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에서 태백으로 향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35번 국도 여행길.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고산정에서 농암 종택 가는 길에 퇴계 오솔길을 만났습니다.

퇴계 오솔길(예던길, 녀던길)은 퇴계 이황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극찬한 길인데요.

어린 퇴계가 숙부인 송재 이우에게 학문을 배우기 위해 다니던 낙동강 강변길입니다. 

퇴계는 글을 배우기 위해 자신의 태실에서부터 청량산까지 낙동강 강변길을 홀로 걸어다녔고

죽을 때까지 그가 좋아하던 청량산을 거닐기 위해 이 길을 즐겨 산책했다고 합니다.

 




가송리 고산정에서 퇴계 오솔길 (예던길,녀던길)을 따라 낙동강 한구비를 돌아드니 

벽련암과 낙동강이 치맛자락처럼 펼쳐지는 농암종택 어귀에 이르렀습니다.





종택 대문 앞에 서니 대문 너머로 보이는 청량산에 두터운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 더욱 운치 있다는 이 곳.  마치 한줄기 비라도 그을 것 같은 하늘이었습니다.





원래 도산서원 앞 분천마을에 있었다는 농암종택은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이 되었다고 합니다.

농암 17세손 이성원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여기저기 흩어진 종택과 사당을 한데 모아 이룬 것이 지금의 농암종택입니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시조 작가인 농암 이현보는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30년 이상 관직에 몸 담았다가

조선시대 유일하게 은퇴식을 하고 정계에서 물러난 '뒷모습이 아름다운 선비'입니다.

은퇴 후에는 부모를 봉양하고 자연에서 유유자적 지내고 싶어 임금의 상경 명령에도 끝내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은 사랑채로 현재 17대 종손 이성원 선생이 종택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채 마루에 편안한 의자들이 몇개 놓인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농암종택에서는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대청 위 의자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지는 청량산과 낙동강의 풍광을 바라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습니다.

 

 

 

 

사랑채 안에는 적선(積善)이라고 쓰인 큰 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

라는 뜻으로 선조가 농암 이현보의 '효'행에 감동하여 직접 써서 하사했다고 하네요.

지난번 국립박물관에 걸린 선조 어필 '적선'에 대해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 걸려 있는건 사본인 듯 합니다.

관련 포스트 : 선조 임금의 서예 '적선'





사랑채 뒷편에는 안채가 자리잡고 있구요. 그 뒤로 사당이 보였습니다.

농암종택에서는 안채를 제외한 사랑채, 긍구당, 명농당, 분강서원, 애일당 등 모든 고택에서 숙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고택에서 하룻밤 묵고 나면 안채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준다고 하는데요. 

간고등어구이, 콩가루를 넣은 부추, 명태 보푸라기 등 유기농 채소로 직접 준비한 종가 음식이라고 하는군요. 

이곳에서 묵는 분들은 마치 고향에서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네요.





너른 마당의 끝 부분, 고택의 가장 전면에 위치한 긍구당(肯構堂)은 농암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종택의 별채입니다. 

고려 때 농암선생의 고조부가 지은 긍구당의 당호는 '조상의 유업을 길이 잇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마루에서 청량산과 굽이치는 낙동강의 절경을 바로 내려다볼 수 있어 종택의 스위트룸이라고 불리운다 하네요.





종택의 서쪽 문으로 나와 종택을 바라 보았습니다. 청량산이 종택을 두 팔로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모습이네요.





이곳은 명농당으로 농암 이현보가 귀거래도를 그렸던 곳입니다. 

명농당은 농암이 관직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과 함께 생을 보내고 싶다는 '귀거래'의 소망을 담고 있는 곳이라 하네요.


 



명농당을 지나니 농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는 분강서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서원 옆에는 농암의 행적을 기리는 농암 신도비가 있었습니다.





분강서원을 지나 서쪽 강변으로 가니 수려한 풍광 속에 들어앉은 건물 두채가 보였습니다.

애일당과 강각인데요. 애일당은 농암이 구순이 넘은 부친을 위해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부친이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하루하루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애일당(愛日堂)이라 이름했다는데요.

농암 선생은 부친을 포함한 노인 아홉분을 모시고 어린아이처럼 색동옷을 입고 춤추며 즐겁게 해드렸다고 합니다.

애일당 앞 강각에 올라 농암선생의 부친처럼 낙동강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문이 잠겨 들어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더군요.


 



애일당 앞 축대 앞에 바윗덩어리가 몇개 서 있는데 음각으로 큰 글씨가 새겨져 있었어요.

'농암각자'라는 이 바위는 네개의 자연석 암벽에 ‘(농암선생정대구장)’이라고 새겨놓은 것입니다.

농암선생 사후에 제자들이 스승의 옛터를 기리고자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는데요.

원래 분천리 애일당 자리에 있었던 것을 안동댐 수몰로 인해 이곳으로 옮겼다고 하네요.









퇴계 오솔길은 애일당과 강각 아래 낙동강 강변을 따라 쭈욱 이어진다고 합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퇴계가 낙동강 물소리를 들으면서 걸었다는 퇴계 오솔길을 끝까지 걸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고산정과 농암종택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여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다음번에 온다면 아주 약한 가랑비가 살며시 내리는 날. 이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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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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