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산책........................../몽골'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12.10.19 몽골에는 징기스칸 요리가 없다? 24
  2. 2012.10.15 파란 하늘을 닮은 몽골의 전통신앙 라마불교와 샤머니즘 18
  3. 2012.10.10 몽골인의 웰빙음식 아이락(마유주)과 우유과자 아롤 20
  4. 2012.09.24 몽골이 한국을 '무지개 뜨는 나라(솔롱고스)'라고 부르는 이유 26
  5. 2012.09.21 새마을 한류바람이 부는 몽골 탄광촌 울란바타르 날라이흐 16
  6. 2012.09.19 소와 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몽골 울란바타르 골프장 16
  7. 2012.09.12 몽골에서 '말 보러 간다'는 말의 뜻은 ? 18
  8. 2012.08.31 초원의 럭셔리 호텔 몽골 나이람달 게르 게스트하우스 20
  9. 2012.08.29 자작나무 우거진 아름다운 휴양지 몽골 나이람달 캠프 21
  10. 2012.08.27 헉! 소리 나는 몽골 전통 양고기 요리 허르헉((Horhog) 26
  11. 2012.08.24 초원의 법칙 - 몽골 유목민의 양잡기 현장 습격 리얼 리포트 22
  12. 2012.08.20 초원의 법칙 - 몽골 유목민의 젖짜기 비법 21
  13. 2012.08.17 몽골 초원에서 만난 귀여운 망아지와 신비한 종마 32
  14. 2012.08.13 몽골 초원의 천막집 게르(Ger)가 궁금하다. 27
  15. 2012.08.09 몽골 초원에서 만난 천막집 게르(Ger) 짓기 현장 27
  16. 2011.11.04 에델바이스가 아름답게 핀 울란바타르 만쉬르(Manzshir)사원 17
  17. 2011.10.28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몽골 테를지(Terelji) 국립공원 21
  18. 2011.10.26 거북바위가 인상적인 몽골 테를지(Terelji)국립공원 14
  19. 2011.09.19 몽골 마지막 황제의 보물창고 복드칸 겨울궁전 박물관(The Bogd Khaan Palace Museum) 23
  20. 2011.09.16 몽골의 마지막 황제 복드칸의 겨울궁전(The Bogd Khaan Palace Museum) 25
  21. 2011.08.15 초원의 나라 몽골의 심장, 울란바타르 간단사원 22
  22. 2010.11.17 몽골에는 초등학교가 없다? 32
  23. 2010.11.15 몽골 최고의 이름, 칭기즈칸 33
  24. 2010.09.17 행운을 전해주는 몽골 독수리 31
  25. 2010.07.16 몽골 음주문화, 한국보다 더 화끈하네.. 39
  26. 2010.06.14 충격적인 성묘사의 몽골 세밀화 33
  27. 2010.04.13 몽골 칭기즈칸 말박물관, 세계 최대 규모에 놀라다 29
  28. 2010.02.21 게르 갤러리에서 본 멋진 몽골 풍속화 12
  29. 2010.02.05 몽골 전통 음악 흐미와 마두금 모린호르 45
  30. 2010.01.25 몽골에서 만난 반가운 한류 열풍 62


 "당신이 알고 있는 몽골 음식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징기스칸(칭기즈칸) 요리?"라고 대답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몽골 음식으로 알고 있는 '징기스칸 요리'는 사실 몽골 요리가 아니다 

몽골에는 양고기를 삶아서는 먹어도 끓이거나 구워먹지는 않기 때문이다.

 

  징기스칸 요릿집에서는 몽골인들이 초원에서 먹었던 방식이라며  

부족한 비타민을 섭취하기 위해 고기와 야채를 함께 끓여 먹었다 하고  

징기스칸이 전쟁 중 철모에 양고기를 구워 맛있게 먹은 데서 유래했다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몽골 사람들은 자신들이 야채를 먹기 시작한 것도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것을 몽골 전통요리처럼 소개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라고 말한다.

 

 

사실 징기스칸요리는 일본 홋카이도 지방에서 유래한 양고기 요리로  

몽골이나 역사적 인물 징기스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퓨전 일본 요리이다. 

징기스칸 요리의 기원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구 일본군의 군복을 만들기 위해  

홋카이도에 양목장을 설치하면서 양털 자급을 했던 것이 발단이라고 한다.

   

본래 육식하는 습관이 없었던 일본은 육식을 해야 유럽인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메이지 유신이후로 일본화한 육식 요리를 속속 개발하고 있었는데  

양털로 군복을 만들고 남는 대량의 양고기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었다 

양털로 군복을 만들고 남은 양고기는 일본전통요리인 나베와 결합하여 요나베가 되었는데  

이 요나베((羊鍋))가 징기스칸 요리(일본어: ジンギスカン)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것은  

기마민족인 몽골의 식량인 양과 유럽까지 진격해 들어간 정복군주 징기스칸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져  

당시 일본의 만주 침략등 대륙 진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로 갖다 붙인 이름으로 볼 수 있다. 

 

 

 

 

 

  몽골을 여행하는 동안 여러가지 형태의 몽골 음식을 대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전해내려오는 전통적인 형태로 나오는 몽골 음식도 맛보긴 했지만  

도시에서는 전통 음식이 현대식으로 변모된 음식을 많이 대할 수 있었다 

여행 중 몽골에서 맛본 음식 몇가지를 사진과 함께 소개해 드리자면...... 

 

 

 

 

 

  몽골에서 자주 먹은 음식은 '코릴타슐'인데 이것은 국물 있는 양고기 칼국수이다 

양고기와 국수를 넣고 끓이는 코릴테슬은 우리네 칼국수 미는 방법과 비슷하다 

밀가루 반죽을 둥글고 얇게 밀어낸 다음 반죽을 난로에 살짝 구운 후 칼로 썰어 면발을 만드는데  

물을 끓으면 양고기를 넣고 다 익을 때쯤 국수를 넣어 끓이는 간단한 요리이다. 

 

 

 

 

  

'초이방'은 넓적하게 썰어낸 손칼국수와 고기, 야채를 함께 볶아 양념을 쳐서 먹는 볶음국수이다. 

코릴타슐보다 다소 느끼하고 국물이 없어서 먹기에 상당히 뻑뻑하지만  

고기 삶은 국인 하르슐과 같이 먹으면 제법 먹을 만 하다.

  

 

 

 

 

  하르슐(Har shul)은 양고기만 넣고 끓인 국이다. 

야채는 양파 몇 조각 들어갔을 뿐인데 약간 느끼하지만 후춧가루를 뿌려 먹으면 제법 먹을 만 하다. 

 

 

 

   

몽골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음식은 '호쇼르''보츠'이다. 

'호쇼르'는 한국의 튀김만두와 비슷한 형태로 속은 주로 양고기가 들어가는데  

요즘은 만두호쇼르, 김치호쇼르 등 다양한 종류의 호쇼르가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몽골인들이 점심에 차와 함께 먹는 종요한 음식인 호쇼르는 한국인들의 입에도 제법 잘 맞다. 

 

우리나라 고기만두와 비슷한 '보츠'도 속에 주로 양고기가 들어가는데  

기름기가 굉장히 많아 한번 베어물면 기름이 주르르 떨어질 정도이다. 

보츠는 몽골에서 귀한 손님이 오거나 명절이 되면 만들어 먹는 음식인데  

몽골의 설날인 차강사르에는 보츠를 1,500~3,000개 정도 빚기도 한다고....... 

 

 

 

 

   

언뜻 보면 피자 조각같이 생긴 이것은 '감비르'라고 하는데 한국식 호떡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속에는 기름, 설탕, 소금을 넣거나 아니면 따로 양념해서 밀가루를 치대어 양념을 한다 

패스츄리처럼 따로 따로 떨어지는 것이 특징인데 고소하고 제법 맛나다.

 

 

 

 

 

울란바타르 시내에 위치한 유명 음식점 '알타이'에서는 '몽골리안 바베큐'를 맛 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고기와 야채를 접시에 담아가면 둥글고 넓적한 철판 위에서 순식간에 볶아서 내어주는데 

볶는 동안 뒤집개를 위로 던지거나 빙글 돌면서 볶는 등 여러가지 묘기를 부리기도 한다.

 

 

 

 

이름은 몽골리안 바베큐이지만 몽골 전통 요리라기 보다는 퓨전에 가까운 요리인데  

울란바타르 현지에서 아주 인기있는 음식이다.

 

 

 

 

 

몽골 요리 중에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바로 '허르헉'이다. 

허르헉은 양 한마리를 통째로 잡아 내장은 순대로 만들고 고기는 잘라  

뜨겁게 달구어진 돌과 함께 압력솥 안에 넣고 끓이는 몽골의 대표적인 요리. 

야채를 거의 넣지 않고 만들어낸 허르헉은 상당히 느끼하고 고기도 질기지만 

몽골의 전통 음식을 체험하기에는 허르헉 만큼 좋은 음식이 없을 것 같다.

 

  

 

 

  몽골의 휴양지에서는 아저씨들이 모여 염소를 잡아 요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염소의 털을 가스불로 그을린 다음에 고기를 하나 하나 분해하여 요리하는데 

불에 그을린 채로 누워 있는 염소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지던 현장이었다.

 

 

 

 

몽골인들의 주식은 고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들은 서구인처럼 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 

그대신 유제품을 많이 섭취하는데 몽골인은 가축의 젖으로 무수한 음식과 유제품을 만든다고 한다. 

 

몽골에서 가장 보편적인 유제품은 우리들이 '마유주(馬乳酒)''라고 부르는 '아이락(Airag)'인데  

아이락은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 발효시킨 술이다. 

마유주라고 불리우기도 하지만 사실 알코올 성분은 약 6~7도 정도여서  

몽골인들은 아이락을 술의 개념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암말의 젖은 젖소의 우유보다 비타민C가 세배 이상 들어있어서  

식사 대용이나 최고의 영양식으로 사랑받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여름에는 한 사람당 매일 3~5리터 정도의 아이락을 마신다고 하는데 

아이락의 맛은 첫맛은 약간 비릿하고 시큼한 것이 마치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자꾸 마시면 고소함이 입에 배어 자꾸 찾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소나 양, 염소젖으로 만든 '타라크(Tarag)'는 요쿠르트와 같은 발효식품인데 

설탕이나 방향제, 과일 등의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아 천연 그대로의 발효맛 요쿠르트 같은 맛이 난다. 

'으름'은 서구식 버터인데 우유를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여  

윗부분만 떠내 응고시켜 덩어리에서 물기만 빼고 뭉친 것이다. 

으름은 가축이 오줌보나 가죽 주머니, 나무통 등에 넣어두고 겨우내내 먹는다고 한다. 

 

 

 

 

 

  우유나 양유를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여  

물기가 빠진 우유덩어리를 눌러서 잘라낸 우유과자를 '아롤'이라고 한다. 

탈지분유보다 기름기가 많아 더 끈적하고 찰진 아롤은  

식량이 부족한 겨울을 위한 장기 비축 식량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며 

몽골인의 보양식으로도 한몫을 톡톡히 하는 영양 간식이다. 

  

 

 

   

'수테차(Suteychai)'는 발효차를 끓여서 우유와 소금을 넣은 것으로 설탕 대신 소금을 넣은 밀크티라고 할 수 있다. 

수테차는 물 5~6리터에 마른 찻잎 한 국자 정도를 넣어 차를 끓이는데 찻잎을 건져내는 시기는  

마시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다르고 떫은 맛을 좋아하는 집안에서는 찻잎을 건져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 후 마유나 우유를 국자에 담아 눈 높이까지 들어올린 뒤 끓고 있는 찻물에 서서히 쏟아 붓는데 

한꺼번에 부으면 찻물이 갑자기 차가와져 맛이 변하기 때문이고 또 우유가 엉겨 멍울이 생기기 때문이다. 

제일 마지막에는 소금을 넣는데 몽골 초원에서는 염분 보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수테차는 짭쪼롬하고 비릿한 맛이 나긴 하지만 입안의 누린내와 뱃속의 기름기를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 

 

 

 

 

   

슬퍼도 술, 기뻐도 술인 몽골인들은 국민 1인당 연간 26리터 이상의 보드카를 마신다고 한다. 

몽골에서 술을 마실 때에는 만취하는 것이 예의이므로 꼭지가 돌도록 마시는 것이 몽골의 음주 풍습이고 

알코올 농도 39도 이상의 보드카를 마셔대다 보니 늘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거리에는 만취해서 비틀거리거나 주사를 부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양고기만 먹을 것 같은 몽골에도 인스턴트 음식이 엄연히 존재한다 

미스터 치킨을 테이크 아웃하면 이렇게 몽골판 맥심같은 남성전문잡지도 끼워서주는 것이 재미있다. 

맛은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편인데 몽골에서 닭고기 값은 쇠고기의 무려 5배나 된다고 한다. 

몽골에서 가장 비싼 고기는 닭고기이고 그 다음으로 돼지고기, 쇠고기, 양고기, 염소고기, 낙타고기 순이다.

생닭 한마리에 한국돈으로 무려 18,500원 정도 한다고 하니  

몽골에서 치킨은 한번 먹으려면 엄청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고급 음식이다.

 

 

 

 

 

   몽골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곡식이 들어간 음식을 장만해준다. 

농산물 생산이 거의 없어 유목 생활을 햐야만 했던 몽골에서는 곡물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은 야채도 거의 먹지 않았는데 야채는 가축들이 먹는 초원의 풀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울란바타르의 호텔이나 고급 식당에서는 각가지 채소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걸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야채는 중국에서 수입해오기 때문에 상당히 비싼 음식이다. 

비싸고 귀한 야채를 흔쾌히 대접해주었던 몽골의 친구들에게 감사드리며

간략하게나마 몽골 음식 소개를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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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가도 끝없는 초원이 펼쳐지는 몽골 초원.

푸른 초원과 함께 몽골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파란 하늘이다.

'뭉크 탱그린'이라 부르는 파란 하늘은 몽골인들에게는 단순한 창공의 의미가 아니라

하늘 그 자체가 초월적인 힘, 즉 신성을 가지는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또 몽골인들은 나무, , 바위 등 모든 사물에 정령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정령의 심기를 거스르면 큰 해를 입는다고 생각한다.

 

열악한 자연 환경과 함께 갈등이 심했던 종족 역사 속에서 살아 남았던

몽골인들이 영원히 기댈 수 있는 곳은 오직 신(神) 뿐이었으므로

전통이 말살되었던 사회주의 시기에도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굳건히 지켜왔다.

 

 

 

 

 

16C에 라마불교가 전파된 이후 정령을 섬기던 많은 몽골 사람들은 불교를 믿게 되었는데  

일반 불교와 마찬가지로 환생과 고통으로부터 각 개인을 구원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라마불교(티벳불교)오늘날 몽골 국민의 90% 이상이 믿고 있는 종교이다.

 

 

 

 

20C 초 몽골에는 수백개에 이르는 불교 사원이 있고 남자의 30%가 수도승일만큼 번성했다는데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공산주의가 반 종교 캠페인을 벌인 이후

사원의 연계적인 체계가 무너지고 많은 수도원들이 문을 닫게 되어 

1990년까지 오직 간단사원(Gandan in Ulaanbaatar)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1990년에 이르러 민주주의가 다시 재건되기 시작하자 종교의 자유도 허락되어 

100개 이상의 수도원이 다시 문을 열었으며 기독교, 이슬람교도 종교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의 90%가 라마불교를 믿고 있긴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몽골인들의 삶을 지배하는 종교는

수천년 동안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종교였던 샤머니즘이다.

 칭기즈칸도 무당에게 전쟁에 대한 자문을 구할 정도로 샤머니즘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오늘날에도 몽골 북쪽 지역에서는 샤머니즘이 불교와 혼합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 무당들이 신을 몸안으로 불러들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몽골 무당은 자신의 영혼을 몸밖으로 내어보낸다.

몽골 무당은 혼수 상태와 비슷한 탈자아 상태에서 무당의 영혼이 몸으로부터 빠져 나와

하늘과 땅 속, 물 속을 자유자재로 다니며 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초원을 다니다보면 돌이나 흙무덤 위에 버드나무 가지를 꽂고 푸른 천을 둘러놓은 것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한국의 성황당과 비슷한 '어버(어워, Ovoo)'이다.

 

 

 

 

 

어버는 마을의 수호신이요, 초원의 이정표이자 재앙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는데

몽골인들은 학식, 지위,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어버 앞에서 재난 방지와 가축의 번성을 위해 기도한다 

과거 전장에 나가는 장수는 말머리를 베어 성황당에 바치고 승전을 기원했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도 몽골에서는 먼길을 떠나기 전 성황당을 들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성황당의 유래 중 가장 그럴싸한 것은 들판의 이정표 대신 생기기 시작했다는 설이다.

가도가도 끝이 없어보이는 초원에서 방향을 잃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러다가 어버를 만나면 가까운 곳에 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반가움에 환호를 지르게 된다.

지금도 구역의 경계에는 어버가 서 있어서 길을 가던 사람들은  말이나 차에서 내려

어버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세바퀴 돌고 흩어진 돌이 있으면 모아서 다시 쌓아 올리며 소중히 다룬다.

 

 

 

 

나담축제 때는 성황당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어버제'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정월대보름에 지내던 동제와도 비슷한 의식이라고 한다.

 

 

 

 

최근 몽골 정부는 문화재 보호정책을 펴면서 어버를 복원하기도 하면서 관광용 어버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고......

 

 

 

 

몽골의 사원이나 마을 어귀에는 우리나라 선돌과 흡사한 모미가 서 있는 것도 눈에 뜨인다.

 

 

 

 

모미는 말뚝 모양의 바위에다 얼굴 형태를 그려놓은 것이나 사람의 모습을 본따 만든 것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모미를 만나는 사람들은 둘러친 파란 천에다 몽골의 화폐인 투그릭을 꽂으며 가족의 평안을 빈다.  

현재 몽골의 국교는 라마불교(티벳불교)지만 헌법상 종교 및 신앙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다.

몽골인의 90%가 라마불교를 신봉하며, 나머지 5%는 이슬람교도가 차지한다.

그리고 1990년 이후 개신교 및 가톨릭 등이 전파되어

기독교 신자가 약 2%(4만 명 추산)이고, 나머지 3%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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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의지할 식량이라고는 가축 뿐인 몽골인들의 주식은 고기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몽골인들은 서구인들처럼 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고 한다.

몽골인들의 주식은 유제품이며 고기는 부족한 유제품을 보충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몽골인들은 가축의 젖으로 무수한 음식과 유제품을 만들어내는데

우유로 치즈나 버터는 물론이고 아이락, 타라크, 으름, 아롤.....등

 10여가지의 음식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몽골인들은 초원에서 하루 평균 가축의 젖을 30~40리터 정도 채유하는데

이는 일가족이 마시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므로 

모든 가축의 젖은 장기보관과 소독을 겸해 끓이거나 발효를 시킨다.

 

 

 

 

몽골에서 가장 보편적인 유제품은 우리들이 '마유주(馬乳酒)''라고 부르는 '아이락(Airag)'인데

아이락은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 발효시킨 술이다.

마유주라고 불리우기도 하지만 사실 알코올 성분은 약 6~7도 정도여서

몽골인들은 아이락을 술의 개념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암말의 젖은 젖소의 우유보다 비타민C가 세배 이상 들어있어서 

식사 대용이나 최고의 영양식으로 사랑받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여름에는 한 사람당 매일 3~5리터 정도의 아이락을 마신다고 하는데

아이락의 맛은 첫맛은 약간 비릿하고 시큼한 것이 마치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자꾸 마시면 고소함이 입에 배어 자꾸 찾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소나 양, 염소젖으로 만든 '타라크(Tarag)'는 요쿠르트와 같은 발효식품인데

 설탕이나 방향제, 과일 등의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아 천연 그대로의 발효맛 요쿠르트 같은 맛이 난다.

'으름'은 서구식 버터인데 우유를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여

윗부분만 떠내 응고시켜 덩어리에서 물기만 빼고 뭉친 것이다.

으름은 가축이 오줌보나 가죽 주머니, 나무통 등에 넣어두고 겨우내내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건조된 우유 과자는 '아롤(Aruul)'이라고 하는데

초원의 게르에서 아롤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제일 먼저 우유나 양유, 염소젖을 솥에다 담고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인다.

 

 

 

 

우유가 끓기 시작하면 바가지로 끓고 있는 우유를 한바가지  떠서 위에서 아래로 주르륵~따르기를 계속한다.

 

 

 

 

이때 우유를 따르는 바가지를 한껏 높이 들어 높은 곳에서 우유를 주르르~~ 떨어지게 하는데

 이렇게 하면 나중에 만들어진 아롤이 더 쫄깃해진다고......

