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산책........................../일본'에 해당되는 글 38건

  1. 2014.05.01 한해 3400억원 벌어들이는 대박 캐릭터 곰인형 '쿠마몽(구마몽)' 15
  2. 2014.04.25 하카타 포트 타워에서 내려다 본 후쿠오카(Fukuoka,福岡) 시내 풍경 20
  3. 2014.04.07 일본 최고의 전통 코스 요리 가이세키(會席) 정식 12
  4. 2014.04.03 [벳부 여행]아름다운 지옥도 있다? 큐슈 제일의 온천 도시 벳부 가마토 지옥 21
  5. 2014.03.31 [벳부 여행]피부병, 신경통에 특효인 유황의 꽃, 유노하나 재배지 13
  6. 2014.03.13 [일본 큐슈 유후인마을]한폭의 수채화같은 킨린코호수의 물안개 풍경 26
  7. 2014.03.10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 큐슈 유후인 온천마을 19
  8. 2014.03.06 자판기 천국 일본, 부적도 자판기에서? 22
  9. 2014.03.03 [일본 후쿠오카 여행] 학문의 신을 모셨다는 신사. 다자이후 텐만구(태재부천만궁) 19
  10. 2014.02.17 뉴카멜리아 라인으로 떠난 일본 후쿠오카(북큐슈) 여행 22
  11. 2010.10.13 대마도 히타카츠의 소박한 항구 풍경 24
  12. 2010.10.12 부산이 바로 지척인 대마도 사오자키 공원 25
  13. 2010.10.08 광안대교 불빛도 보이는 대마도 한국전망대 28
  14. 2010.09.09 대마도 어촌의 신라 충신 박제상 순국비 19
  15. 2010.07.21 대마도에서 만난 소박하고 정갈한 일본 음식 75
  16. 2010.07.17 '저 바다에 누워?' 대마도 상대마장 호텔 25
  17. 2010.07.15 대마도 와다즈미신사는 바다 속에 신사문이 있다? 30
  18. 2010.06.18 일본에는 부적 자판기도 있다 32
  19. 2010.06.16 일본에서 만난 턱받이 두른 불상 26
  20. 2010.06.10 우메보시, 그 몸서리치는 기괴한 맛! 25
  21. 2010.05.17 은어가 돌아오는 청정 계곡 대마도 아유모도시 25
  22. 2010.05.10 통한의 다리 대마도 만관교(만제키바시)의 절경 55
  23. 2010.04.21 일본인의 장수 건강 식품 낫토 65
  24. 2010.03.17 너무 부러운 대마도 전통 가옥 보존 29
  25. 2010.01.24 아름다운 대마도의 땅끝 바다 31
  26. 2010.01.16 100톤 무게 돌지붕 가옥 대마도 '이시야네' 49
  27. 2010.01.11 일본 고양이 인형 마네키네코가 손들고 있는 이유는? 59
  28. 2009.12.17 일본의 쓰라린 추억 간직한 대마도 코모다하마 신사 43
  29. 2009.12.15 술병마다 이름 쓰는 일본 대마도 선술집 52
  30. 2009.12.05 대마도 특선요리 이시야끼와 싱싱한 사시미 45


 

일전에 대마도 여행을 갔을 때 가는 곳 마다 '마네키네코(복고양이 인형)'캐릭터를 만났던게 기억난다.

상점 앞에서 한쪽 손을 들고 복을 불러 들이는 마네키네코 인형은 일본 어느 지역에나 있겠지만

유달리 대마도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대마도의 상징동물이 '야마네코'라는 산고양이기 때문이다.

 

관련 포스트 : 일본 고양이 인형 마네키네코가 손 들고 있는 이유는?

 

여행에서 돌아온 후 너무나 깜찍한 마네키네코 인형 하나 안 사온 것이 못내 아쉬운 맘이 들어서

이번 북큐슈 어행길에는 조그만 마네키네코 인형 하나 사오리라 마음먹고 출발을 했다.

 

 

 

 

그런데 가는 곳 마다 고양이 인형을 찾기가 힘든다. 고양이 대신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은 모두 곰인형 캐릭터!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기를 얻고 있는 테디 베어도 아니고 시커멓고 뚱뚱한 곰인형이 온통 진열대에 장식되고 있다.

 

 

 

 

대체 이 곰인형이 뭐라고! 가방이며, 티셔츠, 문구류, 과자, 손수건, 심지어는 사케 술병에까지.....

온통 곰인형 캐릭터로 도배가 되었다.

 

 

 

 

시커멓고 뚱뚱하고 어떻게 보면 답답해 보이기까지 하는 곰인형 캐릭터의 이름은 '쿠마몽(くまモン)'.

 

 

 

 

구마모토현은 규슈 신칸센 개통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오사카에서 가고시마까지 이동 시간은 3시간 45분.

덕분에 큐슈를 찾는 관광객은 늘어나겠지만  쇼핑객은 후쿠오카로, 관광은 가고시마로 가버릴 것이고

어중간한 위치의 구마모토현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형편에 놓였다. 관광객을 끌어올 방도를 모색한 구마모토현은

구마모토 서프라이즈라는 슬로건 아래 사람들에게 친숙히 다가갈 캐릭터 '쿠마몽'을 만들게 된 것이다.

 

 

 

 

쿠마몽 캐릭터를 개발한 구마모토현에서는 캐릭터와 함께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도 곁들였다.

 

 

 

 

'구마모토(熊本)의 것'을 뜻하는 사투리에서 이름을 딴 쿠마몽은 신칸센 개통일인 3월 12일에 태어난

호기심이 왕성한 수컷 곰으로 직업은 구마모토현의 영업부장이다.

(캐릭터가 공무원이라니....! 직업이 정말 일본스럽다.)

 

 

 

 

말 끝마다 '~쿠마', '~'을 붙이고는 쿠마몽의 특기는 쿠마몽 체조, 취미는 맛있는 특산물 먹기다.

 

 

 

 

스토리 텔링을 입힌 쿠마몽은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되고 큐슈는 물론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에서도 관련 상품이 판매될 정도로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몸무게 100, 불룩 나온 배와 짧은 다리. 늘 상기된 빨간 볼.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이 까만 곰 한마리가

한해 벌어들이는 캐릭터 상품 수입은 무려 293억 엔(3,4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한 지역에서 태어난 캐릭터 곰인형은 이제 일본 전역을 커버하는 대박 캐릭터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헬로 키티의 신화를 가져온 일본. 이제 까만 곰 '쿠마몽'으로 제2의 캐릭터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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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배를 타고 후쿠오카(Fukuoka,福岡)에 이르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곳, '하카타 포트 타워.

 

 

 

 

'하카타 포트 타워(博多ポ-トタワ)'는  하카다 국제 여객선 터미널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어 

 승선 시간이 남을 때 들리면 좋은 장소이다.

 

 

 

 

타워 앞에 서서 올려다보니 철탑의 붉은 골조가 파아란 하늘과 어울려 화사하게 조화를 이룬다.

후쿠오카시 100주년을 기념하는 1964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이제 막 50년이 된 철탑 구조물이다.

타워의 설계자는 일본의 내진공학의 선구자로 와세다대학 교수인 '나이토 다추(內藤多仲)'로

그는 나고야 타워, 오사카 스텐가쿠, 벳부타워, 삿포로 타워,도쿄 타워, 하카타 타워를 잇달아 설계했다.

일본 사람들은 나이토 다추 박사가 설계한 이 타워들을 '6형제'라 부른다고...... 

 

 

 

 

후쿠오카의 랜드마크라 불리우는 하카타 포트 타워지만 규모는 크지 않고 실로 아담한 규모이다.

103m에 이르는 높이라니 타워 치고는 조금 낮다고 생각되지만

이곳에 오르면 하카타항과 함께 후쿠오카 전경을 둘러 볼 수 있어 좋다.

 

 

 

 

타워의 입장료는 무료이고 오후 9시 40분까지는 언제든지 둘러볼 수 있어 주경과 야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70m 높이에 있는 전망대에서 후쿠오카시를 둘러볼 수 있다.

 

 

 

 

1층 하카다항 홍보관에 있는 후쿠오카시 전도를 통하여 후쿠오카시의 전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그런데 시의 이름은 후쿠오카인데 왜 하카다항구라고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실 것이다.

1889년까지 이 도시는 나카가와를 중심으로 정치의 중심지인 서쪽은 후쿠오카(Fukuoka,福岡),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인 동쪽은 하카타(博多, Hakata)라는 도시였다.

그런데1889년 두 도시가 통합되면서 도시 이름은 후쿠오카로 부르게 되고 

철도역과 항구의 이름은 그대로 하카타(하카다)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전망대로 한발을 내딛으니 아뿔사! 여기도 철조망이 시선을 가로막는다.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파리 에펠탑 전망대에 올랐을 때 눈앞을 가로막는 철조망에 실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철조망이겠지만 모처럼 경관을 즐기러 올라온 여행자들에게는

시야를 가로막는 철조망이 정말 아쉬운 부분이라 느껴진다.

 

 

 

 

아쉬운 사진이나마 철조망과 함께 타워에서 보이는 경관을 한컷 한컷 담아보았다.

 

 

 

 

부두에 우리가 타고 온 뉴 카멜리아호가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카멜리아호야! 반갑다.

 

 

 

 

폭 24m, 길이 170m에 총 톤수가 19,961톤, 5층에 이르는 뉴 카멜리아는

화물 220TEU, 승용차 41대, 승객 522명을 실을 수 있는 호화여객선이다.

뉴 카멜리아호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아래 포스트를 참고하시기 바라며......

 

뉴 카멜리아호 관련 포스트 : 뉴 카멜리아 라인으로 떠난 후쿠오카 여행

 

 

 

 

하카다 포트 타워에서 내려다 본 후쿠오카 전경을 상세 설명없이 올려 드리자면......

 

 

 

 

 

 

 

 

 

 

후쿠오카의 랜드마크인 하카타 포트 타워는 국제 여객선 터미널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후쿠오카에 도착하거나 배를 타고 떠날 때 짧은 시간 여유를 가지고도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입장료 없이 돌아볼 수 있는 관광지치고는 꽤나 괜찮은 뷰를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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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오카 여행 중 일박한 아소카도만 호텔에서 일본 전통 요리인 가이세키 정식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호텔 일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가니 엄청나게 큰 다다미방에 수도 없이 많은 상이 차려져 있다.

 

 

 

 

 

원래 가이세키 정식은 에도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혼젠요리를 간단하게 변형한 것으로 

한정식처럼 처음부터 한상에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나오지가 않고

 대략 8단계 정도의 코스 요리로 나오게 되는게 보통이라는데 이 가이세키 정식은 약식인가 보다.

 

코스로 하나 하나 차례로 나오지 않고 한정식처럼 한꺼번에 한상에 빼곡이 차려졌다. 

하긴 23일 일정에 단돈 149,000원인 초저가 여행 상품이니 이 정도 식사도 굉장한 대접이리라.

 

 몇 가지 단계를 생략하거나 음식가지수를 줄여서 내는 약식 가이세키 정식은  

1인분에 5,000엔 정도도 있지만 정식요리는 거의 20,000엔을 홋가하는 가격이라고 하니 

일본사람도 평소에는 거의 먹지 않고 결혼식이나 공식연회 또는 손님을 접대할 때 먹어본다고 한다.

   

자리에 앉아 상에 차려진 음식을 살펴 보니 음식의 색감과 모양, 그릇의 색감이 너무 잘 어울린다. 

가이세키 요리는 음식마다 서로 같은 재료, 같은 요리법, 같은 맛이 중복되지 않도록 구성하고 

음식의 맛은 물론이고 색깔과 모양을 감안해 요리하는 하며  

요리한 음식을 그릇에 담을 때 그릇의 모양과 재질까지 고려한다고 한다.

 

 웹검색으로 알아본 가이세키 정식의 코스는 아래와 같다 

 

1.前菜(젠사이): 식사전에 나오는 약간의 요리  

2.(스이모노): 본격적인 요리를 맛보기전에 위를 보호하기 위한 간단한 장국(소금과 간장의 맛 

3.刺身(사시미): 생선회  

4.(야기모노): 구이요리  

5.煮物(니모노): 찐요리  

6.(스노모노): 식초로 조미한 요리(아에모노): 생선이나,야채,고기등 일본된장이나,간장으로 양념으로 한 요리 

(아게모노): 튀김요리 *시설에 따라 요리가 틀려진다.  

7.(고항): 味噌汁:(미소시루): 일본 된장국漬物(쯔케모노): 겉절이(일본식 김치 

8.果物(쿠다모노): 과일

 

아소카도만 호텔의 약식 가이세키 정식을 잠시 소개해 드리자면......

 

 



연근 조각을 넣은 계란말이. 작은 대통 안에 뭔가 있어서 먹은 기억이 있긴 한데 뭐였는디 통 기억이 안 나네요..^^


 



고등어 구이 한 조각. 일본어로 고등어는 '사바'라고 하는데 

이웃 사람이 고등어 한 마리를 선물로 주면 그것을 받은 사람은 비슷한 가치의 물건으로 반드시 보답을 하는데

고등어를 한마리를 안 주고 두마리를 주면 "이 사람이 나한테 왜 고등어를 두 마리나 주지? 뭔가 바라는게 있나?"하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남에게 지나친 선물을 주면서 뭔가 이득을 바라는 행위를 "사바 사바'라 한다고......^^


 



해초 무침으로 기억됨. 짭쪼롬한 맛.


 



고구마, 쑥갓 등을 튀긴 튀김요리. 간장에 찍어 먹지 않고  곁들여진 녹차 가루에 찍어 먹으면 무지 맛나다.


 



싱싱한 회 몇 조각. 히라쓰라는 회였던 걸로 기억남.


 



옆에 앉은 친구에게 포즈를 취해 줄 것을 강요해서 찍음.^^


 



안에 버섯, 양파 등이 들어 있었던 계란찜. 어쩌면 이렇게 부드럽지 하고 새삼 놀라며 먹음.


 



아래에 뜷린 구명에 숯을 피워 보골보골 끓게 해줌. 쇠고기, 양송이, 야채들이 잘 어울리고 국물맛도 완전 좋다.

서울식 불고기에 국물이 좀 많은 듯한 그런 느낌?


 

 

 

미소시루(일본 된장국). 깔끔한 맛이다.

 

 

 

 

후식은 부드러운 푸딩. 곡 플라스틱 1회용 그릇같이 보이지만 하얀 도자기임.

 

 

 

 

간소하기 이를데 없는 일본 음식 중에서도 이 정도면 아주 성찬 중에 성찬이다.

비록 정식 가이세키 정식은 아닌 약식이지만 배가 불러 밥을 남길 정도로 푸짐한 한상이었다.

  

 

식사 시작부터 끝까지 편안한 분위기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아끼지 않았던 종업원들도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엔 사진 모델이 되어 주는 수고까지 해주신 종업원 아주머니들께 감사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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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벳부(Beppu, 別府)는 일본 규슈(九州) 오이타 현(大分縣)에 있는 도시로 온천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벳푸 지역에는 8개의 온천이 있는데, '지고쿠(지옥)'이라 불리는 끓는 온천은 온천수와 함께 진흙까지도 하늘 높이 뿜어올린다. 

지하 250~300m에서 솟아오르는 온천수의 온도는 약 90~100도 정도인데 땅속에서 솟구치는 흙탕물에도 연기가 펄펄 난다. 

 

벳부의 온천들을 지옥이라 부르는 유래를 들어보면 천년 이상 오래전부터 증기. 흙탕물, 열탕 등이 분출되고 있었던 이 지역은 

주민들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불길한 땅으로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주민들로부터 '지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왔다고 한다. 

칸나와 지역에서는8개의 지옥을 돌아보는 관광 코스에 '지옥 순례'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러개의 지옥 중에서도 '가마토 지고쿠(かまど地獄,가마솥 지옥)'이라 불리우는 온천을 방문해 보았다. 

