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 넣고 푹 끓인다  설탕은 은근한 불
서서히 졸인다 졸인다 빙수용 위생 얼음
냉동실 안에 꽁꽁 단단히 얼린다 얼린다
프루츠 칵테일의 국물은 따라내고
과일만 건진다 건진다
체리는 꼭지체리 체리는 꼭지체리
깨끗이 씻는다 씻는다
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정말 좋아
팥빙수 팥빙수~여름엔 왔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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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수야 팥~빙수야

싸랑해 싸랑해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마 녹~지마~♬

윤종신의 <팥빙수>노래가 아니더라도 요즘 같이 찌는 무더위에는
그저 팥빙수 한 그릇으로 입안을 얼얼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간혹 유명 베이커리나 레스토랑의 팥빙수는 녹차 빙수에 와인 빙수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고
각종 과일이며 젤리에 빼빼로까지 꽂아 화려하기 그지없는 데코레이션의 빙수를 내놓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빙수는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뭔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고
먹은 후에는 시원한 느낌보다는 달콤함이 더 많이 남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푹 삶은 팥을 듬뿍 얹고 우유를 부어 주던 옛날 팥빙수가 더욱 생각나곤 한다. 


요즘에도 향수어린 옛날 팥빙수를 고집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오후 4시의 내려쬐는 뙤약볕 아래 걸어서 찾아간 팥빙수집은
MBC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한결(공유)과 깐깐한 할머니(김영옥)이 먹던 '마두동 할머니 팥빙수'집.
꼬장꼬장하고 엄격하기만 한 할머니는 팥빙수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마두동 할머니 팥빙수 앞에서는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도 금방 부드러워지면서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되돌아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커피 프린스에 나온 팥빙수집은 바로 종로구 가회동에 자리잡고 있는 '이모네 분식'이다.

오랜 세월로 인해 비가 새는지 무너져 가는 기와 여기저기에는 비닐장판을 덧대어 놓고
조그만 화분에서 시작한 넝쿨잎들이 식당 전체를 뒤덮고 있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집이다.





좁은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가운데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박혀 있고 나무를 돌아가며 식탁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창가에도 벽을 보고 앉을 수 있는 좁은 탁자가  고작이다.





대신 식당의 구석과 방에는 집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가구가 즐비하다.





창에는 얼큰수제비, 콩국수, 도시락 비빔밥, 순대볶음, 떡국, 떡라면, 만두라면, 냉면, 만두국....등 각가지 다양한 메뉴가 붙어 있는데
이렇게 많은 메뉴가 존재하고 있는 까닭은 바로 지척에 중앙고교와 세무고교의 허기진 남학생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집에서는 '커피 프린스 1호점' 뿐만 아니라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도 촬영한 적이 있는지라







군데군데에 연예인들의 사진, 촬영 당시의 직찍, 가게 주인인 이모와 연예인들과의 직찍 사진들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집의 인테리어와 비슷하게 메뉴판도 하드보드지를 삐뚤빼뚤하게 잘라 붙여 만들었다.





손때 묻은 메뉴판에는 각가지 주문 가능한 메뉴가 있지만
오늘의 주목적인 '마두동 할머니 팥빙수'를 맛보기 위해 4,000원 짜리 큰 그릇 팥빙수 하나를 주문했다.





주문하자 말자 '뚝딱' 하며 금방 나온 팥빙수는 정말 옛날 팥빙수이다.
얼음 위에 듬뿍 올린 팥, 찰떡 몇 개, 그리고 살짝 뿌린 연유가 고작이다.





팥빙수의 생명은 뭐니뭐니해도 팥.
탱글탱글하고 윤기나게 삶아진 것이 제대로 된 팥이다.





걸어서 찾아 오느라고 너무나 더웠던지라 얼른 비벼서 허겁지겁 먹어본다.
쉬지 않고 서너 숟가락 입으로 퍼 넣으니 어느새 이마에 흐르던 땀줄기가 멎고
순간...
아이구...머리야....!
머리가 띵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찬거 먹으면서 머리 띵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던데...@.@

양 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한참 동안 머리를 지압한 후 정신을 차리곤 다시 팥빙수 그릇을 깨끗이 비운다.
너무 달지 않고 개운한 뒷맛이 마음에 든다.


더운 여름날 얼마 되지 않는 가격으로 얼얼하도록 입을 얼리고 이마에 흐른 땀을 식힐 수 있는 옛날 팥빙수.
글을 쓰는 지금도 다시 한 그릇 하고 싶어 입에 살짝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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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허름한 집인지라 다음지도에도 정확한 위치가 안 나오네요.
혹 찾아가실 분은 다음 로드뷰를 참고 하세요~!
http://local.daum.net/map/index.jsp?wx=497082&wy=1133864&level=3&panoid=4458947&zoom=0&pan=56.25556583597552&tilt=12.769891463127381&poi=false&map_type=TYPE_SKYVIEW&map_hybrid=true&map_attribute=ROADVIEW&screenMode=nor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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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8월은 연꽃의 계절이다.
경주의 연꽃은 예전부터 서출지가 가장 아름다웠는데
몇년전부터 안압지 주변에 연꽃단지를 조성하고 수백만본의 연꽃을 심은 이후로는
경주를 찾는 이들이 빠지지 않고 꼬옥 들리는 명소가 되었다.
선덕여왕, 동이, 김수로 등의 사극 촬영지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신라 궁궐터 반월성,
신라 왕실의 동궁이자 최고의 야경 촬영지인 안압지, 첨성대, 대릉원,최씨고택 등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제일 중심 위치에 있는지라 더욱 인기가 있다.


2010년부터는 경주 한여름꽃축제가 연꽃단지를 비롯하여 반월성 앞 너른 초지에서 열리게 되니
여름에 경주를 찾으시는 분들은 연꽃, 황화 코스모스는 물론이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다양한 여름꽃들을 한자리에서 보실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꽃자랑은 각설하고...오늘은 연꽃단지와 반월성 꽃단지 인근에 위치한 식당을 소개할까 한다.

적당한 가격의 불고기와 비빔밥이 주 메뉴인 이 식당은 연꽃단지 바로 건너편에 있어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하며 연꽃단지와 반월성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음식 또한 정갈하고 맛있어서 필자가 자주 들리곤 하는 집이다.




