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산책..........................'에 해당되는 글 343건

  1. 2013.02.04 마카오 세계문화유산 자비의 성채 28
  2. 2013.02.01 상큼한 유혹에 빠지는 마카오 아이스크림 '레몬첼로 젤라토' 26
  3. 2013.01.30 맛보지 않고는 못 지나가는 마카오 명물 어묵 거리 21
  4. 2013.01.21 마카오 필수여행지, 정원이 아름다운 릴 세나도 빌딩 22
  5. 2013.01.17 작은 카페에서 맛보는 여행의 여유, 마카오 맥팀 카페 25
  6. 2013.01.14 마카오 필수 여행 코스 대성당 광장과 모자이크 타일 아줄레주 27
  7. 2012.10.19 몽골에는 징기스칸 요리가 없다? 24
  8. 2012.10.15 파란 하늘을 닮은 몽골의 전통신앙 라마불교와 샤머니즘 18
  9. 2012.10.10 몽골인의 웰빙음식 아이락(마유주)과 우유과자 아롤 20
  10. 2012.09.24 몽골이 한국을 '무지개 뜨는 나라(솔롱고스)'라고 부르는 이유 26
  11. 2012.09.21 새마을 한류바람이 부는 몽골 탄광촌 울란바타르 날라이흐 16
  12. 2012.09.19 소와 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몽골 울란바타르 골프장 16
  13. 2012.09.12 몽골에서 '말 보러 간다'는 말의 뜻은 ? 18
  14. 2012.08.31 초원의 럭셔리 호텔 몽골 나이람달 게르 게스트하우스 20
  15. 2012.08.29 자작나무 우거진 아름다운 휴양지 몽골 나이람달 캠프 21
  16. 2012.08.27 헉! 소리 나는 몽골 전통 양고기 요리 허르헉((Horhog) 26
  17. 2012.08.24 초원의 법칙 - 몽골 유목민의 양잡기 현장 습격 리얼 리포트 22
  18. 2012.08.20 초원의 법칙 - 몽골 유목민의 젖짜기 비법 21
  19. 2012.08.17 몽골 초원에서 만난 귀여운 망아지와 신비한 종마 32
  20. 2012.08.13 몽골 초원의 천막집 게르(Ger)가 궁금하다. 27
  21. 2012.08.09 몽골 초원에서 만난 천막집 게르(Ger) 짓기 현장 27
  22. 2012.06.25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부자의 소박한 저택, 마카오 로우카우 맨션 44
  23. 2012.06.11 마카오를 발 아래? 천혜의 전망대 몬테 요새 20
  24. 2012.06.07 마카오의 랜드마크, 꽃보다 남자 촬영지로 유명한 성 바울 성당 24
  25. 2012.05.07 골목 전체가 시식 코너? 마카오 육포거리를 가다 27
  26. 2012.04.30 마카오 명동 성도미니크광장과 성당의 신비한 야경 21
  27. 2012.04.23 동화 속 풍경 같은 마카오 성도미니크 성당 19
  28. 2012.03.12 마카오 로컬푸드의 최강자, 웡치케이에서 맛본 완탕면 31
  29. 2012.03.01 보석같이 빛나는 마카오 타워의 야경 11
  30. 2012.02.24 무식하면 용감하다? 마카오 동네 식당 체험기 29


 

마카오의 중심 광장인 세나도 광장은 물결치는 듯한 모자이크바닥 깔사다와 함께

분홍, 노랑, 연두.......연한 파스텔빛으로 칠한 포르투갈풍 건물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광장 주변의 둘러선 알록달록한 건물들 속에서 유난히 하얀 건물 하나가 눈에 뜨인다.

 

 

 

 

동화속의 공주가 살 것만 같은 이 아름다운 건물은 자비의 성채(仁慈堂大漏, Santa Casa da Misericordia).

자애당이라고도 불리우는 자비의 성채는 네오클래식풍의 외관이 특히 아름답다.

 

 

 

 

자비의 성채는 1569년, 마카오의 첫 주교인 돈 벨키오르 까네이로(Don Belkior Carneiro)가 자선사업을 위해 건립한 곳이다.

돈 벨키오르 까네이로 주교는 선교를 비롯한 많은 선행사업을 하였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이 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 왼쪽 골목으로 돌아들어가니 자비의 성채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난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바로 앞에 나타난 석상. 돈 벨키오르 까네이로 주교의 흉상이다.

까네이로 주교는 마카오에 부임한 첫 주교이며 자선사업을 위해 자비의 성채를 건립한 인물이다.

 

 

 

 

2층 박물관으로 오르는 계단 위에는 오성홍기와 함께 마카오 깃발이 반갑게 맞이한다. 

 

계단을 올라서니 환한 미소로 방문자를 반기는 박물관지기 할아버지.

검은 베레모를 살짝 걸쳐쓰신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입장료가 얼마냐고 물으니 티켓은 5 MOP(약 700원)이지만 그냥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한다.

저렴한 입장료이지만 돈을 받지 않는다니 너무 기분이 좋아 감사를 표하고 얼른 전시실로 들어갔다.

 

 

 

 

전시실은 크게 넓지 않고 아담한 편인데 정말 깔끔하게 잘 전시되어 있다.

 

 

 

 

2001년 12월에 개관했다니 박물관 자체의 역사는 오래지 않으나 소장품들은 모두 오랜 세월의 때가 묻은 것들로

하나 하나 마카오와 마카오의 카톨릭 선교 역사를 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들이다.

 

 

 

 

고대 필사본, 청동 벨, 유화, 상아상과 종교 예술품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중국, 일본, 유럽제 자기들이  작은 공간에 빼곡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작은 상자들은 얼른 집어서 주머니에 넣고 싶을만큼 정교하고 앙증맞은 것이 많이 있었다.

너무 예쁜 소장품들을 그냥 보고 돌아서기가 아쉬워서 소장품을 촬영해도 좋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을 한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다니는 여행인지라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사진은 모두 NEX-5로 촬영한 것이다.)

 

 

 

 

 

 

 

 

 

 

 

 

 

 

 

 

 

 

 

 

 

 

 

 

 

 

 

 

 

 

전시품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가려니 박물관지기 할아버지가 여기도 보고 가라며 다른 방으로 안내를 한다.

들어가보니 오~!!! 여기가 바로 자비의 성채의 핵심이 되는 본관 홀이다.

가운데 회의 탁자가 놓여 있고 벽에는 마카오 역대 주교들의 사진이 빼곡이 걸려 있다.

 

 

 

 

깔끔하고 단아한 창에는 진초록의 휘장이 멋스럽게 드리워졌고 과하지 않은 멋을 부린 천정 샹들리에도 너무나 아름답다.

 

 

 

 

발코니로 나가보니 발코니 공간이 너무 평온하고 아름답다.

세나도 광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발코니에는

로맨틱한 철제 테이블들이 여기저기에 놓여 있어 휴식의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런데 테이블 여기저기에 놓인 꽃다발들이 눈에 들어온다.

'참 아기자기하게도 꾸며놓았구나.'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박물관지기 할아버지가 오셔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테이블 앞에 꽃다발을 들고 앉으란다.

필자의 카메라를 가지고  대신 사진을 찍어주는데 일일이 포즈 지도를 다 해준다.

"다리를 꼬아 올리고......고개를 약간 숙이고......미소를 띠고......."

 

 

 

 

전시품을 돌아보고, 전시품 사진을 찍고, 너무나 기억에 남는 인증 샷을 남기고.......

자비의 성채 박물관에서 보낸 몇시간은 필자의 기억에 노래 남을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행의 여유와 즐거움을 배가시켜준 멋쟁이 사진가 할아버지가 부디 건강하셔서

자비의 성채를 지키는 행복한 시간을 오래 누리시길 기원해보며 자비의 성채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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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는건지 먹으러 다니는건지 헷갈리는 루비의 마카오 여행.

동서양 음식의 조화가 특징인 먹거리의 천국 마카오 음식 소개 편에는

마카오의 유명 길거리 음식(Street Food) 어묵꼬치 포스팅에 이어

 어묵거리에 위치한 유명한 젤라토(아이스크림)가게를 소개할까 한다.

 

 

 

 

마카오 어묵거리에 위치한 유명 젤라토 가게 '레몬첼로(Lemon Cello)'.

이곳 레몬첼로는 유난히 젊은 여자 손님들로 붐비는 곳이다. 

 

어묵거리에서 어묵꼬치를 먹고나서 약간의 느끼함을 달래기에는 산뜻한 젤라토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이곳의 젤라토는 모두 이 가게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천연 젤라토라고 한다.

 

 

 

 

31가지의 골라먹는 재미를 느끼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못지 않게 다양한 맛과 재료를 자랑하는 레몬첼로의 젤라토.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진 레몬첼로의 벽에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인증샷들도 많이 붙여져있다.

 

  

젤라토는 싱글컵과 더블컵으로 담아주는데 싱글컵은 25 MOP(3,400원),

두가지 맛을 담아주는 더블컵은 30 MOP(4,100원) 정도이다.

 

 

 

 

우선 맛보기로 구아바맛 싱글컵 하나를 주문했다.

 

 

 

 

레몬첼로 앞에 서서 구아바맛 젤라토 한숟가락을 떠서 입안에 살며시 넣어본다.

음.....너~~~~무 상큼해!

부드러운 젤라토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면서 입안에 상큼한 구아바향이 가득해진다.

 

 

 

 

구아바 젤라토 맛에 홀딱 반한 나머지 싱글컵을 다 비우자마자 다시 더블컵을 두개 주문했다.

젤라토맛은 키위, 진저, 구아바, 로즈티......^^

여러가지 맛의 과일 향과 함께 부드러운 젤라토를 음미하니 온몸에 행복감이 피어오른다.

 

아이스크림보다 공기를 덜 포함하고 있으며 밀도는 더 크다는 젤라토(Gelato).

본고장 이탈리아의 정통 젤라토에 별로 뒤지지 않는 마카오 레몬첼로는

마카오 어묵거리에서 스쳐지나지 말고 꼭 들려보아야 할 귀엽고 상큼한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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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동양과 서양의 화려한 만남, 31개나 되는 세계문화유산,

별빛처럼 반짝이는 화려한 카지노와 럭셔리 호텔, 호화 쇼핑......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마카오가 각가지 음식을

골라 골라 맛볼 수 있는 먹거리의 천국이라는 것이다.

광둥요리와 포르투갈 요리가 조화를 이룬 매케니즈 요리를 비롯해서

필자와 S양의 마카오 처묵처묵로드 기행 중에서도 오늘은 

맛보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어묵거리의 어묵꼬치를 소개해드릴까 한다.

 

 

마카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유명한 로우카우맨션앞에 이르니 중국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물씬 풍긴다. 

 길거리 벤치에 앉은 사람들은 너도 나도 무엇인가 열심히 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여기가 바로 마카오의 유명한 어묵 거리(어묵 골목)인 것이다. 

어묵거리에 늘어서 있는 가게에는 다양한 재료와 모양의 어묵들이 꼬치에 잔뜩 꿰어져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우리나라의 길거리 어묵들은 길다란 원통형이거나 넓적한 모양이 많은데에 반해

마카오 어묵들은 동글동글한 어묵이 한 꼬치에 여러개 꿰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묵의 색깔과 재료는 정말 다양하기 그지없다.

맛살, 소시지, 새우, 치즈......여러가지 부재료가 어묵 속에 들어 있어 골라먹는 재미를 더해준다.

꼬치는 재료에 따라서 가격이 서로 다른데 꼬치 한개 당 6~8 MOP 정도의 가격이다.

[1 MOP (마카오 파타카) = 1H$ (홍콩달러) = 한화 138원]

 

 

 

 

정통 어묵 뿐 아니라 어묵과 함께 먹는 기타 치의 종류도 정말 다양하기 그지 없다.

호박, 두부, 다시마, 두부 튀긴 것, 양배추, 배추, 각종 버섯.......

정말 꼬치로 못 꿰는게 없는 마카오 사람들이다.

 

 

 

 

때로는 오징어, 내장, 천엽......등의 다소 혐오스런 모습의 꼬치도 눈에 뜨인다.

 

 

 

 

어묵 꼬치를 먹을 때엔 어묵만 먹는 것이 아니라 어묵과 함께 

버섯, 다시마, 배추, 당면, 튀긴 두부껍직 등 자신에 기호에 맞게 믹스해서 먹으면 더욱 맛있다. 

자지가 먹고 싶은 어묵을 종류대로 골라 주인에게 건네주면 담은 어묵이 모두 얼마인지 계산해준다.

 

 

 

 

계산하고 나면 골라 담은 어묵 꼬치와 기타야채 꼬치들을 펄펄 끓는 육수에 담궈 따끈하게 데워서 담아주는데

어묵 위에 고기와 야채들을 진하게 우려낸 육수도 함께 끼얹어준다.

일부 한국 사람들은 중국 특유의 약간의 노린내가 나는 이런 육수의 냄새가 싫어

어묵을 보고도 입에 대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마카오에 와서 어묵 꼬치를 먹어보지 않고 돌아간다면 두고 두고 후회할 수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 꼬치 위에 끼얹는 소스는 카레 소스와 칠리 소스  두가지 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각가지 어묵꼬치와 당면, 채소 등을 익혀 육수를 붓고

카레 소스를 올린 마카오의 대표 주전부리 어묵 꼬치 한그릇이 완성되었다.

커다란 그릇에 한가득 담은 어묵꼬치는 51 MOP(한화 약 7,000원).

어묵은 약간 커서 한입에 먹기는 약간 부담스러워 두어번에 베어먹는데

소스와 잘 어울린 따뜻한 어묵 꼬치는 정말 죽여주는 맛이다.

한국에서 먹는 어묵과는 달리 탱글거리고 쫄깃하여 씹는 식감이 아주 그만이다.

 

 

 

 

 

어묵 한그릇 먹고나면 배가 어느 정도 불러지니 간식이 아니라 한끼 음식으로 먹기에도 나쁘지 않다.

마지막 끌끔한 입가심을 위해 레몬녹차 한잔을 더하면 금상첨화!

 

여행중 길거리 음식을 사먹으면 혹시 탈이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마카오에서 던져버려도 좋다.

마카오에서는 노점상의 음식도 위생상태를 걱정안하고 마음대로 사먹을 수 있다고 한다.

정부에서 마카오 전역의 먹거리 위생 상태를 철저히 점검할 뿐 아니라

자격요건에 미비하면 언제든 가차없이 허가 취소를 내리기 때문에 걱정없이 사먹을 수 있다고 한다.

마카오의 명물 골목 어묵거리. 마카오에서는 빠짐없이 들려야 할 필수 여행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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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여행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세나도 광장(Largo do Senado)'.

포르투갈어로 '의회'라는 뜻의 세나도 광장은 마카오의 공식적인 행사나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물결이 치는 듯한 무늬의 모자이크 바닥 '깔사다(Calcada)'로 덮힌 세나도 광장은

포르투갈풍의 아름다운 건물로 둘러싸여 볼 거리를 더하고 있는데

주변 건물 중 가장 눈에 뜨이는 건물은 뭐니 뭐니 해도 '릴 세나도 빌딩'이다.

  

마카오 정부 청사로 지어진 '릴 세나도 빌딩( Edificio do Leal Senado, 民政總署大樓)'은

마카오가 중국으로 반환된 현재는 '마카오 특별 행정구 행정청 및 의회' 역할을 하는 곳.

1784년에 남유럽 건축 양식의 색깔을 띄고 지어진 이 건물은

건축 이후 많은 수난을 거쳤는데 지금의 건물은 1874년에 재건된 것이라 한다. 

 

 

 

 

세나도 광장 주변의 건물들이 대부분 환한 개나리색이거나 핑크, 라이트그린인데 반해

릴 세나도 빌딩은 세나도 광장 제일 중심부에 순백색으로 서 있어 더욱 고고하고 당당해 보인다. 

 

 

 

 

빌딩 입구로 들어가면 왼쪽에는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은 갤러리가 있다.

갤러리 바로 앞에는 이렇게 조그만 기념품 코너로 마련되어 있어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포르투갈에 있는 콘벤토 드 마프라 도서관을 모방해 1929년에 개관했다는 1층 도서관은

많은 고가구로 장식되어 있다고 하는데 돌아보지는 못 했다.

이곳에는 17세기에서 1950년대를 망라하는 외국 서적들,

특히 아프리카와 극동에서의 포르투갈의 역할을 다룬 많은 문서들이 보관되고 있는데 

중국의 첫 포르투갈어 복사본인 <아 아벨하 다 차이나(A Abelha da China)가 소장된 곳이란다.

  

 

 

 

포르투갈풍으로 지어진 릴 세나도 빌딩도 역시 안쪽 벽면은 '아줄레주'로 되어 있어 너무 아름답다.

아줄레주(Ajulejo)라는 말은 '작고 아름다운 돌'이라는 아라비아어에서 유래되었다.

 

 

 

 

포르투갈왕 마누엘 1세가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 방문했을 때

이슬람문화에서 전해진 타일 양식에 매료되어 돌아온 후 자신의 왕궁을 아줄레주로 장식했다고 한다.

이후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전국에 퍼져 나가기 시작해서 포르투갈 문화와 시대에 따라

포르투갈만의 독특한 아줄레주가 만들어졌고 포르투갈의 문화적 창작물로 자리잡았는데

400여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마카오에서도 곳곳에서 이런 아줄레주를 만날 수 있다.

 

 

 

 

몇명의 사람들이 2층 의회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 슬쩍 따라서 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붉은 휘장이 드리운 창으로 둘러싸인 장방형의 홀에는 회의용 탁자와 의자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홀의 맨 앞부분에 '민정총서(民政總署, 의회)'라는 현수막과 함께 마카오 깃발이 걸려 있어

이곳이 마카오 특별 행정구 행정청 및 의회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마카오 의회에 들어와 보다니 영광인데?'이렇게 생각하며 사진 몇 장을 찍고 있으니

놀란 직원이 황급하게 두손을 저으며 안 된다고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한 뒤에 나왔지만 이미 볼 건 다 보고 사진도 찍은터라 느긋하게 밖으로 나왔다. 

2층 의회홀은 일반인 출입 금지지만 후원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다고 해서 정원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정원이라길래 내심 약간의 기대를 하고 들어갔는데 이건 작아도 너~~무 작다.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 정도를 기대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넓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은 오산!

역시나 땅덩어리 좁은 마카오인지라 의회 정원도 정말 소박하고 아담하다.

 

 

 

 

정원 한켠에 세워진 자그마한 흉상이 특이하길래 명판을 읽어보니

포르투갈의 군인이자 국민 시인으로 알려진 루이스 데 까모에스(Luis de Camoes)라고 한다.

포르투갈의 영향을 오래 받은 마카오라 그런지 마카오에는 까모에스 공원도 있다.

이래저래 까모에스라는 사람은 포르투갈 뿐 아니라 마카오에서도 추앙을 받는 인물인가 보다.

 

 

 

 

작고 귀여운 분수, 벤치 몇개가 전부인 소박한 정원이지만 의외로 편안하고 조용하다.

건물 바로 앞은 마카오에서 가장 번화한 광장과 도로가 자리잡고 있지만

뒷편 정원은 새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한 곳이라 여행에 지친 다리를 한참이나 쉬어갈 수 있었다.

 

 

 

 

마카오를 여행하는 동안 릴 세나도 빌딩 앞을 수없이 왔다 갔다 했던 기억이 난다.

