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뜰 산책........................'에 해당되는 글 269건

  1. 2017.11.01 안동 여행 / 강아지 똥, 몽실언니 작가 /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 살던 집' 12
  2. 2017.10.31 이색 휴게소 탐방 / 6070 추억 돋는 '삼국유사군위휴게소'(301번 상주 영천 고속국도) 8
  3. 2017.10.30 통영 여행 / 일몰이 아름다운 미륵도 달아공원 3
  4. 2017.09.29 군산 여행 / 군산 추억의 거리 / 경암동 철길마을 8
  5. 2017.09.15 청도 여행 / 청도 가볼만한 곳 / 조용하게 돌아보기 좋은 청도 향교 5
  6. 2017.09.12 청도 여행 / 청도 가볼만한 곳 / 청도 객사 도주관과 대원군의 척화비 8
  7. 2017.09.11 청도 여행 / 로마시대 유적 같은 청도 석빙고(보물 제323호) 7
  8. 2017.09.09 청도 여행 / 청도 가볼만한 곳 / 청도 읍성 / 하늘 예쁜 날 청도 읍성 풍경 8
  9. 2017.09.05 안동 여행 / 담장 너머로 훔쳐본 안동 길안면 묵계서원 9
  10. 2017.08.30 안동 여행 / 퇴계 오솔길(예던길, 녀던길)에서 만나는 농암 이현보의 '농암종택' 18
  11. 2017.08.25 안동 여행 / 숨어 있는 정자 / 사색하기 좋은 곳 안동 만휴정 원림 6
  12. 2017.08.18 담양 여행 / 담양 정자 10경 / 배롱나무 아름다운 명옥헌 원림 6
  13. 2017.08.16 담양 여행 / 담양 정자 10경 / 식영정 일원의 정자 부용당, 서하당, 장서각 4
  14. 2017.08.14 담양 여행 / 담양 정자 10경 / 송강 정철 유적 / 성산별곡 시비가 있는 식영정 6
  15. 2017.08.12 담양 여행 / 담양 정자 10경 / 한국3대 정원 / 그림같은 정원 담양 소쇄원 7
  16. 2017.08.11 군산 여행 / 장군의 아들, 타짜 촬영지 군산 히로쓰 가옥 9
  17. 2017.08.09 통영 여행 / 알쓸신잡에도 소개된 미륵산 케이블카, 미륵산 전망대에서 본 한려수도 15
  18. 2017.08.08 안동 여행 / 한국의 아름다운 길 35번 국도의 그림같은 정자 '고산정' 4
  19. 2017.08.02 군산 여행 / 군산으로 시간 여행 떠나요. / 군산 근대항 스탬프 투어 9
  20. 2017.08.01 군산 여행 / 신선이 놀던 섬 고군산군도 '선유도' 유람선 타고 돌아보기 7
  21. 2017.07.31 군산 여행 / 익산 장수 고속도로(익산 방향)에서 본 진안 마이산 6
  22. 2017.06.23 울산 여행 / 언양 여행 /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울주 언양 읍성 4
  23. 2017.06.21 영주 여행 / 부석사 무량수전 /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부석사 풍경 7
  24. 2017.06.16 울산 여행 / 언양 '자수정 동굴나라' / 여름 휴가 피서지 여기 어때요? 11
  25. 2017.06.14 울산 여행 / 물놀이, 캠핑하기 좋은 곳 / 언양 작괘천, 작천정 계곡 9
  26. 2017.05.23 밀양 여행 / 밀양 남명리 얼음골(천연기념물 제224호)이 전해 주는 돌 이야기, 가마불폭포 11
  27. 2017.05.19 부산 여행 / 흰여울 문화마을 /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 '흰여울길' 걸어봐요. 15
  28. 2017.05.09 부산 여행 / 오륙도 스카이워크 / 바다 위를 걸어 봐요 26
  29. 2017.05.04 포항 여행 / 흥해 향교산 / 의창읍 이팝나무 군락지 / 흰 쌀밥이 주렁주렁? 13
  30. 2017.05.02 청송 여행 / 청송 주왕산 / 수달래꽃 핀 주왕산 느긋하게 걸어보기 7


너는 뭐니? 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야.

얼마만큼 예쁘니? 하늘의 별만큼 고우니?

그래, 방실방실 빛나.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내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는지 민들레싹을 힘껏 껴안아 버렸어요.

(권정생 / 강아지똥 中에서)


"하나님은 쓸데 없는 물건을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다."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 가난하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한 아동문학가 권정생.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과 그가 기거하며 글을 썼던 교회가 경북 안동시 일직면에 있다기에 길을 나섰다.





남안동 TG를 벗어나 조탑 교차로에서 왼쪽으로 접어드니 바로 시골길이다.

공사중인 5층전탑 앞에서 안내판을 찾았다. 언제 세운건지 쩍쩍 갈라져서 알아보기조차 힘든 안내판이다.





개발과는 거리가 먼 듯 동넷길 옆 돌담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하다.

돌담 아래 피어 있는 작은 민들레들이 눈에 뜨인다. 강아지똥이 껴안아준 민들레꽃이다.





동네 구경은 잠시 미루고 안내판 바로 맞은 편으로 난 동네길로 접어들었다. 조탑안길이다.





동네 안길도 담장들이 무너져 가고 있다. 하지만 개발이 더디다고 탓하기 전에 왠지 친근감이 드는 곳이다.





마주보이는 길을 따라 계속 동네 골목길을 올라갔다.





빌뱅이 언덕 아래 권정생 선생 살던 집이란 팻말이 보였다.





바로 담장도 하나 없는 작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이다. 

앞에 서 있던 안내판이 아니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집 앞으로 길이 나 있는데 생가를 휘감으며 두갈레길이 나 있다.





집 앞 배추밭 너머로 생전에 종지기로 일하던 교회의 종탑이 보인다.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문간방에서 집필했다던 바로 그 일직교회이다.


  



길 바로 옆에 앉은 생가는 한눈에 보기에도 정말 작고 초라한 집이다. 





초라한 집을 일러 흔히 초가삼간이라 하지만 이 집은 삼간은 커녕 

두간의 방에다 뒷쪽 부엌으로 향하는 길에 겨우 지붕만 이어붙인 형국이다.





뒷편으로 돌아가보니 흙벽에다 함석을 덧대어 붙였다. 비에 젖어 벽이 무너지는 것만 겨우 가름했다.





이런 초라한 집조차도 강아지똥 발표 후 벌어들인 돈으로 80년대에 겨우 마련한 집이라 한다.

집 뒤의 빌뱅이 언덕은 고려장을 하던 시절 무덤을 만들어 놓았던 곳인데 

빌뱅이 언덕 아래 있던 상여 놓는 집을 수리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사셨던 것이다. 

이 곳에 오기 전까지는 일직교회 종지기로 지내면서 교회 문간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1937년 도쿄 빈민가에서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난 권정생 선생은 

광복 직후 1946년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귀국했지만 빈곤과 전쟁으로 곧 가족과 헤어지게 된다.





가난으로 인해 학교 대신 나무장수, 담배장수, 가게 점원을 전전하며 골목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19살 때 늑막염과 폐결핵 등의 병을 얻어 안동시 일직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는 돈을 벌려고 집을 나간 동생과 부모님께 도저히 그 이상 고생을 시켜드릴 수 없어

병에 걸린 자신이 차라리 죽길 바라며 밤마다 교회당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한다.





1965년 집안형편으로 인해 집을 나와 3개월 동안 걸식으로 방황하며 

오로지 죽을 생각만 했던 그를 도와준 이들은 그보다 나을 것 같은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이었다.


29살, 다시 안동 일직으로 돌아와 마을 교회 종지기로 일하며 교회 문간방에서 홀로 생활했는데

떠돌이 생활 중에서도 많은 책을 읽은 그는 교회 문간방에 정착하면서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고.





고난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생쥐, 개구리, 벌레, 별..... 등 주변의 것을 친구 삼아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1969년 그의첫 동화 주인공은 강아지 흰둥이가 싸 놓고 간 '똥'이었다.





'강아지똥'을 써서 제 1회 아동문학상을 수상하게되고 베스트셀러작가가 된 이후 돈도 벌게 되었지만

상여집을 수리한 작은 흙집에 살면서 검소한 생활 속에서 글을 쓰며 사는 것이 전부였다.





2007년 5월 17일, 권정생 선생이 세상을 떴을 때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한동네 있어도 그 사람이 그리 유명한지 몰랐는데......

돈도 많이 벌었다는데 그리 가난했심더.....평생 옷 한벌로 지냈싱께......"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살던 곳 언덕에 뿌리고 집도 깨끗이 태워 없어 자연에게 돌려주세요."

선생은 마지막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는 남은 모든 것을 어린이들에게 돌려주었다.





선생이 생전에 남긴 글처럼 말년에 사시던 흙집은 불태워져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선생의 발자취를 남기고 그를 추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했던 분.

모든 어린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두루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동화로 표현했던 권정생 선생.

고난 속에서도 참된 인간성을 잃지않는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던 작은 흙집에서의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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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6월 28일 개통한 301번 상주 영천 고속도로를 타 보았습니다.

상주시를 기점, 영천시를 종점으로 하는 상주영천고속국도 개통 덕에 경상도 내륙지방의 교통이 아주 좋아졌더군요.


개통 이전 경부고속국도 - 중앙고속국도를 이용해서 경주에서 안동까지 가는데는 2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되었는데요.

상주 영천 고속국도를 이용하니 안동까지 1시간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3~40분 정도의 시간이 단축되는 듯......





영천JC에서 상주영천고속국도로 올라 20여분을 가니 휴게소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휴게소 이름이 특이하네요. '추억의 삼국유사 군위휴게소'입니다.

군위가 '삼국유사의 고장'으로 불리우고 있기 때문인데요. 

일연스님이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했기 때문이랍니다.





새로 생긴 삼국유사군위휴게소의 컨셉이 6~70년대인가 봅니다. 계산하는 분이 검정색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계시더군요.

소시지, 핫바, 수제어묵 등을 파는 매점 이름도 미미분식이네요. 간판 글씨도 다 옛날식입니다.





감자, 어포 등을 파는 매점이름도 국제시장입니다. 한지에 붓으로 흘려쓴 듯한 간판 또한 인상적이었어요.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포장마차를 비롯해서 내부도 완전 6~70년대 느낌이 나게 꾸며 놓았더군요.





고교얄개, 추억의 박서방......70년대의 영화 간판도 손으로 그린 그림이었어요.





휴게소 매점 이름은 대신상회인데요. 추억전빵 코너도 따로 있더군요.





밥풀과자, 뻥튀기, 대롱과자, 살떡과자......옛날에는 없어서 못 먹던 과자라지요.





요즘은 휴게소마다 프랜차이즈 커피가 자리잡고 있잖아요. 

이곳의 커피숍은 장미다방입니다. 갈색 가죽 소파가 면소재지 다방을 떠올리게 해서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매점과 대중음식점 가운에 화본역 열차가 있어요. 휴게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여기서 인증샷을 찍더라구요.


 



식탁도 옛날 교실 의자같은 나무 의자인데요. 음식 코너는 경성회관, 경양식 1929, 라면배급소, 가락우동......입니다.


 




계산원도 컨셉에 맞추어 여고 교복을 얌전히 입고 베레모도 쓰고 계시더군요.





항아리왕돈까스, 쫀쫀이치즈돈까스, 뽀글이돼지찌개, 찌글이된장찌개, 유부주머니우동, ......

학교 앞 분식점에서 친구들이랑 깔깔거리며 먹었던 추억의 메뉴들이 되살아나는 이색휴게소였어요.


