면 음악과 함께 현란한 불빛이 머리 위를 날아다닌다.  

우주에 대한 테마에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신비로운 빛깔들이 춤을 추고.....
  

전구로 된 아가씨들이 나와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흥을 돋군다.

음악과 불빛이 조화가 너무 잘 어울려서 쳐다 보는 사람을 정신을 놓아버리게 만든다.

색감 또한 너무나 아름다워서 불빛이 쉴새 없이 바뀔 때 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른다.

형형색색의 불빛과 음악의 향연이 펼쳐지는 동안 사람들은 목이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전광쇼 속으로 빠져든다.

라스베가스를 가서 전광쇼를 안 보고 온다면 그것은 라스베가스를 본 것이 아니라고도 할 만큼 유명한 곳인데 
전광쇼에 쓰이는 전구는 다 LG에서 만든거라니 프리먼트 스트리트를 떠나는 어깨에 힘이 살짝 주어짐을 느꼈다.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에서 나는 슬로트머신을 당기지는 않았다.

라스베가스로 오기 전에 리틀 라스메베가스인 라플란에서 슬로트 머신을 한번 체험해 보았기도 했지만

도박을 하고 앉아 있기엔 시간이 아까울 만큼 라스베가스에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

도박의 도시로만 알고 있던 라스베가스는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놀이동산이었다.

도박의 도시에서 새로운 가족 휴양 도시로 거듭나는 라스베가스..
.

미국 서부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빠뜨리지 말아야 할 필수 코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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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은 미국 유타주 남부에 있는 국립 공원이다.

 


이 곳은 협곡이라기 보다는 천연의 원형경기장이 연이어 있는 모양으로 되어있으며
그 밑에는 흰색과 노란색의 석회암과 사암으로 된 기둥과 벽들이 세월의 풍상 앞에 다양하고 기이하게 조각된 모양으로 서있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면적은 약 145㎢ 이며 초기 정착자 에비니저 브라이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중 브라이스 캐니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브라이스 앰피시어터(Bryce Amphitheater)로 안내 책자에 대표 사진으로 많이 등장하는 곳이다.



그랜드캐니언을 통해 자연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가를 보여준다면
브라이스 캐니언의 선명한 오렌지색·백색·황색 빛깔의 수백만개의 돌기둥은 마치 자연이 이번엔 얼마나 섬세할 수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런 곳이다.
그랜드 캐니언이나 자이언 캐니언이 남성의 모습이라면 브라이스 캐니언은 한없이 섬세한 여성의 모습이랄까.....

 


차에서 내려 처음 맞이한 브라이스 캐니언은 누구에게나 탄성을 지르게 한다.
수백만개의 붉은 색의 석상들의 군상같은 모습......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기이한 모습에 누구나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도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가 다 다르다.  
무수한 기둥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마치 숲처럼 빽빽이 들어차 있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협곡 안으로 걸어서 들어가보면 바위 사이를 걷는 맛이 마치 숲속을 걷는 듯한 느낌 같다.

 

협곡은 경사가 매우 심하고 바닥의 흙은 붉은 색의 푸석푸석한 흙이어서 디딜 때마다 미끄러지기 일수다. 

 

 

협곡 안에 들어가 위로 올려다 보면 바위덩어리들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이만 보이는데
어떤 것들은 마치 불상이 서 있는 모습같기도 하다.

 

 

협곡 아래는 일조량이 부족한지라 이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햇빛을 보기 위하여 위로,위로 곧게 자라는데


협곡 밖에서 바람에 실려 협곡 속으로 떨어진 씨앗 하나가 커서 엄청나게 큰 나무로 성장했다고 한다.


무수한 세월의 풍상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만물상.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가 저절로 나오는 곳, 브라이스 캐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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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 캐니언(Zion National Park)은 미국 유타주에 있는국립공원이다.

 

유타주 남부의 평원을 흐르는 버진(Virgin)강이 오랜 세월 동안 침식하여 깊은 협곡,높은 절벽으로 이루어진 지형인데
강 옆으로 100여 미터 이상 되는 절벽과 바위의 사면들이 약간 붉은 색을 띄면서 있고
그 사이사이로 나무와 풀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색조는 강한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다.

 

 

규모는 그랜드 캐니언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랜드 캐니언 못지 않은 비경으로 이름이 났는데
자이언(Zion,시온)이라는 말은 이 곳에 처음 이주해서 살았던 모르몬 교도들이 붙인 이름이다.
(이 곳 유타주는 모르몬 교도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자이언 캐니언은 마치 시온(Zion)산처럼 웅장한 위용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웅장함은 아기자기한 브라이스 캐니언과는 또 다른 강한 남성미를 보여주었다. 

 

 

 협곡은 깊으며 산은 높고 웅장하였는데 사람을 넣어서 경치를 찍으려면
거의 땅바닥에 카메라를 들고 누워서 찍어야 할 정도이었다. 
웅장한 스케일의 자이언 캐니언을 더 넓게 감상하기 위해서 파노라마 스타일로 사진을 올려보았다. 
 

 

  바로 옆에는 자연적으로 체스판이 그려진 기이한 모습의 산도 있어서 
창조주의 체스 놀이판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한다.  

자연....그대 앞에만 서면 난 왜 그리 작아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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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은 미국 애리조나주 북서부의 고원지대가 콜로라도 강에 침식되어 생긴 거대한 협곡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을 가게 되면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누가 물을 때 마다 항상 "그랜드 캐니언 !" 이라고 말해왔었던 필자......그랜드캐니언 국립 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기대감에 가슴이 콩닥거린다. 먼저 소형 항공기를 타고 그랜드 캐니언을  하늘에서 조망하기 위해 그랜드 캐니언 공항에 들렸다. 

 

 

공항은 대단히 작았고 비행기도 또한 아주 작았다. 겨우 19명 정도가 탈 수 있는 팔랑개비같은 비행기였던 것이다.
그래도 이름은 거창하였다.   Grand Canyon Airlines !.... 

 

 

공항 대합실도 교실 두서너 칸 만했는데 그래도 비행기를 탄다고 여권 검사를 하고 탑승자 명단에 이름도 적었다. 

 

 

조그만한 출구를 거쳐 보딩을 하니 아주 이쁘고도 날렵한 비행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비행기는 더 허술한 것이 마치 장난감처럼 보였고 이런 비행기가 과연 안전하게 날 수 있을까....싶어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비행기 안에 들어가니 자리는 4C,
좌석이라 해봐야 가로 세 줄, 세로 일곱 줄 해서 모두 19석이 만석이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어폰을 머리에 썼다.
4개 국어로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그 중 3번째 방송이 한국어 방송이었다.

 

 

비행기는 작아도 조종사는 두 명이었다. 혹시나의 사태에 대비한 것이리라.....
조종사의 숱이 없는 흰 머리가 이 수많은 조종 경력을 말해 주는 듯 보였다. 

 

 

비행기는 짧은 활주로를 시끄런 음을 내며 달리더니 이윽고 날아올랐다.
약간의 아찔함과 함께 날아오른 비행기는 그랜드 캐니언 쪽으로 침엽수가 우거진 없는 평지를 한참 날아갔다.
얼마나 낮게 날아 가는지.....나무에 부딛힐 듯 말 듯 비행기는 날았는데 가끔씩 조그만 기류에도 흔들리며 심히 흔들리거나 급강하를 해서 아주 짜릿 짜릿하였다.
같이 탄 여자분들 중 한분은 너무 무섭고 속이 울렁거리는지 처음부터 내릴 때까지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롤러코스터 타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곳을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소형 비행기에서 맛보는 그 짜릿한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는데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한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부릅뜨고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렀다.

 

 

평원의 나무 위를 한참을 날아가던 비행기의 저 멀리 광활한 평원 사이로 길게 갈라진 틈이 보였다. 협곡이었다!

 

협곡 바로 위를 나르는 비행기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그랜드 캐니언은 놀라움 그 자체였는데 햇빛이 비치는 각도와 방향에 따라 캐니언의 빛은 시시각각으로 다양하게 변해 갔다. 

 

 

마침 오후의 햇살이 비쳐 그랜드 캐니언의 지층 하나 하나는 불타는 듯 빛나고 있었고

 

 

복잡하게 깎인 이 넓은 협곡 바깥쪽에 당당한 봉우리와 평지에 우뚝 솟은 산, 깎아지른 듯한 골짜기가 수없이 늘어서 있었다.

 

 

애리조나 주 북쪽 경계선 근처에 있는 파리아 강 어귀에서 시작하여 네바다 주 경계선 근처에 있는 그랜드위시 절벽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그랜드 캐니언은 폭이 0.2~29km 정도이고  길이는 약 443km에 이르니....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길이와 비슷하다. 

 

 

협곡 아래로는 콜로라도 강이 구비구비 흐르고 있었는데 강이 방향을 바꾸는 곳에 토사가 쌓여 삼각주가 생성되기도 하며 강물이 흐르다가 석회질 토양을 만나 색깔이 변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색감이 얼마나 오묘한지 물감으로 그려놓은 그림 같기도 했고 

 

 

협곡 사이를 구비구비 흘러가는 강물의 흐름은 마치 긴 뱀이 기어가는 모양 같았다. 

 

 

 엄청난 협곡을 직접 눈으로 보니 자연의 위대함에 탄성을 발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저 거대한 협곡에 깃들여 살고 있는 온갖 생물들에게는 이곳이 바로 천국과도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동안 상공에서 그랜드 캐니언을 둘러보고 비행장으로 다시 돌아오니 집들과 자동차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보였다.



비행을 잘 마쳤다고 수료증도 준다. 비싼 항공요금에 수료증 요금도 포함되었나보다. 

 

 

비행기에서 내려와서는 사우스림(남쪽 가장자리)의 마더포인트에서 그랜드 캐니언을 바라 보았다. 

 

 

하늘에서 보는 그랜드 캐니언과는 또 다른 모습,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왔다.

 

 

다시 버스를 달려 데저트뷰에서도 그랜드 캐니언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역시 데저트뷰에서 바라본 캐니언의 모습인데 조망 포인트마다 그랜드 캐니언의 모습은 천가지 모습으로 다가 왔다. 

 

 

데져트 뷰에 세워진 인디언 망대는 제일 위의 망루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인디언 망대의 벽화에는 인디언들이 좋아하는 사슴이 새겨져 있었다.

 

 

전망대 근처에서 열심히 도토리를 갉아먹고 있는 다람쥐는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도 않고  힐끗힐끗 쳐다보며 더 열심히 먹고 있어서 사람들의 카 라 세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랜드 캐니언을 탐사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U자 형태로 투명한 강화유리인 스카이워크  위에서  하늘길을 걸으며 1,200m 아래의 콜로라도강을 내려다 보거나 항공기를 타고 상공에서 조망하는 코스, 콜로라도 강의 물결에 몸을 맡기는 레프팅 코스..... 그 중에는 나귀를 타고 협곡의 위에서 아래로 직접 데려가면서 탐사하는 코스도 있다고 한다.
다른 코스는 경험하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항공기를 타고 하늘에서 그랜드 캐년을 내려다 보는 코스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경험이 되지 않을까... 만약 당신이 고소공포증이 없는 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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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니언으로 가기 위해서는 L.A.를 떠나 끝도 없는 모하비 사막을 몇 시간이나 달려야 한다사막이라 하길래 끝없는 모래 사막이 나타날 것을 연상했는데 모래 사막은 거의 볼 수 없었고 황무지,그리고 Joshua Tree라고 하는 작은 선인장이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이었다.

 

 

모하비 사막을 달리면서 본 인상적인 것중에 하나는 고속도로 양 옆에 끝없이 길게 이어진 사람 키 정도의 철조망이었는데 그것은 야생 동물이 차에 뛰어들어죽는 Road Kill을 막기 위한 방지막이란다그리고 곳곳에 지하도가 건설이 되어 동물들이 길을 안전하게 건널수 있도록 되어있었다교통 사고의 위험으로 부터 사람과 동물의 생명을 동시에 보호하는 시설에서 작은 생명이라도 귀중하게 여기는 아메리칸들의 생명 사랑을 읽을 수가 있었다. 

 

 

 네바다주에 도착해 라플린이란 도시에 하루밤 묵게 되었다라플란은 콜로라도(붉은 강이란 뜻)강가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2의 라스베가스라고 불리울 만큼 도박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이 곳은 사막 기후라서 습도가 매우 낮은 관계로 천식이나 관절염 환자들이 은퇴 후에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힌단다.