호텔 셔틀을 타고 릴 세나도 빌딩 앞에서 내려서 걸어다니거나 택시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도시 마카오에 알맞는 자그마한 의회 건물, 릴 세나도 빌딩.

마카오 여행자들이 이정표처럼 생각하고 지나는 마카오의 대표적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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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면적의 1/20, 여의도 면적의 3.5배 정도 밖에 안 되는 마카오.

시내 전 지역은 도보로 걸어다니면서 돌아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마카오가 아무리 좁은 지역이라고하더라도 몇시간 동안 걸어다니며

둘러보고 사진 찍다 보면 금세 허기가 지고 피로가 몰려오기가 일쑤이다.

이럴 때는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며 피곤을 달래는 것이 최고의 선택.

 

마카오에 깃든 유럽의 식문화 주 가장 여유롭고 고상한 '에프터눈 티'문화.

사색적인 마카오의 여유를 즐기기에는 작고 귀여운 유럽풍의 카페도 부족함이 없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맥팀 카페(Mactim cafe)로 가기 위해 대성당광장 옆 아줄레주 벽화 골목으로 발길을 돌린다.

마카오 카페 중에서도 다양한 홈메이드 케익을 자랑하는 맥팀 카페문 앞에 서 보니 카페가 작아도 정~~말 작다.

이런 카페가 과연 그렇게 유명한 카페인가 할 정도로 바깥 모습은 소박하기 그지 없다. 

카페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단지 테이블 세개만이 놓여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다.

 

 

 

 

유리를 통해 카페 바깥을 보면 개나리색과 초록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대성당 옆 벽화 골목의 풍경이 깨끗하게 비쳐 보인다.

 

 

 

 

좁은 계단을 통하여 2층으로 올라가보니 카페 인테리어가 너무 아기자기하고 포근하다.

 

 

 

 

계단 바로 옆 벽에는 19세기 풍 포스터 액자와 접시 그림들이 걸려 있고

 

 

 

 

맞은 편에는 장방형의 하얀 거울이 걸려 좁은 공간의 답답함을 해소시켜 준다. 

작은 공간이지만 남쪽 통유리창을 통하여 따사로운 햇살이 넉넉하게 들어오니 포근한 대화를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다.

 

 

 

 

맥팀 커피가 우리돈으로 3,800원 정도, 아이스커피가 4,200원 정도이니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고민 끝에 맥팀커피, 아이스 커피, 그리고 맥팀 샐러드 한접시를 주문해 본다.

 

 

 

 

이윽고 나온 커피를 보니 커피 위에 뜬 황금빛 크레마와 함께 향긋한 커피 향이 마시기도 전에 피로가 풀리게 한다.

 

 

 

 

이윽고 나온 테이블 위에 올려진 샐러드,

토마토, 양상추, 양파....등 손쉬운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신선하고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

 

 

 

 

식사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맥팀 카페의 자랑이라는 홈메이드 케익은 맛보지 못 했지만

풍부한 크레마가 얹힌 신선한 커피 한잔 만으로도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 충분한 곳,

사색적인 마카오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작은 카페 '맥팀'을 소개해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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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쁜 일상, 잠깐의 휴식이 필요할 때 찾는 도시, 마카오.

작지만 그 어느 곳보다 볼거리로 가득한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마카오.

400년전과 지금은 같지만 오늘과 내일은 다른 도시, 마카오 여행기를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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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마카오의 대저택 로우카우 맨션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길로 향하니

작은 골목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어귀에 조그마한 분수가 하나 나타난다.

 

 

 

 

날개를 양쪽으로 펼친 천사의 입에서 물줄기가 졸졸 흘러나오는 작은 분수는

 하얀 타일에 파란색으로 그려진 커다란 벽화가 무척 인상적이다.

 

 

마카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타일 벽화를 '아줄레주(Ajulejo)'라고 하는데

아줄레주라는 말은 '작고 아름다운 돌'이라는 아라비아어에서 유래되었다.

포르투갈왕 마누엘 1세는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 방문했을 때

이슬람문화에서 전해진 타일 양식에 매료되어 돌아온 후 자신의 왕궁을 아줄레주로 장식했다.

이후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전국에 퍼져 나가기 시작해서 포르투갈 문화와 시대에 따라

포르투갈만의 독특한 아줄레주가 만들어졌고 포르투갈의 문화적 창작물로 자리잡았는데

400여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마카오에서도 이런 아줄레주를 자주 만날 수 있다.

 

 

 

 

마카오 대성당 광장 골목에는 다섯개의 아줄레주가 있는데 그림의 내용은 상당히 중국풍이다.

알고 보니 이것들은 1774년에서 1852년 사이 마카오의 일상적인 풍경들을 담은 타일벽화라고 한다.

 

 

 

 

타일벽화가 끝나는 골목 끝지점에는 이렇게 성당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모양의 분수도 자리잡고 있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니 바로 앞에 마카오 대성당(大堂)이 웅장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장식을 배제하고 하얀 대리석으로 반듯하게 지어진 성당 건물은 너무 깔끔해 보인다.

아치형의 문 위에는 깔끔한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이 인상적인데 성화가 아니라

청색과 황금색이 어우러진 단손한 문양으로만 되어 있어 세련된 느낌을 준다.

데칼코마니처럼 좌우로 배치된 포르투갈풍 초록색 덧문도 너무 마음에 든다.

 

 

 

 

 

1622년에 지어진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카툴릭 성당으로 마카오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 중의 하나이다.

처음 지어진 이후 여러번 태풍의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모습은 1937~1938년에 완성된 것이다. 

중국으로  마카오가 반환되기 전에는 새로 부임한 마카오의 총독이 대성당에 와서

성모 마리아 상 옆에 그의 재임권을 내려놓는 전통적인 의식을 매번 치루었다고 하니

명실상부한 마카오의 대표적인 성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대성당인 셈이다.

 

 

 

 

내부도 외관처럼 장식이 아주 심플한하고 밝고 환해서 좋다.

화려한 벽화로 장식하는 유럽의 성당과는 달리 마카오의 성당들은 흰색이나 노란색 같이 밝은 색을 많이 사용한다.

금색이나 각종 성화로 화려하게 치장한 성당 보다 이렇게 심플한 성당이 더욱 경건함을 더해주는 것 같다.

 

 

 

 

 

성당 안 제단 밑에는 16세기와 17세기 주교의 유품들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광장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주교관 등의 건물은 대성당의 외관과 달리 밝은 병아리색이다.

 

 

 

 

환한 색으로 칠해진 마카오의 건물들은 보는 이들에게 밝고 경쾌한 기분을 주기에 충분하다.

 

 

 

 

대성당 맞은편에는 아름다운 깔사다가 넓게 펼쳐진 대성당 광장(大堂前地)이 있다.

광장에는 해마가 물을 뿜는 중국풍의 분수와 함께 대리석으로 된 대형 십자가,

그리고 포르투갈풍 깔사다와 타일 벤치등 동서양의 문화가 한곳에 뒤섞여 있는 것을 본다.

 

 

 

 

광장 주변은 다소 어지러울 만큼 각가지 양식의 허술한 아파트와 중국식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종교적인 이유이든 역사적인 이유이든 대성당과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어

대성당과 함께 대성당 광장도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성당 광장 전체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타일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고

광장 가장자리에는 빙 돌아가며 타일벽으로 장식되어 있어 주민들과 여행객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장식 타일벽에는 이렇게 벤치 공간도 마련되어 편안한 느낌을 주는데

바로 옆 어묵거리에서 산 간식을 이곳으로 들고와 먹으면서 여행에서 지친 다리도 쉴수 있어 너무 좋은 곳이다.

 

 

 

 

세나도 광장을 비롯하여 마카오의 많은 광장들은 모자이크 바닥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런 광장 바닥 역시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것 중의 하나이다.
'깔사다(Calcada)'라 부르는 모자이크 바닥 장식은 석회석을 조각으로 잘라서 바닥을 장식하는데
보통 문자나 별, 예쁜 조개 등의 모양을 넣기도 하고 기하학적인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마카오 곳곳에  깔려져 있는 깔사다 중에서도 대성당 광장의 깔사다는 특히 아름다워서

여행객들은 너도 나도 이곳의 깔사다를 배경삼아 사진을 찍는다.

 

 

 

 

낮시간에 다 돌아본 곳이지만 야경이 궁금하여 저녁시간에 다시 대성당으로 와 보았다.

역시나 이곳으로 온 발걸음이 헛되지 않았다. 과하지 않는 조명이 비치는 가운데

은은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감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다.

 

 

 

 

다시 타일 벤치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노라니 동쪽 하늘에 두둥실 보름달이 떠오른다.

마카오의 대광장에 앉아 맞이하는 둥근 보름달이라니......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마카오의 아름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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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알고 있는 몽골 음식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징기스칸(칭기즈칸) 요리?"라고 대답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몽골 음식으로 알고 있는 '징기스칸 요리'는 사실 몽골 요리가 아니다 

몽골에는 양고기를 삶아서는 먹어도 끓이거나 구워먹지는 않기 때문이다.

 

  징기스칸 요릿집에서는 몽골인들이 초원에서 먹었던 방식이라며  

부족한 비타민을 섭취하기 위해 고기와 야채를 함께 끓여 먹었다 하고  

징기스칸이 전쟁 중 철모에 양고기를 구워 맛있게 먹은 데서 유래했다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몽골 사람들은 자신들이 야채를 먹기 시작한 것도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것을 몽골 전통요리처럼 소개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라고 말한다.

 

 

사실 징기스칸요리는 일본 홋카이도 지방에서 유래한 양고기 요리로  

몽골이나 역사적 인물 징기스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퓨전 일본 요리이다. 

징기스칸 요리의 기원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구 일본군의 군복을 만들기 위해  

홋카이도에 양목장을 설치하면서 양털 자급을 했던 것이 발단이라고 한다.

   

본래 육식하는 습관이 없었던 일본은 육식을 해야 유럽인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메이지 유신이후로 일본화한 육식 요리를 속속 개발하고 있었는데  

양털로 군복을 만들고 남는 대량의 양고기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었다 

양털로 군복을 만들고 남은 양고기는 일본전통요리인 나베와 결합하여 요나베가 되었는데  

이 요나베((羊鍋))가 징기스칸 요리(일본어: ジンギスカン)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것은  

기마민족인 몽골의 식량인 양과 유럽까지 진격해 들어간 정복군주 징기스칸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져  

당시 일본의 만주 침략등 대륙 진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로 갖다 붙인 이름으로 볼 수 있다. 

 

 

 

 

 

  몽골을 여행하는 동안 여러가지 형태의 몽골 음식을 대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전해내려오는 전통적인 형태로 나오는 몽골 음식도 맛보긴 했지만  

도시에서는 전통 음식이 현대식으로 변모된 음식을 많이 대할 수 있었다 

여행 중 몽골에서 맛본 음식 몇가지를 사진과 함께 소개해 드리자면...... 

 

 

 

 

 

  몽골에서 자주 먹은 음식은 '코릴타슐'인데 이것은 국물 있는 양고기 칼국수이다 

양고기와 국수를 넣고 끓이는 코릴테슬은 우리네 칼국수 미는 방법과 비슷하다 

밀가루 반죽을 둥글고 얇게 밀어낸 다음 반죽을 난로에 살짝 구운 후 칼로 썰어 면발을 만드는데  

물을 끓으면 양고기를 넣고 다 익을 때쯤 국수를 넣어 끓이는 간단한 요리이다. 

 

 

 

 

  

'초이방'은 넓적하게 썰어낸 손칼국수와 고기, 야채를 함께 볶아 양념을 쳐서 먹는 볶음국수이다. 

코릴타슐보다 다소 느끼하고 국물이 없어서 먹기에 상당히 뻑뻑하지만  

고기 삶은 국인 하르슐과 같이 먹으면 제법 먹을 만 하다.

  

 

 

 

 

  하르슐(Har shul)은 양고기만 넣고 끓인 국이다. 

야채는 양파 몇 조각 들어갔을 뿐인데 약간 느끼하지만 후춧가루를 뿌려 먹으면 제법 먹을 만 하다. 

 

 

 

   

몽골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음식은 '호쇼르''보츠'이다. 

'호쇼르'는 한국의 튀김만두와 비슷한 형태로 속은 주로 양고기가 들어가는데  

요즘은 만두호쇼르, 김치호쇼르 등 다양한 종류의 호쇼르가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몽골인들이 점심에 차와 함께 먹는 종요한 음식인 호쇼르는 한국인들의 입에도 제법 잘 맞다. 

 

우리나라 고기만두와 비슷한 '보츠'도 속에 주로 양고기가 들어가는데  

기름기가 굉장히 많아 한번 베어물면 기름이 주르르 떨어질 정도이다. 

보츠는 몽골에서 귀한 손님이 오거나 명절이 되면 만들어 먹는 음식인데  

몽골의 설날인 차강사르에는 보츠를 1,500~3,000개 정도 빚기도 한다고....... 

 

 

 

 

   

언뜻 보면 피자 조각같이 생긴 이것은 '감비르'라고 하는데 한국식 호떡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속에는 기름, 설탕, 소금을 넣거나 아니면 따로 양념해서 밀가루를 치대어 양념을 한다 

패스츄리처럼 따로 따로 떨어지는 것이 특징인데 고소하고 제법 맛나다.

 

 

 

 

 

울란바타르 시내에 위치한 유명 음식점 '알타이'에서는 '몽골리안 바베큐'를 맛 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고기와 야채를 접시에 담아가면 둥글고 넓적한 철판 위에서 순식간에 볶아서 내어주는데 

볶는 동안 뒤집개를 위로 던지거나 빙글 돌면서 볶는 등 여러가지 묘기를 부리기도 한다.

 

 

 

 

이름은 몽골리안 바베큐이지만 몽골 전통 요리라기 보다는 퓨전에 가까운 요리인데  

울란바타르 현지에서 아주 인기있는 음식이다.

 

 

 

 

 

몽골 요리 중에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바로 '허르헉'이다. 

허르헉은 양 한마리를 통째로 잡아 내장은 순대로 만들고 고기는 잘라  

뜨겁게 달구어진 돌과 함께 압력솥 안에 넣고 끓이는 몽골의 대표적인 요리. 

야채를 거의 넣지 않고 만들어낸 허르헉은 상당히 느끼하고 고기도 질기지만 

몽골의 전통 음식을 체험하기에는 허르헉 만큼 좋은 음식이 없을 것 같다.

 

  

 

 

  몽골의 휴양지에서는 아저씨들이 모여 염소를 잡아 요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염소의 털을 가스불로 그을린 다음에 고기를 하나 하나 분해하여 요리하는데 

불에 그을린 채로 누워 있는 염소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지던 현장이었다.

 

 

 

 

몽골인들의 주식은 고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들은 서구인처럼 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 

그대신 유제품을 많이 섭취하는데 몽골인은 가축의 젖으로 무수한 음식과 유제품을 만든다고 한다. 

 

몽골에서 가장 보편적인 유제품은 우리들이 '마유주(馬乳酒)''라고 부르는 '아이락(Airag)'인데  

아이락은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 발효시킨 술이다. 

마유주라고 불리우기도 하지만 사실 알코올 성분은 약 6~7도 정도여서  

몽골인들은 아이락을 술의 개념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암말의 젖은 젖소의 우유보다 비타민C가 세배 이상 들어있어서  

식사 대용이나 최고의 영양식으로 사랑받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여름에는 한 사람당 매일 3~5리터 정도의 아이락을 마신다고 하는데 

아이락의 맛은 첫맛은 약간 비릿하고 시큼한 것이 마치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자꾸 마시면 고소함이 입에 배어 자꾸 찾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소나 양, 염소젖으로 만든 '타라크(Tarag)'는 요쿠르트와 같은 발효식품인데 

설탕이나 방향제, 과일 등의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아 천연 그대로의 발효맛 요쿠르트 같은 맛이 난다. 

'으름'은 서구식 버터인데 우유를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여  

윗부분만 떠내 응고시켜 덩어리에서 물기만 빼고 뭉친 것이다. 

으름은 가축이 오줌보나 가죽 주머니, 나무통 등에 넣어두고 겨우내내 먹는다고 한다. 

 

 

 

 

 

  우유나 양유를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여  

물기가 빠진 우유덩어리를 눌러서 잘라낸 우유과자를 '아롤'이라고 한다. 

탈지분유보다 기름기가 많아 더 끈적하고 찰진 아롤은  

식량이 부족한 겨울을 위한 장기 비축 식량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며 

몽골인의 보양식으로도 한몫을 톡톡히 하는 영양 간식이다. 

  

 

 

   

'수테차(Suteychai)'는 발효차를 끓여서 우유와 소금을 넣은 것으로 설탕 대신 소금을 넣은 밀크티라고 할 수 있다. 

수테차는 물 5~6리터에 마른 찻잎 한 국자 정도를 넣어 차를 끓이는데 찻잎을 건져내는 시기는  

마시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다르고 떫은 맛을 좋아하는 집안에서는 찻잎을 건져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 후 마유나 우유를 국자에 담아 눈 높이까지 들어올린 뒤 끓고 있는 찻물에 서서히 쏟아 붓는데 

한꺼번에 부으면 찻물이 갑자기 차가와져 맛이 변하기 때문이고 또 우유가 엉겨 멍울이 생기기 때문이다. 

제일 마지막에는 소금을 넣는데 몽골 초원에서는 염분 보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수테차는 짭쪼롬하고 비릿한 맛이 나긴 하지만 입안의 누린내와 뱃속의 기름기를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 

 

 

 

 

   

슬퍼도 술, 기뻐도 술인 몽골인들은 국민 1인당 연간 26리터 이상의 보드카를 마신다고 한다. 

몽골에서 술을 마실 때에는 만취하는 것이 예의이므로 꼭지가 돌도록 마시는 것이 몽골의 음주 풍습이고 

알코올 농도 39도 이상의 보드카를 마셔대다 보니 늘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거리에는 만취해서 비틀거리거나 주사를 부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양고기만 먹을 것 같은 몽골에도 인스턴트 음식이 엄연히 존재한다 

미스터 치킨을 테이크 아웃하면 이렇게 몽골판 맥심같은 남성전문잡지도 끼워서주는 것이 재미있다. 

맛은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편인데 몽골에서 닭고기 값은 쇠고기의 무려 5배나 된다고 한다. 

몽골에서 가장 비싼 고기는 닭고기이고 그 다음으로 돼지고기, 쇠고기, 양고기, 염소고기, 낙타고기 순이다.

생닭 한마리에 한국돈으로 무려 18,500원 정도 한다고 하니  

몽골에서 치킨은 한번 먹으려면 엄청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고급 음식이다.

 

 

 

 

 

   몽골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곡식이 들어간 음식을 장만해준다. 

농산물 생산이 거의 없어 유목 생활을 햐야만 했던 몽골에서는 곡물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은 야채도 거의 먹지 않았는데 야채는 가축들이 먹는 초원의 풀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울란바타르의 호텔이나 고급 식당에서는 각가지 채소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걸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야채는 중국에서 수입해오기 때문에 상당히 비싼 음식이다. 

비싸고 귀한 야채를 흔쾌히 대접해주었던 몽골의 친구들에게 감사드리며

간략하게나마 몽골 음식 소개를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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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가도 끝없는 초원이 펼쳐지는 몽골 초원.