주차장 바로 옆에는 수백명이 먹을 수 있을만한 가마솥이 떡하니 걸려 있어 여기가 가마토 지옥임을 알려준다.

 

 

 

 

 

가마솥 지옥(かまど地獄)은 1200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진 온천 명소이다. 

 

 

 

 

 

옛부터 조상신을 모시는 가마토 하치만궁 신사의 봄, 가을 두 차례의 대축제 때 

지옥의 증기로 밥을 지어 신사에 바치는 풍습이 가마토 지옥 명칭의 유래가 되었다 하기도 하고 

돌 사이에서 뜨거운 증기가 새어나오는 모양이 마치 화덕을 닮았다고 해서 가마솥 온천이라 이름지어졌다고도 한다. 

온천 입구에는 지옥 온천을 상징하는 지옥의 괴물이 을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고 서 있는데 

아래 바위 틈에서 쉴새없이 뿌연 수증기가 뿜어져나와 지옥에 온 듯한 섬뜩한 효과를 내어준다. 

 

 

 

 

  힘차게 내 뿜는 증기와 함꼐 치솟는 뜨거운 온천수의 온도는 90도.

 

 

 

 

얼마나 뜨거운지 바닥의 황토까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모습이다.

 

 

 

 

 

가마토 지옥에서는 곳곳에서 담배쇼를 펼치는 안내원들을 만날 수 있는데 

온천의 분출구를 향하여 성냥이나 담뱃불을 힘껏 불면 온천의 연기가 갑자기 몇배나 크게 치솟아 오른다. 

담배 연기로 인해 연기 입자가 온천 증기를 빨아들이는 작용이 상승하게 되어

순간 온천에서 나오는 연기가 몇배 더 자욱하게 된다고......

 

 

 

 

마치 피를 물에 탄듯 붉은색의 온천수는 섬칫하기까지 하다.

붉은색 온천은 혈(血)온천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피처럼 붉은 온천이라는 뜻이다.

 

 

 

 

 

빨간 점토로 된 혈온천은 산화철이 많이 함유된 원천 부근의 점토층이 많이 올라와 붉은색을 띄는 곳이다. 

푸른색 온천에 반해 붉은색 온천은 남성에게 좋은 성분이 많다고....

 

 

 

 

 

혈온천의 옆에는 발을 담그고 싶을만큼 파아란 온천수가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핏빛처럼 붉은 혈온천은 섬뜩한 느낌이었지만 파아란 색의 온천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느낌도 든다.

 

 

 

 

파란색이라고 해서 온도가 낮을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쉴새 없이 피어오르는 증기를 보면 이곳 온천수 또한 어느 정도 뜨거운지 짐작이 간다.

 

 

 

 

 

 

  에메랄드빛의 온천수는 탄산염 온천수인데 여성에게 좋은 성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고......

 

 

 

 

 

  이곳에서는 온천수에 족욕하거나 스팀 쏘이기, 유황 온천물 마시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를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온천의 증기로 삶은 다양한 먹거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벳부의 특산품인 지옥 온천에 삶은 계란을 하나 맛보기로 한다.

계란은 속이 쫀득쫀득한 것이 우리나라 찜질방 계란과 크게 다를바가 없는데 먹는 방법이 좀 특이하다.  

흰자는 소금을 쳐서 담백하게 먹고 노른자는 간장을 쳐서 풍미를 돋구어야 한다고...... 

 

 

 

 

지옥 온천수에 삶아진 계란을 먹을 때 약간 체하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서는 벳부 사이다와 함께 먹는 것이 좋다.

 

 

 

 

벳부 사이다는 병 모양이 참 특이하다. 병 안에 구슬이 들어 있는데 

그 이유는 톡 쏘는 탄산을 한꺼번에 들이키지 못하도록 나름대로 특별 설계를 해놓은 것이다.

병 뚜껑을 따면 보이는 구슬을 살짝 밀어 넣으면 볼록하게 튀어 나온 병 목에 구슬이 떨어진다.

마실 때 마다 구슬이 움직이면서 사이다가 한꺼번에 콸콸 나오지 않도록 조절해준다.

계란을 먹은 후에 사이다를 마셨기 때문일까? 벳부 사이다의 맛은 시원하고 맛있었다.

여느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은 그리 강하지 않으면서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맛난 사이다이다.

   

 

 

 

벳부가 자랑하는 8가지 지옥을 다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가마토 지옥을 보고나니 다른 지옥도 본듯한 느낌이다.

푸른 지옥과 붉은 지옥, 그리고 지옥에서 삶은 계란과 지옥 사이다까지.......

짧있지만 인상적인 가마솥 지옥 순례를 마치고 다시 인간이 사는 동네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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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20대 여성이 가장 가고 싶어 한다는 여행지 1위에 선정된 바 있는 유휴인 여행을 마치고

유후인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이동하니 자그마한 산골 마을이 길옆으로 펼쳐진다.

 

 

 

 

길 옆으로 펼쳐진 집마다 하얀 증기가 무럭무럭 올라오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하다.

 

 

 

 

이 마을은  약용효과가 뛰어난 천연의 입욕제인 '유노하나(湯の花 : 유황의 꽃)' 재배지.

각종 피부병과 기저귀 발진, 무좀, 류마티스, 근육통, 신경통에 효과가 있는 유노하나는 

겨울에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여름에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 가정에서 온천을 즐기게 해준다.

 

 

 

 

이곳의 온천수는 유황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천연 유황 재배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고 한다.

에도(江戶)시대인 1664년에 재배에 성공했다고 하는 유노하나는

아직도 250년전에 만들어지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며 만들어진다고 한다.

 

 

 

관광객들을 위한 유노하나 생산 견학장이 마을 입구에 있어 잠깐 둘러 보았다.

유노하나 재배 가옥(明礬泉湯の花小屋)은 삼각형의 긴 지붕이 특징인데 지붕은 모두 초가로 되었다.

 

 

 

 

재배 가옥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니 유황 냄새가 훅 하며 코를 자극한다.

내부는 양쪽으로 문이 나있고 통로 양쪽으로는 노란 유황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다.

 

 

 

 

온천 증기가 솟아나는 곳에 다량의 미네랄이 포함된 벳부 온천만의 청점토를 깔고

그 위에 볏짚을 덮어주면 땅당속에서 올라오는 온천 분기가스 중 유황 성분이 돌과 점토에 붙게 되고

100일 동안 숙성하게 되면 천연 유황 유노하나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유황 결정체가 마치 꽃처럼 보였던 것일까? 벳부 사람들은 이 천연유황을 '유노하나(湯の花 : 유황의 꽃)'라고 부른다.

 이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유노하나는 일본 전국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할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 재배 가옥에서는 유황 위에 앉아 유황을 긁어내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노하나 견학 가옥을 잠시 돌아보는데도 강렬한 유황 냄새에 머리가 약간 지끈거릴 정도였는데

매일 강렬한 온천가스를 마시고 코를 자극하는 유황 냄새를 맡고 사는 이곳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채취한 유황으로는 비누, 샴푸 등 입욕제나 신경통, 근육통, 아토피 치료제 등을 만들 뿐만 아니라

쉴 새 없이 내뿜어나오는 온천 분기가스를 이용하여 떡이나 계란등을 맛있게 삶아서 팔기도 한다.

 

 

 

 

유노하나를 생산하는 독특한 기술은 일본의 중요 무형 문화재로도 지정이 되어 있다.

문화재 지정 팻말 아래에서 온천 분기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분출구 바닥면에 유황이 흡착되어 노랗게 변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유황의 꽃 유노하나 재배지를 한바퀴 돌아본 후 벳부 가마토 지옥으로 서둘러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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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이치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로 유명한 유후인 온천마을.

유후인마을의 끝부분에는 마주보이는 산과 아름다운 숲, 카페들이 어우려져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은 호수가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한참이나 걸어서 호수에 도착하니 탄성이 저절로 일어난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호수에는 반대편의 나무들과 산들이 얼느거리고 수면에는 하얀 물안개가 연신 피어오른다.

 

 

 

 

호수는 생각보다 너무 소박하고 아담하다.

둘레가 약 400m 정도라니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동네 저수지 정도의 규모이다.

 

 

 

 

유후인마을을 더욱 아름답게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이 호수의 이름은 킨린코(金鱗湖) 호수이다.

 

 

 

 

킨린코(金鱗湖,금빛비늘호수)라는 낭만적인 이름은  킨린호의 물고기가 수면 위를 뛰어오르는 모습이

석양에 비칠 때 마치 금빛처럼 빛난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비도 내리고 아침나절이라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의 비늘이 금빛처럼 빛나는걸 볼 수는 없지만

운좋게 석양이 아름답게 비칠 때 호수에 다시 온다면 수면 위에 금빛 비늘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겠지.

 

 

 

 

 

물고기의 금빛 비늘은 볼 수 없지만 하얀 물안개가 호수 전체를 뒤덮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침나절에만 호수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는데 그 이유는

호수 서쪽 밑바닥에서는 온천수가 솟아나오고 동쪽 밑바닥에서는 차가운 물이 솟아나오기 때문에

아침나절에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하얀 물안개가 피어올라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킨린코 호수를 눈에 담아 갈 수 있다고......

 

 

 

 

 

호수 건너편에는 아주 조그만 신사가 우거진 수풀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신사의 문인 도리이가 물 속에 세워진 것도 아주 낭만적이다.

 

 

 

 

맞은편에 보이는 검은 지붕의 건물은 샤갈 미술관. 2층에는 39점 정도의 샤갈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소박한 미술관이다.

1층에는 기념품가게와 카페가 있는데 킨린코 호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이곳의 커피 맛은 정말 최고라고.......

미술관 옆의 초가 지붕은 시탄유 온천탕인데 유휴인의 대중 온천탕 중 가장 유명한 곳이다.

입욕료는 200엔인데 지키는 사람 없이 무인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유후인에서 유일하게 남녀 혼욕이 가능한 목욕탕이다.

 

 

 

 

킨린코 호수는 규모도 작고 한바퀴 도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 평범한 호수이지만

건너편 산과 아름다운 숲, 주변의 아름다운 카페들과 어울려서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름다운 곳이다.

거기다 하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나절에 킨린코 호수 주변을 산책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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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신을 모셔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학생들이 많이 간다는 신사 다지이후 텐만구(태재부천만궁)를 떠나

그 다음 여행 코스로 돌아본 곳은 큐슈 오이타현 중앙에 위치한 유휴인(由布院)마을.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으로 유명한 

작은 온천마을 유후인은 '20대 일본여성들이 제일 가고 싶은 여행지 1위'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평균 고도 해발 470m에 인구 11,000명이 사는 작은 마을에 찾아오는 관광객이 연간 400만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처음 유휴인은 농작물을 재배하며 살아가는 작고 평온한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1952년에 이 마을에 거대한 댐을 건설하고 유후인 분지 전체를 호수로 만든다는 계획이 세워지자

마을 주민 모두가 이주해야 하는 현실에  부딛힌 주민, 청년, 료칸 경영자들이 모여 댐 건설 반대운동을 벌이게 된다.

마을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딛혀 결국 댐 건설은 취소가 되고

반대운동을 벌이던 주민들은 유휴인의 미래에 대해 서로 의견을 모으게 되는데

당시 촌장이던 이와오히데카즈의 지휘 아래 아름답고 평온한 온천마을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유후인에 지어지는 건물은 모두 고도제한을 하고 호텔이나 골프장, 리조트 같은 대형 레져 시설의 건설을 막았으며

60실 이하의 소규모 료칸만 유치하는 등 '오래 된 것처럼 꾸며진 도시'라는 다른 마을과 다른 차별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마을의 규모는 상당히 작은 편이라 도보로 산책하며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보기에 좋다.

 

 

 

 

공기도 좋고 특히 물이 맑아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에 유유히 백로가 노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가게들은 길을 한가운데 두고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으며 대부분의 가게가 일본 전통식 건물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가게마다 특징이 있지만 대부분 관광기념품이나 의류, 예쁜 소품 등을 파는 가게가 많다.  


 

 

 

 

 

 

 

어떤 가게 앞에는 유휴인에 가는 여성들이 꼭 산다는 사쿠라 우산이 눈에 뜨인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평범한 단색의 우산이지만 비를 맞으면 단색의 우산에서 사쿠라(벚꽃) 문양이 나타나는 우산이라 고 한다.

마을을 돌아보던 내내 비가 내리고 있던 날인지라 우산에서 사쿠라 문양이 예쁘게 드러났다.

 

 

 

 

유후인 마을에서 특히 눈에 뜨이는 곳은 동화마을처럼 예쁜 집과 예쁜 거리로 꾸며진 <Yufuin floral Viiiage>.

 

 

 

 

이곳의 상점들은 모두 동화 속의 마을처럼 예쁜 단장을 했다.

 

 

 

 

예쁜 가게들과 잘 꾸며진 예쁜 가게들로 빼곡이 들어찬 골목들은 셀카를 즐기는 여성들이 딱 좋아할만한 곳이다.

왜 이 마을이 일본의 20대 여성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여행지인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유난히 사람이 많이 줄서서 기다리는 곳이라 뭐하는 곳인가 하고 가까이 가 보았더니

바로 유휴인에서 가장 유명한 금상 고로케집이다.

 

 

 

 

금상 고로케가 대체 무슨 뜻인가 했더니 제 1회 전국 고로케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금상 고로케는 바삭바삭한 튀김옷이 특히 눈에 뜨이는데 고로케 안에는 잘게 다져진 연한 고기가 들어있다.

고로케를 한입 깨물면 바삭하며 입안에서 고소함이 부스러지고 

안에 든 소는 너무 부드러워서 저절로 목으로 사르르 넘어간다. 과연 금상 고로케이다.

 

 

 

 

그외에도 친환경적인 먹거리가 즐비한데 그중에서도 특히 두부로 된 먹거리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우리 입맛에도 딱 맞는 두부 과자도 자꾸만 손이 가게 만드는 음식들이다.

 

 

 

 

꿀벌이 그려진 예쁜 집에 있길래 들어가보니 아이스크림집이다.

이집의 자랑거리인 아이스크림을 받아 허겁지겁 먹다보니......아차! 인증 사진을 안 남겼구나!

 

 

 

벌꿀을 이용한 아이스크림, 과자, 먹거리들이 너무나 예쁘게 진열되어 눈길을 끌 던 곳이다.

 

 

 

 

 

마을의 한쪽에는 샤갈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입장료는 600엔이라고 하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 했다.

2층에는 39점 정도의 샤갈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소박한 미술관인데

1층에 있는 카페에서 킨린코 호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가 단연 일품이라고......

 

 

 

 

유후인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단연 킨린코 호수이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 사진을 찍느라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킨린코 호수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상세히 설명드리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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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사에 가면 자식의 대학 합격을 비는 부적, 자동차 사고를 예방하여 준다는 부적,

사업을 번성케 하는 부적 등 다양한 부적과 함께 갖가지 기원문이 적힌 상징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신사에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적어서 매다는 작은 나무판을 따로 사기도 하는데

이렇게 자기 소원을 적어서 매달아 놓거나 걸어놓는 작은 나무판을 '에마(繪馬)' 라고 한다.

 

 



사람들은 에마에다 사랑과 가족의 건강, 대학 합격 등을 위한 글귀를 쓰고 그것을 신사의 한곳에 걸어놓는다.

 

 

 


'다자이후 텐만구' 신사는 일본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신 신사이기 때문에

이곳에 걸린 에마 중 많은 부분은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소원의 글귀이다.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입시가 인생의 가장 힘든 관문인 듯......


 


 

대부분의 신사에서는 운세 같은 것을 점칠 수 있는 괘를 팔기도 하고 부적도 파는데

'다자이후 텐만구' 신사의 마당 한켠에 '오미구치' 자판기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시주함에 돈을 넣으면 주는 운이 적힌 부적 종이를 '오미구치(御神籤)'라고 하는데.

이곳 뿐 아니라 일본 대부분의 신사에서는 오미구치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만날 수 있다.