이집의 대표 메뉴 궁중비빔밥을 시키면 이렇듯 푸짐한 한상을 받을 수 있다.



반찬은 아삭아삭한 샐러드,



달콤하고 짭쪼롬한 멸치 무침,



갓버무린 겉저리 김치,



큼지막한 깍두기,



짭쪼롬하니 맛나는 고추 장아찌,



열무 김치,



여름엔 그저 그만인 시원한 오이 냉국,



베물면 아삭 소리가 들리는 고추 무침 등...모든 반찬이 다 맛갈스럽다.




색깔도 이쁜 각색 나물들은 넓직한 그릇에 푸짐하게 담겨져 나오니



쳐다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 간다.


비빔밥이 상 위에 올려지자말자 다짜고짜 밥을 푹 떠서 비빔밥 그릇으로 투하를 한다.




그리고 고추장 넣고 , 된장 두어 숟가락 떠 넣고....
마구 마구 스윽스윽 비벼서 허겁지겁 입 속으로.....
양이 많은데도 한숟갈도 남기지 않고 다 먹고 나니 배가 너무나 부르다.

화려한 연꽃들을 눈으로 보고 즐긴 뒤에 먹는 정갈한 비빔밥은
얇은 주머니로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조그만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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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불리우는 '안동찜닭'
얼마전 1박 2일 안동편에서 비밀번호 추리로 30,000원을 인출해낸 올드보이팀들이
먼저 안동구시장으로 가서 안동찜닭을 시켜서 맛나게 먹는 장면이 나온 이후
전국의 안동찜닭집들의 전화통이 불티나게 울리고 찜닭집 알바들은 정신없이 바빠졌다고 하는데...

'안동'하면 떠오르는 안동찜닭은 엄밀히 말하면 안동의 향토음식이라는 할 수 없는 음식이다.
본래 향토음식이란 '한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고유한 음식문화의 하나'를 이름이니
양반의 고장 안동과는 어울리지가 않게 닭과 온갖 재료들을 뒤섞어 만든 안동찜닭은 일종의 '퓨전 요리'라는게 더 맞는 말이다.


'찜닭골목'이라고 불리우는 안동구시장 초입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쭉 늘어선 닭요리집들이 안동찜닭의 명성을 말해주는데
안동찜닭이 안동구시장에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라고 한다.


안동은 예로부터 지리적 특성상, 전국의 물산이 몰려드는 중간 집성지였는데 
전국적으로 몰려드는 상인들이 많아 안동시장은 늘 성황을 이루었고
안동구시장의 경기가 한창 좋을 때 닭요리를 먹기 위해 닭골목으로 몰려들던 단골 손님들이
닭도리탕에 이것저것 재료를 넣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하나둘 재료가 더해져 지금의 안동찜닭으로 변모했다. 

큰 접시를 사이에 두고 여럿이 한데 어울려 먹을 수 있는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음식 안동찜닭은 특별한 조리법이 있는 건 아니다.
알맞은 크기로 토막을 내 고온에서 삶아낸 닭에 감자, 당근, 양파, 표고버섯 등을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청양고추와 간장으로 만든 양념장을 넣어 조리하다가 마지막으로 불린 당면을 듬뿍 넣어 익혀내는 음식으로
닭고기의 맛과 매콤한 양념의 조화를 혀끝에서 즐기는 음식이 바로 안동찜닭이다. 


특히 안동찜닭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재료와 양념을 풍부하게 쓰고 당면을 듬뿍 넣어 푸짐하게 차려내기로 유명하고 
톡 쏘는 매콤한 맛 뒤에는 달콤한 맛이 남는데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청량고추에 간장 등을 섞어 매콤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고온에서 빠르게 조리하는 것도 안동찜닭의 맛을 내는 비법의 하나라고 한다.

보통 한 접시를 두고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먹는데 방송을 탄 이후로 20,000원 하던 안동찜닭이 22,000원으로 가격이 상승했다.
 그래서 안동 사람들은 방송 타서 안동이 좋아지기는 커녕 찜닭 가격만 상승시켰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필자 또한 안동에서 들린 찜닭집 사장님께 문의했더니 그동안 가격이 현실에 맞지 않아 인상하려고 하던 중 방송을 탔고 
그 이후 부득불 가격인상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조금 이름이 알려지면 곧이어 가격인상이 따르는 부작용은 없어졌으면 하는 부분이다.

안동찜닭이 옛날부터 내려온 향토음식이 아닌 국적 불명의 퓨전 음식이긴 하지만
프라이드 치킨이나 양념통닭이 간식이라는 의미가 강한 반면에 안동찜닭은 한접시로 여러명이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맛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의 입맛에나 맞아 가족 단위로 하는 외식의 주 메뉴로도 훌륭하다는 점에서
안동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비빔밥이나 불고기처럼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훌륭한 음식으로 발전했으면.....하고 자그만 욕심을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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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이 이제 이틀 앞으로 성큼 다가왔는데 여러분은 새해맞이를 어떻게 할 예정이신지 궁금하다.  지난번 소개해 드린 포항 호미곶 상생의 손가락 사이로 2010년의 새로운 해가 떠오르는 감격을 맛보고 싶으신 분들은 안 계신지?  혹시 호미곶에서 <헌>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감격과 행운을 체험하셨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룡포에 들려 밤새도록 새로운 해를 기다리며 깔깔해진 위를 죽으로 달래어 보심은 어떠신지....


호미곶에서 남쪽으로 차를 달려 구룡포에 이르면 부두 못 미쳐 나타나는 '구룡포 할매 전복집'.  외지에까지 알려진 상당히 유명한 맛집이고 작년에는 롯데 백화점에 분점까지 개점한 30년 전통의 전복집이라고 해서 아주 크고 화려한 식당인가 했더니 웬걸...살짝 골목으로 들어앉은 2층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이다.  지금은 할매 전복집의 원조가 되시는 '할매'이신 시어머니가 타계하고 며느리인 김정희씨가 2대째 전복집을 하고 있다. 