미국에 와서 또 인상적이었던 점은 사람들이 인사를 너무 잘 한다는것이었다L.A.에서도 라플란에서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다 밝은 얼굴로 "HI~" " Good morning~" "It's fine day ! isn't it ?" 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심지어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내려서 화장실에 가도 우락부락한 얼굴의 청소원이 밝게 "HI~" 하면 인사를 해주는 것이 정겹게 보였다나도 또한 그들의 인사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같이 인사를 주고 받게 되는 것이었다잘 모르는 여행객에게도 밝게 웃으면 인사해주는 것에서 마음의 따스함과 여유를 읽을 수가 있었다. 

 

 

라플린에 있는 모든 호텔은 도박을 위한 시설에 집중되어있다호텔의 모든 로비는 수백개의 슬로트 머신으로 가득 차 있어서 객실로 가려고 하면 반드시 슬로트머신 옆을 통해야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숙박비는 매우 싸며 특히 큰 도박을 하는 투숙자들은 라스베가스와 마찬가지로 비싼 스위트룸이 다 공짜라고 한다투숙객들은 거의 노년층이었는데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슬로트 머신 앞에서 열심히 버튼을 누르고 있는 모습이 참 이채로왔다슨 일확천금을 누리기 위해서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년의 여가를 여유롭게 즐기기 위해서 작은 단위의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도박의 도시에 왔으니 게임 한번 안 하고 가면 너무 서운할 거 같다원래가 고스톱도 칠 줄 모르는 도박의 문외한이지만 도박 체험을 한 번 해보기로 하고 20달러를 코인으로 바꾼 후 슬로트 머신을 당겨보았다잘 모르지만 열심히 버튼을 눌러가면서 행운이 오기를 기대했는데 점수가 많이 올라갔다가 다시 잃어버리기를 수십 번 반복하다가 드디어는 20달러를 다 탕진해버리고 말았다그래도 거의 1시간 정도를 기계 앞에서 논 셈이라고 하니 처음 한 것 치고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었다. 

 

 

도박에 한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는데(그만큼 재미가 있었다!) 20달러를 잃고 나니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일확천금(?)을 포기하고 호텔을 나와 밤에도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콜로라도 강가를 산책했다마침 달빛이 강물에 어리어 어른거리는 모습에 중학교 때 음악시간에 부르던 '콜로라도의 달'이란 미국민요가 생각났다.

콜로라도의 달밝은 밤은 마음그리워 저 하늘~

콜로라도의 달밝은 밤은 마음그리워 저 하늘~

반짝이는 금불결, 은물결 처량한 달빛이여~~

콜로라도의 달밝은 밤은 마음그리워 저 하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사조차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콜로라도의 달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며 콜로라도 강가의 달빛에 마음껏 몸을 맡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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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의 최고 집약지이며 지금도 끊임없이 영화가 촬영되는 곳, 헐리우드. 헐리우드는 영화 팬들 뿐에게만 아니라 여행객들에게도 또한 사랑받는 곳이다.  
 

 

헐리우드의 상징 '맨즈 차이니즈 극장(Mann's Chinse Theater)'은 1927년에 극장왕 시드 그로맨(Sid Grauman)에 의해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관이다. 중국의 사원풍의 건물에 탑, 사자, 용으로 장식한 이 극장은 1927년 그라우만스 차이니스 극장(Grauman's Chinese Theater)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하였다가 1973년에 테드 만(Ted Mann)이 극장을 샀기 때문에 맨스 차이니스 극장으로 다시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은 한달에 2번 정도 Premier를 개최하는데 이날은 할리우드 블러버드(Hollywood Blvd)를 막고 많은 유명인사가 리무진을 타고 레드카펫 위를 걸어 극장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스타를 볼 수 있다. 내부의 스크린과 음향효과 역시 최상급이고 관람석이 편할 뿐 아니라 화장실이 매우 화려하다는데.... 난...안 들어갔을 뿐이고...^^

 



극장 앞에 있는 스타들의 손 모양과 발 모양은 1927년 5월 17일 노마 탤머지와 메리 피크포드, 더글러스 페어 뱅크스 시니어를 초대해 정식 행사를 가진 것이 처음 시작으로 지금은 200명 가까운 명 배우들의 자취가 남아있어 할리우드에서 관광객이 가장 먼저 찾아 기념 사진을 찍는 관광명소이다.


도널드 덕의 핸드 프린팅.....아니 풋 프린팅이구나.....^^  

 

 

맨즈 차이니즈 극장 앞에 운집해 있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멋진 분장을 한 남자가 나타나 사진의 모델이 된다. 

 

 

특이한 분장으로 모두의 시선을 모았는데 잘 다져진 몸매와 쭉 뻗은 다리는 마사이를 연상케 했다. 

 

 

여자 어린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무섭게 생긴 모습에 놀라 겁에 질린 어린 여자애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맨즈 차이니즈 극장을 중심으로 한 헐리우드 블루버드의 보도를 '스타의 거리(Walk of Fame)'라고 하는데 이곳엔 영화 스타, TV 스타, 유명 뮤지션들의 이름이 새겨진 별 모양의 브론즈 2500 여개가 거의 5km에 달하는 보도에 깔려 있다.
브론즈판에 새겨진 각종 마크는 활동 분야를 나타내는데 촬영기는 영화, TV 세트는 TV,레코드는 음악,마이크는 라디오를 상징한다고. 발 바로 아래에 있던 로빈 윌리엄즈의 브론즈를 보니 후크,미세스 다웃파이어, 쥬만지, 패치 아담스, 바이센테니얼 맨, 박물관이 살아있다...등에서 개성만점인 연기를 펼치던 그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는 듯 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브론즈도 있는 걸 보니 연예계 인사의 브론즈만 스타의 거리에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스타의 거리 바닥에 새겨진 추억의 스타 이름을 하나 하나 찾아 보며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거리 공연들이 이어진다.
이곳 스타의 거리에서 자기들만의 추억을 만들거나 스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진 사람들의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타가 되고 싶은 사람....스타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곳, 헐리우드... 한민관이 여기 와서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연락해~!" 하면서 명함을 뿌린다면...... 그 명함... 금새 동이 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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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는 영화 스튜디오가 많이 있지만 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인기있는 곳은 당연히 유니버셜 스튜디오(Universal Studio Hollywood)이다.

 

세계 최대의 영화 스튜디오 답게 약 170만 라는 광대한 부지에 설립된 이 곳은 트램 투어와 스튜디오 센터, 엔터테인먼트 센터 등으로 나누어져있으며 스튜디오 옆에는 1950년대 풍의 쇼핑 센터와 유니버셜 시티워크도 있다. 

 

 

 입구에 들어가면 바로 엔터테인먼트 센터와 레스토랑 , 쇼핑숍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인기있는 '워터월드(water world)'를 관람하기로 했다. 남편이 몇 년전에 와서 보고는 재미있다고 자랑하던 것이 기억나서였지만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에서 보았던 세트장이 무척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별로 흥행도 못했다는데 워터 월드 공연장은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 공연장은 반원으로 된 관객석과 물속에 담겨있는 폐선 그리고 그 앞의 바다(?)로  되어있었는데 앞에 앉아서 자세히 보려고 하니 남편이 뒤로 가자고 한다. 앞에 앉으면 워터 스쿠터가 일부러 튕기는 물살에 옷을 다 버리기 일쑤라나...... 

 

 

내용은 워터 월드와 같았고 영화보다 희극적인 요소가 더 첨가된 것이 특징이었다.

 

 

악당들의 배가 폐선으로 다가오면 워터 스쿠터를 탄 악당과 선당(?)의 추격전이 벌어진다. 이 때 워터 스쿠터들이 회전하거나 갑자기 정지하면서 관객석으로 물을 튀기기도 하는데 어떤 악당들은 객석으로 올라와 양동이에 물을 퍼가지고 관객들의 머리에 들어붓고는 큰 소리로 껄껄대고 웃으며 관객들을 조롱한다. 앞 자리에 앉으면 완전히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되는데 관객들은 새앙쥐꼴이 되어가지고도 뭐가 그리 좋은지 재밌다고 깔깔거리고 난리다. 

 

 

 악당들이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 거꾸로 매달기도 하는데 주인공이 위기를 모면하고 악당을 무찌르는 건 헐리우드영화의 정석이므로 결말은 안 봐도 비디오다....^^

 

 크라이맥스에 이르면 불지르고, 폭탄 터뜨리고, 불꽃이 올라가고 완전 난리난리다^^
아주 재미있으니 혹시 가실 기회가 되시면 빠뜨리지 말고 보시길.....

 

 

어린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슈렉과 피요나 공주의 집도 있다.  

 

 

거대한 세트장을 돌아보기 위해 엔터테인먼트 센터를 지나 긴 에스컬레이터를 탄 뒤 다시 4량으로 편성된 트램에 타면 이때부터 영화의 세트나 무대 뒤를 40여 분간 돌아보게 되는데 마술과 같은 영화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되는데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멕시코 풍의 무대, 서부 영화의 세트,킹콩과 죠스의 세트, 대홍수나 대지진 등의 생생한 영화 세트를 지나 보게 된다. 우리가 많이 보아서 알고 있던 영화의 세트가 알고보면 약간 시시한 세트에서 촬영됐다는 걸 보면 영화의 포장이 얼마나 과장된것인가도 느낄수가 있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세트 옆을 지나가게 되면  갑자기 콰이강의 다리가 무너졌다가 트램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원상복귀된다.

 

 

 대홍수 영화를 찍은 세트장에선  상류에서 갑자기 엄청난 양의 물이 밀려와서 마을을 휩쓸었다가는 금방 물이 마른다. 그리고 다음 트램이 오면 또 엄청난 홍수가 마을을 휩쓴다. 

 

 

한낮의 정적이 흐르는 서부 영화의 세트장에서는 어디선가 쌍권총잽이가 나타날 것만 같다.

 

 '백투더 퓨처'에 나왔던 세트장을 기억하는 분도 있으시리라...
  

 

노틀담의 곱추의 세트장도 있다.  파리에서 찍은 줄 알았더니.....

 

 

동화의 세계같은 세트장은 본적이 없는 영화라서 영화 제목은 패쓰~~!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세트장 등....세트장이 끝없이 이어진다. 

 

 

재난 영화의 세트장에서는 바로 눈앞에서 불이 나고 끄는 현장을 보여 주기도 한다.

 트램 투어를 마치고 죠스가 있는 곳에서 놀이기구 배를 타고 한바퀴 돌았는데 제일 마지막에 어두운 터널을 한참 지나더니 갑자기 배가 낭떠러지로 뚝 떨어진다.

예상치 못한데다가 얼마나 급강하하던지 모두다 으악~! 소리를 내며 떨어졌는데 그 와중에도 뒤에서 뭔가 '딱!'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의 플라스틱 썬캡이 바람에 날아가서 바로 뒤에 앉은 미쿡(?) 남자의 높은 코를 정통으로 때린 것이다. 그 플라스틱 썬캡은 매우 딱딱한 재질로 되어있었는데 그것이 날아가서 정통으로 코를 맞췄으니 얼마나 아팠을까......그 남자는 "Oh~No~~"를 연발하며 코를 싸쥐고 아프다고 난리였다.
남편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해서 대신 사과에 사과를 거듭하였다. 덥다고 볼캡을 안 쓰려고 우기는 남편 얼굴이 탈까봐 달래고 달래서 새로 썬캡을 사주었는데 산지 하루 만에 그렇게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놀이기구 물 속으로 날려버렸다.
그것도 미쿡 아저씨의 코를 깨먹고.....ㅠㅠ 여러분도 놀이기구 탈 때는 꼬옥 모자는 벗어두고 타시길....^^

 

다시 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서 이번엔 '백 투더 퓨쳐 라이드'를 경험하기로 했다. 줄을 서서 들어가서 내부에 들어가 다시 8명 씩 나누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중에 옆에 있는 어린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 할 수 있었는데 20분 이상 서서 기다리는데 아이들이 전혀 떠들지도 않고 옆이나 앞의 애를 건드리지 않으며 자기 혼자 발을 비비적거리거나 손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대고 잠시도 못 참고 앞의 애들을 집적거리는 우리 나라 애들의 줄서 있는 모습과는 아주 대조를 이루는 점이었고 이런 점에서는 미국의 엄한 질서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투더 퓨쳐는 8인승의 데로라인을 타고 5분간의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체험하는 형태인데 불이 꺼지면 눈 앞에 나타나는 과거와 미래의 화면 속으로 모두가 들어가게 된다. 모형차가 화면의 상황에 맞게 앞 뒤 좌우로 움직이고 흔들려서 꼭 영화 속에  들어가서 함께 차를 타고 날아다니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스피드와 스릴 만점이며 돔형의 스크린은 음향 효과 또한 박진감이 넘쳐서 불이 꺼지고 차에서 내리면 모두 다 미래에서 돌아온 듯 손에 땀이 흥건하다.
 