 

 

 

 

자판기에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맨 아래 난 구멍에서 오미구치가 나오는데

오미구치를 펼쳐 보았을 때에 좋은 괘가 나오면 산 사람이 가지고 가고

좋지 않은 괘가 나오면 신사 앞 나무나 오미구치 매다는 곳에 매달아 놓고 간다고 한다.

 

 

 

 

다자이후 텐만구 신사 앞에 매달린 수많은 오미구치를 보니

원하지 않은 나쁜 괘도 오미구치에 많이 나오는가 보다.

 

 

 

 

돈을  주고 부적을 받는 번거로움과 인건비 절약을 위해서라곤 하지만

 일본인의 놀라운 상술은 부적자판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부적까지 자판기로 팔다니.....자판기 천국인 일본다운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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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돌아본 곳은 일본 신사 '다자이후 텐만구'(태재부천만궁,太宰府天滿宮)이다.

일본에 있는 10만개의 신사 중에서도 905년에 건립된 '다자이후 텐만구'는 유명했던 시인이자 학자이며 철학자였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 845~903)'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는 곳으로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곳.

 

 

 

 

 

약간의 비가 뿌린 듯 흐린 하늘 아래 도착한 다자이후 텐만구 앞의 상가들.

이곳 다자이후 텐만구로 들어서는 길에는 '우메가에 모치'라고 하는 떡이 유명한데,

이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도 맑아지며, 시험에 딱 하고 붙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수능시험일에 찹쌀떡을 선물하는 풍습도 여기서 유래했다는 설이.......


 

 

 

일본의 신사는 '도리이(鳥居')에서 시작되는데 바로 신사 앞에 '天'이라는 글자 모양으로 서 있는 문을 말한다.
신의 사신이라 믿는 새가 쉬어가도록 한다고 해서 '도리이(鳥居,도리이는 '새'라는 뜻의 일본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장대 또는 솟대'로 표현되는데 솟대 위에 새 모양을 만들어 붙이는 우리의 전통 신앙과도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도리이를 지나 신사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소가 앉아 있는 동상을 만나게 된다.

신사 앞에 웬 소 동상인가 의아했는데 스가와라노미치자네는 왕의 친애를 받아 일찍 높은 지위에 올랐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시기와 질투를 사서 이곳 규슈의 다자이후에 귀양을 오게 된다.

스가하라노미치자네가 죽었을 때 소가 끄는 마차에 시신을 싣고 나가는데 

이 우마차가 갑자기 멈춰서 꼼짝달싹 안 해서, 그를 이곳에 묻었다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소를 만지면 스가하라노미치자네처럼 공부를 잘하게 된다고 해서

오는 사람들마다 소의 뿔을 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죽고 그를 이곳으로 좌천시키는데 가담한 인물들이 모두 이 유모를 사건과 병으로 죽게 된 후,

 그를 모시는 텐만궁을 이곳에 짓게 된다.

 

 

 

 

이 외에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이야기는 일본의 많은 소설과 드라마, 영화의 소재거리로 등장한다고.......

 

 

 

 

소 동상을 지나면, 붉은색으로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다리가 나오는데, '다이코바시'라고 불린다.
이 다리를 지나면, 현세와 내세를 연결한다고 해서,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 과거의 다리를 건널 때는 다른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 결코 뒤돌아보아서는 안되는데

이는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마라는 교훈이 담겨져 있다고......

 

 

 

 

배례전으로 가는 다리 주변에는 이렇듯 경관이 빼어난 연못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 연못에는 큰 잉어들이 유유히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거대한 거북이와 자라도 살고 있다고 한다. 

천만궁에는 아름드리 거대한 나무들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는데 이 나무들은 녹나무라고 한다.

어떤 나무들은 수령이 거의 1,00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일본은 습기가 많아서 나무들이 오랫동안 살 수가 있다고.....

 

 

 

 

다이코바시를 건너 조금 걸어가면 다시 돌로 된 도리이가 나타나고

 

 

 

 

웅장하게 자리잡은 배례전 입구문 위의 근하신년이라는 새해 인사가 들어서는 이들을 반긴다.

 

 

 

 

신사 앞에는 이렇게 '테미즈야(손을 씻는 곳, 洗手帶)'가 있는데 모두가 이곳에서 발길을 멈춘다.

우리나라 사찰 앞에 있는 감로수처럼 갈증을 씻기 위한 물인가 싶어 한모금 마실 수도 있겠지만

테미즈야의 물은 마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손을 씻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이 물은 절대 마시지 않으며 국자를 입에 대지도 않는다고......

 

 

 

 

이 곳에서 손을 씻고 배례전으로 들어가는데 오른손으로 국자를 들어서 왼손에 물을 부어  씻고 그런 다음 오른 손을 씻는다.

그런 다음 왼손으로 물을 떠서 입에 넣어 입을 행구고 다시 왼손을 씻는다.

처음 왼손을 씻는 것은 전생에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는 뜻이, 오른손을 씻는 것은 현생에 지은 죄를,

입을 행구는 것은 입(말)으로 지은 죄를 사해달라는 의미라고 한다.

 

 

 

 

배례전 입구문 바로 옆에 있던 거대한 찹쌀떡이 재미있다. 설날에 신사에 바친 찹쌀떡인 듯......

 

 

 

 

 

신사 경내의 규모에 비해서 배례전의 규모는 비교적 소박해 보인다.

905년에 처음 건립된 건물이라니 빛바랜 지붕에서부터 세월의 흔적이 오로시 느껴진다.

 

 

 

 

신사 앞에 서 있는 매화나무 한그루가 특이하다. 매화나무의 이름이 '도비우메(비매,飛梅)'라고 한다.

스가와라노미치자네가 죽는 날 매화 가지가 교토에서 규슈로 날아와

하룻밤 새에 6천 그루나 꽃을 피웠다는 전설을 가진 매화나무이다..

이곳의 매화는 해마다 다른 지역의 꽃보다 먼저 봉우리를 떠뜨리는것이 유명하다고.

 

 

 

 

이곳에서 일본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참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부의 신을 모신 신사라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일본학교에서는 '다자이후 텐만구'가 수학여행의 필수코스로 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얇게 드리운 휘장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신관이 앉아서 특이한 목소리로 축문을 읽고 있는 중이다.

내부 장식은 붉은색 푸른색이 어우러져 상당히 화려한 편이고 제일 가운데 동그란 거울이 걸려 있는 것이 상당히 특이하다.

 

 

 

  

 

 

 

 입시지옥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수험합격을 위한 각양각색의 부적이나 장식품들이 즐비하다.

우리나라 사찰들이 입시철이면 입시 기원 예불을 드리는 것 처럼

여기서도 신사의 모든 기능이 '입시 기원'에 집중이 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배례전 앞을 나와 신사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회랑 주변을 걸어다니는 신녀들이 뒷모습이 단아하고 예쁘다.

 

 

 

 

신사의 한곁에는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술독도 눈에 뜨이고.......

 

 


 

 

작은 신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들도 눈에 뜨인다.

 

 

 

 

이렇게 호젓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건물들도 많이 보이고

 

 

 

 

필총이라는 재미있는 비석도 눈에 들어온다.

 

 

 

 

배례전의 뒷편에는 이렇게 '에마(繪馬)'가 잔뜩 걸려 있는 모습을 볼수 있다.

신사에다 자기 소원을 적은 나무판을 걸어놓는 것을 에마라고 하는데

걸려 있는 에마 중에서는 한국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에마도 간혹 보였다.

 

듣기로는 대학입시철에는 우리나라 강남의 많은 열혈 학모들이 '다자이후 텐만구' 신사에 찾아와서 참배하고

소 머리를 만진 후 자기 아이의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에마를 이곳에다 걸어놓고 간다고 한다.

아무리 대학 입시가 생에서 소중한 부분을 차지한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의 성공에 눈이 멀어 남의 나라 신사에 와서 참배하고 소원을 빌고 가는 

그런 얼빠진 짓들은 제발 좀 삼가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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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중에 잠시 일본 큐슈로 2박3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개인 여행은 아니었구요. 직장 동료들끼리 짧은 휴가를 이용해서

 홈쇼핑에서 모집했다는 패키지 여행의 남은 자리에 살짝 끼어 다녀왔어요.

 2박3일 전 일정 동안 여행 가격 149,000원에 유류할증료 24,900원, 가이드 봉사료 30,000원을 포함해서 

총 여행 비용 203,900원으로 2박3일 여정의 초저가 일본 여행을 다녀왔네요!


부산에서 출발하는 카페리 카멜리아 라인을 이용했기 때문에 오고가는 일정에 시간은 많이 걸렸고

본격적인 투어를 하는 날에는 종일 비가 왔기 때문에 기대감을 갖고 찾아간 아소산에서는 분화구는 커녕

비와 안개로 인해 산중턱도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등 크게 건질(?)만한 것은 없었던 여행이었지만

그저 동료들과 함께 오고가는 배 안에서 담소를 나누며 여가를 즐기기에 좋았던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하기는 좋았지만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여행이어서

사진도 많이 찍지 못했고 이야깃거리도 많이 담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큐슈 여행기는 5~6회 정도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일본여행의 시작은 부산항 국제 여객선 터미널에서부터 시작된다. 

부산발 후쿠오카행 호화여객선인 뉴 카멜리아는 늦은 오후 10시 30분에 항구를 출발하지만 

6시 40분까지 승선을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 6시에는 터미널에 도착해야 했다.





부산에서 큐슈의 후쿠오카(하카타항)까지는 상당히 큰 규모의 뉴 카멜리아호를 이용하게 된다.



하카다 항에 정박한 뉴 카멜리아호. 하카다 타워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폭 24m, 길이 170m에 총 톤수가 19,961톤에 이르는 호화여객선 뉴 카멜리아호.

카멜리아는 동백꽃이라는 뜻인데 부산과 후쿠오카의 시화(市花)가 바로 동백꽃이기 때문에

두 도시간 항로를 연결하는 이 여객선에 카멜리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발권 후 출입국신고서를 미리 작성해놓고 터미널내에 있는 환전소에서 엔화로 환전을 했다.

뉴 카멜리아는 일본 국적의 배라서 선상에서는 엔화만 통용된다고 한다.


 



출항은 오후 10시 30분이지만 출입국사무소가 7시 이후에 근무를 종료하기 때문에 6시 40분까지는 승선을 마쳐야 한다. 

승선 후 4시간을 기다려야 배가 운항을 시작한다니.....오는 시간에 비해 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게 단점이다.





배에 올라서 갑판으로 나가보니 여객선 터미널의 모습과 함께

멀리 용두산에 위치한 부산 타워, 광복동 롯데 백화점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물 220TEU, 승용차 41대, 승객 522명을 실을 수 있는 뉴 카멜리아는 5층으로 나누어졌는데 

제일 비싼 로열 스위트룸의 여객운임이 왕복 380,000원 정도이고

가장 저렴한 2등실이 왕복 171,000원 정도의 운임이다.

내부시설은 레스토랑, 전망 라운지,면세점, 오락실, 노래방, 목욕탕,자판기 등인데

일본 선적의 배라서 내부는 상당히 깔끔한 편이고 선내에서는 일본 엔화만 통용된다.

 




 최상층인 5층에는 호텔 스위트룸과 버금가는 로열 스위트룸과

디럭스룸, 1등실 등이 자리잡고 있고

 




우리 일행이 묵을 2등실은 다인실이므로 3층에 자리잡고 있다.





다인실인 2등실은 카페트가 깔린 방으로 되어 있어 매트를 깔고 누워서 가거나 

가족이나 단체 여행객이 서로 담소를 나누며 여행하기에 좋은 곳이다.



 

 

3층에 있는 안내 데스크. 바로 맞은편에는 레스토랑과 간이 면세점이 자리잡고 있는데

면세점이라 해도 특별한 것은 없고 그저 기념품이나 과자 정도 파는 수준이다.


 

 

 

 

뉴 카멜리아의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로비에는 3층에서 5층까지 이어진 계단이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로비에는 장식된 일본식 새해 장식. 영춘(迎春)이란 글귀를 보니 포근함이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다.

 

 

 

 

3층 로비에는 운항 상황을 알리는 모니터와 함께 여행객들이 음식을 먹거나 담소를 나누는 공간과

앉은채로 선창을 통해 외부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전망 라운지도 마련되어 있다. 

 

 



레스토랑은 많은 여행객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큰 공간인데

하카다항으로 가는 동안 저녁과 아침, 두번의 식사가 이곳에서 제공된다.

밥과 국, 반찬 3가지가 전부인 소찬이었지만 국맛은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곳.


 

 

 

오랜 시간 항해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오락실과 노래방들이 갖추어져 있는데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보인다.

 

 

 

 

밤에 타서 아침에 내리는데 샤워는 어떻게 하나 걱정했더니 대욕장이 선내에 갖춰져 있다.

탈의실의 바구니에 옷을 벗어두고 욕장으로 들어가면 제법 너른 탕 속에 몸을 담글 수도 있고

5~6개소 정도 있는 수도꼭지에서 샤워 등도 할 수 있는데 수질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대욕장에서 샤워를 마치고 선실로 들어오니 드디어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산의 야경을 뒤로 하고 서서히 움직이더니 오륙도도 뒤로 보내고 캄캄한 바다를 내달리기 시작한다.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으면 어떻게 자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11시가 되니 객실에 일제히 불이 꺼진다.

약간의 흔들거림 덕분에 기분좋게 스르르 잠이 들어 눈을 조금 붙였나 생각하는데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다. 창 밖을 내다보니 배가 하카다항으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선내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고 기다리면 출입국사무소가 문을 여는 9시가 되어야 하선을 할 수 있다.

부산에서 밤에 떠나 아침에 하카다에 내리는 항해는 거의 11시간이 걸렸지만

돌아올 때는 기다리는 시간없이 항해하니 5시간 30분이 걸리는 항해라고 한다.

 

 

 

 

하선을 기다리며 선창 밖을 보니 후쿠오카시내의 모습과 함께 바로 눈앞에 하카타 타워가 우뚝 서 있다.

후쿠오카와 하카다 두 도시가 두 도시가 병합하여 후쿠오카라는 도시 이름을 얻었지만

기차역이나 항구 이름은 예전 그대로 하카타역, 하카타항, 하카타 타워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이제 하카타항에 내림으로 본격적인 북큐슈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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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마의 이즈하라에 도착하여 시작된 대마도 여행은 상대마의 히타카츠에서 마무리된다. 

 미우다 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히타카츠는 그야말로 조그마한 항구이다.  

 
차에서 내리니 바로 앞에 국제 여객 터미널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우리나라 시골 읍내 버스 터미널을 연상케 하는데 이름은 국제 페리 터미널이다. 


 터미널 맞은 편에 '환영'이란 글이 3개 국어로 쓰여 있는데
일본어와 한글이 병기되어 있는 표지판은 대마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출항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터미널 근처를 배회하며 동네 구경을 해본다. 
 


터미널 바로 맞은 편에 띄엄 띄엄 상가들이 보인다.

중심 상가라고 해봐야 이렇게 한산하기 그지 없고 도로에 운행하는 차들도 간혹 눈에 뜨일 따름이다.
 

 

 
히타카츠 항구 건너편으로 어촌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 밤 산책 했던 건너편 마을은 마을 전체를 다 돌아보아도 사람의 기척은 커녕
희미한 전등 하나 정도만 켜져 있는 주택들 사이로 온 마을이 불빛도 비치지 않는 암흑 천지어서
걸어가는 발소리와 기침 소리조차도 온 골목에 울려 퍼지는 통에 등골이 오싹했던 기억이 있다. 

 
여객 터미널 바로 옆엔 국제 여객 페리 출입국 사무소가 보인다. 
 

 
바로 앞엔 해상 보안청의 경비정이 서 있고... 


주유 트럭이 와서 경비정에다 기름을 공급하고 있는데 
 


담소를 나누면서 한가하게 근무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도 규모가 큰 배는 거의 없다.
 