푸른 초원과 함께 몽골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파란 하늘이다.

'뭉크 탱그린'이라 부르는 파란 하늘은 몽골인들에게는 단순한 창공의 의미가 아니라

하늘 그 자체가 초월적인 힘, 즉 신성을 가지는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또 몽골인들은 나무, , 바위 등 모든 사물에 정령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정령의 심기를 거스르면 큰 해를 입는다고 생각한다.

 

열악한 자연 환경과 함께 갈등이 심했던 종족 역사 속에서 살아 남았던

몽골인들이 영원히 기댈 수 있는 곳은 오직 신(神) 뿐이었으므로

전통이 말살되었던 사회주의 시기에도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굳건히 지켜왔다.

 

 

 

 

 

16C에 라마불교가 전파된 이후 정령을 섬기던 많은 몽골 사람들은 불교를 믿게 되었는데  

일반 불교와 마찬가지로 환생과 고통으로부터 각 개인을 구원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라마불교(티벳불교)오늘날 몽골 국민의 90% 이상이 믿고 있는 종교이다.

 

 

 

 

20C 초 몽골에는 수백개에 이르는 불교 사원이 있고 남자의 30%가 수도승일만큼 번성했다는데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공산주의가 반 종교 캠페인을 벌인 이후

사원의 연계적인 체계가 무너지고 많은 수도원들이 문을 닫게 되어 

1990년까지 오직 간단사원(Gandan in Ulaanbaatar)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1990년에 이르러 민주주의가 다시 재건되기 시작하자 종교의 자유도 허락되어 

100개 이상의 수도원이 다시 문을 열었으며 기독교, 이슬람교도 종교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의 90%가 라마불교를 믿고 있긴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몽골인들의 삶을 지배하는 종교는

수천년 동안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종교였던 샤머니즘이다.

 칭기즈칸도 무당에게 전쟁에 대한 자문을 구할 정도로 샤머니즘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오늘날에도 몽골 북쪽 지역에서는 샤머니즘이 불교와 혼합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 무당들이 신을 몸안으로 불러들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몽골 무당은 자신의 영혼을 몸밖으로 내어보낸다.

몽골 무당은 혼수 상태와 비슷한 탈자아 상태에서 무당의 영혼이 몸으로부터 빠져 나와

하늘과 땅 속, 물 속을 자유자재로 다니며 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초원을 다니다보면 돌이나 흙무덤 위에 버드나무 가지를 꽂고 푸른 천을 둘러놓은 것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한국의 성황당과 비슷한 '어버(어워, Ovoo)'이다.

 

 

 

 

 

어버는 마을의 수호신이요, 초원의 이정표이자 재앙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는데

몽골인들은 학식, 지위,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어버 앞에서 재난 방지와 가축의 번성을 위해 기도한다 

과거 전장에 나가는 장수는 말머리를 베어 성황당에 바치고 승전을 기원했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도 몽골에서는 먼길을 떠나기 전 성황당을 들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성황당의 유래 중 가장 그럴싸한 것은 들판의 이정표 대신 생기기 시작했다는 설이다.

가도가도 끝이 없어보이는 초원에서 방향을 잃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러다가 어버를 만나면 가까운 곳에 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반가움에 환호를 지르게 된다.

지금도 구역의 경계에는 어버가 서 있어서 길을 가던 사람들은  말이나 차에서 내려

어버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세바퀴 돌고 흩어진 돌이 있으면 모아서 다시 쌓아 올리며 소중히 다룬다.

 

 

 

 

나담축제 때는 성황당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어버제'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정월대보름에 지내던 동제와도 비슷한 의식이라고 한다.

 

 

 

 

최근 몽골 정부는 문화재 보호정책을 펴면서 어버를 복원하기도 하면서 관광용 어버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고......

 

 

 

 

몽골의 사원이나 마을 어귀에는 우리나라 선돌과 흡사한 모미가 서 있는 것도 눈에 뜨인다.

 

 

 

 

모미는 말뚝 모양의 바위에다 얼굴 형태를 그려놓은 것이나 사람의 모습을 본따 만든 것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모미를 만나는 사람들은 둘러친 파란 천에다 몽골의 화폐인 투그릭을 꽂으며 가족의 평안을 빈다.  

현재 몽골의 국교는 라마불교(티벳불교)지만 헌법상 종교 및 신앙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다.

몽골인의 90%가 라마불교를 신봉하며, 나머지 5%는 이슬람교도가 차지한다.

그리고 1990년 이후 개신교 및 가톨릭 등이 전파되어

기독교 신자가 약 2%(4만 명 추산)이고, 나머지 3%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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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의지할 식량이라고는 가축 뿐인 몽골인들의 주식은 고기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몽골인들은 서구인들처럼 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고 한다.

몽골인들의 주식은 유제품이며 고기는 부족한 유제품을 보충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몽골인들은 가축의 젖으로 무수한 음식과 유제품을 만들어내는데

우유로 치즈나 버터는 물론이고 아이락, 타라크, 으름, 아롤.....등

 10여가지의 음식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몽골인들은 초원에서 하루 평균 가축의 젖을 30~40리터 정도 채유하는데

이는 일가족이 마시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므로 

모든 가축의 젖은 장기보관과 소독을 겸해 끓이거나 발효를 시킨다.

 

 

 

 

몽골에서 가장 보편적인 유제품은 우리들이 '마유주(馬乳酒)''라고 부르는 '아이락(Airag)'인데

아이락은 말젖을 가죽 부대에 넣고 나무 막대기로 밤새 저어 발효시킨 술이다.

마유주라고 불리우기도 하지만 사실 알코올 성분은 약 6~7도 정도여서

몽골인들은 아이락을 술의 개념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암말의 젖은 젖소의 우유보다 비타민C가 세배 이상 들어있어서 

식사 대용이나 최고의 영양식으로 사랑받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여름에는 한 사람당 매일 3~5리터 정도의 아이락을 마신다고 하는데

아이락의 맛은 첫맛은 약간 비릿하고 시큼한 것이 마치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자꾸 마시면 고소함이 입에 배어 자꾸 찾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소나 양, 염소젖으로 만든 '타라크(Tarag)'는 요쿠르트와 같은 발효식품인데

 설탕이나 방향제, 과일 등의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아 천연 그대로의 발효맛 요쿠르트 같은 맛이 난다.

'으름'은 서구식 버터인데 우유를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여

윗부분만 떠내 응고시켜 덩어리에서 물기만 빼고 뭉친 것이다.

으름은 가축이 오줌보나 가죽 주머니, 나무통 등에 넣어두고 겨우내내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건조된 우유 과자는 '아롤(Aruul)'이라고 하는데

초원의 게르에서 아롤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제일 먼저 우유나 양유, 염소젖을 솥에다 담고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인다.

 

 

 

 

우유가 끓기 시작하면 바가지로 끓고 있는 우유를 한바가지  떠서 위에서 아래로 주르륵~따르기를 계속한다.

 

 

 

 

이때 우유를 따르는 바가지를 한껏 높이 들어 높은 곳에서 우유를 주르르~~ 떨어지게 하는데

 이렇게 하면 나중에 만들어진 아롤이 더 쫄깃해진다고......

 

   

 

 

우유를 오래 끓여 윗부분이 엉겨붙을 정도로 진하게 끓여지면 

물기가 빠진 우유 덩어리를 큰 그릇에 담고 손으로 칼국수 반죽하듯 여러번 주물러 덩어리를 만든다.

 

 

 

 

덩어리가 된 우유 덩어리는 베 주머니에 넣어 흩어지지 않도록 꾸욱꾹 눌러서 잘  응고시킨 후

 

 

 

 

가는 실을 이용해서 우유 덩어리를 세심하게 잘라내는데

칼로 자르는 것 보다 이렇게 실로 잘라내면 흩어지지 않고 더 깔끔하게 잘라진다.

 

 

 

 

실을 사용해서 잘라낸 우유 덩어리를 다시 깍둑썰기하여 햇빛에 말리면

 몽골인들이 좋아하는 영양 간식 우유과자 아롤이 되는 것이다.

 

 

 

 

탈지분유보다 기름기가 많아 더 끈적하고 찰진 아롤은

식량이 부족한 겨울을 위한 장기 비축 식량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며

몽골인의 보양식으로도 한몫을 톡톡히 하는 영양 간식이다.

 

 

 

 

잘 마른 아롤은 엄청 딱딱한데 입에 넣고 베어물면 너무 딱딱하여 이가 아플 정도이다.

딱딱하게 굳은 아롤은 입 안에 넣고 침으로 녹여 먹어야 한다는데

일부 몽골인들은 아롤을 씹어 먹으면 치아가 튼튼해진다고 아이들에게 계속 먹인다고 한다.

아롤 중에서도 설탕을 뿌려 말린 아롤은 어린이의 간식으로 최고 인기라고......

 

 

 

 

여름철 초원에서는 게르마다 지붕 위에서 아롤을 말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있다는데

몽골인들은 아롤이 널려 있는 지붕을 쳐다보면서 멀리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릴적 추억을 되살린다고 한다.

 

 

 

 

초원의 게르 안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던 아롤은 요즘은 공장에서 편하게 만들어져서

어느 집을 가든지 손님 대접상에서 아롤이 나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투브 초원에서 맛본 아롤이 생각나 몽골을 떠나던 날 수퍼마켓에서 아롤 한 봉지를 사가지고 왔다.

 

 

 

 

완제품으로 나온 아롤은 집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아롤보다는 덜 딱딱하고 크기가 작아서 먹기도 쉬웠다.

하지만 게르 안 화덕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순수 우유과자 아롤에 비해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수도 없이 우유를 높이 떠서 따르고 우유 덩어리를 주물러  직접 손으로 잘라 말리던 그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투브 초원 게르 안에서 베어물던 고소한 아롤이 불현듯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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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울란바타르 동쪽 끝 수도에서 약 50km 떨어진 날라이흐 지구는

인구 3만명의 위성 도시로 주로 도시 빈민층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탄광촌이 있던 이곳은 석탄 산업의 사양화로 탄광은 폐허가 되고

주민들은 어려운 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는데

지금은 한국의 영향을 받아 새마을운동을 힘차게 펼치고 있는 시범마을이 되었다.


 

 

 

날라이흐에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모두가 신기하기만 하다.

집들은 드문드문 눈에 뜨일 뿐, 가도 가도 끝없는 초원과 저 멀리 바라보이는 민둥산들의 연속이다.

 

 

 

 

가끔 가다 이렇게 물웅덩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물이 귀한 초원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생명의 물이다.

 

 

 

 

초원 한가운데로 난 도로를 한참 가다 보니 하늘이 어두워지고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한다.

 

 

 

 

갑자기 웬 소나기? 하며 창 밖을 자세히 보니 빗방울이 굵어도 너~~무 굵다.

소나기가 아니고 하늘에서 얼음덩어리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박이다!

 

 

 

 

마치 하늘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양동이로 얼음 덩이를 내리쏟는 듯 떨어지는 우박의 기세는 맹렬하다.

버스 위로 쏟아지는 우박의 소리도 정말 장난이 아니다. "두두두두두두......" 버스 천장을 뚫기라도 할 기세이다.

피할 곳도 없는 초원에서 길을 가다 이런 우박을 만난다면 머리에 혹이 몇개라도 날 것 같다.

 

 

 

 

갑자기 내리퍼붓는 우박으로 인해 버스도 달릴 수 없어 한참이나 제자리에 멈추어 기다려야 했다.

창 밖으로 길바닥을 보니 헐~ 바닥에 하얀 콩을 쏟아부은 듯 초원 전체가 하얀 얼음 덩어리로 뒤덮였다. 

한국 땅에서는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우박을 몽골에 와서 만나게 되다니 이것도 여행이 준 선물이 아닐까?

 

 

 

 

우박이 그치고 하늘의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물러가더니

아...! 저 멀리 초원 끝자락에 희미한 무지개가 나타났다. 그것도 쌍무지개이다.

 

 

 

 

차가 한참이나 달려가도 쌍무지개는 여전히 차를 따라온다.

눈앞이 안 보이도록 세찬 우박과 쌍무지개를 하루에 다 만나게 되다니....... 대박이다!

 

 

 

 

몽골어로 무지개는 '솔롱고'라고 한다.

몽골에는 특히 솔롱고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서연이, 민지, 예은이 정도로 흔한 여자 이름인가 보다.

 

그런데 몽골에서는 한국을 가리켜 '솔롱고스(Solongos, СОЛОНГОС)라고 부른다고 한다.

남한은  'Umnud Solongos', 북한은 'Hoit Solongos’라고 부르고 있는데

솔롱고스는 '무지개 뜨는 나라'라는 뜻이니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는 원나라가 고려를 정벌하고 고려의 아름다운 공주를 왕비로 데려 오면서부터

왕이 사랑하는 공주가 살던 고려를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고 불렀다는 설이다.

정확한 연유인지 알 수는 없으나 예나 지금이나 몽골인들에게 솔롱고스는 

상당히 동경하면서도 친근한 나라 이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지개의 나라 솔롱고스(Solongos), 그 뜻도 어감도 너무나 좋은 이름이다.

솔롱고스에서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듯 광활한 초원에 걸려 있던 무지개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참동안 잊혀지지 않는 내 마음의 솔롱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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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향한다.

수도 울란바타르의 동쪽 끝에 위치한 날라이흐 지구로 가기 위함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초원을 한시간 이상 달려가니 저 멀리 넓게 펼쳐진 마을이 눈 앞에 나타난다. 날라이흐 지구다.

 

 

 

 

울란바타르의 한 구(區)에 속하는 날라이흐는 인구 3만명 정도로 주로 도시 빈민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니 들어가기도 전에 인부들이 앞길을 막는다. 진입로를 막고 도로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 공사가 거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라 도로를 운행하던 모든 차량은 임시도로로 우회해야 했다.

제대로 닦여지지 않은 임시도로로 인해 차량들이 지날 때 마다 모래 먼지가 뽀얗게 사방으로 날린다.

차창을 닫아도 스며드는 미세한 먼지로 인해 목안이 간질간질해진 승객들은 얕은 기침 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마을 어귀 주유소까지 이르니 맞은 편에 엄청나게 큰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몽골어인지라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날라이흐가 '새마을운동 시범마을'이라는 표식이란다.

 

 

 

 

날라이흐의 풍경은 초원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고 많이 삭막하게 보인다.

예전에는 탄광마을이었던 이곳은 몽골에서 석탄 산업이 제일 먼저 이루어진 곳인데

지금은 우리나라처럼 석탄 산업이 사양화되어 탄광은 거의 버려진 상태이라고......

 

 

 

 

이 마을은 이제 우리나라의 영향을 받아 새마을운동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 중인데

날라이흐는 한국 새마을 운동 단체에서 지원을 받는 '새마을 운동 시범 마을'이라고 한다.

 

 

.

 

몽골에서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건 지난 2004년.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받아들여 경제 성장을 준비하는 몽골은 지역 사회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방 정부들은 한국과 새마을운동 협약을 맺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경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촌이 새마을 운동으로 마을길이 넓어지고 구불구불하던 논길이 반듯하게 바뀐 것처럼

새마을 운동을 받아들인 날라이흐 지구도 우물이 없던 마을 입구에 우물이 생기고

콘크리트 벽돌 공장이 세워져서 천막집 게르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현대식 주택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날라이흐 여러 마을에는 회의를 위한 새마을회관도 지어지고 어린이를 위한 독서실도 마련될 뿐만 아니라

 외곽에도 가로등이 설치되어 지역내 야간 교통사고와 범죄도 크게 줄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많이 바뀐 것은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다'는 주민들의 의식인데

추운 겨울을 무사히 잘 넘기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새마을운동의 확산으로 인해 '잘 살아 보자'는 의식이 몸에 배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교회나 학교 등지에서 친선 봉사 활동을 오기도 하는 날라이흐는 

대전광역시 서구와도 자매 결연을 맺는 등 한국과는 여러 방면으로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관공서와 은행, 상점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날라이흐의 메인 스트리트는 울란바타르 못지 않은 분위기이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빠르고 무엇보다 활기가 넘쳐 보인다.

 

 

 

 

공산주의 시절 소련의 영향을 받아 키릴문자(Cyllilic Alphabet)을 쓰는 몽골이라

간판만 보면 러시아 어느 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도 불러 일으킨다.

 

 

 

 

거리에는 휴지 하나 없이 깨끗한데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메인스트리트 한가운데 소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주택 앞이든 가게 앞이든 풀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소들이 점령하고 열심히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심지어 구청사나 구민회관 같이 보이는 크고 번듯한 건물 앞 잔디에도

털석 주저 앉아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소들에게 점령을 당했다. 역시 이곳은 몽골임이 분명하다. 

 

날라이흐 시내를 한바퀴 돌아 본 후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잠시 멈춘 버스를 향해 V자를 그려주는 사람들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답다.

나아진 생활로 인해 옷차림도 깨끗한 이곳 주민들.

순박한 그들의 얼굴에도 남다른 여유가 흘러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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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운동과 달리 창시자나 그 기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는 골프는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중국 등의 나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기원설이 있으나

지금 현재로는 스코틀랜드 기원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흔히들 말하기를 스코틀랜드의 양치기 소년들이 양떼를 돌보다가 지루해지면

스틱으로 돌을 쳐서 들토끼 구멍에 돌을 넣으며 즐기던 놀이가 골프의 시초라고 말한다.

'골프(Golf)'란 말도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언어로 '치다'인 '고프(Gouft)'가 그 어원이라고 하는데

들토끼가 잔디를 깎아 먹어 평탄하게 된 곳을 '그린(Green)'이라고 불렀고

그린과 그린을 연결하는 양떼들이 밟아 평탄해진 넓은 길을 '페어웨이(Fair way)'라고 불렀다.

 이 때의 그린이 바로 오늘날 '퍼팅 그린'이 됐고, 양떼의 길은 '페어웨이'가 됐다고 전한다.

초원의 양치기 소년이 들토끼 구멍에 스틱으로 돌을 쳐서 넣으며 놀았던 놀이가 골프의 시초라면

몽골 초원이야 말로 스코틀랜드 초원보다 골프 치기에 더욱 적합한 곳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데......

 

몽골 현지인들의 말로는 몽골에는 골프장이 두군데 있다고 한다.

하나는 울란바타르 나이람달 캠프 근처에, 또 하나는 테를지 국립공원에 소재하고 있는데

몽골 여행 중 우연히 두 군데의 골프장을 다 둘러볼 기회가 있어 잠시 소개해 드린다.

 

 

 

 

울란바타르를 떠나 나이람달로 가기 3km 전 쯤 되는 도로변에 위치한 울란바타르 골프 클럽.

'UB RESORT GOLF CLUB' 이라고 쓰인 작고 소박한 팻말은 정말 여기가 정말 골프장 맞아? 하는 생각을 먼저 들게 한다.

 

 

 

 

울란바타르 골프장은 리조트를 겸하고 있는데 파란 하늘 아래 줄지어 늘어선 원색의 방갈로들이 너무 귀엽게 보인다.

 

 

 

 

골프장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클럽 하우스는 몇 사람 서지 않아도 로비(?)가 꽉 찰 정도로 그 내부가 좁디 좁다. 

 

 

 

 

 

골프장 입구에는 장승 모양의 조형물들이 여기 저기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칭기즈칸과 그 아들들을 연상케 하는 이 조형물들은 우리네 장승처럼 하나의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몽골 혁명의 아버지 수흐바토르가 즐겨쓰던 모자를 쓴 장승도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섰다.

