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울란바타르를 방문하시는 분들께 꼭 관람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공연이 있는데
바로 토르고(Torgo) 패션쇼이다.
몽골 전통 민속 음악과 민속 퍼포먼스와 함께 아름다운 몽골 전통 의상을 소개하는 이 패션쇼는
우리가 전에는 알지 못했던 몽골 전통 의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한지를 알게 해 준다.

매일 6시에 공연이 열리는 토르고의 일층에는 각가지 민속 의상과 민속 원단을 전시해 두었는데
토르고(Torgo)라는 몽골어가 '비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만큼
모든 옷이 실크 원단으로 되어 극도로 화려하다.



함께 공연되는 몽골 전통 음악과 공연은 다음에 다시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전통적인 몽골 의상과 더불어 현대에 맞게 디자인한 신개념 퓨전 의상까지...멋진 몽골의상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플래쉬가 없어서 ISO를 1600으로 올려서 찍다 보니 사진 상태가 좋지 않군요.....이해하시길 바라며....)

남녀가 입고나온 이런 몽골 전통 의상은 델(deel)이라고 한다.
부스라는 허리띠로 졸라매어 옷의 길이와 폭을 조절하는데 
여성의 경우에는 비단천에 화려하게 수놓은 허리띠를 매기도 한다.


몽골에 살고 있는 각 민족은 델의 재단, 색깔, 장식품으로 자기들의 민족을 구분한다.


남자 모델이 신은 고무신처럼 코가 살짝 들려진 신발은 고탈(Gutul)이라고 한다 .


이 커플은 마치 칸(Khan) 부부처럼 당당하고 화려한데 몽골에서 모든 패션의 완성은 모자이다.
모자는 남자 여자 모두 사용하며 과거에는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하여 모자를 썼다.


모자는 전통의 의미와 실용적인 목적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
몽골사람들은 모자(말드가이)를 쓰지 않으면 복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몽골인들은 모자를 아주 귀하게 여겨 모자는 반드시 허리띠 윗부분이나 선반 위에 놓아야 하는데
모자를 발로 밟으면 그것은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녀들은 꼭대기에 단추 모양의 보석 장식이 달린 토르촉 모자를 쓴다.


보통 모자 꼭대기에서 길게 늘여뜨린 끈이 바람에 날리게 하는데


돈 많은 여자들은 여기다 진주를 매달기도 한다.


이런 모자를 보면 우리네 전통 모자인 '남바위'가 생각난다.
고려말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원나라의 풍습이 전해져 우리의 전통 복식에도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 많은데
남바위나 족두리, 원삼을 비롯하여 연지 곤지, 은장도 등도 그 기원이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모자는 지금도 도시 사람에게 많은 인기가 있으며 


검은 담비로 만들어진 모자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몽골을 알리는 포스터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머리에 독수리 날개를 단 형상의 이 머리 모양은
몽골인의 난로를 지킨다는 독수리 설화처럼 난로를 지키는 여성의 임무를 표현한 것이라고....


몽골 사람들은 검소한 유목민의 평소 생활을 보상받기 위해 멋지게 입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난폭한 기후와 거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옷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중세의 여행객들은 몽골사람들이 모든 계절에 적합하고 실용성까지 갖춘 옷을 만든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감탄했다.


전통 의상을 소개하는 패션쇼가 끝나면 전통을 현대에 맞게 재창조한 퓨전 의상들을 선보인다.


지극히 몽골스러우면서도 아주 화려하기 이를데 없고 감각적인 의상들을 해설없이 눈요기 하시길.....























패션쇼가 끝난 후에 잠시 모델들과 기념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다....하고 모델들의 포트레이트를 몇 장 찍었다.


모델들은 아주 친절하게 포즈를 취해 주었으므로 짧은 시간이나마 정신없이 몇장을 찍을 수 있었다.


아......그리고 미인 모델만 보아서 눈이 심드렁해진 여성 팬들을 위하여......


카리스마 돋보이는 남성 모델샷도 서비스로 함께 올려드린다.


패션쇼의 제일 마지막에 가면을 쓰고 나왔던 칸(khan).


가면을 벗으니.....185가 넘는 훤칠한 키에 잘 어울리는 멋진 훈남이다.


이 훈남이랑 기념 사진 한번 찍으려고 여성 관람객들이 줄을 섰다는 전설이.....^^;;


전통 의상 패션쇼 소개를 간략하게(?) 마치면서.....개인적으로 모델 중 베스트를 꼽아 보았는데
3위에는 정열적인 의상에 어울리게 환한 미소를 띄어주던 이 모델....


2위에는 특히 오묘한 눈빛으로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끌던 모델.


하리수를 살포시 닮은 미녀 모델은 그 세련된 무대 매너가 가장 기억에 남아서 베스트 1위로 선정해 보았다.

여러분, 몽골 전통 의상과 몽골 모델들이 맘에 드셨나요?
사진으로나마 함께 패션쇼를 감상하신 여러분들의 눈도 필자와 마찬가지로 즐거우셨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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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 인근 지역을 여행하며 이동하는 동안에는 차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과 간간히 나타나는 게르와 말, 양떼들은
여행자의 시선을 차창에 고정시키고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시내나 초원 가운데로 난 길을 갈 때나 필자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인적없는 길을 따라 끝없이 늘어서 있는 전봇대였다.





몽골에서 전봇대는 길을 안내해 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광활한 초원에서 길을 찾지 못할 때 전봇대를 이정표로 해서 목적지를 찾아가곤 한다니 몽골 전봇대는 일석이조의 고마운 존재이다.





그런데 전봇대가 서 있는 모양은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몽골 전봇대 대부분은 그 모양이 A 자형인 것이 특징이다.





전봇개 바로 앞에 서서 찍어보았는데 이렇듯 절묘한 A자형 일수가...!





울란바타르 시내에는 더러 우리네 것과 같이 콘크리트 전봇대가 서 있는 곳이 많지만....





조금만 외곽지로 나가면 어김없이 나무 전봇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근데 자세히 보면 전봇대의 주지지대가 땅에 박힌 콘크리트 기둥에 단단히 묶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땅에 박혀있는 전봇대 나무가 썩어서 내려앉는걸 방지하기 위해서인 듯....





그럼 모두 다 콘크리트로 전봇대를 하면 될텐데....
나무가 별로 없는 초원지대조차 이렇게 나무 전봇대를 박아놓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A자형 전봇대는 옆으로는 튼튼해 보이는데 그대신 앞으로는 넘어지지 않을까도 의문 가는 점 중에 하나였다.
변압기가 올려진 더블 A 자 모양의 이런 전봇대는 정말 튼튼해 보이는데.....

몽골의 특이한 모양의 전봇대는 호기심 어린 이방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모양의 전봇대가 있을까...? 아주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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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 몽골 봉사단원들이 울란바타르 인근 칸-울 지역 노인 복지 센터와 인근 지녁 아동들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에게 학용품 등 생활 필수품을 전달하고 함께 놀이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우너들은 칸-울 지역 아이들과 페이스 페인팅, 줄넘기, 공기놀이,
부메랑 던지기, 풍선놀이, 색칠놀이 등 다양한 놀이를 하며

봉사단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의 즐거운 표정을 하나 하나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돌아와서 하나하나 사진을 펼쳐보니
몽골 아이들은 어찌 그리 우리 아이들과 닮아 있는지 신기한 정도였다.




동네 앞 공터에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넓은 몽골 땅이다보니 동네 앞 공터가 다 초원이다.


비록 작지만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선물 받은 학용품을 그 자리에서 꺼내 즐겁게 색칠 놀이도 해보는데


큰 아이는 색칠이 제법 능숙하고 색채감도 뛰어나다.


우리 동네 순이를 보는 것 같은 외모......너무나 친근감이 드는 아이들이다.


봉사 단원 중 화가가 한분 계셔서 아이들 얼굴에 일일이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셨다.


이쁜 얼굴에 그려진 꽃은 물론 아름답고...


개구장이의 볼에 그려진 꽃도 아이를 기분좋게 한다.


태극기를 그려주니 너무나 신기해하며 다른 아이들에게 자랑도 한다.


몽골 적십자 단원인 여대생도 예쁜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했다. 역시 적십자 사랑이다.


아이들 곁에서 같이 페이스 페인팅을 한 몽골 자원 봉사 여대생 삼인방, 미스 몽골 모드가 즐겁기만 하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풍선.


풍선으로 강아지를 만들어주니 너무 좋아하며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이렇게 이빨 빠진 모습의 아이들의 웃음은 더욱 귀엽다.


이 아이들은 80년대 우리 동네 코흘리개 개구장이들과 어찌 그리 모습이 닮아 있는지...


이 애기는 자기의 풍선이 언니의 풍선보다 이쁘지 않다고 불평이다. 다시 만들어서 쥐어 주어야 했다.
 


눈 색깔이 신비롭도록 아름다웠던 아이는 풍선 트로피를 받았다.


이 개구장이 아이는 싸구려 플라스틱 썬글라스가 너무 잘 어울린다.


몽골 사람은 시력이 너무나 좋은데 이 아이는 안경을 썼다. 도시 생활은 몽골 사람의 눈도 나쁘게 하나보다.


이쁜 얼굴 모습도 눈길을 끌었지만 돌아올 때까지 한번도 웃지 않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던 여자 아이.


오래 함께 놀아주며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짧은 시간 동안의 만남으로는 무리였나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어울렸던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기억에 남을 즐거운 시간이었기를 바라며..... 칸-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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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아시아인의 긍지를 세계에 펼쳤다.

몽골인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칭기즈칸의 신출귀몰한 전략과 기병을 앞세운 전격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전투시에 몽골 군대는 1인당 8~9 마리의 말을 몰고 진격했는데 병사가 100 여명이면
말이 800~900 마리가 되므로 적들은 감히 몽골 병사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정복지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가는데 한시간 정도 쉬지 않고 달리다 병사를 태운 말이 지치면
달리는 말을 세우지도 않고 말 위에서 다른 말로 올라타며 진격했으므로 군대의 진격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또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 해결 문제인데 몽골인은 원거리까지 별도의 식량 조달이 필요없는 유목민이었으므로 
적군에게 포위가 되어도 양고기 가루를 미숫가루처럼 말린 보르츠나 말젖으로 연명할수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면
늙은 말 부터 차례로 잡아 먹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그저 싸움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칭기즈칸 군대는 요즘의 인터넷 프로토콜 방식과도 같은 국제적인 통신망을 구축하여
근거리는 릴레이식으로 소식을 전하고 장거리는 송골매를 이용하여 연락을 했다.
전령은 극소수의 부족 언어를 사용하는 군사를 보내어 도중에 체포 되더라도 기밀이 새어나가지 않게 했는데
이는 오늘날 군에서 사용하는 통신 보안 방법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한다.
이 정보망을 통하여 정복지 현지의 상인들을 보호해주는 대신 그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몽골군은 무섭다'라는 소문을 적진에 퍼뜨리고 밤에만 활동하는 '검은 기마병'을 보내는 등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의 작전을 폈다.
또 몽골 군대의 지휘관들은 칭기즈칸부터 말단 병사까지 동일한 천막집 게르에서 살고 같은 음식을 먹었을 뿐만 아니라
노략질을 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전리품이 생기더라도 아랫사람을 먼저 챙겼기 때문에 몽골군의 사기는 충천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유라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은 이국적인 문화를 잘 못 받아들여 나라는 쇠퇴일로를 겪게 된다.
칭기즈칸 시대에는 한집에서 병사 한명을 차출해 군대를 구성했으므로 100 만 정도의 인구에 병사가 10 만이나 되었는데 
라마 불교의 도입으로 인해 몽골의 군사력은 점점 쇠퇴하게 된다.
원나라 전성기의 몽골은 한집에서 한명의 병사를 배출하는 대신 한집에서 한명 이상을 라마승으로 출가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병사 또한 점점 줄어들게 되니
몽골의 군대 제도는 와해되어 이후 국방을 외국인 병사에게 맡기게 되기까지 이른다.
이때문에 대제국 몽골은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한족에게 국가를 고스란히 바치게 되는 것이다.