 

관람을 다 마치고 나와 멀리 보이는 스튜디오 센터들에서는 쉬지 않고 많은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고 엔터테인먼트 센터 등에는 하루에 다 돌아볼 수 없는 여러가지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함께 제공해 주고 있다는데.......
LA에 가는 사람이라면 빠뜨리지 않고 가보아야 할 '꿈이 현실이 되는 놀이 동산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소개해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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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 온 김에 유명한 새들백 교회 주일 예배에 참여하고 릭 워렌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기 위해 새들백으로 향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남쪽으로 100 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새들백 교회'는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 Life),'목적이 이끄는 교회(The Purpose Driven Church)'의 저자로 잘 알려진 

릭 워렌(Rick Warren) 목사가 담임하는 '목적이 분명한' 교회이다. 

1980 년 릭 워렌 목사의 집에서 개척을 시작한 이 교회는 현재 매주 2만명 정도의 출석 교인과

재적 교인 3만 명 이상의 큰 교회로 성장하였다. 

세상 사람들의 사상과 세계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릭 워렌 목사는 

교회가 불신자 전도 중심의 회심 성장을 원한다면  불신자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잘 살펴 

들에게 맞는 목회 철학과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한 사역을 지속해 왔다.

 

 

새들백 교회의 엄청나게 큰 주차장을 지나면 저 멀리 Worship Center가 보이는데 

전통적인 교회 예배당의 멋진 모습을 기대하고 가는 사람들에게 새들백 교회 예배실은 실망을 안겨 줄 수 있다. 

이 예배실이 지어지기 이전엔 아주 큰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데

지금의 예배실 또한 매우 단순하고 실용적인 건물이다.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웃음으로 맞이하는 봉사자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유아실이나 놀이방들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은 물론 잘 되어 있고 

이렇게 성도들과 탐방객들을 위해 마련한 커피 또한 끝내 주는 맛이다.

 

 

 

교회 옆엔 마련된 인터넷 공간에선 누구나 교회 프로그램을 검색하여  교회의 예배나 성장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예배당 양쪽은 큰 유리로 되어 있어 예배 도중에도 하늘과 구름이 다 보여 시원한 느낌이 든다. 

예배당 안이 꽉 차면 바깥에 앉아 유리창을 통해 실내를 보면서 예배에 참여할 수도 있다. 

실내의 의자 또한 쉽게 접어 넣을 수 있는 단순한 플라스틱 의자 일색인데 모든 것에 장식을 배제하고 실용성을 높였다.

 

 

이 날 따라 예배당 앞에 웬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들이 백여명 이상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결혼식 예배를 하는건가...하고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Father's Day 라서 'Renewing our Vows'라는 특별한 예배가 준비되어 있었다. 

수백명의 중고 신랑과 신부들이 결혼식 복장으로 참가해서 새롭게 부부들의 애정을 다시 확인하는 예배였다.

 

 

가스펠 찬양 가수들의 노래에 맞추어 수백쌍의 부부들이 모두 부케를 들고 입장하자 예배가 시작되었다. 

 

 

예배실의 전면은 우리나라의 많은 교회들 처럼 엄숙한 강단 장식을 하지 않았고 

대형 화면을 통해 비쳐지는 예배 시간의 영상들, 천정 가득히 붙어 있는 조명들은

예배실이 아니라 무슨 대형 콘서트장에 온 것 같다.

예배 시간이 되면 사회자의 간단한 환영의 인사말 후에 화려한 연주와 함께 찬양이 시작되는데 

피아노와 오르간이 울리고 가운을 입은 성가대의 주악에 맞춰 묵도를 드리는 식이 아니라 

20여명의 밴드의 연주에 맞춰 가스펠 가수가 현대적인 Worship Song을 부르면서 다 같이 찬양을 한다. 

가수들이 찬양을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예배가 진행되는데 예배라기 보다는 무슨 콘서트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찬양대가 특송을 하기도 하는데 역시 자유로운 복장을 입고 나온 소수의 찬양대가 

아주 영감있는 찬양을 불러 성도들을 감동시킨다.

 

 

양쪽에 걸려 있는 대형 화면을 통해 설교의 내용이 요약된 문장과 성경 구절이 비추어지며

 단순히 설교하는 설교자의 모습만 비추어주는 것에서 떠나 간단한 예화나 내용을 담은 동영상도 비추어주며 

설교가 마무리 될 무렵에는 주제에 따른 간증을 하는 내용도 삽입하는 등 

운영과 시스템은 거의 방송국 수준과 다를바 없을 정도였다.

 


20 분 정도의 찬양이 끝나면 설교로 이어지는데 그날은 Father's Day  예배라서 특별한 순서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팔장을 끼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릭 워렌 목사님과 사모님이다.)

리나라의 대부분의 교회처럼 강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마치 무대 같은 강단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설교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날의 설교 주제는 '부부의 사랑'에 대해 설교하던 도중 갑자기 결혼한 사람들 다 일어나라고 그런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길래 나와 남편도 마지 못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부부끼리 서로 마주 보라고 그러더니  "신랑은 당신의 신부에게 키스하시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예배에 참석한 많은 부부들이 일어서서 끌어안고 키스를 한다.

그냥 가볍게 살짝 키스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부등켜 안고 열렬한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과 나, 처음엔 좀 망설여지기도 하고 약간 황당하기도 해서 그냥 둘이 그냥 바라보고 웃고 있었는데

당체 키스 타임이 끝이 안 난다^^;; 

그러다가 에이~ 이 때 안 해보면 언제 수천명의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키스를 한번 해보겠냐....하면서 

리도 생전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그것도 주일 예배 도중에......찐한 키스를 한참 동안 나누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기분 엄청 좋다. 

릭 워렌 목사님을 만나 반갑게 감사의 인사라도 나누고 싶을 정도...^^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 이렇게 신앙 서적이나 찬양 CD를 살펴볼 수도 있고 

각 봉사 부서의 테이블에는 어떤 내용의 봉사가 언제 필요한지 등의 자세한 내용을 담은 안내서들이 있어 

상담을 원하는 분들은 언제든지 상담할 수 있는 여러가지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릭 워렌 목사는 말한다.

 "우리의 꿈은 상처 받은 사람들, 억압 받는 사람들, 좌절된 사람들, 갈등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용납, 도움, 소망, 용서, 인도와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젼은 다만 새들백 교회만의 비젼이 아닐 것이다. 

이 땅에 세워진 모든 교회들이 갖고 있는 비젼이며 교회가 세상을 향해 이룰 목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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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1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패서디나(Pasadena)'는 치페와어로 '계곡의 정상'이라는 뜻인데
도시 전체가 야자수와 올리브, 아보카도가 잘 어울려져 경관이 대단히 아름다운 곳이다.
고급 주택가와 각종 연구소, 대학, 미술관,식물원등이 밀집되어 있는 패서디나는 
미서부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곳으로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로 손꼽힌다고 한다. 




1887년 산타페 철도가 개통되자 동부 해안의 부유한 사람들이
남부 켈리포니아의 따뜻한 태양아래 정착하기 시작하였는데
태양을 사랑하는 예술가와 보헤미안들도 이곳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창조력과 부의 결합은 패서디나를 현재의 화려한 문화의 도시로 성장하게 만들어준 밑거름.

도시는 아주 잘 짜여진 계획 도시인데 중심지에는 멋진 건물들이 많고
특히 블록마다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바로크풍 교회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주 장관이다.
노턴 사이먼 박물관의 동쪽인 올드 패서디나는 1880년대와 90년대 상업 건물이 늘어선 12개의 블록을 복원하였는데
오래된 벽돌로 된 고풍스러운 시가지에는 레스토랑, 부티크, 카페, 바, 나이트 클럽 등이 늘어서 있고
빅토리아 양식, 스페인 식민지시대양식, 아르데코 양식의 혼합된 건물을 구경할 수 있다.

산 가브리엘 밸리 지역은 명문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을 비롯해
노튼 사이먼 미술관, 헌팅톤 라이브러리 & 정원, 퍼시픽 아시아 뮤지엄 등
볼만한 가치가 있는 훌륭한 박물관을 갖추고 있는 학문적으로 유명한 지역이기도 하다. 
교외의 부호들의 대저택들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집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이며
일반 주택들도 정원이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공원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패서디나의 인구는 십여만 정도인데 특히 매년 1월 1일에는 미식축구 결승전인 '로즈볼'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주일간 투숙했던 웨스틴 호텔 바로 옆에는 패서디나 시청이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크풍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패서디나 시청은 1925년 건립한 건물인데 특히 후원이 아름답다.

시청 후원과 내가 묵었던 웨스틴 호텔의 정원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서 산책하기에 안성 맞춤이었다.

점심 후 약간의 오침을 하고 호텔을 나와 느긋하게 산책을 하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들린다.
음악 소리에 이끌려 발을 옮기니 많은 사람이 시청 광장에 모여 앉아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있었다.
패서디나 시립 오케스트라의 자선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시청 앞 광장에 놓인 의자에나 뒷편 잔디에 앉아 자유롭게 연주를 듣고 있었는데
나도 하얀 포장을 친 자원 봉사자들의 노점에서 간식을 사서 들고 잔디밭에 앉아 편안하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감상했다. 

레파토리는 대부분 많이 알려진 곡 위주로 연주되었는데 연주 실력이 아주 수준급이었다. 

시청 맞은 편 다운타운에는 유명한 메이시 백화점이 있고 이어서 아케이드식 상가가 이어져 있었는데
이곳은 LA 젊은이들에게 고급 캐주얼 패션 빌리지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점포들은 인테리어도 잘 되어 있고 특히 아름다운 장신구가 많아서 발걸음을 떼어놓기 힘들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쇼핑도 하고 차도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중국풍으로 지어진 켈리포니아 주립극장에서는 오페라가 연주되고 있어서 사람들이 줄지어서 입장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미술관 옆 주차장 입구 장식 또한 현대 미술 작품 같은데
특히 패서디나는 헌팅턴 사이츠, 노턴 사이먼 미술관 등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는 문화의 도시여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 시내의 여러 미술관에서 수준높은 작품을 감상한 것도 크게 기억에 남는 일이다.



그 중 아시아 태평양 미술관에  들렸을 때의 일이다.
이 미술관에는 중국,일본,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미술품들이 많았는데
미술품의 수준들이 상당히 높았고 소장품 또한 수준급이라 단순한 동네 미술관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 주었다.
인구 13만이 좀 넘는 도시에 이렇게 문화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많다니....정말 부러운 부분이었다.

 

아시아 태평양 미술관의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다양한 아시아 태평양의 문화재 중
1층에는 특히 도자기가 많았고 2층에는 서예나 그림이  전시되어있었고
우리 나라 도자기나 서예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어서 내 눈길을 끌었다 

미술 작품을 돌아보던 중 2층 서예 전시실에서 미술관 수업을 하러 온 미국 어린이들을 만났다. 
한 1~2학년 쯤 되는 어린이 20명 정도가 서예 작품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수업 태도가 너무나 진지하였다.
떠들거나 돌아다니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고 모두가 교사의 설명을 눈을 반짝이며 숨을 죽이고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들의 진지한 태도가 너무나 기특해서 나 또한 아이들 옆에 서서 교사의 설명을 경청해 보았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날 작품을 설명하는 교사(박물관 직원인가...?)의 태도였다.
중국의 서예 작품을 설명을 하더니 미리 준비한 그림을 아이들에게 내 보여 주었다.
그것은 A4용지에 인쇄된 글자를 애들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무슨 글씨일까요...? 라고 묻는 것이었다.
A4 용지 한 장에 커다랗게 그려진 한자(漢字) 한 글자였는데 아주 획수가 복잡한 것이 나도 잘 알 수가 없었다.