" 어머니가 하실 때는 자연산 전복이 앞바다에서 많이 났는데,
요즘은 여기 것만으로는 물량이 모자라 동해 전역에서 나는 전복을 쓴다"는데

종패(새끼전복)를 동해안을 따라 뿌려뒀다가 자라면 해녀나 해남(경북 동해안에는 해남이 있다)이 들어가서 채취하는 식이다.
완전 자연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양식산도 아니니....
마치 장뇌 산삼과 같은 방법의 전복 채취라고나 할까?

메뉴는 전복회, 전복 물회, 전복 비빔밥, 전복회국수, 해삼 무침.....전복을 이용한 여러가지 음식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전복죽을 시켜보았다.

1인분에 12,000원.....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전복죽을 끓이는 동안 도토리묵이 나왔다. 도토리묵의 맛이 제대로이다.



간소하지만 깔끔한 반찬과 ......



무지 소박한 부추전.....



그리고 커다란 그릇에 한가득 짙은 녹색을 띤 전복죽이 나왔다.
짙은 녹색을 띤 전복죽의 비결은 싱싱한 전복에다 전복 내장을 적당히 으깨어 넣는 특유의 조리법에 있다고 한다. 



전복살이 얼마나 들었나.....하고 숟가락을 넣어 휘저어 보니 제법 큼지막한 전복살이 숟가락에 걸려 올라온다.
큼지막하게 썬 전복살이 대여섯개나 죽 속에 들어 있으니 다소 비싸다고 생각했던 전복죽값이 이해가 된다.




잘게 썰지 않고 큼직하게 썬 전복살이 다른 지역 전복죽과는 모양새가 다르고 한입 떠서 입에 넣으니 전복의 신선함이 입안에 가득하다.
영양가 만점인 전복죽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니 포만감에 온 세상이 내것 같고 추운 날씨에도 몸에 따스한 기운이 온 몸으로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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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낡았지만, 빛 바랜 정다움이 있는 소박한 마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지금은 인근의 호미곶 해맞이 광장의 명성에 가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어촌 마을이 되었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동해안 최대의 항구였던 곳.
아직도 뒷골목길은 3,4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며 구룡포 명동에는 일제 시대의 적산 가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여명의 눈동자같은 드라마나 마요네즈 같은 영화의 회상 장면이 여기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외지인들은 별로 볼 것 없는 어촌이라며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빛 바랜 마을 구룡포.
한번쯤은 차에서 내려 좁은 구룡포 뒷골목으로 성큼 들어가 오래 전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기도 하고

소박하고 정감어린 부두나 해변에서 싱싱한 회나 과메기, 전복죽을 맛보는 것도 더할 나위없이 좋은 '구룡포의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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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이었던가? 포항 오거리에서 두호동 쪽으로 가려고 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택시 기사 옆에 앉아 앞만 물끄러미 보며 가고 있는데 택시 기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왔다.
"저.....손님,혹시..... 과메기를 드셔 보셨나요?"
느닷없이 웬 과메기.....?
난 좀 황당했지만 "아니요? 아직 못 먹어봤는데요?" 라고 대답했다.
보통 포항에서 일하는 택시 기사라면 "아지매~  과메기 함 무거 봤능교?" 이렇게 투박스럽게 말하는게 보통인데
30대 초중반 정도 되어보이는 이 기사는 아주 정중한 말투로 예
의를 깎듯이 지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직 과메기를 잡수어 보지 못하셨다면 이번 기회에 꼭 한번 들어 보시죠.....아주 새로운 경험이 될겁니다.."

기억에 남았던 그 택시 기사의 정중한 권유 때문이었을까...?
그전에는 과메기가 익힌 것이 아니니 맛이 비릿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 때문에 좀체로 손을 대지 못했는데
그 이후 얼마되지 않아 모임 장소의 테이블에 나온 과메기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집어 들고 쌈을 싸서 먹어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약간 적응하기 힘든 맛이었으나 곧 맛을 느끼게 되고....점점 빠져들게 되어서
요즘은 테이블에 과메기가 나오면 "와...과메기다....!" 하며 제일 먼저 손을 대게 된다.

포항 구룡포의 특산물인 과메기.
과메기란 갓 잡은 신선한 청어나 꽁치를 섭씨 영하 10도의 냉동상태로 두었다가
12월부터 바깥에 내다 걸어 밤에는 냉동을, 낮에는 해동을 거듭하여 수분 함유량이 40% 정도 되도록 말린 것을 말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과메기의 어원은 예전에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렸다는 '관목(貫目)'에서 유래하는데
'목'을 구룡포 방언으로 '메기'라고 발음하여 관목이 '관메기'로 변하고 다시 ㄴ이 탈락하면서 '과메기'로 굳어진 것이다.
예전에는 주로 청어로 과메기를 만들었는데 근래에는 많이 잡히지 않고 비싼 데다 건조기간이 오래 걸려 요즘은 주로 꽁치로 만드는데 
청어가 풍년인 해에는 청어 과메기가 대량으로 나오기도 한다. 

코끝을 알싸하게 하는 한겨울 찬바람이 불면 전국 과메기 유통량의 50% 가량이 포항 죽도시장에서 출하되는데
주말이면 대구, 부산, 대전 등 전국에서 과메기를 사려는 인파로 죽도 시장 좌판을 가득 메워 시장은 그야말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된다.
포항 죽도 시장에 판매되는 과메기는 영덕, 울진에서도 나오긴 하나 대부분은 구룡포에서 말린 것인데
구룡포가 과메기 최대 생산지로 히트를 치는데에는 영일만 호미곶의 지정학적 위치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태백산맥을 넘어온 북서풍과 염분이 제대로 뒤섞이는 영일만의 해풍은 과메기 맛을 배게 하는 데는 최적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꽁치나 청어의 배를 째고 내장을 들어 낸 편과메기(배지기)의 경우 2~3일, 통과메기(엮걸이)는 20일이면 먹기 좋게 꾸덕꾸덕해진다.
한겨울에 영하 5, 6~영상 6, 7℃의 기온과 40%의 습도를 유지하는 데다
살짝 소금기가 밴 영일만 갯바람까지 가세하면 겨울철 최고의 별미 ‘구룡포 과메기’로 다시 태어난다.

과메기는 손가락으로 눌러 보아 탄력이 약간 있는 정도가 건조가 잘된 것이며 
꽁치를 말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각처럼 많이 비리지 않다.

