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연일 비 오고 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매일 아침 따스한 보이차 한잔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는데

낮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데다 습도마져 높으니 차는 커녕 시원한 음료 한잔 생각만 간절하다.


이럴 때 시원한 아이스 커피가 제격.

찬물에 커피 두 스푼을 녹인 후 아카시아꿀을 넣고 저어 얼음 몇개를 띄워 마시니

속이 시원해지고 아침부터 이마에 맺히던 땀방울도 싹 가셔진다.


아이스 커피 한잔을 다 들이키고 나니 새삼 얼음의 중요성이 피부로 느껴진다.

요즘은 냉장고 문만 열면 손쉽게 얼음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옛날에는 여름에 얼음 구하기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으리라.


하지만 그 옛날에도 임금님이나 관리들은 삼복 더위에 시원한 얼음을 띄운 음식을 맛볼 수가 있었다.

왕실이나 중앙은 물론 지방 행정 중심지에도 석빙고를 마련하여

겨울철 강에서 채취한 깨끗한 얼음을 저장했다가 한여름에 사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석빙고는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부터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현존하는 것은 모두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이며 그 구조도 거의 비슷하다. 

현재 남아 있는 석빙고는 경주 석빙고(보물 제66호)·안동석빙고(보물 제305호)·창녕석빙고(보물 제310호)·청도석빙고(보물 제323호)·현풍석빙고(보물 제673호)·영산석빙고(사적 제169호) 등이 있고 북한에도 해주에 1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중 경주 반월성 북쪽 성루 위에 자리잡은 경주 석빙고는
길이 18.8m, 홍예
높이 4.97m, 너비 5.94m로 현존하는 석빙고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밖에서 보면 마치 무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내부를 보면 땅을 깊게 판 다음 안쪽 벽은 석재로 쌓고
바닥은 경사지게 만들었으며
천장은 석재를 무지개 모양으로 쌓아올리고 상부에 환기 구멍을 내었다. 





출입구는 남쪽으로 내었는데 여기에서 계단을 따라 실내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내부는 연석으로 5개의 홍예(霓,무지개)를  틀어 올리고 홍예와 홍예 사이에 길쭉한 네모 돌을 얹어 천장을 삼았다.
벽은 직사각형의 작은 석재로 정연하게 쌓아올리고 밑부분은 장대석을 연결하여 지대석
을 삼아 견고하게 축조하였다.





빙실의 밑면도 외부의 형태와 같은 직사각형으로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밑바닥은 경사져있으며
바닥 중앙에 배수구가 있어 내부의 물이 이 경사를 따라 외부로 배출된다. 





천장에는 3곳에 환기 구멍을 마련하여 외기와 통하게 하였는데
조각한 돌로 구멍을 덮어 비와 이슬을 막고 있어
다른 석빙고와는 달리 정연한 양식과 축조를 보여준다.





석비와 입구 이맛돌에 의하면 조선 영조 14년(1738년) 당시 조명겸이 나무로 된 빙고를 돌로 축조하였다는 사실과 
4년 뒤에 서쪽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석빙고의 역사를 추정케해주는데
현재 서쪽으로 약 100m 되는 곳에 옛터로 전하는 자리가 있다.
조선 후기에 축조한 석빙고 중에서 그 규모나 기법에서 가장 정연한 걸작으로 손꼽히는 경주 석빙고는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6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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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 읍성 바로 옆에는 특이한 돌구조물이 남아 있는데
무언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석빙고이다.
돌뼈다귀만 남은 석빙고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형태의 유적.
우리나라의 석빙고는 현재 경주,청도를 비롯하여 창녕,안동,현풍,영산 등에 6기가 남아 있고

북한에는 해주에 1기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이 중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에 있는 석빙고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석빙고 가운데
경주 석빙고(보물 제66호)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쌓은 연대도 오래된 것이다. 





흙으로 다 뒤덮여 있고 입구 문만 보이는 경주 반월성 석빙고만 보아오던 내게 청도 석빙고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멀리서 보니 마치 로마 시대 유적지와도 같은 느낌을 주어서
목조 건물 일색인 우리나라 여타 문화재에 비해 무척이나 색다른 인상을 안겨 주었다.


 


석빙고의 입구 왼쪽에는 석비(石碑)가 서 있는데 앞면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수·쓰인 자료·비용 등을 기록해 놓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날짜와 함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그 중에 '계사(癸巳)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 39년(1713)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석빙고는 현재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 아치 형태의 홍예(虹霓)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내부는 동·서로 뻗은 긴 구조로 서쪽에 출입문을 두었다.





출입구 아래 쪽에 난 계단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진 바닥이 보인다.





가운데에는 물이 빠지는 길을 두고 동쪽에 구멍을 만들어 석빙고 밖의 작은 개울로 물이 빠지도록 하였다.





환기 구멍을 뚫어 놓았던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는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다.






비록 지붕이 없고 뼈대만 앙상히 드러나 햇빛과 바람이 수시로 드나드니 석빙고로써의 기능은 상실한지 오래이지만

경주 석빙고와 달리 안이 훤히 드러다 보이고 아래로 내려가 자세히 살펴 볼 수도 있으니 좋다.





한여름에 이 석빙고로 내려서면 지상과는 확연히 다른 온도차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겨울에 강에서 떠온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했다는 석빙고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초등학교 다니던 어릴적에 날씨가 많이 더우면 석빙고 안에 들어가서 더위를 피하며 놀다가 학교를 땡땡이치기도 했다며

근처 식당 아주머니께서는 석빙고에 얽힌 어릴적 추억을 신나게 말씀해주셨다.





비록 세월의 풍상으로 많이 허물어졌기는 하지만 자손들에게 잘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우리의 문화 유산,
청도 석빙고는 보물 제 32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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