충격과 공포로 유라시아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몽골군의 현재의 모습은 어떨까.....?
울란바타르 손기노 카이르칸 지역에 위치한 군부대를 찾아가 보았다.



몽골의 정식 군대인 몽골 국군은 사회주의 정권 붕괴 후 몽골 인민군에서 계승된 군대이다.

몽골의 총병력은 9100명, 예비병력은 14만명인데 (2003년 통계) 병력은 사회주의시대보다 만명 정도 줄어들었고
몽골 군대의 장비는 주로 인민군 시대 소련으로부터 얻은 무기가 대부분인데  
전투기나 공격용 헬리콥터 등은 모두 퇴역해서 전력은 매우 약하다고 한다.




손기노 카이르칸에 위치한 군부대는 넓은 면적을 차지 하고 있었지만 부대는 비교적 한산해 보였고



군인들의 복장과 복무 모습은 우리나라 군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성의 입장에서 군부대의 겉모습만 보고 받은 인상을 피력하는 것은 언어도단이겠지만
몽골 군부대에서 받은 인상은 '너무나 평화롭게 보인다'는 것이다.



방문자를 바라보는 나이 지긋한 군인 아저씨의 시선도 따스하기만 하다.



부대 강당에서 공식 행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초소 옆에서 트럼펫을 연습하는 군악대원들을 발견했다.



트럼펫 부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계속 연주해 달라고 했더니 카메라를 너무 인식해서인지 경직된 모습으로 악기를 연주했다.

그런데 이 군인은 나이가 상당히 되어 보인다. 도대체 연세가 몇이신지.....



나이 많은 군인들 뿐인가....하고생각했는데 형님들 앞으로 나이가 많이 어려보이는 군인이 나타났다.



아직 나이가 어려 보이는 이 군인은 카메라 앞에 세웠더니 출입문 앞에 붙어서서 어정쩡한 포즈를 취해 주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너무나 어려 보이는 군인이 나타났다.
'군인 아저씨'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민망할 만큼 완전 중학생 같아 보이는 이 군인, 수줍은 듯 머금은 미소가 참 훈훈하다.
몽골의 군대 역시 우리와 같은 징병제로서 남자는 18세부터 1년간 병역의 의무를 진다는데
이 군인은 채 열여덟도 안 되어 보이는 듯..... 너무나 애띤 모습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몽골에서는 일정한 돈을 내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병역대체금이라고 불리는 납부금을 납부하거나, 해외에 유학하는 등 26세까지 해외에서 지내면 병역의무는 소멸된다고 하고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에도 면제된다고 하니 우리나라보다는 징병제도가 상당히 유연하다.

실제로 안내와 통역을 위해 같이 따라다녔던 몽골 항공 직원 '바야라'도
200만 투그릭(몽골 화폐 1투그릭은 우리 화폐 단위와 비슷) 정도의 병역대체금을 내고 군대를 면제받았다고 한다.
돈을 내고 군대를 안 갈 수 있다면 어느 누가 군대를 가겠냐고 반문했더니 몽골 청년 바야라는
"솔직히 말해서 몽골 군대는 공부를 많이 배우지 못했거나
수백만 투그릭이 넘는 병역대체금을 낼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이 간답니다."

하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우리 돈으로 이백만원 정도 되는 병역대체금은 저소득층에게는 너무나 큰 돈이므로 
돈을 마련하지 못해서 군대를 면제받지 못하고 입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군인의 월급이 사회에서 받는 월급의 평균 수준은 되기 때문에 불만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데
어쨌든 이런 제도가 다른 문제가 없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돈을 내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나라라니....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돈 내면 군대 면제'되는 제도가 시행되었더라면 온 나라가 완전 난리가 났을터인데......



군부대를 떠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자꾸만 어린 군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록 병역대체금 기백만원을 내지 못해 어린 나이에 군대에 입대하기는 했지만
가난한 자신의 신세를 원망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병역 의무를 잘 마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고
자신의 나라 몽골을 위한 애국심만은 어느 나라의 군인들보다 더 불타오르기를 마음 속으로 기대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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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 서쪽에 위치한 바얀골 지역(Bayangol District)을 방문했을 때
그 지역 적십자 지도자의 안내로 지역 유치원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적십자에서 준비한 선물 상자 전달과 함께
유치원 마당의 놀이 기구 정비 등 봉사 활동을 위해 방문한 것인데
유치원에 도착하니 원장 선생님과 아이들이 유치원 문앞에 나와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이들은 약간 긴장한 듯 부동자세로 서 있었는데 몽골 군복을 입은 아이는 카메라를 들이대니 거수 경례까지 한다.


깃발을 든 아이 옆 쬐끄만 여자 아이는 이 유치원의 스타인지 너무 이쁘게 차려입었다.


바얀골 지역 적십자 지도자의 소개로 원장선생님의 간단한 환영사가 이어졌는데 교사들이 간호사처럼 하얀 가운을 입은 것이 눈에 뜨였다.


이어 유치원 강당 안에서 아이들의 재롱잔치가 10분 정도 있었는데


몽골 군복을 차려입은 아이는 노래와 군인 흉내를 내어 박수를 받았고


인형같은 여자아이의 노래와 춤 솜씨에는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 유치원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서로 먼저 찍어달라며 V자를 그리고 있는 아이들.


사진 찍을 때 V자를 그리는 포즈는 몽골에도 유행인가 보다.


그림을 그리다가 멈추고 의젓한 포즈를 취하던 아이.


팔뚝에 붙여준 문신 스티커를 너무 맘에 들어하던 아이.


무지 수줍어 했지만 반짝이는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던 아이.


토끼 흉내를 내며 깡충 깡충 귀엽게 뛰던 아이.


아주 꾀끄마한 체구지만 당차게 보이던 아이.


크면 몽골 씨름 선수가 될 거 같은 아이.

동그란 눈이 너무나 인상적인 아이.


그중 제일 눈에 띄는 아이들은 바로 이 커플이다.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거수 경례를 하던 아기 병사.


통통한 볼에 까만 눈이 얼마나 이쁜지..


자꾸 고개를 돌리며 뺨을 가리키며 뭐라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곰 푸' 스티커가 보이게 찍어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가슴에 손 얹어 경례도 하고...아기 병사는 사진 찍히는 걸 너무나 즐거워했다.


덥다고 군복을 벗으니 옷안에도 병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바얀골 유치원 최고의 멋쟁이 병사는 연신 옷을 갈아입고 포즈를 취했다.


장래가 촉망되는 이 아이는 예쁘게 찍어주겠다고 하니 손가락을 볼에 대고 배시시 웃는다.


눈이 어쩌면 이렇게 크고 까만지......사람인지 인형인지 구분이 안 간다.


리본 가발을 쓰고도 찰칵~!


사진 찍는걸 좋아하는 아이들 덕에 필자도 신이 났다.


이번엔 몽골 전통 의상을 입고 찰칵~!
왜 이렇게 옷이 많나...하고 궁금해 했는데 교사들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옷을 계속 갈아 입혀 오는걸 보니 이 옷들은 유치원에 비치된 소품 의상인 듯 했다.


공산주의 국가였던 몽골인지라 지금도 유치원은 수업료를 전혀 받지 않고 국가에서 다 지원한다.
다음 기회에 따로 포스팅할 계획이지만 몽골 사람들의 자녀 사랑은 '자녀 숭배'라고 할만큼 유별나다.
살기가 힘들어도 자녀들 교육은 꼭 시키며 만약 여러 자녀를 다 교육시킬 형편이 안 되면 맏딸을 공부시킨다.


가족 사진이 한장도 없다고 말하는 이 가족은 엄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몽골 여행을 하는 동안 이런 아이들 사진 뿐만 아니라 다수의 현지인 사진들을 카메라에 담아서
돌아와서는 모두 인화하여 방문했던 지역대로 구분해서 몽골 적십자로 부쳐주었다.
지역 적십자로 사진을 꼭 우송해달라는 부탁도 함께 적어보내며
귀여운 바얀골 아이들을 비롯해 모두가 사진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혼자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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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이라면 파아란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초원.
그리고 그 초원을 가로지르는 양떼와 말들이 먼저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몽골의 전부가 아니니.....
몽골에도 산이 있고 호수가 있고 침엽수 우거진 아름다운 숲도 있다.

지난 번 울란바타르 인근의 나이람달 캠프장 게르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캠프장을 둘러 싸고 있는 산 중턱에 하얀 자작나무 숲이 눈에 뜨였다.
소녀 시절 읽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로 인해 오랫동안 내 가슴에 남아있던 자작나무.
무언가에 모를 향수에 이끌려 일어나자 마자 아침 햇살 머금은 자작나무 숲으로 향했다.
로버트 포로스트의 '자작나무'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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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 칸-울 지역에서의 주민들과의 즐거운 시간.


멀리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보기 위해 동네 공터로 놀러나온 사람들의 표정이 순박해 보인다.


마을 앞 공터에서 어른,아이 어울려 신나게 긴 줄넘기를 한다.


친구와 함께 넘는 줄넘기는 마냥 신나기만 하고...


한국아이와 꼭 같이 생긴 이 개구장이는 너무나 신이 났다.


꼬마야 꼬마야...뒤를 돌아라...하는 노래를 불러주니 너무나 잘 넘는다.


줄을 넘는 가락이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치마가 발라당 뒤집어져도 신나게 줄을 넘는 여자 아이.


너도 나도 푸른 하늘 높이..푸른 하늘 높이...신나게 날아본다.


앗...언니가 걸리는 바람에 꼬마의 하늘을 나는 묘기는 이쯤에서 끝내야 했다.


아이들만 넘을쏘냐....나도 예전엔 한가락 했었지...신나게 뛰어드는 아저씨.


헉.....들어가자마자 걸려서 중도 포기...쪽팔림의 표정이 예술이다.