 

 
작은 항구인지라 컨테이너도 큰건 별로 없고 옆에는 코딱지만한 지게차 한대가 잠시 쉬고 있다.
 


이윽고 지게차 기사가 나타나서 막 일을 시작하려는데 다른 아저씨가 나타나서 담배 한대를 권한다.

이야기는 길어질 대로 길어져서 작업은 언제 시작하려는지....

 


몇 대 없는 차 중에 택배차와 소형 트레일러가 나란히 기다리고 있는데
대마도는 차량 대수가 그다지 많지 않은지라 78-83, 50-19 란 번호판이 이색적이다.

 
택배사의 로고는 대마도의 상징 동물인 '산고양이'인 듯..
 

 


파란 컨테이너 옆에 빨간 컨테이너가 눈에 띈다.
 

 
터미널 옆 전화 부스에는 색깔이 서로 다른 전화기 두대가 나란히 있다.
 

 
기능이 서로 다른 것인지...색깔만 다른 것인지.... 궁금하다.
 

 
대합실은 정말 조그마했는데 구멍가게 같은 매점이 하나 있고 바로 옆에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있다.
사람 몇 안 사는 조그만 시골 동네에도 자판기가 설치된 일본은 그야말로 자판기의 천국! 
 

 대합실 벽에 붙은 포스터. 일본 사람들도 짝퉁을 사긴 하나 보다. 
 

 
밀항,밀어,밀수 신고는 110번이란다...ㅋㅋ
 

 
사람이 사는 곳에 범죄는 따라 가는 법.
이곳에도 어김없이 지명 수배 포스터가 붙었다. 신고는 역시 110번~
 

 
작은 대합실을 배회하며 포스터 등을 읽어 보고 있는데 출항 시각이 되었다.
코딱지만한 국제 여객 페리 출입국 사무소를 거쳐 쾌속선을 타면 1시간 40분만에 부산항에 도착하게 된다. 
  

 여행 중에 돌아본 대마도는 일본 땅이면서도 한국에 점령 당한 듯 해 보였다.
대마도 관광객의 90%가 한국인이라 대마도에서 활기차게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일 뿐 아니라
대마도 재정에서 한국 관광객의 의존도는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대마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영토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며 부산 행 카페리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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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의 사오자키(棹岐)공원은 '일본국 최서북단'이란 표지석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와 최단거리로 부산까지의 거리는 49.5km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본 본토으와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까지가 132km이니
부산과 대마도와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지역은 대한해협에서 쓰시마해협으로 돌아 들어오는 곳으로 
쓰시마 난류의 분기점이라 해류가 매우 빠르다고 한다.
 

사오자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안내 표지판이 있고
조금 오르면 포대, 탄약고 등 2차 대전 당시 군사 시설의 흔적이 아직도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이곳에 방위와 해상운송 호위를 목적으로 1개중대 130명이 주둔하고 있으며
4문의 포를 갖추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포대의 일부를 전망대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은 전쟁의 흔적 위에 평화의 탑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평화의 탑 바로 옆에는 등대가 자리잡고 있는데 소화 42년에 세운 사오자키 등대이다.
 

 

등대 위에서는 솔매 한 마리가 나래를 편 채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오랫동안 비행을 즐기고 있는데
대마도의 하늘에는 유난히 솔매와 까마귀가 많다.

 

대마도 최북서단임을 알리는 조형물 아래에는 방위 표시 또한 선명하다.

"부산이 저렇게 가까운데 여기가 우리 땅이 아니란 말여?"

사진 촬영을 부탁한 후에 부산 쪽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으시는 노신사의 표정에도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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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대마도) 가장 북쪽의 마을 카미쓰시마 쵸 와니우라 뒷산에 위치한 한국 전망대는
한국의 이미지를 담아 만든 팔각정 건축물로 1997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기와지붕의 팔각정 형태는 서울 파고다 공원에 있는 정자를 모델로 하였다고 하는데

한국 정자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 곳은 한국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는 132km의 거리로 날씨가 좋은 날에는 거제도와 부산시의 윤곽을 육안으로 뚜렷이 볼 수 있어

그야말로 '국경의 섬' 임을 실감케 하며 밤이면 부산 광안대교의 불꽃이 환하게 비친다고 한다.

 

 
부산의 모습이 보이나 하여 눈을 크게 뜨고 바라 보았지만 이 날 따라 마침
흐린 날씨로 인해 부산 앞 바다의 모습은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곳은 한국 휴대폰이 터지는 장소라 잘 도착 했다는 안부 전화를 걸 수 있는 장소라고 하여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안테나는 뜨긴 하지만 통화는 연결되자 금방 끊어져 버렸다.

예전에는 대마도 전역이 통화 가능권이었으나 2004년 우리 나라 '스펀지'에 소개될 당시

"한국 휴대폰이 터지는 지역은 한국땅입니다"라는 멘트가 문제가 되어

일본에서 방해 전파를 발생시켜 지금은 한국 전망대 외의 지역에선 통화가 수월치는 않다.
 

  
포구 앞쪽에 동서로 길쭉하게 보이는 섬은 '우니지마'로 우리 말로 해율도(海栗島)이다.

 

 
이곳에는 현재 일본 해상 자위대의 레이더기지가 설치되어 있고
섬이 천연의 방파제 구실을 하며 '와니우라'를 보호하고 있다.

 

 
대마도에는 우니시마의 일본 항공자위대 레이더 기지와 오오우라(大浦)에 해상자위대가 있으며
이즈하라(嚴源)에는 육상자위대가 있어 군사적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경의 섬이다. 

 

 

한국전망대 바로 옆에는 조선역관사 순국비(朝鮮譯官使 殉國碑)가 서있다.
숙종 29년(1703년) 2월 5일(음력) 청명한 아침에 부산을 떠난 한천석 이하 108명의 조선역관 일행과
이들을 수행하기 위한 일본측 역관 4명이 저녁 무렵 대마도의 와니우라 입항 직전에 갑자기 불어 닥친 폭풍으로 애석하게도 죽음을 당하였는데 이 비는 이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위령비이다.

당시는 수장된 사람들의 명단을 알지 못했는데 대마도주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종가문집을 정리하던 중 사망자들의 명단이 발견되어 순국 400주년을 맞이하는 2003년 3월7일에 순국자들의 이름을 적어 추가로 건립했다. 
기단석은 112개의 돌로 쌓아 당시 희생된 112명을 추모하는 뜻이 담겨져 있으며 일본어와 한국어로  유래와  당시 사망한 112명 역관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대마도 최서북단에서 한국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는 132km의 거리....
대마도에서 일본까지의 거리에 비해 대마도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는 반도 안 된다.
그렇게 가까운 섬이 우리 땅이 아니고 일본 땅이라니...
남 주기 아까운 대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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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망대에서 남쪽으로 약 30분 거리의 위치한 작은 포구 미나토  마을.


대마도 곳곳에서 보게 되는 각종 안내 지도의 어디에도 일언반구 언급이 없는 이 한적한 어촌을
찾아내어 방문하는 한국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 마을 방파제 앞에 신라 충신 박제상의 기념비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왕에게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충절을 지키다 순국한 박제상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이 순국비는 당연히 한국 사람들이 세운 것인데....
 

 

박제상 선생은 신라의 충신으로 파사왕의 5대 손인데 거문고의 달인 백결 선생은 바로 박제상의 아들이다. 

 

 

삼국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실성왕 원년 신라는 왜국과 강화를 하였는데 왜왕은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인질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실성왕은 일찍이 형님인 내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인질로 보낸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한을 풀려고 왜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미사흔을 왜국으로 보냈다.

실성왕은 또 고구려에서 미사흔의 형 복호를 인질로 보내라고 하자 두말하지 않고 보냈다. 

 

그런 뒤 눌지왕이 즉위했다.

눌지왕은 박재상을 불러 자기의 동생을 구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박제상은 즉시 고구려로 들어가서 고구려왕의 허락을 받아 복호를 데리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그러자 눌지왕이 또 부탁했다.

"내가 두 아우를 좌우의 팔과 같이 생각하는 데 지금 다만 한 팔을 얻었으니 이를 어찌하리오."

박제상은 이번에도 기꺼이 응했다.

"신이 비록 재주가 없고 어리석으나 이미 몸을 나라에 맡겼사오니 임금의 명령을 욕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큰 나라이고 왕도 어진 임금이어서 신의 말이 통했으나 왜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꾀로써 그들을 속여 왕자를 돌아오도록 하겠나이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신이 왜국으로 가면 곧 신이 나라를 배반하고 간 것처럼

말을 퍼뜨려 그들로 하여금 믿도록 하여 주십시오."말을 마치자 박제상은 죽기를 맹세하고 율포에서 배를 타고 왜국으로 향하였다. 그 아내가 사실을 알고 급히 포구에 나가 떠나는 배를 바라보고 대성통곡하며 말했다.

"잘 다녀오시오"

박재상이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임금의 명을 받고 적국으로 들어가니 그대는 나를 다시 볼 기약을 하지 마오."

박제상은 왜국으로 들어가서 나라를 배반하고 온 것처럼 말했다.

왜왕은 처음엔 박제상을 의심하였으나 먼저 왜국으로 들어온 백제 사람이

신라가 고구려와 함께 왜를 침범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자 왜왕은 군사를 파견하여 국경수비를 강화했다.

이때 마침 고구려가 침입하여 왜의 수비병을 사로잡아 죽이니 왜왕은 백제 사람의 말을 사실로 믿었다.

 

또한 신라왕이 미사흔과 박제상의 처자를 가뒀다는 소문도 들려 왜왕은 박제상이 신라를 반역하고 온 것이라 믿었다.

왜왕은 이에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습격하려고 박제상과 미사흔을 장군으로 삼고

그들로 하여금 인도하게 하여 바다 가운데 섬에 이르렀다.

이 섬을 일본서기에서 죽도(竹島)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대마도 (對馬島)이다.

이때 왜장들은 비밀리에 다음과 같이 모의했다.

"신라를 멸망시킨 뒤에 박제상과 미사흔의 처자를 몽땅 우리나라로 데려오자." 

 박제상은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미사흔과 배를 타고 놀며 고기와 오리를 잡는 척 했다.

왜인들이 이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왜인들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미사흔에게 신라로 돌아가라고 했다.

미사흔이 함께 가자고 했으나 박제상은 두사람이 함께 탈출하면 실패할 염려가 있다고 하며 미사흔을 재촉했다. 

미사흔은 박제상의 목을 끌어안고 울면서 이별을 하고 귀국하였다.

 

박제상은 다음날 시간을 벌기 위해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그러자 왜인들이 늦게 일어난 이유를 물었다.

박제상은 어제 뱃놀이를 너무해서 피곤해서였다고 둘러댔다.

얼마 후 왜인들은 미사흔의 탈출을 알았다.

그들은 박제상을 포박하여 미사흔의 배를 추적했지만 안개가 짙어서 놓치고 말았다.

미사흔을 놓친 왜인들은 박제상을 왜왕에게 보냈다.

왜왕은 그의 충성심에 탄복하여 회유하려 하였으나 박제상은 거절하여 이르기를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의 신하는 될 수 없고,

신라왕의 회초리를 맞을지언정 왜왕의 칭찬은 들을 수 없다"고 하여 왜왕을 분노케 하였다.

왜왕은 박제상의 발바닥을 벗겨 불타는 대나무 위를 걷게 하였으며

그것도 모자라서 나무에 불을  질러 온몸을 태운 후 목을 베어 죽였다고 전해진다.

눌지왕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며 박제상에게 대아찬의 벼슬을 추증하고

박제상의 둘째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은혜를 갚게 했다.  

                                                                                

경주 망덕사지 앞 문전에 있는 '벌지지(伐知旨)'라는 지명은 박제상 일화에서 유래한 것인데

왜국으로 떠나는 박제상이 집앞을 지나가면서도 들리지 않고 바로가자

남편을 만나지 못한 부인이 따라가다 지쳐 문전의 모래 위에 엎드려 소리내어 울었고

이곳의 긴 모래 사장을 후일에 '장사(長沙)'라고 불렀다.

부인은 울다가 일어나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려고 몸을 일으키려 하니

절망감에 지쳐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는데 후일 이곳을 '벌지지(伐知旨)'라고 불렀으니

이는 '다리 빧치다'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벌지지의 들판을 '양지버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두다리 뻗음'이란 뜻이다.

 

 

후일 박제상의 부인은 딸들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일본쪽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죽었는데

그 몸은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의 신하는 될 수 없고, 신라왕의 회초리를 맞을지언정 왜왕의 칭찬은 들을 수 없다"

발바닥을 벗겨 불타는 대나무 위를 걷게 해도 굽히지 않았던 박제상의 충절...

그런 사실을 아는지...모르는지.....

 

미나토 주민들에게는 별것 아닌 기념비를 찾아

이 한적한 어촌 구석까지 오는 한국인들이 신기하게만 여겨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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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사들은 소박하고 정갈하다. 소박하다 못해 이걸 먹고 어떻게 사나...할 정도.

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양이 알맞지만 양이 큰 남자들에겐 도무지 성에 차지 않을 듯 한데...

대마도 여행 중 먹었던 일본의 음식을 간단하게 사진에 담아 보았다.   


 


일반적인 아침 상차림이다.
흰 쌀밥에 미소 된장국,미역 무침,단무지(다꾸앙) 몇 조각, 삶은 계란 하나, 엄청나게 작게 구운 김 대여섯장,
고등어 구이 반의 반토막, 그리고 낫토와 우메보시.... 


단무지를 고춧가루 양념으로 살짝 무쳤다.  우리나라에서 밥상에 올랐으면 손도 안 댔을 음식인데....
다꾸앙으로 알려진 단무지는 일본 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한다.


처음 경험해 본 낫토(納豆)는 우리나라의 청국장과 비슷한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 발효 음식이다.

낫토의 끈적끈적한 물질 속에 들어있는 ‘낫토키나제’라는 효소가 혈전 용해 능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일본에서의 낫토의 소비가 급증했다고 한다.

낫토를 그릇에 붓고 곁들여진 소스를 첨가해 열심히 비벼서 발효된 콩들 사이에서 끈적끈적한 실과 거품이 많이 생기면 밥 위에 얹어 먹으면 된다.


 

상 위에 김치 같이 곁들여져 나오는 '우메보시'
'우메보시'란 매실을 소금에 절인 다음 차조기 잎을 넣어 만든 매실 장아찌를 말하는데

매실은 식욕을 북돋우고 배탈을 막아주며 피로회복에도 놀라운 효과를 보여

현대인의 체질이 산성화되는 것을 막아주는 건강식품으로 불릴 만큼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우메보시를 맛본 대부분이 사람들의 평에 따르면 그 맛은 '몸서리 쳐지는 기괴한 맛'.....!



점심 상차림에는 식당에서도 야외에서 먹는 것 처럼 이렇게 도시락으로 나왔다.

흰 쌀밥,생선 조림,다꾸앙,오징어 무침,생선 튀김,해초 무침, 그리고 생선 국.... 대마도 답게 온통 해산물 반찬 밖에 없다.

채소는 달랑 다꾸앙 두 쪽 뿐...

옆에 곁들인 생선국은 약간 비린 맛과 함께 특유의 향이 있어서 약간은 역겹기도 했지만 

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강인한 체력이 아니던가....

다꾸앙 한 쪽 안 남기고 싹쓰리해서 도시락을 다 비웠다.



히타카츠에서는 더 간소한 점심을 먹었다. 초밥 다섯 조각.



그리고 튀김 우동 한 그릇이 전부이다.

식사 양이 많으신 분들은 일본 여행 가시려면 배고플 것을 각오하고 가셔야 한다...^^



히타카츠의 호텔에서 먹은 저녁 상 차림은 아침과 점심에 비해선 제법 성찬이다.

 


노란 다꾸앙, 하얀 다꾸앙,(그게 그거구만...ㅠㅠ), 조린 삼겹살 한 조각, 칼치 구이(그것도 한 도막이 아니라 슬라이스된 반도막이다).

