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지방이 연일 30여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계속 될 때에도

동남부 해안 지역은 한낮에도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그동안 여름 무더위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지내곤 했다.

하지만 주말에 비가 내린 후 두텁게 끼어 있던 구름이 물러가더니

언제 시원했냐는 듯 따가운 햇살이 내리쪼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더워지니 입맛도 없어지고 따뜻한 밥은 입에 대기도 싫어진다.

어디 뭐 시원하게 한끼 해결할 음식이 없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경주 대릉원 맞은 편에 유명한 밀면식당이 있다더라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밀면은 부산이 원조인지라 부산에 가야 제대로 된 밀면을 먹을 수 있다는데

경주에서 밀면을 제대로 하는 식당이 있을까 약간의 의혹도 들었지만

점심 때면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대릉원 근처 주차장에 주차하고 길을 건너 청기와쌈밥 옆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골목에 들어가자 마자 밀면전문이라고 쓰인 식당이 보이는데

이집이 유명한 식당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홀에 사람이 별로 없다.

긴가민가 하면서 골목 안쪽을 보니 몇집 건너 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서 있는 것이 보인다.

아항......이 집이 아니고 저 집인가 보다.

처음 눈에 뜨였던 식당을 가볍게 패스하고 밀면식당이라는 곳으로 향해본다.

  

경주밀면의 원조 밀면식당이라고 써져 있는 간판 윗부분의 since 1972 라는 표시가 눈에 들어온다.

4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이라면 여느 집과는 다른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줄지어 선 사람들 뒤에 서 기다리니 주인 아저씨가 밖에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도 미리 주문을 받는다.

비빔인지......물인지......곱배기인지 보통인지 물어보는 걸 보니 주방에서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인가 보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도 주문을 받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먹을 것 같은 기대감에 기다림이 덜 지루하게 느껴진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주방 가까이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식당 안을 슬며시 살펴보니 좁은 줄 알았던 홀 안에는 테이블이 제법 많이 놓여있고

의자와 함께 좌식 테이블도 한쪽에 갖추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밀면전문식당 답게 메뉴는 물밀면, 비빔밀면 딱 두가지이다.

보통은 4,500원, 곱배기는 5,000원이니 냉면보다는 약간 저렴한 편이다.

 

 

 

 

부산이 원조인 밀면은 서울 등 중부지역 주민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음식일 수 있는데

1950년대 피난시절 이북사람들이 내려와 냉면을 만들어 먹을 때에 메밀이 부족하자

미군의 주식인 밀가루를 응용하여 만든 것이 곧 밀면의 시초이다.

 

 

 

 

한동안 경주에 서늘한 날이 계속 되어 물밀면에 얼음육수가 안 담긴 것이 조금 서운하다.

보기에 시원해 보이지 않아서 그릇을 만져보니 얼음만 없을 뿐 육수는 상당히 차갑게 느껴졌다.

날씨가 더 더워지면 아마도 살얼음 낀 육수를 부어서 내놓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골을 고아 만든 맑은 육수에 돌돌 말린 면이 앉아 있고

오이채, 무 위에 갖은 다대기로 양념을 만들어 얹었는데 제법 큰 수육이 두점이나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냉면을 먹을 때에 편육이 너무 얇고 작은 것이 늘 불만이었는데

이집의 편육은 두터울 뿐 아니라 맛도 퍽퍽하지 않고 상당히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었다.

 

 

 

 

밀면을 맛있게 먹는 법을 말씀드리자면 면은 부드러우니 가위질은 한번만 하는 것이 좋고

기호에 맞게 식초, 겨자를 넣고 모든 양념이 잘 섞이도록 부드럽게 풀어서 먹는 것이 좋으며

계란은 위를 보호하니 반드시 먼저 먹어야 한다고 한다.

 

 

 

 

모든 양념을 고루 섞이게 한 후 그릇을 통째로 들고 후루룩 마셔 육수의 맛을 음미해 본다.

사골을 고아 만든다는 육수는 새콤달콤하면서도 살짝 매콤해서 입안이 너무나 개운하고 시원하다.

밀가루를 이용해서 바로 뽑은 면이라 그런지 면발은 상당히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메밀로 만든 냉면보다 목으로 술술 더 잘 넘어간다.

 

 

 

 

물밀면의 새콤달콤한 맛에 취했다면 이제 비빔밀면의 맛도 어떠한지 음미해볼 때이다.

 

 

 

 

사실 물밀면이나 비빔빌면이나 재료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물밀면과 다른 점이라면 육수가 조그만 그릇에 따로 담겨나온다는 것과

물밀면보다 비빔밀면이 약간 더 매콤다는 것 외에는 별로 다른 바가 없어 보인다.

 

 

 

 

비빔밀면을 받아 한참을 비볐지만 양념이 여전히 바닥에 많이 가라앉아 있다.

비쥬얼상으로는 그다지 매워보이진 않지만 젓가락으로 한번 두번 먹다보니 한참 후에는 입안이 얼얼해진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거나 더운 날에 상큼한 음식을 워하는 분들에게는 물밀면이 훨씬 더 나을 것 같다.

 

 

 

 

보통을 시켜서 양이 좀 적으려나 했더니 여자들이 먹기에는 전혀 적은 양이 아니다.

삭삭 긁어먹고 나니 배가 너무 불러 바로 일어나기에 조금 힘들었지만

식당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주기 위해 빨리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상큼하고 시원한 기운이 한참이나 입안에 남아 한낮에 찌는 더위도 물러가게 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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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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