이어 하이힐을 신은 아줌마의 과감한 도전~!


보랏빛 치맛자락 팔락이며 잘도 넘는다.


하이힐 신고도 신나게 줄 넘는 아줌마는 진정한 줄넘기의 달인~!


하얗게 머리 센 할머니도 용기내어 도전해 본다.


앗! 이런~! 할머니의 비행도 두번째 도약에서 그만 끝을 맺었다.
몽골 푸른 하늘 아래 너도 나도 즐거운 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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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몽골인의 손님 대접은 아주 극진하다.
길 가다 늦어 아무 집에나 가서 잠자리를 청하면 재워주는 것은 당연하고
떠날 때는 음식까지 싸주며 친절하게 길 안내까지 해 준다.





전통적으로 게르에 들어가게 되면 게르의 상석에 앉은 사람이 아이락이나 수태차를 권하던지 
작은 병에 담긴 '코담배(센떼노)'를 방문객에게 건네는데
코담배를 건네면서 "건강하세요~!(에롤 멩흐 바이가라)"라고 말하며 악수를 청한 후
"여행이 편했느냐'"라고 물으면서 말문을 터나간다.

하지만 절대로 손님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며,무슨 일로 길을 나서게 되었는지는 캐묻지 않는다고 한다.





코담배는 담뱃잎이 아닌 향료와 약초를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대부분 옥으로 만든 향수병에 들어있다.
모양과 크기는 매니큐어통 정도인데 뚜껑에 달린 귀이개 모양의 도구로 가루를 꺼내어 엄지 손톰에 바른 후
조심스럽게 흡입하면서 냄새를 향유하는데 강한 향료와 매콤한 냄새가 나서 매우 자극적이므로
갑자기 들이마시면 재채기와 콧물,눈물이 나와서 당황하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코담배를 상대방에게 줄 때에는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해야 하며
조금 꺼내어  코담배를 받은 사람은 코담배를 코에 대어 냄새를 맡은 후 그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데

이것은 게르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축복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만약에 거부하면 그것은 무례한 일로써 주인을 쳐다보기도 싫다는 뜻이 된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바퀴 돌아가며 코담배 냄새를 맡으면 인사가 끝나게 되고 병은 주인에게 돌려준다.

코담배통은 몽골에서는 필수품으로 다양한 크기와 재질이 있는데
어떤 것은 금으로 장식한 것도 있어서 그 사람이 가진 코담배통으로 그 사람의 부와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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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중 그 나라 도로를 주행하는 한국차를 만나 반가웠던 경험이 있으신지?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한국차는 마치 한국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갑기 이를데 없는데...
몽골 여행을 다녀보면 여기가 한국인가...생각될 만큼 많은 한국 차가 운행되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된다.



몽골 전역에 다니는 차의 2/3가 한국에서 수입해간 차라고 해도 과연이 아닌데
그 중에서도 버스는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들여온 것임은 물론이고 
새로 칠을 하거나 외관상의 변화를 주지 않고 한국에서의 모습 그대로 운행하고 있어 보는 사람들을 더욱 즐겁게 해 준다.



현대의 로고가 선명한 청색 버스는 노선표지판 양쪽에 태극기와 몽골 국기가 함께 새겨져 있고


문에는 자동문, 매연저감장치 부착버스라는 표식이 그대로 붙어 있는게 보이는데
심지어는 번호판, 회사명, 버스 노선표까지 그대로 부착하고 운행하는 버스도 볼 수 있다.



버스 안에 붙어 있는 노약자 보호석이란 표식과 함께 붙어 있는 좌석 표지는 이 버스의 전적이 한국 직행버스였음을 말해주고


커튼을 비롯한 버스 안의 모든 부착물은 한국에서 쓰던 그대로이다.


짐을 잔뜩 싣고 가던 이스타나에는 전 주인의 핸드폰 번호가 선명하게 남아 있고


천주교 용대 공소(공소:주임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본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의 그레이스는
전방 장병들을 실어나르던 임무를 마치고 울란바타르의 식당 앞에 주차되어 있다.


긴급구호 앨뷸런스도 '환자 이송'이라는 표지가 아직 선명하다.


몽골에서는 엑셀과 엑센트 베르나 소나타가 주로 택시로 활용되는데


몽골에서는 자가용으로도 택시 영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누구나 원하는 사람은 다 승객을 차에 태우고 돈을 받을 수 있어서
살기 힘든 사람들은 온가족이 24시간 교대로 속칭 나라시 영업을 해서 돈을 번다.


그런 까닭에 그레이스 같은 낡은 승합차도 달동네의 택시로 요긴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마티즈 택시도 손님을 태우고 동네를 활보한다.


길에 다니는 차들을 살펴보면 엘란트라, 엑센트.....등이 많이 보이고


승합차도 그레이스, 스타렉스, 이스타나....등 한국산 중고차가 많이 보인다.


동네 앞을 신나게 달리는 소형 트럭도 현대 차이고....


곳곳에 현대 소형 트럭이 눈에 뜨인다.


이건 그 이름도 유명한 봉고 프런티어.


봉고 트럭은 가는 곳마다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 제일 많이 눈에 띄는 차는 단연 베르나이다.


여기도 베르나..


저기도 베르나...


노란 베르나...


날개도 달고 바퀴도 제각각으로 튜닝(?)해서 한껏 멋을 낸 베르나..


소나타 옆에도 베르나...온 길가에 베르나가 휘젓고 다닌다.


몽골의 자동차 수입업자는 한국에 와서 제일 싼 차를 골라서 수입한다고 한다.


돈이 없어서 싼차를 구입하다보니 고장도 잦고 3가지 등급의 휘발유중에서 가장 싼 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 고장이 잘 난다.


그래서 고장이 나면 낮은 기술로 고치기 힘든 신차보다는 엑셀같은 기계식 자동차를 선호하기도 한다고.....


울란바타르 시내를 다니면 한국 중고차 뿐 아니라 이렇게 오른쪽 핸들을 사용하는 차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오른쪽 핸들의 차는 대부분이 일본에서 수입한 차이다.


교통 체계나 도로 체계는 우리와 같은데 이렇게 좌측 통행차와 우측 통행차가 섞여서 다니는게 참 신기할 따름이다.


죄측 통행 도로 체계에서 우측 핸들차를 모는 것이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No  Problem !" 이라며
안전하게 몰기만 하면 어느 쪽 핸들이냐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한다.


몽골 사람들은 한국차가 싸서 좋기는 하지만 일본차나 독일차가 전반적으로 품질이 좋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먹고 살 만한 부유층들은 한국차를 타지 않고 일본차나 다른 수입차를 많이 탄다고 한다.


몽골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 사업가분의 말씀에 따르면 현재 몽골에는 1억 3천만원이 넘는 차들도 주문하고 기다릴 정도로
고급차의 수요가 많아서
메르세데스 벤츠는 현지에 서비스 공장까지 신축하고 있고 
현대,기아차 전시장만 외곽에 있을 뿐
다른 일본과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거의 대부분 울란바타르 시내에 전시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한국산 차가 몽골 전역을 주름잡으며 달리고 있지만 최고급으로는 평가되지 못하고 
다만 서민들이 타는 중고차로만 인식된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도 좀 더 기술 개발을 하고 지속적인 이미지 메이킹을 해서
몽골을 비롯한 세계 전역의 자동차 시장에 한국 차의 위상이 더욱 더 높아질 때가 한시바삐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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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어요.  감사드립니다..^^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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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빠뜨리지 않고 꼬옥 들리는 관광 명소가 있으니
그것은 울란바타르 남쪽 벅드산 정상에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 있는 자이승 전승 기념탑이다.



승전탑 아래 주차장에 내려서 고개를 들어보면
몽골 국기에 새겨져 있던 전통 문양 모양의 조형물 뒤로 엄청나게 큰 승전탑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 들어서 보면.....승전탑이 위치한 언덕의 높이가 장난이 아닌지라 보기만 해도 전의가 상실될 지경이다.



언덕 입구 광장에는 이렇게 기념 부조가 있고 거기에 쓰인 글은
"소련사의 기억은 하늘의 태양처럼 영원하고 대지를 태우는 불처럼 신성하다."라는 뜻이라고.....
(문자만 보고 몽골이 러시아어를 쓴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몽골은 엄연히 몽골만의 언어가 있고
문자는 위구르 문자를 개량한 글자를 쓰다가 공산화 이후 키릴문자(Cyrillic)을 차용하여 쓰고 있다.)



광장 앞에는 또 이렇게 전차 한대가 덩그러니 올라가 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2차 대전 당시 몽골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소련에게 기증한 전차로써 실제로 베를린 진군에도 참여했던 전차라고 한다.

혹자는 2차 대전 당시 몽골의 국가 재정상 전차를 소련에게 기증할리가 없다고도 하는데
이전에 중국 및 일본과의 전쟁에서 소련의 도움을 많이 받은 몽골로서는 
전차 대금의 전체가 아니었더라도 상징적인 자금이나마 소련을 지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270개가 넘는 계단을 순전히 도보로만 올라가게 되어 있어서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한 사람들은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게 된다.



점점 가까워지는 승전탑을 올려다보면 엄청난 규모에 새삼 놀라게 된다.



아래 선 사람들과 비교하면 승전탑의 높이가 짐작이 되실 듯 하다.



자이승 전승 기념탑(Zaisan tolgoi)은 1938년과 1945년 두차례에 걸친 일본과의 전쟁에서
러시아와 연합하여 막아냄으로써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과 전사자를 기념하여 세워졌다.



탑은 몽골 사회주의 혁명 50주년을 맞는 1971년에 소련의 기증으로 세워졌는데 



높이 솟은 기념탑의 전면에는 한손에는 총을 들고 한손에는 깃발을 높이 세워들고 있는 장병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바다와 같이 짙푸른 몽골의 하늘 아래 깃발을 들고 당당하게 행진하는 장병의 모습에서
유라시아 제국을 평정했던 몽골인의 굳건한 기상이 느껴진다. 



깃발을 든 장병의 조형물 아래 반지처럼 둥근 구조물 또한 인상적인데



환형 구조물의 외부에는 몽골 혁명 영웅들의 얼굴이 부조로 새개져 있는데 몽골 공산 혁명의 영웅 '수흐바토르'도 그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련 포스트 : 몽골 여행의 시작은 수흐바토르 광장에서 )



환형 구조물의 중앙에는 봉화단 같이 생긴 향로가 있고



안쪽 벽면은 러시아와의 연합으로 일본을 물리치고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을 그린 모자이크 벽화로 둘러싸여 있다.



일본은 아시아 대륙 침공을 위해 중일 전쟁 승리 후 곧바로 러시아 침공을 하게 되는데



그때 마주친 몽골군과의 전쟁에서 러시아군과 연합한 몽골군에게 패하게 됨으로 대륙 침공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몽골은 이 당시 러시아와의 연합을 통하여 2차 대전 참전국이 되고 



몽골 공산화는 더욱 가속화되니 몽골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사회주의국가가 된 나라이다.