조개 한 개(한개라니...우리 나라같으면 있을 수가 없는 상 차림...ㅋㅋ) 그리고 칼치 구이 위엔 빨간 색의 생강 맛 나는 이상한 줄기 하나.

 


또 생선 조림...(대마도의 밥상에는 야채 반찬이 거의 없다.) 

 

 

그리고 사시미 여섯 조각이 곁들여졌는데 사시미는 자연산이라 그런지 아주 신선하고 입에 넣으니 살살 녹는 기막힌 맛이었다.
 

 

일본 쌀밥은 그 품질이 최상급이다. 쌀의 품질이 매우 좋아 밥이 고슬고슬하고 풍미도 있다.  



그리고 메인 요리인 전골요리.

한 상에 냄비 하나 떠억 올리고 네 명이 숟가락을 같이 담그고 떠 먹는 우리네 찌게나 전골과는 달리

일본의 모든 요리는 개인적이기 때문에 전골도 일인분이다.

여러 가지 조갯살에 두부,양파,팽이 버섯,당근,쑥갓...등을 넣고 조그만 화로에 올려 보글보글 끓여 먹는다.

맛은 달콤하고도 깔끔한 맛이다. 

해외 여행을 다니시는 분들 중에는 현지 음식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가는 곳 마다 한국 음식점을 찾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외국에 여행을 가서도 한국 음식만을 고집한다면 여행의 참 맛은 느끼기가 힘드리라....

행지에서 먹는 음식중에는 특유의 향으로 인해 정말 입에 대기가 힘든 음식도 많지만 

어떤 곳으로 여행을 가서 현지의 음식을 체험해 보지 않으면 그 나라의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리.

음식이란 건 한 나라 사람들의 생활이요, 문화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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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여행 중에 묵은 상대마장 호텔(國民宿舍 上對馬莊)은 맑고 고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 대마도에서는 가장 멋진 숙박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 상대마장 호텔은 개관할 때에 일본 황태자 부부가 묵고 간 곳이라황태자와 그 가족들의 사진이 호텔 로비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호텔의 입구 주차장에서 본 모습인데 이 호텔에서는 바다가 삼면으로 보인다. 호텔 건물 뒷편에서까지 이렇게 바다가 보이는 멋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호텔은 어디서도 보기 힘들 듯.... 

 
객실은 양실과 일본식 다타미 방을 선택하게 되어 있었는데 필자는 당연히 일본식 다타미 방을 선택했다.
다타미 방을 택했다고 해서 친일파냐고 태클 걸지 마시기 바란다. 단지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것일뿐....
 


 문을 열고 신을 벗고 들어가니 정갈한 일본식 다타미 방이 눈 앞에 펼쳐진다.객실 문을 열고 신발장에 신을 넣고 들어가면 있는 조그마한 로비 맞은 편에 화장실과 세면실이 있고중문을 열고 들어가니 객실이 있는데 왼쪽은 옷장, 오른쪽은 이불장으로 쓰이는 벽장이다.  

 옷장 아래에는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세면 도구와 유카다(浴衣)가 얌전하게 들어 있다. 


 유카타는 원래 잠옷 또는 목욕 후에 집안에서 입는 옷으로 만들어졌는데 오늘날에는 더운 여름철 저녁에 옥외에서 입기도 한다. 일본의 대부분의 여관과 호텔에서는 고객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유카타를 제공한다.  


 도코노마(床の間:객실 上座에 바닥을 조금 높여 꾸민 곳)엔 코딱지만한 구형 TV 한대가 었고 그 아래에는 용도를 가늠할 수 없는 기구가 한개 놓여 었는데 대체 용도가 무엇인지.....

 방 안 쪽에서 객실 입구 문 쪽으로 본 모습인데 (객실 현관 로비는 벽장 뒷쪽에 위치해서 안 보인다.)

아무런 장식없는 일본 특유의 다타미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타미(疊)는 일본의 가옥에서 바닥을 덮는 데 쓰는 짚으로 만든 사각형 돗자리인데한개의 크기는 대개 너비 90㎝, 길이 180㎝, 두께 5㎝ 가량이어서 쇼지(障子)라는 미닫이문의 높이와 다타미의 길이는 같은 크기이다. 바닥을 덮는 데 필요한 다타미 수는 방의 크기를 나타내곤 하는데 필자가 묵은 다타미방은 8장의 다타미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발코니 쪽...실내 발코니와 실외 발코니 이렇게 이중으로 된 발코니인데 실내 발코니는 친절하게도 깔끔한 서양식 테이블 세트가 놓여져 있다.  


 일본풍의 미다지 문을 열고 바깥을 보니....와아.....너무나 고요하고 아름다운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이런 비경을 객실 내에서 볼 수 있는 호텔이라니.....정말 최고의 전경을 가진 객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살짝 들어간 만에 위치한 앞 바다에는 마치 분재와도 같은 작은 섬이 위치해 있고 거의 오염되지 않은 해변은 아름답고 푸르기만 하다. 

 저녁 무렵 파도 없이 잔잔한 바다는 마치 낙원과도 같이 고요하다. 


 약간 튀어나온 곶 위에 위치한 호텔의 위치로 인해 삼면으로 바다가 보인다.내가 묵은 객실은 마침 제일 가장자리의 방이어서 측면으로 깊이 들어간 바다도 조망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부두쪽으로 바다가 깊숙히 들어가 있고...  

 황혼의 햇살을 받으며 부두로 돌아가는 고깃배는 만선의 기쁨을 누렸으리라. 

 다타미방 한가운데의 탁자 위에는 다기와 녹차가 있는데 보온 물병에 따스한 물이 준비되어 있다. 


 준비된 유카타를 입고 설정 샷을 찍어보기도 하며 따스한 녹차 몇 잔으로 여행의 피로에 지친 몸을 풀고 자리에 들었다. 


  다타미 방에 베풀어진 이불과 요, 베개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침에 환한 빛에 눈을 뜨니 자리에 누워서도 바다가 훤히 다 보인다.완전 "저 바다에 누워~♬"인 것이다..ㅋ 발코니로 나가보니 악간 비스듬한 방향으로 해가 마악 떠오르기 시작한다.와.. 대마도의 호텔방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일출을 보다니... 


 새로 솟아오르는 해를 맞이한다는 것은언제 어디에서든지 사람의 마음을 희망으로 가득차게 하는가 보다.대마도에 와서 맞이한 일출은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감에 젖어들게 하고남은 여행을 더욱 더 활기차게 해주는 행운의 선물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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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에보시타케 전망대를 돌아 아래로 내려가면 바다에 접해있는 신사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대마도의 해신 신사 4곳 중의 하나인 와다즈미신사(和都多美神社)이다.  
이 와다즈미신사는 가야의 김수로왕의 자손이 대마도로 건너와 세웠다는 설과
장보고 장군의 소가(小家)였다는 설 등이 전해지고 있는 신사이다. 
 

 

'와다즈미'의 '와다'는 우리말의 바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대마도에서는 지금도 바다의 후미진 곳을 '와다(わざ)'라 부르고, 

일본의 옛말에서도 바다를 '와다'라고 했다. 이에 따른다면 '와다즈미'란 다름 아닌 바다의 용궁이란 뜻이다. 이 신사에는 다섯개의 도리이(신사문)가 일렬로 바다를 향해 서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그 중 바다 속에 서 있는 도리이는 만조시 2m정도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파도가 잔잔한 아소만과 어우러져 신화의 세계를 연상케한다는데 마침 간조 때라 바닷물이 빠져 나가 물 속에 도리이가 물에 잠겨 있는 멋진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도리이'란 우리말로 장대 또는 솟대로 표현되며 '새'라는 뜻의 일본어이다. 天이라는 글자모양의 문을 세우고 새를 신의 사신이라 믿어 새가 쉬어가도록 한다고 해서 도리이라고 부른다. 솟대 위에 새모양을 만들어 붙이는 우리의 전통신앙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신사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 곳(洗手帶,테미즈야)이 반드시 있다.

일본인들은 이 물은 절대 마시지 않으며 국자를 입에 대지도 않는다.
이 곳에서 손을 씻고 배례전으로 들어가는데 오른손으로 국자를 들어서 왼손에 물을 부어  씻고 그런 다음 오른 손을 씻는다.
그런 다음 왼손으로 물을 떠서 입에 넣어 입을 행구고 다시 왼손을 씻는다.

 

처음 왼손을 씻는 것은 전생에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는 뜻이, 오른손을 씻는 것은 현생에 지은 죄를, 입을 행구는 것은 입(말)으로 지은 죄를 사해달라는 의미라고 하고 우리 나라 사찰 앞에 있는 감로수처럼 먹기 위한 물은 아니라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서 왼쪽편 폭이 넓은 연못 가운데에 '도리이' 세 개가 로 모서리를 맞물고 서 있고 그 옆에 '이소라에비스(磯良比須)'라고 써 놓은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이 곳에 얽힌 전설을 알아 보면 일본 건국 신화에 나오는 천신의 아들이 형의 낚시바늘을 찾으러 갔다가 용궁의 딸과 결혼하게 되고 바닷속에서 3년을 살다가 만삭이 된 아내랑 육지로 나왔는데 아이를 낳는 모습을 결코 엿보지 말라고 한 부탁을 어기고
이를 엿보다가
아내가 용의 모습(커다란 구렁이)으로 몸부림 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남편이 자기를 엿본대에 화가 난 아내는 아이를 버리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데 바로  이곳이 아이를 버리고 간 장소로 회자되고 있다.

 

버려진 그 아이가 일본 왕가의 시조인 텐무천왕의 아버지가 된다는 신화로서 결국 지금의 일본 왕실계보는 천신의 부계와 해신의 모계로 된 혈통이라는 것으로 이것이 해양국가 일본의 국가상이다. 일본의 발원지가 본토가 아닌 대마도 '니이'지역의 해변 '와다즈미(和宮)'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니이'지역이야말로 세형동검, 말방울, 팔찌 등의 청동기와 철기 그리고 경질토기까지 다른 곳에서는 그 예가 없을 만큼 많은 우리 조상들의 유물들이 출토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본 본토의 신사는 동쪽이 아니면 남쪽을 바라보게 지어져 있으나 대마도의 신사는 서쪽을 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는 한국의 신을 숭상하는 곳이 많다. 

 

모든 신사 앞에는 사자와 같이 생긴 두 마리의 짐승이 마주보고 서 있는데 이것은 사자가 아니고 '고마이누(高麗犬)'이다.

고마이누란 말은 고구려를 의미하는 '고마'와 개를 지칭하는 '이누'라는 일본어의 합성어이니 고구려에서 건너온 개라는 말이다.

(고구려를 고려라고 칭하는 것은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의 기록에도 많이 나타나므로 삼국시대 이후의 고려와 구분해야 한다.)

고마이누는 신사뿐 아니라 도다이사(東大寺)를 비롯해서, 나라와 교토의 주요 사찰 입구에는 거의 빠짐없이 거대한 석상으로 서 있는데 입을 벌리고 있는 개가 수컷이고 입을 다물고 있는 개가 암컷이다. 뿔이 달린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으며, 귀가 선 것도 있고 서지 않은 것도 있는 등 고마이누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일본의 신사 건물의 특이점은 우리나라의 8작 지붕 건물의 측면이 정면이 되어 있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즉 가로는 짧고 세로는 직사각형 형태의 사전(배례전)이 신을 모신 본전과 연결된 형태의 모습이다.   

신사의 건물은 신사의 규모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인 경우  본전과 배례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항상 앞쪽이 배례전이고 배례전 안쪽에서 통로를 따라가면 별개의 건물인 본전이 이어져 있다. 대체로 본전은 배례전보다 조금 높게 위치하고 배례전은 대개 앞 뒤로 길기 때문에 건물의 측면이 정면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본전에는 그 신사가 모시는 신물(神物)이 모셔져 있으며, 이 신물은 누구도 볼 수 없는 신사의 깊은 곳에 보관되어 있다.  

신사의 내부는 경배를 올리기 위한 사전(社殿)과 신을 모신 본전(本殿)의 2중 구조이다.  

사전(社殿)의 내부에는 아무 것도 없고 이렇게 초를 켜두는 장소와 헌금기록부인듯한 장부가 하나 비치되어 있다.

배례전에서는 돈 넣는 함에 돈을 넣은 다음 배례전 앞에 늘어진 천을 흔들어 목탁모양의 방울을 친다. 방울을 치는 것은 내 정성을 바치니 봐 달라는 뜻이기도 하고 죄와 부정을 씻어낸다는 뜻도 함께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런 다음 두번 합장 배례하고 두번 박수를 친다.  신사를 들어갈 때는 가운데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들어가며 나올 때는 오른 쪽으로 나오는데 이 풍속은 우리나라와 동일하다.  

우리나라의 궁궐이나 사찰과는 달리 일본의 사찰이나 신사는 단청이 없어 내부는 매우 소박해 보인다. 

 

신사에 가면 자식의 합격을 비는 부적, 자동차 사고를 예방하여 준다는 부적, 사업을 번성케 하는 부적 등 다양한 부적이 있으며, 갖가지 기원문이 적힌 상징물들이 있다.  

 

신사의 본전 뒤를 돌아가면 거대한 삼나무가 하늘까지 솟은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숲은 깊고 으시시하기까지 하며 등에 난 땀이 식을 정도로 시원하였다. 

 숲 한 곳에 도리이가 하나 서 있고 안쪽에는 돌무지 위에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서낭당 같이 금줄을 쳐 놓은 이 곳은 가토요타마히메(豊玉姫)의 묘이다.
이곳의 지명은 토요타마쵸라 불리워지는데 바로 토요타마히메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한다. 
  

2003년 일본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70%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고,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 30% 가운데 51%가 신도, 그리고 48%가 불교, 그리고 1%도 안되는 나머지가 기독교등으로 되어 있다.

신도는 기본적으로 애니미즘, 즉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신화와 전설에 나오는 신, 전쟁영웅은 물론 각종 귀신이나 고양이나 말과 같은 동물은 물론, 죽은 자도 살아생전 또는 죽어서 영험을 떨칠 것으로 여겨지면 신사를 세워 모신다.

 

전국에 신사가 10만 여개가 넘으니 거의 동네마다 신사가 있는 셈이다. 일본인들은 매해 신년 1일에서 3일까지 80% 이상의 사람들이 신사를 방문한다고 한다.

첨단 산업으로 앞서가는 선진국 일본에 경전도 없고 사제도 없는 신도가 사람들의 기복(祈福)과 관련하여

제일의 종교로서 생활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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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사에 가면 자식의 대학 합격을 비는 부적, 자동차 사고를 예방하여 준다는 부적,
사업을 번성케 하는 부적 등 다양한 부적이 있으며, 갖가지 기원문이 적힌 상징물들이 있다.  

대부분의 신사에서는 운세 같은 것을 점칠 수 있는 괘를 팔기도 하고 부적도 파는데 시주함에 돈을 넣으면 주는 운이 적힌 부적 종이를 오미구치(御神籤)라고 한다.

 

오미구치를 펼쳐 보았을 때에 좋은 괘가 나오면 가지고 가고 좋지 않은 괘가 나오면 신사 앞 나무에 매달아 놓고 가는데 대마도의 와다즈미 신사의 문 앞에 매달린 많은 오미구치를 보니 마음에 들지 않은 괘도 많이 나오는가 보다.

 

심지어 이렇게 오미구치 자판기까지 있는데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맨 아래 난 구멍에서 부적이 나온다.  오미구치 자동 판매기는 와다즈미 신사 뿐 아니라 전국의 신사에 대부분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돈을  주고 부적을 받는 번거로움과 인건비 절약을 위해서라곤 하지만 일본인의 놀라운 상술이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부적까지 자판기로 팔다니.....자판기 천국인 일본다운 아이디어다. 

 일본의 신사에서는 소원을 적어서 매다는 작은 나무판을 따로 사기도 한다.  