그저 스쳐 지나가던 휴게소에 6~70년대로 돌아간 인테리어 컨셉을 불어넣은 삼국유사군위휴게소.

다음번 상주영천고속국도를 탈 때에도 꼭 다시 들려보고 싶은 곳으로 낙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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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미륵도에 자리잡은 달아공원은 최고의 아름다운 일몰을 자랑하는 곳이지요.

멋진 바다 경치를 즐기며 미륵도 해안일주도로를 돌다보면 섬 최남단에서 달아공원을 만나게 됩니다.  

'달아'라는 이름은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아서 붙여 졌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달 구경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어요.

 




달아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금빛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더군요.

망망대해 거칠 것 없는 동해 바다만 보다가 크고 작은 섬들이 펼쳐진 남해바다를 보니 참 아기자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가 바다로 빠지기 전에 서둘러 달아공원 전망대로 올라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저도 사람들 틈에 끼어 자리에 앉아 설레이는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 보았습니다.





아......그런데 오늘은 바다 위에 짙은 구름이 드리웠군요.





해가 구름 저 너머로 넘어가면서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고 바다가 이내 어두워졌습니다.





조금은 아쉬운 일몰이었지만 모두가 한곳을 보며 조용히 일몰을 기다리는 순간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 오면 다도해들 사이로 빠져들어가는 붉은 해를 볼 수 있을까요?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달아공원을 내려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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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이었나? 

양쪽으로 밀집한 좁은 건물 사이로 열차가 스쳐 가는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바로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의 모습이었지요. 

낡은 건물과 건물 사이로 기차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모습은 너무나 이색적이었습니다.


군산에 오게 된 동기도 경암동 철길마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요.

비록 기차가 아슬아슬하게 건물들 사이로 지나가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에 놓여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철길과 침목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정말 좁은 공간이더군요. 이렇게 좁은 골목 사이를 어떻게 열차가 운행했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지금은 400m에 이르는 철길과 침목 주변을 '추억의 거리'로 꾸며놓았구요.

교복과 교련복 등 소품을 빌려 사진을 찍는 커플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더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추억의 거리로 재탄생한 철길마을 사진 몇장을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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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화양읍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청도 향교입니다.

청도 읍성 앞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난 길로 가면 청도 석빙고가 있는데요.

석빙고를 둘러 본 후 동교길을 따라 좀 더 걸어가면 청도 향교가 있습니다.





화양 향교라고도 불리우는 청도 향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주변 환경이 대체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돌아보기에 좋습니다.





청도 향교는 선조1년(1568년)에 군수 이선경이 고평동에 세웠다가 인조4년(1626년)에 합천동으로 옮겼으며

영조10년(1734년)에 지금의 위치인 화양읍 교촌리로 다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경내에는 대성전과 동무,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사락루 등 8동의 건물이 있어요.





2층 누각인 사락루는 향교 출입문 중의 하나로 아래층에 출입문이 나 있습니다.

중소 규모의 향교에서는 보기 힘든 격식을 갖춘 출입문이라고 하네요.

 




향교 건물은 제사 기능을 담당하는 대성전과 강학 기능을 담당하는 명륜당이

앞뒤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이 건물은 대성전과 명륜당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독특합니다.





명륜당과 마주보고 있는 대성전입니다.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참 검소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요.





설총, 안유, 이황, 이이, 최치원, 이언적......등을 배향하고 있는 청도 향교.

석빙고를 보신 후 돌아보기 좋은 청도 향교를 간단하게 소개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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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한시간 거리 밖에 안 되는 청도는 소읍이지만 의외로 고택이나 문화재가 많아서

별 기대없이 찾아갔던 여행자들을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곳인데요.

특히 화양읍에는 최근에 청도 읍성이 복원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어요.

화양읍에서 보물 제323호 석빙고, 청도 향교, 청도 관아, 읍성 등을 돌아보았는데요. 

조금 발걸음을 옮기니 경상북고 유형문화제 제212호로 지정된 도주관이 있었습니다.





도주관은 청도군의 객사 건물로써 도주는 청도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요.





도주관 앞에는 대원군 척화비가 세워져 있어 시선을 머물게 하는데요. 

청도의 척화비는 도로변에 세워두었던 것을 이곳 도주관 앞으로 옮겨 세웠다고 합니다.

도주관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척화비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평삼문을 통해 도주관으로 들어갔습니다.





현종 11년인 1670년에 건립된 도주관은 시선을 압도할 만큼 웅장한 건물이에요.

정당이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좌익사, 우익사 모두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써

모두 합하면 정면15칸, 측면 3칸이 되는 엄청나게 큰 건물입니다.





현재 정당과 우익사 만이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좌익사는 복원된 건물로 보였습니다.

정당은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수령이 초하루, 보름에 배례하는 곳이었는데요.





지금은 배례하는 시설은 없고 그냥 빈 공간만 있습니다.





정당 옆 좌우 익사에 접객 시설을 갖추어 이곳을 방문하는 관원이 머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도주관 밖으로 다시 나와 표지판 앞에 세워진 척화비를 자세히 살펴 보았습니다.

너비 약 45cm에 높이는 136cm 정도, 두께는 약 23cm정도의 화강석으로 된 척화비는

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서양인을 배척하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1863년 고종이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그의 아버지 이하응은 흥선대원군에 봉해지고 

안동김씨 일가의 굴욕을 참으며 벼르고 있던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대원군이 집권할 당시 국제 정세는 열강의 제국주의 확장으로 아주 혼란스러운 시기였고

미국, 러시아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하나 둘 한반도로 접근하여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며 때에 따라 무력 도발 및 시위를 자행하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집권 초기에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의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병인양요(1866,고종 3년 : 대원군의 가톨릭 탄압으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사건)가 일어나게 되고

이어 오페르트 도굴사건(1868, 독일인 오페르트가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으로 인해

이후 ‘수교 통상 반대’로 정책 기조를 급선회하게 됩니다.
 

특히 고종 8년인 1871년의 신미양요(미국 함대가 조선과의 통상 조약 체결을 강요하기 위해 강화도를 침략한 사건) 이후

흥선대원군은 모든 외세와의 수교 통상을 금하는 쇄국정책을 펼치고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1871년 음력 4월에 서울 및 전국의 요충지에 척화비를 세우게 됩니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戒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계오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의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


그 후 고종 19년인 1882년에 발발한 임오군란으로 인해 대원군은 청나라에 납치되고

조선은 열강을 향해 그 문호를 활짝 열게 되니 척화비도 자연히 모두 철수되게 되는데요.

척화비 중 서울에 세웠던 것은 1882년 8월 15일에 종로 보신각 부근에 파묻었다가
1915년 양력 6월 보신각을 옮겨 세울 때 발견되어 경복궁 근정전 서쪽 화랑에 진열되었구요.

이 밖에 경기도,강화도, 경상도, 동래군,함양군,부산진,경주 등지에

서울의 것과 똑같은 크기의 것들이 1925년까지 남아서 그 속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를 전해주고 있어요. 


척화비를 세우면서까지 막으려고 했던 외세는 문호 개방 이후 물밀듯이 밀려오고 

급기야는 국권을 일본에 빼앗기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조선을 지키기 위해 쇄국정책을 펼치고 나라의 문을 굳게 잠구었던 대원군.

만약 당시에 대원군이 문호를 개방하고 일찍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더라면

우리나라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지 않고 나라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척화비 앞에 서서 잠시 상념에 잠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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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읍성 유적 바로 옆에는 아주 특이한 돌구조물이 있습니다. 바로 청도 석빙고지요.

돌뼈다귀만 남아 있어 마치 로마 유적같이 보이는 석빙고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데요.

저 또한 청도 석빙고를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답니다. 

제가 자주 보던 경주 반월성 석빙고는 흙으로 다 덮여 있고 입구 문만 보이는 형태였거든요.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에 있는 청도 석빙고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석빙고 가운데

경주 석빙고(보물 제66호)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쌓은 연대도 오래 된 것이라고 합니다.





석빙고 입구에는 석비가 서 있는데 앞면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수, 쓰인 자료, 비용 등을 기록해 놓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날짜와 함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았어요.

그중에 '계사(癸巳)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성 숙종 39년(171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고 있어요.





청도 석빙고는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 아치 형태의 홍예가 4군데만 남아 있을 뿐 천정이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지붕이 무너지고 뼈대만 앙상히 드러나 햇빛과 바람이 수시로 드나드니 석빙고로써의 기능은 상실한지 오래이지만

경주 석빙고와는 달리 안이 훤히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위에서 석빙고의 내부를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었어요.





내부는 동,서로 뻗은 긴 직사각형 구조이구요. 서쪽에 출입문이 있어 아래로 내려가는 형태였습니다.

출입구 계단 위에서 보니 아래에 돌로 된 바닥이 보였는데요. 경사가 져서 물이 한쪽으로 흘러가도록 되어 있었어요.

한여름 더위에도 아래로 내려서면 지상과는 달리 상당한 온도차를 느낄 수가 있다고 하더군요.





근처 식당 아주머니는 초등학교 시절에 날씨가 많이 더우면 석빙고 안에 들어가 더위를 피하며 놀다가 

학교를 땡땡이치기도 했다며 석빙고에 얽힌 어릴 적 추억을 신나게 말씀해주시기도 하더군요.

겨울에 강에서 떠온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할 수 있었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실감나는 부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석빙고는 경주, 청도를 비롯하여 창녕, 안동, 현풍, 영산 등에 6기가 남아 있고 북한에는 해주에 1기가 있다고 합니다.

비록 세월의 풍상으로 많이 허물어졌기는 했지만 자손들에게 잘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우리의 문화 유산,

청도 석빙고는 보물 제32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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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와인 터널, 소싸움 축제 등으로 유명한 경북 청도읍은 필자가 자주 찾는 곳인데요.

경주에서 건천, 산내, 운문댐을 거쳐 청도에 이르는 길은 고즈녁하고 청량감이 감도는 산길이라

꼭 어떤 장소를 지정해서 찾지 않더라도 힐링 드라이브 코스로 아주 좋은 곳입니다.


청도군의 중심인 화양읍에 이르면 청도 향교, 석빙고, 도주관, 척화비 등 유적도 많이 만날 수 있는데요.

지난 2009년에 복원된 청도 읍성 유적도 꼭 들려봐야 할 볼거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늘의 구름이 장관을 이루던 여름날 찾아보았던 청도 읍성의 사진 몇 장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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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에 쉬기 좋은' 정자 만휴정(晩休亭)을 돌아보러 안동 길안면에 간 날, 

만휴정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묵계서원에 가보았습니다.





길안면 묵계리 만휴정에서 출발하여 길안천을 다시 건넌 후 

35번 국도와 만나는 조그마한 사거리에 이르니 묵계서원의 안내판이 나오더군요.

길 근처에 차를 주차한 후 300여m를 산책 겸 걸어가 보았습니다.





한참 걸어가니 길 저 끝에 서원의 대문이 보였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서원의 문이 자물쇠로 굳게 닫겨져 있더군요.





황망해서 그대로 발길을 돌리려다가 아쉬운 마음에 서원 바깥을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서원 담장이 허리 춤 정도로 아주 낮아서 바깥에서도 서원의 모습이 대충 보이더군요.

그래서 담장 너머로 서원 안쪽을 살짝 훔쳐 보았습니다.





서원의 문인 진덕문 뒤에 누각이 아주 멋지더군요. 현판에 읍청루(挹淸樓)라 쓰여 있었습니다.