 

   

 

 

우유를 오래 끓여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여지면 

물기가 빠진 우유 덩어리를 큰 그릇에 담고 손으로 칼국수 반죽하듯 여러번 주물러 덩어리를 만든다.

 

 

 

 

덩어리가 된 우유 덩어리는 베 주머니에 넣어 흩어지지 않도록 꾸욱꾹 눌러서 잘  응고시킨 후

 

 

 

 

가는 실을 이용해서 우유 덩어리를 세심하게 잘라내는데

칼로 자르는 것 보다 이렇게 실로 잘라내면 흩어지지 않고 더 깔끔하게 잘라진다.

 

 

 

 

실을 사용해서 잘라낸 우유 덩어리를 다시 깍둑썰기하여 햇빛에 말리면

 몽골인들이 좋아하는 영양 간식 우유과자 아롤이 되는 것이다.

 

 

 

 

탈지분유보다 기름기가 많아 더 끈적하고 찰진 아롤은

식량이 부족한 겨울을 위한 장기 비축 식량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며

몽골인의 보양식으로도 한몫을 톡톡히 하는 영양 간식이다.

 

 

 

 

잘 마른 아롤은 엄청 딱딱한데 입에 넣고 베어물면 너무 딱딱하여 이가 아플 정도이다.

딱딱하게 굳은 아롤은 입 안에 넣고 침으로 녹여 먹어야 한다는데

일부 몽골인들은 아롤을 씹어 먹으면 치아가 튼튼해진다고 아이들에게 계속 먹인다고 한다.

아롤 중에서도 설탕을 뿌려 말린 아롤은 어린이의 간식으로 최고 인기라고......

 

 

 

 

여름철 초원에서는 게르마다 지붕 위에서 아롤을 말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있다는데

몽골인들은 아롤이 널려 있는 지붕을 쳐다보면서 멀리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릴적 추억을 되살린다고 한다.

 

 

 

 

초원의 게르 안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던 아롤은 요즘은 공장에서 편하게 만들어져서

어느 집을 가든지 손님 대접상에서 아롤이 나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투브 초원에서 맛본 아롤이 생각나 몽골을 떠나던 날 수퍼마켓에서 아롤 한 봉지를 사가지고 왔다.

 

 

 

 

완제품으로 나온 아롤은 집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아롤보다는 덜 딱딱하고 크기가 작아서 먹기도 쉬웠다.

하지만 게르 안 화덕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순수 우유과자 아롤에 비해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수도 없이 우유를 높이 떠서 따르고 우유 덩어리를 주물러  직접 손으로 잘라 말리던 그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투브 초원 게르 안에서 베어물던 고소한 아롤이 불현듯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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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울란바타르 동쪽 끝 수도에서 약 50km 떨어진 날라이흐 지구는

인구 3만명의 위성 도시로 주로 도시 빈민층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탄광촌이 있던 이곳은 석탄 산업의 사양화로 탄광은 폐허가 되고

주민들은 어려운 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는데

지금은 한국의 영향을 받아 새마을운동을 힘차게 펼치고 있는 시범마을이 되었다.


 

 

 

날라이흐에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모두가 신기하기만 하다.

집들은 드문드문 눈에 뜨일 뿐, 가도 가도 끝없는 초원과 저 멀리 바라보이는 민둥산들의 연속이다.

 

 

 

 

가끔 가다 이렇게 물웅덩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물이 귀한 초원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생명의 물이다.

 

 

 

 

초원 한가운데로 난 도로를 한참 가다 보니 하늘이 어두워지고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한다.

 

 

 

 

갑자기 웬 소나기? 하며 창 밖을 자세히 보니 빗방울이 굵어도 너~~무 굵다.

소나기가 아니고 하늘에서 얼음덩어리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박이다!

 

 

 

 

마치 하늘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양동이로 얼음 덩이를 내리쏟는 듯 떨어지는 우박의 기세는 맹렬하다.

버스 위로 쏟아지는 우박의 소리도 정말 장난이 아니다. "두두두두두두......" 버스 천장을 뚫기라도 할 기세이다.

피할 곳도 없는 초원에서 길을 가다 이런 우박을 만난다면 머리에 혹이 몇개라도 날 것 같다.

 

 

 

 

갑자기 내리퍼붓는 우박으로 인해 버스도 달릴 수 없어 한참이나 제자리에 멈추어 기다려야 했다.

창 밖으로 길바닥을 보니 헐~ 바닥에 하얀 콩을 쏟아부은 듯 초원 전체가 하얀 얼음 덩어리로 뒤덮였다. 

한국 땅에서는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우박을 몽골에 와서 만나게 되다니 이것도 여행이 준 선물이 아닐까?

 

 

 

 

우박이 그치고 하늘의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물러가더니

아...! 저 멀리 초원 끝자락에 희미한 무지개가 나타났다. 그것도 쌍무지개이다.

 

 

 

 

차가 한참이나 달려가도 쌍무지개는 여전히 차를 따라온다.

눈앞이 안 보이도록 세찬 우박과 쌍무지개를 하루에 다 만나게 되다니....... 대박이다!

 

 

 

 

몽골어로 무지개는 '솔롱고'라고 한다.

몽골에는 특히 솔롱고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서연이, 민지, 예은이 정도로 흔한 여자 이름인가 보다.

 

그런데 몽골에서는 한국을 가리켜 '솔롱고스(Solongos, СОЛОНГОС)라고 부른다고 한다.

남한은  'Umnud Solongos', 북한은 'Hoit Solongos’라고 부르고 있는데

솔롱고스는 '무지개 뜨는 나라'라는 뜻이니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는 원나라가 고려를 정벌하고 고려의 아름다운 공주를 왕비로 데려 오면서부터

왕이 사랑하는 공주가 살던 고려를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고 불렀다는 설이다.

정확한 연유인지 알 수는 없으나 예나 지금이나 몽골인들에게 솔롱고스는 

상당히 동경하면서도 친근한 나라 이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지개의 나라 솔롱고스(Solongos), 그 뜻도 어감도 너무나 좋은 이름이다.

솔롱고스에서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듯 광활한 초원에 걸려 있던 무지개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참동안 잊혀지지 않는 내 마음의 솔롱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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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향한다.

수도 울란바타르의 동쪽 끝에 위치한 날라이흐 지구로 가기 위함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초원을 한시간 이상 달려가니 저 멀리 넓게 펼쳐진 마을이 눈 앞에 나타난다. 날라이흐 지구다.

 

 

 

 

울란바타르의 한 구(區)에 속하는 날라이흐는 인구 3만명 정도로 주로 도시 빈민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니 들어가기도 전에 인부들이 앞길을 막는다. 진입로를 막고 도로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 공사가 거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라 도로를 운행하던 모든 차량은 임시도로로 우회해야 했다.

제대로 닦여지지 않은 임시도로로 인해 차량들이 지날 때 마다 모래 먼지가 뽀얗게 사방으로 날린다.

차창을 닫아도 스며드는 미세한 먼지로 인해 목안이 간질간질해진 승객들은 얕은 기침 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마을 어귀 주유소까지 이르니 맞은 편에 엄청나게 큰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몽골어인지라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날라이흐가 '새마을운동 시범마을'이라는 표식이란다.

 

 

 

 

날라이흐의 풍경은 초원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고 많이 삭막하게 보인다.

예전에는 탄광마을이었던 이곳은 몽골에서 석탄 산업이 제일 먼저 이루어진 곳인데

지금은 우리나라처럼 석탄 산업이 사양화되어 탄광은 거의 버려진 상태이라고......

 

 

 

 

이 마을은 이제 우리나라의 영향을 받아 새마을운동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 중인데

날라이흐는 한국 새마을 운동 단체에서 지원을 받는 '새마을 운동 시범 마을'이라고 한다.

 

 

.

 

몽골에서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건 지난 2004년.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받아들여 경제 성장을 준비하는 몽골은 지역 사회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방 정부들은 한국과 새마을운동 협약을 맺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경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촌이 새마을 운동으로 마을길이 넓어지고 구불구불하던 논길이 반듯하게 바뀐 것처럼

새마을 운동을 받아들인 날라이흐 지구도 우물이 없던 마을 입구에 우물이 생기고

콘크리트 벽돌 공장이 세워져서 천막집 게르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현대식 주택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날라이흐 여러 마을에는 회의를 위한 새마을회관도 지어지고 어린이를 위한 독서실도 마련될 뿐만 아니라

 외곽에도 가로등이 설치되어 지역내 야간 교통사고와 범죄도 크게 줄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많이 바뀐 것은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다'는 주민들의 의식인데

추운 겨울을 무사히 잘 넘기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새마을운동의 확산으로 인해 '잘 살아 보자'는 의식이 몸에 배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교회나 학교 등지에서 친선 봉사 활동을 오기도 하는 날라이흐는 

대전광역시 서구와도 자매 결연을 맺는 등 한국과는 여러 방면으로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관공서와 은행, 상점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날라이흐의 메인 스트리트는 울란바타르 못지 않은 분위기이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빠르고 무엇보다 활기가 넘쳐 보인다.

 

 

 

 

공산주의 시절 소련의 영향을 받아 키릴문자(Cyllilic Alphabet)을 쓰는 몽골이라

간판만 보면 러시아 어느 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도 불러 일으킨다.

 

 

 

 

거리에는 휴지 하나 없이 깨끗한데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메인스트리트 한가운데 소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주택 앞이든 가게 앞이든 풀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소들이 점령하고 열심히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심지어 구청사나 구민회관 같이 보이는 크고 번듯한 건물 앞 잔디에도

털석 주저 앉아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소들에게 점령을 당했다. 역시 이곳은 몽골임이 분명하다. 

 

날라이흐 시내를 한바퀴 돌아 본 후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잠시 멈춘 버스를 향해 V자를 그려주는 사람들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답다.

나아진 생활로 인해 옷차림도 깨끗한 이곳 주민들.

순박한 그들의 얼굴에도 남다른 여유가 흘러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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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운동과 달리 창시자나 그 기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는 골프는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중국 등의 나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기원설이 있으나

지금 현재로는 스코틀랜드 기원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흔히들 말하기를 스코틀랜드의 양치기 소년들이 양떼를 돌보다가 지루해지면

스틱으로 돌을 쳐서 들토끼 구멍에 돌을 넣으며 즐기던 놀이가 골프의 시초라고 말한다.

'골프(Golf)'란 말도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언어로 '치다'인 '고프(Gouft)'가 그 어원이라고 하는데

들토끼가 잔디를 깎아 먹어 평탄하게 된 곳을 '그린(Green)'이라고 불렀고

그린과 그린을 연결하는 양떼들이 밟아 평탄해진 넓은 길을 '페어웨이(Fair way)'라고 불렀다.

 이 때의 그린이 바로 오늘날 '퍼팅 그린'이 됐고, 양떼의 길은 '페어웨이'가 됐다고 전한다.

초원의 양치기 소년이 들토끼 구멍에 스틱으로 돌을 쳐서 넣으며 놀았던 놀이가 골프의 시초라면

몽골 초원이야 말로 스코틀랜드 초원보다 골프 치기에 더욱 적합한 곳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데......

 

몽골 현지인들의 말로는 몽골에는 골프장이 두군데 있다고 한다.

하나는 울란바타르 나이람달 캠프 근처에, 또 하나는 테를지 국립공원에 소재하고 있는데

몽골 여행 중 우연히 두 군데의 골프장을 다 둘러볼 기회가 있어 잠시 소개해 드린다.

 

 

 

 

울란바타르를 떠나 나이람달로 가기 3km 전 쯤 되는 도로변에 위치한 울란바타르 골프 클럽.

'UB RESORT GOLF CLUB' 이라고 쓰인 작고 소박한 팻말은 정말 여기가 정말 골프장 맞아? 하는 생각을 먼저 들게 한다.

 

 

 

 

울란바타르 골프장은 리조트를 겸하고 있는데 파란 하늘 아래 줄지어 늘어선 원색의 방갈로들이 너무 귀엽게 보인다.

 

 

 

 

골프장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클럽 하우스는 몇 사람 서지 않아도 로비(?)가 꽉 찰 정도로 그 내부가 좁디 좁다. 

 

 

 

 

 

골프장 입구에는 장승 모양의 조형물들이 여기 저기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칭기즈칸과 그 아들들을 연상케 하는 이 조형물들은 우리네 장승처럼 하나의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몽골 혁명의 아버지 수흐바토르가 즐겨쓰던 모자를 쓴 장승도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섰다.

 

 

 

 

클럽 하우스를 나와 눈 앞에 펼쳐지는 골프장을 살펴보니 와~! 정말 휑할 정도로 탁 트였다.

 

 

 

 

광활한 초원과 나즈막한 구릉지들을 잘 활용한 이곳은 9홀 규모의 크지 않은 골프장이다.

 

 

 

 

골프장에는 이렇게 게르들이 군데 군데 들어서 있는데 이 게르들은

유목민들의 게르가 아니고 골프장 이용객들을 위한 게르 리조트이다.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 아래 펼쳐진 하얀 게르들은 외국인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게르 내부는 비교적 시원한데 게르 덮개까지 활짝 들어올리면 바람이 솔솔 들어와 무지 시원하다. 

 

 

 

 

강풍에 게르가 날아가지 않게 끈에다 돌을 단단히 묶어놓은 모습이 특히 재미있게 보인다.

 

 

 

 

게르 리조트 중에는 이렇게 럭셔리함 그 자체인 게르도 한채 보인다.

이 정도의 게르이면 호텔로 치면 로열 스위트룸에 비교할 수 있을 듯.......

 

 

 

 

금방이라도 칭기즈칸이 게르 문을 밀고 나올 듯한 포스를 풍기는 럭셔리 로얄 스위트 게르는

할흐 부족의 상징물을 하늘 높이 세우고 흩날리고 있어 더욱 멋스럽게 보인다.

 

 

 

 

게르 하우스를 구경하고 오니 여직원이 골프채를 양손에 움켜 쥐고 분주히 가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이어서 공도 몇 바구니 드라이빙 레인지로 옮겨진다.

 

 

 

 

더운 날씨에도 드라이빙 레인지에 서니 시야가 탁 트이고 바람도 솔솔 부는 것이 청량감마쳐 느껴진다.

 

 

 

 

처음 골프채를 쥐어본다는 몽골 대학생.

포즈는 엉성하지만 놀랍게도 칠 때 마다 번번히 장타를 날려보낸다.

 

 

 

 

 무더위에 러프인지 그린인지 구별도 안 되는 곳에서 퍼팅에 열중하는 여자분도 보인다.

역시 골프에 미치면 더위나 햇볕 쯤은 아랑곳 하지 않게 되나 보다.

 

 

 

 

명색이 골프장인데 골프장 바로 옆까지 소와 양들이 들어와 열심히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름 한철 가축들에게 열심히 풀을 뜯겨야 젖이 많이 나 추운 겨울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유목민들에게는

풀이 많이 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초원이든 골프장이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지만 저렇게 골프장 안쪽까지 들어와서 풀을 뜯다가

 신나게 날아간 골프공에 머리라도 맞는 날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 않을까?

소나 양들의 안전이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몽골의 유명 휴양지 테를지 국립공원에도 9홀 규모의 골프장이 있다.

이곳의 클럽 하우스는 울란바타르 - 2 호텔인데 울란바타르 리조트 골프 클럽에 비해 규모가 훨씬 크다.

 

 

 

 

하지만 이곳의 골프장에서도 골프 치는 사람들의 모습보다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몽골 사람들이 보기에는 골프장도 소와 양들에게 풀을 뜯겨야 하는 신성한 초원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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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식당에서 몽골인 친구가 밥을 먹다 말고 조용히 나간다.

당신이 어딜 가냐고 물었더니 그는

"말을 보러 간다."라고 말한다.

이럴 때 당신의 반응은?

 

A.  조용히 먹던 밥을 먹는다.

B.  갑자기 무슨 말을 보러 가냐며 주위 사람에게 마구 묻는다.

C.  말을 보고 싶어 같이 따라 나간다.

D.  말은 이미 많이 봐서 질렸다고 말한다.

 

(신현덕 저. '몽골'에서 인용)

 

여러분은 어떤 답을 선택했는지?

정답은 A 번이다.

몽골에서 '말을 본다'란 말의 뜻은 '화장실에 간다'라는 뜻이다.

예전부터 말은 대부분 게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서 말떼 속으로 들어가 볼 일을 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

 

 

 

 

몽골에서 화장실을 의미하는 단어는 '조르동'인데 도시에서도 이런 말은 잘 쓰지 않고

'모리 하리이(말을 보자)', 또는 '모리 하르마르 바인(말을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

품위있는 몽골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인정된다고 한다.

심지어는 현대식 호텔에서 식사하면서도 '말 좀 보고 오겠다'고 말한다고 하니

앞에 앉은 사람이 '말보러 간다'라고 말할 때 '무슨 말을 보러가냐'고 묻거나 따라나서면 낭패다.

 

중국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 중 대다수는 화장실 사용 때문에 많은 곤욕을 치른 일을 이야기하곤 한다.

필자 또한 중국 여행 중 화장실 때문에 황당한 일을 겪은 일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몽골에서 겪은 황당한 화장실 경험에 대해선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

 

사실 몽골에서는 대도시를 벗어나면 화장실이 따로 없다.

눈에 보이는 초원과 벌판이 모두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인적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멀리 떨어져 땅이 약간 움푹 들어간 곳을 찾아 거기서 일을 보던지

돗자리나 양산, 치마 같은 것으로 임시방편을 하고 볼일을 보는 수 밖에 없다.

 

 

 

 

유명 관광지나 유적지 같은 곳에는 화장실이 있기는 하지만

본 건물에는 화장실이 아예 없고 수십 미터 멀리 떨어진 한쪽 벌판에 자리잡고 있기가 일쑤이다.

화장실의 형편도 처참하기 이를데 없는데 나무판대기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데다 문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몽골 최고의 관광지인 테를지 국립 공원에도 길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있던 화장실은 문이 아예 없었는데

이곳에서 맞은편 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볼일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몽골의 상류층들이 드나드는 울란바타르 골프장에도 화장실은 제일 멀리 떨어진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화장실의 참혹함은 이곳이 정말 골프장의 유일한 화장실인가 의심될 정도였다.

 

 

 

 

울란바타르의 대표적인 휴양지 만주시르 사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간혹 문이 있어도 문고리는 없는게 대부분이라 한사람은 망을 보고 한사람은 볼일을 보아야 하는데

혼자서 일을 볼 경우에는 볼일을 보다가 발자국 소리만 나도 "오지 마세요~!"라고 큰 소리를 질러야 한다.

짖궂은 남자들 중에서는 예쁜 외국인 여성이 화장실에 가면

 "안 돼~!"라는 비명 소리를 듣기 위해 일부러 가까이 접근하기도 한다고.......

 

 

 

 

그렇다고 몽골의 화장실이 모두 다 이렇게 끔찍한 형편은 물론 아니다.

울란바타르의 현대식 건물에서는 세련되고 청결한 화장실에서 편안하게 볼일을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새소리를 들으며 산과 초원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경관을 마음껏 감상하며

'말보러 갔던 일'은 몽골이 아니면 쉽게 체험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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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란바타르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삼림 속에 위치한 나이람달 캠프.

몽골어로 친선(親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나이람달(Nairamdal) 캠프는

울창한 삼림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최고의 장소에 위치한 대규모 휴양지이다.

  

캠프의 시설은 매우 다양한데 중앙광장의 게르를 주제로 한 조형물을 중심으로

국제어린이센터, 회의장, 운동 시설, 방갈로, 게스트하우스 등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주변에는 자작나무가 울창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휴가를 보내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나이람달 캠프에는 다양한 규모의 방갈로 등 여러 형태의 숙박 시설이 있지만

특히 개울가에 위치한 동쪽에 둥그런 지붕을 가진 하얀 게르(Ger)가 제일 눈에 뜨인다.

푸른 잔디 위에 세워진 게르들은 몽골 전통 주거 양식을 체험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이다.

  

 몽골인의 유목 생활 양식과 순탄치 않은 날씨에 가장 적합한 주거 형태인 게르에 대해서는

이미 몇번의 포스트로 소개해 드린바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게르 관련 포스트 :   아파트와 섞여 있는 몽골 천막집 게르

몽골 초원에서 만난 천막집 게르(Ger) 짓기 현장

몽골 초원의 천막집 게르(Ger)가 궁금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제일 가운데 위치한 게르는 주변의 다른 게르와는 그 포스가 남다르다.

규모도 다른 게르보다 클 뿐 아니라 게르를 받쳐주는 기단도 아주 럭셔리하다.

 

 

 

 

출입구도 노란색 문양의 다른 게르와는 차별화되어 있다.

대제국을 호령하던 칭기즈칸의 위엄이 느껴지는 이 게르는 아마도 게르계의 스위트룸(?)인가 보다.