특히 소련 군사와 몽골 군사의 앞에 나치의 깃발이 땅에 내팽겨져지는 장면과



일본 제국의 깃발을 땅에 내동댕이쳐서 짓밟고 서있는 모자이크화가 가장 인상적이고 속 시원한 부분이다.



조형물 전체의 그림은 소련과 힘을 합쳐 몽골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을 과감한 모자이크화로 표현하였는데



그들의 얼굴엔 당시 중국도 물리치지 못한 일본을 물리치고 몽골 사회주의 정부를 이룩한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다.



이런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몽골의 상징 자이승 승전탑은 또한 몽골의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시원하게 탁 트여 울란바타르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곳이야말로 울란바타르 최고의 데이트 명소이기 때문이다.



승전탑 앞에 서면 울란바타르 중심 구역은 물론 울란바타르 전체가 한장의 파노라마 사진처럼 펼쳐지는데



멀리 울란바타르를 둘러싼 야산에 빽빽이 들어선 집들을 자세히 보면 판잣집과 게르가 거의 비슷한 비율로 섞여져 있어서
울란바타르 270만 시민의 반이 게르에 살고 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몽골의 강남이라 불리는 자이승 지구에는 이렇게 고급주택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으며



백평이 넘는 아파트도 즐비한 자이승지구는 싱그러운 숲 사이로  푸른 톨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경치를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몽골의 아파트들은 한국의 아파트보다 더 화려한 색깔로 칠하는 것이 보통이라 도시의 풍경은 파란 하늘과 더불어 눈부신 조화를 이룬다.



승전탑 계단 아래 보이는 이 건물들은 북한 소유의 건물이라고 하는데 한참을 보고 있어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승전탑 동편 가파른 민둥산 능선에 무언가 하얗고 까만 점들이 움직이기에 자세히 보니



많은 양과 염소 떼들이 몰려서 내려오는게 보인다.
도시 안에서도 많은 수의 가축들이 방목되고 있는 곳...이곳이 몽골이라는게 다시 한번 실감이 나는 부분이다.



몽골 최고의 데이트 장소답게 승전탑을 오르내리는 계단 옆 바위에는 연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낙서가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쓰여져 있는데



그중에서는 한글 낙서도 심심찮게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서 보이는대로 카메라에 담았지만
찍어온 한글 낙서 사진을 글에 삽입해? 말어? 를 한참이나 고심한 끝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아직 어린 여행자들이 멀리 몽골까지 와서 소속과 이름까지 밝히며 써놓은 낙서를 인터넷에 공개해서
새로운 마녀 사냥꺼리를 만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으로 떠나는 우리 자녀들이 외국의 유적지에다 한글 낙서를 남기고 오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도록 
교육을 잘 시켜 출국시켜 달라고 부모님이나 단체의 지도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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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일상 생활을 컴퓨터 부팅으로 시작하는 분이 많다.
부팅하면 서서히 떠오르는 모니터의 화면..
컴퓨터 바탕 화면이다.



컴퓨터 바탕 화면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즐겨 사용하는 바탕 화면 이미지 '초원'은 바로 '몽골의 초원'이다.
몽골을 여행하시는 분들은 여행 내내 수많은 컴퓨터 바탕 화면을 접할 수 있다.
여기도 바탕 화면...
저기도 바탕 화면...
가는 곳 마다 온통 바탕화면 언덕의 천국이다.

여러분을 컴퓨터 바탕 화면 같은 몽골 초원으로 인도해본다.



나이람달 캠프에서 울란바타르로 가는 길목에서 찍은 언덕은 마치 바탕 화면 이미지를 이곳에서 찍은 것이 아닌가...착각할 만큼 비슷하다.



울란바타르 인근 날라이 지역의 말박물관 앞의 초원의 빛은 하늘 빛과 어우러져 한층 신비감을 더한다.



폭풍같은 구름이 낮고 두껍게 깔려 있던 날의 바탕 화면 언덕이다.



이런 바탕 화면 언덕에서는 어김없이 소들이 풀을 뜯거나...



말들도 편안히 서로를 의지하거나 누워서 잠자고...



또는 주인을 저 멀리 초원으로 인도할 준비를 마치고 있다.



초원에 사는 아이의 하루는 말 돌보기로 시작해서 말 돌보기로 끝나고.....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배우는 곳, 바로 몽골의 초원이다.



요즘은 말 대신 자동차로 초원의 100 차선 도로를 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몽골 사람은 시력이 좋기로 유명한데 온 사방이 초원이다 보니 항상 먼 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시력이 나빠질 수가 없을 듯.....
거기다 예로부터 초원 저 멀리에서 오는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를 육안으로 식별해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시력이 발달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초원에 사는 어떤 사람은 2 km 떨어진 사람의 옷을 보고도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맞혔다고 한다.
우리의 시력 측정표는 2.0 이 맥시멈일 뿐더러 측정 결과가 1.0 만 넘어도 눈이 좋은 편에 속하게 되는데
몽골 초원에 사는 사람의 시력은 4.0 혹은 5.0 인 사람도 있고 7.0인 사람도 있다니.....정말 믿어지지가 않는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매일 매일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 보느라고 눈이 혹사당하는 분들은 이 바탕 화면 언덕으로 올라가서 끝도 없이 펼쳐진 주변 초원을 바라보거나



또는 바탕 화면 언덕 바로 아래로 내려가 뭉게 뭉게 피어오느는 구름과 파아란 하늘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본다면
늘 피로에 지친 우리의 눈을 최고의 상태로 돌릴 수 있는 최고의 처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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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아침 이슬에 젖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 트랩 대령이 기타를 치며
'에델바이스'를 부르던 장면은 누구나 기억하실 것이다.

필자 또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볼 때마다 이
노래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함께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곤 했으니...


영화 사운드 트랙으로 인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름인 '에델바이스'
유럽의 알프스와 히말라야에서 자생한다는 '에델바이스(edelweiss)'는 스위스의 국화인데
고산 식물인 에델바이스를 우리 주변에서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에도 에델바이스와 비슷한 솜다리꽃이 설악산이나 한라산의 고산 지역에서 자라나기도 하는데
일부 등산객들이 설악산에서 자라는 솜다리나 산솜다리를 에델바이스로 잘못 알고 마구 뽑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솜다리는 한국에서만 자라는 희귀 식물로 에델바이스와는 다르다고....


알프스에서만 만나리라 생각했던 에델바이스를 몽골 초원에서 만났다.
울란바타르에서 약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려가면 나오는 만쉬르 수도원은
몽골에서도 보기 드물게 초원과 침엽수림이 한데 어울린 곳인데
인적없는 만쉬르 수도원 입구에는 에델바이스가 지천으로 피어 찾는 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소중한 추억'이 꽃말인 에델바이스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눈으로 뒤덮인 스위스의 알프스 산에 '에델바이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가 얼음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원래 '에델바이스'는 천사였는데 변덕스러운 신이 그녀를 인간으로 만들어 산꼭대기로 내려보낸 것이었지요.

어느 날 우연히 그곳을 발견한 등산가가 그녀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매혹되었답니다.
산을 내려온 등산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했고 이를 전해들은 젊은이들은
'에델바이스'를 보려고 앞을 다투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에델바이스'를 보지도 못한 채 등산 도중에 목숨을 잃어 갔죠.
이 사실은 안 '에델바이스'는 몹시 슬퍼 신에게 자신을 멀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신은 한줄기 빛을 보내 '에델바이스'를 다시 천사로 만들어 하늘로 올라오게 했죠.
그녀가 가버린 뒤 그 집에는 새하얀 꽃이 피었는데..사람들은 그 꽃을 '에델바이스'라고 불렀답니다.


그 이름과 자태처럼 아름다운 전설을 가진 에델바이스.
초원에서 만난 귀한 에델바이스는 눈과 사진으로만 담아 가지고 왔는데
몽골을 떠나던 날 뜻하지 않게도  책갈피에 곱게 말린 에델바이스를 진주라는 아가씨에게서 선물로 받았다.

 지금도 필자의 수첩 갈피에 곱게 끼워져 있는 에델바이스.
만쉬르 초원의 향기가 그대로 남아 몽골의 '소중한 추억'을 되살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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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에서 차로 약 20분정도 떨어져있는 
'손기노-카이르칸(Songino-Khairkhan)'지역을 방문하는 날이다.




울란바타르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야산에는 산중턱까지 주택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는 곳이 많은데 이 지역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손기노-카이르칸 지구 입구로 들어서니 마을 어귀에 큰 물이 쓸고 지나간 흔적이 보이고 여기저기에 치우지 못한 쓰레기가 쌓여 있는게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전혀 포장되지 않은 넓은 도로는 여기저기에 물이 고여 있어 악취가 나고 사람들은 물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해 걸어다니고 있었다.



좀 더 가니 판자로 구획되어진 집들 사이로 울퉁불퉁한 골목길이 보이는데 바닥이 패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이 물웅덩이가 있는 도로를 우리와 꼭 같은 방법으로 아이를 업고 가는 모습도 눈에 뜨였다.



짓다가 만 집인지....아님 다 부서져 가는 집인지....출입구에 판자로 가로질러 놓은 집이 보였는데 그 뒤의 집도 형편이 비슷했다.



마을 중간쯤 길에는 아예 큰 웅덩이가 생겨서 사람들은 가장자리로 피해서 걸어다니고 아이들은 물웅덩이 옆에 앉아서 놀고 있기도 했다.



동네 중심 지역에 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 차들은 택시 영업을 하는 차.
몽골에서는 개인 승용차로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사진의 차들은 대부분 한국 중고차이다.



70년대의 우리나라 달동네처럼 무계획적으로 들어선 손기노 카이르칸 지역에는
울란바타르 지역의 인구의 거의 1/5에 해당되는 52,770 가구에 232,326명의 인구가 모여살고 있는 곳이다.



동네 한가운데 있는 이 건물에서 지역 적십자사 직원을 차에 태우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마을 어귀에 큰 물이 쓸고간 흔적이 있어서 궁금해 했더니 바로 7월 21일에 울란바타르를 강타한 집중 호우에 이 마을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둥그렇게 자국이 남아 있는 곳은 게르(몽골 전통 주택)가 있던 곳인데 단 30분 정도 내린 집중호우에 갑자기 물이 불어 넘쳐 많은 게르가 떠내려 간 것이다.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단 30분 내린 비에도 물은 넘쳐 흘러 도로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이 지역에 어렵게 사는 주민들의 게르를 휩쓸어 그들의 전 재산을 날려 버렸다.