 

저 읍청루에 올라 앉을 수 있다면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땀도 식힐 수 있을텐데 정말 아쉽더군요.  





읍청루를 뒷편으로 서원의 마당이 보였습니다. 서원의 규모가 참 아담하더군요.





이 건물이 서원의 중심 건물인 강당임이 분명합니다. 입교당(立敎堂)이라고 쓰인 현판이 멀리서 보이더군요. 

묵계서원은 보백당 김계행 선생과 응계 옥고선생을 봉향하는 서원입니다. 

보백당 선생은 성종 때 부제학을 지낸 명신이며 응계 선생은 세종 때 사헌부 장령을 지낸 분이라고 하네요.

숙종 13년(1687년)에 창건된 묵계서원은 고종 6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사당은 없어지고

강당인 입교당만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새로 짓고 서원을 복설하였다고 합니다.





입교당 앞 건물이 눈에 뜨입니다. 극기당이라고 써놓았네요. 

보통 서원에는 동재, 서재라는 기숙사가 양쪽에 있는데 이곳에는 한곳 밖에 없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제일 마지막에는 사당이 있었습니다. 사당의 이름이 청덕사(淸德祠)이네요. 

새로 복원한 건물이라서 삼문의 태극 문양이 아주 선명했습니다.




 

서원의 문이 잠겨 있어 서원 내부를 자세히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서원의 전경을 대충 돌아볼 수는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서원 뒷편 아름드리 소나무숲은 그늘도 좋고 너무 시원하여 쉬어가기 좋은 곳이더군요.

만휴정에서 쉰 후에 돌아보기 좋은 안동 길안면 묵계서원을 잠시 소개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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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에서 태백으로 향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35번 국도 여행길.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고산정에서 농암 종택 가는 길에 퇴계 오솔길을 만났습니다.

퇴계 오솔길(예던길, 녀던길)은 퇴계 이황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극찬한 길인데요.

어린 퇴계가 숙부인 송재 이우에게 학문을 배우기 위해 다니던 낙동강 강변길입니다. 

퇴계는 글을 배우기 위해 자신의 태실에서부터 청량산까지 낙동강 강변길을 홀로 걸어다녔고

죽을 때까지 그가 좋아하던 청량산을 거닐기 위해 이 길을 즐겨 산책했다고 합니다.

 




가송리 고산정에서 퇴계 오솔길 (예던길,녀던길)을 따라 낙동강 한구비를 돌아드니 

벽련암과 낙동강이 치맛자락처럼 펼쳐지는 농암종택 어귀에 이르렀습니다.





종택 대문 앞에 서니 대문 너머로 보이는 청량산에 두터운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 더욱 운치 있다는 이 곳.  마치 한줄기 비라도 그을 것 같은 하늘이었습니다.





원래 도산서원 앞 분천마을에 있었다는 농암종택은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이 되었다고 합니다.

농암 17세손 이성원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여기저기 흩어진 종택과 사당을 한데 모아 이룬 것이 지금의 농암종택입니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시조 작가인 농암 이현보는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30년 이상 관직에 몸 담았다가

조선시대 유일하게 은퇴식을 하고 정계에서 물러난 '뒷모습이 아름다운 선비'입니다.

은퇴 후에는 부모를 봉양하고 자연에서 유유자적 지내고 싶어 임금의 상경 명령에도 끝내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은 사랑채로 현재 17대 종손 이성원 선생이 종택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채 마루에 편안한 의자들이 몇개 놓인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농암종택에서는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대청 위 의자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지는 청량산과 낙동강의 풍광을 바라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습니다.

 

 

 

 

사랑채 안에는 적선(積善)이라고 쓰인 큰 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

라는 뜻으로 선조가 농암 이현보의 '효'행에 감동하여 직접 써서 하사했다고 하네요.

지난번 국립박물관에 걸린 선조 어필 '적선'에 대해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 걸려 있는건 사본인 듯 합니다.

관련 포스트 : 선조 임금의 서예 '적선'





사랑채 뒷편에는 안채가 자리잡고 있구요. 그 뒤로 사당이 보였습니다.

농암종택에서는 안채를 제외한 사랑채, 긍구당, 명농당, 분강서원, 애일당 등 모든 고택에서 숙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고택에서 하룻밤 묵고 나면 안채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준다고 하는데요. 

간고등어구이, 콩가루를 넣은 부추, 명태 보푸라기 등 유기농 채소로 직접 준비한 종가 음식이라고 하는군요. 

이곳에서 묵는 분들은 마치 고향에서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네요.





너른 마당의 끝 부분, 고택의 가장 전면에 위치한 긍구당(肯構堂)은 농암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종택의 별채입니다. 

고려 때 농암선생의 고조부가 지은 긍구당의 당호는 '조상의 유업을 길이 잇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마루에서 청량산과 굽이치는 낙동강의 절경을 바로 내려다볼 수 있어 종택의 스위트룸이라고 불리운다 하네요.





종택의 서쪽 문으로 나와 종택을 바라 보았습니다. 청량산이 종택을 두 팔로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모습이네요.





이곳은 명농당으로 농암 이현보가 귀거래도를 그렸던 곳입니다. 

명농당은 농암이 관직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과 함께 생을 보내고 싶다는 '귀거래'의 소망을 담고 있는 곳이라 하네요.


 



명농당을 지나니 농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는 분강서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서원 옆에는 농암의 행적을 기리는 농암 신도비가 있었습니다.





분강서원을 지나 서쪽 강변으로 가니 수려한 풍광 속에 들어앉은 건물 두채가 보였습니다.

애일당과 강각인데요. 애일당은 농암이 구순이 넘은 부친을 위해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부친이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하루하루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애일당(愛日堂)이라 이름했다는데요.

농암 선생은 부친을 포함한 노인 아홉분을 모시고 어린아이처럼 색동옷을 입고 춤추며 즐겁게 해드렸다고 합니다.

애일당 앞 강각에 올라 농암선생의 부친처럼 낙동강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문이 잠겨 들어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더군요.


 



애일당 앞 축대 앞에 바윗덩어리가 몇개 서 있는데 음각으로 큰 글씨가 새겨져 있었어요.

'농암각자'라는 이 바위는 네개의 자연석 암벽에 ‘(농암선생정대구장)’이라고 새겨놓은 것입니다.

농암선생 사후에 제자들이 스승의 옛터를 기리고자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는데요.

원래 분천리 애일당 자리에 있었던 것을 안동댐 수몰로 인해 이곳으로 옮겼다고 하네요.









퇴계 오솔길은 애일당과 강각 아래 낙동강 강변을 따라 쭈욱 이어진다고 합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퇴계가 낙동강 물소리를 들으면서 걸었다는 퇴계 오솔길을 끝까지 걸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고산정과 농암종택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여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다음번에 온다면 아주 약한 가랑비가 살며시 내리는 날. 이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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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숲 속 꽁꽁 숨겨진 정자 만휴정을 찾아 안동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길안면 묵계리 길안천에 놓인 하리교를 건너 지류를 따라 올라가니 송암계곡이 나왔습니다.





마을 앞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니 만휴정 원림이 시작되는 숲길이 보였습니다.

알려진 곳이 아니라 그런지 안내판 하나만 있을 뿐 제대로 갖추어진 주차장도 없더군요.

원림 들어가는 입구에 3대 쯤 주차할 공간이 있어서 거기에 주차하고 숲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싱그러운 숲길을 한참 걸어올라가니 길 저편에 기와 지붕이 나타났습니다. 





길 윗쪽에서 보니 아래 계류 위에 다리가 걸쳐져 있고 나무 사이로 작은 정자가 하나 숨어 있더군요.





계류 아래로 난 길을 따라 내려서니 정자로 향하는 외나무다리의 모습이 잘 드러났습니다. 

수량이 풍부하면 계곡물이 폭포를 이루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을텐데 제가 간 날은 계곡물이 너무 말라 있더군요.





외나무다리 위에 오르니 새삼 다리의 폭이 너무 좁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다리를 건너야만 갈 수 있는 계류 건너편에 정자를 지을 생각을 했을까요?  

이 다리를 건너 계류 저편에 앉으면 속세와 떠나 독서와 사색에만 열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겠지요. 





'만휴정(晩休亭)'이란 '늦은 나이에 쉰다'는 뜻으로 조선 전기 문신 김계행이 말년에 귀거래하여 지은 정자입니다.

김계행은 자손들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지는 못했으니 청렴을 제일로 하는 청백리의 정신을 유산으로 남기고

'나의 집에는 보물이 없다. 오로지 청백 뿐이라'라는 정신을 그의 시에 남겼다고 하네요.





외나무다리와 연결된 작은 문을 통해 정자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정자의 쪽문도 정말 소박하더군요. 정자가 들어선 마당도 다른 정자에 비해 협소하기 그지없습니다.





정자에 오르기 전에 만휴정의 야트막한 담을 따라 좁은 마당을 한바퀴 둘러 보았습니다.





주차장 입구에 불두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데 정자 마당에도 탑스럽게 피어있었어요.

만휴정 정자의 정취와 참 잘 어울리는 꽃인 것 같았습니다.





신을 벗고 만휴정 마루에 올라보았습니다. 계자난간 앞으로 앞산의 선허리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무르게 되더군요.





나즈막한 담장 너머로 계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참 멋스럽게 보였습니다.

이곳에 앉았던 선현들은 다리 아래로 흐르는 계류를 보며 한편의 시가 저절로 나왔을 것 같네요.





정자 오른쪽으로 보니 암반 위를 흘러 도착한 자그마한 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국을 연이어 강타한 폭우 속에서도 경북 지역은 유달리 비가 오지 않은지라 물이 너무 말라있더군요.

수량이 많았더라면 소에는 물론이고 아래 폭포에 송암폭포에도 하얀 물줄기가 힘차게 쏟아지고 있었을텐데......

세찬 비가 몇 차례 내린 후 만휴정에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하며 만휴정의 외나무다리를 다시 건너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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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를 뚫고 담양으로 간 이유는 빨간 꽃이 흐드러진 배롱나무 정원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배롱나무꽃이 붉은 꽃비가 되어 연못 위에 붉은 융단을 이루는 명옥헌 원림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명옥헌까지 차를 가지고 바로 진입할 수는 없었습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후산길로 불리우는 마을길로 들어섰는데요.

동네 아주머니들 몇명이 평상에 앉아 길을 지키고 계시더군요. 마을로 들어서지 못하게 길을 가로지른 노끈을 쥐고 있다가 

오는 차량마다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후에 마을 사람이면 노끈을 놓아 차가 지나가게 해주었습니다.

여름이면 수많은 관광객들이며 진사들이 몰려들어 복새통을 이루는 바람에 마을 주민들이 궁여지책으로 나섰나 봅니다.





동네 어귀 저수지 후산제를 지나 오른쪽길로 접어드니 아기자기한 벽화들이 여행자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주차장에서 그늘도 없는 길을 500m 정도 걸어가야 되더군요. 정말 얼굴이 따가울 정도였습니다.





이글이글 타는 듯한 한낮 더위에 걸으니 땀이 흐르고 목이 타서 동네 유일의 카페에 들러 생수 한병을 샀습니다.

받은 생수가 얼음 꽁꽁이라 금방 먹을 수가 없더군요. 제가 목말라 하는걸 보고 카페 쥔장께서 시원한 냉수 한잔을 주셨습니다.

댓바람에 냉수 한잔을 들이키고 염치없게 또 한잔을 얻어먹었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아이스커피 한잔을 다시 주문했어요.