 

 

 

 

스위트룸 게르에 비길바는 아니지만 오늘 하루 게르 생활을 체험해볼 게르도 제법 마음에 든다.

 

 

 

 

게르 앞에 서니 전통적인 문양이 새겨진 노란색의 문이 이방인을 맞이한다.

몽골인은 노란색을 신의 색이라고 생각하며 금기의 상징으로 노란색을 사용한다.

모든 게르의 문은 남쪽으로 나 있는데 이는 햇빛을 잘 받고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다. 

 

 

 

 

게르의 문을 밀고 들어가니 가운데는 커다란 난로와 몽골 전통 문양의 테이블이 있고

가장자리로 가지런히 놓인 침대가 오늘 하루를 묵어갈 주인을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다.

 

 

 

 

게르의 출입구와 마찬가지로 의자도 노란색이다.

나즈막한 의자는 딱딱하지만 앉아보면 의외로 안정감이 있고 편안함마져 느껴진다.

 

 

 

 

취사 뿐 아니라 영하 40도 이하인 외부와 단절된 게르 내부에서 난방을 담당해주는 난로는

게르 중앙에서 게르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난로는 그 연통이 게르 중앙의 둥근 천정인 터너(toono)와 연결되어 있는데

난로 위 둥근 터너에 뚫린 구명은 하늘과 연결된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신에게 의존하는 몽골인들은 난로 연통이 게르 안의 자신과 신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라고 믿기 때문에

 게르 안에서 신성시되는 이 난로를 모독하는 행동은 주인을 모독하는 것이나 같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유목민의 게르에서 난로에 물을 붓거나 쓰레기를 넣는 것, 불을 쑤시거나 타 넘는 행동은 행동은 주의해야 할 일.

 

  

 

 

 

 

 

관광객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인 이 게르는 유목민의 게르에 비해서 내부가 상당히 화려하다.

둥근 지붕인 터너(toono)나 기둥인 바가나(bagana)를 비롯해서 게르 내부의 천들도 색의 조화가 뛰어나다.

 

 

 

 

침대 역시 전통적인 몽골 침상인데 보기는 낮고 딱딱해 보이지만

누워보면 상당히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을 준다.

 

 

 

 

특히 100% 양털로 된 담요는 가벼우면서도 따스하기 그지없어서

쌀쌀한 몽골의 여름밤을 포근하게 감싸주기에 그만이다.

 

 

 

 

낮에는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고 하늘이 그리도 푸르더니 저녁 무렵이 되니 갑자기 구름이 두텁게 깔리기 시작한다.

게스트 하우스 관리인이 곧 비가 올 것 같다고 하면서 아이를 게르 지붕 위로 올라가게 한다.

낮에는 채광과 통풍을 위해 열어놓았던 게르 지붕의 천을 단단히 덮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르의 골격이나 지붕을 이루는 서까래는 상당히 가벼운 재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른이 올라가면 게르의 지붕이 무너지기 쉽기 때문에 반드시 몸이 가벼운 아이가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발 디딜 곳도 제대로 없는 게르의 지붕을 다람쥐가 나무를 오르듯 가볍게 올라간 아이는

익숙한 솜씨로 게르 윗부분을 천으로 잘 덮은 후에 줄을 타고 한번에 조르르 내려오는 재주를 선보인다.

  

아이가 게르의 지붕을 덮어준지 십여분 쯤 되었을까?

식사를 하러 다른 건물로 이동한 사이에 갑자기 우르르 꽝! 천둥 번개가 치더니

 눈 앞도 안 보일 정도로 강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마치 양동이로 내리 퍼붓는 것 같은 폭우는 30여분 이상 쉬지 않고 쏟아졌는데 

검은 하늘에 수만개의 서치라이트를 켜듯 하늘이 번쩍이며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탁 트인 하늘 이쪽에서 저쪽까지 한꺼번에 서너개씩 갈라지는 번개쇼는 비가 그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난생 처음 보는 화려한 번개쇼를 몽골의 산중에서 볼 수 있다는건 가히 환상적인 일이었다.

 

비가 그친 후 돌아오니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 부었는데도 게르 안에는 물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비닐로 덮은 것도 아닌데 폭우에도 게르 내부로 물이 새지 않았다는게 너무 신기했고

게르가 우수한 주거공간이라는걸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소나기가 그치고 나니 이내 맑은 하늘이 드러나고 하늘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총총히 빛난다.

한국에서는 이름만 들었지 한번도 보지 못한 은하수를 이곳에서는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게르 문에 기대어 앉아 쏟아질 듯 수많은 별들을 세노라면 가끔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는 별똥별도 만날 수 있었다.

이렇듯 나이람달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낸 하룻밤은 5성급 럭셔리 호텔 숙박에 못지 않는 환상적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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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에서도 여름은 여행의 계절이다.

몽골의 여름은 우리보다 많이 짧지 않을까? 궁금하시겠지만

몽골 정부가 난방을 중단하는 5월 15일~ 9월 15일까지를 대략 여름으로 보면 된다.

몽골 전통 축제인 나담축제를 전후한 7월 한달은 몽골의 관광 시즌이 절정에 달하는데

이 시기에는 울란바타르에 사는 몽골 사람들도 모든 일을 전폐하고

휴가를 얻어 귀향길에 나선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여름 휴가를 떠나 장기간 시골 별장에 머무른다는데

공산주의 시절 소련의 영향을 받은 몽골 또한 살기 어려워도 여름 휴양지에 머무르기를 즐긴다고 한다.

척박한 땅 몽골에서도 경치가 수려한 곳에는 어김없이 휴양지가 마련되어 있는데

유지 보수가 힘들어 낡은 채로 방치된 곳이 많아도 여름철에는 많은 휴양객들로 붐비곤 한다.

 

 

 

 

몽골 울란바타르 시내 구역을 벗어나 한두 시간 가다보면 넓은 초원이나 구릉지 여기저기에

장난감같이 예쁘게 지어진 집즐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이집들은 대부분 별장이라고 한다.

 

 

 

 

특히 몽골에서도 일부 신흥 부자들은 넓은 땅을 차지하고 별장을 짓는데

여름 한두달 내내 휴양지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몽골에서도 유명한 휴양지인 나이람달 캠프로 가기 위해 울란바타르에서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려가니

눈 앞에 몽골에서는 보기 힘들게 울창한 숲으로 뒤덮힌 산이 나타난다.

 

 

 

 

초원이 대부분인 몽골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맑은 물이 흐르는 울창한 삼림으로 둘러싸인 대규모 휴양지, 바로 나이람달 캠프다.

 

 

 

 

몽골어로 친선(親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나이람달(Nairamdal) 캠프는 청소년들을 위한 대규모의 캠프장인데

 

 

 

 

이곳에서는 맑은 공기와 함께 자작나무가 우거진 주변 산들의 풍광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시설은 매우 다양한데 중앙광장의 게르를 주제로 한 조형물을 중심으로

국제 어린이 센터, 대규모 회의장, 운동 시설, 방갈로, 게스트하우스 등

여러가지 회의 시설과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여름 한철을 보내기에 딱이다.

 

 

 

 

나이람달 캠프의 서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가족 단위 휴가나 MT에 적합한 

방갈로들이 알록달록한 지붕을 이고 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파란 하늘 아래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색색의 방갈로 지붕과 울창한 숲은 

투숙객들이 상쾌하고 편안한 휴가를 즐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특히 방갈로가 있는 언덕길을 따라 뒷산으로 오르는 길은 아침 산책을 하기에도 그만이다. 

 

 

 

 

산으로 오르면 여기가 과연 몽골인가? 의심될 정도로 나무가 빽빽이 서 있는데

 

 

 

 

한쪽에는 자작나무숲이 넓게 펼쳐져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한다. 

 

 

 

 

자작나무숲이 주는 신비함 때문일까?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들꽃조차 귀하고 반갑게 느껴진다.  

 

 

 

 

나이람달 캠프의 동쪽에는 울창한 수풀 아래 맑은 개울도 흐르고 있는데

개울가에는 규모가 아주 큰 게르들이 여기 저기 들어서 있어 풍치를 더해준다.

 

 

 

 

이곳의 게르는 몽골의 전통 게르를 체험할 수 있는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인데

제법 넓직한 게르는 여러 사람이 함께 숙박하기에 좋고 내부는 아늑하고 포근하기까지 하다.

 

 

 

 

자작나무숲이 우거지고 맑은 개울물이 흐르는 곳,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게르의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나이람달 캠프.

몽골의 전통 게르를 체험할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의 내부는 다음편 소개해 드리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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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는 몽골의 투브 초원에서 양잡는 현장을 깜짝 공개해드린 바 있는데

오늘은 양 한마리로 몽골 전통 요리 '허르헉((Horhog)'을 만드는 과정을 공개하고자 한다.

허르헉을 만들기 위해서는 초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놀던 양 한마리를 골라내야 한다.

초원에서 의지할 식량이라고는 가축 뿐인 유목민들에게 양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대상인데

귀한 손님이 자신의 집을 방문했을 때 손님을 대접하는 경우에만 잡을 수 있다.


관련 포스트 : 초원의 법칙 - 몽골 유목민의 양 잡기 현장 습격 리얼 리포트 

 


 

 

양을 잡을 때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칼로 양의 앞가슴을 5cm정도 찢은 후

찢은 틈새로 손을 넣어 심장 동맥을 갑자기 움켜쥐어 바로 숨통을 끊어버린다.

이것은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동물에 대한 미덕인데

피 한 방울 땅바닥에 흘리지 않고 양를 잡고 가죽을 벗기는 과정은 거의 신기에 가깝다.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양을 잡고 가죽을 벗겨낸 게르의 바깥 주인은

바닥에 양가죽을 넓게 펴 놓고 먹기에 알맞은 크기로 고기를 하나 하나 잘라낸다.

이때 뼈는 절대로 자르지 않으며 관절을 꺾어서 고기를 해체한다고 한다.

 

 

 

 

남자들이 양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먹을만한 크기로 자르는 동안 여자들은

손가락 사이에 창자를 끼고 훑어나가며 양의 창자 속에 들어있는 배설물을 하나 하나 뻬내는데

내장 속에 들어 있던 덜 삭은 풀에서부터 똥까지 빠져나와서 주변에는 시큼한 냄새가 진동한다. 

 

 

 

 

모든 과정에서 물은 전혀 쓰이지 않는데 몽골사람들은 고기를 물로 씻으면 본래의 맛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을 잡을 때는 땅 바닥에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잡는 것이 기술인데

양의 뱃속에 고인 피는 그릇으로 떠내어 커다란 그릇에 옮겨 담는다.

피를 받은 안주인은 피 한사발을 땅바닥에 뿌리는데 이는 대지의 신에게 주는 고수레인 듯......

 

 

 

 

양 뱃속에서 나온 피는 밀가루와 소금을 넣고 골고루 주물러 섞는다.

 

 

 

 

손으로 주물러 잘 섞은 피를 양의 창자 속에 넣고 익히게 되면 바로 오리지널 피순대가 되는 것이다.

 

 

 

 

양고기를 자르고 피순대를 만들고 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난로에 장작불을 피워 '초토'를 굽는다.

초토는 몽골 초원의 자갈로 탄소 함유량이 높아 허르헉의 맛을 좋게 하는 돌멩이이다.

 

 

 

 

이제 고기도 준비되고 순대도 만들어졌고 불도 준비되었으니 고기를 넣어 익힐 일만이 남았다.

 

 

 

 

고산지대인 몽골 초원은 기압이 낮아서 요리할 때 냄비 위에 무거운 돌을 얹어야 하는데

오늘 요리는 양 한마리를 다 넣고 익혀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압력솥이 준비되었다.

튼튼하기 이를데 없는 이 압력솥은 몽골의 군대에서 주로 사용되는 압력솥이라고 한다.

 

 

 

 

허르헉을 만드는 맨처음 과정은 큰 압력솥에다 물을 조금 붓는 것이다.

 

 

 

 

그리고는 압력솥 안에 기본 양념인 소금을 적당량 투입한다.


 

 

 

 

그 다음에는 난로의 뚜껑을 열고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초토를 꺼낸다.

 

 

 

 

불길 속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돌멩이 초토를 꺼내서 압력솥 안에 집어 넣는다.

 

 

 

 

달아오른 초토를 넣으면 압력솥 안의 물은 금방 피시시......하며 수증기가 피어오르는데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큼지막하게 자른 고기들을

초토와 함께 차곡차곡 압력솥 안으로 던져 넣고 정성스럽게 만든 피순대도 넣는다.

 

 

 

 

관광객들을 위해 만드는 허르헉은 감자, 당근, 양파는 물론 마늘까지 넣어 누린내를 없애도 먹기 좋게 한다는데

사실 몽골인들은 채소나 양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 와서 채소를 먹는 몽골인들도 늘어났지만 양파와 마늘 정도가 고작이라고 하는데

마늘도 구하기 힘든 초원의 오늘의 허르헉 양념은 '소금'과 조그마한 '양파 2개'가 고작이다.

 

 

 

 

물과 소금, 초토, 양고기와 피순대, 양파를 솥에 넣은 후에 난로에 다시 새 장작을 투입한다.

 

 

 

 

그리고는 뚜껑을 단단히 닫은 압력솥을 난로불 위에 얹어 놓는 것으로 준비 단계는 끝이 났다.

 

 

 

 

이렇게 해서 1시간 반 정도 푹 쪄야 한느데 양을 잡고, 고기를 자르고, 순대를 만들어 솥에 넣어 익히는데까지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리는 허르헉은 진정한 의미의 슬로 푸드가 분명하다

 

 

 

 

1시간 반 정도 지나 난로에서 압력솥을 내려도 뚜껑을 바로 열지 않고 한참 동안이나 뜸을 들인 후에 뚜껑을 열게 된다.

 

 

 

 

드디어 압력솥의 뚜껑이 열리고 커다란 솥 안에 들어 있는 허르헉의 실체가 드러났다.

사이사이에 까만 돌멩이 초토가 보이는데 솥 입구까지 고기와 순대가 놀랄만큼 가득히 들어있다.

 

 

 

 

양 한마리를 통째로 요리하면서도 왜 채소는 고작 양파 2개가 전부일까 생각했는데

사실 몽골의 전통적인 요리에서 채소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초원에서 고기보다 구하기 힘든 것이 채소이기도 하지만 

선입견을 가진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감자 등의 야채에서 땅 냄새가 난다면서 먹지 않는다고 한다.

몽골 사람들에게 채소는 전통적으로 가축들이나 뜯어먹는 목초같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어도 많이 뜨끈뜨끈한 고기와 순대를 집게로 집어 커다란 쟁반에다 덜어낸다.

 

 

 

 

고기를 다 덜어낸 후 압력솥을 보니 압력솥 안에는 기름이 둥둥 떠 있고

그 속에서 고기를 익힌 일등공신 초토가 헤엄치고 있다.

 

 

 

 

초토는 고기가 다 꺼내고 난 후에도 손에 한참 동안 쥐고 있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

초토를 손에 쥐고 이리 저리 굴리면 원적외선이 나와 혈압과 심장 등에 좋다고 하길래

 초토 하나를 얻어 손에 살며시 쥐어 보았다. 따스함이 온 몸에 퍼진다.

아....기분이 좋아진다. 몸도 절로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제 허르헉을 양손으로 들고 뜯어먹는 일만 남았다.

침을 굴꺽 삼킨 후 쟁반에 담긴 허르헉 한조각을 집어 입안에 넣고 살며시 뜯어먹어 본다.

그런데 헉.....! 엄청 질기고 또 느끼......하다.

그렇게 오래 익혔는데도 뼈에 붙은 살코기가 좀체로 뜯어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누가 보든말든 양손으로 뼈다귀를 붙잡고 마구마구 뜯어먹어야 했다.

 살점을 힘껏 물어 뜯어 입안에 넣고 질근질근 씹어 보니

헉.....!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와 느끼함이 온 몸을 파고든다.

 

몽골로 오기 전 습득한 정보에는 허르헉은 감자, 당근, 양파, 마늘 등 야채가 많이 들어가 느끼하지 않고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다더니 그 요리는 한국 관광객을 위해 특화된 퓨전 허르헉이었던가 보다.

양 한마리에 달랑 양파 2개만 넣은 초원의 허르헉은 완전 느끼함 그 자체였다.

김치나 겉저리와 함께 먹는다면 느끼하지도 않고 환상적일텐데......

새삼 한국 음식의 귀중함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언제 또 몽골에 와서 유목민이 만든 오리지널 허르헉을 먹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우리나라의 시큼한 막걸리 맛과 비슷한 아이락(마유주)으로 살짝 입을 축인 후에

접시에 놓인 허르헉 고기를 집어 꼭꼭 씹으며 음미하다 보니 어느덧 허르헉의 구수한 맛이 입안에서 느껴진다.

 

 

 

 

기름기가 엄청 많은 허르헉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는 모습도 보았다.

여러 사람이 먹고 난 그릇을 거의 물 두 바가지로 다 씻어낸다.

주방 세제를 푼 바가지에서 문지른 그릇은 다른 바가지의 맹물로 한번 슥 행궈내면 끝이다.

한국에서라면 경악할 일이겠지만 물 없이 살림하는 것이 몸에 배인 몽골여인에게는 물 두 바가지도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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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몽골 초원에서 양 한마리를 잡아서 분해하는 

현장의 전 과정을 리얼하게 담은 리포트입니다.

보시기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심신허약자나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보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몽골 투브(Tov)초원의 햇살 좋은 오후. 

무리를 지어 모여있는 말과 염소들 무리와 분리되어 양 한마리가 외롭게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푸른 하늘과 녹색의 초원에 서 있는 한 마리 양의 모습은 너무나 평화로운 한폭의 그림이다.

 

 

 

 

양에게 살며시 다가 가서 셔터를 살포시 눌러본다.

"넌 왜 무리에서 떨어져서 여기 혼자 있니?"

 

 

 

 

'메에.....' 소리 한마디도 내지 않고 가만히 노끈에 묶여 있는 양. 정말 순한 양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조금 있으니 게르 바깥주인이 나타나 무리와 더 떨어진 곳으로 양을 끌고 간다.

양을 끌고 가는 모습이 상당히 우스꽝스러운데 양을 대체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조금 있다 보니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게르 바깥주인이 양을 끌고 간 쪽을 흘깃 쳐다 보니...... 앗!

금방 끌고 간 양이 바닥에 쓰러져 있고 게르 주인 아저씨 손에는 칼이 들려 있다.

혼자 떨어져 있던 양을 지금 막 잡으려고 하는 중이 아닌가!

 

놀라서 그쪽으로 달려가 보니 바깥주인이 손을 저으면서 오지 말라는 시늉을 한다.

이방인이나 여자들이 양 잡는 것을 보면 안 된다는 풍습이라도 있는건가?

약간 멈칫하다가 다시 가니 더 이상 말리지 않는지라 양 잡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가 있었다.

 

 

 

 

몽골인들이 피 한방울 땅에 흘리지 않고 잡는 양을 잡는 방법은 신기에 가깝다.

양을 잡는 과정을 보면 먼저 양의 앞다리를 두손으로 잡아 땅 위에 눕히는데

약간 반항하던 양은 땅 위에 눞히게 되면 이내 반항을 멈추고 만다.

 

양을 늅히면 먼저 잘 드는 주머니칼로 양의 앞가슴을 5cm 정도 찢는데 

양은 가죽을 찢길 때 요동을 좀 치다가 금방 조용해진다.

그리고는 5cm 쯤 찢은 틈새로 손을 넣어 심장 부근으로 서서히 들이밀고는

심장 동맥을 갑자기 움켜쥐면 양은 비명 한 마디 지르지 않고 즉사해 버린다.

 

양을 잡을 때 빨리 숨이 넘어가도록 하는 것은 키우던 양을 위한 배려이자 기술인데

이때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양은 거의 반항을 하지 않는데 정말 '순한 양'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부분이다.

 

 

 

 

양이 완전히 죽으면 배 부분을 가슴팍에서 사타구니 부분까지 칼로 가른 후에

양의 뱃 속에 들어 있던 내장을 커다란 쟁반 위로 조심스럽게 들어낸다.

 

 

 

 

양의 심장과 간, 허파, 창자......등 내장을 하나도 빠짐없이 조심스럽게 들어내어 옮긴 다음

 

 

 

 

뱃속으로 흘러나온 피는 작은 그릇으로 퍼내어 내장과는 다른 작은 그릇에 옮겨 담는다.

 

 

 

 

양을 죽이고 내장을 들어내고 피를 퍼 담고 하는 동안에도 피는 한방울도 땅에 흘리지 않는 것이 양잡기의 법칙이다.

 

 

 

 

피는 순대같은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되어야 하기도 하지만

피를 흘리면 다른 짐승으로부터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죽을 살에서 분리해 내어야 할 차례이다. 먼저 엉덩이 부분의 가죽부터 칼로 도려내고

 

 

 

 

그 다음에는 배를 지나 목 부분까지 예리한 주머니칼로 도려낸다.