여기에 자기 소원을 적어서 매달아 놓거나 걸어놓는데 이 나무판을 에마(繪馬) 라고 한다. 

사랑이 이루어지길 기원하는 에마도 있고...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에마도 있다. 

일본어로 된 에마 중 많은 부분이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소원의 글귀인 것으로 보아 일본에도 입시는 인생의 가장 힘든 관문인 듯 하다.

 

와다즈미 신사에 걸려 있는 에마에는 의외로 한국 사람이 남긴 것이 아주 많았다.
일본의 귀신에게 소원을 빌다니...?
비록 관광지에서의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어쩐지 씁쓸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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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조선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 부터이다.
그들은 외교적, 상업적 동기에서 조선어를 배웠는데 특히 대마도(쓰시마)사람들이 조선어를 열심히 배웠다.
그래서 조선에서 통신사가 오면 주로 대마도에서 통역을 구했다고 한다.
조선의 역관들은 다른 나라로 유학을 하지 못했지만 일본의 역관들은 초량 왜관에 와서 유학을 하며 조선어를 배웠다.
통계에 의하면 대마도의 남자의 반이 일생에 한번은 조선에 왔다고 하니 그래서 대마도 사람들이 조선어에 능통했던 것 같다. 
 

이즈하라 카페리 터미널에서 보면 건너편 산 중턱에 전형적인 일본식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광청사이다.
서산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광청사는 길에서도 경사가 급한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광청사(光淸寺,고우세이지)는 1727년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가 설립한 3년제 조선어학교가 있던 건물이다.

이 조선어학교의 수업은 하루 4시간씩. 매월 27일은 시험을 쳤다.

교재는 1학년 <교린수지> 2학년<전일도인> 3학년<인어대방>이란 책이었는데 통역사 양성이 목적이었는데

교사는 인위문길(仁位 文吉)이라는 20세의 전문통역사였다.

 

 

길에서 광청사 입구까지는 약간의 비탈길을 올라가야 하므로 입구에 지팡이가 비치되어 있다.

지팡이에 붙어 있는 명찰에는 좌수용,우수용이라고 쓰여져 있다.

왼손잡이,오른손잡이를 구별하여 지팡이를 구비해 놓은 것도 일본인들의 세심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절 본당에서 1872년 10월 25일 '한어학소(韓語學所)'가 개소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통역관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  대마도에서 조선어는 매우 인기가 높아 입소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1873년 8월 2일까지 1년간 대마도 고위층 자제 34명을 입소시켰는데 그들 중 10명이 10월 16일 조선말을 더 잘 배우기 위해 부산의 초량 왜관으로 왔다. 초량 왜관 내에 '초량관 어학소'를 만들었으니 한어학소의 전진 배치였던 셈이다.

 

이들이 이후 경복궁을 드나들며 한일 합병의 통역관 겸 정보원 역할을 했으며 1895년 민비 시해사건 때 투입된 자객들 중에 낀 통역 2명이 이 어학소 출신 대마도인이었다. '초량관 어학소'는 1880년 동경외국어학교에 조선어학과가 생기면서 자동 폐소되었다.

 

현재 대마도 소학교에서는 5,6 학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고등학교에서는 한국어과를 설치해 교육하고 있고 한국인 원어민교사가 있다고 한다. 대마도 고등학교에서는 한국과의 교류를 위해 사물놀이를 학습하고 있으며 곧 태권도도 가르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던 조선어학교...이제는 상생하는 이웃이 되기 위해 선하게 쓰여지기만 바랄 뿐이다. 

 

 

광청사를 나와 수선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선사(修善寺,슈센지)는 백제 비구니 법묘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개인 사찰이라 최익현 순국비에 참배키 위한 한국 사람 외엔 거의 찾는 사람도 없는 절이다.

 

修善(수선)이라는 현판은 조선말 판서를 지낸 '김학진'선생님의 친필인데 지금도 낙관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절에는 높이 9.5cm의 신라 동조여래현좌불상이 있으며 최익현선생의 순국비와 대마도 3대 성인 중 한명인 '수야마토츠안'의 묘가 있다.  신라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는 비각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어서 확인할 수도 없다.

 

 

수선사 내에 있는 '대한국인 최익현 순국지비'. 최익현은 일흔이 넘은 고령으로 항일 의병 운동을 하다 패전,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는데 유배지에서 지급되는 음식물을 적이 주는 것이라 하여 거절,단식을 계속하다가 굶어죽었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은1986년 8월에 건립되었다.  

 

 

수선사에 지장보살이 단체로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지장 보살들이 여러 가지 무늬의 이쁜 턱받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전번에 서산사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원래 우리나라의 지장보살은
사찰의 명부전(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법당)의 주불(主佛)이어서 무서운 이미지로 남아 있는데
일본의 지장 보살은 모두 다 까까머리에 이쁜 턱받이를 하고 몸에 사탕이나 장난감을 지니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의 지장 보살은 낙태나 사산으로 허공을 떠도는 어린 영혼을 보호하는 보살이라고 한다. 

부모들은 어린 영혼을 지워 버린 몹쓸 짓을 한 자기들의 죄를 이 지장 보살에게 빌고
떠도는 영혼을 위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지장 보살상에다가 이쁜 턱받이로 치장을 한다.

 

그리고 머리에는 이쁜 뜨게 모자를 씌워 춥지 않게 하고 그 앞에는 장난감이나 사탕으로 놓아두어 어린 영혼을 달랜다는 것이다. 

(이 코딱까리만한 지장보살은 서산사(세이잔지)정원에 있는 지장 보살이다.) 

 

가는 곳마다 턱받이로 장식한 지장 보살들을 만날 수가 있었는데
만제키바시(만관교) 다리 옆 숲에 있던 지장 보살들은 하나같이 파란 색깔의 턱받이로 치장하고 있었다.
 

 

뒤에 광배가 있는 수선사의 이 부처는 석가모니불이라고 한다.

석가모니불이라고 하면 우리 나라에선 한쪽 어깨를 살짝 드러낸 얇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일본의 부처는 석가모니불조차도 이쁜 턱받이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매화꽃 턱받이라니....!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본인들의 불심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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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묵었던 호텔에서 아침을 먹을 때의 일이다.
식탁의 양념통 옆에 매실 절임같이 생긴게 있어서 뭐냐고 물어보았더니 '우메보시'라고 한다.  

 

하나 먹어 보았더니 너무나 시어서 저절로 몸서리가 처진다.

우웩...이런 걸 어떻게 먹지 싶을 정도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우메보시'란 매실을 소금에 절인 다음 차조기 잎을 넣어 만든 매실장아찌를 말하는데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김치처럼 항상 상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고 예전에는 도시락 반찬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였다고...

 

매실은 식욕을 북돋우고 배탈을 막아주며 피로회복에도 놀라운 효과를 보여 현대인의 체질이 산성화되는 것을 막아주는 건강식품으로 불릴 만큼 각광받고 있다.

우메보시를 자주 먹는 일본사람들도 우메보시라는 말만 들어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고 하는데 이 침은 음식물의 소화 작용 이외에도 살균, 면역효과를 높여준다.

일본 사람들이 생선회나 초밥을 쌀 때에 우메보시를 함께 넣는 것도 매실의 살균효과 때문이라고.  

 

 

어떤 사람은 "우메보시,그 몸서리치는 기괴한 맛!'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던데 그래도 몸에 좋다니...하나 더 먹어 볼까....

입에 하나 더 넣었더니 다시 머리 끝까지 번개가 치며 온 몸 끝까지 몸서리가 쳐왔다..후훗....

다시 더 먹고 싶은 맘은 당최 들지않는 우메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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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유일한 아유모도시 자연 공원의
'아유'는  은어, '모노시'는 되돌아온다, 회귀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유모도시란  '은어가 회귀하는 곳'이란 뜻이며
실제로 은어가 살고 있으리라 확신이 들 정도로
맑은 청류천(淸流川 )주변 약 26ha의 수려한 대자연 경관을 그대로 살린 공원이다. 

 이 곳은 대마도에서 유일하게 계곡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공원 입구에서 간단한 음료수등을 팔고 있는 휴게소가 있는데 대마도의 전통 이시야네(돌지붕) 형태로 지은 집이다.

휴게소 앞 테라스 아래에는 일본의 고시가 만엽집에 나오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내용은 연어의 회귀에 대한 내용이라고.... 

등나무꽃이 아름답게 드리워진 아래 계곡을 가로질러 드리워진 현수교가 보인다. 아름다운 계곡에 놓인 현수교라니...보기만 해도 낭만적이다.

 다리 아래의 비석에는 천지수라고 쓰여있는 걸 보아 샘물이 나는가 보다.

다리 밧줄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 보던 여자 한 사람이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가운데는 통나무로 이어 붙여 아래의 계곡이 훤히 다 내려다 보이니 걸을 때마다 오금이 짜릿짜릿한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니 경치 한 번 일품이다. 하얀 화강암 너럭 바위는 물결 무늬의 주름이 잡혀 있고 그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은 맑고도 짙푸르다.

현수교는 그다지 높지도 않는 곳에 달려 있는데 다리 위에 서면 출렁출렁하기 때문에 스릴 만점이다. 약 1.2Km에 달하는 계곡 전체가 화강암 통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곡 아래 연못에는 어른 허벅지보다 큰 잉어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푸르름이 더해가는 계곡 주변의 나무들과 하얀 너럭 바위, 짙푸른 계곡물의 조화가 가히 신선경이다.

물은 깊이에 따라서 짙푸르기도 하고 에메랄드빛이 돌기도 한다.

 그늘도 즐기고 발도 담글 수 있는 명당 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신이 났다.   날개옷만 벗어놓으면 선녀가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것 같은 곳.... 

 바위 위에서 편안히 쉬시는 어르신들은 현대판 신선이 되신 듯 하다. 필자가 손짓을 하여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하니 너무 좋아라 하면서 애들처럼 V자를 그려 보인다.

요즘 보기 힘든 자동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시면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도무지 떠나기 싫어서 다음 여행은 접고 오래 머무르고 싶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시간이 되어 이제는 이 아름다운 계곡을 떠나야 한다. 잠시 체험한 신선 노름을 접고 다시 속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떠날 채비를 하고 젖은 발을 손수건으로 닦으시는 한 어르신의 모습에서도 아쉬운 기운이 살포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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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만제키바시(만관교,萬關橋)는 1897년에 굴삭을 시작하여 1900년에 완공시킨 일본 군사용 운하에 놓인 다리이다.

 길이 210m의 철교인 만제키바시 아래에는 만제키 운하가 흐르고 있는데

 

이 운하의 개통으로 인해 원래 하나의 섬이었던 대마도는 상대마, 하대마로 나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보게 되는 다리는 3차로 건설된 다리인데 1차로 건설된 다리는 1897년에 시작하여 1900년에 완공되었다. 리 길이는 100m. 폭은 5.5m. 높이는 약 36m로 일본 해군에 의해 건설된 철교로이다.  2차로 만든 다리는 1956년에 완성한 다리로 길이는 약 81m. 폭은 5.5m. 높이는 약 30m이다. 아치형 철교로 다리가 완성됨으로 버스가 섬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게 되었다. 

 3차로 건설된 현재의 다리는 1996년에 완성된 것이다. 길이 210m. 폭 10m. 높이 약36m의 이 다리로 인해 섬 전체의 도로망 정비와 함께 남북을 연결하는 심리적 거리도 가까워졌는데 두번째 다리는 이후에 철거되었다.

 

제국주의 일본은 러일 전쟁의 와중에서 이 다리 아래 만제키 운하를 일본 해군의 전략적 거점으로 십분 활용하여 당시 해군 전력상 세계 최고로 꼽히던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대마도로 유도시켜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 해전이 일어났던 시대의 이야기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부국 강병 정책으로 해군력 증가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대륙으로 연결되는 한반도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일본 본토와 부산까지에 이르는 항로의 단축이 필수적이었다.  그 일환으로 1900년에 일본 해군의 주도하에 섬의 가장 좁은 부분을 뚫어 운하를 개통하게 된다. 대마도의 허리를 관통하는 인공 해협  만제키 운하 건설을 하게 되니 이 운하가 쓰시마 해협과 아소만을 지나 대한 해협에 이르는 직항로가 된 것이다. 

그 당시 일본은 영일 동맹을 맺고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있었는데 1904년 2월 6일 당시 러시아에게 10일에 개전하자는 선전포고를 하고 이틀 앞선 8일에 기습적으로 러시아를 공격하게 되니 바로 러일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의 러시아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지라 일본을 가볍게 여기고 있었는데 1905년 3월 만주의 봉천 전투에서 러시아의 주력군이 패퇴되는 일이 벌어지자 러시아는 이런 전력의 약세를 보충하기 위해 유럽에 있던 발틱 함대를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시키게 된다. 

 


이때 일본 해군은 함정을 준비하여 당시 세계 최강으로 꼽히던 발틱 함대가 이 함정에 빠지기를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 함대는 북해에서 지중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인도양을 돌아 대한 해협으로 이동하고자 했는데 일본이 이것을 알고 영국의 협조를 얻어 러시아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자 러시아 함대는 하는 수 없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야 했다. 러시아 함대가 도중 기착지로 예상되었던 상해에 들르지 않고 항진을 계속하자 연료와 시간의 절약을 위한 항로의 최단 거리를 예상한 일본 함대는 대마도에서 대기하게 되는데 발틱 함대는 일본의 예상대로 쓰시마 해협으로 항진해 왔다.

 

 

일본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찌로(東鄕平八郞) 제독은 "황국의 흥망이 이 일전에 달렸다!" 고 외치면서 일본 함대에게 정신무장을 시켰고 결국 발틱 함대는 쓰시마 해전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본 함대의 정면과 옆구리를 치고 들어오는 협공에 의해 괴멸되고 만다.


이 해전은 발틱 함대 전함 38척 중 35척 격침 또는 파괴, 3척 나포. 4,800여명 사망과 일본 해군 3척 침몰, 전사 117명이 말해주듯 거의 일방적인 전투였던것이다. 

이 쓰시마 해전의 결과로 일본은 동북아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고 러시아는 짜르 왕조의 몰락과 동시에 볼세비키 공산혁명의 시발점이 된다.  그 이후 일본의 야욕은 더욱 더 팽창 일로의 길을 걷게 되어 그 해(1905년) 가쓰라-테프트협정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대한 제국 지배의 승인을 받아낸후 한국의 주권을 박탈당하는 음모가 무르익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후 5년 뒤 1910년 대한 제국은 강제 합병(한일합병)을 당하게 되니 우리나라는 일본에 35년간을 지배당하게 되는 치욕적인 병합을 당하게 된다.  이후 일본은 대륙으로 나아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게 되니 이 다리는 일본에서는 <전승의 다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우리에게는 <통한의 다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운하의 물은 오늘도 여전히 푸르기만 하고....  

이곳을 찾는 여러 여행객들은 다리 위에서 운하와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 감탄을 그치지 않는다. 

 

발틱 함대와 일본의 함대가 피 흘리며 치열하게 싸웠던 만제키 운하의 오늘은
요트와 함께 여유로운 휴가를 누리는 평화의 운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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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건강식으로 일본 사람들의 밥상에 매일 오른다는 낫토(納豆).
우리나라의 청국장과 비슷한 낫토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 발효 음식이다.

 끓여서 섭취하는 우리의 청국장은 끓일 때 영양소의 파괴가 다소 있을 수 있지만
낫토는 발효된 상태로 그대로 먹기 때문에 영양소의 손실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낫토의 끈적끈적한 물질 속에 들어있는 ‘낫토키나제’라는 효소가 혈전 용해 능력이 있다고 알려져서
일본에서의 요즘 와서 낫토의 소비가 급증했다고 한다.  

비위가 약한 다른 분들은 끈적거리는 낫토의 실을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려 먹기를 포기하겠지만

여행지의 새로운 음식은 그 무엇이든 꼭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필자로서는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보지 않을 수 없다!