조금 더 걸어 명옥헌 원림 앞에 도착했습니다. 연못을 중심으로 가장자리 둑방길에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가운데 둥근 섬 안에도 우아하게 자란 배롱나무가 자리잡고 있었어요.





정원을 온통 뒤덮은 배롱나무의 붉은 자태가 연못에 비친 반영으로 인해 더욱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새벽녘이면 배롱나무 반영을 사진에 담으려고 몰려든 진사들로 인해 삼각대 세울 곳도 잘 없다고 하더군요.





배롱나무 고목들은 연못 위로 탐스러운 꽃무리를 가득히 단 가지를 총총히 내 뻗고 있어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습니다.





정원을 물들인 붉은 꽃비에  진사의 카메라 셔터 소리도 바빠지는 풍경입니다.





뚝방길을 지나 명옥헌 정자 앞에 왔습니다. 야산을 뒤로 두고 야트막한 둔덕 위에 날아갈 듯한 정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정면이 3칸이고 측면이 2칸인 아담한 정자입니다. 양쪽을 살짝 들어올린 추녀의 곡선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정자 한가운데 조그만 방을 두고 그 주위를 돌아가며 ㅁ자 마루를 놓아 두었더군요.





모든 배롱나무가 아름답지만 정자 바로 옆에 심겨진 거대한 배롱나무가 제일 압권이었습니다. 

가지가 무거워 드리워질 정도 복슬복슬 탐스러운 달린 배롱꽃들을 정자 쪽으로 드리우고 있더군요.





엣 성현들만 신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나요. 

소슬바람이 불어오는 정자에 앉아 한담을 나누느라면 누구나 신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자 마루에 걸터 앉아 눈앞에 펼쳐진 배롱나무 정원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에 빠져드는게 당연할 것 같습니다.

 




정자 뒷편 얕은 둔덕으로 올라보았습니다. 족히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배롱나무들이네요.





정자 뒷편의 작은 연못을 빙 둘러가며 붉은 배롱나무들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붉은 꽃비가 되어 정원 곳곳에 흩날리던 배롱나무꽃은 연못 위에도 호사스러운 붉은 융단을 만들었습니다.





어두워지는 명옥헌 마루에 걸터 앉아 도종환선생의 '목백일홍(배롱나무)' 시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한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는 것이다


목백일홍 / 도종환(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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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정자 비경을 찾아 떠난 여행. 소쇄원을 거쳐 식영정 일원에 도착했습니다.

한국가사문학관 바로 옆에 위치한 식영정 일원에는 식영정을 비롯하여 몇 건물이 있었는데요.

언덕 위에 있는 식영정과 성산별곡 시비를 먼저 돌아보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관련 포스트 : 담양 정자 10경 / 송강 정철 유적 / 성산별곡 시비가 있는 식영정





푸르름이 가득한 정자들은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왼쪽에 날아갈 듯 들어앉은 누정이 있었습니다. 

정자의 절반을 기둥으로 받쳐 올린 누정의 이름이 부용당이더군요. 

부용(연꽃)이란 이름 그대로 작은 연꽃 봉오리처럼 생긴 아담하고 예쁜 정자였습니다.





부용당 앞에는 네모난 연지가 있어 수련으로 덮여 있더군요. 정말 운치있는 곳이었습니다.





연지에는 바로 옆 배롱나무에서 떨어진 붉은 꽃잎이 푸른 융단에 수를 놓았더군요.





부용당 바로 옆의 정자는 서하당()입니다. 





언덕 위에 있는 식영정을 지은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라 지은 정자라고 하네요.





서하당에 올라서 보는 부용당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마루에 누우면 금세 스르륵 잠이 들 것만 같은 풍경입니다.





서하당 옆에 건물이 있길래 살펴보았습니다. 장서각이란 현판이 붙어 있더군요.

송강집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해 1973년에 세운 장서각이라고 합니다.





식영정, 서하당, 부용정.....잘 알려지지 않은 곳인데 제게는 오히려 소쇄원보다 더 인상적이습니다.

조용하게 앉아 쉬며 사색에 잠기기 참 좋은 곳, 담양의 부용당, 서하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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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옥헌, 소쇄원, 송강정, 식영정, 면앙정, 독수정, 상월정, 연계정, 관어정, 남극루......

무려 10개가 넘는 정자가 있어 정자의 고향으로 불리우는 담양으로 떠난 여행.

한국 3대 정원으로 알려진 소쇄원을 돌아본 후 근처에 있는 식영정으로 향했습니다.

 

 

 

 

 

소쇄원 주차장에서 식영정까지는 1km정도의 거리로 승용차로는 2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요.

한국 가사문학관을 지나자마자 길 옆 아름다운 숲속에 자리잡은 정자가 바로 보였습니다.

식영정 바로 앞길에 주차를 하고 내리니 싱그러운 숲내음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습니다.

 

 

 

 

 

식영정은 송강 정철 가사의 비가 서 있는 왼쪽 언덕으로 올라가는 것이었어요.

 

 

 

 

송강 정철 가사의 비를 살펴본 후 돌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올라갔습니다.

 

 

 

 

방향을 튼 돌계단 중간참에 서니 기와 지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식영정이 코 앞이네요.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인데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입니다. 

정자의 이름이 참 로맨틱하지요.

 

 

 

 

가사문학의 산실로 불리우는 식영정은 송강정, 환벽당과 더불어 정송강 유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정철은 노송의 숲 속에 묻힌 식영정의 정취와 주변의 풍광을 즐기면서 성산별곡을 지었다고 하네요.

 

 

 

 

식영정 앞뜰에 성산별곡 전문이 새겨진 시비가 있었어요.

 

 

 

 

당시 사람들은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 네 사람을 '식영정 사선()'이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이들이 성산의 경치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 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을 지었는데

'식영정사십영'은 후에 정철의 '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식영정 아랫편으로는 부용당과 서하당이 있습니다. 아래로 내려가 저 정자들도 살펴봐야겠네요.

 

 

 

 

올라온 돌계단을 따라 다시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붉은 배롱나무 꽃잎이 여기저기 떨어져 돌계단을 꽃계단으로 만들었네요.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김소월이 담양에 왔더라면 사뿐히 즈려밟고 가는 꽃은 

진달래꽃이 아니라 배롱나무꽃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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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맑은 도시 담양은 볼거리 즐길거리가 유달리 많은 곳이지요.

죽녹원, 관방제림, 메타 세쿼이아길, 담양호, 대나무 박물관, 한국 가사문학관......

그중에서도 담양은 빼어난 절경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정자의 고향으로 유명하답니다.

명옥헌, 소쇄원, 송강정, 식영정, 면앙정, 독수정, 상월정, 연계정, 관어정, 남극루......

무려 10개가 넘는 정자가 있어 여행자들을 편안하게 쉬어가게 한다네요.

담양으로 떠난 정자 여행, 제일 먼저 소쇄원으로 향했습니다.





경주에서 출발한지 3시간 10분 만에 전남 담양군 남면 소쇄원길에 있는 소쇄원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길을 건너니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숲길이 나타나네요.

진입로로 들어서니 무료 입장이랍니다. 살펴보니 소쇄원 전역이 현재 보수 정비 사업중이네요.

10월 30일까지 제월당, 광풍각 등 소쇄원 대부분 지역에 진입이 통제된다고 합니다.

소쇄원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11월 이후에 왔어야 했네요.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길을 나선게 실수였습니다.

하지만 멀리까지 왔으니 입구에서 발을 돌릴 수는 없었지요. 일단 대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가 보았습니다.

다행히 진입로는 통제가 안 되고 있었습니다. 대나무의 고향 담양답게 입구부터 잘자란 대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어요.





대숲에서 나는 댓바람 소리가 더위를 물리치는 소솔함을 제대로 느끼게 했습니다.

소쇄원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인 이곳을 통과해야 비로소 은밀한 영역인 정원에 이르게 되나 봅니다.





대숲을 지나니 계류 뒷편으로 조그마한 정자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소쇄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광풍각이었어요.

계류를 건너 광풍각으로 건너갈 수 없도록 대나무로 진입로를 막아두어 건너편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는데요.

하는 수 없이 길가에 서서 작은 연못 황금정 너머 보이는 광풍각의 모습을 소심하게 담아 보았습니다.





한여름 정자의 풍광을 돋보이게 하는 나무는 역시 배롱나무죠. 담양은 정말 배롱나무가 많은 것 같아요.

배롱나무 사이로 보이는 광풍각의 모습을 멀리서 담아보았습니다. 정자까지 가보지 못해 정말 아쉬웠어요.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를 담은 소쇄원은 정암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1503~1557)가 고향으로 내려와 조성한 곳으로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아름다움으로 인해 우리나라 3대 정원에 손꼽히고 있는 정원이랍니다.





중종조 시절, 조광조가 추진했던 개혁 정치가 실패로 돌아가고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전라도 능주로 유배를 당하자

당시 17세였던 양산보는 그를 모셨다고 해요. 그해 겨울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사망하게 되자 큰 충격을 받은 양산보는

현세에서의 공명을 과감히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소쇄원을 짓고 이곳에서 은거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른쪽 작은 연못 축대 위에 초정 하나가 있었는데 정자의 이름이 대봉대였습니다. 

봉황을 기다리는 정자이니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정자라는 뜻에서 지었나 봅니다.

이곳에서 양산보의 친구 김인보가 '소쇄원 48영'에서 대봉대의 풍광을 노래했다고 하네요.



 작은 정자의 난간에 기대어

小亭憑欄
오동나무 대에 드리운 한여름의 녹음을 보네
桐臺夏陰
해 저문 대밭에 새가 날아들고
叢筠暮鳥
작은 못에 물고기 노니네
小塘魚泳



부귀공명을 멀리하고 자연으로 돌아와 여유낙락하는 선인들의 풍류가 그대로 느껴지는 싯귀입니다.





대봉대를 떠나 소쇄원 담장 곁으로 난 숲길을 한참 걸어보았습니다. 대숲을 스치는 소슬바람이 참 좋은 곳이더군요.

비록 정원을 제대로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대숲길을 걸으며 좋은 공기를 마음껏 마신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지금 소쇄원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꼭 11월 이후에 방문하실 것을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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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북 군산으로의 여행.

근산 근대항 스탬프 투어를 마치고 신흥동에 있는 일본인 가옥인 히로쓰 가옥으로 향했습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히로쓰 가옥은 자동차로 약 3분, 도보로는 22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인데요.

히로쓰 가옥이 위치한 신흥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시절 군산 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라고 합니다.

히로쓰 가옥 건너편 담모퉁이에 차를 주차하고 내려서 주위를 살펴보니 거리가 참 아담하고 깨끗했습니다.

그런데 골목 한켠에 인력거들이 세워져 있네요. 자세히 보니 방송 촬영을 나온 것이었습니다. 

아까 근대건축관 앞에서 보았던 쌍둥이 개그맨들이 여기까지 와서 촬영을 하고 있더군요.





히로쓰 가옥의 입구는 의외로 소박했구요. 문 앞에 걸린 태극기가 눈에 확 띄었습니다.

이 일본식 가옥의 정식 명칭은 신흥동 일본인가옥입니다.


 

 

 

포목점을 운영하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가옥이라 히로쓰가옥이라 불리워 왔다고 해요.

 광복 이후 (구)호남제분의 이용구 사장명의로 넘어가 오늘날까지 한국제분의 소유로 되어 있구요.

2005년에 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히로쓰 가옥이 유명한 이유는 이 곳에서 영화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 

많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었기 때문이에요.






가옥 외부를 돌아보았는데요. 일본 무신들의 고급주택의 양식을 따른 목조 2층 주택이었어요.