 

 

 

 

그리고는 살에서 가죽을 분리해내기 시작한다.

 

 

 

 

가죽을 흠없이 잘 분리해야 좋은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살과 가죽을 분리한다.

 

 

 

 

남자들이 양을 잡아서 가죽을 분리할 동안 여자들은

손가락 사이에 창자를 끼고 훑어나가며 양의 창자 속에 들어있는 배설물을 하나 하나 뻬내는데

내장 속에 들어 있던 덜 삭은 풀에서부터 똥까지 빠져나오면 주변에는 시큼한 냄새가 진동한다. 

모든 과정에서 물은 전혀 쓰이지 않는데 몽골사람들은 고기를 물로 씻으면 맛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 뱃속에서 나온 피는 밀가루와 소금을 넣고 골고루 주물러 섞는데

이것을 양의 창자 속에 넣으면 오리지널 피순대가 되는 것이다.

 

 

 

 

혼자 양가죽을 벗기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므로 옆에서 양의 다리를 잡아주면 한결 편리하게 벗길 수 있다.

 

 

 

 

반 정도 분리가 된 모습인데 양을 잡는데 양가죽을 벗겨내는 것이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죽과 살을 분리하는데는 다른 도구가 필요없다.

오로지 주먹을 꽉 쥐고 가죽을 밀어내기만 하면 되는데 이것도 상당한 힘과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양가죽을 다 벗겨내었으면 마지막으로 양의 발목을 끊어 부러뜨린다.

 

 

 

 

그리고는 한쪽 발목의 살점을 칼로 약간 벤 후 그 사이로 다른쪽 발목을 끼워 넣는다.

 

 

 

 

이렇게 하면 잡기가 수월하여 양을 들어 옮기는데 훨씬 편리하다.

 

 

 

 

벗겨낸 양털은 잘 말려서 팔게 되는데 몽골에서 양털 하나는 1,000투그릭(한화 1,000원)정도에 거래된다고 한다.

이 양털은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몽골의 혹한을 버티게 하는 좋은 옷감이 될 것이다.

 

 

 

 

양을 잡고 내장을 들어내고 가죽을 분리하고.......이 모든 과정이 약 30분 만에 초스피드로 진행되었는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양을 잡는 기술은 가히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오랜 세월 유목생활을 하며 터득해낸 그들만의 지혜인 듯......

 

다소 혐오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양잡는 과정을 하나 하나 사진 기록으로 남긴 것은

몽골 유목민의 가축 중에서도 양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대상으로 귀한 손님이 왔을 때만 잡는 것인지라

여행 중 양잡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체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잡은 양 한마리로 만드는 몽골 전통 요리 '허르헉' 조리 과정을 소개해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관련 포스트 : 헉! 소리나는 몽골 전통 양고기 요리 '허르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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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여름철은 어느 계절보다 바쁜 하루가 계속된다.

여름에는 가축들이 풀을 뜯고 젖을 많이 생산하기 깨문에

유목민들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가축의 젖을 짜기에 바쁘다.

젖짜는 일은 주로 여성들이 하며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시간에 맞추어 젖을 짜서는 겨울용 식량으로 비축해둔다.

 

여름철의 몽골 사람들은 특히 인심이 좋다고 한다.

여름에는 가축의 젖이 넘쳐나고 먹을 것이 넉넉하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유제품을 나눠주고 고기도 나눠주는데

외국 여행자들을 특히 신기해하여 음식을 베풀며 대대적인 환영을 한다.

 

 

 

 

초원의 유목민들에게 풀은 생명과 직결되는 귀중한 것이다.

그것은 초원의 풀을 이용하기에 따라 가축의 젖의 생산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초원의 유목민들은 소, 말, 양, 염소 등 여러 가축을 함께 먹이는데

 

 

 

 

가축에게 풀을 뜯기는 것도 조상 대대로의 전수받아온 비법이 있다고 한다.

 

 

 

 

그 비법은 가능한한 풀을 짧게 뜯어 먹을 수 있도록 가축을 순서대로 몰고 다니는 것이다.

 

 

 

 

소나 양, 염소를 같이 사육하는 유목민은 양보다 소가 먼저 나가며 풀을 뜯게 하는데

소는 풀뿌리 근처까지 뜯어먹지 못 하므로 소가 먹고 남긴 풀을 양이나 염소가 샅샅이 헤쳐 먹는다고 한다.

 

 

 

 

고비지방 같이 낙타와 양을 함께 유목하는 지방에서는 양에게 풀을 먼저 뜯기게 한다는데

양은 가시가 있는 풀을 먹지 않기 깨문에 거친 풀을 잘 먹는 낙타를 양 뒤에서 뜯어먹게 한다.

 

 

 

 

한낮의 더위로 인해 한동안 조용하던 초원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한다.

게르 그늘에서 쉬고 있던 유목민들이 모두 일어나더니 갑자기 염소들을 한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한다.

 

 

 

 

염소의 뿔을 잡고 끌고 오는 사람들 중에 태반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학기중에는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방학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부모의 일을 돕는다.

몽골의 여름 방학은 6, 7, 8월로 세달이나 되는데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기숙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와
부모를 도와 양을 치거나 말을 훈련시키거나 하며 자신들의 몫을 훌륭하게 해 낸다.

 

 

 

 

염소를 잡아서 끌고 오는 방법은 제각기 다른데

염소를 안고 오는 아이도 있고 염소의 한쪽 뿔을 잡고 끌고 오는 방법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염소의 목 위에 올라타고 끌고 오는 방법이 제일 좋다고 한다.

두 뿔을 손으로 잡고 염소 목에 올라타서 끌면 염소는 순순히 따라 오게 된다고......

 

 

 

 

끌고 온 염소는  서로 마주 보게 한 후  길다란 끈으로 굴비 엮듯 목을 엮는다.

 

 

 

 

아이들이 염소 뿔을 잡고 끌고 오면 엄마는 끌고 온 염소들을 한마리씩 굴비 두름 엮듯 엮어 나간다.

 

 

 

 

이제 상당히 많은 염소가 긴 노끈에 차곡차곡 묶여졌다.

 

 

 

 

목을 노끈으로 묶으면 답답해서 금방이라도 반항하고 도망갈 것 같은데

묶인 염소들은 전혀 요동도 않고 가만히 순종하고 있는게 참 신기하기만 하다.

 

 

 

 

 머리를 서로 마주하고 묶인 염소들의 뒤를 보면 엉덩이만 보여서 약간은 우스꽝스러운데

이렇게 염소를 굴비 두름 엮듯 엮는 이유는 바로 젖짜기에 수월하게 하려는 것이다.

 

 

 

 

유목민 아낙은 커다란 양동이를 염소 궁둥이 아래에다 놓고 젖꼭지를 사정없이 잡아당기며 젖을 짜낸다.

 

 

 

 

젖을 짜는 것은 여성들이 도맡아서 하는 일인데 여름에는 하루에도 10여 차례씩 쉬지 않고 젖을 짜낸다고......

 

 

 

 

울란바타르대학에 다니는 여대생도 염소 뒤에 앉더니 거침없는 손길로 염소젖을 쭉쭉 짜낸다.

차도녀인 그녀가 염소젖을 능수능란하게 짜내는 모습은 필자를 놀라게 했는데

우리나라 도시 학생들이 농촌 생활에 데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데 반해서

몽골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도 말타기, 젖짜기 등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한다.

 

 

 

 

젖을 다 짜내면 이렇게 궁둥이 부분을 손으로 살살 문질러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서 더 많은 젖을 생산한다고......

 

 

 

 

양이나 염소의 젖짜기보다 말의 젖짜기는 훨씬 더 중노동인 것 같다.

염소젖을 짤 때에 바닥에 편하게 놓았던 양동이를 무릎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고 말젖을 짜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한쪽을 보고 모여있는 양이나 염소와는 달리 말들은 스스로 머리를 한데 모으고

 엉덩이를 밖으로 내고 있는지라 노끈으로 묶을 필요없이 바로 젖을 짜내면 된다.

이렇게 짜낸 말젖은 아이락이라고 불리우는 마유주를 만드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하루종일 가축을 돌보고 젖을 짜서 저장식품으로 만들어 비축하느라 분주한 나날이 계속되지만

여름에는 말랐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유목민들의 생활에는 활기가 넘치며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는 유목민 아낙네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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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 승마 종합 마술 부문에서 영국 여왕의 외손녀 필립스 공주가

은메달을 획득하여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필립스 공주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외동딸인 앤 공주의 딸인데

앤 공주도 1978년 몬트리얼 올림픽 종합 마술 부분에 출전한 승마 선수이다.

이렇듯 승마가 귀족의 스포츠로 인식되어 있는 유럽에서는  

올림픽 승마 부문에서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형편인데

세계에서 말을 제일 잘 타는 민족을 꼽으라면 '몽골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인류 역사상 최초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아시아인의 긍지를 세계에 떨쳤던 칭기즈칸의 위업은

신출귀몰하는 전략과 기병을 앞세운 전력 덕분이었다고 하는데

정복 전쟁시 몽골 병사들은 1인당 8~9마리의 말을 몰고 쉬지 않고 진격했다.

전속력으로 정복지를 향해 달리다가 타고 있는 말이 지치면

말 위에서 다른 말로 바꿔 타면서 진격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했다고 한다.

 

적군과 접전할 때에도 적들은 몽골 병사들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는데

병사가 100여명이면 몰고 다니는 말 800~900마리가 병사들을 에워싸고 있어

적군들은 몽골 병사들에게 감히 접근할 수 조차 없었다고 한다.

또 적군들에게 포위가 되었을 때에는 고깃가루인 보르츠와 말젖으로 연명을 했으며

전투 식량이 떨어지면 늙은 말부터 잡아 먹으면 되었기 때문에

병참 문제가 해결되어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말을 잘 타는 몽골 민족이 올림픽 승마 부문에서 메달 하나도 따지 못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몽골의 국민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올림픽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기술만 익힌다면

올림픽 승마 부문의 메달은 몽골에서 싹쓸이해가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본다.

 

 

 

 

 몽골에서는 어딜 가든지 드넓은 초원에서 방목하고 있는 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말들은 긴줄을 매어 여러 마리를 굴비 엮듯 묶어둔 것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양쪽에 긴 기둥을 세우고 높이 줄을 매단 후 말고삐를 높이 매달기도 한다.

 

 

 

 

힘만 살짝 주면 금방이라도 풀릴 것 같이 매어둔 고삐.

말의 힘은 사람에게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센데 이렇게 묶여 가만히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또 많은 말들은 고삐도 묶어두지 않는데고 이리 저리 흩어지지 않고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초원에 불어오는 센 바람을 이기기 위한 지혜일까?

모두 머리를 한데 모으고 엉덩이를 밖으로 돌리고 떼를 지어 뭉쳐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말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말의 온순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얼마나 순수한 눈인지......

 

 

 

 

아름다운 동물이 많이 있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섹시한 동물은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초원 이곳 저곳에는 고삐도 없이 돌아다니며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초원의 천막과 게르를 배경으로 한데 모여 있는 말들과

 

 

 

 

사이좋게 데이트를 하며 풀을 뜯는 말들의 모습은 한폭의 평화로운 그림이다.

 

 

 

 

말무리 중에서는 이렇게 새로 태어난 망아지들도 눈에 많이 뜨인다.

 

 

 

 

 망아지를 어미말의 눈에 띄는 곳으로 끌고 오면 어미는 새끼를 보고 젖이 더 많이 돌게 되는데

망아지가 젖을 조금 빨고나면 망아지를 살짝 옆으로 끌어낸 뒤 주인은 어미말의 젖을 손으로 짜낸다고 한다.

 

 

 

 

어미의 젖을 맘껏 빨지 못한 망아지는 다리를 뻣뻣하게 세우고 잇몸을 드러내며 한껏 반항을 해 본다.

 

 

 

 

이윽고 진정이 된 망아지. 다시 줄에 매여 앉아 온순한 자태를 보여준다.

망아지 이마의 하얀 털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War Horse'에 나온 말과 너무 많이 닮았다.

이쁜 망아지야! 얼른 얼른 자라서 초원을 거침없이 달리는 멋진 말로 자라주렴!

 

 

 

 

가축의 젖 짜는 일을 다 마치고 나면 아이들과 아빠는 말을 타고 초원을 무한질주한다.

 

 

 

 

우리나라 제주마의 원조가 되는 몽골마.  아라비아 말에 비해서는 체구가 비교적 왜소하다.

하지만 기골이 장대한 성인을 등에 태우고도 거침없이 질주하는 모습을 보니 작은 체구에서도 무한한 힘이 숫는가 보다.

 

 

 

 

몽골에서는 걷는 것보다 말 타는 것을 먼저 배운다는 말이 있다.

3살도 안된 이 여자아이는 고삐도 잡지 않고 편안하게 말을 타는 법을 이미 터득하였다.

이렇게 말 위에서 자란 아이를 몇년 후에 나담축제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몽골 최고의 축제인 나담 축제 마지막 날에는 어김없이 말달리기 시합이 거행되는데

대부분의 기수는 4~7세의 몸이 가벼운 어린 기수들이라고 한다.

 

 

 

초원의 하루도 어느덧 저물어가고 저멀리 초원의 민둥산에도 어둠이 어둑어둑 밀려오는 시간.

어디선가 갑자기 털이 아주 길고 다른 말과는 생김새가 전혀 다른 말이 달려오더니 순식간에 눈 앞으로 다가온다.

갑자기 나타난 말을 보고 놀라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금세 바람같이 휙 눈 앞을 지나가 버린다.

필자가 "어! 어!"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울란바타르대학 남학생이 얼른 필자의 카메라를 뺏어

말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한참 후에 사진을 찍어가지고 돌아왔다.

 

 

 

 

윤기 흐르는 흑갈색의 털과 길고 검은 갈기를 가진 이 말은 종마라고 한다.

무리와 어울리지 않고 고고하게 혼자 초원을 질주하는 모습은 정말 신비롭기까지 하다.

비록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제대로 살펴 보지 못 했지만

몽골 초원에서 만난 이 신비한 종마의 모습은 아직도 필자의 눈에 선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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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올려드린 포스트에서는 몽골의 투브 초원에서

1시간 만에 게르(Ger) 한채를 후딱 짓는 과정을 소개해 드렸다.

그러면 몽골 초원의 천막집 게르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투브(Tov)아이막의 초원에서

양과 말을 방목하고 있는 한 가정의 게르 내부를 살짝 들여다 보았다.

 

 

 

 

초원에서 살던 몽골인들은 기후 여건에 따라 자주 이사해야 하므로

이동이 간편하고 보온이 잘 되는 게르를 전통적인 주거수단으로 삼아 왔는데

영구성이나 외적  보호기능보다는 일시적인 추위와 햇빛, 그리고 비바람을 차단하는 차양이 주목적이다.

 

비교적 간단하고 어설퍼 보이는 이 게르도 의외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고하는데

몽골에서 제대로 된 게르 하나를 세우러면 우리 돈으로 150~2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그래서 게르 하나를 새로 만들려면 온 가족이 몇년전부터 틈틈이 재료를 다듬고 모아서 준비한다고.......

 

 

 

 

몽골의 게르에 들어가려면 문을 두드리거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라고 하면 안 된다.

가능하면 게르에서 멀리 떨어져서 주인을 불러야 하는데 무작정 집 가까이 다가가면 오해받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약탈이나 습격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르에 개를 카우지 않더라도고 손님은 멀리서 "개를 불러들이시오." 또는 "날씨가 참 좋군요."등

아무말이나 혼자 크게 지껄이면 주인이 게르 안에서 옷을 차려입고 나와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손님이 게르에 들어가게 되면 주인은 여름에는 아이락을, 그외의 계절에는 수테차를 권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왼손으로 오른손 팔목을 받쳐들어 손님에게 권한다.

차와 동시에 작은 병에 담긴 코담배(센떼노)를 권하며 다시 한번 악수를 청하는데 

"건강하세요~(에롤 벵흐 바이가라)", "여행이 편했느냐?"라고 물으며 말문을 터나간다.

하지만 절대로 손님이 어디서 왔으면 어디로 가는지는 캐묻지 않는다고 한다.

 

코담배는 담뱃잎이 아닌 향료와 약초를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대부분 옥으로 만든 향수병에 들어있다.

모양과 크기는 매니큐어통 정도인데 귀이개 모양의 도구로 가루를 꺼내 엄지 손톱에 바른 후

조심스럽게 흡입하면서 냄새를 향유하는데 강한 향료와 매콤한 냄새가 나서 매우 자극적이므로

갑자기 들이마시면 재채기와 콧물이 나와서 당황하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한바퀴 씩 돌려가며 코담배 냄새를 맡으면 인사가 끝나고 병은 주인에게 돌려주면 된다.

 

 

 

 

게르는 난로를 중심으로 남성구역, 여성구역, 그리고 신성구역......이렇게  세구역으로 나뉜다.

좁은 공간에서 웬 남녀칠세부동석이냐고 의아해하시겠지만

몽골 사람들은 게르 안으로 들어가면 자기가 어느 곳에 앉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안다고 한다.

남성은 게르에 들어가면 왼쪽으로 여성들은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는 남성구역은 하늘이 보호하고 여성 구역은 태양이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남쪽으로 난 게르 문의 반대쪽인 북쪽은 신성한 구역인데 

가문의 최고 연장자가 사용하는 무기와 모린호르(마두금), 말재갈 등을 놓아두는 곳이다.

옷이나 중요한 물건을 넣어두는 옷장인 밝은 오렌지색의 아브다르도 이곳에 자리잡는데

가족사진이나 정부로 받은 훈장, 불상, 라디오 등이 그 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몽골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칭기즈칸의 초상도 신성구역에 걸려 있는데

칭기즈칸의 초상은 어느 집 어느 게르를 가더라도 빠짐없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르의 서쪽인 왼쪽은 남성구역으로 이곳에는 말안장과 고삐, 아이락 주머니 등

남자주인의 소지품들이 걸리게 되고 손님용 침대나 카페트도 이곳에 놓이게 된다.

 

 

 

 

주인 내외의 침대는 오른쪽인 여성구역의 벽에 붙어 있는데 아이들이 많으면

침대가 거의 돌아가지 않으므로 부모의 발치 바닥에 양탄자나 양가죽을 깔고 잠을 잔다고 한다.

사진에서 게르의 천막 아랫부분이 살짝 들어올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

바깥의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상당히 시원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르의 동쪽인 오른쪽에는 안주인의 주방용구와 생활도구들이 비치되어 있는데

이집의 안주인의 세심함이 드러나는 자수 장식품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주방용구가 비치되어 있는 게르의 오른쪽 문 입구에는 이렇게 고기를 줄에 널어 말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뜨였는데

 이렇게 실내에서 고기를 말리는 이유는 밖에 두면 야생짐승들이 언제 물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말린 고기는 갈거나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드는데 우리나라 미숫가루같은 이 고깃가루를 '보르츠'라고 한다.

 휴대가 간편하고 영양도 만점인 비상식량 보르츠는 뜨거운 물에 서너 숟가락 퍼 넣고

 2~3분 기다리면 금방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영양식이 된다고.....

 

 

 

 

원형의 게르의 제일 가운데에는 이렇게 난로가 놓여 있는데 취사는 물론 게르의 난방을 책임지고 있다.

나무가 자라는 지역에서는 난로에 나무를 때지만 그 외의 지방에서는 가축의 배설물을 연료로 사용하는데

게르의 난로에 불을 지피면 게르 내부는 금방 더워지고 그 열기는 비교적 오랫동안 간직된다고 한다.

몽골인들은 난로를 신성시여기는데 난로에 물을 붓거나 쓰레기를 넣는 것, 불을 쑤시는 것과

난로를 타 넘는 것은 물론 난로에 발을 쪼이는 것도 금기시된다.

난로를 모독하는 모든 행동은 최악이며 주인을 모독하는 것으므로 조심해야 할 일......

 

 

 

 

멀리 한국에서 몽골의 초원까지 온 이방인을 위해 안주인이 몽골 전통 의상 델을 입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길이가 길고 소매가 넓어 우리나라의 두루마기와 모양새가 비슷한 델은 남녀 구분이 없는데

단추의 숫자가 많고 화려하면 여성용, 모양이 단순하면 남성용이라고 한다.

남성용 델은 장식보다 실용성에 중점을 두었는데

일하거나 말을 탈 때에는 몸을 보호하고 밤에는 담요대용으로 보온에 한몫을 했다.

변화의 물결이 빌어닥친 요즈음 델은 오리털 파커로 바뀌었고

긴 소매의 델로 감추었던 손에는 두툼한 스키 장갑이 끼워지게 되었다.