 
마을 옆에 위치하고 있던 군부대의 강당으로 인도되어 자세한 그 당시의 홍수 상황을 사진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7월 21일 갑자기 내린 집중 호우는 울란바타르에 내린 43년만의 최악의 홍수였는데
몽골정부의 공식 발표로는 1,000여채 이상의 게르가 물에 떠내려가고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상황을 브리핑하던 적십자 책임자는 호우로 인한 피해 복구에 선처를 해줄 것을 호소하며 또한 이 지역에 사는 
편부모이거나 고아인 아이들
중에서는 쓰레기나 비닐봉지를 모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아이들이 많으며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으로 이사온 가정이 많아서 주민등록이 없는 가정이 많다 보니
아이들 또한 교육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말도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원래  우리 단원들은 손기노 지역 어린이들에게 생활 필수품과 학용품을 비롯한 우정의 선물을 전달하러 간 것이었는데
현장에 가서 몽골에 내린 최악의 홍수에 대해서 소식을 접하게 되고 
작은 힘이나마 성금을 모아 선물과 함께 손기노 카이르칸 적십자사에 전달하고 돌아왔다.

혹자는 말한다.
거기까지 가는 그 돈으로 선물이나 성금을 부쳐 주면 되지
별거 아닌 봉사를 하러 비싼 항공료 물어가며 거기까지 가느냐고...
별로 보탬이 되지도 않는 선물 나부랑이를 들고 가서 생색만 내고 사진 찍고 오는게 아니냐고...

단원들이 전달하고 돌아온 얼마 되지 않는 정성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사람이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6.25 이후 우리가 세계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다른 세계로 되돌려줄 때는.....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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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통 가옥인 초가집이나 기와집을 볼 수 있는 곳은...?

정답은 '민속촌'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 가옥인 초가집이나 기와집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보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옥은 이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라고 말하는게 더 합당할 듯 하다.

그럼 몽골을 대표하는 전통 가옥, 유목민의 이동식 천막집은 뭐라고 하는지 아시는 분.....?
학교다닐 때 사회책에선 '파오'라고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이것은 중국어 'bao(包)'에서 기인된 말이고
영어로는 유르트(Yurt), 몽골어로는 게르(Ger)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도시에 초가집이 없는거나 마찬가지로
아무리 몽골이라도 도시에는 현대식 건물이 있고 멀리 떨어진 초원에 가면 게르를 볼 수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갔었는데 나의 예상은 완전 어긋나버렸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시내 한복판에 게르가 즐비하다.

울란바타르를 둘러선 나즈막한 야산에 온통 게르 천지다.
현대적인 아파트 앞에도 게르, 차들이 분주하게 다니는 길가에도 게르, 심지어는 빌딩의 옥상에도 게르가 올라 앉아 있다.
수도 울란바타르 주민의 반이 게르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몽골은 온통 게르천지여서
처음 방문하는 여행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오늘은 울란바타르 인근에서 돌아다니며 찍은 <게르 풍경>을 소개해 드린다.
게르 짓는 과정과 게르의 내부 구조....등 게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 기회에 다시 자세히 설명드리기로 하고...



울란바타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이승 전망대에 올라서 시내를 본 풍경이다.
저 멀리 울란바타르를 둘러싼 산중턱까지 집들이 들어찬 모습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집들의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카메라의 렌즈를 줌으로 당겨 자세히 보니 헉...울란바타르 산중턱에 있는 건물의 반이 게르다.



판자로 울타리를 친 구역 안에 게르가 한두채 씩 자리잡고 있다.



자이승 전망대의 남쪽에는 이렇게 게르 집단촌이 보인다. 게스트 하우스나 캠프촌이 아닐까...추측을 해 본다.



손기노-카이르칸 지역의 주택들. 2층 양옥과 게르가 한 동네에 섞여 있다.



게르는 초원에 가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건 완전 오산. 아파트 앞에 게르가 있다.



이렇게 관공서 앞 마당에도 버젓히 게르가 있고



공터만 있으면 어디든지 게르가 빠지지 않는다.



달동네의 앞의 게르...



가게 앞에도 게르가 버티고 있는데 게르 앞에 간판이 있는 걸로 보아 상점의 용도로 쓰이는 듯 하다.



때로는 옥상 위에 이렇게 버젓이 올라앉아 게스트 하우스로 쓰이기도 한다.



다운 타운의 고급 아파트 앞에도 게르가 버티고 있는데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이런 게르는 대부분 영업용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는 게르 갤러리도 있는데 엄청나게 규모가 큰 게르 갤러리의 안에는 수준 높은 미술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게르의 모양과 게르를 둘러싼 울타리는 어느 지역을 가도 비슷한 모습이다.



시골 동네에 자리잡은 게르나...



민가가 별로 없는 길가에 자리잡은 게르나 다 판자로 담을 둘렀다.



담장은 판자로 , 대문은 함석으로 된 곳이 많이 보인다.



때로는 이렇게 컬러풀하게 담을 장식한 집도 보인다.



물론 초원 한가운데서 사는 유목민들에게야 구역을 정하는 담이야 필요조차 필요가 없겠지만
도시 변두리에 사는 주민들의 게르 주변은 담을 판자로 둘러친 모습들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울란바타르의 휴양지구인 나이람달로 가는 길목에도 별장들과 게르가 섞여 있다.
몽골 사람들은 조금만 살만 하면 누구나 별장을 가지고 있는데 부자들은 여름 별장, 겨울 별장도 따로 있다고 한다.



테를지 국립 공원에서 본 풍경. 웅장한 산 아래 게르가 멋진 조화를 이룬다.



나이람달 캠프장의 게르. 몽골에도 이렇게 멋진 숲이 있고 이런 곳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흘러가는 개울도 있다.



이런 게르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별도.... 달도....은하수도 고스란히 게르 위로 쏟아진다.



몽골에는  울란바타르와 테를지 단 2곳에 골프장이 있다는데.......골프장의 게스트 하우스도 게르다.



부족의 깃발이 나부끼는 이렇게 멋진 게르 안에서는 당장이라도 칭기즈칸이 칼을 차고 나올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게르라면 역시 이렇게 초원의 하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어야 제격이다.
파아란 하늘과 눈부신 초원의 푸르름 속에 있는 게르의 하얀 색은 초원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게르 앞에 이렇게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몽골의 초원  어디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오후 햇살이 길게 드리우는 초원의 게르 주변 풍경들은 몽골을 떠나온 여행자의 마음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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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빠뜨리지 않고 들리는 곳 바로 '수흐바토르 광장'이다.




울란바타르를 동서로 가로 지르는 가장 번화한 거리 피스 애비뉴(평화의 거리)를 건너면 눈 앞에 엄청나게 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수흐바토르 광장은 울란바타르의 어느 지역이든 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인데
광장을 중심으로 국회 의사당, 역사 박물관, 중앙 우체국, 외무부 청사, 국립 오페라 하우스, 자연사 박물관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각국의 대사관, 사원, 대학 등의 교육 기관 또한 이 광장과 가까운 곳에 밀집해 있다.



이 광장을 '수흐바토르 광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광장 중앙에 몽골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수흐바토르'의 동상이 서 있기 때문이다.



수흐바토르가 1921년 7월 11일 혁명을 선포하고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해 1925년부터 이곳을 수흐바토르 광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흐바토르(Damdinï Suhbator )는 가난한 유목민의 집안에서 태어나 16세 때 역전 마차의 마부가 되었고
1911년 몽골 독립 후 건군된 자치 몽골군의 소집을 받고 입대하여  하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기관총대장으로서 전공을 세웠다.
1918년에 정부 인쇄소의 식자공이 되었는데 그 동안 중국과 무능한 몽골 지배층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러시아 혁명에 자극을 받은 수흐바토르는 1920년 6월 초이발산 등과 몽골인민당을 결성하고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전후 두 차례에 걸친 레닌과의 회담을 통하여 몽골 혁명의 성공과 그 후의 국가건설을 위한 전술 지도를 받고
1921년 인민의용군을 결성, 총사령관이 되어 적군()과 함께 마이마친에서 군사를 일으켜
7월 10일 우르가(현재 울란바타르)에 인민 정부를 수립하고 스스로 국방장관이 되었다.



수흐바토르의 동상이 서 있는 장소는 1921년 몽골군이 청나라와 제정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개선 환영식이 열렸던 장소이며
7월 11일, 수흐바토르 장군이 혁명을 선포할 때 말을 타고 서 있었던 곳이다.
당시 그가 탄 말이 오줌을 쌌는데 모여있던 사람들은 이를 길조라고 생각하여 그곳에 말뚝을 박아놓았고
나중에 동상을 세울 때에 그 말뚝을 찾아내 그곳에 세웠다고 한다.
동상 밑에는 1,865kg의 금과 수흐바토르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에서 입었던 옷 한벌, 그리고 장군 부인이 눈물을 닦은 손수건을 넣어 두었다.



원래의 동상은 1931년에 만들어졌는데 1946년에 혁명 25주년을 기념하면서 새 동상으로 다시 만들어 세우고 이전 동상은 현재 몽골 대학교에 있다.
영웅은 단명이라던가....그는 30세 때 결핵으로 짧은 일생을 마감하였다.



수흐바토르 장군상 뒤에 장엄하게 서 있는 건물은 몽골 국회의사당이다.



국회 의사당 정면에는 몽골을 상징하는 세명의 동상이 서 있는데 가운데는 칭기즈 칸, 왼쪽은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이자 몽골 제국의 두번째 칸인 오고타이 칸,
오른쪽은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중국을 통일하고 베이징에 원(元)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이다.



세계 최초로 유라시아를 통일한 대제국을 건설하여 몽골족의 기상을 세계에 떨친 칭기즈 칸은 몽골을 상징하는 이름이며 몽골의 정신적인 지주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건물 중앙에는 수흐바토르 장군묘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2005년에 몽골 국립 묘지로 이전했으며
국회 의사당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하여 완전한 새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몽골의 영웅들이 있는 계단으로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올라가서 자세히 살펴보거나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국회의사당과 수흐바토르 동상 사이에는 이곳이 울란바타르의 중심이며 기점이라는 표식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8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수흐바토르 동상을 중심축으로 하여 광장에는 울란바타르의 중요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국회의사당 바로 서쪽 건물은 몽골 역사 박물관이며 그 뒤편에는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몽골의 대부분의 궁전이나 사원, 박물관에서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고
5,000~ 10,000(우리와 돈 가치가 비슷하다) 투그룩 정도의 사진 촬영비를 내면 촬영이 가능하다.
몰래 사진 찍다가 들키면 몽골 관리인이 아주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당장 돈을 내라고 요구한다.



광장 입구 서쪽에 있는 건물은 중앙우체국인데 건물 벽에 코카 콜라 광고판이 버티고 서 있는 건물이 우체국이라는데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광장의 동쪽엔 민주당 당사, 몽골 중앙 문화원, 국립 오페라 하우스가 자라잡고 있다.
 


뒤의 건물이 몽골 중앙 문화원이다.



몽골 국립 오페라 하우스는 아주 밝은 핑크색으로 칠해진 것이 이색적으로 보이며 바로 뒤의 건물은 샹그리라 호텔이다.