교사의 설명을 듣는 아이들은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궁금해 하였는데
그 중 한 아이가 옆에 서서 설명을 듣던 나를 보더니 눈을 찡긋하며 도와 달라는 눈치를 보내는 것이었다.
동양인인 내가 한자를 잘 이해하리라 생각이 들었던가보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글자인지라 난 어깨를 치켜올리며 나도 모른다는 표현을 했다. 

잠시후 교사는 "이 글씨는 How are you 에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너무 놀란 나는 그 글씨를 자세히 보니 붓글씨로 How are you 를 한자처럼 위,중간,아래로 합해서 써놓은 글씨였던 것이다.
아마 영어만 아는 아이들에게 한자 문화를 더 친근하게 접근시키기 위함이었으리라......
그 날 나는 그 교사의 재치와 멋진 수업 준비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박물관 수업을 보면서 놀랐다는 표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도시 패서디나.....
마치 잘 가꾸어진 공원 같은 패서디나의 거리를 거닐며 아늑함과 편안함을 온 몸으로 느껴보니
왜 이 도시가 미국인들의 살고 싶은 도시 베스트에 손꼽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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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항을 출발, 태평양을 건너  LA 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니
미국 땅을 밟는다는 흥분에 미리부터 가슴이 설레인다.
기내식을 먹은 후 체력의 비축을 위해 잠을 쳥하였는데 
쉽게 잠이 오려하지 않아  미리 챙겨간 수면제 한알을 먹었다.
곧이어 졸음이 와서 눈이 스르르 감았는데 웅성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다시 기내식이 들어온다.

거의 다섯 시간 정도 푸욱 자고 일어났더니 피곤도 풀리고 몸도 가뿐하다.
기내식을 먹고 커피 한잔 마시고 나니 공항에 도착할 시간이다.
몸을 비틀며 괴로워 할 열시간의 긴 비행을 약 한 알로 가볍게 잘 이겨내었다.

오랜 시간 비행에는 가벼운 수면제 한 알 만큼 좋은 처방이 없는데 이 처방은 시차를 극복하는데도 매우 도움이 되고
항공기의 비좁은 좌석에서 장시간 여행했을 때 일어나는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폐혈전색전증)을 예방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 순전히 나 자신만의 노하우이니 태클은 사양...^^)

여성들에게 집중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
특히 연세많은 할머니들이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해서 여행할 때 가운데 자리에 끼이게 되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일어서게 하고 화장실 가는 것이 미안해 물도 잘 먹지 않게 되는데
장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을 경우 탈수 현상과 함꼐 다리 등에서 생긴 혈전이 폐 정맥에 쌓여 호흡 곤란을 일으키게 되어
런던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차에 실려가는 일이 벌어지거나 심지어는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열시간의 비행 끝에 LA 공항에 도착했다.
사람마다 세세히 인터뷰를 하는 통에 아주 긴 줄이 늘어서서 있었는데
내게도 뭐하러 왔느냐.....어디에 있을 작정이냐......시시콜콜 물어보는 통에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공항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런 일은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 때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여자 검색원이 내 청바지 뒷포켓의 자수놓인 로고조차  깔짝거리며 뜯어보고
몸에 피트되는 얇은 티셔츠 하나 입었는데도 셔츠를 들춰서 배를 보는 등 지나친 검색을 하는통에
어찌나 기분이 나쁜지.....다시 미국에 가고 싶은 맘이 들지 않을 정도였던 기억도 난다.

수속을 다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더운 기운은 끼쳐왔지만 우리나라의 여름철처럼 습하지 않고 보송보송해서 좋았다. 

 

 

우리나라 인천 공항과 비교하면 LA 공항은 낡고 비좁은 편이었다.

 

 

우리나라 김포 공항 같은 모습이랄까...?  기능 위주의 매우 수수한 공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밖에 나와서 버스를 타고  LA 에 속한 패서디나로 가던 도중  LA 다운타운을 지나게 되었다.

 

 

LA 대부분의 주택은 높은 건물이 없이 단층이나 2층 주택이고 다운타운에만 고층 건물이 밀집되어 있었다. 

 

 

고속도로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였고



 

주중이라서 그런지 교통량도 그다지 많지가 않았다.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석유 시추 시설.....여기저기서 석유를 시추하는 시설이 한창 가동 중이었다.


심지어 주택가 바로 옆에도 석유 시추 시설이 군데군데 있는 점이 정말 놀랍기도 하고 한편 무지 부럽기도 했다.

Wilshire Grand Hotel 에 여장을 풀고 돌아보았던  밤의 LA 다운 타운은 무지 화려하고 야경도 볼만 했다.


미국 여행의 주목적지는 LA  패서디나,


일을 다 마친 후에는 그랜드 캐년 일대와 라스베가스 등 미서부지역을 돌아보기로 일정을 잡았다.


늦게 자리에 누우니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두근거림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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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은 영국 여왕의 공식 런던 거주지인데

18세기초에 버킹엄 공작 가문을 위해 지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생겼다.
1761년에 조지 3세가 왕비를 위해 이 궁전을 사들인 뒤에
'왕비의 집'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1825년 개축했다. 
버킹엄궁의 동쪽 정면은 1913년에 애스턴 웨브 경이
빅토리아 여왕 기념상의 뒷배경으로 어울리도록 다시 설계했다고 한다. 


국왕으로서는 빅토리아 여왕이 처음 이 궁에 살았는데
국왕이 궁전에 있을 때면 왕실기가 휘날리고 날마다 근위병 근무교대식이 벌어진다.
유명한 왕실 근위병 교대식을 보려고 했으나 시간이 잘 맞지 않은 관계로
30분 이상 기다려도 볼 수가 없었다.
생각 외로 버킹엄 궁전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고
궁전 앞 마당도 좁은 것이 약간 초라하기까지 하였다.
관광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궁전 담 창살에 붙어서서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나도 창살을 부여잡고 안을 들여다 보았으나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뭐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버킹엄 궁전 바로 정면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비가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었는데 동상은 화려한 금 도금이 되어있었다.
궁전 앞 잔디밭은 넓고도 시원하여 남녀 노소 할 것없이 기념비 옆 분수 주위나 잔디밭에 널부러져 일광욕을 하고 있었는데
나도 잔디에 한번 길게 몸을 뻗쳐 보았지만 높은 위도에서 내리쪼이는 햇볕도 동양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나무 그늘 밑 잔디에서라도 런던의 오후를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으나
조급증이 병인 한국 여행객에게는 잠시의 시간도 아깝게 느껴지는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궁전 담장의 코너를 돌아나오려는데 궁전 담장 창살에 꽃다발이 여러 개 꽂혀 있는 것이 보인다.
뭐지...하고 살펴보고 있는데 담장 옆 길
바닥에 눈에 띄는 특이한 문장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다이아나 기념 거리 표시였다.
가운데 꽃문장이 새겨져있고 가장자리를 빙 돌아가며 'The Diana Princess of Wales Memorial Walk'라고 쓰여있었다.

영국 황태자의 아내로 세기의 결혼식을 올려 전셰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이제는 버킹엄 궁전 앞 길바닥에
초라하게 이름을 남기고 있는 다이애나......
웅장한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비와는 너무나 비교가 되는 모습이다.
비운의 삶을 살고 훌쩍 가버린 그녀를 생각하니 한 동안 가슴에 찐한 연민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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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 은 고대 이집트, 앗시리아, 그리스, 로마의 유물과 서구 선사시대의 유럽 켈트족의 유물, 로마시대의 영국의 유물,동양세계의 이슬람,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 동서고금의 문화유산을 모은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으로 세계 제일의 규모의 규모를 자랑한다.

 


 

세계 각국의 문화재를 찬탈하거나 헐값에 사와서 자기나라 박물관에 진열해 놓은 것이 약간은 미안했는지 박물관의 입장료는 무료인데 대신 입구에 자발적인 헌금을 받는 통이 있었다. 스스로 돈을 넣는 사람도 있는지 헌금통 안에는 세계각국의 돈이 들어있었는데 난 기분좋게 그 앞을 스쳐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의 외부는 이오니아식 열주가 서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모양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었지만 실내로 들어가니 밝고 현대적인 건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곳은 만남의 장소이고 오른 쪽의 둥근 건물은 원형 도서관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지나 이집트관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석상의 윗부분이 전시되어있었다. 이집트 람세스 2세(기원전 1270년경)의 석상인데 테베에 있는 그의 기념 신전에서 출토되었다. 턱에 달린 것은 수염인데 위엄을 나타내기위해 붙였다 한다. 가슴에 뚫린 구멍은 프랑스군이 가져오려고 뚫었지만 운반에 실패하고 영국인 벨조니가 인부 수백명을 동원해서 사막을 건너 영국으로 가져왔다.  

 

 

 

 

 파라오의 석관과 피라미드.  석실의 벽에 새겨진 글씨들을 그대로 떼어내왔다.  

 

 

 고대 중동 지방의 목동들이 쓰던 물맷돌.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눕힐 때 이런 물맷돌을 날렸으리라.....주먹만한 돌을 보니 쏜살 같이 날아가서 눈에 박히면 아무리 골리앗이라도 즉사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그 건물이 거의 껍데기만 덩그러니 서있는데 파르테논 신전에도 없던 조각품들이 대영박물관 파르테논 전시실에 원래 있던 그 위치대로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미이라 전시실엔 수많은 미이라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개나 고양이의 미이라도 있었다.


 


 

아주 덥고 건조한 지방에서 죽은 사람인가보다. 방부처리를 하거나 하는 미이라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의 시체같은데
죽은 당시의 모습 그대로 오랫동안 건조되어 미이라가 된 듯 하다. 옆에는 같이 출토된 부장품들이 놓여있다.

 

 

 

뼈만 남은 미이라들을 보니 인생이 참 덧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중국관,일본관,동남 아시아관을 거쳐 가장 마지막엔 한국관을 둘러보았는데 한국관 안은 기와집 대청 마루가 꾸며져 있었고 그 안에 실내 소품 몇 가지, 밖에는 부채나 도자기,책 몇 권이 고작이었다. 우리 박물관에서 대여해준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 문화를 세계만방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이런 큰 박물관에 훌륭한 문화재를 좀 많이 대여전시해주었으면 하는 맘이 간절하였다.

단지 우리 기업에서 기증한 에어콘 하나만큼은 지극히 빵빵하여 후텁지근한 여느 전시실과는 많이 비교가 되었는데 우리 전자 제품의 우수성을 영국에도 알리는 듯 느껴져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주마간산이라고 할까...... 이 큰 박물관을 하루에 후딱 해치우듯이 돌아보았다. 한 달을 둘러봐도 자세히 보지 못한다는 대영박물관은 남의 나라에서 가져온 유물들로 전시 공간이 부족할 만큼 가득히 차 있었는데 우리가 국력도 키워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나라가 격동의 기간들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우리의 문화재도 이집트처럼 외국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그 예로 쿠텐베르크 성경보다 70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도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도서관에 보존되어있지 않는가......새삼스럽게 우리 문화재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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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아침은 고요하다.

이드 파크에는 조깅을 하는 사람들,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조차도 조용하였다.

한 쪽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서 있길래 가보았더니

약간 높은 단 위에 한명이 서서 연설을 하고 있고
십여명의 사람들이 서서 그냥 조용히 연설을 듣고 있었다.

누구든지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은 하이드파크에 와서 연설을 한단다.

하지만 흥분된 느낌은 없었고 연사도 청중도 너무 조용하기만 하였다.

약한 안개에 싸여 아침의 하이드 파크는 분주함조차도 차분해보였다. 



하이드 파크 옆에는 로얄 앨버트 홀( Royal Albert  Hall )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 연주회장은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공의 지휘하에 1871년에 완공되었다.

마침 '프롬스(PROMS)' 가 열리는 기간이어서
앨버트홀앞에는 '프롬스'를 알리는깃발이 드리워져 있었다.

'프롬스'는 산책을 의미하는 ‘프롬나드(Promenade)’와 ‘콘서트(Concerts)’의 합성어인데

관객들이 공연장에서 음악을 산책한다는 낭만적인 뜻이 담겨 있다.

1895년 시작되었다고 하니 벌써 11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공연이다. 

'프롬스'의 공연은 클래식 공연이라 입장권이 비쌀 것 같지만

티켓값은 10~20 파운드(약1만 7500~3만5000원) 선으로 영국 물가로는 저렴한 편이다.