 

 

 

 

게르를 방문한 기념으로 투브 초원의 이 가족들에게 가족사진을 한장 찍어주기로 했다.

게르의 문 앞에 서서 두 아이를 안고 선 부부의 얼굴에는 순박하고 환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포토 프린터를 가지고 갔더라면 즉석에서 사진을 출력해줄 수 있었을텐데 그점 아쉬운 점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사진을 출력해서 게르 주인의 이름을 적은 메모와 함께 투브 아이막으로 부쳐 주었다.

가축들이 먹을 풀이 다 없어지면 게르를 분해하여 또 다른 초원으로 이동하는

초원의 유목민 가족에게 이 사진은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부디 이 사진도 게르의 신성구역의 액자 안에 함께 걸리게 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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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에 갔을 때 울란바타르 인근 투브(Tov) 초원에서 일정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초원에서 생활하는 유목민들의 생활을 일부분이나마 체험한 일이 있었다.

  

  투브에서 체험한 유목민의 생활은 게르짓기, 말타기, 염소젖짜기,

양잡기, 말똥 모으기, 그리고 전통 음식인 호르헉과 아롤 만들기 등이었는데 

그 모든 과정을 열심히 사진으로 담아 왔으나 너무 방대한 사진양으로 인하여 

사진 편집의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하드에 묵혀 놓은지 오래이다.

     

그동안 산발적인 포스팅을 통하여 몽골의 이모저모를 소개해 드리긴 했지만  

막상 몽골 여행의 핵심이라할 초원의 삶에 대해서는 미쳐 소개해 드지 못한지라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몽골 초원 유목민들의 삶에 대해서 단편적으로나마 소개해 드릴까 한다. 

 

 

 

 

초원 생활 편에서 가장 먼저 소개해 드릴 것은 게르짓기이다. 

많은 몽골인들은 아직도 천막집 게르에 살고 있는데  

그것은 게르가 몽골인의 유목 생활 양식과 순탄치 않은 날씨에 가장 적합한 주거 형태이기 때문이다. 

추위, 바람, 햇볕에 잘 견딜 수 있는 게르는 1시간 이내에 세우고 분해할 수 있어서

  가축이 먹을 풀을 찾아서 이주하는데 불편이 없는 이동식 주택이다.

       

몽골 게르의 중요한 구성요소는 '카나(khana)'라 불리는 나무벽(외관)과  

나무기둥 윗부분인 '유니(uni)', 중간 지지대 부분인 두 기둥으로 이루어진 '바가나(bagana)',  

그리고 가장 위에 있는 원형으로 된 굴뚝 '터너(toono)'이다. 

  게르를 지을 때는 먼저 터를 잡고 그 위에 아코디온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들어진 벽인 카나를 세운다. 

카나를 몇개 세우는가에 따라 게르의 규모가 정해지는데

  일반인들은 보통 카나 5개 정도의 집을, 귀족들은 카나 10~12개를 사용해서 짓기도 했다고 한다.

 

 

 

 

 

   맨처음 카나와 문을 동그랗게 똑바로 세워 긴 줄로 묶은 후

바가나와 두 나무 기둥을 터너에 묶고 원의 중심에 똑바로 세운다.

 

 

 

 

 

터너는 직경이 약 약 1~1.5m로 흡사 우산을 펼쳐 놓은 것 같은 형태인데 

터너가 놓이는 곳이 게르의 중심이며 아래는 난로가 놓여 음식을 만들고 난방도 하게 된다. 

원형 굴뚝인 터너와 아코디언벽인 카나를 연결하는 막대기를 유니라고 하는데  

유니는 게르의 규모가 작으면 45개 정도, 규모가 크면 12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게르의 골격을 다 만들었으면 양모를 압축시킨 펠트로 카나의 겉을 덧대어 비와 눈으로부터 집을 보호한다.

 

 

 

 

 

  그리고 내부에도 나무골격인 카나를 천으로 가리는데 이 게르는 유목민의 주생활공간이 아니라  

보조 생활 공간이라서 세심한 인테리어(?)도 없고 부자재도 심히 소박하다.

 

 

 

 

   

벽을 가린 후에 게르의 지붕을 여러겹으로 감싸는데 이는 몽골 초원의 매서운 추위를 막기 위함이다. 

 

 

 

 

   

제일 먼저 커다란 낙하산같은 하얀 천을 게르 지붕에 올리고 

 

 

 

 

 

끝을 맞추어 게르에다 잘 고정시킨다.

   

 

 

 

 

긴 막대기인 유니의 끝에도 묶어서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시킨다.

 

 

 

 

   

그리고는 하얀 속덮개 위에 다시 양털을 넣어 누빈 덮개를 씌우는데 마치 두터운 누비 이불같은 느낌이다.

 

 

 

 

   

덮개가 크고 바람이 불면 펄럭거리기 때문에 혼자서 덮개를 덮는 것은 불가능하여 

아이를 포함해서 온 가족이 함께 힘을 모아 게르를 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쪽에서 덮개를 씌우고 장대로 잘 펴고 하는 동안에 좀 떨어진 곳에서 놀러온 이웃들도 이렇게 일을 도와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덮개의 한쪽을 잡고 있는 것만 해도 큰 힘을 보태주는 일인 것 같다.

 

 

 

 

 

  마지막 남은 부분의 누비 덮개를 펴기 위한 손길도 분주하다.

이미 오래 써서 그런지 너덜너덜해진 덮개가 인상적이다.

 

 

 

 

  

많이 헤어져서 너덜너덜해진 덮개지만 비바람을 막고 온기를 더해주는데는 그만이다.

 

 

 

 

   

제일 윗부분에 덮는 펠트커버는 하얀 색인데 가장자리에는 푸른색천이 덧대어져 있어 깔끔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는 바람에 날리지 않게 3개의 끈으로 펠트와 천막 커버를 꽉 묶는다.

지금은 여름이라 통풍이 잘 되게 게르 아래를 들추어 놓지만 여름이 지나면

게르 아랫 부분을 길고 가는 펠트 벨트(30cm)로 묶어 바람이 게르안으로 못 들어가게 한다.

 

 

 

 

   

가장 위쪽의 굴뚝 구멍은 직사각형 펠트 커버로 부분적으로 덮이게 한다.

이 구멍은 평상시에는 하늘이 보이게 열어놓지만 날이 추워지거나 밤이 되면 전체를 다 덮을 수 있게 한다.

게르의 천은 여름에는 외부의 열기를 차단하고 태양빛을 가려 시원함을 유지하는데

게르의 아랫쪽을 걷어올리면 바람이 들어와 시원하고 밤에는 추위마져 느껴질 정도이다.

또 게르는 낮고 둥글어서 강한 바람을 잘 이겨내는데 외부가 눈비에 젖어도 게르의 천은 금방 마른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채 1시간도 안 되어 게르 하나가 후딱 지어졌다. 

사진에서 바로 앞에 있는 게르는 투브 초원에 거주하는 유목민 가족이 실제 거주하는 게르이고 

방금 세운 뒷편의 게르는 식량등을 넣어두는 보조생활공간으로 쓰이는 게르이다.

 

  두 게르의 문은 모두 남쪽으로 내었는데 이는 햇빛을 잘 받고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몽골사람들은 꼭 바람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오랜 관습 때문에 문을 남향으로 내기도 한다.

 

  지금은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주택이 대도시에 지어져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기도 하지만 

아직도 초원에 사는 유목민의 대부분은 전통적인 게르에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울란바타르같은 대도시의 외곽지역에도 게르가 빼곡이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몽골의 전통 천막집인 게르를 세우는 과정을 소개해 드렸는데 

다음에는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 게르 내부와 초원에서의 생활을 소개해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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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 동남쪽에 위치한 만쉬르 사원으로 가는 길은 멀고 멀기만 하다. 

쿠션이 좋지 않은 고물 버스는 초원을 달리는 내내 터덜거리며 달려
여행에 지친 허리와 엉덩이에 더욱 심한 통증을 가져다준다.



제한 속도가 80km라고 쓰여져 있는 도로지만 도로는 누더기가 되도록 여기저기 기워져 있어
버스가 60km정도의 속력을 내어도 마치 말을 탄 것처럼 털썩거린다.



상태가 좋지 못한 도로를 2시간 정도 달려가니 드디어 만쉬르 사원의 입구가 보인다.
몽골 사원의 지붕 모양을 본뜬 관광 안내소 겸 매표소는 험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이다.



만쉬르 사원 입구로 들어서니 날아갈 듯한 지붕 처마를 하고 있는 정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지는 하얀 게르들의 모습이 참 평화롭다. 그런데 앞쪽의 전나무들은 왜 말라죽어버렸을까.....
죽었으면 베어내기라고 하면 좋을텐데 그냥 둔 모습이 모기 흉하다.
몽골의 산들은 참 희한한데 산의 어떤 부분에는 전혀 나무가 없고 어떤 부분은 나무가 울창하게 자란다. 무슨 이유일까?
나무의 씨앗이 날아가서 땅에 뿌리를 내리더라도 옆에 나무가 없으면
혼자서 큰 나무로 성장하기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사람이나 나무나 혼자서는 살아남기 힘든 것인가 보다.



만쉬르 사원은 불교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서구의 학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몽골의 중심 불교인 라마 불교가 융성했을 때는 이곳에 200여개의 라마 불교 사원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남아 있는 엄청난 크기의 솥단지를 보면 전성기 때 이곳에 얼마나 많은 승려들이 상주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몽골이 공산주의화 되면서 라마 불교는 핍박을 받게 되고 이곳에 있던 대부분의 불교 사원은 훼철되었는데
만쉬르 사원 이곳저곳에는 옛날 사원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것을 뱔견하게 된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는 사원과 현재 운영 중인 사원 4~5동의 건물과 20여개의 게르만이 남아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이곳에 있던 불교 사원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의 몽골 박물관처럼 이곳도 내부를 촬영하는데는 입장료의 수배가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박물관 내의 소장품은 동물의 박제나 풍속화들이 대부분이라 돈을 지불하고 촬영하는 것은 내키지 않을 정도이다.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소장품은 17살 소녀의 정강이뼈로 만들어진 피리인데 
놀랍게도 이 피리는 소신공양처엄 자신의 몸을 바친 소녀의 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촬영료를 내지 않으면 촬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었다.



몽골에서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어버(어워)'를 여기서도 어김없이 만날 수 있다. 어버는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같은 곳인데 
몽골에서 어버는 마을의 수호신이요, 초원에서는 이정표이며 재앙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신성한 곳이다.



사원 터에는 일종의 선돌과 같은 '모미'도 여기저기 서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모미에 둘러쳐진 천에는 어김없이 몽골의 화페인 투그릭이 여러장 꽂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쉬르 사원에는 나무껍질을 이용한 차탄족(순록 유목민이란 뜻)의 전통 천막 오르츠도 전시되어 있다.  
천막 가운데 원시적인 형태의 난로가 있는 오르츠는 원래는 순록의 가죽으로 천막의 바깥을 덮는다고 하는데
몽골인의 77.5%를 차지하는 할흐족의 천막인 게르(Ger)와는 그 모습이 너무나 다르고 
아메리카 인디언의 천막과 모습이 거의 유사하게 생겼다.



만쉬르 사원은 몽골인들에게는 사원으로보다 휴양지로의 기능이 우선하는 곳이다.
우거진 침엽수림 가운데 베풀어진 커다란 게르들은 우리나라의 호텔이나 콘도처럼 방문객들에게 대여되는 시설이다.
 울란바타르 사람들은 소풍을 갈 때나 여름 휴가를 지내기 위해서 자연 경관이 좋은 이곳을 즐겨찾는다고 한다.



여러겹으로 둘러쳐진 게르는 여름에는 이렇게 덮개의 아랫부분을 들어올려 통풍을 시키는데 안에 들어가보면 의외로 무척 시원하다.
하지만 밤이 되면 아무리 여름이라도 들어올린 덮개를 내려서 보온을 해야 잘 때 추위에 떨지 않게 된다.



아름드리 전나무 아래 게르 앞에 불뚝한 배를 드러냔 아저씨들이 뭔가를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것이 보이길래 다가가 보았다.

돌 위에 놓고 뭔가를 해체하고 있는 모습이 궁금하여 가까이 가긴 했지만
혹시나 실례가 될까봐 머뭇거리고 있으니
아저씨들이 손을 흔들어 부르며 가까이 와서 보라고 한다.
카메라를 들어보이며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는 듯으로 눈짓을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선뜻 승락해준다.



커다란 돌 위에는 염소 한 마리가 불에 반쯤 그을린 채로 누워있다. 에고 불쌍해라.....!
튜브 아이막의 초원에서는 산 양을 통빼로 잡아서 껍질을 벗기고 온몸을 각을 뜨는 과정을 보고 하나 하나 사진 찍기도 했지만
이렇게 불에 그을린 채로 누워 있는 염소를 보니 저렇게 불쌍한 동물의 고기를 먹는다는데 마치 죄악처럼 느껴진다.



만쉬르 사원은 몽골에서도 고원지대라 아름드리 침엽수림이 우거지고 공기가 너무 맑을 뿐 아니라
초원 곳곳에는 아름다운 야생화가 어우러진 천국과도 같은 곳인데

발아래 여기저기에는 높은 산 공기 좋은 곳에서만 자란다는 에델바이스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아침 이슬에 젖어......하며 노래로만 만나던 에델바이스인데
이렇게 몽골의 아름다운 만쉬르 사원의 초원에서 만나게 되니 너무나 반가웠다.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한 에델바이스 한송이 꺾어 책갈피에 살며시 넣어가지고 오고 싶었지만

다음에 올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고이 제자리에 남겨 두고 아쉬운 마음으로 만쉬르 사원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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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모래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몽골.
가도가도 끝없는 지평선과 초원 뿐인 몽골은 신조차 버린듯이 척박한 땅이다.

그러나 몽골의 자연이 이렇듯 끝없는 초원만 계속되는 것으로 안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몽골의 자연은 크게 5개 권역으로 나뉘어지는데 동부의 평원과 서부의 산맥, 북부의 숲과 호수,
남부의 사막, 그리고 울란바타르를 중심으로 한 톱 아이막(중앙 道)이 그것이다.



몽골의 수도인 울바타르 근처에는 놀랍게도 이렇게  큰강이 흐르고 있는데 강의 이름은 '톨'강이다.




수량도 풍성한 톨강 유역에는 몽골에서 보기 힘드는 싱그러운 숲들이 펼쳐져 지나치는 이들의 눈을 시원하게 한다. 




올란바타르에서 멀지 않는 곳에는 울창한 수목 사이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천국과 같은 곳이 있는데 
바로 울란바타르에서 북동쪽으로 약 60Km 떨어진 항헨티 산기슭에 있는 테를지
(Terelji) 국립공원이다. 
온갖 야생화가 만발한 푸른 초원, 울창한 전나무가 우거진 산과 그 뒤쪽으로 얼굴을 내민 바위산,
우거진 숲 사이로 흐르는 맑은 톨강,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하얀 게르가 어울려 한폭의 풍경화로 다가오는 테를지 국립공원. 

거북바위를 지나 테를지 국립공원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면 구름을 이고 있는 웅장한 산 아래로 울란바타르-2 호텔이 나타난다.
이 호텔에서 묵어보지는 못하고 점심식사만 했는데 경관이 정말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멋진 호텔이다.

호텔 앞에도 말을 대여해주는 곳이 있는데 드넓게 펼쳐진 테를지 국립공원 안의 초원은 골프장으로 이어진다. 




말과 너무나 친숙한 몽골인지라 가는 곳 마다 이렇게 말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울란바타르-2 호텔 바로 옆에 더 멋들어진 건물이 있기에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북한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란다.
가까이 가보고 싶었지만 북한 호텔이라고 하니 뭔가 두려운 느낌이 들어 멀리서 사진만 찍었다.




울란바타르-2 호텔 뒷편으로 돌아가서 보니 호텔 담 너머로 북한 호텔이 지척이다.
건물은 지은지가 얼마 되지 않는지 상당히 산뜻해 보이고 고급스러워보인다.




호텔 뒷편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숲이 있다고 하기에 산책길에 나섰다.
호텔 뒷편길로 들어서보니 발 앞에 바로 맑은 강물이 펼쳐진다. 바로 '멀리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의 '톨'강이다.




산책길에 나서니 주춤하던 비가 또 약하게 내리며 강물 위로 점점이 뿌려진다.




햇살로 눈부시는 톨강을 볼 수는 없지만 대신 비를 머금어 너무나 싱그러운 수풀이 눈 앞으로 펼쳐지니 도리어 이색적이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튼튼해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걸어서 건너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맑은 강물에는 주변의 커다란 나무들과 멀리 산의 모습까지 거울처럼 비쳐진다.



다리 위에서 강물을 보니 완벽하게 아름다운 반영이 펼져진다. 흐르는 강물인데 어찌 이리도 고요할 수 있단 말인가.
 비록 파아란 하늘이 담긴 반영은 아니지만 그나름대로 분위기 있는 비 오는 날의 풍경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되어 다리 위에 서 있는데 바로 앞 강물 위를 늑대같이 생긴 시커먼 개가 혼자 강물을 건너간다.

아니 늑대같이 생긴 개가 아니라 거의 늑대다. 인적도 없는 강물을 건너가는 넌 대체 누구니.....?




다리를 건너 숲속으로 들어서니 숲이 깊어갈수록 경치는 점입가경이다.




수령이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숲 전체에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어제 오늘 갑자기 내린 많은 비 때문인지 떠내려온 가지들이 여기저기에 걸려 있고......




자잘한 나뭇가지들은 강물에 밀려올라와 아름드리 나무 아래 그 몸을 맡기었다.

 



강물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 큰 홍수에 뽑혀 넘어졌는지도 모를 커다란 나무들이 여기저기 강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뿌리채 뽑힌 거목들은 한두 그루가 아니다. 갑자기 내린 큰 비가 이곳 톨강을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숲 속 여기저기를 얕게 흐르던 강물은 어느새 합쳐져서 큰 강을 이루어 흘러간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몽골에 와서 나무들이 뿌리채 뽑힐 만큼 큰 홍수가 지나간 흔적을 보게 되다니!

예상치 않게 비가 와서 파란 하늘 아래 톨강이 흐르는 테를지를 볼 수 없다고 불평하던 일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태초의 신비로운 숲을 연상시키는 테를지의 아름다움에 빠져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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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가도 끝없는 초원과 황무지만 계속될 것 같은 몽골. 이런 몽골에도 기암괴석이 펼쳐지고 울창한 수목 사이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천국과 같은 곳이 있다. 바로 울란바타르에서 북동쪽으로 약 60Km 떨어진 항헨티 산기슭에 있는 테를지(Terelji) 국립공원. 1993년, 몽골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테를지는 세계자연유산으로도 등록되어 있는 몽골의 자랑거리이다. 일전에 몽골에 다녀온 분들이 찍은 사진이나 여행 가이드북에서 테를지를 처음 보았을 때 몽골스럽지 않은 의외의 풍경에  "와....몽골에도 이런 곳이 있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눈이 부시도록 파아란 하늘 아래 우거진 침엽수림과 그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은 유럽의 어느 나라인 것 처럼 착각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테를지로 향하는 날은 날씨 운이 없었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몽골이지만 테를지로 향하는 날은 아침부터 궂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이 귀한 몽골 사람에게야 반갑기 그지없는 비이지만 어렵게 찾아간 여행자에게 비는 여행을 힘들게 하는 자연현상이므로 시작부터 힘이 빠지게 하고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테를지를 찍어봐야지.....하는 욕심은 살포시 접어두어야 했다.



누가 이곳을 몽골이라 했던가..... 끝없이 펼쳐지는 전나무 숲을 한참이나 달리던 버스가 숲길에서 느닷없이 멈춘다.
저쪽을 보라는 기사의 손짓을 따라서 올려다보니 저 멀리 산 정상의 바위 모습이 합장하는 스님의 모습이다.
차안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내려 바위를 향하여 절을 하고 사진찍기를 마치니 버스는 다시 빗 속을 덜컹덜컹 달리기 시작한다.


테를지를 향해 한참을 가다보니 길 가에 차량들이 여기저기 정차해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한쪽에는 소방차도 보인다. 
어...무슨 일이지? 교통사고가 난건가?


알고보니 울란바타르 방송(UBS)에서 드라마를 찍으러 온 것이라고 한다. 오....이곳까지 와서 드라마 찍는 현장을 만나다니....

로 지나가면서 언뜻 보니 여배우가 아주 예쁘다. 좀 더 자세히 보게 고개 좀 들어보세요.....


