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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를 뚫고 담양으로 간 이유는 빨간 꽃이 흐드러진 배롱나무 정원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배롱나무꽃이 붉은 꽃비가 되어 연못 위에 붉은 융단을 이루는 명옥헌 원림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명옥헌까지 차를 가지고 바로 진입할 수는 없었습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후산길로 불리우는 마을길로 들어섰는데요.
동네 아주머니들 몇명이 평상에 앉아 길을 지키고 계시더군요. 마을로 들어서지 못하게 길을 가로지른 노끈을 쥐고 있다가
오는 차량마다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후에 마을 사람이면 노끈을 놓아 차가 지나가게 해주었습니다.
여름이면 수많은 관광객들이며 진사들이 몰려들어 복새통을 이루는 바람에 마을 주민들이 궁여지책으로 나섰나 봅니다.
동네 어귀 저수지 후산제를 지나 오른쪽길로 접어드니 아기자기한 벽화들이 여행자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주차장에서 그늘도 없는 길을 500m 정도 걸어가야 되더군요. 정말 얼굴이 따가울 정도였습니다.
이글이글 타는 듯한 한낮 더위에 걸으니 땀이 흐르고 목이 타서 동네 유일의 카페에 들러 생수 한병을 샀습니다.
받은 생수가 얼음 꽁꽁이라 금방 먹을 수가 없더군요. 제가 목말라 하는걸 보고 카페 쥔장께서 시원한 냉수 한잔을 주셨습니다.
댓바람에 냉수 한잔을 들이키고 염치없게 또 한잔을 얻어먹었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아이스커피 한잔을 다시 주문했어요.
조금 더 걸어 명옥헌 원림 앞에 도착했습니다. 연못을 중심으로 가장자리 둑방길에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가운데 둥근 섬 안에도 우아하게 자란 배롱나무가 자리잡고 있었어요.
정원을 온통 뒤덮은 배롱나무의 붉은 자태가 연못에 비친 반영으로 인해 더욱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새벽녘이면 배롱나무 반영을 사진에 담으려고 몰려든 진사들로 인해 삼각대 세울 곳도 잘 없다고 하더군요.
배롱나무 고목들은 연못 위로 탐스러운 꽃무리를 가득히 단 가지를 총총히 내 뻗고 있어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습니다.
정원을 물들인 붉은 꽃비에 진사의 카메라 셔터 소리도 바빠지는 풍경입니다.
뚝방길을 지나 명옥헌 정자 앞에 왔습니다. 야산을 뒤로 두고 야트막한 둔덕 위에 날아갈 듯한 정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정면이 3칸이고 측면이 2칸인 아담한 정자입니다. 양쪽을 살짝 들어올린 추녀의 곡선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정자 한가운데 조그만 방을 두고 그 주위를 돌아가며 ㅁ자 마루를 놓아 두었더군요.
모든 배롱나무가 아름답지만 정자 바로 옆에 심겨진 거대한 배롱나무가 제일 압권이었습니다.
가지가 무거워 드리워질 정도 복슬복슬 탐스러운 달린 배롱꽃들을 정자 쪽으로 드리우고 있더군요.
엣 성현들만 신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나요.
소슬바람이 불어오는 정자에 앉아 한담을 나누느라면 누구나 신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자 마루에 걸터 앉아 눈앞에 펼쳐진 배롱나무 정원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에 빠져드는게 당연할 것 같습니다.
정자 뒷편 얕은 둔덕으로 올라보았습니다. 족히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배롱나무들이네요.
정자 뒷편의 작은 연못을 빙 둘러가며 붉은 배롱나무들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붉은 꽃비가 되어 정원 곳곳에 흩날리던 배롱나무꽃은 연못 위에도 호사스러운 붉은 융단을 만들었습니다.
어두워지는 명옥헌 마루에 걸터 앉아 도종환선생의 '목백일홍(배롱나무)' 시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한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는 것이다
목백일홍 / 도종환(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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