특히 인기가 높은 공연 무대 바로 앞 공터인 아레나(Arena)석 가격은 5파운드(약 8000원)에 불과하다.

입석이어서 서서 들어야하는 단점이 있지만 나라도 싼 값에 그 좌석을 사서 연주를 들을 것 같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나라 클래식 공연의 티켓 값은 너무 비싸지 않은가......

왠만한 이름난 연주자 티켓 값이 뒷 좌석 값도 10만원이 훌쩍 넘는 이 현실......

우리도 이처럼 싼 값에 유명 연주가들의 연주를 들을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맘 간절하였다. 

 

 

로얄 앨버트홀 맞은 편 켄싱튼 가든 쪽으론 앨버트 기념비(Albert Memorial)가 서있다.

빅토리아 여왕이 먼저 죽은 남편 앨버트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고딕 양식의 기념탑이다.

유럽에서는 보기 힘들게 기념비 전체가 금으로 도금되어 있는데

가운데 있는 앨버트 공의 금동상 손에는 당시 만국박람회의 카다로그가 들려있고

위의 삼각형 지붕위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금으로 장식된 앨버트 기념비를 보니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사랑이 눈에 선히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념비의 4면에는 4대륙을 상징하는 조각들이 각각 세워져 있다.  대영제국의 세력이 4대륙에 뻗쳐져 있었던 것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앨버트 기념비에서 자리를 옮겨 국회의사당(Houses of Parliament)으로 향했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국회의사당은 전세계 모든 의사당 건물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11세기에 왕궁으로 건축되었던 옛 건물은 1834년에 일어난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는데,

고딕 복고 양식의 거대한 건축물로 재건되어 템즈 강 왼쪽 언덕에 우뚝 솟아 있다.

건물은 정면 길이만도 300m가 넘고 천개 이상의 방을 갖추고 있으며

그 유명한 빅벤은 높이가 거의 100m로 아직도 손으로 태엽을 감는 전문적인 시간지기가 있다.

그리고 꼭대기 조그만 방에 불이 켜져있으면 '의회중'이란 것을 나타낸단다.

 

 

남의 나라 국회의사당이라 안으로 들어가보진 못하고(하긴 우리 나라 의사당도 함부로 가보지 못하긴 마찬가구나.)

의사당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템즈강 건너편으로 가서 조망하기로 했다.

템즈강변에 서니 의사당의 모습이 한눈에 잘 들어왔고 9시 뉴스에서 런던 특파원이 트렌치 코트를 입고(꼭 트렌치 코트라니까....!)

"지금까지 런던에서 특파원 ***였습니다."하던 자리에 서서 나도 특파원이라도 된 듯 흉내를 내며 사진을 찍었다.

템즈강변은 화단이 깨끗하게 잘 조성이 되어있었고 이뿐 벤치도 군데군데 놓여있어서 데이트하는 선남선녀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들처럼 다정한 모습으로 앉아 여러 포즈로 사진도 찍어보고 한가한 시간을 가졌다.

  

 

바로 주변에는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Abbey)이 있다.웨스트민스터는 "서쪽의 대사원"이라는 뜻으로 시 서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참회 왕 에드워드(Eward the confessor) 의해 지어졌으며 프랑스에서 온 노르망디공 윌리엄은 잉글랜드 왕의 정당한 후계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1066년에 여기서 대관식을 치렀다 . 그 후 40명이 넘는 영국의 왕이 차례로 대관식을 거행하는 등 영국 왕실의 역사가 응축된 곳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고딕양식의 이 건물에는 가늘고 긴 스테인트 글라스가 장관인데 사원안에는 찰스디킨스, T.S.엘리어트, 윌리엄 워즈워스 대한 인물의 묘가 가득여 관이 너무 많아 바닥에 세워놓았을 정도라고 한다. 바로 옆의 도서관 건물도 역사를 말해주는 듯 고색이 풍겨나왔다. 

 


타워브리지 바로 옆에는 런던 타워가 있다. 초창기 왕실 겸 요새에서 후에는 VIP용 감옥으로 전환되었는데'천일의 앤'이 헨리 8세와 불꽃같은 1000일의 사랑을 나누고 참수형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템즈강의 다리를 사이에 두고 국회의사당 건물의 비껴서 맞은 편엔 그 이름도 유명한 런던 아이(London Eye)가 서있다. 
일명 Millennium Wheel 이라고 하는데 거대한 자전거 바퀴를 연상케 하는 놀이기구이다.
높이 135m, 무게는 2100 톤이라고 하는데 올라가면 템즈강 주변 일대를 다 관람할 수 있다.
한번 타는데 30분이 걸린다는데 줄이 한도 없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관람하는데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파리의 에펠탑 처럼 런던도 뭔가 관광과 함께 즐길 거리가 필요했었나보다.하지만
파리의 에펠탑이 주변 경관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것관 달리
런던 아이는 주변의 고풍스런 건물과 어울리지 않게 ' 웬 바퀴?'이런 느낌을 주었다.
국회의사당이나 런던 브리지 같은 자랑거리가 있는데 왜 이런 물건을 만들었을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흉물스럽기도 한 물건이었지만런던 사람들은 무지 좋아하고 에펠탑에 비견할 만하다고 자랑한다고 한다.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은 영국 여왕의 공식 런던 거주지이다.

유명한 왕실 근위병 교대식을 보려고 했으나 시간이 잘 맞지 않은 관계로 30분 이상 기다려도 볼 수가 없었다.

생각 외로 버킹엄 궁전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고 궁전 앞 마당도 좁은 것이 약간 초라하기까지 하였다.

관광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궁전 담 창살에 붙어서서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나도 창살을 부여잡고 안을 들여다 보았으나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뭐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버킹엄 궁전 바로 정면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비가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었는데 역시 동상은 금 도금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빠뜨리지 않아야 할 곳은 뭐니 뭐니 해도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
고대 이집트, 앗시리아, 그리스, 로마의 유물과
서구 선사시대의 유럽 켈트족의 유물, 로마시대의 영국의 유물,
이슬람,중국,일본,한국 등 동서고금이 문화유산을 한데 아우른 세계 제일 규모의 박물관이다.
대영박물관에 대해선 다시 자세히 포스팅하기로 하고 다운타운으로...

 

 

런던 다운타운의 메인 스트리트는 정말 길이 좁았다.2차선 정도 밖에 안 되는 좁은 길에 대형 2층 버스는 얼마나 많이 다니는지......버스가 몇 대 모이면 위 사진과 같이 그야말로 길이 답답하다.우리와 다른 점은 횡단보도가 두길을 직선으로 이어주지 않고 한 쪽 길을 건넌후 가운데 있는 보행자도로에 섰다가 다시 좀 더 가서남은 쪽 길을 건너는 ㄱ자와  ㄴ자를 혼합해놓은 듯한 그런 형태의 횡단보도가 많았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에는 영국사람들은 신사여서 질서나 규칙을 잘 지킨다고 들었는데런던 사람들은 횡단 보도가 아닌데에도 서있다가  차만 안 오면 아무데서나 마구 건너는 것이었다.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어디나 다 똑 같은 듯...... 

 

  

2층 버스 외에도 관광객들을 위한 2층 투어버스도 많이 다녔다.2층이 오픈되어있어서 걸어다니는 것보다 더 쉽고 편안하게 런던 관광을 할수 있는 버스이다. 다운 타운은 다양한 백화점, 자그마한 기념품 가게 들이 빼곡이 자리잡고 있어서 여행객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먼저 근처의 캐시미어 전문 판매점에 들러서 보고 있으니 점원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난 그냥 둘러보러왔다고 하니 그래도 점원은 친절하고 상세하게 영국산 캐시미어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가게를 나와 백화점 몇 군데를 들려보았는데 상품의 상태는 우리와 별반 다를것이 없었고 우리나라 백화점보다는 훨씬 소박한 느낌이 들었다. 거리 곳곳에 1인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스코틀랜드 전통 백파이프 연주, 온몸에 흰페인트를 칠하고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있어 그 주변에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구경하고 있었다.  

 

 


거리 여기저기의 노점에는 이쁜 기념품이 참 많았는데 2파운드 짜리 열쇠고리 2개, 역시 2파운드 짜리 냉장고용 자석 서너개를 샀다. 비록 이름난 명품이 아니더라도 타워브리지나 버킹검 근위병,2층 버스들이 새겨진 냉장고용 좌석은 아직도 우리 집 냉장고 문에 붙어서 문을 열 때마다 런던에서의 추억을 되살리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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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스타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너 도착한 런던의 워터루 역.
역을 나서니 이미 저녁 때가 되었으므로 먼저 식사부터 하기로 하고
다운타운의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오드리'라는 100년 정도 된 레스토랑이었는데 2층에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벌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유럽 사람들은 실외에서 식사하는 것이 더 인기가 있어서 모든 예약은 실외부터 찬다고 해서 왜 그런가 했더니

런던에 가니 그 까닭을 알 수가 있었다.

실내에 들어가니 몇 년 만에 찾아온 더위에 식당안은 거의 찜통이었다.

그런데 에어콘은 커녕 선풍기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덥다고 했더니 종업원이 창문을 위로 올리더니 창틀에다 의자를 하나 끼워넣었다.

창문이 오래 되어 의자를 꺼내면 창문이 다시 덜컥하고 닫겨 버리기 때문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집에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없이 사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한다.

물론 위도가 높아 우리나라보다 훨씬 시원하고 여름도 그다지 덥지 않긴 하지만 체감하는 더위는 서울의 더위나 비슷하였다.

그런데 버스에도 에어컨이 없고 레스토랑에도 선풍기조차도 없이 사는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이 왜 선풍기가 없냐고 물으면 도리어 그 물음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이렇게 되묻는다고 한다.

"아니....여름 한달 정도밖에 안 더운데 왜 선풍기를 사서 돈을 낭비해요?" 라고...  

특히 대부분의 혼자 사는 노인들은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 지내다 보니

몇 년 만에 한 번 씩 유럽에 살인적인 더위가 찾아오면

그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하여 시체로 발견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란다.

우리 나라의 경우 여름이 덥고 습하여 정말 견디기 힘들기도 하지만 조금도 불편한 걸 못 참는 국민성 때문에

달동네에 가도 집집마다 에어콘이 있는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식사로 나온 음식은 생선 커틀렛에 감자 튀김,그리고 빵과 수프가 전부였다.

말로만 듣던 피시 앤 칩스였다.

영국 음식은 소박하기로 이름이 나서 프랑스 요리와는 어느모로 봐도 비교가 된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남자는 프랑스 여자와 결혼하고 영국 음식을 먹고 사는 남자'라고 하는 우스개가 생겼나보다.

 

 

더운 여름날 찜통같은 실내에서 음식을 먹느라 땀을 흘리고 나니 빨리 바깥으로 나오고 싶었다.

실외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그제서야 현지 사람들이 왜 실외에서 식사를 하는걸 즐기는지 이해가 되었다.

식사를 한후 첼시 빌리지 호텔에서 묵게 되었는데 이 동네는 바로 유명한 '첼시'구단의 본산지라고 한다.

호텔 바로 옆에 첼시 구장의 담벼락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호텔 안에도 첼시구단의 잡지가 방마다 자리잡고 있었다.

저녁이 되니 쭉쭉 뻗은 영국미인들이 속속 호텔로 모여들었는데

이 호텔의 나이트 클럽이 유명해서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든다고 하였다.

한번 들어가서 구경해 보고싶은 마음도 간절하였으나 그러지 못하고

남편과 나는 런던 주재 선교사인 C선교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호텔에서 C선교사의 차를 타고 그 분의 집으로 갔는데 전형적인 영국의 주택이었다.

영국의 전형적인 주택은 2층집이 서로 연결되어있는 빌라 형태인데

잉글랜드에서는 대부분 이런 형태의 가옥에 살고 아파트는 20%정도이라고 한다.

실내 면적은 대부분 아주 좁았는데 선교사의 집은 10평 정도의 빌라가 1,2층이 연결되어있는 구조였다.

아래는 크지 않은 방이 두개 있고 거실과 주방이 조그마하게 이어져있었고 뒷편에는 조그마한 뜰이 붙어있었다.

(영국 사람의 대부분의 취미는 이 조그마한 정원을 열심히 가꾸는 것이란다.)

이런 구조의 집이 대부분의 런던의 가옥 형태인데

월세가 거의 2000유로 정도라고 하니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뉴욕의 집세가 살인적이라고 하더니 런던도 물가도 정말 만만치 않았다.