한참을 달려 테를지 국립공원 매표소 앞에 이르니 앞에 이르니 잠시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찌뿌드드......시야는 뿌옇고 어둡기만 하다.
매표소 좌우에는 캠프촌들이 자리잡고 있고 마주 보이는 산세는 국립공원답게 웅장하게 보인다.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이렇게 말을 대여해주고 있다.
말을 타고 테를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손님이 아무도 없다.
몽골의 말들은 아라비아말들에 비해서 체구가 그리 크지 않다. 우리나라 조랑말보다 약간 더 큰 정도.....


테를지의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 비를 머금은 흙들은 붉은 황토빛을 머금고 있는데 그것이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


거친 길을 한참이나 달려온 버스. 드디어 고장이 나 버렸다. 버스 안으로 들어가 고장난 차를 수리하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테를지 국립공원의 중심이 되는 곳에 이르니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가 눈 앞에 펼쳐진다.


몽골 관련 책자나 가이드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거대한 바위, 바로 '거북바위'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쳐들고 있는 머리, 등을 덮은 등딱지, 엎드린 형상이 영락없는 거북의 형상이다.


거북바위만 멋진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세도 빼어나기 이를데 없다. 사진의 가운데를 자세히 보면 하얀 건물이 하나 보이는 데 이곳은 이 주변에 위치한 유일한 화장실이다. 이 화장실은 문이 전혀 없으므로 볼일을 보면서 주변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세계최고 경관(?)의 화장실이다.


웅장한 기암괴석과 쭉쭉 뻗은 침엽수림을 보면 마치 알프스 중턱의 어느 마을같다. 하얀 게르만 없다면......


주차장(?)에 가까운 곳에도 올망졸망하고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어 심심치 않다.


맑은 날씨였다면 파아란 하늘 아래 이런 멋진 풍경들을 담을 수 있었을텐데......정말 아쉽다.
 


그래도 간만에 내린 비로 인해 주변 산의 나무들이 푸르름으로 가득해서 너무나 보기가 좋다.


중생대 화강암지대에 융기된 암산이 오랜 세월 바람과 비에 침식되어 형성된 높은 암벽과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 나지막한 계곡과 푸른 초원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는 테를지의 지명은 이곳에 많이 자라고 있는 식물이름 '테를지'(우리말로 '각시 석남')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웅장한 기암괴석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테를지는 몽골인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몽골 최고의 휴양지이다.
거북바위를 지나 테를지국립공원 안으로 쑥 들아가서 만난 아름다운 톨강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울창한 삼림은 다음편에서 보여드리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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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초원을 호령하던 몽골 왕의 일상은 어떠 했을까?
몽골의 마지막 복드 칸 '자브춘 담바 후탁트 8세'가  거처하던 복드 칸 궁전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마지막 복드 칸이 몽골사회주의 이전까지 왕비와 함께 20년간 머물렀던 복드 칸 궁전은
7채의 라마 사원과 왕의 거처인 겨울궁전으로 구성되었는데
복드 칸과 왕비의 의복이나 침대 같은 화려한 수공예품이나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
진귀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왕궁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겨울궁전은 궁전 안 7채의 라마 사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하얀 서양식 건물로 되어 있다.
이 겨울궁전은 1905년에 러시아 3대 왕 니콜라이가 지어준 것으로 
왕과 왕비의 유품과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몽골에서는 라마 사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화려한 게르를 세워서 그 곳을 왕실로 사용했고
추운 겨울에만 서양식으로 지어진 겨울궁전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입장료의 4배나 되는 10,000투그릭을 지불해야 실내의 전시품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조명이 어두운데다 대부분의 전시품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어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기가 힘든 곳이었다.


 



 게르에서 생활하던 벅드 칸이지만 그의 유품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복드 칸과 왕비 뿐 아니라 대비의 휴식용 침대도 흑단과 비단으로 장식한 화려한 침대이다.




복드 칸의 황금색 델(Deel, 몽골 전통 의상을 델이라고 한다)에는 황룡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고




복드 칸 의복의 바깥 부분에는 양단에 용을 산호와 진주로 정교하게 상감해 넣었다.




왕비의 델과 모자도 정말 아름답다. 전체가 너무나 정교한 수로 뒤덮여있다. 하나를 수놓는데도 몇년이 걸리지 않을까?





은과 진주로 장식한  대비의 델(Deel)과 신발(고탈,Gutul).
몽골의 전통 신발인 고탈은 좌우가 구별되지 않는게 특징이다.
적이 쳐들어왔을 때 신발의 좌우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나?

 



왕비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머리 장식.
몽골에서 패션의 완성은 모자인데 몽골사람들의 머리에 쓴 모자나 장식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다.





복드 칸이 종교 의식 때 입던 의복과 의식에 쓰이는 도구들.
몽골의 왕인 복드 칸은 달라이라마처럼 환생을 하는 자나바자르이기 때문에 신분 자체가 라마승이었다.




복드 칸과 왕비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옥좌. 가운데 태극 문양은 몽골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복드 칸의 보좌 앞에 불전함이 있고 그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지폐가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왕이자 라마교의 우두머리이기도 한 복드 칸을 생불(살아있는 부처)로 생각하는 라마 불교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왕실에서 쓰이던 삼발이 화덕인데 독립 국가 몽골의 중심으로 존재하는 상징물이라고 한다.




한 방에는 이렇게 화려한 복드 칸의 침대가 놓여 있는데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공예품이다.




바로 옆에 놓여진 왕비의 침대 역시 흑단으로 정교하게 아로새겼다.




그 외에 이렇게 중국 풍의 자기들도 눈에 뜨인다.




연회에 쓰이던 대형 접시. 복드 칸의 상징인 용이 그려져 있는 접시이다.




오른쪽은 화병, 왼쪽은 아이락(aikag, (馬乳酒))을 마실 때 쓰는 사발이다.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서 만드는 아이락은 발효되면 보글보글 소리가 나며
기포가 솟아오르며 술이 되는데 맛은 우리나라 막걸리 같이 약간 비릿하고 시금털털한 맛이다.





6~7도의 알코올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아이락을 몽골 사람들은 술로 취급하지도 않을 정도여서
이렇게 세숫대야만한 잔에 담아 두 손으로 들고 마신다.





복드 칸의 소장품 중에슨 이렇게 뮤직 박스도 있다. 뮤직 박스 안에는 유럽 클래식 음악 8~10곡이 내장되어 있다고.......




복드 칸이 선물받은 코끼리.




코끼리의 의상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의식 때 쓰이던 코끼리 의복도 궁전의 장인들이 한땀 한땀 떠서 만들었단다.





복드 칸이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 안장과 게르 모형.
게르 모형이 얼마나 귀여운지.....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팔면 잘 팔릴 것 같다.





벅드 칸이 5세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배라고 한다. 장난감치고는 너무나 정교하고 화려하다.





전시품 중에는 이렇게 진귀한 동물의 박제가 많다. 모두가 복드 칸의 즉위식 때 이웃나라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복드 칸의 상징인 용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양산과 전용 마차도 한쪽에 다소곳이 전시되어 있다. 




방 하나를 다 차지하고 있는 화려한 게르가 눈에 뜨인다. 게르 앞에 진열된 복드 칸의 양산은 전부 공작 깃털로 만들어졌다고.....




김수미가 보았으면 하악대며 좋아했을 듯한 너무 멋진 표범 무늬 게르.
가까이 가서 설명을 읽어보니 게르를 덮은 가죽은 진짜 눈표범(Leopard) 150 마리의 가죽으로 이루어졌단다!
갑자기 게르의 덮개로 일생을 마친 눈표범들이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자연 보호 관념이 없던 옛날의 일이니 용서해야겠다.

복드 칸이 야외로 나갈 때 쓰는 이 게르는 그가 25번째 생일에 선물받은 게르라고 한다. 
 




박물관의 많은 소장품 가운데 필자의 시선을 가장 끈 것은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몽골 세밀화이다.

이슬람 세밀화에 많은 영향을 준 몽골 세밀화는 그 표현법과 정교하기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마치 '윌리를 찾아라'를 보고 있는 듯한 몽골 세밀화를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있노라며 언제 시간이 갔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위의 그림은 '아이락 축제'를 그린 것으로 B. Sharav(1869~1939)의 작품인데

아이락 축제가 벌어지는 주변의 모습을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해서 눈길을 끈다.
그림을 보다 보면 상대적으로 매우 자유분방한 몽골의 성 풍속도도 짐작할 수 있는데
충격적이라고 표현할만한 몽골의 성풍속도에 대해서는
이전에 상세한 세밀화 그림과 함께 소개해 두었으니 아래 링크를 눌러보시기 바라며......

관련 포스트 : 충격적인 성묘사의 몽골 세밀화





B. Sharav가 그린 '겨울궁전' 세밀화를 보면 과거 복드 칸 궁전에는 현재보다 더 많은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오른쪽 맨 앞의 푸른 지붕과 하얀 벽의 건물이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궁전 앞에는 엄청나게 큰 무쇠솥도 전시되어 있어 당시 궁전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수를 짐작할 수 있다.
사회주의로 인한 왕가의 몰락으로 이제 왕과 왕비가 궁전을 거니는 모습은 비록 볼 수 없고 
몽골의 마지막 왕 복드 칸이 거닐던 정원에는 마른 풀만 무성히 자라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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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를 믿는 몽골에는 티베트의 달라이라마처럼 환생을 하는 자나바자르가 있다.
몽골의 복드 칸이기도 했던 자나바자르는 
세속의 삶은 물론 영적인 삶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관장했는데

몽골에는 자나바자르부터 마지막 8대까지 8명의 자나바자르가 있었다.

마지막 자나바자르이자 8대 복드 칸인 '자브춘 담바 후탁트 8세'가 
몽골 사회주의 직전까지 20년간 왕비와 함께 거주했던 곳이 바로 복드 칸 궁전이다.
정교합일을 추구하는 몽골 복드 칸들은 신분 자체가 라마승이었기 때문에
복드칸 궁전은 7채의 라마 사원과 1채의 왕의 거처로 이루어져 있다.





복드 칸 궁전 앞에 이르러 보니 궁전의 정문은 웅장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세개의 열린 문 뒤로 화려한 모습의 문은 평화의 문이라고 하는데
이 문들은 8대 복드 칸의 대관식을 기념하여 1912~ 1919년 사이에 지어진 문으로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어졌다.

단청도 산뜻하고 진한 색감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내부의 소박하고 퇴락한 궁전 건물과 비교하면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
아마도 근래에 와서 단청을 새롭게 입힌 것 같이 보인다.





평화의 문이라 불리우는 세개의 문에 그려진 그림은 복드 칸 시절 몽골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고
제일 가운데 문은 왕과 왕비가 출입하던 문이지만 지금은 세 문 다 사용하지 않아 출입할 수 없다.





안쪽에서 자세히 살펴보아도 궁전의 문은 정말 화려하고 단청도 정교하기 그지없다.






관광객을 비롯해서 모든 방문객은 옆에 위치한 쪽문을 이용해 출입해야 한다.
복드 칸 궁전의 입장료는 2,500 투그릭(한화 2,500원 정도)인데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는다.
내부 촬영은 물론 외부 촬영을 하는데도 반드시 사진 촬영료를 내어야 하는데
카메라 한대 당 사진 촬영료는 10,000투그릭, 비디오 촬영은 15,000투그릭을 지불해야 한다.
궁전 입장료의 4배에 달하는 사진 촬영료를 내어야 하니 배 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넓은 곳을 관람하며 몰래 카메라를 찍을 수도 없는 일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10,000투그릭을 지불해야 했다.
박물관에서는 사진 촬영료 뿐 아니라 궁전 안내 브로슈어조차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필자는 몽골어와 영어로 된 보잘 것 없는 브로슈어를 5달러나 주고 구입해야했다.





복드 칸 궁전은 궁전이라 하기는 규모가 다소 작아 보인다.
몽골에서는 라마 사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화려한 게르를 세워서 그 곳을 왕실로 사용했고
추운 겨울에만 서양식으로 지어진 겨울궁전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궁전은 왕의 거처와 7채의 라마 사원으로 구성되었는데
복드 칸의 유품이나 진귀한 수공예품, 각종 왕실 용품을 볼 수 있도록 왕궁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7채의 사원 건물 중 남북으로 자리잡은 사원 건물은 2층, 혹은 3층으로 되어 있고

동서로 자리잡은 부속 건물들은 1층으로 되어 있는게 특징인데 안에는 건물 안에는 불상과 탱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라마 사원 오른쪽에 위치한 하얀 서양식 건물은 복드 칸이 왕비와 함께 살던 겨울궁전이다.
1905년에 러시아 3대 왕 니콜라이가 지어준 이 서양식 목조 건물에는 복드 칸과 왕비의 유품을 비롯하여 
8대 복드 칸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웃나라 왕들이 선물한 희귀한 동물의 박제 등 진귀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겨울궁전 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 상세히 소개해드릴까 한다.





제일 안쪽의 3층 건물은 사원의 주가 되는 곳이라(메인 템플) 지붕이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궁전 문을 지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은 Maharaja(위대한 왕) 사원이다.  





사원은 1893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퇴락한 단청으로 인하여 연륜이 더 오래 된 건물같이 보인다.





첫번째 건물 문을 통과해서 나가니 자그마한 마당과 함께 Naidan 사원이 나타난다.





이 건물은 아랫층 기와 지붕에는 전혀 채색을이 되어 있지 않고 2층 누각 지붕에만 진한 초록색으로 채색이 되어 있다.
무슨 뜻이 있어서 누각 지붕에만 채색을 한건지 아니면 현재 복원하는 과정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동서로 배치된 부속 건물 역시 지붕은 전혀 채색이 되어 있지 않고 단청도 빛 바래인 채 그대로인데





어떤 부속 건물은 촌스러울 만큼 진한 색으로 단청이 되어 있어서 건물들 간에 통일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아마도 단계적으로 복원을 하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생각해 보지만 신빙성은 없다.




동서로 배치된 부속 사원은 각가 탱화의 사원, 아플리케 사원, 장서의 사원, 만신전 등인데
건물의 내부는 의외로 많이 화려하고 탱화와 불상을 비롯하여 티베트 불교의 상징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원과 사원 사이의 안 마당에는 여기저기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마치 관리를 안 하고 버려진 폐허같은 느낌도 든다.
왜 잔디를 깎지 않지? 이런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몽골에 있는 동안 잔디를 깎아둔 건물은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다.
몽골에서 목초는 짐승의 귀한 먹이이니 잔디를 깎는다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제일 안쪽 건물은 궁전 내부에서 가장 화려하다. 
주 사원인지라 건물은 3층으로 지어 위압감을 더 해주고 건물 지붕도 황금색으로 단청이 되어 있다.





지붕만 황금색으로 채색되었나 했더니 가까이 가서 보니 세밀하게 조각한 문양 마다 황금이 입혀져 있다.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느껴지는 단청과 퇴락한 황금빛은 서로 어우러져 묘하고도 신비한 느낌마져 가져다 준다.
"왕이 거처했다는 사원이라더니.....뭐 이리 초라하나......단청도 색이 다 바래고 관리를 전혀 안 하고 있구만.....쯧쯔쯔......."
하면서 비난하는 사람들도 보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산뜻하게 채색하여 화려하기 그지없는 궁전 정문 보다는 
퇴락하고 희미해진 단청이 더욱 기품있고 아름다워 보인다.






내부 역시 외부와 마찬가지로 붉은색과 황금색이 조화를 잘 이루고 전체적으로 매우 화려하다.





방과 방을 구별하는 문도 화려하기 그지없고 천정도 화려한 무늬로 꾸며져 있다.





한쪽에 놓여진 화려한 흑단의 가구에는 몽골 사람들이 생각하는 극락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궁전이라지만 라마 사원을 중심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내부의 전시품들은 라마 불교의 특징들이 잘 나타나있다.  


 



궁전을 다 돌아보고 시간이 허락하면 출입문 옆 조그만 기념품 가게에 들려봐도 되겠지만
특별한 기념품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몽골의 마지막 복드 칸의 고색창연한 라마 사원의 아름다움을 손에서 놓치 못하고 한참을 방황하다
왕과 왕비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는 겨울궁전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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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나라 몽골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는 흔히 '라마교'라고 부르는 티벳 불교이다.
인구의 90%가 불교 신자이거나 불교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가 몽골이다.

몽골인들이 의식적으로 불교를 믿게 된 것은 13세기 부터인데
16세기에 이르러 티베트 불교는 몽골 땅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1921년에 몽골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자
각가지 방법으로 종교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졌는데

1937~1939년 사이에는 거의 모든 불교 사원이 폐쇄되거나 박물관으로 바뀌는 등 수난을 겪었다.
이 기간 동안에 20,300명에 이르던 몽골의 승려들은 모두 구금, 또는 처형되었고
20세기 초 750개에 이르던 불교 사원은 대부분 다 철폐되어야 했다.

1989년 이후 찾아온 민주화로 인해 몽돌에는 전통 문화 복원 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고
사회주의 시절에 탄압 받았던 전통 종교와 신앙도 제 자리를 찾게 되는데
티베트 불교는 몽골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몽골 사람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그 위상을 굳히게 되었다.
이후 사회주의 정권에 의해 망가졌던 사원은 다시 복원이 되고 환속했던 승려들은 사원으로 돌아왔으며
종교 박해 속에 신앙을 버렸던 신자들은 다시 사원을 찾아 마니차를 돌리고 오체투지를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몽골 불교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간단사(Gandan)'는 '몽골의 심장'이라고 불리우는 사원이다.





입구에는 이렇게 대형 마니차가 있어 불교 신자들은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마니차를 한번씩 돌리고 경내로 들어간다.



몽골, 만주, 티베트 건축 양식이 다 혼합된 간단사원 대법당은 의외로 소박하고 아담하다.
지붕의 색깔이 황금색인 것도 상당히 눈에 뜨이는데 지붕 위에도 대형 마니차가 코너 마다 자리잡고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대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예불을 하는 순례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대법당과 부속건물을 한바퀴 돌면서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유리 진열장 속에 들어 있는 불상 앞에도 오체투지를 위한 판이 여러개 마련되어 있었지만
날이 더워서 그런지 사원 구경을 다하고 돌아나올 때까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쁜 델을 잘 차려입고 마니차를 돌리는 할머니를 따라 대법당 순례길(코라, Kora)을 뒤따라가 보았다.





대법당을 빙 둘러가며 마니차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순례자들은 모두가 마니차를 한번씩 돌리며 지나간다. 뱅글뱅글.......





마니차 돌리기는 오체투지와 함께 티베트인의 대표적인 수행 중의 하나이다.



불교경전을 넣어 돌릴 수 있게 만든 통인 마니차는 한번 돌릴 때 마다 안에 들어 있는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경전을 읽는 대신에 그저 슥~ 한번 돌리기만 하면 읽은걸로 쳐 준다니......
공부하는 아이들도 책 안에 있는 내용을 외우는 대신에 한번 돌리기만 하면
머리 속에 다 들어오거나 읽은걸로 쳐준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대법당의 중앙 부분에 이르니 이렇게 자그마한 표식이 있고 사람의 손이 닿는 곳은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하다.
짐작컨대 아마도 이 부분이 불상이 있는 곳인 것 같다.




 마니차 골목의 꺾어지는 부분에 오색 타르쵸를 두른 신성한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기둥에 머리를 대고 잠시 뭐라고 기도하더니




기둥에다 몽골의 지폐인 투그릭을 꽂아 놓는다. 꽂힌 돈을 슬그머니 빼가는 사람은 없을테지?




'위대하고 성스러운'이란 뜻을 지닌 간단(Gandan)사원의 의 유래는 울란바타르와 그 역사를 같이 하고 있다.
원래 울란바타르의 이름은 ‘이흐 후레’라고 했는데 이것은 '큰 울타리'라는 뜻으로
간단사의 담장을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 살기 시작하자 명명된 이름이다.




간단사는 17세기 제1대 복드 칸 잔바자르(G. Zanbazar)에 의하여 건립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시기는 분명치 않다. 
이후 100여 년에 걸쳐 간단사는 아홉 개의 사원과 도서관 그리고 5,000 승려의 숙소를 거느릴 정도로 성장했는데 .
1937~1939
년에 사회주의자들이 몽골 종교계를 억압하게 되자 대부분의 사원은 철폐되고 승려들은 투옥되거나 속화되었다.





1980년대 초반에 간단사는 종교 활동을 허가 받은 최고령 150명의 승려들로 사원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는데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더불어 몽골도 독립하게 되자 사원들은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고 
간단사도 불교부흥을 위래 노력한 결과 예전의 위상을 다시 찾게 되었다.

오늘날 승려들의 삼분의 일은 사회주의 전 세대이며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25세 이하의 젊은 승려들이라고 한다.
현재 울란바타르에 있는 라마승의 총인원이 400명 정도라고 하는데 간단사원에만 300명 정도의 승려가 있다고 하니
간단사원은 울란바타르 신앙의 구심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법당을 한 바퀴 돈 사람들은 간단사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관음대불전으로 향한다.