수흐바토르 광장의 남쪽 피스 에비뉴 건너편에는 반달 모양의 특이한 고층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울란바타르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보이는 유명한 건물이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건축한 건물이라는데 울란바타르 친구의 말로는 부실 공사라고 한다. 
외국에 짓는 건룸이라도 좀 더 견고하고 내실있게 지어서 국가 위상을 실추시키기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몽골의 중요한 혁명 기념일이나 국경일에 수흐바토르 광장에서는 국가 차원의 행사가 자주 열리는데 
그 때는 광장 가운데 있는 수흐바토르의 동상에 꽃을 바치는 사람들로 가득 차며
결혼식을 끝낸 신랑 신부들이 웨딩 사진을 찍으면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장소로도 자주 이용된다.



가히 울란바타르의 정치, 경제, 문화의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수흐바토르 광장은
몽골인들에게는 울란바타르의 상징이며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몽골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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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여행 동안에 머물렀던 울란바타르 미카 호텔 주변의 아침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우리나라 변두리 모텔 같은 느낌의 이 호텔은 별 3개 짜리 호텔이다.



아직 도시는 아침 잠에서 덜 깨어난 듯 길거리는 한산하기만 하고 구름 낀 하늘 아래 건물들도 스산해 보인다.



이 호텔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수흐바토르 광장에서 상당히 가까운 지역이고 대사관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는 이른바 중심 지역이다.



열심히 거리 청소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 뒤로 수흐바토르 광장에 위치한 국회 의사당의 깃발이 보인다.



호텔 바로 앞에는 스위스, 불가리아,일본, 한국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고 (관련 포스트 : 초라해 보이는 몽골의 한국 대사관)
호텔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Soyol Erdem University 가 자리잡고 있다.



University치고는 규모가 무척이나 소박하다. 우리나라이 거대 University와는 차원이 틀리다.

역시 같은 대학의 부속 건물인데 원목으로 지어져 있다.



대학 건물 치곤 참 요상하게 생긴 건물이다.



몽골의 스파는 어떤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처럼 24시간 영업은 아닌 듯 문이 굳게 잠겨 있다.





호텔 바로 옆에는 병원인 듯한 건물이 있고.... 



한국 대사관 맞은 편에는 제법 큰 일본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다.




길가에 내걸린 안젤리나 졸리는 밤새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몽골의 구급 전화 번호는 103인가 보다. 환자 이송이라고 쓰인 한국산 중고 앰뷸런스가 눈에 뜨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아가씨가 열심히 거리 청소를 한다.



대부분의 건물에는 여러가지 모양의 창살 장식을 해둔 것이 특징이다.



건물 신축 현장.  통나무를 그대로 버팀목으로 쓰고 있는데 인상적이다.



을씨년스러운 건물이 거리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영업을 하다 망해 버렸는지 아예 문에다 못질을 해둔 흔적이 보인다.



울란바타르 중심부인데도 방치된 듯한 건물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그런데도 한쪽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건축되어 새로운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88028809....다 전화 번호다. 울란마타르 전역에는 이렇게 전화번호를 대문짝만하게 걸어두고 임대나 매매를 기다리고 있는 건물이 아주 많이 보인다.



울란바타르에는 이렇게 궁전 스타일로 지은 건물들이 참 많다. 마치 우리나라의 예식장들을 보는 듯한 건물이다.



아주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도 눈에 뜨인다.



몽골의 아줌마들은 의외로 살집이 있으신 분들이 많다.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 식습관 때문에 고지혈증을 가지신 분이 많다는 후문...



때론 이렇게 코스모스를 이쁘게 가꾸어 놓은 정원도 볼 수 있지만...



거리의 많은 부분은 이렇게 양이나 말이 와서 뜯어먹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풀이 무성하다.



휴지통 옆에도 풀이 무성하게 자라 휴지통을 덮으려고 한다.



몽골 적십자 바로 뒤의 건물인데 많은 사람들이 발코니에 나와서 마당을 바라 보고 있었다.
구글 지도를 보니 근처에 국립의과대학이 있던데 기숙사일까....?



아니...이 사람들은 아침부터 이 무슨 낯 뜨거운 연출이란 말인가...
몽골의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성적으로는 많이 개방적인 편이다.


또 몽골은 남녀 구분 없이 많은 술을 마시는데 술의 도수도 높지만 우리네 보다 더 심한 '마시고 죽자' 스타일이다.
이렇게 술 소비가 심한데도 연구에 의하면 몽골인들의 알콜 분해 능력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음주에 대한 통제력 또한 부족하여 모든 범죄의 80% 이상이 음주로 인한 범죄라고...



우리보다 더 도수가 높은 술(39도 정도) 때문에 아침까지 술취해서 흐느적거리는 사람을 많이 본다.
실제로 아침까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 여기저기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거리를 구경하던 일행에게 술 취한 남자가 소리 지르면서 쫒아오는 바람에 모두 다 기겁을 하고 달아나기도 했다.
필자 또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오른쪽의 술 취한 남자가 필자에게 소리를 지르며 손짓하는 바람에
얼른 한 컷 누르고 걸음아...날 살려라....하고 달아나느라 사진이 심히 흔들렸다....^^
이처럼 아침에도 외국인 여자들이 산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곳이니 여행 가시는 분들은 그점을 조심하기 바란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일본 대사관 앞으로 오니 남자 세명이 열심히 차를 밀고 있다. 아마 엔진이 서 버린 듯...



우리도 예전에는 이런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애니카를 부르면 신속히 달려오니 고맙기만 하다.



어...그런데 고장난 차는 다름아닌 한국차...
자동차 관계자님들은 만든 차가 몽골에 중고차로 팔려와서도 고장 안 나고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차 좀 잘 만들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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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맑게 개인 날,
버스에 올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Ulannbataar)의 남쪽 외곽지역으로 향한다.




울란바타르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몽골 적십자사 칸-울 지부(Khan -Uul District Red Cross Branch)'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칸-울 지역은 14개 구역에 약 9만명의 인구가 밀집해 사는 지역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달동네와 같은 지역이다.



수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지만 저소득층이나 소외 계층이 주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고
가옥 또한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Ger)나 대충 지어진 판잣집이 많고 도시 기반 시설이 부족하여 매우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14일 나담 축제 기간에는 화재가 일어나서 게르 14채가 불타는 불상사가 일어났으며
7월 21일 , 울란바타르를 강타한 집중 호우로 인해 게르 1,000여채가 떠내려 가고 사상자도 났으며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당시 칸-울 지구에 물이 차 올라 사람들이 걷거나 차가 운행하기도 힘든 형편이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길 곳곳에는 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여 있어서 길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칸-울지구의 건강과 구호 활동을 위해 봉사하는 '몽골 적십자사 칸-울지부'를 찾아가는데 거리에 고인 흙탕물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걸어 가야 했다.



조그만 판자문을 통해 들어간 좁은 공간에는 벽돌집 한동과 몽골식 전통 가옥인 게르(Ger) 두채가 있었다.



몽골 적십자사 칸-울지부는 2001년도에 적십자사에서 건립했는데 우리를 맞아준 게르는 EU에서 지어준 것이다.



동네 주민들과 자원봉사자 몇 분이 먼저 오셔서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한국 RCY 일행들은 준비해 간 우정의 선물 일부를 칸-울 지역에 전달했는데 우정의 선물은 생활 필수품과 학용품들이다.



우리가 준비해 간 작은 선물이 이분들에게 귀하게 쓰여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어 복지 센터로 쓰이는 게르 안으로 인도되어 들어갔는데



밝은 외부에서 게르의 실내로 처음 들어가면 갑자기 너무 어두컴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게르의 둥근 천정(터너)에서 들어오는 환한 햇살로 인해 곧 눈이 밝아지고 모든게 익숙해진다.



게르의 북쪽인 신성구역에는 칭기즈 칸의 초상화가 붙어 있고



역대 칸-울지구 적십자 책임자인 듯한(?) 사진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게르의 중앙에는 귀한 생수와 사탕이 전통식 탁자 위에 베풀어져 있었고



 몽골 전통 우유과자인 '아롤(aaruul)' 도 '무지개의 나라 솔롱고스(solongos,몽골에서 한국을 이르는 말)'에서 온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칸-울지구 적십자 지부장과  자원봉사자 대표의 인사가 있은 후 한국측 대표의 인사와
가지고 간 우정의 선물 및 대한 적십자사 총재의 선물 전달식이 이어졌다.




환영해 주신 분들 중에서 녹색 '델(Deel,몽골 전통 의상)'을 곱게 차려 입으신 이 할머니는 1955년부터 지금까지 54년간 자원봉사를 하셨다는데
가슴에는 여러개의 기념 뱃지와 훈장이 빛나고 있어 할머니의 활동 경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자신을 내어주는 자원 봉사를 하셨기 때문일까?
올해 86세라고 하시는데 그 태도는 배우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자주색 델을 곱게 차려 입으신 이 할머니는 70년 동안 적십자 자원 봉사를 하셨다고 하는데



몽골 적십자가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것을 생각하면 이 할머니는 거의 몽골 적십자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란 델을 입으신 라마승은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전통 예절을 교욱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이어서 이 지역 노인들이 나와서 멀리서 온 방문자들을 환영하는 '장기 자랑 공연'이 이어졌다.



봉사 활동을 하러 갔는데 노인들에게 도리어 '위문 공연'을 받은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아서 처음에는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노래를 부르거나 기타를 치는 이 노인들에게는
멀리서 온 방문자들에게 자기들의 숨어 있던 실력을 보여준다는게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생각하며 기분좋게 들으면서 박수도 신나게 칠 수 있었다.



노래의 반주로 아코디언과 기타를 연주하던 할아버지는 이어서 기타 독주, 하모니카 독주까지 한다.
한곡이 끝나는가 하면 또 다른 곡이 이어지고......^^
젊었을 때에 한가락 날리고도 남았을 이 할아버지의 끼는 이날 완전 날개를 달았다.



칸-울지부 적십자사 복지센터에서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일과 식사 등을 제공하는 등의 봉사를 하고 있는데



이날 한국에서 방문한 일행은 노인들에게 생활 필수품을 전달하는 외에 몽골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마사지 봉사를 했다.



라마승 또한 한국에서 온 사이비 마사지사(?)의 손길에 몸을 내맡기고 편안함을 즐겼다.
발에 신은 특이한 부츠는 '고탈(Gutul)'이라고 하는데 가죽으로 되었으며 우리나라 고무신처럼 앞코가 살짝 들리고 좌우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마사지 후 할머니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이쁘게 문신 스티커를 붙여 드리니 너도 나도 와서 팔뚝을 내미셨다.



살며시 스티커를 떼어 문신이 나타나면 "오~~!" 하면서 너무 즐거워 하셨다.



화장을 곱게 하고 몽골 전통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주던 이분도 문신이 아주 맘에 드셨나 보다.



요술 풍선으로 만든 꽃 한 송이를 흔들며 웃으시기도 하고....