과메기를 잘 말리지 못하면 비린맛이 생긴다고 하는데 산지에서부터 다양한 가격차이를 보이는 과메기는
 차가운 바닷바람으로 자연 건조시킨 것이 상품이다.

잘 말린 과메기는 꾸덕꾸덕하고 쫀득쫀득하여 씹을수록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과메기는 원재료인 청어나 꽁치보다 영양가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재료보다 과메기로 만들었을 경우 어린이 성장과 피부 노화 방지에 좋은 DHA와 오메가3 지방산의 양이 증가하고
또한 과메기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핵산이 점점 많이 생성되어 체력 저하나 정력 저하를 막아주는데 도움이 된다.
과메기는 피부 미용에는 특효라고 알려져 있는데 과메기 기름으로 미용 비누도 생산하고 있을만큼 피부 재생에 도움을 준다.
저녁에 과메기를 먹고 잔 날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본 여성분들은 과메기가 얼마나 피부에 좋은지를 체험해 보셨을 듯....

과메기를 먹는 방법은 여러가지인데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맛을 창조해낼 수 있다.
싱싱한 물미역과 초고추장맛이 과메기 맛을 내는데 가장 중요한데 초고추장은 너무 짜거나 달지 않아야 한다.



김이나 배추잎에 물미역을 놓고 초고추장을 찍은 과메기와 마늘·파를 함께 넣어 먹으면 또 다른 맛이 난다.
미역은 과메기의 기름기가 잘 배이도록 해 과다한 영양 섭취를 억제하고, 마늘은 과메기의 비린내를 제거해 주는데
잘 건조된 과메기 한 점을 양념장에 푹 찍어 김과 미역, 마늘, 고추, 미나리 등과 함께 싸서 입에 넣으면 
입 안에서 목구멍까지 완전 난리가 난다.


과메기의 제철은 찬바람이 부는 11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다.
그 중에서도 해풍이 매서운 12월과 1월 사이 과메기가 맛이 절정이라고 하니 바로 지금이 절정인 맛을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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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째 계속되고 있는 추위로 인해 사람들의 몸은 물론 주머니도 꽁꽁 얼어붙은 요즈음...
빠듯한 살림살이에 외식은 고사하고 자장면 한 그릇 시켜 먹기도 쉽지가 않다.
밀가루값의 상승으로 과자값도 오르고 밀가루를 재료로 한 음식값도 따라 오르다 보니
서민의 음식으로 사랑을 받던 자장면도 이제 4,000원 이하인 곳은 찾기가 힘든데... 
며칠전 옆 동네를 지나다가 자장면 2,000원이라고 붙은 플래카드를 발견했다.  

  

"아니..자장면이 2,000원이라고...? 그래 가지고 무슨 이윤이 남을까..." 호기심이 발동해서 차를 세우고 들어가 보았다.
문 앞에는 "물가 안정. 우리가 실천합시다!"라고 구호마져 쓰여 있는 이 집에 들어서니..  


자그마한 실내의 벽에 여기저기 붙은 상장과 메달이 먼저 눈에 뜨인다.
무슨 메달인가 보았더니 이 집 주인 아저씨의 마라톤 참가 메달과 완주 기록증이다.
마라톤에 심취하신 쥔장이신 듯...벽에는 온통 결승점에 골인하는 쥔장의 자랑스런 사진이 여기저기 붙었다.  


게다가 내실 문에 느닷없이 붙어 있는 저 누런 종이는 또 무얼까.... 


하핫.....누렇게 변색되어 스카치 테이프에 의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그 종이도
2001년도에 대마도에서 있었던 마라톤 대회 완주증이었다. 


기록증 위의 상장들 또한 자녀들이 학교에서 받은 각종 상장들이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실소를 머금을 듯한 기념품이지만 이 집에서는 최고의 보물임에 분명하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동안에 그릇에 가득하게 담긴 자장면이 나왔다.
양은 여느 자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고 언뜻 보기엔 크게 맛있어 보이지는 않다. 

 나무 젓가락을 쩍 하니 갈라서 쥐고는 사정없이 비벼 본다. 

 오른손으로 비비고~ ♬ 
 

 왼손으로 비비고~♬   양 손으로 비벼도 돼요~!
들었다 놓았다.....열심히 비벼 대니 처음 보다 훨씬 맛갈스러워 보인다. 

  한 젓가락 크게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보니...음....2,000원짜리 자장치곤 꽤 괜찮은 맛인데...?
허겁지겁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배가 벌떡 일어난다. 


 앙증맞은 칠판에 적힌 메뉴판을 보니 자장면 2,000원, 짬뽕 2,500원...곱배기는 1,000원 추가이니 겨우 3,000원이다.

 이렇게 싸게 받아서 남는 것이라도 있을까......
모두 다 어려운 시기에 이렇게 과감하게 가격을 인하해서라도 살아남으려는 노력들이 안쓰럽다.
담에 한번 더 와서 먹어주어야지....생각하며 자장면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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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요석궁은 신라시대 요석공주가 살던 궁터로써
조선시대 이후로는 최부자가 터를 잡아 오늘까지 이어온 곳이다.




동방명주(東方明珠)라고 불리웠던 요석공주는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둘째딸로써 원효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은 분이고

경주 최부자는 12대 300년 동안을 만석군으로써 이 일대를 지켜왔으니 
요석궁터는 천오백년 이상 동안 경주의 중심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석 지기 최부자의 일년 소작 수입은 삼천석이었다고 하는데 그 중 일천석은  집 안에서 쓰고

일천석은 과객을 접대하는데에, 나머지 일천석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에 썼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나라를 잃고 울분을 달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으며
최부자 형제들 또한 독립 운동의 주체가 되어
독립 자금을 대었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표본이 되었다.