1996년에 복원되었다는 관음대불전은 티베트 사원보다는 훨씬 소박하고 간결해 보인다.
간단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관음대불전을 찾는 이유는 법당 안에 엄청나게 큰 불상인 개안관음상이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전에도 역시 대형 마니차를 돌리고 들어가는데
법당 내부도 중앙에 개안관음상이 있고 불상 주위를 마니차를 돌리며 한바퀴 도는 구조로 되어 있다.





관음대불전 안에 들어가니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내부 촬영을 하려면 5,000투그릭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 한단다.
우리 돈 5,000원 정도의 사진 촬영비가 약간 아깝게 느껴져서 불상 뒤편으로 돌아가 관리인 모르게 살짝 살짝 몇 컷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전광석화처럼 나타난 관리인 아저씨.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진을 찍으려면 당장 돈을 내란다.
하는 수 없이 돈을 지불하고 나니 도리어 마음이 편안해져서 마음 먹고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다.

몽골에서는 박물관이든, 사원이든 내부 촬영을 하려면 반드시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이 특징인데
심지어 복드 칸 궁전 같은 곳에서는 실외 사진을 찍는데도 돈을 지불해야 했었다.





돈을 지불했으니 플래쉬를 터뜨려 찍든 몇장을 찍든 아무 상관이 없단다.
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 26m짜리 개안관음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면서 마음껏 셔터를 눌러보았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는 이 금불 입상은 불상에 입혀진 금의 무게만도 150kg에 이른다니 놀랄 일이다.



 









개안관음상 주변을 둘러가며 천정까지 질서있게 들어찬 진열장 안에는
이같이 손바닥 만한 불상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관음대불전을 찾은 순례자들은 불상을 한바퀴 돌며 마니차를 돌린 후 개안관음상 앞에서 예불을 한다.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리 몽골의 불전함은 투명창으로 되어 있어 쌓인 불전이 한눈에 다 보이는게 특징이다.



 

몽골 신앙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일 뿐 아니라 울란바타르 사람들의 생활의 구심점이 되는 장소,
몽골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관광 명소, 울란바타르의 간단대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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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 인근 '투브 아이막'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투브 적십자 여성 지도자와 자원 봉사자들은 
한국에서 찾아간 봉사대원들을 형제와 같이 반가운 마음으로 맞아주었다.

투브  아이막의 주민 현황과 적십자사 활동 현황에 대한 브리핑이 있은 후에는
중학생 두명이 마두금이라고 알려져 있는 모린호르를 아주 멋진 솜씨로 연주해 주었고
배, 가슴, 머리까지 사용하여 발성하는 몽골 특유의 노래 '흐미'도 들려 주었다.
이 학생들은 우리나라 SBS 프로그램 스타킹에도 출연한 몽골 전통음악의 유망주들이라고 하는데
학생들의 모린호르 연주 동영상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확인하시기 바라며....

한국에서 가져온 우정의 선물 상자를 전달과 양국 대원들과의 친교 시간 후 발걸음을 돌리려고 하니
투브 적십자 지도자의 절친인 인근 중학교 학교장이 한국 봉사대원들을 초청했다고 하며 방문하기를 강권한다.
학교 방문으로 인해 울란바타르로 돌아가는 일정이 다소 늦추어질 우려는 있었지만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인근의 중학교로 향했다.




중학교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니 주변 초원의 낮은 구릉에는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학교 옆에도 벽돌로 지어진 연립 주택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학교의 사정도 일반 주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담장도 없이 을씨년스럽게 서있었다.




ㅁ자로 지어진 학교는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부분도 있지만 쌓은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엉성한 모습이었는데
몽골 사람들은 외부 치장하는 부분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며 
보온과 단열을 위해 벽의 두께는 거의 1m 정도로 만들어 겨울 추위에 대비한다고 한다.




세월이 흔적이 느껴지는 학교 현관 앞에 서니 교패와 학교의 현판이 멀리서 찾아온 여행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곧이어 적십자 지도자의 친구인 학교장이 나와서 일행을 반겨주었는데 역시 4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사회주의 교육을 받은 몽골에서는 각 기관에서 여성 우두머리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몽골 또한 부모들의 교육열이 대단히 높은 편인데
울란바타르에선 물론이고 유목민들 조차도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고 애쓴다.
만약 아이들이 많아 모두 대학 교육을 시킬 형편이 못 되면 맏딸만 대학에 보낸다고 하는데
이는 딸만이라도 힘든 유목민의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방학 중인지라 학교는 직원들만 근무하고 학생들은 하나도 없이 너무나 조용하기만 했다.





학교 복도는 어떤 부분은 돌이나 시멘트로, 어떤 부분은 나무로 되어 있는데




학교의 오랜 연륜을 말하는 듯 나무 복도도 많이 낡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교장의 설명을 들으니 몽골에는 초등학교가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는 없고 초등학교 과정이 포함된 중학교부터 학교 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초등 과정 6년과 중등 과정 2년이 함께 들어있는 몽골의 중학교 과정은 8년이 되는데 
7세 때 중학교에 입학해서 중학교 8년, 고등학교 3년 , 대학교 4년의 과정을 거치게 되니 
대학 졸업 때까지의 기간은 우리나라보다 단축되는 셈이다.

공산주의 체제의 영향을 받은 몽골에서는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요원한 고등학교 의무교육이 몽골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사설 유치원도 있지만 유치원도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수업료는 전혀 받지 않는다.
몽골 유치원 관련 포스트 : 너무나 귀여운 몽골 유치원 아이들





복도의 벽에는 우리나라처럼 학생들의 작품이나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 간행물들이 붙어 있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었고....




시원하고 활달한 필치로 쓰인 음표와 글씨들도 한눈에 확 들어왔다.




환경 게시물에는 아이들이 삐뚤빼뚤 써놓은 낙서가 여기저기 눈에 뜨였는데




손이 근질근질한 아이는 어느 나라에나 있기 마련인가 보다.




복도 한쪽 벽에는 이렇게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했는데
초원에 뛰어노는 대형 말 그림을 보니  보니 "역시 몽골!"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교실로 들어가 보았더니 세상에! 교실이 온통 파란색 일색이다.
벽도 파랑, 천정도 파랑, 책상과 걸상도 온통 파랑.....역시 파란 하늘의 나라 몽골이다.




교실 넓이는 우리나라 교실 반 정도였는데 아이들의 책걸상 또한 너무나 작고 낮았다.
그 또한 얼마나 많은 세월이 이 책걸상을 거쳐 갔는지 낡아빠질대로 낡은 모습이었다.




컴퓨터, TV, 사물함....등 우리나라엔 보편적인 교실 집기들은 전혀 없고 달랑 칠판 하나 뿐인데
칠판에 쓰인 글씨를 자세히 보니 <금강 칠판> !
한국 자동차, 한국 물건이 몽골 전체를 평정하고 있다지만 이렇게 학교 교실에서 한국 물건을 만나니 그 또한 반가운 일이었다.




교실 뒤 환경판에는 알쏭달쏭한 몽골 고유 문자가 적혀 있었는데 몽골 고유 문자의 가장 큰 특징은 세로쓰기이다.




오늘날 몽골에서는 몽골 전통 문자와 키릴 문자(Cyrillic alphabet)를 병행해서 쓰는데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몽골인지라 일상 생활 전반에서는 전통 문자 보다는 키릴 문자가 널리 쓰이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보니 칸마다 문이 없었고 작은 변기와 보통 변기가 바로 옆에 함께 있는 것이 눈에 뜨였는데
이는 초등에서 중등 과정이 한 학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인 듯....

학교장의 인도를 받아 도서실도 둘러보았는데 방학 중인데도 사서 교사가 나와 있었다.





열람실 없이 교실 반칸 정도인 도서실에는 책장 몇개 정도의 장서가 전부였고




도서실 가운데 책상 위에는 학생들의 교과서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설명을 들어본 즉,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학교에 책을 맡겨 두고 가는데 이 책은 다음 후배들에게 물려주게 된다고 한다.




몽골의 여름 방학은 6, 7, 8월 세달이나 되는데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기숙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도와 양을 치거나 말을 훈련시키거나 하며 자신들의 몫을 훌륭하게 해 낸다.
새학기는 서구와 마찬가지로 9월에 시작되며 9월 1일이면 모든 학교가 입학식을 거행한다고.....




교실과 도서실 등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건물 내에 위치한 체육관으로 향했다.
농구대, 탁구대, 평균대, 늑목 등 운동기구가 여기저기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체육관에서 내려다 보니 우리나라 운동장 정도의 너른 공간은 보이지 않았고 농구장 하나가 갖추어져 있을 뿐이었다.
학교만 나서면 다 초원이라 언제든지 달리고 뛸 수 있는 환경이라 운동장이 필요없었던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안내를 받아 둘러 본 학교의 교육 환경은 많이 열악해 보였고
컴퓨터는 물론 참고 도서도 너무 부족하여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부모는 어렵게 살아도 아이들만은 이런 환경을 벗어나 살기를 원하는 
몽골 가정의 높은 교육열로 보아 몽골의 앞날은 어둡지 않다는 것이 피부로 전해져 왔다.
비록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있더라도 앞으로 몽골을 한걸음 앞으로 인도할 귀한 인재들이
이 학교에서도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보며 튜브 중학교의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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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그의 본명은 테무친이다.
칭기즈칸의 어머니 후엘룬 우진은 그의 아버지 이수게이 바타르가 약탈해 온 여자였다.
후엘룬은 남편과 함께 길을 나섰다가
이수게이의 형제들에게 발각되어 적장인 이수게이의 부인이 된다.

후엘룬은 잡혀와서 10 달 만에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를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수게이는 고민 끝에 아이를 친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이름을 테무친이라 하였다.
자신이 타타르족의 테무친 우게의 목을 벤 날에 태어났으므로 적장의 이름을 아이에게 붙여준 것이다.

뒤에 칸(Khan,왕이란 뜻)으로 추대된 그는 세계 최초로 유라시아를 통일한 대제국을 건설하여
몽골족의 기상을 세계에 떨치고 1,227 년에 세상을 떠났다.





칭기즈칸.....몽골의 역사는 그 이름과 함께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 몽골족 가운데는 몽골계 외에도 투르크나 탕구드계 등 여러 언어 집단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13 세기 초, 테무친이 칭기즈칸에 추대되고 몽골 제국을 창건하면서 '칭기즈칸'과 '몽골'이 갖는 카리스마로 인해
다른 소수 부족의 언어와 의식은 모두 철저히 몽골에 동화되고 만다.
이로써 오늘날 몽골족 대부분이 칭기즈칸을 자신들의 시조로 생각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비행기를 타고 몽골 울란바타르에 내리니 칭기즈칸 공항이라는 붉은 네온이 여행자를 맞아 준다.




공항에 한 벽면에는 어김없이 칭기즈칸의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는 곳마다 관광 기념품점에는 칭기즈칸을 소재로 한 상품들이 진열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칭기즈칸 열쇠 고리는 기본이고.....

화폐에도 색깔과 액면가만 다르지 칭기즈칸의 초상 일색이다.

(10,000 투그릭은 우리나라 화폐 가치로 10,000원 정도이다.

500 투그릭에도 칭기즈칸...1,000 투그릭....역시 칭기즈칸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상점이나 음식점의 가장 중심이 되는 벽면에도 이렇게 칭기즈칸의 초상이 붙어 있고





몽골 게르의 북쪽인 신성구역에는 어김없이 칭기즈칸의 초상화나 





칭기즈칸을 새긴 카페트가 떡하니 게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본다.





울란바타르의 중심인 수흐바토르 광장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중심에도





칭기즈칸의 동상이 위엄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울란바타르 남쪽 산등성이에 새겨진 칭기즈칸의 대형 형상은 몽골 사람들의 자부심을 더욱 고취시켜주는데
이 형상은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한지 800년 되는 지난 2006년에 만들어졌다.




몽골 사람들은 최고라는 의미가 없는 곳에는 절대로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칭기즈칸 공항, 칭기즈칸 호텔, 칭기즈칸 보드카.....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것이 아니면 절대로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나 사업을 번창시키기 위해서 칭기즈칸이란 명칭을 함부러 사용하는 사람은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테러 당할 것도 감수해야 한다고......


칭기즈칸이 죽은지 780 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몽골에는 칭기즈칸이 살아 있음을 본다.
몽골인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는 살아있는 칭기즈칸은 
각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몽골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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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매사냥법이 있었다고 하는데 몽골에는 독수리를 이용한 사냥법이 있다.
독수리는 사람보다 3배 이상의 시력을 가지고 있어서
수백미터 상공을 나르면서도 작은 목표물을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보다 몸집이 훨씬 큰 동물도 사냥할 수 있다고 한다.






몽골에서 말보다도 더 귀하게 여김받는 독수리는 4~5년 동안 훈련시킨 다음 사냥에 이용한다.

몽골인들은 이렇게 귀하게 훈련시킨 독수리를 3년 정도 사냥에 이용한 다음에는 살던 초원으로 날려 보넨다고 하는데
이는 자연에서 살던 독수리를 오랫동안 잡아 놓고 있으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몽골 사람들은 어깨에 독수리를 올려 놓으면 1년 내내 행운이 함께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관광지에서는 관광객에게 돈을 받고 독수리를 관광객의 어깨에 올려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요금은 1달러나 1,000투그릭을 받는데 기분이 좋으면 1달러를 받고 여러 사람의 어깨에 올려주기도 한다.





관광객들은 이 아저씨가 낀 단단한 토시를 팔에 착용하고 독수리를 팔이나 어깨에 올려놓는 체험을 하게 된다.





독수리가 팔이나 어깨 위에서 발톱을 세우거나 날개를 벌리면 담이 센 남자들도 어깨를 움츠리고 겁에 질리곤 하는데

가끔 가다 독수리가 머리로 푸드덕거리며 기어 오르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모두가 도망가곤 한다.

독수리가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푸드덕거릴 때 겁에 질려 도망가는 재미있는 모습들을 많이 담았지만
그 모습을 공개치 못하는게 정말 아쉽기만 하다.

독수리를 어깨에 올려서 행운이 찾아온다는건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여행지에서 이런 체험은 적은 돈 들여서 할 수 있는 즐거운 경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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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마지막 왕 '벅드 칸 겨울 궁전 박물관'에는 몽골인들의 다양한 풍습을 그린 세밀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아이락 축제'라는 그림에서는 몽골인들의 음주 문화가 세밀한 필치로 잘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축이 공간 가득히 늘어나기를 기원하는 제전인 '아이락 축제'는 
그 해 처음으로 말 젖을 짠 날이나 그 말 젖을 발효시켜 아이락을 만든 날 거행하는 축제이다.
아이락 축제를 그린 세밀화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세숫대야보다 큰 술잔에 아이락을 채워서
마시다 토하고 또 마시거나 술 마시는 사람의 양 귀를 잡고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는 등 아이락 축제의 진기한 음주 풍습이 그림에 상세히 나타나 있다.



세밀화에 나타난 것 처럼 술 마실 때 사용된 엄청나게 큰 술잔은 실제로 몽골인들이 술 마실 때 사용했던 잔으로
'벅드칸 겨울 궁전 박물관'에 전시된 아이락 술잔은 크기가 거의 세숫대야 만큼이나 크다.



몽골의 대표적인 술, '아이락'은 '마유주(馬乳酒)'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서 만드는 아이락은 발효되면 보글보글 소리가 나며 기포가 솟아오르며 술이 된다.



우리나라 막걸리 같이 약간 비릿하고 시금털털한 맛을 가진 아이락은 알코올 성분이 그다지 높지 않아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마시는데
몽골 사람들은 6~7도의 알코올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아이락은 술로 취급하지도 않을 정도이다.



그래서 아이락은 식사 대용으로도 쓰이는 몽골 최고의 영양식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여름에는 한사람이 매일 3~5 리터의 아이락을 마시기도 하고 허약한 아이나 중환자에게는 영양식처럼 아이락을 마시게 하기도 한다. 
몽골에서 아이락은 행복을 상징하며 흰색의 종교적 의미 때문에 축제나 기념일에는 꼭 사용되는 대표적인 전통술이다.



음주는 몽골의 국가적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칭기즈 칸 시대 이후부터 40년전까지는 음주가 엄격히 통제되었으나 
1959년 처음으로 보드카를 만드는 증류소가 세워졌고 '절제된 소비'를 권장하는 홍보운동이 시작되었다.
몽골의 젊은이들에게 음주의 이점(?)을 알리기 시작한 결과 술의 소비와 함께 국가 재원 또한 급증하였다.
몽골인은 술과 함께 산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통계에 따르면 몽골인은 남녀 구분없이 연간 26리터 이상의 보드카를 마신다고 한다.


 

알코올 농도 39도가 넘는 독주 보드카를 물 마시듯 마셔대는 몽골인은 늘 술에 취해 있기가 일쑤이다.
기뻐도 술, 슬퍼도 술, 기분 나빠도 술....집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 직장 내에서도 술을 마신다.

몽골인들은 손님을 맞이할 때도 술로 맞이하기 때문에 공항에서부터 벌어진 술 파티가 끝이 날 줄 모르고
손님이 돌아 가거나 먼 길을 떠날 때에도 어김없이 술판을 벌여야 그 사람을 놓아보내준다.
떠나는 손님에게도 그의 안전을 빌기 위해 술 마시기 전에 동서남북을 향해 고수레를 한 후 술잔을 주고 받는데
여행에 앞서 마시는 세잔의 술은 행운과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기 때문에 반드시 의무적으로 세잔은 마셔야 떠날 수 있다.
그래서 몽골을 사업이나 방문 목적으로 들리는 사람들은 몽골인들의 매일 계속되는 술 대접으로 인해 취생몽사하다 돌아오기가 다반사이다.



몽골에서 술을 마실 때에는 만취하는 것이 예의인데 취하지 않으면 술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여 계속 술을 먹인다.
특히 남의 대접을 받았을 때에는 주인의 호의에 답하는 듯으로 만취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취해서 저지르게 되는 주사에 대해서도 아주 관대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격이 급한 몽골인들은 술마시다 조금만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
금방 주먹질과 욕설이 난무하며 치고 받고....난투극이 벌어지는데 술이 다 깨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인사를 주고 받는다.

이 만취하는 풍습은 칭기즈칸 시대로 올라가는데 다른 종족의 집을 방문한 사람이 취한 척하고 있다가 주인을 살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남의 집을 방문해서 술을 마실 때에는 손님이 주인을 해치지 않을테니 안심하라는 표시로 만취하는 습관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몽골에서 '만취는 영원한 우정'이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오른쪽 목을 튕기기도 하는데 이는 '완전 필름이 끊어지도록 마셨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어느 과학적인 연구결과에 의하면 몽골인들은 알콜을 분해하는 효소가 모자라 쉽게 술에 취하는 것으로 보고됐다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몽골인들은 음주에 의해 쉽게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몽골의 모든 범죄의 80%이 술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몽골의 매월 1일은 국가에서 정한 '금주일'이다.
이날은 몽골의 모든 술집은 영업을 하지 않고 다 문을 닫아야 한다.
국민들의 과다한 음주로 인해 부작용이 많이 일어나니 한달 중에 하루 만이라도 술을 마시지 말자고 정해 놓은 날이란다.
금주일에 본 몽골 시내의 유명한 Pub Bar 의 풍경은 실외 의자까지 모두 홀 안에 쌓아두어 마치 폐업한 가게같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나 술을 좋아하는 몽골인들이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고 견딜 수가 있을까....
이와 같이 앞에서 단속반이 오는지 웨이터를 문 앞에 세워두고 몰래 몰래 지하에서 영업을 하는 술집도 있다는 사실....



강남의 어느 바처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어느 Lounge Bar 안에는 금주일에도 몰래 한잔 하러 오는 젊은이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몽골의 젊은이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처음에는 맥주로 시작하지만.....
맥주로 인해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알코올 함유량이 39도나 되는 보드카병을 쉴 새 없이 비우고 폭탄주도 서스럼없이 들이킨다.



몽골 젊은이들이 최후에 마시는 술은 항상 칭기즈칸 보드카이다.
엄청나게 비싼 가격의 술이지만 몽골 사람들은 칭기즈칸 보드카를 비워야 끝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오늘도 몽골 사람들은 술잔을 부딪히며 크게 외친다.
"토토이(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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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마지막 칸인 벅드 칸의 겨울 궁전 박물관에는
벅드 칸 왕과 왕비가 실제로 사용했던 많은 유품들이 남아 있는데
각국 사신들로부터 선물받은 희귀 동물의 박제, 보석, 도자기 등의 진귀한 유물들이 많아서 볼거리를 준다.
그중에서도 전시실 하나를 다 차지하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세밀화는 많은 유물로 인해 스쳐지나가기 쉬운데
이 세밀화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몽골인들의 주거 방법, 복식, 생활상들을 그대로 짐작할 수 있다.