 

 

 

 

클럽 하우스를 나와 눈 앞에 펼쳐지는 골프장을 살펴보니 와~! 정말 휑할 정도로 탁 트였다.

 

 

 

 

광활한 초원과 나즈막한 구릉지들을 잘 활용한 이곳은 9홀 규모의 크지 않은 골프장이다.

 

 

 

 

골프장에는 이렇게 게르들이 군데 군데 들어서 있는데 이 게르들은

유목민들의 게르가 아니고 골프장 이용객들을 위한 게르 리조트이다.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 아래 펼쳐진 하얀 게르들은 외국인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게르 내부는 비교적 시원한데 게르 덮개까지 활짝 들어올리면 바람이 솔솔 들어와 무지 시원하다. 

 

 

 

 

강풍에 게르가 날아가지 않게 끈에다 돌을 단단히 묶어놓은 모습이 특히 재미있게 보인다.

 

 

 

 

게르 리조트 중에는 이렇게 럭셔리함 그 자체인 게르도 한채 보인다.

이 정도의 게르이면 호텔로 치면 로열 스위트룸에 비교할 수 있을 듯.......

 

 

 

 

금방이라도 칭기즈칸이 게르 문을 밀고 나올 듯한 포스를 풍기는 럭셔리 로얄 스위트 게르는

할흐 부족의 상징물을 하늘 높이 세우고 흩날리고 있어 더욱 멋스럽게 보인다.

 

 

 

 

게르 하우스를 구경하고 오니 여직원이 골프채를 양손에 움켜 쥐고 분주히 가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이어서 공도 몇 바구니 드라이빙 레인지로 옮겨진다.

 

 

 

 

더운 날씨에도 드라이빙 레인지에 서니 시야가 탁 트이고 바람도 솔솔 부는 것이 청량감마쳐 느껴진다.

 

 

 

 

처음 골프채를 쥐어본다는 몽골 대학생.

포즈는 엉성하지만 놀랍게도 칠 때 마다 번번히 장타를 날려보낸다.

 

 

 

 

 무더위에 러프인지 그린인지 구별도 안 되는 곳에서 퍼팅에 열중하는 여자분도 보인다.

역시 골프에 미치면 더위나 햇볕 쯤은 아랑곳 하지 않게 되나 보다.

 

 

 

 

명색이 골프장인데 골프장 바로 옆까지 소와 양들이 들어와 열심히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름 한철 가축들에게 열심히 풀을 뜯겨야 젖이 많이 나 추운 겨울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유목민들에게는

풀이 많이 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초원이든 골프장이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지만 저렇게 골프장 안쪽까지 들어와서 풀을 뜯다가

 신나게 날아간 골프공에 머리라도 맞는 날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 않을까?

소나 양들의 안전이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몽골의 유명 휴양지 테를지 국립공원에도 9홀 규모의 골프장이 있다.

이곳의 클럽 하우스는 울란바타르 - 2 호텔인데 울란바타르 리조트 골프 클럽에 비해 규모가 훨씬 크다.

 

 

 

 

하지만 이곳의 골프장에서도 골프 치는 사람들의 모습보다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몽골 사람들이 보기에는 골프장도 소와 양들에게 풀을 뜯겨야 하는 신성한 초원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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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식당에서 몽골인 친구가 밥을 먹다 말고 조용히 나간다.

당신이 어딜 가냐고 물었더니 그는

"말을 보러 간다."라고 말한다.

이럴 때 당신의 반응은?

 

A.  조용히 먹던 밥을 먹는다.

B.  갑자기 무슨 말을 보러 가냐며 주위 사람에게 마구 묻는다.

C.  말을 보고 싶어 같이 따라 나간다.

D.  말은 이미 많이 봐서 질렸다고 말한다.

 

(신현덕 저. '몽골'에서 인용)

 

여러분은 어떤 답을 선택했는지?

정답은 A 번이다.

몽골에서 '말을 본다'란 말의 뜻은 '화장실에 간다'라는 뜻이다.

예전부터 말은 대부분 게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서 말떼 속으로 들어가 볼 일을 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

 

 

 

 

몽골에서 화장실을 의미하는 단어는 '조르동'인데 도시에서도 이런 말은 잘 쓰지 않고

'모리 하리이(말을 보자)', 또는 '모리 하르마르 바인(말을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

품위있는 몽골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인정된다고 한다.

심지어는 현대식 호텔에서 식사하면서도 '말 좀 보고 오겠다'고 말한다고 하니

앞에 앉은 사람이 '말보러 간다'라고 말할 때 '무슨 말을 보러가냐'고 묻거나 따라나서면 낭패다.

 

중국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 중 대다수는 화장실 사용 때문에 많은 곤욕을 치른 일을 이야기하곤 한다.

필자 또한 중국 여행 중 화장실 때문에 황당한 일을 겪은 일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몽골에서 겪은 황당한 화장실 경험에 대해선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

 

사실 몽골에서는 대도시를 벗어나면 화장실이 따로 없다.

눈에 보이는 초원과 벌판이 모두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인적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멀리 떨어져 땅이 약간 움푹 들어간 곳을 찾아 거기서 일을 보던지

돗자리나 양산, 치마 같은 것으로 임시방편을 하고 볼일을 보는 수 밖에 없다.

 

 

 

 

유명 관광지나 유적지 같은 곳에는 화장실이 있기는 하지만

본 건물에는 화장실이 아예 없고 수십 미터 멀리 떨어진 한쪽 벌판에 자리잡고 있기가 일쑤이다.

화장실의 형편도 처참하기 이를데 없는데 나무판대기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데다 문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몽골 최고의 관광지인 테를지 국립 공원에도 길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있던 화장실은 문이 아예 없었는데

이곳에서 맞은편 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볼일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몽골의 상류층들이 드나드는 울란바타르 골프장에도 화장실은 제일 멀리 떨어진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화장실의 참혹함은 이곳이 정말 골프장의 유일한 화장실인가 의심될 정도였다.

 

 

 

 

울란바타르의 대표적인 휴양지 만주시르 사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간혹 문이 있어도 문고리는 없는게 대부분이라 한사람은 망을 보고 한사람은 볼일을 보아야 하는데

혼자서 일을 볼 경우에는 볼일을 보다가 발자국 소리만 나도 "오지 마세요~!"라고 큰 소리를 질러야 한다.

짖궂은 남자들 중에서는 예쁜 외국인 여성이 화장실에 가면

 "안 돼~!"라는 비명 소리를 듣기 위해 일부러 가까이 접근하기도 한다고.......

 

 

 

 

그렇다고 몽골의 화장실이 모두 다 이렇게 끔찍한 형편은 물론 아니다.

울란바타르의 현대식 건물에서는 세련되고 청결한 화장실에서 편안하게 볼일을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새소리를 들으며 산과 초원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경관을 마음껏 감상하며

'말보러 갔던 일'은 몽골이 아니면 쉽게 체험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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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란바타르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삼림 속에 위치한 나이람달 캠프.

몽골어로 친선(親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나이람달(Nairamdal) 캠프는

울창한 삼림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최고의 장소에 위치한 대규모 휴양지이다.

  

캠프의 시설은 매우 다양한데 중앙광장의 게르를 주제로 한 조형물을 중심으로

국제어린이센터, 회의장, 운동 시설, 방갈로, 게스트하우스 등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주변에는 자작나무가 울창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휴가를 보내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나이람달 캠프에는 다양한 규모의 방갈로 등 여러 형태의 숙박 시설이 있지만

특히 개울가에 위치한 동쪽에 둥그런 지붕을 가진 하얀 게르(Ger)가 제일 눈에 뜨인다.

푸른 잔디 위에 세워진 게르들은 몽골 전통 주거 양식을 체험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이다.

  

 몽골인의 유목 생활 양식과 순탄치 않은 날씨에 가장 적합한 주거 형태인 게르에 대해서는

이미 몇번의 포스트로 소개해 드린바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게르 관련 포스트 :   아파트와 섞여 있는 몽골 천막집 게르

몽골 초원에서 만난 천막집 게르(Ger) 짓기 현장

몽골 초원의 천막집 게르(Ger)가 궁금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제일 가운데 위치한 게르는 주변의 다른 게르와는 그 포스가 남다르다.

규모도 다른 게르보다 클 뿐 아니라 게르를 받쳐주는 기단도 아주 럭셔리하다.

 

 

 

 

출입구도 노란색 문양의 다른 게르와는 차별화되어 있다.

대제국을 호령하던 칭기즈칸의 위엄이 느껴지는 이 게르는 아마도 게르계의 스위트룸(?)인가 보다.

 

 

 

 

스위트룸 게르에 비길바는 아니지만 오늘 하루 게르 생활을 체험해볼 게르도 제법 마음에 든다.

 

 

 

 

게르 앞에 서니 전통적인 문양이 새겨진 노란색의 문이 이방인을 맞이한다.

몽골인은 노란색을 신의 색이라고 생각하며 금기의 상징으로 노란색을 사용한다.

모든 게르의 문은 남쪽으로 나 있는데 이는 햇빛을 잘 받고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다. 

 

 

 

 

게르의 문을 밀고 들어가니 가운데는 커다란 난로와 몽골 전통 문양의 테이블이 있고

가장자리로 가지런히 놓인 침대가 오늘 하루를 묵어갈 주인을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다.

 

 

 

 

게르의 출입구와 마찬가지로 의자도 노란색이다.

나즈막한 의자는 딱딱하지만 앉아보면 의외로 안정감이 있고 편안함마져 느껴진다.

 

 

 

 

취사 뿐 아니라 영하 40도 이하인 외부와 단절된 게르 내부에서 난방을 담당해주는 난로는

게르 중앙에서 게르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난로는 그 연통이 게르 중앙의 둥근 천정인 터너(toono)와 연결되어 있는데

난로 위 둥근 터너에 뚫린 구명은 하늘과 연결된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신에게 의존하는 몽골인들은 난로 연통이 게르 안의 자신과 신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라고 믿기 때문에

 게르 안에서 신성시되는 이 난로를 모독하는 행동은 주인을 모독하는 것이나 같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유목민의 게르에서 난로에 물을 붓거나 쓰레기를 넣는 것, 불을 쑤시거나 타 넘는 행동은 행동은 주의해야 할 일.

 

  

 

 

 

 

 

관광객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인 이 게르는 유목민의 게르에 비해서 내부가 상당히 화려하다.

둥근 지붕인 터너(toono)나 기둥인 바가나(bagana)를 비롯해서 게르 내부의 천들도 색의 조화가 뛰어나다.

 

 

 

 

침대 역시 전통적인 몽골 침상인데 보기는 낮고 딱딱해 보이지만

누워보면 상당히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을 준다.

 

 

 

 

특히 100% 양털로 된 담요는 가벼우면서도 따스하기 그지없어서

쌀쌀한 몽골의 여름밤을 포근하게 감싸주기에 그만이다.

 

 

 

 

낮에는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고 하늘이 그리도 푸르더니 저녁 무렵이 되니 갑자기 구름이 두텁게 깔리기 시작한다.

게스트 하우스 관리인이 곧 비가 올 것 같다고 하면서 아이를 게르 지붕 위로 올라가게 한다.

낮에는 채광과 통풍을 위해 열어놓았던 게르 지붕의 천을 단단히 덮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르의 골격이나 지붕을 이루는 서까래는 상당히 가벼운 재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른이 올라가면 게르의 지붕이 무너지기 쉽기 때문에 반드시 몸이 가벼운 아이가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발 디딜 곳도 제대로 없는 게르의 지붕을 다람쥐가 나무를 오르듯 가볍게 올라간 아이는

익숙한 솜씨로 게르 윗부분을 천으로 잘 덮은 후에 줄을 타고 한번에 조르르 내려오는 재주를 선보인다.

  

아이가 게르의 지붕을 덮어준지 십여분 쯤 되었을까?

식사를 하러 다른 건물로 이동한 사이에 갑자기 우르르 꽝! 천둥 번개가 치더니

 눈 앞도 안 보일 정도로 강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마치 양동이로 내리 퍼붓는 것 같은 폭우는 30여분 이상 쉬지 않고 쏟아졌는데 

검은 하늘에 수만개의 서치라이트를 켜듯 하늘이 번쩍이며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탁 트인 하늘 이쪽에서 저쪽까지 한꺼번에 서너개씩 갈라지는 번개쇼는 비가 그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난생 처음 보는 화려한 번개쇼를 몽골의 산중에서 볼 수 있다는건 가히 환상적인 일이었다.

 

비가 그친 후 돌아오니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 부었는데도 게르 안에는 물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비닐로 덮은 것도 아닌데 폭우에도 게르 내부로 물이 새지 않았다는게 너무 신기했고

게르가 우수한 주거공간이라는걸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소나기가 그치고 나니 이내 맑은 하늘이 드러나고 하늘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총총히 빛난다.

한국에서는 이름만 들었지 한번도 보지 못한 은하수를 이곳에서는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게르 문에 기대어 앉아 쏟아질 듯 수많은 별들을 세노라면 가끔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는 별똥별도 만날 수 있었다.

이렇듯 나이람달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낸 하룻밤은 5성급 럭셔리 호텔 숙박에 못지 않는 환상적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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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에서도 여름은 여행의 계절이다.

몽골의 여름은 우리보다 많이 짧지 않을까? 궁금하시겠지만

몽골 정부가 난방을 중단하는 5월 15일~ 9월 15일까지를 대략 여름으로 보면 된다.

몽골 전통 축제인 나담축제를 전후한 7월 한달은 몽골의 관광 시즌이 절정에 달하는데

이 시기에는 울란바타르에 사는 몽골 사람들도 모든 일을 전폐하고

휴가를 얻어 귀향길에 나선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여름 휴가를 떠나 장기간 시골 별장에 머무른다는데

공산주의 시절 소련의 영향을 받은 몽골 또한 살기 어려워도 여름 휴양지에 머무르기를 즐긴다고 한다.

척박한 땅 몽골에서도 경치가 수려한 곳에는 어김없이 휴양지가 마련되어 있는데

유지 보수가 힘들어 낡은 채로 방치된 곳이 많아도 여름철에는 많은 휴양객들로 붐비곤 한다.

 

 

 

 

몽골 울란바타르 시내 구역을 벗어나 한두 시간 가다보면 넓은 초원이나 구릉지 여기저기에

장난감같이 예쁘게 지어진 집즐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이집들은 대부분 별장이라고 한다.

 

 

 

 

특히 몽골에서도 일부 신흥 부자들은 넓은 땅을 차지하고 별장을 짓는데

여름 한두달 내내 휴양지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몽골에서도 유명한 휴양지인 나이람달 캠프로 가기 위해 울란바타르에서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려가니

눈 앞에 몽골에서는 보기 힘들게 울창한 숲으로 뒤덮힌 산이 나타난다.

 

 

 

 

초원이 대부분인 몽골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맑은 물이 흐르는 울창한 삼림으로 둘러싸인 대규모 휴양지, 바로 나이람달 캠프다.

 

 

 

 

몽골어로 친선(親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나이람달(Nairamdal) 캠프는 청소년들을 위한 대규모의 캠프장인데

 

 

 

 

이곳에서는 맑은 공기와 함께 자작나무가 우거진 주변 산들의 풍광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시설은 매우 다양한데 중앙광장의 게르를 주제로 한 조형물을 중심으로

국제 어린이 센터, 대규모 회의장, 운동 시설, 방갈로, 게스트하우스 등

여러가지 회의 시설과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여름 한철을 보내기에 딱이다.

 

 

 

 

나이람달 캠프의 서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가족 단위 휴가나 MT에 적합한 

방갈로들이 알록달록한 지붕을 이고 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파란 하늘 아래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색색의 방갈로 지붕과 울창한 숲은 

투숙객들이 상쾌하고 편안한 휴가를 즐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특히 방갈로가 있는 언덕길을 따라 뒷산으로 오르는 길은 아침 산책을 하기에도 그만이다. 

 

 

 

 

산으로 오르면 여기가 과연 몽골인가? 의심될 정도로 나무가 빽빽이 서 있는데

 

 

 

 

한쪽에는 자작나무숲이 넓게 펼쳐져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한다. 

 

 

 

 

자작나무숲이 주는 신비함 때문일까?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들꽃조차 귀하고 반갑게 느껴진다.  

 

 

 

 

나이람달 캠프의 동쪽에는 울창한 수풀 아래 맑은 개울도 흐르고 있는데

개울가에는 규모가 아주 큰 게르들이 여기 저기 들어서 있어 풍치를 더해준다.

 

 

 

 

이곳의 게르는 몽골의 전통 게르를 체험할 수 있는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인데

제법 넓직한 게르는 여러 사람이 함께 숙박하기에 좋고 내부는 아늑하고 포근하기까지 하다.

 

 

 

 

자작나무숲이 우거지고 맑은 개울물이 흐르는 곳,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게르의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나이람달 캠프.

몽골의 전통 게르를 체험할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의 내부는 다음편 소개해 드리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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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는 몽골의 투브 초원에서 양잡는 현장을 깜짝 공개해드린 바 있는데

오늘은 양 한마리로 몽골 전통 요리 '허르헉((Horhog)'을 만드는 과정을 공개하고자 한다.

허르헉을 만들기 위해서는 초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놀던 양 한마리를 골라내야 한다.

초원에서 의지할 식량이라고는 가축 뿐인 유목민들에게 양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대상인데

귀한 손님이 자신의 집을 방문했을 때 손님을 대접하는 경우에만 잡을 수 있다.


관련 포스트 : 초원의 법칙 - 몽골 유목민의 양 잡기 현장 습격 리얼 리포트 

 


 

 

양을 잡을 때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칼로 양의 앞가슴을 5cm정도 찢은 후

찢은 틈새로 손을 넣어 심장 동맥을 갑자기 움켜쥐어 바로 숨통을 끊어버린다.

이것은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동물에 대한 미덕인데

피 한 방울 땅바닥에 흘리지 않고 양를 잡고 가죽을 벗기는 과정은 거의 신기에 가깝다.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양을 잡고 가죽을 벗겨낸 게르의 바깥 주인은

바닥에 양가죽을 넓게 펴 놓고 먹기에 알맞은 크기로 고기를 하나 하나 잘라낸다.

이때 뼈는 절대로 자르지 않으며 관절을 꺾어서 고기를 해체한다고 한다.

 

 

 

 

남자들이 양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먹을만한 크기로 자르는 동안 여자들은

손가락 사이에 창자를 끼고 훑어나가며 양의 창자 속에 들어있는 배설물을 하나 하나 뻬내는데

내장 속에 들어 있던 덜 삭은 풀에서부터 똥까지 빠져나와서 주변에는 시큼한 냄새가 진동한다. 

 

 

 

 

모든 과정에서 물은 전혀 쓰이지 않는데 몽골사람들은 고기를 물로 씻으면 본래의 맛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을 잡을 때는 땅 바닥에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잡는 것이 기술인데

양의 뱃속에 고인 피는 그릇으로 떠내어 커다란 그릇에 옮겨 담는다.

피를 받은 안주인은 피 한사발을 땅바닥에 뿌리는데 이는 대지의 신에게 주는 고수레인 듯......

 

 

 

 

양 뱃속에서 나온 피는 밀가루와 소금을 넣고 골고루 주물러 섞는다.