최부잣집을 찾는 과객은 항상 백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과객들이 떠날 때에는 과메기와 하루 양식, 노잣돈을 꼭 챙겨보냈다고 하며

독립운동 당시 최부잣집을 은신처로 삼았던 인사들에 의해 최부잣집의 '가정식'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 전통은 지금의 요석궁 식당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현재 가정식을 선보이는 요석궁 식당은 마지막 최부자 최준의 동생 최윤의 집인데

건물은 이백년이 넘은 고택으로써 고가구나 서화는 모두 실제로 최부잣집에서 사용되던 것이다.
당시 요석궁의 사랑채에 은둔해 있던 신돌석 장군이 사랑채의 대들보를 혼자 들어올린 일화는 유명한 일화이며
영왕(英王) 이은 공과 의왕(義王) 이강 공도 최부잣집에서 머물며 음식과 바둑을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

최부잣집 관련 상세 포스트 : 경주 최부잣집의 화사한 봄날





지금도 요석궁은 전직 대통령, 각계 유명 인사, 각국 대사들이 즐겨찾는 경주의 대표적인 전통 음식점으로 유명하며

경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라서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가 힘들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한껏 우러나는 요석궁의 '최부잣집 가정식'을 체험해 본다.





메뉴는 3만, 5만, 7만, 10만원 짜리 상차림이 있는데(부가세 별도) 제일 싼 3만원짜리 '계림정식'을 주문했다.

무늬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는 매우 소박한 식기는 직접 운영하고 있는 가마에서 구운 전통 도예가의 작품이다.





먼저 나온 전체는 새우 샐러드.





고기가 들어 있지 않은 담백한 잡채.





소량의 광어회.....





삼계말이 두 점...





해파리 냉채.





수삼 떡갈비...





장어 구이...





파전...등이 전채로 나온다.





전체가 끝나면 식사가 나오는데 반찬에는 어느 상이든 빠지지 않는 김치...





일반 백김치와 비슷해 보이지만 최부잣집에서만 담아먹었던 전통 음식인 사인지.
일반 백김치에 비해 더욱 감칠맛이 나고 풍미가 있어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음식이라 한다.





열무 물김치......





삼색 나물....





특히 최부잣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기본 반찬인 집장이 눈에 뜨인다.

 다시마와 부추 등 여러가지 해조류와 채소등과 고기를 메주가루등과 함께 솥에서 16시간이상 달인 최부잣집 전통 음식이다.





그 외의 기본 반찬들을 살펴 보면.....
1. 돔베기(상어 고기 토막이란 뜻)  2. 북어 보푸라기  3. 소라 밥식혜  4. 멸장  5. 우엉 무침 6. 오이 소박이
특히 멸장은 일반 멸치볶음과는 다른 불을 지피고 8시간이상 정성껏 달여낸 반찬이다.





그리고 생선구이....





맛이 강하지 않은 된장 찌개...





그리고 밥과 쇠고기무국 등이 나오는데 깜빡하고 밥과 후식은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열심히 먹느라고..^^)

후식으로 오미자차, 복분자차...등 직접 만든 차를 제공하는데 요석궁에서는 커피가 제공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요석궁 식당에서 제공되는 대부분의 야채나 채소는 직접 키운 것인데 심지어 쌀,콩도 직접 재배한 것이며
김치, 밑반찬, 된장, 간장, 각종 소스 등은 비용이 많이 들어도 요석궁에서 직접 제조한다고 한다.
재배하지 못하고 구입해야 하는 것은 산지에서 직접 선별하여 유기농이나 최상품을 구입한다고 하고
천일염은 2년 동안 간수를 뺀 후 사용하는 등 모든 식재료에서부터 '최부잣집 가정식'을 이어간다는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이미지 출처: 요석궁 홈피

지금껏 '최부잣집 가정식'을 이어온 요석궁의 제일 싼 밥상을 소개해 드렸다.
 일인당 10만원이나 하는 '요석 정식'을 먹어봐야 제대로 된 요석궁의 음식을 평할 수 있겠지만
포스팅을 위해 지출하기에는 너무 심한 출혈인 듯 해서 요석궁 홈피에서 살짝 퍼온 그림으로 대신한다.
신선로, 자연산 송이, 전복 요리...보기만 해도 침넘어가는 요석 정식을 체험할 기회가 오면 그때 다시 포스팅하기로 하고......




경주를 대표하는 전통 음식 '최부잣집 가정식'  3만원 짜리 밥상을 체험해본 필자의 소감을 말하자면.....

다른 한정식집 3만원짜리 화려한 식사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소박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300년 동안 한 집안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식을 그대로 선보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되며
경주를 방문해서 최부잣집도 둘러보고 요석궁에서 최부자의 밥상을 받아 본다면 더할 나위없이 멋진 여행이 될 것 같다.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300년을 이어온 경주 최부자.
가문의 며느리들이 시집 오면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게 하면서도 소작인들의 형편을 돌보고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한 최부자가 
그 당시 받았을 밥상보다는 이곳에서 내가 받은 밥상이 더욱 화려한 밥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어두워진 요석궁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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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날씨가 드르륵 하니 추워졌다.

강원 산간 지방에는 폭설이 내렸다는데 따스한 남쪽 이곳에서도 써늘한 추위가 옷 속으로 스며든다.
아직 본격적인 추위를 대비하지 않아서일까?
갑자기 닥친 추위로  몸과 마음이 움츠려드는데다 해가 빨리 떨어지니 다섯시가 되어도 너무 으스스하다.

이럴 땐 얼큰하고 뜨끈한 찌개가 제격.
보문 호수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 '석장 손두부'로 향한다.

경주에 가끔 가다 오시는 분들은 경주..특히 보문에 와서는 입에 맞는 식당이 잘 없다고들 하신다.
물론 지난번에 포스팅한바 있는 '주걱들고 기다리는 맷돌순두부' 식당도 있긴 하지만
늘상 문앞에서 수십분은 기다려야 차례가 오기 때문에 밥 한번 먹으려고 문앞에서 기다리는  체질이 아니신 분도 있으시리라....


석장 손두부 식당에도 항상 손님이 많긴 하지만 문 앞에 서서 기다려야 하는 정도는 아니고 금새 식사를 할 수 있을 뿐더러
할머니가 해주시는 것 같은 '옛날식 찌게 백반'에 대한 '향수'가 있는 분에게는 권하고 싶은 곳이다.'

이 식당의 메뉴는 여러가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어와 앉으면서  "찌개 둘이요~!" 하고 주문을 한다.
그러면 서빙하시는 아주머니는 주방 쪽으로 보고 "두개요~!" 라고 외친다.
모두가 이 집의 주메뉴인 '돼지 찌개'를 시키는 것이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곧 나오는 간단한 상차림.
소박하다 못해 삭은 듯한 양은 냄비에 보글거리는 찌개. 그리고 간단한 반찬 네가지이다.