런던에 있는 중국 불법 체류자들을 집에다 재우며 돌보고 있는 C선교사는 본국에서 오는 선교비로 사역비를 다 채울 수 없어

택시 운전을 하여 생활비와 불법체류자 후원비를 충당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분에게서 영국에 사는 여러 가지 고충을 들을 수가 있었다.

영국인의 생활태도는 아직도 전통을 사랑하고 변화를 싫어하며 매우 보수적어서 아직도 귀족제도가 남아 있고

판사는 여전히 가발을 쓰고 재판을 하며  일요일에 극장은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아침에 우체국을 가면 문을 열기 1시간전부터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어디서든 가면 오랜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너무나 불편한데도 전혀 바꾸려고 하지 않고 순응하며 사는 것이 성질 급한 한국 사람으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고 하였다.

(번호표를 배부한다든지 하면 될텐데...... 우리 나라 사람과 성격이 비슷한 터키에 가니 기차표 살 때 조차

번호표를 뽑아 줄 서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영국의 의료제도는 다 무상인데 영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이 더 힘들다고 하였다.

노인들이 병원에 줄지어 진료를 받고 있는데다 병원의 일처리도 무지 느려서

병원 진료를 한 번 받으려면 6개월은 예약이 차 있어 정작 아플 때 치료받기 힘들다고 한다.

선교사의 부인은 치아가 다 망가져서 치료를 받으려고 했으나 1년의 예약이 다 차 있어서 기다리면 치아가 망가질 지경이 되어

나중에 할 수 없이 한국까지 와서 거금을 주고 치아 치료를 하기도 했다.

얼마 전엔가 우리 뉴스에 영국 사람들이 치과 진료를 받으러

유럽의 다른 나라로 원정을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 생각이 났다.

역시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한국식으로 사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더니.....

영국에 온 첫날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면서 자리에 들어 잠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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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 파리 북역 (Gare du Nord)에 도착했다. 

어디서나 역 근처는 약간 어수선하고 너저분한데 파리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것이 도리어 약간의 친근함마저 가져다 주었다.

 


기차를 타기에 앞서 역 주변 약간 허름한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달팽이 요리를 먹었다.

파리에서 먹는 달팽이 요리는 분명 최고의 것이어야 하는데

역 근처의 레스토랑이라서 그런지 맛은 그럭저럭이었다.

 

도리어 경주의 현대 레스토랑 '피사'에서 먹은 것이 더 훌륭한 맛이었다. 
음식을 먹은 후에는 꼭 화장실은 사용하고 나온다.

우리 나라에서 후한 것 중에 하나는 화장실 인심과 물 인심일 것이다. 어느 식당을 가든지 앉으면 먼저 물부터 주고 '뭘 드실래요...'하고 물어보지 않는가....


그런데 유럽이든 미국이든 가는 식당 마다 물은 절대 주지 않는다.


자기 물을 가지고 가서 먹든지 아니면 물을 주문해서 먹고 꼭 돈을 지불해야 한다.


공짜로 물을 주면 물을 남기게 되는데 돈 주고 산 물은 어찌 그리 빨리 병이 비워지는지....ㅠㅠ


물이 먹고 싶어도 꾹 참고 목이 마른채로 다니기가 일쑤였다.


 

 

 

 

 

 

거기다 유럽에는 화장실 인심이 어찌 그리 고약한지.....

 

 

 

다니는곳 마다 화장실 입장료를 치뤄야 하는 곳이 많았다.


이 화장실 인심은 이탈리아가 제일 지독한데


어디서든 화장실 앞에 관리인이 버티고 앉아 25센트나 50센트를 받는다.


 

제일 황당한 것은 잔돈이 없는 경우.....


거스름돈을 내주기도 하는데 어떨 땐 울며 겨자먹기로 1유로를 내고 볼일을 보기도 했다.


 

 

 

 

 

 

돈을 주고 화장실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가는 곳 마다 화장실은 어찌 그리 자주 가고 싶은지......^^


게다가 길거리에 있는 유료화장실중에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문이 저절로 열리는 화장실도 있다지 않는가.


6분이라던가?....지나면 스르르 문이 열려 지극히 황당했다는 사람의 얘기도 생각이 난다.

 

 

 

 

 

 


레스토랑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파리 북역으로 향했다.


파리에는 "파리'라는 이름이 붙은 역은 없고 북역,동역,생라자르역, 리옹역,몽빠르나스역.....이런 이름의 역들이 있는데


북역은 보통 프랑스 북쪽의 벨기에나 덴마크,네덜란드,독일,영국으로 가는 기차들을 탈 수 있는 곳이다.

 

 

 

 

 

 


역 앞에는 쓰레기도 널부러져 있고 노숙자들이 퀘퀘한 냄새를 풍기며 누워있기도 했다.
역 안은 매우 넓었으며 안은 현대식으로 되어있었다.


'아멜리에' 영화에서는 기차역 안의 즉석 사진을 찍는 부스에서 찢어진 사진들을 주워 앨범에 붙이는 장면이 여러번 나오는데


그게 북역이었던가...어디서 많이 본 듯한 친근한 건물이었다. 


 


 

 

 

 

 

 

 


기차표를 받아서 보니
파리 북역에서 런던 워터루역이라고 적혀있었다. 이제 유로스타를 타는 것이다! 

 

국경을 지나기 때문에 검색대도 지나서 플랫폼에 내려가니 수려한 모습의 유로스타가 서 있었다.
유로스타는 우리의 KTX랑 내부 구조나 시트가 거의 비슷하다.
좌석간 길이나 좌석의 넓이나 가운데 마주 보고 있는 것,입구의 짐칸까지 모두 닮은 꼴이다.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더니 이윽고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차창 뒤로 날아가는 전원의 풍경.....평화롭고 고즈녁한 프랑스 농촌의 풍경이다.


서서히 집들이 줄어들더니 갑자기 차창 밖이 시커매졌고 기차의 굉음이 우리의 귀에도 전해졌다.

 

 

 

터널로 들어선 것이다.

 

 

 

이제 도버 해협을 지하 터널로 건너는 것이다.

 

파리와 런던 간을 운행하는 유로스타는 이렇게 구간의 대부분을 해저 터널로 운행한다.

 

 

 

옛날 같으면 배로 오랜 시간을 풍랑과 싸우며 건너가야할 뱃길을 기차 안에 편안하게 앉아서 담소하며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유로스타는 이윽고 워터루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개찰구를 나오니 모든 표지판의 글씨가 <영어>로 되어있었다. 영국이니 영어가 쓰인 것이 당연한 일인데 왜 그리 신기한지...... 사실 독일,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를 거쳐오는 동안


영어는 구경도 못하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독일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만 봐왔던 터이다.

우리 나라는 모든 표지판이 한글,영어,심지어 중국어로 친절하게 표기되어있는데

 

 

 

독일엔 독일어로만, 프랑스엔 프랑스어로만,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어로만 표지판에 표기되어있었다.우리 나라 언어가 제일 우수하니 답답하면 너희가 배워서 와라....이렇게 말하는 듯이 보였다.
제각기 자기 민족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여행객으로써는 지독히 불편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표지판이나 다른 안내 문구를 볼 때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하고 영어와 비교해서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팠던게 사실이다.

 

 

 

 

 

 

이탈리아어는 그나마 영어가 유추되는 단어가 많았지만 불어란....@.@
학교 다닐 때 불어를 공부하기는 했지만 생각나는건 "봉 쥬르 무슈~"와 "메르시 보꾸" 뿐이었으니....ㅋ

우리 나라 사람에게 영어는 거의 제2 국어라는 우스개 소리를 듣고 웬 희한한 소리가 다 있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워터루역에 내려 영어를 보는 순간 갑자기 모든 글자가 눈에 들어오며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영어를 보면서 그렇게 눈이 시원했던 때는 그 때 뿐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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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어린이날은 1922년 소파 방정환 선생님께서 5월 1일을 어린이를 위한 기념일로 정한 것에서 유래된다.
그 이후 1946년,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바꾸어 오늘까지 내려오는데 선물을 사 주고 맛있는 외식을 하는 것이 대세인 우리 나라의 어린이날과는 달리 일본의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의 무병 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는 전통 축제(마쯔리)의 하나인데 남자 어린이날과 여자 어린이날이 따로 있다는 점이 특히 다른 점이다.

여자 어린이날인 '히나 마쯔리(ひな祭り)'는 3월 3일이다.
'히나'는 전통 인형의 이름인데 에도 시대 일본에서 행해진 히나 인형(히나닌교,形) 놀이에서 유래되었다.
그 날에는 딸을 둔 가정에서 인형의 단을 만들어 놓고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축제가 끝나면 단을 치워야 하는데
단을 치우지 않을 시에 딸의 결혼이 늦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주의를 한다고 한다. 

남자 어린이날은 '단고노셋쿠 (端午の節句)'라 하여 우리와 같은 5월 5일이다.
남자 어린이의 건강한 성장을 기원하는 날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치루곤 한다.
특히 이 날은 남자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고이노보리(鯉幟 , のぼり)'를 세우고 무사 인형이나 갑옷,투구를 장식도 하여 나쁜 액을 물리치고 건강하게 자라길 기원하고 또한 대나무 잎이나 떡갈나무 잎에 싼 찹쌀떡을 먹는 풍습이 있다.

 '고이노보리(鯉幟 , のぼり)' 또한 에도 시대부터 유래된 전통 행사인데 '고이'는 잉어,'노보리'는 오른다는 말로 잉어가 오른다는 뜻이다.
남자 어린이의 출세와 건강을 기원하는 표시로 잉어 깃발을 집 앞에 장식하는데 잉어 깃발의 수는 보통 가족의 수에 맞게 단다고 한다.
이는 잉어가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된다는 중국 전설에서 유래하였는데 출세를 가르키는 말인 '등용문()'과도 관련있는 전설이다. 

고이노보리는 마을 단위로 수십개 혹은 수 백개씩 다는 마을도 있다고 하는데 마침 운 좋게도 어린이날 대마도에 발을 디디게 되어
마을마다 잉어 깃발이 푸른 하늘 아래에 흔들거리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대마도 여행 중 만난 고이노보리 장식을 사진으로 소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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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파리에 가서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스럼없이 "루브르 미술관!"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어릴 때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나인지라 책에 삽입된
명화의 사진을 발견하기만 하면 가위로 오려내어

나만의 스크랩북을 만들어놓고는 혼자서 보면서 즐거워했던 날들이 있었는데....

그런 나에게 루브르 미술관 관람은 내가 어릴 적 애지중지하며 간직하던 

스크랩북 속의 명화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나 마찬가지였다.




루브르( Musee du Louvre )의 정식 명칭은 Grand Louvre이다.

이 미술관은 12세기초에 성채로 건립이 된 왕궁의 일부인데
1682년에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로 왕궁을 옮김으로 폐궁이 되고

공공박물관으로 쓰이다가 1793년에 혁명정부에 의해 국립 박물관으로 정식 공개되었다.


이 곳에 수집된 고대에서 19세기까지의 수십 만점의 작품들은
고대 아시아관,고대 이집트관,그리스와 로마관,

고대오리엔트관,조각관,회화관,미술 공예품관등
7 개의 전시실로 나뉘어져있다.

전시품 중에서도  '승리의 여신상'과 미로의 '비너스',다빈치의 '모나리자', 드라끄로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들은
꼭 지나치지 말고 감상해야 할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 입구으로 들어서니 아름다운 루브르 가운데 유리 피라미드가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미술관과 큰 유리 피라미드,작은 피라미드가 겹쳐 전시실이 잘 안 보여서 
약간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유리 피라미드를 루브르에 세운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에

 

중세 왕궁 건물 안에 유리 피라미드가 왠 일이냐고 코웃음 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실제로 본 유리 피라미드는 의외로 주변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이 유리 피라미드는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의 대루브르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중국계 미국인 이오밍 페이가 다자인했다.

 

세계 최고의 예술문화국민이라고 자부하는프랑스 사람을 젖히고 중국계 미국인이 다자인한 피라미드가 루브르에 서있다니.....

 

예술에 있어서는 어떤 나라의 작품이라도 안을 수 있는 프랑스인의 포용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브르의 입장 티켓을 받아 입구에서 티켓을 내미니 그냥 귀퉁이를 약간 쭉 찢고 다시 준다.