 

 

 

 

손으로 주물러 잘 섞은 피를 양의 창자 속에 넣고 익히게 되면 바로 오리지널 피순대가 되는 것이다.

 

 

 

 

양고기를 자르고 피순대를 만들고 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난로에 장작불을 피워 '초토'를 굽는다.

초토는 몽골 초원의 자갈로 탄소 함유량이 높아 허르헉의 맛을 좋게 하는 돌멩이이다.

 

 

 

 

이제 고기도 준비되고 순대도 만들어졌고 불도 준비되었으니 고기를 넣어 익힐 일만이 남았다.

 

 

 

 

고산지대인 몽골 초원은 기압이 낮아서 요리할 때 냄비 위에 무거운 돌을 얹어야 하는데

오늘 요리는 양 한마리를 다 넣고 익혀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압력솥이 준비되었다.

튼튼하기 이를데 없는 이 압력솥은 몽골의 군대에서 주로 사용되는 압력솥이라고 한다.

 

 

 

 

허르헉을 만드는 맨처음 과정은 큰 압력솥에다 물을 조금 붓는 것이다.

 

 

 

 

그리고는 압력솥 안에 기본 양념인 소금을 적당량 투입한다.


 

 

 

 

그 다음에는 난로의 뚜껑을 열고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초토를 꺼낸다.

 

 

 

 

불길 속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돌멩이 초토를 꺼내서 압력솥 안에 집어 넣는다.

 

 

 

 

달아오른 초토를 넣으면 압력솥 안의 물은 금방 피시시......하며 수증기가 피어오르는데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큼지막하게 자른 고기들을

초토와 함께 차곡차곡 압력솥 안으로 던져 넣고 정성스럽게 만든 피순대도 넣는다.

 

 

 

 

관광객들을 위해 만드는 허르헉은 감자, 당근, 양파는 물론 마늘까지 넣어 누린내를 없애도 먹기 좋게 한다는데

사실 몽골인들은 채소나 양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 와서 채소를 먹는 몽골인들도 늘어났지만 양파와 마늘 정도가 고작이라고 하는데

마늘도 구하기 힘든 초원의 오늘의 허르헉 양념은 '소금'과 조그마한 '양파 2개'가 고작이다.

 

 

 

 

물과 소금, 초토, 양고기와 피순대, 양파를 솥에 넣은 후에 난로에 다시 새 장작을 투입한다.

 

 

 

 

그리고는 뚜껑을 단단히 닫은 압력솥을 난로불 위에 얹어 놓는 것으로 준비 단계는 끝이 났다.

 

 

 

 

이렇게 해서 1시간 반 정도 푹 쪄야 한느데 양을 잡고, 고기를 자르고, 순대를 만들어 솥에 넣어 익히는데까지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리는 허르헉은 진정한 의미의 슬로 푸드가 분명하다

 

 

 

 

1시간 반 정도 지나 난로에서 압력솥을 내려도 뚜껑을 바로 열지 않고 한참 동안이나 뜸을 들인 후에 뚜껑을 열게 된다.

 

 

 

 

드디어 압력솥의 뚜껑이 열리고 커다란 솥 안에 들어 있는 허르헉의 실체가 드러났다.

사이사이에 까만 돌멩이 초토가 보이는데 솥 입구까지 고기와 순대가 놀랄만큼 가득히 들어있다.

 

 

 

 

양 한마리를 통째로 요리하면서도 왜 채소는 고작 양파 2개가 전부일까 생각했는데

사실 몽골의 전통적인 요리에서 채소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초원에서 고기보다 구하기 힘든 것이 채소이기도 하지만 

선입견을 가진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감자 등의 야채에서 땅 냄새가 난다면서 먹지 않는다고 한다.

몽골 사람들에게 채소는 전통적으로 가축들이나 뜯어먹는 목초같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어도 많이 뜨끈뜨끈한 고기와 순대를 집게로 집어 커다란 쟁반에다 덜어낸다.

 

 

 

 

고기를 다 덜어낸 후 압력솥을 보니 압력솥 안에는 기름이 둥둥 떠 있고

그 속에서 고기를 익힌 일등공신 초토가 헤엄치고 있다.

 

 

 

 

초토는 고기가 다 꺼내고 난 후에도 손에 한참 동안 쥐고 있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

초토를 손에 쥐고 이리 저리 굴리면 원적외선이 나와 혈압과 심장 등에 좋다고 하길래

 초토 하나를 얻어 손에 살며시 쥐어 보았다. 따스함이 온 몸에 퍼진다.

아....기분이 좋아진다. 몸도 절로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제 허르헉을 양손으로 들고 뜯어먹는 일만 남았다.

침을 굴꺽 삼킨 후 쟁반에 담긴 허르헉 한조각을 집어 입안에 넣고 살며시 뜯어먹어 본다.

그런데 헉.....! 엄청 질기고 또 느끼......하다.

그렇게 오래 익혔는데도 뼈에 붙은 살코기가 좀체로 뜯어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누가 보든말든 양손으로 뼈다귀를 붙잡고 마구마구 뜯어먹어야 했다.

 살점을 힘껏 물어 뜯어 입안에 넣고 질근질근 씹어 보니

헉.....!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와 느끼함이 온 몸을 파고든다.

 

몽골로 오기 전 습득한 정보에는 허르헉은 감자, 당근, 양파, 마늘 등 야채가 많이 들어가 느끼하지 않고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다더니 그 요리는 한국 관광객을 위해 특화된 퓨전 허르헉이었던가 보다.

양 한마리에 달랑 양파 2개만 넣은 초원의 허르헉은 완전 느끼함 그 자체였다.

김치나 겉저리와 함께 먹는다면 느끼하지도 않고 환상적일텐데......

새삼 한국 음식의 귀중함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언제 또 몽골에 와서 유목민이 만든 오리지널 허르헉을 먹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우리나라의 시큼한 막걸리 맛과 비슷한 아이락(마유주)으로 살짝 입을 축인 후에

접시에 놓인 허르헉 고기를 집어 꼭꼭 씹으며 음미하다 보니 어느덧 허르헉의 구수한 맛이 입안에서 느껴진다.

 

 

 

 

기름기가 엄청 많은 허르헉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는 모습도 보았다.

여러 사람이 먹고 난 그릇을 거의 물 두 바가지로 다 씻어낸다.

주방 세제를 푼 바가지에서 문지른 그릇은 다른 바가지의 맹물로 한번 슥 행궈내면 끝이다.

한국에서라면 경악할 일이겠지만 물 없이 살림하는 것이 몸에 배인 몽골여인에게는 물 두 바가지도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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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몽골 초원에서 양 한마리를 잡아서 분해하는 

현장의 전 과정을 리얼하게 담은 리포트입니다.

보시기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심신허약자나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보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몽골 투브(Tov)초원의 햇살 좋은 오후. 

무리를 지어 모여있는 말과 염소들 무리와 분리되어 양 한마리가 외롭게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푸른 하늘과 녹색의 초원에 서 있는 한 마리 양의 모습은 너무나 평화로운 한폭의 그림이다.

 

 

 

 

양에게 살며시 다가 가서 셔터를 살포시 눌러본다.

"넌 왜 무리에서 떨어져서 여기 혼자 있니?"

 

 

 

 

'메에.....' 소리 한마디도 내지 않고 가만히 노끈에 묶여 있는 양. 정말 순한 양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조금 있으니 게르 바깥주인이 나타나 무리와 더 떨어진 곳으로 양을 끌고 간다.

양을 끌고 가는 모습이 상당히 우스꽝스러운데 양을 대체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조금 있다 보니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게르 바깥주인이 양을 끌고 간 쪽을 흘깃 쳐다 보니...... 앗!

금방 끌고 간 양이 바닥에 쓰러져 있고 게르 주인 아저씨 손에는 칼이 들려 있다.

혼자 떨어져 있던 양을 지금 막 잡으려고 하는 중이 아닌가!

 

놀라서 그쪽으로 달려가 보니 바깥주인이 손을 저으면서 오지 말라는 시늉을 한다.

이방인이나 여자들이 양 잡는 것을 보면 안 된다는 풍습이라도 있는건가?

약간 멈칫하다가 다시 가니 더 이상 말리지 않는지라 양 잡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가 있었다.

 

 

 

 

몽골인들이 피 한방울 땅에 흘리지 않고 잡는 양을 잡는 방법은 신기에 가깝다.

양을 잡는 과정을 보면 먼저 양의 앞다리를 두손으로 잡아 땅 위에 눕히는데

약간 반항하던 양은 땅 위에 눞히게 되면 이내 반항을 멈추고 만다.

 

양을 늅히면 먼저 잘 드는 주머니칼로 양의 앞가슴을 5cm 정도 찢는데 

양은 가죽을 찢길 때 요동을 좀 치다가 금방 조용해진다.

그리고는 5cm 쯤 찢은 틈새로 손을 넣어 심장 부근으로 서서히 들이밀고는

심장 동맥을 갑자기 움켜쥐면 양은 비명 한 마디 지르지 않고 즉사해 버린다.

 

양을 잡을 때 빨리 숨이 넘어가도록 하는 것은 키우던 양을 위한 배려이자 기술인데

이때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양은 거의 반항을 하지 않는데 정말 '순한 양'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부분이다.

 

 

 

 

양이 완전히 죽으면 배 부분을 가슴팍에서 사타구니 부분까지 칼로 가른 후에

양의 뱃 속에 들어 있던 내장을 커다란 쟁반 위로 조심스럽게 들어낸다.

 

 

 

 

양의 심장과 간, 허파, 창자......등 내장을 하나도 빠짐없이 조심스럽게 들어내어 옮긴 다음

 

 

 

 

뱃속으로 흘러나온 피는 작은 그릇으로 퍼내어 내장과는 다른 작은 그릇에 옮겨 담는다.

 

 

 

 

양을 죽이고 내장을 들어내고 피를 퍼 담고 하는 동안에도 피는 한방울도 땅에 흘리지 않는 것이 양잡기의 법칙이다.

 

 

 

 

피는 순대같은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되어야 하기도 하지만

피를 흘리면 다른 짐승으로부터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죽을 살에서 분리해 내어야 할 차례이다. 먼저 엉덩이 부분의 가죽부터 칼로 도려내고

 

 

 

 

그 다음에는 배를 지나 목 부분까지 예리한 주머니칼로 도려낸다.

 

 

 

 

그리고는 살에서 가죽을 분리해내기 시작한다.

 

 

 

 

가죽을 흠없이 잘 분리해야 좋은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살과 가죽을 분리한다.

 

 

 

 

남자들이 양을 잡아서 가죽을 분리할 동안 여자들은

손가락 사이에 창자를 끼고 훑어나가며 양의 창자 속에 들어있는 배설물을 하나 하나 뻬내는데

내장 속에 들어 있던 덜 삭은 풀에서부터 똥까지 빠져나오면 주변에는 시큼한 냄새가 진동한다. 

모든 과정에서 물은 전혀 쓰이지 않는데 몽골사람들은 고기를 물로 씻으면 맛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 뱃속에서 나온 피는 밀가루와 소금을 넣고 골고루 주물러 섞는데

이것을 양의 창자 속에 넣으면 오리지널 피순대가 되는 것이다.

 

 

 

 

혼자 양가죽을 벗기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므로 옆에서 양의 다리를 잡아주면 한결 편리하게 벗길 수 있다.

 

 

 

 

반 정도 분리가 된 모습인데 양을 잡는데 양가죽을 벗겨내는 것이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죽과 살을 분리하는데는 다른 도구가 필요없다.

오로지 주먹을 꽉 쥐고 가죽을 밀어내기만 하면 되는데 이것도 상당한 힘과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양가죽을 다 벗겨내었으면 마지막으로 양의 발목을 끊어 부러뜨린다.

 

 

 

 

그리고는 한쪽 발목의 살점을 칼로 약간 벤 후 그 사이로 다른쪽 발목을 끼워 넣는다.

 

 

 

 

이렇게 하면 잡기가 수월하여 양을 들어 옮기는데 훨씬 편리하다.

 

 

 

 

벗겨낸 양털은 잘 말려서 팔게 되는데 몽골에서 양털 하나는 1,000투그릭(한화 1,000원)정도에 거래된다고 한다.

이 양털은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몽골의 혹한을 버티게 하는 좋은 옷감이 될 것이다.

 

 

 

 

양을 잡고 내장을 들어내고 가죽을 분리하고.......이 모든 과정이 약 30분 만에 초스피드로 진행되었는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양을 잡는 기술은 가히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오랜 세월 유목생활을 하며 터득해낸 그들만의 지혜인 듯......

 

다소 혐오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양잡는 과정을 하나 하나 사진 기록으로 남긴 것은

몽골 유목민의 가축 중에서도 양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대상으로 귀한 손님이 왔을 때만 잡는 것인지라

여행 중 양잡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체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잡은 양 한마리로 만드는 몽골 전통 요리 '허르헉' 조리 과정을 소개해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관련 포스트 : 헉! 소리나는 몽골 전통 양고기 요리 '허르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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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여름철은 어느 계절보다 바쁜 하루가 계속된다.

여름에는 가축들이 풀을 뜯고 젖을 많이 생산하기 깨문에

유목민들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가축의 젖을 짜기에 바쁘다.

젖짜는 일은 주로 여성들이 하며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시간에 맞추어 젖을 짜서는 겨울용 식량으로 비축해둔다.

 

여름철의 몽골 사람들은 특히 인심이 좋다고 한다.

여름에는 가축의 젖이 넘쳐나고 먹을 것이 넉넉하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유제품을 나눠주고 고기도 나눠주는데

외국 여행자들을 특히 신기해하여 음식을 베풀며 대대적인 환영을 한다.

 

 

 

 

초원의 유목민들에게 풀은 생명과 직결되는 귀중한 것이다.

그것은 초원의 풀을 이용하기에 따라 가축의 젖의 생산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초원의 유목민들은 소, 말, 양, 염소 등 여러 가축을 함께 먹이는데

 

 

 

 

가축에게 풀을 뜯기는 것도 조상 대대로의 전수받아온 비법이 있다고 한다.

 

 

 

 

그 비법은 가능한한 풀을 짧게 뜯어 먹을 수 있도록 가축을 순서대로 몰고 다니는 것이다.

 

 

 

 

소나 양, 염소를 같이 사육하는 유목민은 양보다 소가 먼저 나가며 풀을 뜯게 하는데

소는 풀뿌리 근처까지 뜯어먹지 못 하므로 소가 먹고 남긴 풀을 양이나 염소가 샅샅이 헤쳐 먹는다고 한다.

 

 

 

 

고비지방 같이 낙타와 양을 함께 유목하는 지방에서는 양에게 풀을 먼저 뜯기게 한다는데

양은 가시가 있는 풀을 먹지 않기 깨문에 거친 풀을 잘 먹는 낙타를 양 뒤에서 뜯어먹게 한다.

 

 

 

 

한낮의 더위로 인해 한동안 조용하던 초원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한다.

게르 그늘에서 쉬고 있던 유목민들이 모두 일어나더니 갑자기 염소들을 한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한다.

 

 

 

 

염소의 뿔을 잡고 끌고 오는 사람들 중에 태반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학기중에는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방학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부모의 일을 돕는다.

몽골의 여름 방학은 6, 7, 8월로 세달이나 되는데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기숙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와
부모를 도와 양을 치거나 말을 훈련시키거나 하며 자신들의 몫을 훌륭하게 해 낸다.

 

 

 

 

염소를 잡아서 끌고 오는 방법은 제각기 다른데

염소를 안고 오는 아이도 있고 염소의 한쪽 뿔을 잡고 끌고 오는 방법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염소의 목 위에 올라타고 끌고 오는 방법이 제일 좋다고 한다.

두 뿔을 손으로 잡고 염소 목에 올라타서 끌면 염소는 순순히 따라 오게 된다고......

 

 

 

 

끌고 온 염소는  서로 마주 보게 한 후  길다란 끈으로 굴비 엮듯 목을 엮는다.

 

 

 

 

아이들이 염소 뿔을 잡고 끌고 오면 엄마는 끌고 온 염소들을 한마리씩 굴비 두름 엮듯 엮어 나간다.

 

 

 

 

이제 상당히 많은 염소가 긴 노끈에 차곡차곡 묶여졌다.

 

 

 

 

목을 노끈으로 묶으면 답답해서 금방이라도 반항하고 도망갈 것 같은데

묶인 염소들은 전혀 요동도 않고 가만히 순종하고 있는게 참 신기하기만 하다.

 

 

 

 

 머리를 서로 마주하고 묶인 염소들의 뒤를 보면 엉덩이만 보여서 약간은 우스꽝스러운데

이렇게 염소를 굴비 두름 엮듯 엮는 이유는 바로 젖짜기에 수월하게 하려는 것이다.

 

 

 

 

유목민 아낙은 커다란 양동이를 염소 궁둥이 아래에다 놓고 젖꼭지를 사정없이 잡아당기며 젖을 짜낸다.

 

 

 

 

젖을 짜는 것은 여성들이 도맡아서 하는 일인데 여름에는 하루에도 10여 차례씩 쉬지 않고 젖을 짜낸다고......

 

 

 

 

울란바타르대학에 다니는 여대생도 염소 뒤에 앉더니 거침없는 손길로 염소젖을 쭉쭉 짜낸다.

차도녀인 그녀가 염소젖을 능수능란하게 짜내는 모습은 필자를 놀라게 했는데

우리나라 도시 학생들이 농촌 생활에 데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데 반해서

몽골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도 말타기, 젖짜기 등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한다.

 

 

 

 

젖을 다 짜내면 이렇게 궁둥이 부분을 손으로 살살 문질러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서 더 많은 젖을 생산한다고......

 

 

 

 

양이나 염소의 젖짜기보다 말의 젖짜기는 훨씬 더 중노동인 것 같다.

염소젖을 짤 때에 바닥에 편하게 놓았던 양동이를 무릎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고 말젖을 짜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한쪽을 보고 모여있는 양이나 염소와는 달리 말들은 스스로 머리를 한데 모으고

 엉덩이를 밖으로 내고 있는지라 노끈으로 묶을 필요없이 바로 젖을 짜내면 된다.

이렇게 짜낸 말젖은 아이락이라고 불리우는 마유주를 만드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하루종일 가축을 돌보고 젖을 짜서 저장식품으로 만들어 비축하느라 분주한 나날이 계속되지만

여름에는 말랐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유목민들의 생활에는 활기가 넘치며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는 유목민 아낙네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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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 승마 종합 마술 부문에서 영국 여왕의 외손녀 필립스 공주가

은메달을 획득하여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필립스 공주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외동딸인 앤 공주의 딸인데

앤 공주도 1978년 몬트리얼 올림픽 종합 마술 부분에 출전한 승마 선수이다.

이렇듯 승마가 귀족의 스포츠로 인식되어 있는 유럽에서는  

올림픽 승마 부문에서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형편인데

세계에서 말을 제일 잘 타는 민족을 꼽으라면 '몽골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인류 역사상 최초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아시아인의 긍지를 세계에 떨쳤던 칭기즈칸의 위업은

신출귀몰하는 전략과 기병을 앞세운 전력 덕분이었다고 하는데

정복 전쟁시 몽골 병사들은 1인당 8~9마리의 말을 몰고 쉬지 않고 진격했다.

전속력으로 정복지를 향해 달리다가 타고 있는 말이 지치면

말 위에서 다른 말로 바꿔 타면서 진격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했다고 한다.