찌개가 끓는 동안 반찬을 맛본다.
산나물 무침, 젓갈 무침, 멸치 볶음, 그리고 김치....찬은 간단하지만 그 어느 하나 맛깔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끓어 오르는 냄비에 숟가락을 넣어 큰 두부 하나를 건져내어 본다.
이 식당의 자랑거리인 손두부는 식당 옆 가건물에서 직접 제조한 우리 콩 손두부인데 정말 고소하고 은근한 맛이 일품이다.



본격적으로 찌개가 끓기 시작하니 완전 와글...와글...밖으로 국물이 뛰쳐 나오고 난리도 아니다.



찌개를 뒤적여 보니 냄비 안의 재료는 심히 간단한데 손두부, 돼지고기, 김치 등의 주재료에 당면,파..등이 가미되었다.
집에 가도 생각나는 이 돼지 찌게의 매력은 고소한 우리 콩 손두부와 함께 큼직하게 썰어 넣어 씹을수록 맛이 나는 돼지고기가 듬뿍 들었다는 것이다.
돼지 냄새도 전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쇠고기보다 더 맛난 돼지고기를 찌개에서 건져먹는 맛이 쏠쏠하다.



이제 앞접시에 풍성하게 담아 맛나게 먹는 일만 남았는데 
금방 지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공기밥맛 또한 일품이어서 찌개와 같이 먹으면 어느새 한 그릇 뚝딱이다.


아...그리고 경주에 오셔서 석장 손두부 찌개를 맛보시는 분에게 빠뜨리지 않고 전해드릴 팁이 한가지 있는데....
바로 옆 가건물 안에 있는 플라스틱 다라에는 고소한 국산 콩비지가 많이 비치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비닐에 잔득 퍼담아 오시면 된다.
필자는....비지 찌게 다섯번 해먹을 분량의 비지를 비닐 봉지에 담아 왔는데
어쩐지 본전을 건진 듯한 느낌이 들어서 집으로 오는 내내 뱃속도 마음도 따뜻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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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석에 '송편'을 먹는다면 중국인도 중추절음식으로 '월병(月餠)'을 즐긴다.
중국의 중추절에는 가족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월병을 나눠 먹으며 무병 장수를 비는데
옛 문헌에 '중추절 달을 깨물어 먹듯 작은 떡을 먹는다(小餠如嚼月)'는 기록이 남아 있어서 그 역사가 짐작된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원나라 전복을 위해 최후의 일전을 준비할 때다.
그는 8월 15일을 결전의 날로 잡았다.
문제는 원나라 감시망을 피해 각 지역에 어떻게 군령을 전하느냐였다.
고심 끝에 '8월 15일 밤 봉기(八月十五日夜起義)'라고 적힌 쪽지를 '월병(月餠)'속에 넣어 선물이라며 돌렸다.
군령은 신속하게 전달됐고 봉기는 성공했다.
이것이 중국인이 중추절 때 월병을 선물로 돌리게 된 유래다.



송편이 반달 모양인 데 비해 월병은 보름달 형태이다.
월병의 둥근 모양은 다 비슷하지만 지역에 따라서, 맛과 재료에 따라 수백여 종으로 나뉘고 그 가격 또한 천차만별이다.
속을 넣어서 만든다는 점은 송편이나 월병이나 비슷한 점인데
월병의 속으로는 팥, 복숭아, 살구, 땅콩, 깨, 연밥, 야자 열매, 오리알, 계란 노른자 등 다양하기 이를데 없으며
최근에는 과일, 야채, 아이스크림, 초콜릿, 해산물 등을 넣은 신개념 월병들까지 생산되고 있다.



중추절에 월병을 주고 받는 문화는 중국인들에게는 이제 관습처럼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렇게 보편화된 풍습이 아니었다.
중추절의 월병 문화는 상업주의에 의해 부활됐다고 볼 수 있으며 현재의 월병 문화는 중국의 부정 부패의 단면을 비춰 주기도 한다.
황금으로 만든 월병이 등장하는가 하면 월병 세트에 보석을 끼워 돌리기도 하는 등.... 모두 다 청탁이 그 목적인데......
과거 이민족 타도라는 애국적 대의를 위해 봉사했던 월병 선물은 이젠 중국 사회를 갉아먹는 뇌물로 전락해 버렸다.
개혁,개방 이후 '돈이 최고의 가치'인 중국인들의 씁쓸한 자화상이 월병에서 배어난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갔을 때 중국제과점에서 월병을 팔기에 몇 개 사서 먹어보았다.
여러 가지 채소가 다져진 채로 들어있는 월병이었는데 처음 접해 보는 월병은 의외로 맛이 별로였다.
너무 물기가 없고 파스락하여 한 개를 제대로 씹어 넘기기가 힘들었고 다른 사람들도 먹기가 힘들다고 했다.
역시나 우리네 입맛에는 우리 송편이 최고의 추석 음식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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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만난  친구 부부와 함께 경산 와촌에 있는 모 카페에 들렸다.

팔공산 갓바위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대구 근교의 연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주변의 산세와 잘 어울리는 건물에 소박한 마당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를 향해 뛰어나오던 강아지.....갑자기 옆 풀밭으로 가더니.....편안한 자세로 실례를 한다.......^^
"아줌마!! 카메라 못 치워요? 개에게도 견격(犬格)이 있단 말이에욧!! 초상권 침해로 고소할거에욧!"
그래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찍었을 뿐이고....^^



손님 맞이가 끝난 다른 진돗개는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더니 열심히 간식을 먹는다.

 열차 침목으로 된 테라스에는 앙징맞은 화분들이 손님을 반기고.....

 카페 안은 오래 된 오르간 등 예전의 향수을 불러 일으키는 물건으로 빼곡이 채워져 있었다.

 

잘 손질되어 반들반들한 가구와  두쪽 구병풍 앞에 엉뚱하게 놓여진 단지 안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처음 보는 물건이 있어서 물어보니 한약 짜는 틀이라고 한다.  