풍선 왕관에 팔뚝에는 문신을 하고 이쁜 손길로 주물러주는 마사지까지 받으니 만면에는 웃음이 피어난다.



별 것 아닌 봉사에도 너무나 좋아하고 기분 좋아 하시던 어르신들은 우리의 마사지 봉사를 다 받고 나시더니 
이번엔 수고한 한국 방문자들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싶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놀라서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손사레를 치고 여러번 거절한 후에야 간신히 그분들의 마사지 시도를 막을 수가 있었다. 




몽골 어르신들은 특히 사진 찍히기를 즐거워 하셨는데....



적십자 뱃지를 단 라마 승려는 최고의 모델이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들에 뺨에 연신 뽀뽀하는 장면을 연출하시는 할머니는 오늘의 히로인이다.



필자는 우리를 환영해 주신 분들의 사진을 한분 한분 다 찍어 드렸는데



특히 이 멋쟁이 할머니는 사진 찍는걸 너무나 좋아해서 수십컷의 사진을 찍었다.



포라로이드 카메라가 있다면 즉석에서 사진을 현상해서 드렸으련만.....
미쳐 가져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분들의 사진을 인화지로 현상해서 몽골 적십자사로 우송해 주려고 한다.



선물 전달과 마사지 봉사를 마치고 나니 칸-울 지사에서는 방문한 일행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고 내놓는다.
아니...이런....
봉사받는 분들이 선물을 준비하다니....이런 경우도 있나....ㅠㅠ
우리는 극구 만류했지만 이분들은 자신들이 정성이라며 조그만 민속 악기 모형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나무로 만든 몽골을 대표하는 민속 악기의 이름은 '모린호르(morin khuur,馬頭琴)'인데



모린호르의 음색이나 연주하는 영상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도록 하고....



이제 떠나야 할 시간...



몇 시간 머무르지 않았지만 어르신들은 헤어짐을 너무나 서운해 하셨다.
초원의 거친 삶 속에서 한번 헤어지고 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었던 것처럼 솔롱고스의 방문객들도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으므로....



계속 손을 흔들며....



'바야르태(Баяртай, 안녕히 가세요)'! 를 말하면서도 손을 쉽게 놓지 못 했다.



짧은 만남이지만 헤어짐은 모두를 찡하게 했다.



할머니는 들어가시라는 우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을 어귀 도로까지 따라 나오며 손을 계속 흔드셨다.



어렵게 사는 몽골의 달동네에 가서 건네 주고 온 선물은 별 것 아닌 생활 필수품이었지만
그들에게서 받은 관심과 사랑은 전해 준 선물보다 더욱 크고 귀한 것이었다.
힘들게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밝은 표정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여준 그 어르신들을 보니
우리가 과연 그들을 도와주러 갔던건가.....생각되어 조금은 부끄럽게 여겨졌다.

몽골 가서 무엇을 하고 왔냐고 물으시는 분들에게 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주러 갔다가 더 많이 받고 왔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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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에서 처음 맞이하는 아침.

지난 밤 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눈이 번쩍 뜨인다.
창을 열고 밖을 보니 햇살은 비치기 시작하는데 하늘이 아직 환하지가 않다.




조식 시간인 8시까지는 시간이 좀 있는지라 같은 방을 쓰고 있던 이쁜 S양과 함께 호텔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울란바타르에 머무는 동안 계속 MIKA라는 호텔에 머물렀는데 보시다 시피 외관 및 내부가 매우 소박하다.
한밤중에 울란바타르에 내려 버스를 타고 호텔에 당도하니 

주변과 호텔 방에 불빛이 거의 없고 으시시하기만 해서 모두가 경악했다는....^^

왜 이런 허름한 곳으로 숙소를 정했나 하고 실망했는데 의아했던 부분은 아침에 되어서야 풀리게 되었다.



몽골 적십자 건물이 호텔과 바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척에 있었던 것이 호텔 선정의 가장 큰 이유였고
주변 대부분이 건물이 관공서와 학교였기 때문에 낮에는 차와 사람이 왕래하나 밤중에는 암흑 천지일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사실 울란바타르 다운 타운도 밤이 되면 많이 어두워서 다니기가 매우 위험하다.)



호텔 정문 앞에 넓은 대지를 차지하고 잘 지어진 건물이 있기에 현판을 살펴보니 스위스 대사관이다. 



이른 아침이라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창살 사이로 보니 정원에 풀이 더부룩하게 자라있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같으면 잔디를 깨끗하게 다듬었을텐데.... 몽골에 머무르면서 보니 시내 중심부에도 잔디를 다듬으며 관리하는 곳은 별로 없었다.
몽골에서 풀의 의미는 우리처럼 조경을 위한 것이라기 보단 가축들의 사료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일까....?
실제로 다른 지역에서도 시내 한복판 길거리에서 소들이 어슬렁거리며 풀을 뜯어 먹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스위스 대사관 바로 옆에는 또 다른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경비 초소에 붙은 국기를 보아하니 이 건물은 불가리아 대사관이다.



불가리아 대사관의 바로 맞은 편에는 일본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건물도 깨끗하고 입구 또한 외관이 훌륭하다.



다른 건물과는 달리 문 앞에 꽃도 심겨져 있고 잔디도 잘 다듬어져 있으며 주변 또한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하다.



다시 호텔 반대쪽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몽골 양식이 살짝 가미된 재미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Soyol Erdem University 라고 하는데 일본과 결연한 대학인 것 같다.



대학 건물 옆의 차 한대 다닐만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어....! 살짝 후미진 곳에 한국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대한민국 대사관이라는 한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해외에 나가면 다 애국자라더니.....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태극기도 몽골에서 만나니 너무나 반갑다.



경비 초소 안에 경찰이 있기에 손짓하여 불러내어 대사관 정문 앞에 세우고 포즈를 취하게 했다.
밤새 근무를 해서 그런가.....삐딱하게 쓴 모자 아래 눈이 약간 피로해 보인다.  
외모로 보면 몽골 경찰이 아니라 완전 한국 경찰같이 보이는데 몽골 경찰도 복장은 한국과 거의 비슷하다.




한국 대사관은 위치도 일본 대사관이나 다른 대사관에 비해 후미진 곳에 있거니와 건물 또한 약간 초라한 느낌이 든다.
살짝 행랑채 같은 느낌의 한국 대사관을 보니 여행자의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대사관의 외관이나 규모만 보고 그 나라의 위상을 짐작할 수야 없겠지만
번듯한 일본이나 스위스 대사관에 비해 약간 초라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래도 몽골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물인데....!
요즘 국내 자치 단체의 으리으리한 청사와는 너무 비교가 된다.
국내 기관 청사 신축에 너무 많은 세금을 낭비하지 말고 해외 공관 건물에도 지원을 좀 늘렸으면....하는 개인적인 바램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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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근래 몇개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인천 공항 만큼 시설이 좋은 공항도 찾아보기 힘든다는 것이다.
너무 넓어서 출입국시에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정말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만한 웰빙 공항이다.





출국시에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에 시간이 좀 있으면 

공항 4층에 위치한 공항전망대(Airstar Terrace)에서 차를 마시거나 인터넷을 즐기곤 하는데

세상에서 제일 편한 릴렉스 의자에 몸을 한번 맡겨보면 비행기 탑승을 미루고 

그곳에서 한숨 푸욱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히 들기도 한다.





인천에서 몽골 울란바타르로 가는 항공편은 대한항공과 몽골 항공, 두편이 있는데
대한항공편은 몽골 항공보다 약 7만원 정도 비싼 항공 요금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대한항공편을 이용하고 있다.

인천 발 울란바타르 항공편은 운항은 매일 1회,
인천 발은 저녁 8시 10분이고 울란바타르 발은 무려 새벽 12시 20분에 출발한다.
몽골에 도착하면 이미 한밤중이 되거나 돌아올 때도 깊은 밤중에 출발해야 하는 다소 무리인 항공편이다.

밤중에 도착하고 한밤중에 출발하는 항공편이기는 하지만
몽골 여행에 최고의 적기는 바로 여름인지라 커다란 에어버스는 완전 만석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여행의 묘미 중에서 기내식을 먹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비즈니스 클래스를 한번도 이용해 보지 못한지라 내겐 이코노미 클래스의 기내식도 즐겁기만 하다.






팔도 못 제대로 못 펴는 좁은 공간에서 조그만 포크,나이프,스푼등을 사용해서 

코딱지만한 기내식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건 어릴 떄 소꿉놀이하던 기억. 

그래서 기내식은 여행을 시작한다는 설레임과 함께 여행자를 한동안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주기도 한다.






인천에서 저녁 8시 10분에 출발한 항공기는 현지 시각 10시 40분(서울 11시 40분)에 도착하니 3시간 30분이 걸리고
울란바타르에서 새벽 12시 20분(서울 1시 20분)에 출발하면 인천공항에 4시 20분에 도착하게 되니
기내식 한번 먹고 양치질하고 책 몇 줄 읽지 않아서 금방 도착하게 된다.
정말 몽골 울란바타르는 서울에서 북경, 도쿄, 타이빼이 다음으로 가깝다는게 실감이 나는 부분이다.

울란바타르 시각 10시 40분,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구를 통해서 밖으로 나오니
헉.... 몇 걸음 안 걸으니 바로 입국 수속장이다.
이렇게 편리할 수가.....^^
여행의 피로가 엄습할 때 공항의 규모가 작다는건 때로는 아주 도움이 된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내려 오니 바로 컨베이어 벨트 위로 짐들이 빙빙 돌아간다.
이것도 공항에서 단 한군데 뿐이니 어디서 짐을 찾아야 하나....하고 헛갈리지 않으니 좋다.






수하물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니 헉.....! 이럴 수가...ㅠㅠ 울란바타르에 비가 온다.
보슬비도 아니고 "우르릉~~~ 꽝꽝~~!!" 천둥이 치면서 비가 주룩 주룩 내린다.

오기 전 인터넷 검색을 통한 사전 지식으로는 몽골에는 거의 비가 안 오니 우산은 필요없고
우산이 필요한 경우는 다만 초원에서 볼 일 볼 때 가리개 대용으로 필요하다던데.....
한국의 장마를 피해 몽골에 오면 눈부시게 파아란 하늘만 볼 걸 기대하고 왔는데 첫날부터 의외의 날씨가 우리를 반기더니
몽골에 체류하는 동안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비에 우박까지 다양한 날씨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틀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늘이 꾸물럭하게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 계속되어서 나의 사랑스런 카메라를 울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파아란 하늘을 찍으러 몽골에 다시 가라는 계시..??)





골로 입국할 때는 비도 오고 해서 공항을 제대로 돌아볼 수 없었으므로  

몽골에서 출국시에 돌아본 울란바타르 공항을 살짝 소개해 드리자면.....

공항 앞에 내려서 맞은 편 주차장을 보니 소박하기 이를데 없다. 

한국의 대형 마트 주차장 정도의 크기보다 약간 적다고 생각하면 된다.