지붕과 외벽 마감, 내부, 일본식 정원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내부 관람은 불가하고 가옥 외부와 정원만 관람이 가능하더군요. 내부는 유리창을 통해 짐작만 할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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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종영된 tvN '알쓸신잡' 총정리편에서 잡학박사들이 꼽은 최고의 여행지는 통영이었지요.

저 또한 산과 바다, 섬들이 어우러져 볼 곳도 체험할 곳도 많은 통영이 최고의 여행지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동안 여러번 다녀왔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기 때문에 늘 통영을 그리워하고 있었거든요.





짧은 통영여행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꼽으라면 먼저 미륵산 전망대를 추천하고 싶네요.

한폭의 수묵화가 펼쳐진 듯 크고 작은 섬들이 들어선 한려수도를 보기에는 미륵산 전망대가 최고입니다.


미륵산 전망대를 가장 편하게 오르기 위해 통영시 도남동에 위치한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로 갔는데요.

11,000원을 주고 성인 왕복 탑승권을 발권했어요. 탑승권은 잘 보관했다가 내려올 때 다시 제시해야 합니다.


한참 줄 서서 기다린 끝에 제가 탈 차례가 돌아왔네요. 

케이블카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제 앞으로 오니 살짝 두근두근해집니다.

케이블카는 6명 정도 탑승 가능하네요. 다른 일행들과 함께 케이블카에 탑승했습니다.





케이블카가 드드드득 소리를 내며 앞으로 달려가더니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지듯 허공으로 내려 꽂힙니다.

앞에 앉았던 남자분이 자신도 모르게 "으악! 무서워!!"라고 소리를 내지르네요^^.





출발하기가 무섭게 금새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땅에서 멀어지더군요. 

처음엔 좀 무서웠지만 이내 평온하게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의 셔터를 바쁘게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멋진 경치는 꼭 인증샷을 남겨야지요.





좀더 선명한 사진을 담아보기 위해 작은 창으로 카메라를 내밀어 보았습니다. 

카메라 떨어뜨릴라 조심조심......^^;;





케이블카가 높아지니 그림같은 통영 앞바다가 저 멀리로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발 아래는 미륵산의 빽빽한 숲들이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났습니다. 

새삼 느껴지는 케이블카의 높이에 순간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지더군요.



상부 역사에 도착해 밖으로 나오니 전망대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더군요. 여기서도 한려수도 조망이 가능하겠지만

좀 더 나은 뷰를 위해서 한참이나 나무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비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한발 한발 정상으로 올라갔어요.





드디어 미륵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와아~~~~!!! 이런걸 나이스 뷰라고 하는군요! 

끝없이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동해도 좋지만 섬들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선 남해는 또 다른 맛이 있군요.





눈 앞에 펼쳐지는 섬들의 이름을 알려주는 안내판 앞에 서 보았습니다.

안내판 사진 속의 눈 앞에 펼쳐진 섬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정상 전망대에 서서 360도로 보이는 한려수도의 섬들을 하나 하나 카메라에 담아보았습니다.












대충 사진을 찍은 후 정상 계단에 앉아서 한참 동안이나 아래 펼쳐진 섬들을 바라 보았습니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지친 심신이 저절로 힐링이 되더군요.


미륵산은 통영 여행에서 빠뜨리면 안 되는 필수 코스인 것 같습니다.

미륵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한려수도의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최고의 절경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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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가이드가 유일하게 별점을 매긴 35번 국도는 안동 도산서원에서 봉화를 지나 태백 초입까지 이르는 길입니다.

한국의 길에다 별점을 매긴 길은 이 길 밖에 없으니 이 길이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일찍이 도산서원과 청량산을 오가던 퇴게 이황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표현했던 그 길로 나섰습니다.





녹음이 가득한 길을 따라 가다 가송리에 이르면 35번 국도는 낙동강 물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농암종택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물길 곁에 자리잡은 수려한 정자를 만났습니다.  고산정입니다.





앞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청량산 암벽 옆에 소박한 정자 하나가 살포시 들어앉았네요.

이런 곳을 품격있는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해야 하나요? 녹음과 어우러진 고즈녁함에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마음같아선 강물로 뛰어들어 고산정으로 가고 싶었지만 물길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는지라

차를 몰아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 좁은 농로를 지나 고산정 마당까지 왔습니다.





고산정(孤山亭)은 퇴계 이황의 제자인 성재 금난수가 공부하던 곳입니다.





금난수는 25세에 예안 부포에 성재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이어서 

 명승지 가운데 한곳인 이곳 가송협()에 정자를 짓고 일동정사()라 불렀다 합니다.





고산정은 청량산에 들어가는 입로로 그 경치가 빼어나 많은 선비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황과 금난수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는데 문이 잠겨 확인하지는 못 했습니다.





고산정 툇마루에 앉아 바로 앞을 보니 맞은편 절벽 아래 유유히 흐르는 강물의 풍광이 천하 절경입니다.

금난수를 비롯한 시인 묵객들이 이 곳을 사랑한 이유를 알 것 같네요.


평소 금난수를 아낀 이황은 이 정자를 자주 찾아와 빼어난 경치를 즐기고 시 몇편을 남겼다고 하는데

고산정에 현판으로 걸린 이황의 시 '서고산벽(()'을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일동이라 그 주인 금씨란 이가   


 지금 있나 강 건너로 물어보았더니  

  
 쟁기꾼은 손 저으며 내 말 못 들은 듯  

 
 구름 걸린 산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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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여행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한군데만 꼽으라면 군산을 지목한다고 하지요.

도시 전체가 근현대사 야외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군산을 다녀왔습니다.

 

 

이미지 출처: 군산시청 홈페이지(http://www.gunsan.go.kr)

 

군산에 가면 도시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근현대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는데요. 

특히 군산 세관을 중심으로 근대항 주변에 오래 된 건축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더군요.

 

 

 

 

군산 여행을 알차게 하기 위해 군산 근대항 스탬프 투어를 해 보기로 했는데요.

스탬프 투어 리플렛을 가지고 해당 건축물을 하나 하나 찾아 스탬프를 받아 오면 되는것이었어요.

 

투어 코스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 군산세관/(구)군산세관본관 → (구)미즈상사 → 장미갤러리 →

(구)일본18은행군산지점/근대미술관 → 장미공연장 → (구)조선은행군산지점/근대건축관 → 진포해양공원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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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탬프 투어 리플렛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서 배부받을 수 있는데요.

스탬프를 다 받고나서 박물관 데스크로 가면 작은 기념품도 준다고 합니다.

 

 


 

투어 첫번째 코스인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먼저 스탬프를 찍었습니다.


 

 

 

2번째는 (구)군산세관 본관으로 1908년 준공된 건물입니다. 서울 역사,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함께

국내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에 하나라고 해요.

개인적으로는 군산에서 본 건축물 중에서 가장 단아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었습니다.

 

 

 

 

3번째 건축물은 (구)미즈상사였어요. 미즈상사는 일제강점기 무역회사로 사용하던 건물인데요.

현재는 미즈커피라는 북카페로 활용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더군요.

 

 

 

 

4번째 코스는 장미갤러리입니다. 일제강점기 건물이지만 용도나 기능은 알려지지 않고 있구요.

지금은 체험 학습 및 예술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해요.

 

 

 

 

5번째 코스는 (구)일본18은행군산지점입니다. (구)일본18은행이 있던 자리인데요.

이 은행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고 해요. 

광복 후에는 대한통운 지점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군산 근대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6번째 코스는 장미공연장입니다. 쌀곳간을 의미하는 장미동(藏米洞)에 위치해 있는 이 건축물은

1930년대 조선미국창고조식회가에서 쌀을 보관했던 쌀창고였다고 합니다.

일제시대 쌀 수탈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 건축물은 현재 다목적 공연장으로 쓰이고 있었어요.

 

 

 

 

장미공연장 앞 뜰에는 군산 출신 소설가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등장인물들의 동상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7번째 코스는  (구)조선은행군산지점입니다.

위치적으로 내항에 인접해 일제강점기 식민지 금융 기구의 역할을 수행한 대표적인 은행이라고 하네요.

 

 

 

 

규모와 건축물의 가치에 있어서도 군산을 대표할 만큼 중요한 이 건축물은 현재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해요.

 

 

 

 

진포해양테마공원을 제외한 모든 건축물이 5분 안에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지척에 붙어 있었는데요.

8번째 스탬프를 찍기 위해서 좀 떨어진 해양공원 쪽으로 가다가 건물 외벽에 커다란 태극기를 그려놓은걸 보았어요.

파아란 하늘을 뒤로 이고 펼쳐져 있는 엄청나게 큰 태극기를 보니 갑자기 뭉쿨해지더군요.

 

 

 

 

이제 8번째인 진포해양테마공원에 왔습니다. 고려말 최무선장군이 왜선 500여척을 패퇴시킨 전적지인 군산 내항에

우리나라 해군함선 및 육해공군의 퇴역 군장비들을 이곳에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뜬다리인 부잔교는 1899년에 군산항이 개항한 이후 수출입화물작업을 위해

수위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부잔교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8군데의 근현대건축물을 돌아보고 리플렛에 스탬프를 찍는데 대충 한시간 정도 걸리더군요.

리플렛을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데스크에 가지고 가니 직원분께서 미션 완료 확인 스탬프를 찍어주셨습니다.

 

 

 

 

기념품은 볼펜과 군산 흰찹쌀보리 중 선택하면 되네요. 저는 군산 특산인 흰찹쌀보리를 기념품으로 받아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제 36년 역사의 자취를 굳이 남겨서 수탈의 아픈 역사를 떠올려야 하겠냐고 합니다.

하지만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지요.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근현대사 보존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이들과 군산여행을 가신다면 바른 역사 교육을 위해서 근대항 스탬프 투어는 꼭 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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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개의 섬이 사열하듯 늘어선 고군산군도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선유도에 다녀왔습니다.

평화롭고 고즈녁한 선유도와 고군산군도의 섬을 연결되는 다리가 거의 완공이 다 되어 간다는데요.

새만금 방조제와 아미도, 신시도, 무녀도를 지나 선유교, 장자대교가 마무리 단계에 있고

현재 무녀도까지 승용차로 갈 수가 있다 하네요. 다리가 완전 개통되면 선유도는 이제 육지가 되어버리는건가요?


선유도로 가는 길은 육로를 이용하는 방법과 해로를 이용하는 방법 두가지가 있다고 해요.

육로로 가려면 군산 비응항에서 새만금 방조제를 통하여 신시도, 무녀도까지 가서

무녀도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선유도까지 운행하는 셔틀 버스를 이용하면 되구요.

해로로 가는 방법은 비응항과 야미도 두 군데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이용하면 된다고 해요.


저는 군산 비응항에서 출발하는 월명유람선을 이용하기로 했는데요. 

유람선은 B코스( 20,000원)와 C코스(30,000원)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B코스는 선유도에서 1시간 자유 시간을 포함해서 총 3시간이 소요되구요.

C코스는 자유 시간 4~5시간을 포함해서 총 6~7시간이 걸리는 코스더군요.

저는 당일로 군산과 선유도를 돌아볼 예정이라 시간이 적게 걸리는 B코스를 선택했어요.

 




유람선은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요. 아래 윗층 모두가 승객들로 가득 차서 목적지까지 서서 가야 했습니다.





유람선이 출발하길 기다리면서 비응항의 모습을 살펴 보았습니다.





U자형으로 동그렇게 생긴 비응항은 규모가 좀 작은 편이었어요.