 

60년대 면사무소 옆에나 붙어있었음직한 표어들이 벽에 붙어 있다.
이런 표어들을 버리지 않고 보관한 사람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까.......라는 책자.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이 보이는걸 보니 엄청 오래 된 책...

 빛바랜그림과 글씨들이 쓰다가 꽂아둔 것처럼 놓여 있고.....

벽에 붙여둔 국민학교 졸업 사진은 보관을 잘 못 했는지 아코디언 처럼 구겨진 것을 펴서 붙여 놓았다.
4288년(1955년) 진량 국민학교 졸업 사진에서 여자 아이들은 한복을...남자 아이들은 까만 교복을 입었다.
요즘의 두껍고 화려한 졸업 앨범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지만 초등학교가 학업의 전부였던 아이들에겐 그 무엇보다 귀중한 졸업 사진.

 

 영화 전문 잡지'국제 영화' . 지금은 할머니가 된 여배우들이 수영복바람으로 섹시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잡지 속의 낯 익은 인물이 박준규인가...했더니 그 아버지 박노식이다. 그 옆의 아가씨는 조미령... 

 

비엔나 소년합창단이 출연했다는 '들장미'의 영화 포스터.

 

 '내가 낳은 검둥이'......영화 이름이 너무나 특이하다.
'국제 혼혈아들의 고민과 가시덤불의 생활 백서'라고 카피가 쓰여진 걸 보니 영화의 내용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이민자,최지희,최무룡,김동원,윤일봉.....이런 사람들의 배우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제 얼마나 될까.....

 

책이 귀했던 시절, 손으로 써서 책으로 묶은 천자문이다. 자기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직접 손으로 쓴 것일까...... 

차 한잔 씩을 시켰더니
양갱,과일,무화과,볶은 콩......등 여러가지 특별 다식이 따라나와서 푸짐하기 이를데 없다.
주인 아씨의 푸근한 손님 맞이는 오래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는데도 부담이 없다.



타임 머신을 탄 듯한 시간여행에서 돌아와 카페 '고운 님 오시는 길에'를 나서니 
엄마 진돗개가 졸린 듯한 시선으로 우리를 배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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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주부들의 이마의 주름살이 날로 늘어가는 요즈음.

가족끼리 외식 한번 하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다.

물가가 천정 부지로 올라가니 한끼 외식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정식 일인분이 싸도 육,칠천원.

칼국수 한 그릇도 사천원 이상은 값을 치뤄야 한끼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인데...



거리를 지나다가 '솔잎손칼국수 2000원'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식당을 발견했다.


솔잎손칼국수가 이천원이라고....??


재래 시장의 좌판에서야 이천원짜리 음식을 간혹 접할 수 있겠지만


제대로 된 식당에서 이천원짜리 한끼 음식을 대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거기다 건강과 맛까지 겸비한다면 이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니겠는가....




경주시 구황동, 분황사에서 시내 쪽으로 100m정도 지나있는 사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팔팔 손칼국수.

첨성대,안압지,경주 박물관에서도 차로 오분이 안 걸리는 거리이므로 경주에 관광 오시는 분들께는 꼭 권하고 싶은 식당이다.




길 건너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문으로 들어서면 오래 된 한옥 기와집을 개조한 식당이 나타난다.

실내도 좁고 앉을 수 있는 탁자도 많지 않은 이 식당의 요리사들은 모두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들이시다.




메뉴는 솔잎 손칼국수 외에 우리 콩 손두부, 보쌈 등이 있는데 우리는 솔잎 손칼국수 두 그릇을 시켰다.

칼국수 한 그릇은 이천원.

혹 식사량이 많으신 남자분들은 곱배기를 시키면 되는데 여자들에겐 양이 너무 많다.

그럼 곱배기는 ? 겨우 삼천원이다.

잠시 기다리니 금방 뜨끈뜨끈한 손칼국수가 상 위로 올라왔다.




우리 솔잎 가루를 넣어 반죽하여 직접 손으로 밀고 썰어서 만든 솔잎 손칼국수.

파아란 국수 면발이 먹음직스럽다.

보쌈에 직접 만든 우리 콩 손두부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양념장을 얹어서 휘저어 입으로 들어가기 직전...

빨리 먹고파 죽겠는데 사진을 찍으려니 입에 고인 침이 흐르려고 한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후루룩...소리만.....

들깨를 갈아 넣은 국물도 너무 맛있다.


다른 곳에서는 칼국수를 먹고 국물을 남겼지만 이 구수한 국물을 절대 남길 수 없다!


국물도 남기지 않고 싹 비우니 이천원 짜리 칼국수 한 그릇에 배가 부르다.



둘이 배 부르게 한끼를 해결하고 식사대를 치르니 사천원.

주인 아저씩께 이 가격을 받고도 장사가 되냐고 하니까 예전에는 더 쌌는데 너무 안 남아서 올린 가격이란다.

요즘 밀가루 가격이 너무 오른지라 주변에서는 가격을 올리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찾아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가격을 못 올리고 있다는 말씀을 하신다.



같이 식사를 하러 간 사람은 입맛이 까다로워 웬만한 음식은 먹고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데

저녁으로 솔잎 손칼국수 먹고 집에 가서는 야밤에 생각이 나더라며 다음에 또 다시 먹으러 가잔다.

사진을 보며 글을 쓰고 있으니 또 칼국수 생각이 난다.

아...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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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다녀오고 복직해서 직장 생활 잘 하고 있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곧 결혼 한다고...그동안 잘 대해 주신 것 감사하다고 그러며 한 턱 쏜단다.
좋아하는 후배의 결혼 소식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날을 잡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첨성대에서 최부잣집 가는 길 오른편에 자리잡은 양지 식당. 

 식당에 도착해서 식당의 외관을 본 나는 약간 어이가 없었다.
이런 넘이 있나....
나는 그 친구가 군대 잘 다녀오라고 거창한 곳에서 밥도 사주었는데
이런 허름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하늘같은(!)  선배를 부르다니....
여자들이란 밥맛보다 분위기가 최고인데....
남자들이란 역시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식당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내부는 그나마 조금 나았는데 식당의 방문 위에는 불국사, 반월성....등 유적지의 이름이 그대로 붙어 있었고
경주 유적지의 사진 작품들과 토속적인 실내 장식품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메뉴는 손칼국수와 콩나물밥인데 후배 말로는 콩나물밥이 아주 맛나단다. 