 

적군과 접전할 때에도 적들은 몽골 병사들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는데

병사가 100여명이면 몰고 다니는 말 800~900마리가 병사들을 에워싸고 있어

적군들은 몽골 병사들에게 감히 접근할 수 조차 없었다고 한다.

또 적군들에게 포위가 되었을 때에는 고깃가루인 보르츠와 말젖으로 연명을 했으며

전투 식량이 떨어지면 늙은 말부터 잡아 먹으면 되었기 때문에

병참 문제가 해결되어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말을 잘 타는 몽골 민족이 올림픽 승마 부문에서 메달 하나도 따지 못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몽골의 국민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올림픽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기술만 익힌다면

올림픽 승마 부문의 메달은 몽골에서 싹쓸이해가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본다.

 

 

 

 

 몽골에서는 어딜 가든지 드넓은 초원에서 방목하고 있는 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말들은 긴줄을 매어 여러 마리를 굴비 엮듯 묶어둔 것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양쪽에 긴 기둥을 세우고 높이 줄을 매단 후 말고삐를 높이 매달기도 한다.

 

 

 

 

힘만 살짝 주면 금방이라도 풀릴 것 같이 매어둔 고삐.

말의 힘은 사람에게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센데 이렇게 묶여 가만히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또 많은 말들은 고삐도 묶어두지 않는데고 이리 저리 흩어지지 않고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초원에 불어오는 센 바람을 이기기 위한 지혜일까?

모두 머리를 한데 모으고 엉덩이를 밖으로 돌리고 떼를 지어 뭉쳐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말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말의 온순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얼마나 순수한 눈인지......

 

 

 

 

아름다운 동물이 많이 있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섹시한 동물은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초원 이곳 저곳에는 고삐도 없이 돌아다니며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초원의 천막과 게르를 배경으로 한데 모여 있는 말들과

 

 

 

 

사이좋게 데이트를 하며 풀을 뜯는 말들의 모습은 한폭의 평화로운 그림이다.

 

 

 

 

말무리 중에서는 이렇게 새로 태어난 망아지들도 눈에 많이 뜨인다.

 

 

 

 

 망아지를 어미말의 눈에 띄는 곳으로 끌고 오면 어미는 새끼를 보고 젖이 더 많이 돌게 되는데

망아지가 젖을 조금 빨고나면 망아지를 살짝 옆으로 끌어낸 뒤 주인은 어미말의 젖을 손으로 짜낸다고 한다.

 

 

 

 

어미의 젖을 맘껏 빨지 못한 망아지는 다리를 뻣뻣하게 세우고 잇몸을 드러내며 한껏 반항을 해 본다.

 

 

 

 

이윽고 진정이 된 망아지. 다시 줄에 매여 앉아 온순한 자태를 보여준다.

망아지 이마의 하얀 털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War Horse'에 나온 말과 너무 많이 닮았다.

이쁜 망아지야! 얼른 얼른 자라서 초원을 거침없이 달리는 멋진 말로 자라주렴!

 

 

 

 

가축의 젖 짜는 일을 다 마치고 나면 아이들과 아빠는 말을 타고 초원을 무한질주한다.

 

 

 

 

우리나라 제주마의 원조가 되는 몽골마.  아라비아 말에 비해서는 체구가 비교적 왜소하다.

하지만 기골이 장대한 성인을 등에 태우고도 거침없이 질주하는 모습을 보니 작은 체구에서도 무한한 힘이 숫는가 보다.

 

 

 

 

몽골에서는 걷는 것보다 말 타는 것을 먼저 배운다는 말이 있다.

3살도 안된 이 여자아이는 고삐도 잡지 않고 편안하게 말을 타는 법을 이미 터득하였다.

이렇게 말 위에서 자란 아이를 몇년 후에 나담축제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몽골 최고의 축제인 나담 축제 마지막 날에는 어김없이 말달리기 시합이 거행되는데

대부분의 기수는 4~7세의 몸이 가벼운 어린 기수들이라고 한다.

 

 

 

초원의 하루도 어느덧 저물어가고 저멀리 초원의 민둥산에도 어둠이 어둑어둑 밀려오는 시간.

어디선가 갑자기 털이 아주 길고 다른 말과는 생김새가 전혀 다른 말이 달려오더니 순식간에 눈 앞으로 다가온다.

갑자기 나타난 말을 보고 놀라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금세 바람같이 휙 눈 앞을 지나가 버린다.

필자가 "어! 어!"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울란바타르대학 남학생이 얼른 필자의 카메라를 뺏어

말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한참 후에 사진을 찍어가지고 돌아왔다.

 

 

 

 

윤기 흐르는 흑갈색의 털과 길고 검은 갈기를 가진 이 말은 종마라고 한다.

무리와 어울리지 않고 고고하게 혼자 초원을 질주하는 모습은 정말 신비롭기까지 하다.

비록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제대로 살펴 보지 못 했지만

몽골 초원에서 만난 이 신비한 종마의 모습은 아직도 필자의 눈에 선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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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올려드린 포스트에서는 몽골의 투브 초원에서

1시간 만에 게르(Ger) 한채를 후딱 짓는 과정을 소개해 드렸다.

그러면 몽골 초원의 천막집 게르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투브(Tov)아이막의 초원에서

양과 말을 방목하고 있는 한 가정의 게르 내부를 살짝 들여다 보았다.

 

 

 

 

초원에서 살던 몽골인들은 기후 여건에 따라 자주 이사해야 하므로

이동이 간편하고 보온이 잘 되는 게르를 전통적인 주거수단으로 삼아 왔는데

영구성이나 외적  보호기능보다는 일시적인 추위와 햇빛, 그리고 비바람을 차단하는 차양이 주목적이다.

 

비교적 간단하고 어설퍼 보이는 이 게르도 의외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고하는데

몽골에서 제대로 된 게르 하나를 세우러면 우리 돈으로 150~2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그래서 게르 하나를 새로 만들려면 온 가족이 몇년전부터 틈틈이 재료를 다듬고 모아서 준비한다고.......

 

 

 

 

몽골의 게르에 들어가려면 문을 두드리거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라고 하면 안 된다.

가능하면 게르에서 멀리 떨어져서 주인을 불러야 하는데 무작정 집 가까이 다가가면 오해받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약탈이나 습격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르에 개를 카우지 않더라도고 손님은 멀리서 "개를 불러들이시오." 또는 "날씨가 참 좋군요."등

아무말이나 혼자 크게 지껄이면 주인이 게르 안에서 옷을 차려입고 나와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손님이 게르에 들어가게 되면 주인은 여름에는 아이락을, 그외의 계절에는 수테차를 권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왼손으로 오른손 팔목을 받쳐들어 손님에게 권한다.

차와 동시에 작은 병에 담긴 코담배(센떼노)를 권하며 다시 한번 악수를 청하는데 

"건강하세요~(에롤 벵흐 바이가라)", "여행이 편했느냐?"라고 물으며 말문을 터나간다.

하지만 절대로 손님이 어디서 왔으면 어디로 가는지는 캐묻지 않는다고 한다.

 

코담배는 담뱃잎이 아닌 향료와 약초를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대부분 옥으로 만든 향수병에 들어있다.

모양과 크기는 매니큐어통 정도인데 귀이개 모양의 도구로 가루를 꺼내 엄지 손톱에 바른 후

조심스럽게 흡입하면서 냄새를 향유하는데 강한 향료와 매콤한 냄새가 나서 매우 자극적이므로

갑자기 들이마시면 재채기와 콧물이 나와서 당황하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한바퀴 씩 돌려가며 코담배 냄새를 맡으면 인사가 끝나고 병은 주인에게 돌려주면 된다.

 

 

 

 

게르는 난로를 중심으로 남성구역, 여성구역, 그리고 신성구역......이렇게  세구역으로 나뉜다.

좁은 공간에서 웬 남녀칠세부동석이냐고 의아해하시겠지만

몽골 사람들은 게르 안으로 들어가면 자기가 어느 곳에 앉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안다고 한다.

남성은 게르에 들어가면 왼쪽으로 여성들은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는 남성구역은 하늘이 보호하고 여성 구역은 태양이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남쪽으로 난 게르 문의 반대쪽인 북쪽은 신성한 구역인데 

가문의 최고 연장자가 사용하는 무기와 모린호르(마두금), 말재갈 등을 놓아두는 곳이다.

옷이나 중요한 물건을 넣어두는 옷장인 밝은 오렌지색의 아브다르도 이곳에 자리잡는데

가족사진이나 정부로 받은 훈장, 불상, 라디오 등이 그 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몽골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칭기즈칸의 초상도 신성구역에 걸려 있는데

칭기즈칸의 초상은 어느 집 어느 게르를 가더라도 빠짐없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르의 서쪽인 왼쪽은 남성구역으로 이곳에는 말안장과 고삐, 아이락 주머니 등

남자주인의 소지품들이 걸리게 되고 손님용 침대나 카페트도 이곳에 놓이게 된다.

 

 

 

 

주인 내외의 침대는 오른쪽인 여성구역의 벽에 붙어 있는데 아이들이 많으면

침대가 거의 돌아가지 않으므로 부모의 발치 바닥에 양탄자나 양가죽을 깔고 잠을 잔다고 한다.

사진에서 게르의 천막 아랫부분이 살짝 들어올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

바깥의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상당히 시원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르의 동쪽인 오른쪽에는 안주인의 주방용구와 생활도구들이 비치되어 있는데

이집의 안주인의 세심함이 드러나는 자수 장식품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주방용구가 비치되어 있는 게르의 오른쪽 문 입구에는 이렇게 고기를 줄에 널어 말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뜨였는데

 이렇게 실내에서 고기를 말리는 이유는 밖에 두면 야생짐승들이 언제 물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말린 고기는 갈거나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드는데 우리나라 미숫가루같은 이 고깃가루를 '보르츠'라고 한다.

 휴대가 간편하고 영양도 만점인 비상식량 보르츠는 뜨거운 물에 서너 숟가락 퍼 넣고

 2~3분 기다리면 금방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영양식이 된다고.....

 

 

 

 

원형의 게르의 제일 가운데에는 이렇게 난로가 놓여 있는데 취사는 물론 게르의 난방을 책임지고 있다.

나무가 자라는 지역에서는 난로에 나무를 때지만 그 외의 지방에서는 가축의 배설물을 연료로 사용하는데

게르의 난로에 불을 지피면 게르 내부는 금방 더워지고 그 열기는 비교적 오랫동안 간직된다고 한다.

몽골인들은 난로를 신성시여기는데 난로에 물을 붓거나 쓰레기를 넣는 것, 불을 쑤시는 것과

난로를 타 넘는 것은 물론 난로에 발을 쪼이는 것도 금기시된다.

난로를 모독하는 모든 행동은 최악이며 주인을 모독하는 것으므로 조심해야 할 일......

 

 

 

 

멀리 한국에서 몽골의 초원까지 온 이방인을 위해 안주인이 몽골 전통 의상 델을 입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길이가 길고 소매가 넓어 우리나라의 두루마기와 모양새가 비슷한 델은 남녀 구분이 없는데

단추의 숫자가 많고 화려하면 여성용, 모양이 단순하면 남성용이라고 한다.

남성용 델은 장식보다 실용성에 중점을 두었는데

일하거나 말을 탈 때에는 몸을 보호하고 밤에는 담요대용으로 보온에 한몫을 했다.

변화의 물결이 빌어닥친 요즈음 델은 오리털 파커로 바뀌었고

긴 소매의 델로 감추었던 손에는 두툼한 스키 장갑이 끼워지게 되었다.

 

 

 

 

게르를 방문한 기념으로 투브 초원의 이 가족들에게 가족사진을 한장 찍어주기로 했다.

게르의 문 앞에 서서 두 아이를 안고 선 부부의 얼굴에는 순박하고 환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포토 프린터를 가지고 갔더라면 즉석에서 사진을 출력해줄 수 있었을텐데 그점 아쉬운 점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사진을 출력해서 게르 주인의 이름을 적은 메모와 함께 투브 아이막으로 부쳐 주었다.

가축들이 먹을 풀이 다 없어지면 게르를 분해하여 또 다른 초원으로 이동하는

초원의 유목민 가족에게 이 사진은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부디 이 사진도 게르의 신성구역의 액자 안에 함께 걸리게 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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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에 갔을 때 울란바타르 인근 투브(Tov) 초원에서 일정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초원에서 생활하는 유목민들의 생활을 일부분이나마 체험한 일이 있었다.

  

  투브에서 체험한 유목민의 생활은 게르짓기, 말타기, 염소젖짜기,

양잡기, 말똥 모으기, 그리고 전통 음식인 호르헉과 아롤 만들기 등이었는데 

그 모든 과정을 열심히 사진으로 담아 왔으나 너무 방대한 사진양으로 인하여 

사진 편집의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하드에 묵혀 놓은지 오래이다.

     

그동안 산발적인 포스팅을 통하여 몽골의 이모저모를 소개해 드리긴 했지만  

막상 몽골 여행의 핵심이라할 초원의 삶에 대해서는 미쳐 소개해 드지 못한지라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몽골 초원 유목민들의 삶에 대해서 단편적으로나마 소개해 드릴까 한다. 

 

 

 

 

초원 생활 편에서 가장 먼저 소개해 드릴 것은 게르짓기이다. 

많은 몽골인들은 아직도 천막집 게르에 살고 있는데  

그것은 게르가 몽골인의 유목 생활 양식과 순탄치 않은 날씨에 가장 적합한 주거 형태이기 때문이다. 

추위, 바람, 햇볕에 잘 견딜 수 있는 게르는 1시간 이내에 세우고 분해할 수 있어서

  가축이 먹을 풀을 찾아서 이주하는데 불편이 없는 이동식 주택이다.

       

몽골 게르의 중요한 구성요소는 '카나(khana)'라 불리는 나무벽(외관)과  

나무기둥 윗부분인 '유니(uni)', 중간 지지대 부분인 두 기둥으로 이루어진 '바가나(bagana)',  

그리고 가장 위에 있는 원형으로 된 굴뚝 '터너(toono)'이다. 

  게르를 지을 때는 먼저 터를 잡고 그 위에 아코디온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들어진 벽인 카나를 세운다. 

카나를 몇개 세우는가에 따라 게르의 규모가 정해지는데

  일반인들은 보통 카나 5개 정도의 집을, 귀족들은 카나 10~12개를 사용해서 짓기도 했다고 한다.

 

 

 

 

 

   맨처음 카나와 문을 동그랗게 똑바로 세워 긴 줄로 묶은 후

바가나와 두 나무 기둥을 터너에 묶고 원의 중심에 똑바로 세운다.

 

 

 

 

 

터너는 직경이 약 약 1~1.5m로 흡사 우산을 펼쳐 놓은 것 같은 형태인데 

터너가 놓이는 곳이 게르의 중심이며 아래는 난로가 놓여 음식을 만들고 난방도 하게 된다. 

원형 굴뚝인 터너와 아코디언벽인 카나를 연결하는 막대기를 유니라고 하는데  

유니는 게르의 규모가 작으면 45개 정도, 규모가 크면 12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게르의 골격을 다 만들었으면 양모를 압축시킨 펠트로 카나의 겉을 덧대어 비와 눈으로부터 집을 보호한다.

 

 

 

 

 

  그리고 내부에도 나무골격인 카나를 천으로 가리는데 이 게르는 유목민의 주생활공간이 아니라  

보조 생활 공간이라서 세심한 인테리어(?)도 없고 부자재도 심히 소박하다.

 

 

 

 

   

벽을 가린 후에 게르의 지붕을 여러겹으로 감싸는데 이는 몽골 초원의 매서운 추위를 막기 위함이다. 

 

 

 

 

   

제일 먼저 커다란 낙하산같은 하얀 천을 게르 지붕에 올리고 

 

 

 

 

 

끝을 맞추어 게르에다 잘 고정시킨다.

   

 

 

 

 

긴 막대기인 유니의 끝에도 묶어서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시킨다.

 

 

 

 

   

그리고는 하얀 속덮개 위에 다시 양털을 넣어 누빈 덮개를 씌우는데 마치 두터운 누비 이불같은 느낌이다.

 

 

 

 

   

덮개가 크고 바람이 불면 펄럭거리기 때문에 혼자서 덮개를 덮는 것은 불가능하여 

아이를 포함해서 온 가족이 함께 힘을 모아 게르를 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쪽에서 덮개를 씌우고 장대로 잘 펴고 하는 동안에 좀 떨어진 곳에서 놀러온 이웃들도 이렇게 일을 도와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덮개의 한쪽을 잡고 있는 것만 해도 큰 힘을 보태주는 일인 것 같다.

 

 

 

 

 

  마지막 남은 부분의 누비 덮개를 펴기 위한 손길도 분주하다.

이미 오래 써서 그런지 너덜너덜해진 덮개가 인상적이다.

 

 

 

 

  

많이 헤어져서 너덜너덜해진 덮개지만 비바람을 막고 온기를 더해주는데는 그만이다.

 

 

 

 

   

제일 윗부분에 덮는 펠트커버는 하얀 색인데 가장자리에는 푸른색천이 덧대어져 있어 깔끔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는 바람에 날리지 않게 3개의 끈으로 펠트와 천막 커버를 꽉 묶는다.

지금은 여름이라 통풍이 잘 되게 게르 아래를 들추어 놓지만 여름이 지나면

게르 아랫 부분을 길고 가는 펠트 벨트(30cm)로 묶어 바람이 게르안으로 못 들어가게 한다.

 

 

 

 

   

가장 위쪽의 굴뚝 구멍은 직사각형 펠트 커버로 부분적으로 덮이게 한다.

이 구멍은 평상시에는 하늘이 보이게 열어놓지만 날이 추워지거나 밤이 되면 전체를 다 덮을 수 있게 한다.

게르의 천은 여름에는 외부의 열기를 차단하고 태양빛을 가려 시원함을 유지하는데

게르의 아랫쪽을 걷어올리면 바람이 들어와 시원하고 밤에는 추위마져 느껴질 정도이다.

또 게르는 낮고 둥글어서 강한 바람을 잘 이겨내는데 외부가 눈비에 젖어도 게르의 천은 금방 마른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채 1시간도 안 되어 게르 하나가 후딱 지어졌다. 

사진에서 바로 앞에 있는 게르는 투브 초원에 거주하는 유목민 가족이 실제 거주하는 게르이고 

방금 세운 뒷편의 게르는 식량등을 넣어두는 보조생활공간으로 쓰이는 게르이다.

 

  두 게르의 문은 모두 남쪽으로 내었는데 이는 햇빛을 잘 받고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몽골사람들은 꼭 바람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오랜 관습 때문에 문을 남향으로 내기도 한다.

 

  지금은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주택이 대도시에 지어져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기도 하지만 

아직도 초원에 사는 유목민의 대부분은 전통적인 게르에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울란바타르같은 대도시의 외곽지역에도 게르가 빼곡이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몽골의 전통 천막집인 게르를 세우는 과정을 소개해 드렸는데 

다음에는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 게르 내부와 초원에서의 생활을 소개해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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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속에서 나온 듯한 마카오 성도미니크 성당에서 100여m쯤  가다 오른쪽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골목 가운데 쯤에서 독특한 모양으로 생긴 이층 벽돌집을 만나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벽돌집의 이름은 '로우카우 맨션(Lou Kau Mansion, 盧家大屋)'.