 




드디어 유람선이 비응항을 출발했습니다. 배가 움직이며 항구와 서서히 멀어지니 살짝 설레이기까지 하더군요.





유람선은 조그만 등대를 뒤로 하고 비응항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이제 선유도로 갑니다.





선유도까지 1시간 남짓 배는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힘차게 나아갔습니다. 





선유도를 향해 가는 동안 한참이나 새만금 방조제 긴 둑이 옆으로 보였는데요. 정말 엄청나게 긴 방조제더군요.

방조제 중간 쯤에 쭉 늘어선 섬이 아스라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야미도라고 하네요.





선유도까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는데 바로 항구로 들어가지 않고 선유도를 한바퀴 돌아주더군요.





날도 맑고 파도도 없는 날이라 유람선 여행하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날이었습니다.





선유도로 이어지는 다리가 참 멋지더군요. 장자대교는 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다리라고 하는데

2018년 말에야 완공된다고 해요. 완공 이후엔 선유교 개통과 함께 자동차로 장자도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섬 주변의 트레킹 코스도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옵니다. 시간 있으신 분들은 트레킹에 도전하면 좋을 듯......





섬을 한바퀴 돈 유람선이 항구로 뱃머리를 향했습니다. 빨간 선유교의 색깔과  오묘한 물빛이 묘한 조화를 이루더군요.


 



배는 선유교 아래를 지나 항구로 서서히 들어갔습니다. 선유교가 정식 개통되면 저 위로 자동차가 다니겠네요.





배가 접안할 항구가 가까이 들어왔습니다.  항구가 정말 쪼맨(?)하더군요.

 




해양경찰분이 배가 접안하는 것을 도와주셨습니다. 이제 내려서 선유도를한 바퀴 돌아보아야겠네요.




 

자유 시간이 1시간 밖에 없어 자전거나 스쿠터로 돌아보기엔 시간이 부족하여 셔틀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이용 요금은 5천원이었는데 타자마자 후회를 했습니다. 중간에 한군데만 멈출 뿐 섬을 그냥 도는 것이었어요.

중간 중간에 내려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동네 한 바퀴 그냥 도는 것이 다였습니다.

 

다리가 개통이 된다고 하더라도 선유도는 승용차를 가지고 돌아다닐 시스템이 아니더군요.

길도 너무 좁고 차를 주차해둘 공간도 마땅히 없는 아주 좁은 섬이었습니다.

대부분 차 한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이고 셔틀 버스 두대가 지나려면 한대가 길 옆에 완전 딱 붙어야 했습니다.

이런 여건 속에서 선유교가 개통되어 자동차들이 물밀 듯 들어오면 섬이 어떻게 될지......생각만 해도 아찔하더군요.


계속 덜컹거리며 달리던 셔틀 버스가 장자교 앞에서 잠시 세워주길래 내려서 다리 위로 가 보았습니다.





장자교 바로 왼쪽으로 큰 다리가 건설되고 있더군요. 유람선으로 한 바퀴 돌 때 봤던 바로 그 다리였습니다.

2018년에 개통되면 새만금 방조제에서 장자도까지 승용차로 주파할 수 있게 되겠네요.





장자교에서 보니 선유도의 그림같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바로 선유도의 상징과도 같은 망주봉입니다. 

바다가 깊지 않아서 그런가요? 물빛이 정말 오묘한 색감이었습니다.


 



선유도 왼쪽으로 보이는 섬은 대장도, 뒷쪽으로 길게 늘어선 섬은 횡경도인 것 같습니다.

 


 

 

장자교에 잠시 정차해 주었던 셔틀 버스는 30분 만에 선유항으로 승객들을 실어주었습니다.

아직 승선까지는 30분이 더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다시 걸어서 망주봉이 잘 보이는 곳까지 가보았습니다.

 

 

 

 

선유도의 간판 격인 망주봉은 신선들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하네요.

마치 커다란 붓으로 수묵화 한폭을 무심하게 스윽 그려놓은 듯한 풍경입니다.

 

 

 

 

갯벌에서 조개를 채취하는 모습도 눈에 뜨이더군요.

늘 시퍼런 파도가 출렁이는 동해 바다만 봐온 제겐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명사십리 해변으로 가니 높은 타워가 있었어요. 스카이라인 전망대라고 합니다.

전망대만 이용할 수도 있고 저기서 짚라인을 타고 바다 가운데 솔섬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하네요.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 그냥 돌아가지만 다음에는 짚 라인 한번 꼭 타봐야겠습니다.

 

 

 

 

망주봉을 배경으로 한 해변이 참 좋더군요. 활처럼 살짝 휘어진 해변에 놓인 파라솔이 참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이 해변을 명사십리 해변이라고 부른다네요. 파도 소리가 40리 밖까지 들린다나 어쨌다나.....^^;

 

 

 

 

명사십리 해변 앞 솔섬까지 다리가 놓여 있었어요. 짚 라인이 솔섬까지 이어져 있었어요.

 

 

 

 

명사십리 해변에서 머물며 그림 같은 풍경을 오래 감상하고 싶었지만 

승선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다시 선착장에 와서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던 유람선에 올라탔습니다. 


 

 

 

신선이 노닐다 간 섬이라는 선유도에 와서 신선처럼 느긋하게 노닐다 가야 하는데

한 시간 만에 벼락치기로 돌아보고 가려니 참 아쉬웠습니다. 섬의 겉껍질만 핥고 돌아가게 되었네요.

 

 


 

앞으로 선유교, 장자대교 등 다리들이 개통되어 육지의 많은 차들이 이곳으로 몰려 들어오면

선유도는 더 붐비는 섬이 되어 버리겠지요. 신선이 노닐 수 없는 섬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선유도를 떠나며 뒤로 보이는 망주봉과 코끼리 바위에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안녕, 선유도야. 다음에 올 때까지 그 모습 변치 말고 잘 지내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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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전북 군산으로 가는길은 제법 멀었습니다. 고속도로만 해도 다섯개를 거치게 되더군요.

경주 IC에서 금호 JC까지는 경부고속도로(1번),  금호 JC에서 서대구IC구간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451),

옥포 JC에서 함양까지는 광주대구고속도로(12), 함양JC에서 장수JC까지는통영대전고속도로(35),

장수JC에서 완주 교차료까지는 익산포항고속도로(20).....이렇게 많은 길을 거치게 되는데요.

아침 일찍부터 운전해 온지라 금세 피곤해져 진안 마이산 휴게소에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진안 마이산 휴게소는 고속도로 양쪽에 있는데요. 갈때는 익산 방향 휴게소에서 쉬게 됩니다. 

휴게소 마당에 내려보니 엄청나게 큰 마이산이 바로 앞에 떡하니 있는걸 보고 동행 친구가 깜짝 놀라네요.

헉! 저게 뭐냐구요! 친구는 말로만 듣던 마이산을 처음 보았나 봅니다.

 

 

 

 

휴게소 전망대에 올라 보니 마이산이 더욱 생생하게 눈에 들어오네요.

맞은편에도 같은 이름의 휴게소가 있는데 익상 방향에서 보는 것 전망보단 못 하더군요.

 

 

 

 

십여년전 직원들끼리 마이산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산 바로 앞에 가서는 도리어 전체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구요.

전주 여행길에 휴게소에서도 몇번 본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사진으로 담아보기는 처음이네요.

 

 

 

 

말의 귀처럼 생겼다해서 마이산(馬耳山)이라 한다는데 정말 말의 귀와 흡사하지 않나요.

마주보고 있는 두 봉우리는 동쪽이 수마이봉, 서쪽이 암마이봉이라 한다는데

오늘따라 봉우리의 실루엣이 참 깔끔하게 잘 드러나 보이네요.

 

 

 

 

이 고속도로를 지날 때는 화장실을 가고 싶지 않아도 꼭 마이산 휴게소를 들리곤 했는데요.

바로 그곳에서 어리둥절할 만큼 기이한 마이산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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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 불고기로 유명한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는 둘레 약 1,000m에 이르는 읍성 유적이 있는데요.

과거와 현재가 잘 어우러져 일상 속에 녹아들어 있는 언양 읍성 유적을 돌아보았습니다.

 

 

 

 

언양읍성은 공양왕 2년(1390년)에 토성으로 축조되어 연산군 6년(1500년)에 석성으로 확장 개축하였는데

현재 옛모습을 서서히 찾아 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언양 읍성은 여러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요.

저는 읍성 동쪽에서 논길을 따라 북문 쪽까지 갔다가 다시 남문인 영화루 쪽으로 가보았습니다.

 

 

 

 

북문에서 남문인 영화루로 가려면 언양초등학교 옆을 돌아 가게 되는데요.

규모가 상당히 큰 초등학교가 폐교된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언양 읍성 복원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고 하네요.

 

 

 

 

2013년에 영화루를 준공했다고 하니 아직 복원된지 얼마 되지 않는 성곽입니다.

 

 

 

 

남문인 영화루는 옹성으로 축조가 되어 있었어요. 성을 적으로부터 방어하기에 용이한 형태인 것 같습니다.

 

 

 

 

성 위에서 본 읍성의 남쪽 모습을 보았는데 언양읍의 모습이 참 아담했습니다.

 

 

 

 

성벽에서 내려와 남문 입구에 서 보았어요. 적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면

성벽 위에서 화살을 쏘아 가차없이 몰살시킬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더군요.

 

 

 

 

둥근 옹성 안에 서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성벽이 높고 견고해 보이더군요. 빈틈없이 잘 쌓아져 있었습니다.

 

 

 

 

옹성 입구에서 본 모습입니다. 옛날 남문을 통해서 읍성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가장 먼저 만났겠지요.

 

 

 

 

남문 밖으로 나가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옹성을 바라 보았습니다.

영화루는 잘 보이지 않고 옹성만 마치 작은 콜로세움처럼 견고하게 보이는 모습이었어요.

 

 

 

 

남문 앞 읍성 벽화 마을을 돌아보다 벽에 그려진 언양 읍성 마을 역사도를 보았습니다.

4대문이 있는 언양 읍성과 주변 울주군의 산과 강까지 한눈에 들어오게 잘 그려놓았더군요.

읍성 구경 후 바로 앞에 있는 벽화 마을까지 돌아본다면 금상첨화 언양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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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를 처음 들렸던 기억은 거의 1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가본 사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한곳을 꼽으라면 저는 꼭 부석사를 첫번째로 손꼽는데

개인적으로 부석사처럼 조용하고 단아하여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찰은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빛 바랜 앨범 속 사진처럼 제 기억 갈피 속에 고요히 남아 있던 부석사.

이번에는 초여름 하늘이 곱고 푸르던 날에 찾아 보았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사과나무와 은행나무가 늘어선 아름다운 길이 나오는데 

 천왕문 바로 전 길 옆에서 당간지주(보물 제255호)를 제일 먼저 만났습니다.
사찰에서 행사가 있을때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이런 돌기둥을 당간지주(幢竿支柱)라고 한다네요. 





태백산 줄기인 봉황산이라는 산중턱에 위치한 부석사는 자연적인 가람 배치를 하고 있답니다.

 




산의 자연적인 생김새에 따라 순서대로 가람을 배치하다 보니

대웅전인 무량수전에 이르기까지는 무려 108개의 돌계단을 숨이 차게 올라야 했어요.





경내로 들어서면 눈 앞에 범종루가 마주 보이고 좌우에 늘어선 석탑 들의 조화가 더할 나위없이 아름다웠습니다. 

 

 


 

 

특이하게도 범종루의 전면은 동쪽을 향해 있다고 하네요. 마주 보이는 정면은 범종루의 측면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범종은 옆에 있는 신범종각에 걸려 있고 범종루에는 큰 법고와 목어만이 걸려 있었어요.

