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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중(盤中)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소반에 놓인 붉은 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유자(柚子)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비록 유자가 아니더라도 품어 갈 마음이 있지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세 글로 설워하나이다(품어가도 반가워 해주실 부모님이 안계시니 그를 서러워 합니다.)
여고 시절 국어 시간이었어요. 마르고 키가 크셨던 국어 선생님은 거의 환갑을 넘기신 연세이셨는데
이 시를 저희들에게 외우게 하며 "부모님께 효도 잘 해야 한다. 부모님이 가시고 난 뒤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대이~"
하시면서 효도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그 때문인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반중조홍감이......'하고 시작하는 조홍시가(早紅詩歌)를 막히지 않고 외울 수 있는 필자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가득 묻어나는 시가 조홍시가를 지은 분은
정철, 윤선도와 함께 조선3대 가인(歌人)으로 손꼽히는 노계 박인로 선생인데요.
노계 선생의 출생지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 선생을 기리는 도계서원이 있다하여 찾아가보았습니다.
경주에서 출발하여 영천으로 향하는 20번 국도를 타고 아화 교차로에서 서남쪽으로 10여분,
마평지에서 우회전하는 신평탑곱길의 끝부분에 노계 선생의 유적지인 도계서원이 있었습니다.
유물전시관과 주차장이 한창 공사중이어서 서원 건너편에 주차를 하고 다리를 건너 서원으로 향했습니다.
서원 바로 앞 작은 저수지에 아직 살얼음이 얼어 있더군요.
서원이 저수지에 비친 반영을 찍은 사진을 보았는데 저수지가 얼어 있는지라 찍을 수가 없었어요.
저수지를 앞에 둔 양지바른 야산에 도계서원이 있었습니다. 규모가 상당히 단촐해 보였어요.
가운데 건물이 서원 건물로 보여서 가까이 가 보았어요.
혹시나......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역시나......서원 문이 잠겨 있더군요.
그냥 발걸음을 돌리려다가 서원 왼쪽 담장 옆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야트막한 담장 덕분에 서원 안을 훔쳐볼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안으로 못 들어가니 밖에서 담장 사진도 찍어보고......^^.
기와 막새도 괜히 한번 찍어보고......^^;;
.
다시 내려와 왼쪽 건물로 가보았어요. 박노계집 판목이 보관된 곳이라고 하네요.
올라가는 계단이 좀 가파르더군요. 여기도 문이 잠겨있으면 어쩌지......하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이런, 여기도 자물쇠가 걸려 있더군요.
아쉬운 마음에 문틈으로 장서각 안을 살펴 보았습니다.
문틈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어 사진을 찍다가 살펴보니 ㅋㅋ
자물쇠가 걸려만 있고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페이크였군요.
안으로 들어가 살짝만 살펴보고 얼른 나와야겠습니다.
북안면 도천리에서 태어난 박인로 선생은 어려서부터 시재에 뛰어나 13세에 한시를 지었다고 해요.
무관이었던 선생은 왜란이 일어나자 수군으로 종군했고 선전관을 거쳐 만호를 지냈는데요.
선생은 전쟁 중에도 시정과 구국충정이 넘치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고 해요.
40세 이후 은거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문인 활동을 하셨는데
태평가, 사제곡, 누항사, 독락당, 영남가, 도계가.....등 9편의 가사와
오륜가, 조홍시가 등 67수의 시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노계집은 한시문과 가사, 시조를 수록한 3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판목 분량은 99매이고 이 건물은 노계집의 판목이 보관되어 있는 곳입니다.
판목이 보관된 곳에서 내려와 앞에 세워진 시비를 살펴 보았습니다.
노계 선생이 남긴 7편의 가사 중 최후의 작품인 노계가가 새겨져 있었어요.
노계가는 총 208구 98행으로 지어진 가사로써 노계의 경관과 자신의 생활을 읊은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백수에 방수심산 태만한줄 알건마는 평생소지를 벱고야 말라여겨
적서삼춘에 춘복을 새로입고 죽장망혜로 노계깊은골에
행여마참 찾아오니 제일강산이 임재없이 바려나다
.
(중략)
.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나다 하나님아 산평해갈토록 우리 성주 만세소서
회호세계에 삼대일월 비취소서 어천만년에 병혁을 쉬우소서
경전착정에 격앙가를 불리소서 이몸은 이 강산풍월에 늙을줄 모라로다
고전에 문외한인 필자가 보기에는 무슨 내용을 쓴건지......읽어보고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노계가는 은거지의 아름다운 경치와 그곳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자연에 몰입하는 주관적인 심회를 읊은 가사로
임진왜란을 직접 체험한 노계 박인로의 평화에 대한 염원과 구국충정을 노래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운문체로 쓰여져 4.4조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가사는 노래 같기도 하고 랩 같기도 하네요.
"첵 첵~ 예~압! 백수에 방수심산 태만한줄 알건마는 ♪ 평생소지를 벱고야 말라여겨 ♬"
노계가의 한 구절을 흥얼거리며 도계서원을 나와 임고서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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