 

 

 

 

1889년, 청나라 시대에 지어진 이집은 중국의 부유한 사업가 '로우카우'의 가족이 거주하던 곳이다.

 

 

 

 

외관도 그러히지만 가옥 배치도를 봐도 맨션이라 할만큼 큰 규모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 내부가 엄청 화려해서 맨션이라 불리우는건가? 조금은 궁금한 마음이 든다.

 

 

 

 

중국 스타일의 청회색 벽돌을 사용하여 지은 건물 외관은 단순하고 다소 어둡기까지 한데

로우카우 맨션은 후기 청 왕조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인 '시관'스타일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이층으로 된 저택은 풍수지리에 의해 설계되고 내부는 동서양의 양식을 적절히 혼합하였다.

 

 

 

 

예를 들면 입구에 나무 문양으로 조각된 병풍을 놓는 것 등인데

중국인들은 풍수지리는 집안에 조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믿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건물 안이 약간은 답답하다고 느껴질만큼 규모가 작은 편은데

따로 뜰이나 정원을 두지 않고 가운데 부분을 터서 하늘을 통하게 하여 정원을 대신해 약간의 숨통을 틔웠다. 

내부 장식은 섬세하고 화려하지만 규모로 보면 마카오에서 손꼽히던 부자의 집이라기엔 뭔가 조금은 소박하다.

 

 

 

 

 내부 곳곳에는 동서양의 문화가 적절히 혼합된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이 많이 보여 심심치 않다. 

 

 

 

 

 

 

특수한 패턴의 벽돌과 만주 스타일의 창문, 포르투갈식 블라인드 등이 동서양의 혼합 양식을 잘 보여준다.

 

 

 

 

분명히 중국식 저택인데 방으로 통하는 문 위의 아취 모양은 로마식이고

 

 

 

 

 

 

로마식 아취 아래는 동양화풍의 꽃과 새가 새겨지고......모두 이런 식이다.

 

 

 

 

 

 

포르투갈식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보는 이의 시선을 강하게 붙잡는가 하면

소박하고 무심한 회색 벽 아래엔 깔끔하기 짝이 없는 전통 중국식 의자가 놓여져 있다.  

 

 

 

 

서양식의 화려한 창 옆에 있는 난과 국화 문양의 병풍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다.

 

 

 

 

건물의 가운데는 이렇게 2층까지 정방형으로 뚫린 공간이 자리잡고 있는데


 

 

 

집 안에 하늘을 통하게 한 것은 비가 떨어지는 운치를 집 안에서 볼 수 있게 했고
비를 재화로 여겨 비가 집 안에 들어오듯 재산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원한 것이다.

 

 

 

 

 

 

뚫린 하늘 아래 2층 문을 열면 반대편까지 훤하게 드러나 채광은 물론이고 통풍까지 잘 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건물 가운데 공간에는 돌로 물받이를 만들어 비가 올 때는 빗물이 이곳으로 배수구로 빠져나가게 해주니 
아열대지방의 집중호우를 슬기롭게 이기고 건물을 시원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멋진 공간이다.

 

 

 

 

 

 

이층의 창문들 또한 독특하다.

육각형으로 된 창문틀 사이의 하얀 부분은 얼핏 보면 창호지를 덧댄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굴껍질이다.

커다란 굴 껍질을 평평하게 문질러서 창호지대신 문살 사이에 끼우기 때문에 견고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직사광선은 피하고 밝은 빛은 들어오게 하는 역할을 하며 비에 젖지 않는 장점이 있다. 

 

 

 

 

마카오의 날씨는 대체로 온화하지만 비가 많이 오고 습도가 높기 때문에 채광과 통풍이 신경을 쓴 점이 곳곳에 보인다.

지역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삶의 지혜가 집안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건물의 구석에 있는 공부방은 보는 이를 감동시킨다.

 

 

 

 

공부방 바로 앞에 대나무를 심어두고 공부에 지칠 땐 바라보며

피로를 풀게 하고 대나무의 푸르름과 곧음을 배우게 한 것이다.

 

 

 

 

이 저택의 주인인 로우카우(盧家)는 은행업으로 많은 돈을 번 마카오의 유명한 부자라고 하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번 부자의 저택치고는 그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는 것이 놀라운 점이다.

중국의 사상가 정관잉의 저택인 만다린 하우스(Mandarin House)가 1,200평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인 것에 비해서

로우 카우 맨션은 1/10정도도 안 되어 보이는 다소 소박한 규모이다.

 

 

 

 

로우카우는 그가 번 많은 돈을 마카오의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썼다고 한다.

그런 공로로 그가 세상을 떴을 때 마카오 정부는 조기를 달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로우카우, 그는 마카오의 빈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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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를 대표하는 관광지인 성 바울 성당의 유적을 돌아보고 성당 오른쪽으로 돌아드니

마카오 박물관과 몬테 요새(Fortaleza do Monte)로 가는 안내판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왼쪽은 마카오 박물관, 오른쪽으로 가면 마카오 방어를 위해 세워진 몬테 요새.

몬테 요새에 올라 마카오 전경을 보기로 정하고 오른쪽으로 난 싱그러운 숲길로 접어들어본다.

 

 

 

 

숲길 입구에  중국 옷을 입은 서양인 신부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는게 보인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중국에 카톨릭을 전파하는데 많은 공헌을 한 선교사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마테오 리치 동상 앞에 서니 갑자기 "마테오 리치 - 천주실의, 곤여만국전도......" 

하면서 내용도 모르고 역사책을 달달 외우던 여고시절 필자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몬테 요새로 올라가는 길은 아름드리 나무가 가득 들어차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손색이 없는데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성 바울 성당의 모습은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 또 다른 운치가 있다.

 

 

 

 

길지 않은 산책로를 지나니 자연석으로 된 가파른 계단이 눈 앞을 가로막는다.

 

 

 

 

급경사로 된 가파른 계단을 헉헉거리며 조금 올라가니 견고한 성벽 아래 커다란 대포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성벽의 높이는 크게 높지 않으나 오랜 세월의 풍상이 성벽에서 그대로 나타나보인다.

 

 

 

 

1617년부터 10년에 걸쳐 마카오 방어를 위해 세워진 몬테 요새는

1622년 네덜란드의 침입에 맞서 싸우기도 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본래는 제단으로 사용되었으나 포르투갈인들이 요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때는 마카오 총독의 관저와 감옥, 관측소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던 몬테 요새는

현재는 마카오의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지옆으로 난 입구를 통하여 요새 안으로 들어가 본다.

 

 

 

 

요새의 가운데 마카오의 문화와 풍습 등을 보여주는 마카오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휴관일이라 내부를 구경할 수 없는 점이 너무나 아쉬웠다.

 

 

 

 

요새의 성벽 사이로는 커다란 대포들이 일렬로 쭈욱 줄지어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오랫동안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대포지만 포신에 적혀 있는 문자와 연도도 아직 생생하기만 하다.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경사로는 대포를 끌고 올라가는 용도로 쓰였으리라.

 

 

 

 

종루에 달려 있는 자그마한 종 하나도 오랜 역사의 숨결을 그 안에 감추고 있을 것 같다.

 

 

 

 

한때는 마카오를 지키기 위해 불을 뿜었었지만

이제는 본연의 임무를 잊고 관광객들의 사진 배경이 되어 버린 대포들.

 

 

 

 

코 앞에 가득 찬 적국의 배를 겨누었던 포신이

 지금은 시내 한복판의 건물들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몬테요새는 성벽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아래에 펼쳐지는 마카오 전경을 살펴 보기에도 좋은 곳이다.

 

 

 

 

성벽 아래로 내려다보니 우거진 수풀 아래로 성 바울 성당의 유적지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마카오 외항과 강 건너편 중국 주하이(珠海)시도 한눈에 들어온다.

 

 

 

 

몬테 요새를 한 바퀴 돌다보면 몬테 언덕 바로 앞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빌라들로부터 

 

  

 

 

멀리 빽빽이 들어선 빌딩 숲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니 마카오를 일괄할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아래 성 바울 성당의 유적지는 몰려드는 사람들로 발 디딜 곳이 없이 북적이지만

이곳 몬테 요새는 상대적으로 너무나 한가롭다.

간간이 불러오는 바람도 너무나 시원한 요새의 벤치 위에 다리를 뻗고 한참을 쉬니

여행으로 쌓였던 피로가 어디론지 말끔히 사라지는걸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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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울 성당의 유적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길인 육포거리 끝에 자리잡고 있는 예수회 기념 광장.

 

 

 

 

이곳에서 여행자들은 포르투갈 남자가 마카오 여자에게 꽃을 건네주는 모습의 동상을 만나게 된다.

 

 

 

 

포르투갈과 중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인들을 매케니즈(Macanese),

중국 음식에 포르투갈 스타일을 가미한 요리를 매케니즈 요리라고 부르는 것 처럼

마카오의 역사에서 포르트갈과의 관계는 뺄래야 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이다.

동서양의 조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이 동상은 마카오의 역사를 한눈에 잘 나타내어주고 있다.

 

 

 

 

예수회 기념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1920년과 1930년 사이에 건설되었는데

그 중 두개의 건물은 19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예수회 기념광장 전체는 성 바울 성당과는 별개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동상 너머 바라보이는 언덕에는 마카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 바울 성당의 유적지가 오로시 서 있다.

 

 

 

 

66단의 계단 위에 덩그렇게 서 있는 바로크 스타일의 파사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화재로 인해 몸체를 잃고 파사드만 덩그렇게 남아 있지만 위엄있고 당당한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마카오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성 바울 성당의 유적지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금잔디와 지후 선배가

그림엽서와 성당의 실제 모습을 비교해 보던 장면이 촬영되어 우리에게 더욱 알려진 곳이다.

 

 

 

 

이 성당은 1594년에 설립되어 1762년에 문을 닫은 아시아 최초의 신학대학인

성 바울 대학 중 일부였으며 극동에 지어진 첫 유럽 풍의 대학이었다고 한다.

 

 

 

 

성 바울 성당은 1595년과 1601년에 순차적으로 훼손되기 시작했는데

1835년에는 태풍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면서 전면부와 계단, 그리고 건물의 토대만을 남긴 채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다.

 

 

 

 

66개의 계단을 하나 둘 올라 성당 정면에 서서 전면부 파사드의 모습을 올려다 본다.

차분히 보니 성서 속 인물을 비롯한 정교한 조각 사이에 자리잡은 의외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건물의 웅장함에도 압도되지만 세세한 부조의 의미를 하나 하나 알고 보면 더 감탄스러운데

정면 벽에는 성서 속 인물들의 청동 동상이 새겨져 있으며

 

 

 

 

성당의 외벽에는 에덴 동산, 십자가, 천사, 악마, 중국 용과 일본 국화를 비롯해서 

 

 

 

 

포르투갈 항해선, 아시아에서 점차 정착하기 시작한 카톨릭의 표교 과정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양측 꼭대기를 보면 좌측에는 비둘기 밑에 문이 열려 있고

우측에는 화살이 두개 꼽힌 모자 밑에 문이 닫혀 있다.

이것은 천국의 문이 성령에 의해서 열리고 부와 권력으로는 안 열린다는 메시지라고 한다.

 

 

 

 

머리가 여럿 달린 뚱뚱한 용 위에 올라선 의문의 여자는 마리아로

그 옆에는 라틴어가 아닌 한자로 악을 다스리는 성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양쪽에 튀어나온 두 마리의 중국식 사자도 유럽 성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식이다.

 

 

 

 

성당을 지은 이들은 벽면에 새겨진 이 부조를 통해서라도

신앙의 바른 길과 하늘로 가는 길을 전파하고 싶었으리라.

 

 

 

 

바울 성당 전면부 뒤쪽으로는 철제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직접 올라가서 예수회 기념 광장 쪽과 성당 안쪽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계단에 올라서서 성당의 남은 부분을 보면 성당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성당 파사드 창문 사이로 마카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순례자들이 던져 놓은 세계 각국의 동전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눈길을 끈다.

 

 

 

 

유적지 뒷쪽으로는 성당 발굴터가 보존되어 있는데

유리로 덮여 있어 빛의 반사로 인해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게 아쉬운 점이다.

무너져버린 성당의 잔해들은 구약시대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성벽을 연상케 한다.

 

 

 

 

성당 유적지 끝자락으로 내려가면 성당 지하 묘지의 문으로 통하게 된다.

 

 

 

 

성당 지하에는 16~19세기의 카톨릭 성화와 조각품을 전시한 마카오 종교 미술 박물관과 함께

마카오 선교사들의 유골을 전시한 묘실이 자리잡고 있다.

 

 

 

 

 그 당시 일본과 베트남에서 온 선교사들과 가족들의 순교 당한 유해와 무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작은 유골함에 보관되어 있는 유해를 보는 이들은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며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게 된다.

 

 

 

 

밤 시간에 다시 찾아 본 성 바울 성당의 유적지는 낮시간의 북적거리고 화사하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야간 반사 조명과 칼라 조명을 배제한 최소한의 조명이 파사드를 은은이 비춰주고 있는 모습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빛의 향연보다 더욱 신비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마카오를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들리게 되는 성 바울 성당의 유적.

비록 성당의 대부분은 화재로 소실되어 정면 파사드만 오로시 남아 있지만 

동서양 문화의 독특한 결합을 특징으로 하는 남아 있는 벽면 그 자체 만으로도

커다란 역사적 ,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마카오의 매력을 한층 더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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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미니크 성당을 떠나 성 바울 성당의 유적으로 올라가는 길,

차 한대도 겨우 지나갈 듯한 조그마한 골목길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십여개의 육포집, 과자집이 저마다의 색깔과 맛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양옆으로 펼쳐지는 여러가지 먹거리 상점들 사이로

넓은 바구니를 펼쳐 든 남자들이 광동어 특유의 노래하는 듯한 어조로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호객한다.

호객하는 남자들 손에 든 바구니에는 맛나 보이는 쿠키들이 한가득 들어있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은 너도 나도 손을 뻗어 쿠키를 한 두개씩 집어 들어 맛을 본다.

필자도 질새라 바구니로 손을 뻗어 쿠키 두어개를 집어들어본다.

쿠키 하나를 입안에서 깨물자 입안에서 파슬파슬 부서지며 고소함이 온 입 안으로 전해진다. 맛있다!

 

 

 

 

다른 가게도 여기 저기 살펴보니 쿠키며 육포들이 시식 코너에 진열되어 있다.

쿠키와 함께 마카오 명물 간식거리 육포도 얼른 몇개 집어 맛을 본다.

 

  

짭짜름하면서도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마카오 육포를 한번 맛보니 계속 손이 가게 된다.

육포집 종업원은 커다란 육포를 가위로 슥슥 잘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먹어보라고 강권한다.

골목 양옆에 늘어선 가게 마다 손만 내어밀면 여러가지 육포의 맛을 얼마든지 음미할 수 있다.

  

 

마카오의 육포는 고기를 짜게 해서 바싹 말린 일반 육포와는 조금 다른데

초벌구이한 육포를 중국 대륙에서 가져와 다시 양념해서 구워낸다고 한다.

주로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을 도톰하게 자른 뒤 달콤한 맛, 매콤한 맛 등

여러가지 다양한 양념을 발라 쫄깃하게 구어낸 것이 대부분인데

가게 마다 육포의 육질은 비슷하지만 양념과 굽는 방식으로 승부를 낸다고......

 

 

 

 

종업원들이 잘라서 건네주는 육포를 시식한 후에는

원하는 만큼 중량대로 사면 되는데 가격은 대략 1磅(파운드)에 약 9천원 정도이다.

하지만 마카오 육포는 국내 반입금지인지라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게 아쉬운 점이다.

 

  

육포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코이케이(鉅記手信)는 초이 헝윤(咀香園)과 함께 아몬드 쿠키와 육포로 유명한 집.

세나도 광장을 비롯해서 마카오 일대에 수많은 체인점을 거느리고 있는 코이케이(Pastelaria Koi Kei)로 들어가본다.

길거리에서 노란색 큼지막한 봉투를 든 여행객들의 십중팔구는 이곳에서 쇼핑을 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집이다. 

 

 

 

 

가게 안에 발을 들이면 아몬드 쿠키, 계란 과자, 생강 캔디, 땅콩 누가 등

고소하고 달콤한 간식거리가 여행객의 입맛을 유혹한다.

 

 

  

 

 

 

가게 입구에서는 둥글넙적한 팬에 직접 계란과자를 굽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단권(蛋卷, dànjuǎn)이라고 부르는 마카오 계란과자는 계란 밀가루 반죽을 팬에다 얇게 편 후 돼지고기 간 것과 깨, 김을 넣고

살짝 구워 돌돌 말아내어놓는 과자인데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어 사람들은 한참이나 옆에 서서 구경하곤 한다.

  

 

 

 

마카오의 쿠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아몬드쿠키(杏仁餠, Almond Cookie)이다.

녹두를 비롯해 아몬드, 분유, 땅콩, 깨, 코코넛 등의 가루를 다식판 비슷한 것에 넣어 다져 만드는데

쿠키를 만드는 기술자의 손길이 얼마나 빠른지 손이 안 보일 정도이다.

  

 

 

 

한 입 깨물면 파슬파슬 부스러지면서 고소함이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아몬드 쿠키.

블랙커피를 앞에 두면 제일 많이 생각나는 마카오 제일의 완소 쿠키이다.

 

 

 

 

한쪽 귀퉁이에는 이렇게 말린 생선이 몇 마리씩 포장되어 진열되어 있다.

자세히 보니 포르투갈 사람들의 국민 음식 재료인 바칼라우(Bacalhau)이다.

소금에 절인 대구를 2~3일 동안 물에 담가 소금기를 뺀 후에 수백가지 음식의 재료로 사용하는데

'포르투갈 사람들은 꿈을 먹고 살고 바칼라우를 먹고 생활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느 집이든 어떤 요리든 빠지지 않고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다.  

 

 

     

      

      

 

 

코이 케이를 비롯하여 육포 거리의 모든 쿠키전문점에서는 이렇게 시식용 과자들이 즐비하다.

육포거리에 산재한 가게 여기저기를 한 바퀴 돌며 진열된 과자 앞 통에 담겨진 시식용 과자들을 집어먹다 보니

어느덧 요기가 되고 배가 살짝 불러와 점심을 안 먹어도 될 정도가 되어 버렸다.

필자 뿐 아니라 다른 여행객들도 시식 음식에 혹하여 가게를 떠나지 않는 모습이 많이 보이기도 했다.

 

  

100여 m남짓한 거리를 육포 맛 , 쿠키 맛이 골목길을 하루 종일 휘감고 있는 마카오 육포거리.

마카오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빠지지 않고 지나가는 마카오 최고의 시식코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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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동화 속의 성처럼 화사한 개나리색으로 옷입은 성도미니크 성당.

1587년에 세워진 중국 최초의 성당인 성 도미니크 성당은

마카오인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매년 5월 13일이 되면 흰 옷을 갖추어 입은 카톨릭 여신도들이

성모 파티마의 상을 성 도미니크 성당에서부터

펜하 성당까지 운반하는 긴 행렬이 이어진다고 한다.