 

 



범종각을 지나니 또 높은 계단이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위로 수려한 자태를 드러낸 누각은 안양루라고 해요.

 

 

 

 

 2층으로 된 안양루는 누각 아래 가운데 계단을 통해서 2층 높이의 절 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안양문 계단을 올라 무량수전 마당으로 올라갈 수 있었어요. 마당에 올라 안양루를 보면 이런 모습인데요.

1층 입구는 안양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2층 누각에는 안양루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어요.





안양루 바로 앞에 선 석등 뒤로 국보18호 무량수전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어요. 




 

우리나라 팔작지붕의 시초라는 무량수전은 주심포 기둥이 절묘한 배흘림 기둥인 것으로 유명하지요.

 

 

 

 

배흘림기둥이란 기둥 중간 부분을 약간 튀어나오게 한 기둥인데 
중간을 볼록하게 함으로 기둥 머리 부분이 넓어보이는 착시현상을 막아주고 
건축물의 무게가 기둥의 중간 부분에 집중된다는 건축 구조 역학을 고려한 것이라네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도 특이한 점이었어요.

 




무량수전의 왼쪽 뒷편으로 가니 부석사 이름의 유래가 된 부석(浮石)이 있었어요.
부석은 우리 말로 '뜬 돌'인데 돌이 실제로 떠 있을 수는 없고 아래 돌과 틈이 벌어져 있다고 하네요.

부석에는 얽힌 이야기로는 중국 여인인 선묘가 의상대사가 중국에 있을 때 그를 몹시 사모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의상대사가 고국인 신라로 돌아오게 되자 선묘는 그만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어요. 
그 뒤 의상대사가 부석사 자리에 절을 지을 때 이 자리를 도적들이 차지하고 있어 애를 태웠는데
 죽은 선묘의 영이 돌을 띄우는 영험을 보여 도둑들이 도망가게 되고 

그 자리에 부석사를 지었다는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전해 온답니다.


 



무량수전 뒤쪽으로 가니 사찰 내의 가람들이 아담하게 들어앉은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어요.





안양루 아래 앉은 가람들은 물론 맞은편 마을과 저 먼곳 산줄기까지 은은하게 눈 앞에 펼쳐졌어요.
아~ 참 좋다! 셔터를 누르던 손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이나 아래를 멍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안양루의 걸린 김삿갓의 시 한편이 떠오르는 부석사의 아름다운 전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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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이라지만 한낮의 수은주가 30도를 오르내리는 한더위를 피해 언양 '자수정 동굴나라'로 가보았습니다.

자수정 동굴나라는 가족 단위 체험이나 유치원 및 초등학교의 체험학습으로 많이 들리는 곳인데요.

자수정 광산의 폐갱도를 활용하여 관광지로 만든 국내 최초, 최대의 인공 동굴 테마 공원이라고 하네요.  





입장료는 대인이 7,000원, 소인이 6,000원이고 보트 체험은 6,000원, 5,000원인데

동굴 구경과 지하 동굴 수로 탐험 보트를 함께 타면 대인 12,000원, 소인 10,000원이라고 합니다.

표를 구입하고 입구 편의점에 들렸는데 주인 아저씨가 패딩 점퍼를 입고 있더라구요. 순간 깜짝 놀라서

얼른 차 안에 넣어 두었던 트랙 슈트 상의를 하나 챙겨서 입고 있던 원피스 위에 걸치고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얼음같은 찬 바람이 옷 속을 헤집고 들어왔습니다.

밖에는 내리쬐는 햇살에 얼굴이 익을 지경인데 얼음 바람이라니! 여기가 진정 천국인가요?





폐갱도라기에 좁은 갱도가 이어지는 줄 알았는데 동굴 안은 의외로 넓고 사방으로 길이 나 있었어요.

미로 같은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어 돌아다니다 보니 어디로 나가야 할지 헛갈릴 때도 많더군요.





동굴 안은 알록달록 여러가지 조명으로 장식해 두었는데 색감의 조화가 참으로 안습이었습니다. 

알록달록 색색의 조명은 도무지 취향이 아니었지만 너무 시원하니 안구 테러는 참아주고 싶네요.





동굴 속에는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스팟도 여기저기 있었는데요.





군데 군데 색색의 전구로 꾸민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어요.





군데 군데 장식된 조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나비 장식이에요.




커피 숍과 공연장도 있더군요. 이날 관람객이 많지 않아 공연은 볼 수가 없었어요.





석굴암으로 향하는 갱도 마지막 끝에는 석굴암 본존불 모형이 있었구요.





석굴암 모형에서 다시 입구 쪽으로 나오면 반구대 암각화 모형도 만들어 놓았더군요.





지구 상에 남아 있던 마지막 원시인 아마존인들의 유골과 그들의 생활 용품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안 그래도 시원하기 그지없는 동굴 속에서 이런 전시품을 만나니 등골이 오싹해지더군요.





동굴의 막장에는 옛날 사람들이 동굴 안에서 자수정을 수작업으로 체굴하던 모습이 재현되어 있더군요.

모형도 모형이지만 빨갛고 파란 조명 때문에 괴기 영화를 보는 듯한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던 곳이었어요.





맞은 편에는 비교적 최근의 작업 현장 모습도 재현되어 있었어요.





여기저기 빨갛고 파란 조명이 너무 많아서 눈이 아플 지경이었는데

중간 광장에 오니 단색 조명이 있어서 눈이 편안해졌네요. 왜 그렇게 현란한 조명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더군요.





동굴의 끝 부분에 와서 지하 동굴 체험을 하는 보트를 만났습니다.

보트 조정하는 아저씨가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더라구요. 저 동굴 속이 얼마나 춥길래ㄷㄷㄷ.

보트 체험을 하는 동굴 속 물은 모든 사람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푸르고 어두웠는데요.

보트 체험을 안하고 걸어서 동굴 갱도만 돌아보아 반쪽 체험만 한 것이 조금 후회가 되었습니다.

혹시 다음에 자수정 동굴나라에 다시 오게 된다면 지하 동굴 체험 보트를 꼭 타보고 싶네요.

7~8월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등골이 오싹해지는 최고 수준의 피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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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언양에는 작천정 계곡이 있는데요. 계곡에 흐르는 물은 작괘천, 그 위에 지어진 정자는 작천정이라고 합니다.

신불산 홍류 폭포에서 시작한 물이 울산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까지 흘러들어 너른 반석 위로 구비구비 흐르는데

하천 바위가 물살에 패인 모양이 술잔(酌)을 걸어놓은(掛) 것 같다고 하여 작괘천(掛川)이라 불리웠다고 하네요. 

작궤천 앞에 날아갈 듯 앉은 작천정(川亭)에 앉아 보는 계곡 풍경도 참 멋진데요. 

충신 정몽주가 유배를 왔을 때 정자에 앉아 경치를 음미하며 시를 읊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더군요.


작천정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데요. 한참 전 여름 휴가 때 작천정에서 신나는 물놀이를 했던 추억입니다.

이곳은 너른 반석 위를 흐르는 물이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되어 아이들 물놀이하기에는 최고의 장소거든요.

반석 아래로 흐르는 물이 천연 물미끄럼틀이 되어 해가 다 질 때까지 하루종일 물미끄럼틀을 타며 놀았는데

집에 올 때 보니 아이가 입었던 윗도리와 바지가 다 헤어져 너덜너덜해졌던 생각이 납니다.


오랜만에 찾은 작천정 계곡은 사라진 장마와 극심한 가뭄으로 거의 바닥이 드러나 있더군요.

계곡 한가운데만 간신히 물이 흐르고 있는 정도라 보는 제 마음도 타들어 가는 것 같았어요. 

빨리 충분한 비가 내려서 작괘천이 물로 가득 차고 반석 위에서 끝없이 물미끄럼틀을 탈 날을 기대해 보면서......

오랜 가뭄의 끝에 작천정 계곡에서 찍은 사진 몇장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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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얼음이 얼고 돌 사이에서 차가운 바람이 나온다는 밀양 얼음골을 가봤습니다.

경남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에 이르러 가지산 도립공원 얼음골 휴게소에서 우회전하여 

일차선 포장도로를 조금 주행하니 매표소가 나왔습니다. 입장료는 어른이 1,000원입니다.





이곳으로 올라가면 천황사를 거쳐 왼쪽으로 가마불폭포, 오른쪽으로는 결빙지를 만날 수 있다고 하네요.





매표소 앞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시작부터 경사가 가파른 산길을 한참이나 걸어올라갔습니다.





한 200m 걸어가니 천황사가 나왔습니다. 천황사에는 보물 제1213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다고 해요.





천황사에서 가마불폭포까지는 260m, 결빙지까지는 210m이더군요.

가마불폭포로 가기 위해서 천황사 왼쪽 산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경사가 급한 산길 돌게단을 한참이나 올랐습니다. 





한참을 가니 계곡 한 구석에 제법 보기 좋은 폭포가 흘러내리더라구요.

시원한 물줄기가 날아와서 얼굴이 시원했습니다.





이 폭포가 가마불폭포인가보다 하고 발걸음을 돌렸는데 나중에 보니 가마불폭포가 아니었어요.





작은 폭포를 보고 다시 천황사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낙엽 속에 계단이 숨겨져 있어 조심해야 했습니다.





어떤 곳엔 돌계단 위에 작은 꽃비가 내려 있더라구요.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산길을 내려와 천황사 오른쪽으로난 무지개 다리길로 향했습니다.





이 길도 처음에는 울퉁불퉁 삐죽삐죽 바윗돌 투성인 길이 조금 있었어요. 조심조심......





곧 이어 이렇게 편안한 나무데크가 나왔어요. 쾌적한 길 정말 좋아요.





드디어 얼음골 결빙지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얼음은 얼지 않았더군요.

천년기념물 제224호 밀양 얼음골은 천황산 600~750m 기슭에 3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약 9000평 넓이의 곳으로 

약 8000만년전 중생대 백악기말 이곳은 용암이 흐르고 화산재가 터져 나오는 지역이었으며

주변 낮은 지대에는 공룡들이 살았다고 해요.

이때의 화산 활동에 의해 얼음골 주변의 산과 계곡을 이루고 있는 화산암과 응회암이 만들어졌구요.

오랜 세월이 지나 수만년전. 이땅에 빙하기가 찾아오면서 얼음골 북쪽의 산을 이루고 있는 암석들이

얼고 녹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암석들이 조각나게 되고 이 암석 조각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얼음골 계곡의 경사면에 쌓이게 되었데요.

얼음골 계곡에 널려 있는 돌무더기들은 너덜겅, 또는 너덜 지대, 돌서령, 애추라고 부르는데 

그 안에 미로처럼 얽혀 있는 좁은 공간들이 얼음골의 신비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해요.





희한한 것은 더위가 시작되는 6월 중순부터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6월이면 계곡 바위 틈마다 석류알같은 얼음이 박히며 이런 현상이 9월까지 계속된다고 해요.

그러다 처서가 지나 찬바람이 불어오면 도리어 얼음이 녹고 겨울이면 도리어 바위 틈에서 따뜻한 공기가 새어나온다고 하더군요.

조금 더 늦게 여름에 방문했더라면 바위에 얼음이 박힌 것을 볼 수 있었을텐데 정말 아쉬웠어요.





결빙지를 구경한 후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를 따라 계속 걸어갔습니다. 





산이 높고 험준한 곳인데도 트레킹 코스가 참 잘 갖추어져 있었어요.