 

 

왼 쪽 제일 위의 플라스틱 용기에 담딘 낫토를 빈 그릇에 붓고

곁들여진  간장 소스를 첨가해 열심히 비벼대니 발효된 콩들 사이에서 끈적끈적한 실과 거품이 많이 생긴다.  

 

 열심히 비벼 놓고 사진을 찍고 보니.......헉....--;;
꼭 토해놓은 음식같아서 식욕이 일순간 감퇴된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먹어보니.... 흐음....
그다지 땡기는 맛이 아니긴 하나 새로운 음식 체험이고 건강에도 좋다니....
한 그릇을 다 비워버렸다.

하지만 속이 약간 느끼...하긴 했다.....사실....^^ 

매일 먹어 낫토에 적응된다면 이런 희한한 맛도 즐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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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를 여행하는 동안 필자의 관심을 가장 끈 부분은 일반인들의 주택의 모양이었다.
이즈하라나 히타카츠의 시내 일부분 상가를 제외하고는
대마도의 대부분의 일반 주택은 거의 일본의 전통 가옥 형태이다.
(이런 형태로 우리나라 안에 있는 일본식 가옥은 적산 가옥이라 한다.)

오래 된 주택은 물론이고 새로 짓는 주택도
외관은 거의 일본 전통 가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눈에 뜨인다.
이 것은 시내이든 어촌이나 농촌으로 가든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일본의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에 대해서 감탄이 가는 부분 중에 하나이다.

시내 중심지 대부분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어서 전통 가옥을 가장 잘 보존해야 할 경주에서조차 
시내 곳곳에 브랜드 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요즈음..
일본의 이런 전통 가옥 보존이 내내 부럽기만 하다.

대마도 여행 중 수많은 일본식 가옥들을 보고 스치면서 담은 사진 몇 장을 올려 드린다.
대부분 달리는 차 안에서 담은 사진이라 상태가 고르지 않음을 이해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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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쯔즈자키 해상 공원은 거친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과 암초들,
그리고 바다 저편의 새하얀 등대가 절경을 이루어
마치 한국의 해남 땅끝 마을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공원 입구에서 내려 약간 경사가 진 길을 걸어 올라가니 눈 앞의 산 위로 하얀 등대가 나타난다. 

 

등대가 있는 산허리를 끼고 한 바퀴 돌기로 하고 오른 쪽 길로 들어서니 소나무 사이로 탁 트인 바다가 보인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소나무에 대한 병충해는 피해갈 수 없는지 소나무들은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시리도록 푸르른 바다는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절경이다.

 

산허리를 돌아가니 눈 앞에 나타난 시커멓게 녹슨 창고.
2차 대전 당시 화약고로 이용했던 시설물이라는데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2차 세계대전 시 사용되었던 포대 진지 터와 참호 등도 남아있다고 한다.
이 평화로운 섬에도 전쟁의 발자취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니....  

등대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도는 산책로는 길도 평탄하여 남녀노소 누구든지 360도로 펼쳐지는 바다를 감상하며 산책할 수 있다. 

 검은 암벽 아래로 부서지는 파도들......  

 
눈 앞에 펼쳐진 수평선이 직선이 아니고 곡선인 것을 보면 정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바다 밑도 정말 유리알같이 깨끗한 것이 거의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바다를 보여준다.  

 

이곳 해안의 모래나 바위는 검은 색이었는데 바다 속의 바위들도 검은 빛을 띄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멋진 절벽 위의 전망대에는 지표를 표시해 놓은 표지석이 있는데 여행객들의 포토 포인트가 되는 곳이다.

 

쯔즈자키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동경 129도 10' 13" 북위 34도 5' 57" 

각 지역의 방향과 거리를 돌에 새겨좋은 것인데 부산,제주등의 위치가 표시된 가운데 대한 해협을 '조선 해협'으로 표시해 놓은 것이 눈에 뜨인다.
이런...나쁜.....넘들 같으니......조선이라닛....! --;;
하여튼 일본인들은 시시때때로 우리들 속을 뒤집어 놓는데는 일가견이 있나 보다.  

등대산 아래쪽에 신기의 전설을 안은채 천도 동자상이 서 있었다.
한 처녀가 이 곳 대마도 최남단에서 센 기(氣)를 받고 회임을 하고 낳은 것이 천도 동자라고 하여 천도 신앙의 발원지가 된 곳이다.   

 

낚시터로 내려가는 길목의 주의판에 쓰인 한글이 눈에 들어왔다.

"낚시장을 깨끗이...쓰레기는 반드시 가져갑시다!"

 

이 곳은 대한 해협과 쓰시마 해협의 경계로 해류가 빨라 예로부터 거친 수로(水路)로 유명하다.

 

이 일대의 바다는 좋은 어장이 형성되어 우리나라의 낚시꾼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데

우리 낚시꾼들이 얼마나 많이 버리고 갔으면 한글로 이런 안내문을 써두었을까...

 

듣기로는 한국의 낚시꾼들이 많은 고기를 잡을 욕심에 밑밥을 마구 던져서 바다가 오염되므로
이제는 밑밥 던지는 행위를 금지하였다고 하고
한 사람이 낚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을 제한했더니

낚시를 할 줄도 모르는 부인과 자녀까지 동원하여 잡을 수 있는 고기의 숫자를 늘린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네 낚시꾼들의 이런 작태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차장 옆에는 캠핑장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일본의 각 휴양지에는 대부분 이런 시설이 되어 있다고 한다.
화장실과 취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구비되어 있는데 캠핑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화장실 옆의 용도를 알 수 없었던 창고는 문이 다 썩어서 철가루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공원 내에서 오트바이로 폭주를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면 벌금형이란 안내문...
만화의 천국 일본이라 그런지 그림이 무지 사실적이다.   

 

쯔즈자키 해상 공원이 대마도의 최남단에 위치한다면 미우다 해수욕장은 대마도의 최북쪽 해안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마치 한 그루의 분재와 같은 작은 섬과 에메랄드빛 물빛이 보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아서 오래 오래 머물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하는 해수욕장이었다. 작지만 아담한 백사장과 아름다운 경관으로 일본 100선 해수욕장에 선정된바 있는 곳이다.

 

여름이면 텐트에서 하룻밤 지낼 수 있게 캠핑 시설도 비교적 잘되어 있고 대마도에서는 드물게 넓은 주차장이 있는 것도 좋은 점이다.  

미우다 해수욕장의 바로 북쪽 언덕 위에는 상대마 온천이 있어 피로를 풀기에 좋다.
온천 내에서는 수건,세면도구 등 필요한 물품은 모두 따로 돈을 받으므로 자기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은데
대마도는 화산지역이 아니므로 일본 본토의 온천과 같이 수질이 좋지는 않고 분출하는 물의 온도가 낮아 데워서 사용하는 곳이 많다고..

 

해수욕장 언덕에 집이 하나 있기에 가보았더니 화장실이었다. 

화장실과 샤워장, 취사를 위한 수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해수욕장.

해수욕장 주변에 흔히 난립해 있을 법한 횟집,조개 구이집.....노점상은 커녕

흔한 수퍼 하나 없었던 미우다 해수욕장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바다 속이든 백사장이든 쪼끄만 쓰레기 하나도 발견할 수 없던 해수욕장...

밉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인들의 놀라운 질서와 청결 의식...

우리네 해수욕장 풍경과 비교하여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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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쓰시마)에는 엄청난 무게의 돌판으로 지붕을 이은 전통 가옥들이 밀집해 있는 마을이 있다.
대부분의 대마도 도로가 그렇듯이 차 두대의 교행도 힘든 좁은 산길을
구비구비 돌아 산골 개울가 마을에 내리니
안내판에 쓰인 '이시야네(돌지붕)'라는 한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국 관광객이 전체 관광객의 90%를 차지하는 대마도에는 이와 같이 가는 곳마다 안내판이 한글로 되어 있는 곳이 많다.

 

대마도의 돌문화를 대표하는 건물인 이시야네(石屋根小屋,돌지붕 창고).
일본에서 집안의 곡물, 의류, 도구등을 넣어 보관하는 창고를 '고야'라고 부르는데 

이 지방의 창고는 돌로 지붕을 이었다고 해서 '이시야네(石屋根)'라고 부르고 있다.

 

섬의 89%가 산림지역이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했던 대마도는 식량의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또 예로부터 화재가 많이 발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한 해협에 면해 있는 서해안 지역은 겨울이 되면 초속 수십미터의 강한 계절풍이 불어왔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초가지붕과 너와지붕으로는 강풍과 화재로부터 소중한 식량을 지켜낼 수 없었고
또 당시에는 농민이 기와로 지붕을 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강풍으로 인한 피해, 화재로 인한 피해를 막기위해 지붕 자체를 사암이나 이판암의 넓은 판석을 채취하여 덮게 된 것이다.  

 

이시야네를 자세히 보면 이곳은 습기가 많은 곳이므로 기둥을 높여서 지면과 밑바닥에 30-50cm의 공간을 두었다.

이것을 고상식(高床式: 기둥을 세워 바닥을 지면에서 높이 올려 설치하는 가구 구조)구조라고 하는데 지면과 창고의 밑바닥에 바람이 잘 통하게 함으로 곡식의 원활한 건조를 돕기 위함이다.

그런데 지붕위의 돌 하나의 무게는 약 3톤, 지붕 전체의 돌의 무게가 100톤이라고 하니 입이 떡 벌어진다.


지붕이 얹어진 기반은 목조건물이므로 무거운 돌지붕의 붕괴를 막는 상당한 기술을 요하는데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강도가 강한 모밀잣나무를 주로 기둥으로는 사용하였다고 한다.
 

창고 내부는 쌀, 보리 등의 잡곡, 의류 및 각종 생활 도구 등을 구별하여 수납할 수 있도록 구획하였고 창고를 화재로부터 지키기 위해 사진에서와 같이 본채로부터 떨어진 곳에 마련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건축 형태는 일본에서도 시이네(椎根)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데 현재는 몇채밖에 남아있지 않은 귀중한 유물이다.   
기중기도 없던 시절에 하나에 3톤 씩이나 되는 이런 돌판들을 어떻게 이 나무 기둥집 위에다 올려놓을 수 있었을까...?
정말 대단한 건축 기술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만약에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이 기둥들이 썩어서 갑자기 돌지붕이 와르르...내려앉는다면..?
생각만 해도 온몸이 부르르......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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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을 하다보면 식당이나 가게 입구마다 한결같이 귀여운 표정으로 서 있는 고양이 인형을 마주 대하게 되는데

'마네키네코(복고양이)'라고 하는 이 고양이 인형은 반드시 손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손이 아니고 발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느낌은 발이 아니고 손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듯...) 

 

 

손을 든 것은 '멀리 있는 사람이나 금전을 부르는 뜻'이라고 하는데

오른손을 들고 있는 마네키네코는 '돈과 행운을 불러들인다'라는 의미이고

왼손을 들고 있는 마네키네코는 '손님이나 친구를 불러들인다'라는 뜻이며

 양 손을 들고 있는 마네키네코는 '사람과 행운을 동시에 불러다 준다'는 의미라고 한다.

 

 

손은 높이 들수록 손님과 행운이 더 많이 온다고 하니

벌 서듯 손을 치켜 든 마네키네코는 극진한 환영과 함께 행운을 기원한다는 뜻인 듯....  

그리고 몸의 색깔이 흰색인 고양이는 '()', 검은 색은 '마귀 퇴치',

붉은색은 '병 예방', 금색은 '돈을 부르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며  

파랑색의 마네키네코는 '학업 향상', 분홍색의 마네키네코는 '사랑을 불러온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96211941@N00/1655626431/

 

대마도에서는 특히 마네키네코 인형을 많이 볼 수 있는 데

이것은 대마도의 상징 동물이 '야마네코'라고 불리우는 산고양이이기 때문이다. 

야마네코는 일본 본토에는 없고 대마도에도 약 100 여 마리 정도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받고 있는 휘귀한 동물 

 

 

 

 

  대마도의 토속 소주인 '야마네코'라는 이름의 소주에도 상징 동물인 산고양이(야마네코) 그림이 라벨에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대마도에서는 이 산고양이를 특히 귀하게 여겨 도처에서 산고양이 모양의 인형이나 상징 조각, 기념품 등을 만날 수 있고

상대마 끝부분에 자리잡은 사오자키 공원 입구에는 야마네코 박물관도 있어

대마도 사람들의 야마네코에 대한 탐구심을 증폭시켜 주고 있다.

   

 

 

대마도 사람들의 각별한 야마네코 사랑은 달력에도 어김없이 그 모습이 등장한다.

여행 중 들렸던 이자까야(선술집) 주인 아주머니도 야마네코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며 자랑을 했다. 

문득 필자가 살고 있는 경주의 상징 동물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는데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있기나 한걸까...??

대마도 아주머니 보다도 내 고장 사랑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움이 살짝 스쳐 지나가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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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의 침략이나 점령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항상 자부하는 일본에게는 사실은 쓰라린 추억이 있다.
1274년 몽골과 고려의 연합군에 의해서 대마도와 이끼섬이 공격을 받아 초토화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역사의 현장 코모다하마 신사는 
카미카자 전망대에서 출발한 차는 섬을 가로 질러 반대편 해안의 포구 마을 코모다(小茂田)에 있다.  이 마을은 우리나라에서 해류를 따라 오면 저절로 도착하는 곳으로 예전에는 대륙에서 대마도로 배가 다니는 뱃길이 열렸던 곳이다.

 

이 곳은 또한 고려말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이 일본 점령을 위해 처음 상륙한 장소이기도 한데 거기에 코모다하마(小茂田濱) 신사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일본의 신사는 도리이(鳥居)에서 시작되는데 바로 신사
앞에 '天'이라는 글자 모양으로 서 있는 문을 말한다.
신의 사신이라 믿는 새가 쉬어가도록 한다고 해서 도리이(鳥居,도리이는 '새'라는 뜻의 일본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장대 또는 솟대로 표현되는데 솟대 위에 새 모양을 만들어 붙이는 우리의 전통 신앙과도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도리이는 흔히 붉은색으로 칠을 하여 신사의 신성한 공간과 평범한 공간의 경계를 나타낸다. 또 산이나 바위 같은 곳에 세워 그곳이 신성한 장소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모양에는 수많은 변형이 있지만, 2개의 원통형 수직기둥 위에 직사각형의 들보가 가로로 2개 얹혀 있는 것이 특징인데 첫번째 가로대는 기둥의 양쪽 끝을 지나 바깥까지 뻗어 있고 두번째 가로대는 그보다 약간 아래쪽에 걸쳐져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불교와 함께 일본에 전래된 인도의 아치형 관문인 '도라나'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어떤 학자들은 만주나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 대문과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코모다하마 신사의 도리이는 흰색에 붉은 글씨가 쓰여져 있었으며 우리들이 흔히 '귀신 안테나'라고 부르는 신을 부르는 대나무가 양 쪽에 세워져 있고 도리이 아래의 굵은 동아줄에는 하얀 종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우리나라의 금줄과 같은 용도로 쓰여 그 곳이 평범한 공간이 아니라는 걸 말해 주는 듯 하다.

 

 


이곳은 일본이 외세에게 처음으로 점령을 당한 곳이다.
합포(마산)를 출발한 고려와 몽골의 연합 일본 정벌대는 출항 이틀 후인 1274년 10월 5일 오후 4시경 하대마도의 사스우라에 상륙했는데 바로 오늘날의 코모다(小茂田)이다. 팔번우동기(八幡愚童記)라는 일본 측 사료에 따르면 앞 바다를 뒤덮은 이국선의 출현에 놀란 사스우라의 촌민들은 급히 달려가 이즈하라의 국부관에 외적의 침입을 고했다. 당시 대마도주는 소오 스케쿠니(宗助國)라는 68세의 무사였다.