울란바타르 공항의 명칭은 '칭기즈 칸 국제 공항'인데 영어 표기 양 옆에 쓰인 글자는 '몽골 전통 문자'이다.






'칭기즈 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공항의 벽에는 칭기즈 칸과 티무르 칸등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고






공항의 벽면 장식에도 칭기즈 칸은 위엄있는 모습으로 여행자를 환영해 준다.






한밤중의 출국이라 이미 몽골 항공은 휑하니 빈 데스크만 공항을 지키고 있고






밤 늦은 시간이라서 공항은 조용하기만 하고 여기저기 앉아 있는 승객과 승무원은 다 한국 사람이다.






일행의 남자 팀원이 아내의 선물을 아직 못 샀는데 무엇을 사면 좋겠냐고 물어본다.
"여자들에겐 그저 파우더 컴팩트 같은 화장품이 최고죠~! 안에 들어가서 면세점에서 하나 사다드리면 좋아하실거에요...!"하고 말하니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수하물을 부치고 공항 검색을 통과해서 들어가니
헉....이게 웬 일..... 공항 안에 면세점이.....! 면세점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조그마한 공항 라운지에는 커피숍 한군데와 조그만  관광 상품점 세군데가 전부일 뿐 눈 씻고 보아도 면세점이 없는 것이다.
샤넬, 구찌.....등의 명품 샵이 즐비한 인천 공항에는 견주지 못하더라도 조그만 복합 면세점이라도 있겠지 생각한게 오산이었다.
(2층에 가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보드카 및 캐시미어, 향수, 시계를 파는 면세점이 있다는 걸 이후에 알게 되었는데 몰라서 들리지 못한 것이다.)






관광 상품점 또한 한국인이 경영하는 샵인지 영어로 가격을 물으니 유창한 한국말로 대답한다...ㅎ






심심해서 관광 상품점을 여기 저기 둘러보니 진열된 상품은 퀄리티가 그다지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비싼 가격이다.
(몽골의 공산품 가격은 한국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이 매우 비싼 편이다.)






몽골의 전통 복장을 담은 사진 책자에 관심이 가서 물어보니 한화로 거의 7만원.....우리나라 책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다.






할 수 없어 주인 몰래 뒤적이며 구경하고 사진만 살짝 찍었다.






라운지의 벽에는 최근에 불어온 몽골의 한류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한국 병원의 대형 광고가 붙어 있고 






벽에 걸린 삼성 TV에서는 한국 위성 방송이 방송되고 있어서 몽골에 거세게 불어온 한류가 다시 한번 실감이 되었다.




울란바타르 공항.....
우리의 골리앗 같은 규모의 인천 공항에 비하면야 정말 소박하기 그지 없는 공항이다.
하지만 공항의 크기나 부대 시설로 어떤 나라의 공항이 좋다...나쁘다...라는 표현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데는 공항의 크기나 시설이란건 그다지 중요한건 아니니까.....
나를 '파아란 초원의 나라 몽골'로 인도해준 울란바타르 '칭기즈 칸' 공항.
나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의 장소로 기억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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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푸른 초원의 나라, 몽골.
이번 몽골 방문은 개인 여행이 아니라 봉사와 국제 교류가 주목적이었고
활동 장소가 울란바타르 인근에 한정되어 있었던 관계로

사적인 취향대로 사진을 찍고 관심있는 부분들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칭기즈칸의 정신이 살아서 움직이는 몽골까지 가서 그냥 돌아올 수는 없는 일.
이동하는 도중이나 행사 도중에라도 눈에 보이는 것은 무차별적으로...필사적으로 다 셔터를 눌러 대었는데

이렇게 담은 사진들을 집에 돌아와서 열어 보니 정말 기가 막힐 지경이다.

자, 이 산만하기 짝이 없는 사진들을 가지고 어떻게 포스팅을 하지..?
당최 계획이 떠오르지 않고 암담하기만 하다.
마치 만들 요리의 종류를 염두에 두지도 않고 
시장에서 보이는 식재료를 닥치는대로 담아 와서 냉장고에 한가득 넣어두고는

오늘 저녁 도대체 무슨 요리를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을 끼니 때마다 하는 것에 비유하면 좀 이해가 되실지.....^^





몽골에 잠시 다녀온다고 친지들에게 말하니 국가 명칭부터 헛갈리고 생소해하는 분이 많았다.

몽고? 몽골? 어떤게 정확한 표현이지?
학교 다닐 때 역사 시간에는 분명히 '몽고'라고 배웠는데 '몽골'은 또 무언지.....?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몽고와 몽골은 같은 나라를 말하는 것인데 그 의미에 있어서는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이름은 '몽골(Mongol), 대외적인 공식 명칭은 '
몽골리아(the Republic of Mongolia)'이다.
몽골을 몽고로 부르는 것은 마치 '한국인'을 '조센진'이라고 부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데 
그것은 중국 사람들이 몽골을 '몽고(蒙古)'라는 한자어로 표기한데서 기원한다.

그 한자는 무지몽매할 '몽[蒙]'자에 오래된 것이라는 뜻의 옛 '고[古]'자를 쓰는데 
중국인은 주변 국가 중 유일하게 한번도 지배해 보지 못한 '강한' 몽골인을 '몽매하다'며 비꼬아 부른 이름이었다.

또한 중국인들은 항상 자신들만이 세상의 중심이고 주변국들은 오랑캐로 생각했기 때문에 
동서남북의 다른 민족들을 다 오랑캐의 뜻을 가진 한자인 동이, 서융, 남만, 북적.. 등으로 불렀다.
중국인들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동이(東夷), 즉 동쪽 오랑캐인 것이고
투르크 족은 '돌궐'로, '훈'족은 '흉노'로 표현하였으니....대부분 부족의 이름에는 비하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몽골(Mongol)'의 원뜻은 '몽'이라는 부족이 '중심(골, ГОЛ)'이 되어서 세운 국가로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좋은 뜻을 가진 이름'몽골'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바꾼 '몽고'라는 중국식 표현은 그리 좋은 표현이 아니므로
몽골인들의 앞에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는 서울에서 평양, 북경,도쿄, 타이빼이 다음으로 가깝다.
이렇게 가까운 나라 몽골은 우리에게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몽골이 그동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했었기 때문에 우리와의 단절은 더 심하였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주변국들이 만들어낸 몽골 고립 정책에 동화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에 이르러 공산당 일당 집권에 종식을 고하고 의회 제도를 받아들여 무혈 자유화를 이룬 이후
모래 폭풍보다 거센 개방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우리나라와 교류의 문도 트이기 시작했다. 


1990년 우리나라와 수교가 이루어진 이후 울란바타르에는 한국대사관이 설치되었는데

이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몽골의 북한 대사관은 한떄 폐쇄되었다가 다시 문을 열기도 했다.
이후 몽골 대통령 2명이 한국을 방문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을 답방하기도 하며 수교의 문은 점점 넓어져
현재 많은 몽골인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으며 몽골에 체류하거나 방문하는 한국인의 수는 날로 증가하는 중이다.





요즈음 몽골의 젊은 대학생들 상당수는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으며 제2 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을 선호한다.

몽골의 텔레비젼에는 하루종일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는데 한국에서 종영이 되자마자 몽골에 바로 방영이 된다고 하고
홈쇼핑 채널에서는 한국의 홈쇼핑 방송이 더빙만 몽골어로 되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몽골 젊은이들은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데 한국의 최신곡들을 우리보다 더 정확한 가사로 외워 부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길에는 엑센트, 엘란트라, 마티즈, 그레이스....등 수많은 한국산 중고차가 도로를 점령하고 있으며 
수퍼나 백화점에는 한국산 제품이 진열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몽골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을 놀라게 한다.

점점 가까워지는 나라, 마치 형제를 만난 듯 우리와 꼭 같이 생긴 사람들이 사는 나라 몽골.
지금부터 중구난방, 오리무중 몽골 여행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기대감일랑은 던져버리시고 부담없이....편안하게....루비의 뒤를 따라오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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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돌아왔어요~!
돌아올 때면 지리한 장마가 끝났으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비 내리고 꾸물럭한 날씨가 계속되네요.

아시아 전체를 커다란 구름이 감싸고 있는건가요?
눈이 아프도록 하늘이 푸르다는 몽골도 제가 있는 동안엔 흐린 날이 더 많았고
천둥 치고 비오고, 우박이 떨어졌다가 무지개 뜨는 등 '몽골은 비가 안 온다'는 상식을 뒤엎는 날씨가 계속되더군요.



몽골에 머무르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을 체험하고 돌아왔어요.
몽골 적십자 중앙 본부를 방문하여 몽골 적십자 활동과 RCY(Red Cross Youth) 활동을 돌아보았구요.
울란바토르 인근의 칸-울 지역, 투브 지역, 손기노- 카이르칸 지역, 날라이 지역의 취약 계층과 소외 계층 아동들을 방문하여
준비한 '우정의 선물'을 전달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특히 43년 만의 최악의 홍수로 수많은 게르(몽골 전통 가옥)가 떠내려가고 다수의 사망자와 이재민이 발생한
손기노- 카이르칸 지역에는 우정의 선물과 함께 성금도 전달하고 돌아왔답니다.

우리가 준비했던 우정의 선물은 사실 소박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는데도
몽골 적십자 관계자들을 비롯한 주민들은 너무나 기뻐하며 방문한 저희들에게 도리어 장기자랑으로 즐겁게 해 주는 등
관심과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도움을 주러 갔다가 사랑의 빚을 더욱 많이 지고 돌아온' 방문이 되었구요.
특히 몽골 RCY 친구들이 베풀어주신 귀한 사랑은 제 가슴에 언제까지나 새겨져 있을 것 같습니다.



몽골에 가 있는 동안에 인터넷을 전혀 접하지 못하고 있다가 집에 돌아와
정원에 남겨 놓으신 여러 이웃분들의 축하글을 보고서야 황금펜이 된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답니다.



이제껏 너무 즐겁고 편하게 블로깅했는데 얼떨결에 '베스트 View 블로거'란 칭호를 받으니
기쁨의 환호도 잠시...방문하시는 분들께 실망드리지 않도록 더 잘해야하는데.....하는 부담감이 밀려 드네요...^^
베스트 블로거 선정을 더욱 열심히 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며.....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몽골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카메라에 가득 담아 오리라는 계획은 
이틀 정도 맑은 하늘을 본 후 계속 흐린 날씨로 인해 약간의 차질이 생겼고 
특히 오기 전날 간 테를지 국립 공원에서는 종일 비가 내려 거의 사진을 찍지 못했구요.
뿌옇게 안개가 뒤덮이고 비 내리는 몽골의 멋진 초원, 태초의 장소인 것처럼 신비스러운 강물과 숲길을
눈에...마음에.... 담아 왔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외의 '무차별적으로 마구 마구' 담아온 사진들은 한숨 돌린 후 정리하여 천천히 올려드리기로 하고....
곧 방문해서 인사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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