 

 

중국 최초의 성당이기도 한 성 도미니크 성당은

유네스코(UNESCO)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성당 앞쪽에 자리잡은 성 도미니크 광장은 광장과는 개별적으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세나도 광장에서 시작된 깔사다(모자이크 바닥 타일)는 성 도미니크 광장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데 

성 도미니크 광장은 주중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의 쉼터로

주말에는 마카오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역사가 오래 된 성당도 아니고 성당 앞 광장이 개별적으로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니 

특별한 것이 있나 해서 둘러보니 크게 눈에 띌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광장 바닥 한가운데 둥근 대포알 같은게 박혀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대포알이 무엇을 뜻하는가 싶어 가이드북을 전부 훑어 보았지만

광장 바닥에 박힌 대포알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이 없다.

웹을 뒤져 여기저기 찾다 보니 포르투갈 함대에서 쏘아올린 대포알이

이곳 성 도미니크 광장에까지 와서 박혔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정확한 사실이 기술되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곳 성 도미니크 광장은 세나도 광장과 성 바울 성당의 유적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광장 주변은 다양한 종류의 숍과 카페, 식당들로 에워싸고 있어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포르투갈 풍의 오래 된 건물 아래 위치한 상가들은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어 매우 대조적인데

 

 

많은 수의 화장품 숍을 비롯하여 내노라 하는 유명 브랜드 들이 양쪽에 포진하고 있어

이곳이 마카오의 명동임을 실감하게 한다.

 

 

낮 시간 성도미니크 성당을 거쳐 성 바울 성당의 유적들을 돌아보고 저녁 무렵 광장으로 다시 돌아오니

야간 조명을 받은 성 도미니크 성당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눈부신 햇살을 받고 개나리색으로 화사함을 더하던 낮시간과는 달리

조명을 받아 황금빛으로 변신한 성 도미니크 성당.

오묘하다 못해 신비로운 느낌마져 주는 성도미니크 성당의 변신에

한참이나 그 자리를 떠나지 못 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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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여행의 중심인 세나도 광장에서

물결무늬 깔사다를 밟으며 몇걸음 더 걸어가다 보면

봄날의 개나리처럼 화사한 색감의 성당을 만나게 된다.

샛노란 벽 위에 조각된 눈부시게 하얀 문양들,

노란색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초록빛의 문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를 터뜨리게 하는데

이 화사하고 산뜻한 성당은 바로 성 도미니크 성당이다.

 



도미니크회 사제들에 의해 1587년에 건축된 이 성당은 중국에 지어진 첫번째 성당이다.

 

 

처음에는 나무 널빤지로 건립되었다는 성 도미니크 성당은

17세기에 이르러 증축, 18세기까지 보수를 거듭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는데

한 때는 관공서와 군 시설로도 사용된 적이 있으며 1997년에 이르러 일반에 공개가 되었다고 한다.  

 

 

성당 가운데 출입문은 십자 문양과 타원형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굳게 닫겨 있고

 

 

왼쪽과 오른쪽의 출입문은 다이어몬드 문양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초록색 문들이 벽체의 개나리색과 어울려 너무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보니 외관과 마찬가지로 내부도

밝은 개나리 색에 하얀 색으로 포인트를 주어 전체적으로 화사하고 밝은 느낌이다.

 

 

바로크풍의 제단도 화려함보다는 정갈하고 심플한 느낌이 강한데

성물들은 하나같이 정교하고 깔끔하다.

 

 

천정에는 이렇게 포르투갈 왕가의 대형 문장으로 장식된 것을 볼 수 있다.

 

 

제단을 비롯해서 성당 내부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성상들이 여기저기 비치되어 있어

순례자들이 성상들 앞에서 촛불을 켜거나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당 출입문 바로 옆에는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음을 알리는 팻말과 함께

성 도미니크 성당의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위치하고 있다.

 

 

성당의 옆면을 따라 난 긴 통로로 들어가면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전시관은 2층부터 시작되는데 2, 3, 4층에 걸쳐 300 여종에 이르는 카톨릭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은 그다지 크지 않았 소장품도 소소한 것이 대부분이다.

 

 

사제들이 입었던 아름다운 가운들은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채로 전시되어 있는데

 

 

세밀하게 놓여진 자수와 정교한 레이스들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의복들이다.

 

 

한켠에는 동이나 황금으로 된 왕관과 십자가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들여다 보면 그 정교함에 놀라게 된다.

 

 

 

한 전시관에는 이렇게 성상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 칠이 벗겨지거나 갈라져 안쓰러운 모습이다.

 

 

너무 실제와 비슷하게 만들어서 그런가.....이떤 성상들은 약간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성상들을 만들 때 하나의 몸체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부분 부분을 따로 만들어 연결을 하는건지

나무로 된 한 상자 안에는 성상의 머리와 몸, 팔 다리들이 모두 분해된 채로 누워 있다.

 

 

어떤 나무 상자 속에는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 그리스도 성상이 목 부분만 덜렁 들어있다.

그리스도상의 몸체는 어디로 가고 목만 남아서 이렇게 나무 상자에 보관된걸까?

 

 

계단 반대쪽 전시관에는 이렇게 귀엽고 앙징맞은 성상도 전시되어 있는데

말랑말랑한 얼굴과 부드럽게 꺾어진 손가락은 흡사 구체관절 인형을 연상케 한다.

심하게 컬링된 긴 머리는 바비 인형에다 옷을 입혀 놓은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이다.

전시관 내부에는 이렇듯 다양한 카톨릭 관련 성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성당 박물관을 한참이나 돌아보고 나와 성 도미니크 광장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솜털구름이 떠 있는 푸르른 하늘 아래 개나리색의 성당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도미니크 성당은 밤에 보는 야경도 너무나 아름답다고 하니 마카오를 떠나기 전에

성 도미니크 성당의 야경을 꼭 눈에 담아봐야지.....하는 생각을 하며 성당 앞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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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를 대표하는 음식을 크게 몇가지로 나눈다면
광동요리와 포르투갈 요리가 만난 매케니즈요리(Macanese Food),
광동요리(Cantonese Food),
현지 음식(Local Food),
길거리 음식(Street Food)로 나눌 수 있다.


그중에서도 마카오의 로컬 푸드(현지 음식)야 말로
가장 유니크한 마카오만의 음식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맛은 물론이고 가격 또한 저렴해서 영어가 통하지 않는 불편을 감수하고도
몇번이고 들려서 맛보고 싶은 곳이 마카오의 로컬 푸드 식당이다.


마카오 사람들이 가장 쉽고 편하게 끼니를 때우는 메뉴는 국수(麵)와 죽(粥)이라고 한다.
국수와 죽을 함께 파는 식당을 '죽면전가(粥麵專家)'라고 하는데 죽면전가 중 가장 인기있는 레스토랑은
세나도 광장에 위치하고 있는 '웡 치 케이(黃技記, Wong Chi Kei)'이다.


홍콩에도 분점이 있는 웡 치 케이는 세나도 광장에 위치한 이집이 본점인데 의외로 식당 안은 매우 협소하다.
1층은 카운터와 테이블 4개 정도가 고작인 정도.......

2층, 3층도 협소한 공간이긴 마찬기지인데 이곳에서 국수와 죽을 즐기기 위해 온 손님들로 아침부터 초만원이다.





이곳에서는 완탕면을 비롯해 볶음 국수, 매콤한 사천식 국수 등 다양한 면요리와 죽, 볶음밥을 주메뉴로 삼고 있는데
아침인지라 부담없이 위를 달래기 위해 완탕면(雲呑麵)과 우편죽(牛片粥)을 한그릇씩만 주문해본다.




앉자마자 내다주는 차 한잔으로 빈 속을 달래니 온 몸이 따스하고 속이 확 풀려 자꾸만 홀짝거리며 차를 들이키게 된다.

 



차 한잔 마시고 있으니 금방 완탕면이 나왔다.
가느다란 국수면 위에 마치 날개가 달린 듯 특이한 모양의 만두가 여러개 올려진게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통새우와 돼지고기를 얇은 피로 싸서 만두처럼 만든 완탕을 칼칼한 국물에 넣어 만드는 완탕면은 
마카오에서 꼭 맛보아야 할 음식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완탕을 하나 집어 베어물어본다. 얇디 얇은 만두피 안에 오동통하니 살이 오른 붉은 새우가 더욱 식감을 자극한다.
새우는 탱탱하고 쫄깃한게 씹는 맛이 그저그만인데 완탕면의 국물 맛도 느끼하지 않고 시원하고 칼칼하다. 




완탕도 완탕이지만 국수면은 정말 예술이다.
처음에 입에 넣었을 땐 약간 딱딱한 느낌이 있는데 씹으니 입 안에서 잘 퍼지고 
라면과는 달리 다 먹을 때까지 전혀 퍼지지 않고 꼬들꼬들한 맛을 유지해서 너무 좋다. 
면발의 굵기가 우리나라 스낵면보다 훨씬 가는데 면발의 색깔이 유난히 노란빛이다.

알고 보니 계란, 간수 등을 넣어 반죽했기 때문에 노란빛을 띤다고 하는데
계란에는 소화를 돕는 성분이 많기 때문에 아침 식사로 먹기에 특히 좋은 음식이라고 한다.




완탕면 한그릇을 둘이 나누어 먹고 이번에는 우편죽(牛片粥))을 맛보기로 한다.
마카오에서 죽은 '콘쥐(congee)'라고 하는데 중국인들의 아침 식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것이 바로 죽이다.




쇠고기를 얇게 썬 우편(牛片)은 꼬들꼬들한 것이 씹는 감칠 맛이 있고 죽은 고소하면서도 부드럽게 목으로 잘 넘어간다.
분명히 한국적인 죽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맛이 깔끔하고 한국인의 입맛에도 충분히 잘 맞는 맛이다.




완탕면 한그릇과 우편죽 한그릇을 시켜 두사람이 바꾸어가며 맛보다보니 어느새 그릇이 싹 비워졌다.
주문할 때는 양이 너무 적지 않을까 우려도 했는데 다 먹고 수저를 놓으니 아침 식사으로는 위에 부담도 적고 딱 맞는 양이다.

마카오 여행을 와서 호텔 레스토랑의 스탠다드한 음식만 먹고 돌아간다면 그것은 마카오를 반만 이해하고 가는 것이 아닐까?
웡 치 케이에서 맛본 완탕면과 우편죽은 글로벌한 미각을 가진 여행자가 아니더라도
식성이 다소 까다로운 한국인여행자가 먹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마카오 로컬푸드의 최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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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여행 동안 묵었던 리베라 호텔은 마카오의 남반 호수와 사이반 호수,
바다 건너 타이파까지 조망할 수 있는 펜하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에는 구 포르투갈 총독 관저 뿐 아니라 고급 빌라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어 
마카오 최고의 고급주택가로 꼽히고 있는 곳이다.


마카오 시내 관광을 마치고 든든하게 배도 채운 후 호텔 객실로 들어와 창 밖을 보니 
창 밖에 환하게 드러나는 마카오 타워와 주변 야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하루종일 돌아다녀 피곤한 다리를 따스한 욕조에 담그고 푹 쉬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창 밖에서 손짓하는 황홀한 야경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NEX-5와 고릴라 포트 하나만 챙겨들고 호텔문을 나섰다.  




 
이미 9시가 넘은 시간이라 사방이 많이 어두웠지만 
사이반 호수 주변의 멋진 야경을 즐기기엔 아직도 넉넉한 시간이다.

언덕 아래로 한참을 걸어내려와 사이반 호수 산책로까지 오니
길가에는 인적조차 드물고 오고가는 차들도 거의 끊기어 적막감만이 든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서 펜하힐 쪽을 올려다 보니 
리베라 호텔 바로 위로 야간조명을 받은 펜하 성당의 자태가 신비롭게 다가온다.





주변이 너무 조용하고 길가에 인적이 전혀 없으니 약간은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낮에는 그리도 화려하게 보였던 핫핑크색의 마카오 기금 건물도 어쩐지 스산하게 보인다.




인적이 드문 외국의 밤길을 여자 둘이서 걸어다니다니......너무 무모한 것 아닌가 하고 걱정하실 분도 있으실 듯 한데
다른 도시에 비해서 마카오는 치안이 비교적 좋은 편이라고 한다.
인구 50만인 도시에 경찰이 5천명이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 마카오인데
럭셔리 부촌인 펜하힐은 경찰 뿐 아니라 건물마다 사설 경호원이 지키고 있어 밤에 돌아다녀도 안심이 된다.
사진에서 건물 앞에 어슬렁거리는 수상한 그림자도 알고 보면 사설 경호원이었을 정도......




가끔씩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개를 데리고 산책하거나 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조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필자 또한 이 동네 주민이 된 듯 산뜻한 밤 공기와 함께 호숫가를 산책하며 사진도 찍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니 고요하기 이를데 없는 사이반 호수에 반영되는 주변 야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마카오 시내 중심가의 
그랜드 리스보아(Grand Lisboa), 리스보아 , 윈 마카오(Wynn) , MGM 마카오 등
유명 호텔들의 스카이 라인이 호수에 그대로 비쳐 마치 한장의 데칼코마니같다.




호수에 비치는 호텔들의 반영도 아름답지만 사이반 호수 반영 중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마카오 타워와 사이반 대교의야경이다.
낮에는 약간의 박무로 인해 희미하게 보였던 마카오 타워와 사이반 대교지만 
밤이 되니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고 나와  마치 찬란한 보석처럼 하늘과 호수에서 반짝거린다.





마카오 타워의 반영 또한 완벽한 데칼코마니이다.
마치 종이에 물감으로 그려 반으로 접은 듯 하늘과 호수에 똑같은 쌍둥이 그림을 그렸다.

여행 중에 이렇게 편안하고 느긋하게 멋진 야경을 즐길 수 있다니......
하늘의 불빛과 호수에 비쳐 반짝이는 불빛을 오래오래 보고 있노라니 
꿈인 듯 생시인 듯 행복감이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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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하 성당, 릴라우광장, 만다린 하우스, 아마 사원을 돌아보고
바라 광장에서 지친 다리를 쉬며 한참의 휴식을 하고 나니
벌써 서산에 해가 넘어가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져 간다.
헨리스갤리에서 배를 두드리며 매케니즈 요리를 먹었지만 여러곳을 돌아보느라 벌써 허기가 진다.
아마 사원에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려고 생각했지만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막상 근처에 가서 보니 가게가 문을 닫은 상태이다.
길목의 다른 작은 식당들도 마찬가지. 일요일인데다 이미 많이 어두워져서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없다.
이 골목, 저 골목.......한참을 헤매어 봐도 문을 연 식당은 커녕 노점도 하나 없다.
다리는 아프고......배는 등에 붙었고.....지친 다리를 질질 끌며 걷다 보니
저멀리 골목 중간에 문을 연 식당이 하나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재촉하여 식당 앞에 가 보니 그야말로 자그마하고 평범한 동네식당이다.
우리나라 김밥천국같은 동네분식집인 듯.....
문을 밀고 안에 들어가니 의외로 실내가 매우 깔끔하다. 인테리어를 비롯해서 식탁도 상당히 청결하다.
마카오는 모든 식당이 5개 기관의 점검을 거쳐야 영업을 할 수 있고 기준에 어긋나면 당장이라도 영업정지라더니 정말 그런 듯......





중국 사람들은 일류 식당일수록 메뉴가 많고 수많은 메뉴를 다 요리할 수 있어야 최고의 요리사이기 때문에
한국 식당 중에서 곰탕집, 국수집, 북엇국집....처럼 한가지 메뉴만 있는 집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더니
동네에 위치한 자그마한 분식집인데도 메뉴의 수가 정말 정말  많다.

그런데 무얼 먹어야 하나.....?
짧은 한자실력을 총동원해서 읽어보아도 도대체 메뉴에 적힌 음식을 유추하기가 힘들다.
거기다 주인은 영어를 한 마디도 할줄 모르고 우리는 광동어를 한마디도 모르고.....
보다 못한 아기와 함께 와서 식사를 하고 있던 옆 좌석의 젊은 새댁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새댁은 굴러가는 듯 유창한 영어로 메뉴에 대한 설명을 상세하게 해주어
 고민 끝에 양고기, 버섯 탕면, 배추 작채 등을 시켰다.





음식을 주문하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버섯 탕면 한그릇이 나왔다.
우리나라 같으면 표고버섯을 곱게 채썰어 국수에 넣었을텐데 여기서는 커다란 표고버섯 6~7개가 통째로 들어있다....ㄷㄷㄷ




버섯 탕면은 보기에는 라면 같은데 훨씬 더 면발이 가늘고 고들고들하다.
이렇게 큰 버섯을 어케 베어 먹어?라고 생각했던 버섯도 의외로 먹을만 하다.




그 다음에 나온 배추 작채는 배추를 그냥 고깃물에 데친데다 위에 소소를 슬쩍 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음식의 비쥬얼은 불쌍하기 짝이 없는데 먹어보니 이것 또한 신기하게 맛이 있다.
단순한 요리에서 이런 맛이 나다니!





그 다음에 주요리로 시킨 양고기가 중간 정도 크기 냄비에 양고기 한가득 담겨나왔다.
우리나라 샤부샤부같이 얇게 저민 양고기를 예상했는데 이건 고기 토막 하나가 완전히 주먹만 하다.




처음에 탁자에 올려졌을 때 약간은 식은 듯하던 냄비가 탁자 위에 올려놓고 조금 있으니 바글바글 끓기 시작한다.
어! 이거 웬일이지? 자세히 보니 검정유리처럼 되어 있는 탁자가 알고보니 인덕션(induction)이다.
언뜻 보기에는 일반적인 검정색유리탁자인줄 알았는데......
숯불화덕이 내장되어 있거나 휴대용버너를 올리는 우리나라 시스템보다 훨씬 있이는 시스템이다.




바글바글 끓고 있는 양고기토막을 꺼내어 살펴본다. 갈비 사이로 보이는 골수며 살코기들이 푸짐해 보인다. 




앞접시에 몇점 덜어서 맛을 본다. 야채는 거의 없이 양고기만 넣고 삶은 것이라 역시나 많이 느끼하다.

거기다 고기토막 하나는 얼마나 큰지 베어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고......
뱃속 깊은 곳에서 '참을 수 없는 느끼함'이 마구마구 밀려온다.




느끼함을 참으며 양고기 몇점 베어먹으니 금방 배가 불러 그만 먹을까? 생각도 되었지만

'언제 또 마카오 동네 식당에 와서 이런거 먹어보겠어?' 하는 마음에 주문한 음식은 다 해치우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먹어본다.




냄비 속에 살코기 외에 이렇게 정체모를 부위(?)도 몇개 들어 있는게 보인다.

'대체 이게 뭐지?' 앞접시에 덜어서 먹어보니 혐오스럽게 생긴 외관과는 다르게 상당히 쫄깃쫄깃한 맛이다.




양고기 샤부샤부 한 냄비, 탕면과 데친 배추 한접시......역시 두 사람이 다 먹기엔 양이 너무 많다.

'나온 음식 다 먹기'가 도전과제였지만 여자 두명이 다 먹기엔 역부족이라 접시 비우는 목표는 부득이 수정을 해야했다.




배터지게 먹고 나서 계산대에서 가격을 물어보니 
양고기는 68파타카, 배추 작채는 15파타카, 버섯 탕면은 17파타카로 합이 100파타카가 나왔다.

우리나라 환율로 치면 약 15,000원 정도이다.
식당의 문을 밀고 나서니 참을 수 없는 느끼함이 마구마구 밀려와 김치찌게 생각이 간절하기도 했지만
간만에 푸짐하게 먹은 양고기의 힘으로 호텔까지 힘있는 발걸음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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