 



 

피라미드 안을 통하여 각 전시실로 이동할 수 있게 설계되어서 신기하기만 했다.

지하라 할 수 없을 만큼 햇빛이 잘 비치고 따스했고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드러나 보였다.

 

 


 

피라미드 안에서 본 전시실과 나선형 엘리베이터의 일부분이다.

 

 


 

피라미드 안 엘리베이터는 아주 재미있다.


나선형의 계단이 피라미드의 바깥과 지하를 연결해주는데
그 속을 원통형의 엘리베이터가 오르고 내리게 되어있다.


즉 엘리베이터를 끼고 나선형의 계단이 있는 특이한 설계의 구조였다.

 

루브르의 전시실은 자연채광으로 되어있었는데 높은 천정 아래 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작품의 부분 채광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전시 작품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펑펑 찍어대고 있었는데


플래쉬 사용한 사진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고 전부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컴컴한 전시실에 전시작품만 부분 채광으로 해놓고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미술관만 보아 왔던지라 쪼끔은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루브르에서 제일 유명한 그림은 역시 레오나르드 다 빈치의 '모나리자'이다.

 

조그만 그림인 모나리자는 큰 전시실의 한 부분을 전부 다 차지하고 있었다.


모나리자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모여서서 기념 사진을 찍느라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뒤에서는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보이지도 않아서 할 수 없이
옆으로 파고 들어가서야 겨우 자세히 볼 수가 있었다.

다른 전시 작품은 다 그냥 전시되어있는데 모나리자만 유일하게 방탄 유리속에 싸여 있었다.

 

남들이 다 찍는 모나리자를 안 찍고 넘어 갈 수가 없어서 밀리는 인파 속에서 한컷 담아 보았다.
 

정면에서 찍으면 유리로 인한 반사가 염려되어 살짝 옆으로 비껴서서 찍었는데 다행히도 반사되지 않고 잘 나왔다.

 

좋은 사진은 아니었지만 오리지날 모나리자를 찍어보았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밀로의 '비너스'는 BC 150년 경 멘데레스 지역 안티오키아의 한 조각가가 만들었으며


1820년 에게해의 밀로스섬에서 발견되어 밀로의 비너스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역시 루브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에 하나이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는 1824 년의 작품이다.

 

그림 속의 여인의 시선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지 않은가....나도 눈을 맞추고 그녀를 응시해 보았다.

 

 


 

드라끄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1830년 7월 혁명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그린 그림이다.


파리 시민이 샤를 10세의 전제적인 포고 법령에 반하여 일으킨 소요 사태 중
가장 격렬했던 7월 28일의 장면이다.


 


 

미켈란제로의 '빈사의 노예'원래 '모세' 조각상의 주변의 있던 노예상이라고 한다. 





수만점의 루브르의 명화를 하루만에 주마간산으로 돌아 보았다.

파리에 오래 머물며 루브르나 오르세 등에서 더 많은 그림들을 감상하며 보낼 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그러지는 못했지만 어릴 적의 꿈이었던 명화들을 루브르에서 만나보았던 기쁨으로 인해 그날 밤은 오래도록 잠들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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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궁전은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에 있는 바로크양식의 궁전이다.


원래 루이 13세가 지은 사냥용 별장이었으나 1662년 무렵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고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다.


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었다.

이때 정원 쪽에 있던 주랑을 '거울의 방'이라는 호화로운 회랑으로 만들고  중앙에 있던 방을 '루이 14세의 방'으로 꾸몄다.


루이 14세는 각 지방의 영주들을 불러 살게 하였으므로 당시 이 궁전에는 약 5천 명이 살았다.


 

게란트가 쓴 <화장실 문화사〉에 의하면 프랑스의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루브르를 버리고 베르사유로 온것도 배설물로 가득찬 루브르를 피해서였다는 것이라는데


당시 궁전을 출입했던 수 많은 귀족들이 그들의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상상하면 그저 아찔해질 뿐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건물의 구석 벽이나 바닥 또는 정원의 풀숲이나 나무 밑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심지어는 안에서 봉지 같은 곳에 변을 보고 창문 밖으로 던지기도 했다.



그래서 비라도 오게 되면 온 거리가 오물로 넘쳐 나니 남자나 여자나 오물이 묻지 않기 위해서는

높은 굽의 신발이 필요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하이힐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창문에서 날아오는 변이 머리에 맞지 않게 하기 위해 챙이 넓은 모자를 쓰기 시작했으며

자기 몸에서 나는 배변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 많은 향수를 몸에 뿌렸기 때문에 프랑스에는 향수가 발달되었다.
 


사람들이 정원에 와서 자꾸 볼일을 보는 것을 참다 못한 베르사유의 정원 관리인은

'에티켓(etiquette)이란 출입금지 표지판을 정원 입구에 세웠는데

예의 범절을 의미하는 '에티켓'이란 말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금빛으로 치장한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엄청난 크기의 궁전이 사람을 압도하고


한가운데는 말탄 루이 14세의 동상이 버티고 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궁전 앞의 바닥은 대리석 돌판으로 되어있는데 지하 1미터 이상 거대한 돌들을 층층이 깔아 단단히 다졌기 때문에

말과 마차에 의해 바닥이 패이지 않는다고 한다.

 

 




U자형 건물의 한 쪽 부분이다.


궁전 안에는 '헤라클레스방' '왕비의방' 그리고 '풍요의 방' '비너스방' 등 다양한 이름의 방들이 있는데 '거울의 방'은 그 중 인상 깊은방이다.


 




거울의 방은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으로서


거울이 17개의 아케이드를 천장 부근까지 가득 메우고 있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다.






거울의 방 하나를 완성하는데만 8년이 걸렸을 정도로 호화로운 거울의 방은 화려하기가 그지없으며


거울에서 반사되는 빛과 순은으로 치장된 실내 장식품의 조화는 관람객을 꿈속으로 안내한
다 .


이 방은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사용되었으며
화려한 내부장식을 한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으로 이어진다.



 

 



벽지는 모두 비단으로 되어있고 크리스탈 샹들리에......대리석 바닥.......최고급 카페트들로 장식된 궁전의 방들은
 

그 당시 궁정의 호화로운 생활을 말해주는 듯 하다.





 


루이 14세가 신하들을 접견하던 방의 보좌는 높지 않았고 의자도 중국이나 우리의 옥좌보다 소박하게 느껴졌다.



 




루이 14세의 침실의 침대는 엄청나게 높이가 높아서 
저길 어떻게 기어올라가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베르사유 궁전은 궁전 내부를 비룻하여 정원 등 모든 구조가 당시 태양왕이라 불리우던 루이 14세의 이 침실을 중심으로하여 설계되었다.




 



왕비의 방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대형 초상이 벽에 걸려있었다.

 






왕비의 침실의 모습이다.

이 침실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한 3명의 왕비가 거주하였다.


방의 모든 집기는 황금으로 되었으며 벽지는 아름다운 꽃무늬의 비단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천정 또한 황금과 프레스코화로 치장한 후 크리스탈 상들리에가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베르사유의 모든 방은 다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나
(심지어 회화 작품 조차도 플래쉬를 사용해서 찍어도 무방하다.)

이 왕비의 침실만큼은 플래쉬를 터뜨려서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당시 베르사유의 모든 사생활은 공개되어 있어서 누구나 정문에서 빌려주는 칼과 모자만 있으면

궁전에 들어와 아름다운 정원과 왕을 볼 수 있었던 점이 특징이라고 한다 .


그래서 그런지 모든 방의 한면에는 벽이나 문이 없이 다 오픈되어있어서 복도를 걸어가면서 방을 다 볼수가 있게 되어 있었다.
 
침실조차도 한쪽 벽은 없이 복도를 지나며 방안을 다 볼 수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수많은 귀족 부인들은 그녀들의 우상 마리 앙투아네트의 화장하는 모습, 옷갈아 입는 모습,식사하는 장면을 따라다니면서 보았다고 하는데

목욕하는 모습 뿐만 아니라 심지
어는 그녀의 출산하는 모습까지도 다 공개되어

마리 앙투아네트는 많은 귀족 부인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아기를 출산했다고도 한다.






베르사유의 수많은 그림 중에 눈에 뜨이는 그림은 자끄 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대관식'이란 그림이다.


1804년 12월 2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나폴레옹은 자신의 대관식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교황 피우스 7세가 참석했는데 그가 제관인 사를마뉴관을 씌우려 관을 들어올리자


나폴레옹은 그걸 두손으로 받아 들고는 곧바로 뒤돌아서서 내빈들을 바라보며

꼿꼿이 선 채로 자신의 머리위에 관을 올려 놓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의 관이 아닌 월계관을 스스로 자기의 머리에 썼는데

그것은 자기가 로마 황제의 뒤를 이은 세계의 통치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 그림은 황제 대관식 이후 황후 조세핀의 머리 위에 황후관을 씌워주는 모습과


그 당시 참석한 100 여명의 유력 인사와 친척들을 자세히 그림 세밀기록화인데


루브르 박물관에도 이 그림과 꼭 같은 그림이 있다.

당시에는 한 화가가 똑 같은 두개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 흔하였다고 하는데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져 있는 그림과 베르사유 궁전에 걸려 있는 그림에는 다른 점 하나가 있다.

 

 

그림 왼쪽에 일렬로 서있는조세핀의 딸 중 한명이 루브르에 걸린 원작과는 다르게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루브르에 걸린 대관식 그림에는 여인들의 옷 색깔이 모두 같다)


그녀가 바로 자끄 루이 다비드가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한다.


그녀를 너무 사랑한 다비드는 자기의 연인을 이런 방법으로 부각시켜 사랑을 표현하였다.


 


베르사이유 궁의 정원과 숲은 그 화려함과 더불어 광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경치로


대혁명전까지는 면적이 6000 ha에 이르렀으나 오늘날은 95 ha로 그 규모가 축소 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한 루이 14세......


70년 통치기간 동안 전쟁으로 일관해 영토를 확장한 위대한 군주였던 그는
많은 문화 유산도 남겼지만


이곳에서 매일 밤 호사스런 사교 파티를 열었다한다.


이러한 사치와 전쟁으로 프랑스의 국운은 쇠퇴하였고 루이 16세가 20세에 즉위하였으나


무능과 시대의 변화 물결의 소용돌이 속에서 1789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1789년 시민들은 베르사유를 습격하기에 이르고


왕비 앙투아네트는 오빠인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드 2세에게 도움을 청하여 탈출을 시도하지만 발각 되어


파리로 끌려와 옥에 갇히게 되니 1792년 왕정은 끝나고 공화국이 선포된다.




이로써 베르사유의 화려한 영광도 끝이 나고


이곳은 그 시절 자취를 보기 위해 모이는 관광객들을 위한 박물관으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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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스(군신)의 언덕(Mont de Mercure)'이라는 뜻이라고도 하고  



'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하는



몽마르트르 언덕은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129m의 언덕이다.

 

 

근처 길들은 좁고 구불구불하며 일방통행도로가 많다.

 


 

차에서 내려 몽마르트르로 가는 길은 약간 어수선하고 촌티나는 관광지 같은 모습이었다.

 

 

길 양 옆에 싸구려 관광 상품과 행운의 띠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가운데 헉헉거리며 언덕을 올랐다.

 

 

언덕의 중간 쯤에서 숨도 돌릴 겸 크레페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에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는데
주위를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발밑이 축축해진다.

 

 


놀라 발 아래를 보니 인도와 차도의 경계지점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파리의 대부분의 길가에는 쓰레기통이 없고 사람들이 길에다 쓰레기를 그대로 내버린다.

 

 

 

그러면 정해진 시간에 물을 흘려 내보내는데 물살로 쓰레기를 아래로 쓸려내려가게 하고 있었다.

 

 

물살에 의해 아래로 모인 쓰레기나 개똥은 하수구로 모이고

 



쓰레기 처치장에서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철저히 분리한다고 하는데

 



심지어는 종이 쓰레기는 색깔조차도 분리해서 철저히 재활용한다고 한다. 

 

 

 

절대로 쓰레기를 바닥에 안된다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철저히 몸에 배인 나였지만

 

 

 

파리에서는 나도 해방감에 젖어 아이스크림 껍데기를 시원하게 바닥에 내동댕이쳤다....파리지엔느처럼....!