기다리면서 먼저 나온 시원한 물김치를 숟가락으로 한 숟갈 떠먹어보니 상큼한 맛이 온 몸에 전해진다. 

 

이윽고 나온 콩나물밥...색감이 너무 먹음직스럽다.
당근,미나리,팽이버섯,김채....색색의 잘 썰어진 야채가 콩나물밥 위에 곁들여져 있었다.
특이한 것은 쌈장이이었는데 보통의 비빔밥 쌈장처럼 고추장이 아니고
붉은 고추를 잘게 다져서 갖은 양념으로 되직하게 버무린 양념장이었다. 

식욕을 돋구는 고명들의 아름다운 색감에 반한 우리는 양념장을 넣고 마구 마구 비벼대었다. 

 잘 비벼진 콩나물밥.
콩나물 위에 곁들인 야채가 다 생채이어서 신선할 뿐 아니라
고추장이 아닌 특유의 고추 다데기로 비빈 것이라서 맛이 정말 상큼하다.

 배 부르게 먹고 즐겁게 얘기도 나눈 후 기분좋게 식당 문을 나선 나.
허름한 식당으로 날 불러낸 후배 녀석을 너그러운 맘으로 용서해 주기로 하고
단골집 목록에 이 식당을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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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음식이라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고 물으면
우리 나라 사람은 대부분 스스럼없이 '자장면'이라고 대답하게 된다.

 요즘은 전화 한 통만 하면 누구나 쉽게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자장면이지만
예전에는 자장면 먹기가 그리 흔치 않던 시절이 있어서
성적 올리면 자장면 사 준다는 말씀에 현혹되어 밤새워 공부하던 기억,
졸업식 날이면 가득 차 있던 자장면 집 풍경의 기억은
30대 이후는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나 역시 자장면이라고 하면 우리 집 바로 건너 건너에 위치했던 '충후반점'이 떠오른다.
대만 출신이었던 중국인 부부의 음식점 안에는 항상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했고
교사 출신이었다는 소문의 '충후 반점' 아주머니의 아주 자그마한 체구와
그가 입었던 비단옷과 수가 예쁘게 놓인 꽃신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본토에 가면 오히려 자장면을 맛보기가 힘든다고 한다.
그것은 자장면이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청나라 사람이 들어오면서부터
우리 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한국식 퓨전 중국요리이기 때문이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우리 나라는 청나라에 근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 때 약 30여명의 상인들이 함께 들어오면서 공식적으로 청인의 유입이 시작되었는데
1883년에 인천항이 개항되고 지금의 인천 북성동 일대 오천여평에
청인들의 거주지역이 생기니  이 곳을 '청관거리(현 차이나 타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05년 청관 거리에는 '산동회관'이 들어서서 중국 요리를 맛보이게 되는데
1912년에는 그 이름을 '공화춘(共和春)'이라고 개칭하게 된다.
이 때 중국의 대중 음식인 청요리를 처음으로 접했던 우리 서민들은
그 신기한 맛과 싼 가격에 놀라게 되었으며 이어 청요리가 점점 인기를 끌게 되자
청인들은 부두 근로자들을 상대로 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먹는 자장면이다.

처음 자장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던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 옛터를 찾아 보았다.
최고급 청요리로 명망을 높였던 공화춘은 새로운 외식 산업의 흐름에 밀려 1984년에는 폐업을 하게 되고
지금은 폐허가 된 채 차이나 타운의 한복판에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강산이 열 번이나 바뀐 100년 동안 공화춘을 대표해왔던 간판은 일부가 삭아서 떨어져 나가 글씨조차도 알아먹기가 힘이 든다.
앞으로 이 곳에 자장면 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는데 옛모습을 유지하는 가운데 낡은 부분만 잘 보수했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업 후 20년이 지난 2004년에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한 공화춘이 문을 열게 되었다. 

정통 중국요리 '공화춘'이라고 쓰여진 간판을 보니
원조 자장면을 맛보지 않고는 돌아갈 수가 없어 공화춘의 문을 열고 들어서 본다.

 안의 모습은 일반적인 중국요리점과 크게 다를바 없다. 

앉자 마자 종업원이 내어오는 찻잔에는 '공화춘'이란 글씨가 얌전히 쓰여져 있었다. 

자장면과 공화춘....차이나 타운의 역사가 쓰여진 종이 매트가 깔려져 있고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메뉴판도 같이 나왔다. 
자장면 본래의 맛을 느껴보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자장면과 삼선 짬뽕을 시켰다. 

 조금 기다리니 삼선 짬뽕이 나왔다..
국물이 얼~큰~한것이 한국 사람의 입맛에 딱 맞다.

드디어 자장면도 나왔다.
원조 자장면을 원조 청요리점에서 대하니 감개무량이다.
자장면의 표면적인 모습은 다른 중국요리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장면은 현재의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읽으면 '작장면(炸醬麵)'이라고 읽혀진다.
중국식 발음으로는 '자장미엔' 또는 '짜장미엔'이라고 읽혀지며
'작'의 중국어 발음이 한국어의 '자'를 발음하듯 하며 듣는이에 따라 '짜'로 들리기도 하니
우리가 쓰는 '자장면'은 한국식 발음과 중국식 발음이 혼합되어 불리어 지는 것이다.

이 때.....
작(炸)은 '물에 튀기다'라는 뜻이며
장(醬)은 된장 등의 발효식품 등을 뜻하고
면(麵)은 밀가루, 국수라는 뜻이다.  



자...이제 자장면이 나왔으니
자장면의 어원 풀이를 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얼른 사정없이 비벼야 한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어떻게 비벼대던지... 비비는 테크닉은 각자가 알아서 구사할 일이다. 

신나게 회오리로 저어서 비벼 봐도 끝장나게 잼있다.

 

원조 자장면의 맛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윤기흐르는 고탄력 면발을 보시기만 해도 대충 짐작이 가실 것이다.
왜 원조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이 기막힌 맛은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에 가야만 먹을 수 있다.

이 포스트를 한 밤중에 열어 보시는 분들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원조 자장면으로 인해 여러분의 건실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제동이 걸리는 불상사가
오늘 저녁 생기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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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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