데크길 여기저기 하얀 꽃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밟기가 미안할 정도로......

이어지는 경사면도 나무 데크가 잘 갖추어져 있어 한참이나 계단을 밟고 내려갔답니다.





나무 데크를 한참이나 내려가니 커다란 폭포가 2개 나왔어요. 이게 바로 가마불폭포였군요.

가마불폭포는 폭포의 모양 때문에 숫가마불폭포와 암가마불폭포로 불리워진다고 하네요.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드러내고 시원한 물줄기를 내어 뿜는 폭포는 숫가마불폭포라고 불리우구요.





폭포의 진면목이 혐곡 사이에 깊숙히 숨겨져 그 모습을 잘 드러내어 주지 않는 폭포는 암가마불폭포라고 하더군요.

암수가마불 폭포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수는 병풍처럼 둘러싼 기암절벽과 함게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어요.





천황사, 결빙지, 암수가마불폭포를 다 보고 산을 내려와 얼음골휴게소 주차장에 이르니 여기도 폭포가 참 보기 좋더군요.

비록 결빙지에 얼음이 얼어있는 모습은 못 보았지만 반나절 트레킹으로 아주 기분좋은 시간을 보내고 얼음골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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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여울길을 처음 찾았던 것이 2011년 2월이었는데 거의 6년 만에 흰여울길을 다시 찾아 보았어요.





절영로와 하나길이 만나는 이송도곡각지에 차를 세워두고 예전에 흰여울길로 들어갔던 골목을 찾았는데

새로운 빌라가 들어서서 길이 막혀 있더군요.  바다를 발 아래 둘 수 있는 고급 빌라가 들어서니 

마을이 발전되어 좋기는 하겠지만 웬일인지 예전같은 분위기가 아니어서 약간 실망이 앞셨습니다.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촬영지 소개판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흰여울길로 들어섰습니다. 

이탈리아 포지타노처럼 바다 언덕 위에 다닥다닥 붙어지어진 마을과 

언덕 아래 절영 해안 산책로 그리고 푸르른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지네요.





깎아지른 듯한 해변 언덕 위에 옹기종기 몰려 있는 마을의 이름도 너무 아름다워 '흰여울 문화마을'입니다.

'여울'이란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이름이니

태종대 앞 바다가 바라 보이는 '흰여울길'이란 이름이 원래 이름인 '영선동'보다는 훨씬 낭만적으로 들리네요.





흰여울길 바로 앞으로는 푸르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저 멀리 남항대교와 송도 해변, 진정산, 천마산 등이 한눈에 들어오네요.





흰여울길의 어떤 곳이든지 방문만 열면 이런 멋진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흰여울길을 걷다보면 절영로로 올라가는 작은 골목길을 많이 만나게 되더군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그어놓은 하얀 선...... 참 보기 드문 풍경이죠.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등 이름난 영화들이 이곳에서 촬영되고 난 뒤 마을 모습도 많이 달라졌더군요.

작은 전시회등이 열리는 흰여울길 안내센터도 생기고 이렇게 마을 점빵도 들어서 있었어요.





흰여울점빵 앞 담벼락 위에 음식을 올려 놓고 먹을 수 있게 해 놓았더군요.

가슴이 탁 트이는 바다를 눈앞에 둘 수 있는 최고의 노천 카페인 듯......

점빵 간판을 보니 급출출하여 라면을 시켜 놓고 점방 3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비좁은 계단을 힘들게 올라 가서 앉은 흰여울점방 3층입니다. 경치 정말 대박이죠.

하지만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계단을 라면그릇 들고 올라가려면 곡예를 감수해야 합니다^^. 





장소만 잘 선택하면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생 샷을 남길 수 있겠지요.





흰여울길 끝 이송도전망대까지 오니 아래 절영 해안 산책로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나왔어요.

지난번에는 가파른 계단을 걸어내려가 흰여울 문화마을 거점 센터까지 해안 산책도 했는데 

이번엔 시간이 늦어서 왔던 길로 다시 걸어 돌아갔습니다.





흰여울 문화마을을 돌아보면 곳곳에 이곳 주민들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엿보인답니다.

군데 군데 길냥이를 위한 먹이가 놓아두어 길냥이들이 마음껏 먹고 목도 축일 수 있게 해두었어요.





사람의 손길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흰여울길 냥이들은 해바라기를 하며 행복한 오후를 보내고 있더군요.





골목 담벼락에는 타일 장식이 많아졌더라구요. 바로셀로나 구엘 공원의 오마쥬인가요?





군데 군데 담벼락 위에는 빨간 장미 조화 장식이 눈에 많이 띄었어요.

예쁘다고 하시는 분도 많으시겠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인위적인 장식이 별로더라구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무 다라이에서 키우는 가지각색 꽃들 위에서 펄럭이는 빨래들.

이것이 진정한 흰여울길의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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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용필의 불후의 명곡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사에 등장하는 오륙도에 다녀왔습니다.

오륙도에 가보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인데요. 오륙년 전에 해운대에서 출발하는 관광유람선을 타고 

광안대교와 오륙도를 돌아보고 찍은 사진과 체험담을 올려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오륙도 스카이워크를 걸어보기 위해 오륙도 주차장으로 바로 향했어요.





오랜만에 찾았는데 예전보다 주차장도 넓어졌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들어서 있더라구요. 

차를 세워 두고 오륙도 해맞이 공원의 계단으로 먼저 올라  높은 곳에서 주변을 살펴 보았습니다.





해맞이 광장을 내려와 스카이워크 광장에서 본 오륙도인데요. 

육지 쪽에서 보면 섬이 두개 밖에 보이지 않아요.

유람선을 타고 한바퀴 돌아야 왜 섬 이름이 오륙도인지 이해가 된답니다.

오륙도 전체 섬의 모양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돼요~


관련 포스트 : 유람선 타고 돌아본 광안대교와 오륙도 




자, 이제 오륙도 스카이 워크를 걸어 볼 차례입니다. 스카이워크 관람비는 따로 없구요. 

투명 유리로 된 스카이 워크의 파손을 막기 위해서 입구에서 덧신을 신어야 입장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 등산 스틱, 우산, 셀카봉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요.





스카이 워크 입구에서 보면 바다로 쭈욱 뻗은 스카이 워크가 참 시원하고 청량감 있게 보이죠.

높이 37m의 해안 절벽 위에 철제 빔을 설치하고 그 위에 유리판 24개를 말발굽 형으로 놓았다고 해요.

 




스카이 워크 유리 아래는 절벽이 보이고 끝 부분에 가면 바다 위 허공이라 아찔함을 느낄 수 있어요.

발 아래 투명 유리를 통해 파도가 절벽을 때리는 모습을 보다가 현기증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유리 두께가 55mm정도라 안전하기 그지 없다지만 고소 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무서워 아래를 못 보더군요.

높은 곳을 즐기는 저는 길이 약 15m 정도인 스카이 워크가 너무 짧아서 약간 아쉬웠답니다.





스카이 워크 앞에 펼쳐진 바다는 정말로 대박입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니 저 멀리 수평선 위로 날개를 펴고 날아가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더라구요.

날씨가 좋은 날에는 대마도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데 이날은 볼 수가 없었어요.





다시 스카이워크 밖으로 나오니 오륙도로 가는 관광유람선이 이쪽으로 다가 오네요.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노래가 들리는 듯한 최고의 바다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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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란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처음 들어보는 나무라고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나무 전체를 뒤덮으며 피는 하얀 꽃이 '이밥', 즉 '쌀밥'을 뿌려놓은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이 나무는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 쯤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입하목에서 입하나무를 거쳐 오늘날의 '이팝나무'라고 불리웠다고 하는 설도 있어요.


포항시 흥해 향교 언덕에는 100~150년생의 이팝나무 34그루가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어요.

해마다 5월이면 아름드리 이팝나무에서 피어난 꽃들이 향교산을 하얗게 뒤덮어 장관을 이룬답니다. 


우리나라의 크고 오래 된 이팝나무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데요. 

이팝나무의 꽃이 많이 피고 적게 피는 것으로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칠 수있다고 합니다.

이팝나무는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라 비의 양이 적당하면 꽃이 활짝 피고 

부족하면 꽃이 활짝 피어나지 못하는데서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가 봐요.


5월 초에 찾아본 흥해 향교산 이팝나무는 가지가 축 드리워질 정도로 탐스럽게 꽃이 피었더군요.

가지마다 함박 피어난 이팝꽃을 보며 올해도 풍년이 들어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소원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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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잘 하지 않는 필자가 자주 찾는 산이 있습니다. 바로 경북 청송군 부동면에 있는 주왕산인데요.

경주에서 승용차로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다 굳이 산을 힘들여 오르지 않더라도

계곡 트레킹으로 충분히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주왕산은 대전사에서 시작하는데요. 대전사 뒤에 우뚝 솟은 기암은 청송 주왕산을 대표하는 바위입니다.

옛날 중국 동진의 왕족 주도(주왕)가 당나라에서 반정을 하다 실패해서 이곳에 와서 은둔하였다고 하는데요. 

그 뒤 나옹화상이 수도하면서 산 이름을 주왕산으로 하면 고장이 복될 것이라고 해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 중턱에는 주왕이 은둔했다는 주왕굴도 있는데 굴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과연 이곳에 주왕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답니다.





주왕산의 트레킹 코스는 너무나 평탄하고 넓어서 하이힐을 신고 걷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랍니다.





길을 걸어가다 보면 주왕천변 여기저기에 선홍빛으로 피어있는 수달래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주왕산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 수달래는 누가 심는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피어나는 것들입니다.

 




수달래꽃에는 주왕굴에 은둔하던 주왕이 흘린 피가 주왕천을 붉게 물들여 꽃이 피었다는 전설이 깃들여져 있는데요.  

올해는 4월 29일, 30일(토, 일) 이틀간 주왕산 수달래 축제가 국립공원 일대에서 열렸습니다.





주왕천의 대부분 구간은 안식년제로 들어갈 수 없는데요. 다리가 놓인 이곳 계곡은 통제없이 들어갈 수 있었어요.





한참 걷다 보면 엄청나게 큰 바위들이 시선을 압도합니다. 학소대, 급수대인것 같아요.





시루 모양으로 생겨서 시루봉이라는데 전 사람 얼굴 같이 보였어요.







제 1폭포의 아름다움......이곳에서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의 한장면을 찍었던 걸로 기억되네요.





1폭포는 이렇게 3단으로 되어 있어요. 정말 멋진 폭포입니다.





주왕산은 바위 들이 정말 어마무시하게 큽니다.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경관들이죠.





저 높은 곳에서 굴러 떨어진 바윗덩어리들이 여기 저기에 걸쳐져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에요.

트레킹 코스를 따라 제2폭포, 제3폭포까지 가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제1폭포에서 발걸음을 돌리기로 했습니다.





다시 주차장으로 오는 길에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연화굴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굴은 크지 않았지만 참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굴 안쪽에서 바깥 쪽으로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산행을 시작했을 때엔 하늘이 많이 흐렸는데 어느새 온화한 햇살로 색감이 바뀌었네요.





좀 늦은 시간에 산행을 시작한지라 하행길에 벌써 계곡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보며 사진도 찍어보고......





수달래들도 오후햇살을 받아 더욱 빛깔이 예뻐졌습니다.





화장실조차 그림이 되는 주왕산 계곡의 풍경입니다.





이번에는 왕복 2시간 정도의 짧은 산행이라 많은 것을 보고 담지 못했지만

다음 기회에는 주왕굴이며 제2폭포, 제3폭포,내원동 마을까지 한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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