 

 

 

 

 

 

 

몽마르트르 언덕 앞에서 언덕 쪽을 보니 푸른 하늘과 성심성당,큰 시계,

 

 

 

그리고 아주 고전적인 회전 목마가 조화를 이루며 자리잡고 있었다.

 

 


 

회전 목마를 끼고 왼 쪽으로 돌아 언덕 위에 오르니 성심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프랑스어로는 샤크레퀴르 성당이라고 하는데
파리가 프러시아에게 정복당하고 수도를 피로 물들인 전쟁 이후

 

 

진정한 신이자 인간이신 예수의 성심(聖心)에 바쳐진 교회당이라고 한다.

 

 


1876년에 기공하여 1910년 완성하였는데 과거의 여러 성당 모양을 본뜬
절충적 성당으로 비잔틴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이다.
 

 

 

종루에는 세계 최대의 종(26t)이 있다고 한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서니 장 피에르 주네가 감독한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가 눈 앞을 스쳐 간다.

 

 



아멜리에는 에펠탑에서 투신자살하는 사람에게 깔려 어머니가 사망하고부터 

 

 



어릴 적부터 외부와 차단되어 자라면서 공상을 일삼아 왔던 소녀인데

 

 


대부분의 영화가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을 비롯하여
기차역과 몽마르뜨르 언덕을 주 배경으로 전개된다.

 

유쾌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만한 기발하고 재미있는 영화라서

 

 


한번 보았는데도 영화의 대부분의 내용이 기억에 아주 많이 남았는데

 

 

 

이 언덕 앞에 서서 보니 아멜리에가 뛰어다니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 하였다.

 



몽마르트르를 오르는 분들은 '아멜리에'를 꼬옥 감상하신 후에 올라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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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토 무슈(Bateaux Mouches)는 세느강 유람선의 이름이다.

파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람선을 타러 세느강으로 향하는데


한강의 위용을 늘 보고 자란 한국 사람들은 세느강을 처음 다다라서는 '겨우...이 정도...?'하며 실망하곤 한다.

드넓디 넓은 한강에 비해서 세느강은 강폭이 좁고 물도 탁하다.

청계천보다야 조금 더 넓지만 한강의 지류천 정도의 폭이랄까.......


하지만 세느강을 빛나게 하는 것은 강의 규모가 아니라

제각기 모양도 다르게 걸쳐진 아름다운 다리들과

강 주변의 수백년 된 건물들......그리고 세느강변에 모여드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랄 수 있다.  

 



자유의 여신상에서 시떼섬까지 세느강을 한바퀴는 도는 바토무슈에 오르면 에펠탑을 비롯하여

금으로 치장한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노틀담의 곱추로 유명한 노틀담 성당,

루브르 박물관,콩코르드 광장.....그 외에도 이름도 모르는 고성같은 집들이 양쪽에 즐비하여

마치 프랑스 역사를 한 눈에 펼쳐놓은듯 하다. 

 


세느강의 다른 부분. 세느강에는 작은 섬들이 여럿 있는데 사진의 작은 섬은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섬이다. 이섬에서 유람선이 다시 돌아서 가게 된다. 

 



세느강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다리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만국박람회 기념으로 세워졌는데 

황금 조각상과 가로등이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다리 건너편에는 황제 나폴레옹이 잠들어있는 황금돔의 교회 앵발리드가 보인다.

루이 14세가 세운 퇴역 군인들을 위한 요양원이었으나 지금은 군사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란다. 

 

 

 



일반적인 유람선 (바토무슈)은 8유로 정도에 탈 수 있는데 가다 보면 아주 고급인 유람선도 지나간다.

모두 정장을 하고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는 레스토랑 유람선인데 수준 높은 악단의 연주도 겸하여 들을 수 있다.

유람선은 보통 2층으로 되어있는데 대부분 2층에 올라가서 구경을 한다.

시원하기도 하고 전망도 좋아서 아주 일품이다.


유람선 내에선 여러 나라 말로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우리나라 말 방송도 나온다.

6개 국어로 방송을 한다는데 우리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우리나라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나보다. 

낮에 돌아본 세느강변이 약간의 회색 빛으로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면

밤에 바토무슈를 타고 돌아본 세느강변은 새롭게 찬란한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듯 했다.  

 

 


'노틀담의 곱추'로 유명한 노틀담 성당도 지나간다.  저 꼭대기에서 곱추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부르며 뛰어내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메마른 마음을 가진 사람도 사랑과 낭만에 젖어들것만 같은 곳....파리.....그리고 세느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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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직접 보기전까지는 에펠탑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흥미도 없었다.

 

사진이나 TV에서 많은 사진으로 접해본 구조물이지만 그다지 아름답다고 생각지도 않았고

 

오히려 파리의 경관을 해치는 건물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파리에 도착하여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처음 본 순간.....



나의 지금까지의 생각은 선입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파리의 어느 곳에서 보든지 에펠탑이 눈에 잘 뜨였는데 



생각보다 아름다웠고 안정감이 있었으며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건축물이었다.

 



에펠탑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진 높이 300 미터의 철탑이다.

 

교량 건축학자 에펠의 설계로 세워졌는데 건설 당시에는 많은 사람의 반대에 부딛혀야 했다.



당시에는 이런 건물의 예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이 탑은



성베드로 성당의 돔이나 기자의 대피라미드보다 2배나 높은 높이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이 엄청나게 큰 철탑이 파리의 경관을 헤친다는 많은 사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탑은
그 당시의 싼 노동력으로  몇 달 만에 세워지게 되는데

 


1930년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공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로 자리를 지켰다.  



반대 가운데 건립되었던 에펠탑은 마침내 그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파리의 상징과도 같은 건축물이 되었다.



에펠탑 바로 아래에 가서 서보니..... 그 위용은 입이 쩌억 벌어질 정도였다.



얼마나 크고 높은지.....새삼 그 크기와 높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펠탑 엘리베이터 입구에 서니 수많은 사람들이 구불구불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리를 입은 인도 여인네들......히잡을 두른 이슬람 여인네.....동양인....유럽인......



이곳은 세계 각국의 인종 전시장이었다.

 

구불구불한 줄을 따라 기다리기 한시간 이상.....

 



마침내 바로 아래 입구에 도착.....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거기도 사람이 인산 인해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올라가고 내려오는데 탑이 무너지지나 않을까.......

 

사선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탑의 1/3 쯤 와서 또 직선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그곳에서도 기다리는 줄이 탑 내부를 빙빙 돌아가며 줄지어 있다. 

 



미국의 오티스 엘리베이터회사에서 설계한 유리 엘리베이터는 이 건축물의 주요특색인데

 

에펠 탑을 세계 최고의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로 부각시키는데 일조를 했다고 한다. 

 

여러 대의 엘리베이터가 한꺼번에 운행하는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몰리니 질서란건 하나도 없었고

 

완전 무질서의 현장 그 자체였다.



서로 먼저 타려고 밀고 당기고......우리나라 사람만 질서 없는건 아닌가 보다.

 

내 차례 쯤이 되었을 땐 엘리베이터를 걸어서 들어간게 아닌라 밀려서 겨우 끼어 들어갔다.



많은 사람이 뒤에서 밀치는 바람에 백팩을 문에 세게 부딪히며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나와서 보니 로마에서 샀던 선물용 시계의 케이스가 무참히도 부서져 있었다....ㅠㅠ

 

유리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에펠탑의 골조및 엘리베이터를 끌어올리는 도르레도 훤하게 다 보였는데

 

움직이지 못할 만큼 끼어서 올라가는데도 마침 가장자리에 있었으므로 사진 한장 건질 수가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원래 에디슨의 발명품인데 탑 꼭대기 방에는 에디슨과 그의 딸의
 밀랍인형도 전시되어 있다.

 

 

에펠탑 맨 위 꼭대기에 올라가니 아쉽게도 철망이 쳐져있었다.

 

발밑은 아찔하게 느껴지는 낭떠러지......

 

자살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이렇게 철망을 쳐 놓았다고 하는데 약간은 아쉬움이 남았다.

 

 

에펠탑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니 주변은 녹지가 조성이 잘 되어 있었다.

 

탑 아래 잘 꾸며진 녹지대에서는 각국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잔디에 누워서 하늘과 함께 에펠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여유로와 보였다.

 



탑의 바로 아래에 세느강이 보이는데 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리와

 

세느강 유람선 바토무슈가 마치 장난감처럼 보인다.

 

 

 

세느강에는 작은 섬들이 여럿 있는데 사진의 보이는 작은 섬은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섬이다.

 

유람선은 이 섬을 돌아서 다시 원위치로 가게 된다. 

 

 

황혼 무렵의 에펠탑의 모습은 더 아름답다.

 

하늘에는 아직 푸른 빛이 남아있는데 에펠탑에는 약한 조명이 들어오고 있는 상태라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밤에는 에펠탑의 조명은 더욱 환상적으로 변하고 

 

의 맨위에는 레이저 불빛이 어두운 파리의 밤하늘을 이리 저리 비춘다.



파리 어느 곳에서든 이 멋진 에펠탑의 야경을 볼 수 있는데



이 사진은 세느강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다가 찍은 것이라 사진이 많이 흔들렸다. 


멋진 야경 사진을 원하시는 진사들이 이곳에 오신다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을 것 같다.

 

삼각대를 버텨 놓고 이 멋진 에펠탑의 야경을 내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날이 다시 온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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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서 파리 드골 공항까지는 약 2시간.


비행기는 파리 상공으로 진입하더니 도시 위를 아주 낮게 날기 시작했다.


장난감 같은 집들이 쭈욱 펼쳐지고 눈에 익숙한 풍경이 나타났다.

 

방사선으로 쭈욱 뻗은 도로와 그 주변의 집들......개선문이었다!

 

파리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도로가 뻗어 있다던


사회 공부 시간의 학습 내용을 
눈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에펠탑도 보이고 세느강도 눈에 바로 들어왔다.

 

비행기가 이렇게 낮게 날아가며 프랑스의 수도 파리 중심지를 훑어 볼 수 있다니.....

 

흥분된 마음에 눈을 떼지 못하고 창에 매달려 파리를 살펴보고 있는데......  

 

 

도착한 곳은 파리의 관문 샤를 드골 공항.

 

공항의 모습도, 공항의 사무처리도 낭만적인 도시 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일처리 느리고 착오가 많기로 유럽에서도 악명 높은 드골 공항.....

 

여러 항공 편을 섞어 수속을 하다 보니 승객의 짐이 엉뚱하게 다른 항공기로 가는 경우도 많고

 

잦은 파업으로 짐이 한꺼번에 쌓여 짐찾는데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단다.


프랑스인의 사무 처리는 이미 에어 프랑스에서 실감을 한지라
공항 일 처리도 그러려니 하고 아예 체념을 해버렸다. 

 

엄청나게 오래 걸려서 짐을 찾고 차에 오르니 파리의 공기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텁텁하다.  

 

졸린 눈으로 공항을 지나 시내를 들어가니 조금씩 다가오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상가나 아파트로 쓰고 있는 건물들도 오래 된 듯 빛 바랜 색을 하고 있는 것이

 

이제야 파리에 왔구나....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파리의 일반적인 길가의 건물들은
오래된 듯한 고풍 스러운 건물들이 많고 5층 이상의 건물이 잘 없었다.

보통 1층은 상가이고 2층 이상은 아파트로 쓰이는데

건물 외부는 개조를 하지 못하는 지역이 많지만 실내는 최첨단 시설로 개조한다고 한다.
 


사람들 사는 모습은 어디든 비슷한지 거리에는 노점도 있고 횡단보도 건너는 모습도 우리와 별반 다를바 없었다.
 



차를 타고 가다 발견한 프랑스 월드컵 경기장이다.



생 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이름도 길다).....

 

프랑스 월드컵이 여기서 열렸고 이 때 프랑스는 우승의 영광을 안게되었으니

 

프랑스인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경기장이다.
 

 

 

 

 


생 마리 마들렌 교회의 뒷편으로 돌아가며 찍은 사진이다.

이 교회는 콩코드 광장에서 개선문 방향으로 서면 오른 쪽으로 보이는 교회이다.

고대 그리스 신전 풍의 외관과(파리에 있는 유일한 그리스풍의 건축이다) 19세기 조각들로 유명한 교회라고 한다.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나가다가 건물이 이뻐서 담아 보았다.

 






시내의 평범한 건물도 벽에는 예술 작품과도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거리 자체가 살아 있는 미술관인 파리에 이제 도착한 것이다...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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