몽골 세밀화는 이라크에서 발달한 모술파 세밀화의 영향을 받은 지극히 섬세한 필치가 인상적인데
이 박물관에는 B. Sharav (1869~1939 )라는 작가의 작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아이락 축제', '여름 궁전', '겨울 궁전'같은 전시 작품의 깨알 같이 그려놓은 세밀화에는
궁전에서의 외국 사신 접견, 선물 행렬, 병사들의 체력 단련, 싸움에 출정하는 남자들을 배웅하는 여자들,
라마 사원에서의 예불, 라마승들의 토론,  게르 짓기, 말젖짜기, 낙타젖짜기, 소들의 싸움, 말똥으로 고기 굽기,
양털 고르기, 가축 잡기, 말똥 줍기, 아이락 축제의 산해진미,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
토할 때까지 술 마시기, 아동 음주, 술 마신 후의 폭력적인 행동, 여성들간의 머리채를 쥔 싸움.....등
당시 몽골인들의 생활 모습이 너무나 세밀하고도 해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깜짝 놀랄 만큼 충격적인 성 묘사가 그림 군데 군데에 숨겨져 있는데
간통녀로 짐작되는 여자를 재판하는 무당,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지는 여자들, 
성행위중인 남녀를 죽이려고 다가가는 남자,  음주 후의 변태 행동, 성기 노출, 남녀간 성행위,
호모 섹스, 레즈비언, 성도착증을 비롯하여 눈을 의심케 하는 가학적인 성기 단련 장면까지.....
19금으로 분류할 수 밖에 없는 묘사가 군데 군데에 숨어 있어 보는 이들의 얼굴을 붉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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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과 미소가 저절로 나오는 몽골 세밀화의 해학의 세계로 여러분들을 살짝 초대하오니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 바라시길 바라며......^^

 

아이락(마유주) 축제 / B. Sharav ( 1869~1939 )





















여름 궁전 / B. Sharav ( 1869~1939 )




겨울 궁전 / B. Sharav (1869~1939 )












(벅드칸 궁전의 입장료는 2,500 투그릭인데 사진 촬영비는 입장료의 4 배가 되는 10,000 투그릭이다.
아래의 사진들은 엄청나게 비싼 사진 촬영비를 지불하고 찍은 사진들이지만
복원품인 '아이락 축제'그림을 제외하고는 거의 100 년 정도 된 그림이라 그림이 많이 탈색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리 속에 든 그림을 흐린 조명하에서 찍었기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흔들린 것을 널리 이해 하시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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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 서쪽에 위치한 바얀골 지역(Bayangol District) 적십자 지부를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말박물관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차를 돌려 말 박물관으로 향한다.


차에서 내려 앞을 보니 엄청나게 큰 말동상이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건물 바로 아래 선 사람과 비교해보면 말 동상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으실 것이다.


어마어마한 말 동상이 방문자의 시선을 한몸에 모으는 이 말 박물관은 2009년 5월에 개관했는데
50명의 독일, 중국의 기술자들이 힘을 합친 이 공사에는 무려 250톤의 철이 소요되었다고...


세계 제일의 크기를 자랑하는 말 동상의 높이는 무려 40m 인데 말의 높이만 해도 30m에 달한다고 한다.


동상이 서 있는 건물은 완공되었으나 아직 기반 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주변은 황량하기 그지없고.....


거대한 정문과 진입로도 아직 공사중이라 주변 경관은 다소 어수선하기까지 하다.


으리으리한 로비로 들어서니 엄청난 크기의 봉 위에 채찍 같은 것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칭기즈칸이 15세 때에 황금 채찍을 찾은 장소에 칭기즈칸과 그의 말 동상을 세웠다고 하는데 봉 위에 놓인 채찍은 아마 재현품인 듯.....


말에 대한 다른 전시관이 있나 싶어 물어보니 어이없게도 1층에 있는 전시품은 이게 전부라고 한다.
말 박물관이라서 여러 종류의 말이나 말 관련 유적 및 전시품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엄청난 크기의 말 동상이 전부라고 하니 약간은 실망이 되는 부분이었다.


이 말 박물관의 관람 포인트는 바로 '말 속으로 들어가 본다'는 것이다.
아랫층 로비에서  말 꼬리를 통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말의 뱃속으로 들어간 후 
말 뱃속에 있는 영상실에서 3분 정도의 말 박물관 건립 과정에 대한 영상물을 감상하고 다시 계단을 통해 
말머리로 올라가게 되면 말머리 끝 부분에 아주 협소하긴 하지만 전망대가 위치해 있어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사진에서 말 갈기 부분에 사람 세명이 서 있는 것을 점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말 동상과 그 크기가 비교된다.


말 뱃속에 있는 영상실은 한 십여평 규모로 47인치 정도의 TV가 낮은 위치에 앉아 있어서
의자에 앉으면 뒤의 사람은 화면이 보이지도 않는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스하고 바로 전망대로 올라간다.
 


영상실을 나와 계단을 통해 전망대로 올라가 뒤로 돌아보니 헉....위엄에 가득 찬 칭기즈칸의 얼굴이 노려보고 있다.


얼마나 크기가 큰지 아무리 뒤로 물러서도 카메라에 반도 채 잡히지 않는다.
이런 엄청난 크기의 동상을 바로 앞에서 찍는건 광각 렌즈로도 안 되고 어안 렌즈라야 제대로 될까....?


할수 없이 부분 부분 닥치는 대로 카메라에 남아 보았으니 보시는 분들이 머리 속에서 이미지를 조합하시기 부탁드린다.


칭기즈칸의 왼쪽 팔뚝 아래에 늘어선 게르들이 이채롭다.


앞으로 게르 200여채를 주위에 더 세워 이곳을 관광의 기지로 삼을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도 주변이 많이 어설픈지라 잘 정비된 관광지로 자리잡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 하다.


칭기즈칸 말 박물관.....전시품은 없고 겉모습만 웅장한 박물관이긴 하지만
세계 최고의 말 동상이 있는 박물관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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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에서 머무는 동안 밤의 몽골을 느껴보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보았는데
다운타운 한가운데 엄청나게 큰 게르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몽골에서는 이와 같은 전통식 이동주택인 게르가 시내 한복판에도 많이 자리잡고 있는데
울란바타르 시민의 거의 반 정도가 게르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이전 포스트  아파트와 섞여 있는 몽골 천막집 게르 에서 자세히 말씀드린바 있다.



가까이 가보니 이 엄청난 규모의 게르는 다름아닌 갤러리였다.


'Welcome to our Gallery' 라고 쓰여진 게르의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 보았다.


아.....! 소박하기 그지없는 외관에 비해 내부는 엄청나게 넓었고 분위기 또한 아주 아늑했다.


넓기만 한게 아니라 유니(uni,나무기둥 윗부분)가 2중으로 되어 있고
보통은 2개 뿐인 게르의 중심 기둥 바가나(bagana)도 4개로써  
천정까지의 높이도 엄청 높은 거의 호화 주택 수준의 게르였다. 


지붕의 둥근 천정인 터너(toono)도 엄청나게 큰 사이즈인데 한쪽 부분은 열어두어서 컴컴한 밤 하늘이 그대로 드러났다.


벽에는 소품을 비롯해서 상당한 크기까지 많은 미술품들이 걸려 있었는데 몽골의 풍속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림 아래에 쓰여진 글자에 눈이 갔는데 이 글자는  위구르 문자를 개량한 몽골의 전통 문자로서 한자처럼 위에서 아래로 쓰는게 특징이다.
몽골은 이렇게 몽골 전통 글자를 쓰다가 공산화 이후 현재는 키릴문자(Cyrillic=러시아어 표기에 쓰임)을 차용하여 쓰고 있다.


그림 중에는 말을 형상화한 추상적인 그림으로부터  


사실적인 그림까지 말 그림이 많이 등장하는데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배운다고 할만큼 몽골인들의 삶은 말과 깊이 관련되어 있고 없어서는 안될 최고의 교통 수단이다.


몽골의 파란 하늘 아래 낙타의 무리가 떼지어가는 아주 시원한 그림도 있는데 


아라비아 낙타가 혹이 하나인데 반해 고비사막의 낙타는 혹이 두개이라서 혹 속의 지방질로 열악한 환경을 잘 견딜 수 있다.


 '루브즈'라는 방한모를 쓴 남자가 연주하는 악기는 몽골의 대표적인 악기 '모린호르(morin khuur)로써
 악기의 머리에 말머리를 조각했을 뿐 아니라 말총을 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마두금(馬頭琴)이라고 부른다.
모습과 소리는 우리나라 해금과 흡사하여 애절한 느낌이 든다.


여인네들이 모여 앉아 양털을 두들겨 손질하고 있는데 양털은 옷은 물론이고 양탄자에서 게르를 덮는 직물까지 다양한 용도로 널리 쓰이는 필수품이다.


독수리를 한팔에 앉히고 말을 달리는 그림에서는 유라시아를 평정한 몽골인의 기상이 느껴진다.
몽골의 관광지에 가면 이렇게 독수리를 한팔에 앉히고 사진을 찍는 경험도 해볼 수가 있다.


아주 큰 사이즈로 그려진 몽골 씨름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온다.
체급 구분과 경기 시간 제한이 없는 몽골 씨름은 상대방의 무릎이나 팔꿈치등을 먼저 땅에 닿게 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데
최후의 승자는 나담 축제(7월 11~13일)기간 중 시합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몽골 대통령에게 푸짐한 선물을 받는다.

 선수들은 시합이 개시되기 전이나 승리하고 나서는 이와 같이 '잔진 말드가이'라는 모자를 쓰고
'가루다(전설 속의 동쪽 새)' 모형 주위를 돌며 날갯짓을 흉내낸다.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칭호는 매, 코끼리, 사자,거인인데 '거인'은 나담 축제 연승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칭호이다.


아이는 몽골인들에게 신앙과도 같은 존재이다.
태아숭배사상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는 귀하게 대접받으며 임산부는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용서받는다.
교육열도 엄청 높아서 교육을 국가 정책의 우선 과제로 생각하며 
몽골인의 가장 큰 소망은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몽골 민속의상은 지금도 남녀 구분이 없이 언제나 애용되는 옷이다.
 델(deel)이라고 부르는 이 옷은 위아래가 하나로 된 소매가 달린 헐렁한 가운인데
칼라가 있고 앞부분이 크게 겹쳐져 허리띠로 졸라매게 되어 있다.
몽골에 살고 있는 각 민족은 델의 재단, 색깔, 장식품으로 자기들의 민족을 구분한다.


모자는 남자 여자 모두 사용하며, 과거에는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하여 모자를 썼다.
몽골인들은 모자를 아주 귀하게 여겨 모자는 반드시 허리띠 윗부분이나 선반 위에 놓아야 하는데
모자를 발로 밟으면 그것은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몽골에서 패션의 완성은 모자이다.
모자는 전통의 의미와 실용적인 목적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
몽골사람들은 말드가이(모자)를 쓰지 않으면 복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몽골을 알리는 포스터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머리에 독수리 날개를 단 형상의 이 머리 모양은
몽골인의 난로를 지킨다는 독수리 설화처럼 난로를 지키는 여성의 임무를 표현한 것이라고....


소녀들은 꼭대기에 단추 모양의 보석 장식이 달린 '토르촉' 모자를 쓴다.
모자 꼭대기에서 길게 늘여뜨린 끈이 바람에 날리게 하는데
돈 많은 여자들은 여기다 진주를 매달기도 한다.


이런 모자를 보면 우리네 전통 모자인 '남바위'가 생각난다.
고려말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원나라의 풍습이 전해져 우리의 전통 복식에도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 많은데
남바위나 족두리, 원삼을 비롯하여 연지 곤지, 은장도 등도 그 기원이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몽골 사람들은 검소한 유목민의 평소 생활을 보상받기 위해 멋지게 입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난폭한 기후와 거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옷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중세의 여행객들은 몽골사람들이 모든 계절에 적합하고 실용성까지 갖춘 옷을 만든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감탄했다.
 


갤러리 안의 그림을 다 돌아본 후 몽골 전통 의상을 아름답게 차려입은 몽골 소녀 앞에 서서 눈을 맞추어 보았다.
눈이 있는 부분을 과감하게 크롭한 구도로 인해 그녀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드러내 표현한 것보다 더 과감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소녀의 모습은 내 기억에 아주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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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사람들은 참 감성이 풍부하다.
그들은 사물을 보고 느낀 감정을 바로 시(詩)로 표현할 수 있는 놀라운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른이나 아이나 남의 시를 낭송하기도 하지만 주로 자기가 지은 시를 낭송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이 딱딱 들어맞는 멋진 시를 즉석에서 만들어 내는 놀라운 재주를 가졌다.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장기자랑을 하라고 하면
TV에 나오는 유명 가수의 최신곡을 몸을 흔들며 부르는데 반해
몽골 아이들에게 장기 자랑을 하라고 시키니 
다섯명 중에 네명이 시를 암송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놀란 기억이 있다.



살고 있는 환경은 거칠고 척박하지만 너무나 부드러운 감성을 가진 몽골인들의 음악 또한 듣는이의 가슴을 파고 드는데
몽골을 대표하는 음악이라고 하면 먼저 '흐미'라는 뱃속 저 깊은 곳에서 나는 듯한 노래와 마두금이라고 하는 '모린호르'가 떠올려진다.



몽골을 방문했을 때에 운 좋게도 흐미와 모린호르 연주를 두번이나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한번은 토르고 패션쇼 오프닝 민속 공연에서 들은 음악이었고  또 한번은 울란바타르 인근 투브(Tov)지역을 방문했을 때였다.



투브에서 모린호르 연주를 준비한 아이들은 13세의 인근 지역 중학생이었는데
연전에 한국에 와서 SBS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한 적이 있는 아이들이란다.



흐미( 후미,
회메이, Khoomei ) 는 배와 가슴, 목, 심지어는 머리까지 사용하여 발성하는 몽골인 특유의 전통 음악이다. 

동영상을 보면 확인하시겠지만 도대체 13살된 어린 소년의 목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는지 믿겨지지가 않는다.

흐미 한곡을 부르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만큼 힘든다고 하는데
부르는 이의 혼신의 힘과 기가 다 표출되는 듯 콘트라베이스의 음색처럼 굵고 깊은 소리로 울리는 흐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수쳔년 동안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영혼이 깨어나 수천 마리 말과 함께 초원으로 한없이 달려나가는 듯한 착각마져 든다.


 몽골 칸-울지구에서 선물받은 모형 모린호르

흐미와 함께 연주되는 이 악기는 '모린호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말머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마두금(馬頭琴)이라고 불리우는 이 악기는
실제로 말총을 현으로 사용해서 만들었는데 활로 현을 문질러서 소리를 내고 두중의 강약을 서로 다르게 해서 연주하는 악기이다.
음색은 우리나라의 해금과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몽골인들은 애절한 모린호르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퍼지면 두고온 초원의 고향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심지어는 말이 젖이 잘 나지 않을 때도 어미 말 옆에서 모린호르를 연주하기도 한다.
한시간 정도 모린호르를 연주하면 신기하게도 어미말에게서 젖이 돌아 새끼에게 젖을 먹일 수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몽골 관광객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편곡된 흐미도 등장했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몽돌에서도 전통적인 음악을 전수하려는 젊은이는 그다지 찾기 어렵다고 한다.
흐미를 전수 받으려는 젊은이가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에 몽골인들은 흐미가 그 원형을 잃고 사라질까봐 걱정하고 있는데
이는 흐미가 너무 배우기 힘들 뿐만 아니라 전수받아 보아야 그 재능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든 형편이라
청년들은 모두가 보다 실질적인 직업으로 눈을 돌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전통 음악을 전수받고 있는 이  두 아이들이 참으로 귀하게 느껴지며
그들이 가진 재능을 더욱 잘 살려 몽골의 귀한 전통을 잘 이어나가는 재목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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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나 중국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은 몽골도 예외가 아닌데
몽골에 부는 한류는 일본이나 중국처럼 드라마나 가수 등 연예 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990년 자유화 이후 시장 경제가 도입이 되면서부터 한국을 경제 모델로 삼은 몽골인지라
몽골 도처에서 한국과 관련된 상품 광고와 간판을 쉽게 접할 수가 있다.
 


수흐바타르 광장 바로 앞에서 본 대한항공의 광고에는 우리나라 여자 아이와 몽골 남자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다.


길에서 만난 한국 타이어 광고는가 눈에 번쩍 뜨이고


기아 자동차의 광고도 반갑기 짝이 없다.


한국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몽골에 오는지 알게 해주는 한글 광고도 눈길을 끈다.
차가말굽버섯은 몽골의 2,000 이상 산악지역의 자작나무에서 자라는 자연산 버섯이라 우리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버섯.


간단 사원 앞 동네의 서울 플라자는 백화점인 것 같고.....


서울 마트에는 몽골인들이 좋아하는 한국산 식품과 공산품이 주를 이룬다.


길에서 만난 홍길동이란 한국 음식점 이름은 어떤 음식을 팔까...궁금하기도 하다.

 
몽골에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중고차가 다 있는데  어떤 버스는 서울의 노선과 번호판을 버젓이 붙이고 시내를 질주한다.

관련 포스트 : 몽골을 주름잡는 한국산 중고차


어떤 승합차는 아직도 한국에 있을 당시의 학원이거나 유치원 이름을 그대로 붙여놓고 있다.


이는 새로 도색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중고차일지언정 차가 한국산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버스 옆에 붙은 LG 마크와 수퍼 타이 광고도 반가움에 한번 더 쳐다보게 한다.


2080 치약 광고를 붙인 트럭이 휙 지나간다...어....여기는 몽골이었지...


아름다워지기 위한 소망은 몽골도 마찬가지...한국산 화장품은 최고의 인기 제품이다.


몽골에서 가장 화려한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는 대장금의 한상궁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우리나라 굴지의 화장품 브랜드의 설화* 화장품이 몽골에서는 월화수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아래에 쓰인 자음 유액...이런 문구는 한글이 그대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백화점의 엘리베이터는 현대 엘리베이터이고...


수리 중인 에스컬레이터 입구 저지선 테이프에도 안전제일이라고 쓰여 있어 실소를 머금게 한다.


한국 기업의 몽골 진출은 다양하기 그지없는데 심지어 이렇게 의료 부분에 진출한 사례도 보이며


몽골의 울란바타르 대학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대학으로 한국어를 제 2 외국어로 채택하는 등
한국에 가지 않고도 한국식 교육과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곳이라 몽골 대학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는 학교이다.


여행 중 물과 간식을 사기 위해 들린 소규모 할인점의 진열대에는 태반이 한국 상품으로 가득 차 있는 놀라운 광경을 접할 수 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거나 한국 상품 전문 매장이 아닌 몽골인 대상의 할인점인데도 비빔면, 김치면, 진라면, 육개장......등이 빼곡이 차 있고


한국어와 몽골어가 같이 쓰여진 마요네스.....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튀김을 맛보라는 튀김가루....


매운 김치 등.....한국 상품이 진열대의 반을 차지한다.


그런데 가격이 정말 만만치 않다.
 몽골의 화폐 단위는 투그리크(Tugruk)로써 US 1$ = 1170 tg 정도이니 거의 우리나라 돈과 가치가 비슷하다.
그런데 오예스 한통에 4,000 투그릭이고 후렌치 파이가 3520 투그릭이니 우리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싼 정도...
대학 나온 일반 회사원의 한달 봉급이 30만원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비싼 물가인 것이다.


몽골 사람들도 뻥튀기를 정말 좋아하나보다. 맥주나 몽골 위스키가 나오면 반드시 뻥튀기가 안주로 나오는 점도 우리와 비슷한 점이다.


호텔에서 TV를 트니 TV 홈쇼핑에는 한국 홈쇼핑을 몽골어로 녹화 더빙만 한채로 하루 종일 방영하고 있고
 사이사이에는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가 쉴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는 한국에서 종영되기가 무섭게 바로 몽골 TV에 그대로 방영되곤 한다.


노래방 뿐 아니라 식사만 취급하는 일반 레스토랑에도 노래방 기계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은데
비치되어 있는 책은 놀랍게도 한국 노래방에 비치된 책 그대로이다.

몽골의 대학생 적십자 단원들은 한국 최신 가요와 댄스를 그대로 다 외우고 있어 필자를 놀라게 했는데
한국에서 간 일행들이 도리어 노래를 몰라서 버벅거리면 도리어 가사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몽골의 젊은이들은 한국 문화와 한국 상품, 한국의 연예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을 방문하거나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을 꿈으로 가진 사람들이 많다.
가는 곳 마다 만나게 되는 이런 한류 열풍의 이면엔 사실 어두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몽골을 뒤덮고 있는 자랑스런 한류의 물결이 초원의 불길처럼 크게 번져 나가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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