 

 

전투는 10월 6일 오전 6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계속되었는데 2시간 만에  대마도의 일만 병사들은 중과부적으로 패하여 전원 목숨을 잃었다. 특히 당시 도주 소오 스케쿠니는 전쟁 후 목과 몸이 따로 발견되어 그 싸움의 치열함을 알 수 있었다 한다.
 
  


려몽연합군은 대마도와 이끼섬을 단숨에 초토화시킨 후
곧장 큐슈의 후쿠오카 상륙을 개시하기 위해 후쿠오카 앞 바다에 진을 쳤다. 그런데 태풍이 올 계절이 아닌데도 큰 태풍이 쯔시마해협을 덮쳐 려몽 연합군은 싸워보지도 못한 체 태풍에 큰 피해를 입고 본국으로 철수하고 만다. 일본은 이에 이 태풍을 신이 준 바람(神風)이라고 여기고 행운을 주는 좋은 길상의 의미로 새기고 있다.

신풍(神風).....가미카제... 돌아올 수 없는 연료만 채운 일인승 경비행기에 폭탄을 가득 싣고 연합군의 함선으로 돌진하여 자폭하던 특공대 가미카제. 바로 이 려몽연합군의 일본 정벌 때에 생겨난 말이다.  

 

 

그런데 실은 이곳은 한국과는 또 다른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1419년 세종 때  이종무 장군이 병선 227척에 1만7000명의 대군을 끌고 상륙하여 점령하고 약 2주간 머문 곳인데도 어디에도 이에 관한 흔적이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의도적으로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에 관한 흔적을 없앤 것은 아닐까...생각이 들었다.

 

 

신사의 들어가는 입구에는 같은 도리이가 또 서 있었고 가운데에도 역시 코모다하마 신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신사 앞의 석등은 지붕이 투구처럼 볼록하고 끝 귀가 말려올라간 일본 석등의 전형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일본의 신사 건물의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의 8작 지붕 건물의 측면이 정면이 되어 있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즉 가로는 짧고 세로는 긴 직사각형 형태의 배례전이 신을 모신 본전과 연결된 형태의 모습이다. 신사 건물에서는 항상 앞쪽이 배례전인데 대개 앞 뒤로 길기 때문에 건물의 측면이 정면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배례전 안쪽에서 통로를 따라가면 별개의 건물인 본전이 있는데 대체로 본전은 배례전보다 조금 높게 위치하고 있다. 본전에는 그 신사가 모시는 신물(神物)이 모셔져 있는데 이 신물은 신의 현신(現身)으로 생각되어 누구도 볼 수 없는 신사의 깊은 곳에 보관되어 있다.

 

 

신사의 지붕 장식도 역시 도리이의 형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신사 문 앞마다 우리나라의 금줄처럼 굵게 꼰 새끼줄과 하얀 종이가 함께 걸려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사에 들르는 일본인은 신사 앞에서 반드시 손과 입을 씻은 다음 배례전 안의 복전함에다 돈을 넣고 배례전 앞에 늘어진 천을 흔들어 목탁모양의 방울(나무나 청동으로  따위로 만듬)을 친다. 방울을 치는 것은 내 정성을 바치니 봐 달라는 뜻이기도 하고 죄와 부정을 씻어낸다는 뜻도 함께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런 다음 두번 합장 배례하고 두번 박수를 친다.

그리고 신사를 들어갈 때는 가운데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들어가며 나올 때는 오른 쪽으로 나오는데 이 풍속은 우리나라에서 사찰의 대웅전에 들어갈 때의 방식과 비슷하다.

 

 

신사의 내부는 경배를 올리기 위한 배례전과 신을 모신 본전의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본전으로 가는 통로가 보인다.

 

 

코모다마하 신사 내부에는 몽골군과의 전투도가 여기저기 걸려 있었는데 숨진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코모다하마 신사에서는 전사한 병사들의 위패를 받들고 있으며 매년 11월에 위령제를 지낸다. 코모다마하 신사는 동경의 야스쿠니 신사와 함께 일본에서 두 곳 밖에 없는 군인을 모신 신사이다.

 

 

신사 앞에 놓여 있는 포탄에는 명치 30년(1897년)의 전리품이라고 쓰여져 있다. 

 

 

신사 배례전 바로 옆에는 원구 칠백년 평화지비(元寇七百年平和之碑)가 서 있다. 

 

 

평화를 상징하는 듯 비의 맨 위에는 비둘기가 새겨져 있었는데
우리가 왜구(倭寇)라고 하듯이 그들도 원구(元寇)라고 부르는 걸 보니 실소가 저절로 나왔다.
이 때 寇라는 한자는 '도둑'이라는 뜻...

 

 

신사 마당 옆에는 복전을 낸 사람들의 이름이 길쭉한 나무판에 빼곡이 적혀 있었다. 일만엔, 오천엔,삼천엔,이천엔......거기다 방어 한 마리,과자, 청주 두병.... 이런 품목도 눈에 뜨이는데 복전의 액수가 많을수록 이름이 상단에 붙어져 있는 곳을 볼 수 있다.

 

 

2003년 일본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70%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는데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 30% 가운데 51%가 신도, 그리고 48%가 불교, 그리고 1%도 안되는 나머지가 기독교등으로 되어 있다.
 

 

신도(神道)는 기본적으로 애니미즘, 즉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신화와 전설에 나오는 신, 전쟁 영웅은 물론 각종 귀신이나 고양이나 말과 같은 동물은 물론 죽은 자도 살아 생전 또는 죽어서 영험을 떨칠 것으로 여겨지면 신사를 세워 모신다. 일본 전국에 신사가 10만 여개가 넘으니 거의 동네마다 신사가 있어 마을 곳곳에 빨간 도리이가 세워져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신도(神道)는 교리는 없고 다만 신사에서의 의식을 중시한다. 그러나 신사의 예배는 개인적이지 교회처럼 집단적으로 하는 것은 없다. 특별한 의식은 없고 개인적으로 엄숙한 자세로 신사에 들어가서 비치된 헌금함에 돈을 넣은 후 두 번 합장을 하고 절을 한 다음에 박수를 두 번 친다.  

 

 

신사에는 자식의 합격을 비는 부적, 자동차 사고를 예방하여 준다는 부적, 사업을 번성케 하는 부적  등 다양한 부적이 있으며 갖가지 기원문이 적힌 상징물들이 있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사서 집에 장식하거나 신사 내의 지정된 장소에 걸어 둔다.

일본인들은 매해 신년 1일에서 3일까지 80% 이상의 사람들이 신사를 방문한다고 한다. 첨단 산업으로 앞서가는 선진국 일본에 경전도 없고 사제도 없는 신도가 사람들의 기복과 관련하여 일본 제일의 종교로서 생활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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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시의 참 모습을 보려면 밤거리를 다녀 보아야 한다고 한다.
대마도의 주도 이즈하라의 밤은 어떠할까....

낮에도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을 정도로 한산한 이즈하라...
밤에도 예외는 아니었다...아니 더  조용하였다. 도대체 어디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호텔 일층은 타쿠시(택시) 승차장이었다.
백미러가 본네트 가운데 떡 하니 달린 모습은 에전에 우리 나라에 한 때 다니던 승용차들을 보는 듯 하다.
택시를 찾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택시가 지루하게만 보인다. 

가로등만 붉은 불빛을 내뿜고 있는 이즈하라 메인 스트리트엔 오가는 사람도 차도...별로 없이 적막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우리 일행의 두런거리는 소리만이 건물에 울려서 되돌아 올 뿐.. 

이즈하라 시내를 흐르는 개천 양 옆에 자리잡은 선술집들만 호박빛의 조명으로 행인을 유혹한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인지.....이름조차 아예 '부산정'이다.  

간판이 많이 낡아 있던 식당문에는 '생선회'라고 메뉴가 적혀져 있었다.
생선회는 일본어로  '사시미(刺身)'인데 이 말의 원뜻을 살펴보면 좀 무시무시하다.
'찌르다', '꽂다' 등을 의미하는 '刺'에 몸 또는 물고기나 짐승의 살을 뜻하는 '身'이 합쳐졌으니 “살을 찌르다”라는 말이다.
이처럼 무서운 말이 음식명이 된 데에는 유래가 있다. 옛날 일본의 막부시대에 오사카 성의 한 장군이 멀리서 온 귀한 손님을맞이했다.
수많은 음식과 더불어 특별히 준비한 여러 종류의 생선회를 먹던 중
손님이 "이것은 무슨 생선이기에 이처럼 맛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생선의 이름을 몰랐던 장군은 생선회를 만든 요리사를 불러 직접 대답하게 했다.
그 후부터 요리사는 장군에게 생선회를 올릴 때 작은 깃발에 생선 이름을 적은 다음 생선회의 살에 꽂아서 상에 놓았다고 한다.
이처럼 생선의 살에 작은 깃발을 꽂았다 하여 '사시미'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낮에 보았던 '야끼또리(焼鳥,やきとり)'라는 이름의 술집(이자까야,居酒屋)은 야경이 더 아름답다. 

불빛과 광고 플래카드가 낮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한자와 히라카나가 합쳐져 문자라는 느낌보다는 또 다른 회화적인 느낌으로 내게 다가 왔다. 

들어 가는 입구가 참 이쁜 선술집(이자까야,居酒屋)앞에 서 보았다. 

분위기가 좋게 보여 들어가 보려고 하니 한국인 출입 금지다.
"죄송합니다...저희 가게에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로 인한 트러블을 막기 위해 한국인 손님을 받지 않겠으니 양해바랍니다."
굉장히 우회해서 안내문을 써놓았지만 결론은 한국인 손님 안 받는다는 소리...--;;
언어 소통이 아닌 그 무언가가 배후에 있는 것 같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불빛과 함께 가게 앞에 내걸린 노렌이 참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는데...... 

일본의 식당이나 선술집(이자까야,居酒屋)에서는 어김없이 가게 문 앞에 그 가게의 이름이 쓰인 '노렌(暖簾,のれん)'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게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노렌(暖簾,のれん)'을 가게 주인들은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데
아침에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내다 걸고 저녁에 문을 닫을 때엔 제일 나중에 걷어서 가게 안에 소중히 간직하며
가게에 불이 나면 다른 귀중한 물건을 꺼내기 앞서 노렌을 제일 먼저 구해 낸다고 한다.
백년이 넘게 된 가게 문 앞의 노렌은 역시 백년이 넘게 된 것이라 보면 된다고.....
일본의 가게의 전통과 역사를 나타내어 주는 가게의 심볼이라 할 수 있다.  

'미자만(味自慢...ㅋㅋ)'이라고 쓰인 노렌을 들추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오래 된 영화 포스터를 내거는 것이 여기도 유행인 듯 하다. 

여치인지 귀뚜라미인지 모를 장식물이 걸려 있고... 

아주 간단한 종이 공예품도 귀엽게 걸려 있었다. 

술집 안은 지극히 작았고 제일 안에 코딱지 만한 방이 하나 있었다.
많지도 않는 일행들도 다 앉을 수 없어 문턱에 걸터 앉아 술집 문 쪽으로 보고 내부를 찍어보았다. 

역시 방 문에 걸터 앉아 찍은 주방의 모습인데 주인 아저씨.....카리스마가 장난 아니다. 

방 벽에 걸려 있던 수많은 싸인 종이들을 보니 대미도 관광객의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는게 실감이 났다.
아! 오늘 밤 죽겠다....우째 자꼬....다녀 감......밤이 무섭다!!
한국 관광객들이 남긴 글귀를 읽으니 피식......웃음이 나왔다. 

선술집 벽장에는 커다란 댓병의 술병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술병마다 다 화이트로 이름이 써져 있는 것이다. 술병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먹다가 남은 술이 다 들어 있었다.이런 소주 댓병 한 병에 2,800 엔 정도이므로 우리 돈으론 거의  28,000 원이니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소주 한 병 따면 다 마시는게 당연할 뿐 아니라 때론 한 명이 서너병은 기본으로 비우는 우리네 음주 문화와는 달리
일본인들은 한 병 사서 얘기하면서 마시다가 남으면 술집에다 맡겨 놓고 다음에 와서 다시 자기 술병을 찾아 마신다.
물론 다음에 자기 술병을 찾기 위해서 술병에다 이름을 써놓는 것은 기본... 

마침내 나온 안주는 족발. 우리네 족발과는 달리 튀겨서그런지 기름기도 많다.
한 접시에 600엔(6000원)인데 양이 너무 적어서 하나씩 맛보니 금방 없어졌다.
나마 비루(생맥주) 한 잔은 580엔(5800원,우리네 생맥주 값은 얼마인지 궁금)이었다. 

 일행 중 한 분이 기념으로 싸인을 남기셨다.한글을 모르지만 받으며 좋아하는 주인 아주머니.
혹 다음에 대마도를 다시 오게되면 여기에 와서 저 싸인을 다시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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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의 즐거움 중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여행지의 새로운 음식 체험이다.
어떤 나라의 어떤 풍습이든 잘 받아들이는 열린 사고와 함께
어느 나라 어떤 음식이든 즐겁게 먹어대는 글로벌한 미각을 가진 필자로써
대마도에 발을 디뎠으니 대마도 특산 요리 이시야끼(石燒)를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이시야끼(石燒)는 대마도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다와 산에서 얻은 산해진미를 
달구어진 돌판 위에 올려 구우면서 먹는 대마도를 대표하는 요리이다.
두꺼운 돌판 위에 생선, 버섯등을 올려 놓고 구워먹는 맛은 일품일 뿐만 아니라
분위기 또한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 

 


이시야끼(石燒)의 일인분 가격은 3,000엔,우리 돈으로 30,000원이다.

다소 비싼 음식값 지출에 주머니가 후덜덜하고 떨리긴 했으나 식당에 들어서 베풀어진 음식을 보니
소찬 위주인 일본 상차림에 비해선 제법 잘 차려진 한 상이 기다리고 있다.
 

아삭하게 튀겨진 튀김에 곁들여진 깔끔한 양배추 샐러드.
 

먹어 보아도 식재료를 잘 알 수 없었던 부드럽고 달콤한 조림.
 

잘 차려진 참돔 생선회가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우리 나라의 횟집의 푸짐하게 담겨져 나오는 회에 비하면 양이 적어 좀 감질나 보이고
접시 가운데 놓인 생선이 "왜 날 먹어???"하며 노려보는 것 같아 좀 무섭기도 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 생선회는 일본어로  '사시미(刺身)'인데 이 말의 원뜻을 살펴보면 좀 무시무시하다.
'찌르다', '꽂다' 등을 의미하는 '刺'에
몸 또는 물고기나 짐승의 살을 뜻하는 '身'이 합쳐졌으니 “살을 찌르다”라는 말이다.
이처럼 무서운 말이 음식명이 된 데에는 유래가 있다.
옛날 일본의 막부시대에 오사카 성의 한 장군이 멀리서 온 귀한 손님을맞이했다.
수많은 음식과 더불어 특별히 준비한 여러 종류의 생선회를 먹던 중
손님이 "이것은 무슨 생선이기에 이처럼 맛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생선의 이름을 몰랐던 장군은 생선회를 만든 요리사를 불러 직접 대답하게 했다.
그 후부터 요리사는 장군에게 생선회를 올릴 때
작은 깃발에 생선 이름을 적은 다음 생선회의 살에 꽂아서 상에 놓았다고 한다.
이처럼 생선의 살에 작은 깃발을 꽂았다 하여 '사시미'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메인 요리,이시야끼의 재료들.(4인분이다)

부다 니쿠 꼬지(돼지 꼬지)2개,생선살,피조개,홍합,조갯살,두부,버섯,양파,양배추,곤약,호박....
  



잘 달구어진 엄청 두꺼운 돌판 위에 각가지 재료들을 놓고 구워서 소스에 찍어먹으면 된다.

한 사람에 삼만원 씩이면 네 사람에 십이만원 짜리 차림상인데 약간 모자라지 않게 차려졌나...싶은 상차림은 의외로 배가 부르다.
배 부르고 기분이 좋으니 남은 대마도 여행 일정은 더욱 순탄하게 이루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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